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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오리지널 통기타 베스트 7080

통기타와 떠나는 아름다운 추억여행

가람과 뫼, 강은철, 김세환, 김연숙, 김인순 노래 외 3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가람뮤직 | 2016년 12월 1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6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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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12월 15일
시간, 무게, 크기 700g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확인 중
인증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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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오리지널 통기타베스트7080

디스크

CD1. 내 마음의 보석상자...
  • 01 내 마음의 보석상자
  • 02 인생은 미완성
  • 03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
  • 04 영상
  • 05 연인들의 이야기
  • 06 장난감 병정
  • 07 행복한 사람
  • 08 여고 졸업반
  • 09 피리 부는 사나이
  • 10 하얀 손수건
  • 11 잃어버린 우산
  • 12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 13 사랑의 눈동자
  • 14 그리움만 쌓이네
  • 15 님 그림자
  • 16 그대로 그렇게
  • 17 한번쯤
CD2.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 01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 02 길가에 앉아서
  • 03 옛 시인의 노래
  • 04 내게도 사랑이
  • 05 너 너 너
  • 06 해야
  • 07 장미
  • 08 꿈을 먹는 젊은이
  • 09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 10 내일로 가는 마차
  • 11 사랑하는 마음
  • 12 나뭇잎 사이로
  • 13 그날
  • 14 비와 찻잔 사이
  • 15 가슴앓이
  • 16 찻잔
  • 17 이름 모를 소녀
CD3. 밤에 떠난 여인...
  • 01 밤에 떠난 여인
  • 02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03 하얀 나비
  • 04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 05 찬비
  • 06 모두가 사랑이예요
  • 07 은지
  • 08 삼포 가는 길
  • 09 바람과 구름
  • 10 생일
  • 11 타인의 계절
  • 12 어서 말을 해
  • 13 시인의 마을
  • 14 기도
  • 15 제비
  • 16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39명)

멤버 : 민재홍, 윤영로 멤버 : 민재홍, 윤영로
1970년대를 풍미한 통기타 가수에서 최근 세시봉 열풍으로 다시금 전설을 이어가며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음유 가객. 자타가 공인하는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틈만 나면 한강으로 나가 한강의 바람과 냄새에 몸을 실어 왔다. 은륜 위에서 만나온 한강을 서슴없이 '애인'이라 부른다. 1970년대를 풍미한 통기타 가수에서 최근 세시봉 열풍으로 다시금 전설을 이어가며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음유 가객. 자타가 공인하는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틈만 나면 한강으로 나가 한강의 바람과 냄새에 몸을 실어 왔다. 은륜 위에서 만나온 한강을 서슴없이 '애인'이라 부른다.
어니언스(Onions)의 노래 ‘작은새’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김정호는 국악의 명인들이 많은 외가 쪽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삼촌으로부터 선물 받은 기타로 음악가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 때에 밴드부에 가입해 악기를 다루었다. 졸업 후 미8군에서 기타를 치다가 후배 임창제가 결성한 그룹 어니언스의 앨범에 작곡자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룹의 인기와 더불어 그의 이름도 알려지게 ... 어니언스(Onions)의 노래 ‘작은새’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김정호는 국악의 명인들이 많은 외가 쪽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삼촌으로부터 선물 받은 기타로 음악가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 때에 밴드부에 가입해 악기를 다루었다. 졸업 후 미8군에서 기타를 치다가 후배 임창제가 결성한 그룹 어니언스의 앨범에 작곡자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룹의 인기와 더불어 그의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다. < 쉘부르 > 등의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그룹 4월과 5월에서 잠깐 머물다가 1973년 자신의 자작곡인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했다. 