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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 Bennett (토니 베넷) - Celebrates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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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Tony Bennett (토니 베넷) - Celebrates 90

2016년 9월 15일 토니 베넷 90세 기념 라이브

Lady GaGa, Tony Bennett, Stevie Wonder, Elton John, Diana Krall 노래 외 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Columbia | 2016년 12월 1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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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 Bennett (토니 베넷) - Celebrates 90

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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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16년 12월 16일
시간, 무게, 크기 60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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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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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8명)

노래 : Lady GaGa (레이디 가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
1986년 3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이태리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는 음악에 재능을 많이 간직한 아이였다. 4살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 그는 13살 때 작곡을 시작해 14살에는 작은 무대에 서면서 가수로서의 경험을 축적했다. 뉴욕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스테파니는 학교를 중퇴하고 전문 작곡가로 음반사에 취직했으나 빛을... 1986년 3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이태리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는 음악에 재능을 많이 간직한 아이였다. 4살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 그는 13살 때 작곡을 시작해 14살에는 작은 무대에 서면서 가수로서의 경험을 축적했다. 뉴욕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스테파니는 학교를 중퇴하고 전문 작곡가로 음반사에 취직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멤버로 있었던 록 그룹의 미래 역시 불투명했다. 밴드를 탈퇴한 스테파니는 음악 노선을 팝으로 궤도수정 해 롭 푸사리라는 음반 제작자를 만나는데 그는 이탈리아 피가 흐르는 이 아가씨의 노래를 듣고 퀸(Queen)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떠오른다며 퀸의 노래 ‘Radio Ga Ga’에서 힌트를 얻어 예명을 하사했다. 레이디 가가. 롭 푸사리는 훗날 레이디 가가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Disco heaven’과 ‘Beautiful, dirty, rich’를 공동 작곡자로 음반 크레디트에 오른다. “퀸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내 인생의 열쇠 같은 가수들이다. 그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라고 밝힐 정도로 퀸과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마돈나(Madonna)에게 경도된 레이디 가가는 2008년에 첫 음반 < Fame >을 공개했다. 이 앨범에 대해 “사람들이 명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담았다”고 설명한 레이디 가가는 첫 싱글 ‘Just danc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그에게 벼락스타덤을 선사했고 후속 싱글 ‘Poker face’ 역시 넘버원을 차지해 ‘레이디 가가 신드롬’을 양산했다. < Fame >은 앨범차트 4위까지 상승했고 ‘Just dance’는 5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댄스 레코딩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라는 길고 두려운(?) 이름으로 태어난 레이디 가가는 글램록 아티스트의 화려한 섹슈얼리티와 거침없는 자신감 그리고 확실한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는 쉽고 대중적인 노래로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노래 : Tony Bennett (토니 베넷,Anthony Dominick Benedetto)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롯, 앨범 녹음시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서 다 연주해 낼 정도의 다재(多才)를 유감 없이 발휘한 그는 도무지 시각 장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독창성을 자신에 음악에 담아낸다. 또한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함께 1970년대 미국 사회 내 흑인들의 비참한 삶과 애환을 표현한 ’게토 리얼리티’를 얘기한 음악인으로 기억되면서 흑인 인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이끌었던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노래를 통해 스티비 원더는 지금껏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선 절대불변의 숭고한 가치인 ’사랑의 전도사’임을 전 세계에 알려왔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이런 그의 행적은 전 세계 음악인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으로 그를 기억하게 했다. 1950년 5월 13일 스티브 랜드 모리슨(Steveland Morrison)이라는 본명으로 미국 미조리주 출신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의 과잉 산소 공급 사고로 맹인이 되었다. 디트로이트로 이주해 소년기를 보낸 그는 일찍부터 음악적으로 재능을 드러내 10살이 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악기를 스스로 터득하는 천재성을 보인다. 1962년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베리 고디(Berry Gordy Jr.)