이후 ‘하얀 나비’로 정상에 오른 그는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꽃잎’ 등의 히트곡을 쏟아 부으며 최고의 포크가수로 자리 매김 한다. 그는 < 꽃잎 >이란 카페를 운영하며 강은철, 김학래, 임하룡, 남궁옥분 등과 함께 무대에 섰으며 자주 국악 공연을 관람하며 소울풀한 음색에 토속적인 맛을 입혔다. 폐결핵 환자라는 소문이 돌던 시기에, 그는 1975년 마약 사범으로 잡혀 들어간다. 그는 이 대마초파동으로 구금되어 정신병원까지 가야 했으며 이후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깊어지는 병마와 싸웠다. 심해지는 병은 그를 파산으로 몰고 갔으며 변변치 않던 작곡비로 연명하던 그는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끊어 녹음한 끝에 1983년 마지막 앨범을 낸 김정호는 병원의 환자에게서 영감을 얻은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로 재기에 성공하지만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1985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임종 3개월 전, 딸에게 자신이 인기가수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TV에 출연했고 이것이 마지막 그의 모습이 되었다. 그의 유작에선 또한 ‘하얀 나비’와 함께 그의 죽음을 예견한 곡으로 비유되곤 하는 ‘님’이 사후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은 포크로 분류되지만 독특한 음색에서 품어져 나오는 혼의 목소리는 소울과 블루스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고 있으며 마지막까지 꽹과리를 들고 우리의 소리에 심취한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또 다른 원천은 국악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사망하자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이종환의 < 밤의 디스크쇼 >에서는 추모 방송을 연일 내보냈고 1986년에는 홍민, 김수희, 김학래, 하남석, 윤시내, 김범룡, 이정선, 신형원, 윤승태, 한마음, 전영록, 김현식, 서수남, 하청일, 송창식, 이태원, 강은철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힘을 합친 트리뷰트 음반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생을 영화화한 < 님 >이 개봉되었다. 팬들의 사랑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는 1998년 조선일보가 선정한 < 건국 이후 가수 베스트 50 > 중에서 30위를 차지하는 위용을 과시했다.
멤버 : 한철수, 한철호, 홍성삼 멤버 : 한철수, 한철호, 홍성삼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노사연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곡은 그녀의 이모인 가수 현미의 소개로 만난 작곡자가 만들어 준 곡으로, 한의 정서가 우리 고유의 언어로 표현된 멋있는 곡이었다. 이 대회에선 송골매의 전신인 활주로의 ‘탈춤’, 임백천과 고영선의 ‘한마음’ 등이 입상을 했으며 입상은 못했지만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으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노사연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곡은 그녀의 이모인 가수 현미의 소개로 만난 작곡자가 만들어 준 곡으로, 한의 정서가 우리 고유의 언어로 표현된 멋있는 곡이었다. 이 대회에선 송골매의 전신인 활주로의 ‘탈춤’, 임백천과 고영선의 ‘한마음’ 등이 입상을 했으며 입상은 못했지만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으로 후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이광조, 이문세, 해바라기 등과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1983년 ‘돌고 돌아가는 길’의 작곡가 김욱에게 ‘님 그림자’란 곡을 받는다. 뛰어난 서정성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 곡은 대학가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눈에 띄지 않게 꾸준한 사랑을 쌓아간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 영11 >에 나와 개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수로서보다는 개그맨으로서의 위상으로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리던 노사연은 1987년 ‘우리에겐’이라는 곡이 들어 있는 앨범을 내 놓는다. 개그맨의 이미지를 벗고 가수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히기 위해 내 놓은 이 앨범은 그러나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시키는데 그쳤을 뿐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2년 후에 내놓은 2집도 처음에는 아무런 시장성도 발휘하지 못한다. 계속 오락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오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그녀는 TV 오락 프로그램인 <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에 고정 게스트로 나가면서 시청자들의 눈에 띄게 된다.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진행자인 주병진, 이경규 등을 최고의 스타로 부각시킨 이 프로그램에서 노사연은 2집의 수록곡 ‘만남’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러 결국 1991년 최고의 인기곡으로 만들고 만다. 2년이나 늦게 히트된 ‘만남’이란 곡으로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노사연은 연말 각종 시상식을 휩쓸면서 가수왕의 자리에 오르고 계속해서 3집의 수록곡 ‘이 마음 다시 여기에’로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로서 그녀는 ''90년대에 비 트로트계열의 성인 가요로 가요계의 정상을 밟은 유일무이한 가수가 되었으며 조선일보 선정 건국이후 가수베스트50에서 일약 40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남편 이무송과 결혼하기 전에 ‘사는게 뭔지’를 TV에서 불러 노래의 인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노사연은 현재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새 앨범을 발표하기 위해 체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6년만에 가수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멤버 : 조하문(보컬), 김광현, 문영식 멤버 : 조하문(보컬), 김광현, 문영식
고등학교 때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 가는 길》을 작사·작곡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이동기의 《춘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등을 작곡했다. 19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다.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등을 히트시켰다. 가족뮤지컬 《아빠... 고등학교 때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 가는 길》을 작사·작곡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이동기의 《춘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등을 작곡했다. 19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다.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등을 히트시켰다. 가족뮤지컬 《아빠와 크레파스》를 제작하면서 《꼬마 요리사》, 《내 친구 똥》, 《이를 닦는 슈퍼맨》, 《꼬마와 해바라기》, 《내 이름은 풀잎이에요》, 《밥 송(감사합니다 송)》, 《맛있는 우유 송》 등의 동요를 발표했다.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8년 발표한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사와 멜로디로 충격을 몰고 온 ‘한동안 뜸했었지’가 들어 있는 이 앨범은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전체를 휘감고 있는 가운데 레게풍의 ‘노래여 퍼져라’, 펑키한 재즈 감각의 농익은 연주를 선보인 ‘뭉게 구름’, 김명곤의 키보드가 춤을 추는 베토벤(Beethoven)의 ‘운명’ 등이 탄탄한 연주력과 호흡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내공이 되어 있는가를 오늘날 들어도 여실히 느끼게 해 주고 있다. 1978년을 온통 ‘한동안 뜸했었지’의 해로 만든 이들은 다음 해 또 한 장의 명반을 내놓으며 국내 그룹 중 최고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2집에 수록된 ‘장미’는 전작에 못지 않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딱 꼬집어 얘기 할 수 없어요’를 비롯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다시 한번 드림팀의 면모를 과시한다. 2집에서는 송홍섭이 이남이 대신에 들어 왔으며 1집의 ‘뭉게 구름’같이 ‘축제’, ‘솔바람’ 등의 창작곡과 ‘엘리제를 위하여’, ‘아베마리아’ 등과 같은 클래식 소품들을 연주곡으로 삽입해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이러한 시도는 펑키함 외에도 프로그레시브한 면과 재즈적인 측면을 강조한 그룹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그러나 음악적 견해차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드러머 김태홍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는 팀을 와해의 상태로 만들어 공백기를 조성한다. 이 기나긴 휴식기에는 몇몇의 새로운 멤버들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간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원영, 드러머 문영배 등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후에 국내 대중 음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자리잡는다. 한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몇몇 재즈 팀에서 활동하던 최이철은 사랑과 평화에서 했던 재즈록의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이남이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촉망받던 연주인들을 불러모아 10여 년만에 새 앨범을 내 놓는다. 이 앨범에서는 ‘울고싶어라’가 크게 히트하고 ‘겨울바다’, ‘노래는 숲에 흐르고’ 등과 같은 훌륭한 곡들로 이들이 실력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수 김세화가 리메이크 작품을 다시 내놓는 등 그 해를 강타했던 ‘울고싶어라’는 이남이의 개인적인 인기를 부풀려 놓음으로써 이남이의 솔로 독립만을 지원한 꼴이 되었다. 오뚜기 최이철은 다시 퓨전 재즈의 가능성을 이 땅에 심어준 봄여름가을겨울 출신의 빛과 소금 두 멤버를 영입해 두 팀의 공통점인 재즈적인 팀컬러를 확실히 구축한다. 이 작은 거장들이 합세한 4집 음반은 음반사의 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샴푸의 요정’이라는 히트곡을 내었으며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여 < 환태평양 록 오사카 음악제 >에 출전해 사물놀이와 양약을 섞은 ‘덩더쿵’이라는 곡으로 일본 관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는다. 이 환대로 < 경주 엑스포 >에서 펼쳐진 특별 무대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박성식과 장기호가 종교적인 이유로 팀을 떠나 빛과 소금이라는 팀을 결성하자, 최이철은 또 다른 라인업을 구상해야 했다. 과거에 팀에서 같이 잠깐 활동했던 이병일 , 이승수, 안정현 등의 뮤지션과 함께한 최이철은 ‘못 생겨도 좋아’가 실린 5집, ‘착각하지마’가 들어 있는 6집을 발표하며 댄스 음악의 한복판을 정면 돌파해 나갔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현재 이들은 그간 꾸준히 팀을 이끌어 오던 최이철이 팀을 떠나 개인 활동에 들어가고 나머지 멤버가 송기영과 이권희를 받아들여 사랑과 평화를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멤버 : 김정환 멤버 : 김정환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황폐화된 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을 비쳐 준 것은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이 형제들은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으로 한 순간에 가요계를 전복시켰고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인 데뷔 음반과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끝없는 창작욕을 발현한 첫 번째 단추...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황폐화된 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을 비쳐 준 것은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이 형제들은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으로 한 순간에 가요계를 전복시켰고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인 데뷔 음반과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끝없는 창작욕을 발현한 첫 번째 단추가 되었으며, 신중현이 열어 놓은 록의 세계를 아마추어의 경지에서 마음껏 조리한 역사적인 음반이 되었다. 둘째 김창훈의 곡인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은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문 좀 열어 줘’란 곡으로 출전했지만, 김창완이 졸업생 이여서 자격미달로 실격한 이들은 자신들의 기념 음반을 가지고 싶었던 나머지 친척들을 졸라 앨범 제작비를 구걸했고 그간 만들어 놓았던 150곡 중 몇 곡을 추려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그리곤 가장 가까운 레코드 회사인 서라벌을 찾아가 자신들의 소원을 얘기했다. 이들의 데모 테이프를 들어 본 사장은 아무 조건 없이 음반을 만들어 주겠다며 손수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고 이들의 이름을 산울림으로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악기는 연주를 하고 나면 줄이 풀려 끝까지 마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평론가 이백천에게서 팬더사의 스트라토 기타와 암페그에서 만든 베이스를 빌려온 이들은 하루만에 녹음을 끝마쳤으며 음반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채 본격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거두며 삽시간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명반으로 꼽히는 2집을 4개월만에 내놓았으며 역시 파격과 혁신의 메아리로 소리를 내지르며 커다랗게 산울림을 자아냈다. 이것은 2집이 나온 지 6개월만에 발매된 3집의 ‘그대는 이미 나’로까지 이어진다. 동생들이 군대에 가자 산울림은 제대로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4집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에 쓰였던 주제곡들을 모아 편집한 음반으로 발매했고 5집은 동생들이 휴가 나온 사이 녹음을 끝내야 했다. 데뷔 음반의 폭발적인 반응에서 멀어진 듯한 이들의 인기는 6집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동생들이 제대하고 같이 만든 7집의 ‘청춘’, 8집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같은 스탠더드 류의 히트곡으로 계속 이어지며 초창기의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곡들보다는 대중성이 뛰어난 곡들로 꾸며지며 계속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3인 밴드 최상의 사운드를 들려주며 우리 나라 헤비메탈 사운드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9집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혼자 남은 김창완은 < 기타가 있는 수필 >이란 솔로 앨범에서 ‘어머니와 고등어’를 히트시키며 이후 계속 되는 솔로 여정의 첫 삽을 뜬다. 그는 이어 본인이 혼자 만든 산울림 10집에서 감상적 발라드 ‘너의 의미’를 히트시킨다. 그는 또한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모아 포크 그룹 꾸러기들을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으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라는 긴 제목의 곡으로 100일간의 장기 공연을 치뤄 냈다. 밴드 음악의 감독으로 산울림을 지휘한 김창완의 한편에는 동요라는 장르가 있다. 처음의 기획의도는 기존의 동요를 재해석하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외국 곡이라는 한계를 알게 된 그는 직접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곡들로 시장을 두들겼고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안녕’ 등과 같이 정규 앨범의 히트곡 못지 않은 인기곡들을 양산한다. 그의 동요 앨범들은 그의 천진무구한 창작적인 감수성이 뽑아낸 새로운 시도였다. 9집 이후 김창완 혼자서 작업했던 산울림은 과거의 뮤지션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합체식을 가졌다. 국내에서 트리뷰트를 받은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내 마음’에서 보여준 김창훈의 메탈성 보컬로 오랜만에 원초적인 삼 형제의 힘을 발휘하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음악 자체의 순수성을 엮어낸다. 그리고 폭풍 속의 댄스씬을 빠져 나온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산울림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사업거리를 구상한다. 1981년 해바라기 출신의 이주호와 지금은 녹음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성일 등과 유리박이란 그룹을 결성한 유익종은 이 팀의 와해와 동시에 이주호와 듀엣 해바라기를 출범시킨다. 해바라기의 1집에선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 이예요’ 등이 히트했지만 이주호와의 음악 차이를 느낀 그는 팀을 떠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사랑의 눈동자’를 히트시킨다. 하지만 그룹 활동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로 했던 해바라기 3집으로 다시 해바라기의 멤버로 오랜 활동을 한다. 이 앨범에서는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등이 크게 히트하고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도시의 밤 풍경’ 등이 라디오를 타면서 2년여간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된다. 아직도 이 시절의 인기는 그를 해바라기 시절의 멤버로 각인 시킨다. 해바라기 3집 발표 시에는 그의 솔로 2집 앨범이 일주일먼저 나오고 이주호의 앨범 등과 겹쳐 솔로 활동은 해보지도 못하고 접는다. 2집에서는 아직까지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87년 옴니버스 앨범에 유영건이 만든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를 수록해 주목을 받은 그는 1989년 미국의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으로 교민들의 인기를 모은 하광훈의 ‘이연’이 수록된 3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여진의 ‘그해 가을’, ‘가을에 떠난 사람’, ‘하나가 되어’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1년 ‘차창에 흐르는 이별’이 수록된 4집은 그가 처음으로 제작하고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앨범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외면을 받은 앨범으로 기억된다. 후에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모아 발표한 < Worst > 앨범에서 이두헌이 만든 ‘저길 저편 저 차에 오르면’, 박강성의 ‘그대의 허상’ 왈츠 풍의 ‘그리움’ 등을 수록해 4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반추’가 수록된 5집을 발표한 유익종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는다. 앞으로 나올 3장의 기획 앨범 중 첫 번째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 3분의 1 > 앨범에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조용필의 ‘들꽃’, 최성수의 ‘해후’ 등을 불러 오랜 소원을 풀었다. 1998년에 발표한 6집에는 ‘그리운 얼굴’이 주목받으며 매스컴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따로또같이의 ‘나는 이 노래하리오’의 두 가지 버전을 수록해 자신의 스타일과 유행하는 현재의 음악 스타일을 비교하였다. 1999년 묻어만 두기엔 아까운 노래들로만 모은 < Worst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최근 미사리에서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며 7집을 구상하고 있다.
대형가수라는 별칭과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은하는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쇼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3년 ‘님 마중’이란 곡으로 공식적인 데뷔를 한 그녀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디스코 열풍에 힘입은 ‘밤차’와 ‘아리송해’로 절정의 인기를 이어갔다. 1980년대 중반, 김창완... 대형가수라는 별칭과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은하는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쇼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3년 ‘님 마중’이란 곡으로 공식적인 데뷔를 한 그녀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디스코 열풍에 힘입은 ‘밤차’와 ‘아리송해’로 절정의 인기를 이어갔다. 1980년대 중반, 김창완의 곡들로만 꾸민 앨범에서 ‘사랑도 한번 못 해본 사람은’으로 다시 정상을 탈환한 그녀는 고 장덕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발라드 시대의 한 축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며 1977년부터 1985년까지 각종 연말 식장의 주연급으로 등장했다. 이후 전영록의 ‘돌아보지마’로 1980년대 후반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그녀는 댄스씬이 몰아친 1992년 수작 < Escape >으로 귀환했지만, 더 이상 그녀는 TV속의 주연 자리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헌정 음반 >, 서구의 문화침탈에 대항한 <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까지 자신의 참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개혁의 기치를 빼어들었다. 그는 비록 김민기와 같이 시대적 요청의 화합물이 되거나 서태지와 같은 권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 파워맨은 아니었지만, 고군분투하여 따낸 사전검열제도폐지와 끔찍한 진실의 현장을 포착한 < 아! 대한민국 >, < 92년 장마, 종로에서 > 등으로 그 동안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소위 운동권의 저항가요들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대학이란 포장지로 감싼 운동권 가요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는 민중의 노래였으며 오랜 시간 다져진 글래디에이터의 자신에 찬 고백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들어서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이 농부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는 현악반에 다니면서 음악대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방황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도 선생님과의 이별은 그를 어두운 사춘기적 자화상 속에서 살게 했고, 재수와 함께 시작된 여러 번의 가출은 이 우울한 시인을 젊은 날의 불안한 군상들 속으로 인도했다.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결국 군대를 가야했다. 이미 학창시절에 곡을 쓸 줄 알았던 그는 이 시절에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와 같은 곡들을 만들었으며, 차근차근 모아두었던 곡들로 제대 후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에 의해 서라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78년 말에 발표한 첫 번째 음반은 엄청난 대중적인 파고를 일으키며 정태춘을 스타덤으로 인도했다. 비록 많은 가사들이 검열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그는 ‘시인의 마을’로 1979년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촛불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신인가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8년 만난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과 1980년 결혼식을 올린다. 불교적 색채를 드러낸 2집, 국악과 양악 편곡의 멋진 대비를 보여주는 3집의 실패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은 그는 부인 박은옥과 같이 하기 시작한 1984년의 앨범에서 ‘떠나가는 배’로 또 다시 스매시 히트를 터트린다.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스테디 리퀘스트곡을 남긴 이 음반은 포크적 색채를 버리고 스트링 세션 위주의 편곡으로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간 앨범이었다. 음악을 포기할 마음까지 먹었던 그는 이 음반의 성공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며 1985년 1월부터 시작된 < 정태춘.박은옥의 얘기 노래마당 >라는 공연을 벌였다. 자신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던 그는 TV를 배제한 활동을 계속했으며 ‘북한강에서’, ‘붕숭아’와 같은 곡으로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민주화 투쟁과 6.29 선언 등으로 변화한 국내의 분위기를 실감한 그는 검열을 의식해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을 모아 < 무진 새노래 >라는 타이틀로 내놓으며, 이 때부터 달라진 사회적인 시각과 국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엉켜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1988년부터는 <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라는 공연을 펼쳐 외세의 시각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 세대를 교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청계피복노조 지지공연을 시작으로 전교조 지지공연, 전노협 지지공연 등에 참석하거나 주도적으로 행사를 만들어 대중집회의 단골주자로 부상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만들어진 < 아, 대한민국 >이 1990년 발효된 새 음비법을 따른 공륜에 의해 거부당하자, 음반을 불법 복제 테이프로 만들어 발표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했으며1991년 1월 29일 <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 위원장을 맡아 반대 성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전검열제도 폐지와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해서 < 92 장마, 종로에서 >를 테이프로 제작해 배포했으며 이 앨범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는 사전 심의 조항 폐지 운동은 1995년 11월 7일 국회를 통과하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힘없던 시인의 승리는 이렇게 기나긴 길을 돌아서 찾아왔다. 그의 고생을 우리는 피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1998년 정태춘은 늘 함께 해온 부인 박은옥과 함께 20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함춘호, 조동익 등의 일급 세션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초창기 서정미의 단아해진 멜로디들을 들을 수 있으며 한 층 더 깊이가 새겨진 선동성을 읽을 수 있다. 포크 음악인들 위주의 중견 가수들과 함께 위성방송에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콘텐츠 회사 S.O.K를 설립한 그는 평생 넘어야 할 산처럼 버티고 있는 국악에 대중적인 접근을 꿈꾸며 지금도 대중 집회를 빠짐없이 순회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의 거울이다.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를 국악적 특색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음률에 실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이번 내레이션 진행은 그의 첫 영화작업으로, ‘블랙딜’ 기획안을 보고 한번에 흔쾌히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울림있는 내레이션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 진정성을 더했다.

Album
1978 《시인의 마을》
1980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1983 《떠나가는 배(이어도)》
1985 《북한강에서》
1988 《정태춘 박은옥 무진 새노래》
1993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5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
2002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2012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언더그라운드계의 대부 조동진(1947년)은 슈퍼스타의 광채 나는 옷을 입거나 해서 반도 전역을 들끓게 하는 폭발적인 호응으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30년 이상을 조용한 읊조림으로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우리 음악계의 큰산이다. 그의 향기를 쫓아온 후배들은 조동진 사단을 형성하고 레이블을 만들면서 그가 했던 음악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파하며 시대를 쫓아 인기의 허상을 정복하는 가수들과는 다른 무리를 형성... 언더그라운드계의 대부 조동진(1947년)은 슈퍼스타의 광채 나는 옷을 입거나 해서 반도 전역을 들끓게 하는 폭발적인 호응으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30년 이상을 조용한 읊조림으로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우리 음악계의 큰산이다. 그의 향기를 쫓아온 후배들은 조동진 사단을 형성하고 레이블을 만들면서 그가 했던 음악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파하며 시대를 쫓아 인기의 허상을 정복하는 가수들과는 다른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아버지가 영화감독 이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조동진의 어린 시절 꿈은 영화 배우였다. 그래서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밥딜런(Bob Dylan)을 비롯한 미국의 포크 음악에 영향을 받으면서 음악 쪽으로 급선회했고 김민기와는 달리 서정적이고 담담하게 삶의 편린들을 고백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는 1968년 ‘다시 부르는 노래’를 작곡하면서 음악인이 되었고 이 노래를 이수만과 서유석이, ‘작은 배’를 양희은이 부르면서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게 쑥스러워서”라는 이유로 1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솔로 음반을 발표한다. 조동진은 5장의 정규 앨범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행복한 사람’, ‘겨울비’가 들어 있는 1집과 ‘나뭇잎 사이로’와 ‘어둠 속에서’가 들어 있는 2집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 셀러이며 장필순이 부르기도 했던 3집 수록곡 ‘제비꽃’은 아직까지도 리퀘스트 되고 있는 애청곡 중의 하나이다. 중저음과 좁은 음역 사이에서 급격한 피치를 올리지 않는 그의 음악은 단아한 신디사이저 가 통기타 반주가 전부이지만, 음유시인처럼 노래로만 말을 하는 울림은 어떤 화려한 세션들로 가득 찬 음악들보다도 우리의 인식 세계를 공명하고,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을 내는 그의 가사는 어떤 미사여구로 꾸민 시나 직설적인 가사보다도 우리를 주억거리게 한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기로 유명한 공연을 하고 있으며 따르는 후배들과 같이 만든 하나뮤직의 대부로 지지자들에게 조언과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영화 < 산책 >의 음악을 맡아 주제곡인 ‘숲을 찾아서’로 다시 한번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초창기의 명성에 비해 그가 내놓은 후반기의 4, 5집은 그다지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현자의 목소리로 차분히 우리를 위로했다. 그리고 계속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우리의 뒤에서 변하지 않는 산처럼 버티고 있을 것이다.
1944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충남 예산군, 흔히 ‘삽다리’로 알려진 삽교면으로 이주했다. 한양대 음대를 거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1968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가요로 가요계 스타로 등극하며 중퇴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명예졸업장을 받아 가까스로 졸업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란 풍자가요를 부른 다음날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중 19... 1944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충남 예산군, 흔히 ‘삽다리’로 알려진 삽교면으로 이주했다. 한양대 음대를 거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1968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가요로 가요계 스타로 등극하며 중퇴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명예졸업장을 받아 가까스로 졸업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란 풍자가요를 부른 다음날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중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험 목사의 부흥 집회에서 성가를 부른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트리니티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1982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가수로 복귀했으며, 1990년 카네기홀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었다. <조영남쇼>, <투맨쇼>, <체험 삶의 현장>, <조영남이 만난 사람> 등을 진행하는 등 방송인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지금은 MBC 라디오에서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생방송 진행을 맡고 있다.

앨범으로 <제비>, <보리밭>, <불꺼진 창>, <딜라일라>, <화개장터>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조영남 양심학』, 『놀멘놀멘』,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 『어느날 사랑이』,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천하제일 잡놈 조영남의 수다』 등이 있다. 1973년 한국화랑에서 첫 미술 전시회를 연 후 오늘날까지 서울·부산·뉴욕·LA 등 세계 각지에서 화가로서 작품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멤버 : 윤형주, 송창식 멤버 : 윤형주, 송창식
1970년대에 중창단의 진영으로 빼어난 선율과 화음의 융화를 선보이며 모던 포크 계열의 선두에 섰던 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처음에 김의철을 리더로 하고 한영애, 김영미, 이광조가 한 팀이 되어 명동에 있는 업소를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의철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이정선이 대장으로 들어오고 이광조가 군에 간 사이에 이정선과 자주 콘서트를 가졌던 이주호가 들어와 4인조의 진영을 갖춘다. 명동 카톨릭 여학생... 1970년대에 중창단의 진영으로 빼어난 선율과 화음의 융화를 선보이며 모던 포크 계열의 선두에 섰던 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처음에 김의철을 리더로 하고 한영애, 김영미, 이광조가 한 팀이 되어 명동에 있는 업소를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의철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이정선이 대장으로 들어오고 이광조가 군에 간 사이에 이정선과 자주 콘서트를 가졌던 이주호가 들어와 4인조의 진영을 갖춘다. 명동 카톨릭 여학생회관 해바라기 홀에서 콘서트를 갖기 시작한 이들은 1977년 8곡의 합창곡과 4곡의 솔로 곡이 실린 첫 음반을 발표하고 ‘구름 들꽃 돌 연인’을 히트시키며 기타를 든 청년들에게 주요한 레퍼토리를 제공 해 준다. 이 음반은 이미 2장의 솔로 앨범으로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과시한 이정선이 프로듀서의 위치에서 참여했고 그를 비롯한 각 멤버가 솔로 한 곡씩을 불렀다. 이 중 이주호가 고교 시절 지었다는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은 한영애의 목소리로 담겨 있으며 후에 이주호, 유익종의 해바라기가 리메이크 한다. 1집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들은 1978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이주호 대신에 이광조가 한 자리를 차지한 이 앨범에는 ‘뭉게 구름’이 히트를 했고 같은 해 < TBC 해변가요제 >에서 징검다리의 노래로 대상을 차지한 ‘여름’, 이정선의 솔로 앨범에 수록했었던 ‘섬 소년’ 등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정선은 이광조, 엄인호와 풍선이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고 한영애는 솔로 앨범의 실패로 연극계로 발을 옮긴다. 그리고 김영미는 유학을 떠난다. 1986년 김영미의 일시적인 귀국으로 같이 모이게 된 이들은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우리네 인생’이 수록된 고별 앨범을 발표한다. 이중 타이틀곡인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는 이별과 재회의 희망을 단아하게 노래해 라디오를 중심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멤버 : 홍승현(리더), 홍정오, 홍우섭 멤버 : 홍승현(리더), 홍정오, 홍우섭
멤버 : 김철(보컬, 기타), 박일병(기타), 장순봉(베이스), 김창진(키보드) 멤버 : 김철(보컬, 기타), 박일병(기타), 장순봉(베이스), 김창진(키보드)
멤버 : 김흥수(기타), 이명훈(보컬), 문장곤(베이스), 정원찬(키보드), 송용섭(드럼) 멤버 : 김흥수(기타), 이명훈(보컬), 문장곤(베이스), 정원찬(키보드), 송용섭(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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