가 이끄는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한다. 리틀 스티비 원더(Little Stevie Wonder)라는 아름으로 발표한 그의 첫 싱글인 라이브 버전 ’Fingerprints-part 2’(1963)가 발표 즉시 차트 1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한다. 1965년부터 이후 6년 간 ’Uptight’(1966), ’I was made to love her’(1967), ’For once in my life’(1969), ’My cherie amour’(1969), ’Yester-me, yester-you, yesterday’(1969), ’Signed, sealed, delivered’(1970)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그는 명실상부한 모타운 대표 인기스타로 떠오른다. 21살이 되던 1971년 모타운 측과 재계약을 앞두고는 ’앨범 제작에 관한 모든 통솔권을 자신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당시까지 철저한 ’스타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모타운 사의 입장에선 매우 부담스러웠던 요구를 그는 끝내 관철시키며 셀프 프로듀싱으로 제작한 첫 앨범 < When I’m Coming From >(1971)을 발표한다. 이듬해인 1972년 < Music of my Mind: 앨범 차트 21위 >를 시작으로 같은 해 가을 발표된 명반 < Talking Book:앨범 차트 3위 >(1972)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앨범 모든 수록 곡의 작곡은 물론 연주와 프로듀싱을 혼자서 해낸다. 또한 이 앨범은 A면의 첫 곡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B면의 첫 곡 ’Superstition’을 모두 싱글차트 1위에 등극하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한다. 1972년 같은 해 발표된 두 장의 앨범을 통해 그는 기존 3분대의 모타운 식 히트 곡의 틀을 벗어나 ’Super woman’, ’Maybe your baby’와 같은 6-7분대의 대곡을 과감히 수록했고, 재 계약을 통해 받은 계약금으로 클라비넷, OBX, ARP, 폴리포닉, 무그와 같은 다양한 신시사이저 장비들을 도입, 사운드의 혁신을 일궈낸다. 이듬해 발표한 < Innervisions >(1973)는 그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여준 명반으로 흑인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Living in the city’와 재즈적인 접근을 강하게 드러낸 ’Too High’, ’Superstition’에 버금가는 펑키한 넘버 ’Higher Ground’, 절대자인 신에게 헌정하는 가스펠 곡 ’He’s Misstra know it all’을 담은 수작이었다. 전작에 이어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 Innervisions >는 이듬해인 1974년 그래미 상 ’올해의 앨범’ 부문을 비롯, 4개 부문을 휩쓰는 쾌거를 올린다. 1974년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당하며 잠시 활동의 위기를 맞은 그는 이에 아랑곳없이 < Fulfillingness’ First Finale >(1974)를 발표하며 ’You Haven’t done nothing’, ’Boogie on Reggae woman’을 각각 팝 차트와 R&B 차트 1위에 올리며 앨범은 1975년 다시 한번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 5개 부문을 석권한다.(올해의 앨범상을 연속으로 수상한 건 스티비 원더가 처음이었다.) 1975년 모타운 사와 1천 3백만 불의 재계약을 한(당시 팝 음악계에선 최고의 액수) 그는 2년여의 준비 끝에 더블 앨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을 발표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히트곡이 쏟아진 앨범에서 ’Sir Duke’, ’I Wish’가 팝 차트 1위에 오르고, 팝 가수 조지 마이클이 1998년에 리메이크 하기도 한 7분이 넘는 대곡 ’As’(36위)와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코러스와 재즈 플롯주자 바비 험프리(Bobby Humphrey)가 참여한 라틴 팝 ’Another star’(32위) 역시 좋은 반응을 얻는다. < Songs on the key of life >는 이듬해 1977년 다시 그에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다 준다. 70년대 말, 스티비 원더는 흑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음악 외에도 흑인의 권익신장 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그는 4년여의 공백 끝에 발표한 < Hotter than July >(1980)의 수록곡 ’Happy Birthday’를 통해 이런 그의 노력을 전 세계에 알린다.(결국 198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정된다) 앨범에선 이 외에 레게의 시인 밥 말리(Bob marley)에게 헌정하는 레게 넘버 ’Master Blaster(jammin’)’와 지금껏 애청되는 그의 러브 발라드 ’Lately’를 차트에 진입시키는(각각 5위, 64위) 성과를 거둔다. 영화 음악 작곡에도 열심이었던 스티비 원더는 <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 >(1979)를 시작으로, 그에게 오스카 주제가 상을 안겨준 영화 < Woman in Red >(1984)의 테마 곡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팝 차트 1위에 올리며 전 세계를 스티비 원더 열풍 속으로 다시 한번 몰아넣는다. 그의 영화 음악 작업은 < Jungle Fever >(1991), < The adventure of Pinocchio >로 계속된다. 1983년엔 폴 메카트니와 함께 한 듀엣 곡 ’Ebony & Ivory’로, 1985년 ’Part time Lover’로 다시 팝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 Character >(1987)이후 8년이라는 긴 공백기에 들어간 그는 < Conversation Peace >(1995)로 다시 팝 무대에 복귀한다. 90년대 활동은 비록 예전만큼의 날카로운 창조력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팝 음악인들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다시는 그 누구도 재현 못할 ’팝 음악의 대가’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린다.
세상일에 아무 관심없는 천재 작곡가 대중 음악인을 ‘음악 하는 자세’와 관련하여 분류한다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가 처해 있는 시대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여 대중 정서의 현 위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며, 다른 한쪽은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무관하게 자신의 음악만을 표출하는 데 심혈을 쏟는 사람들이다. 두 가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는 음악인도 있을 테지만 대체로 전자의 무게 중심은 시각... 세상일에 아무 관심없는 천재 작곡가 대중 음악인을 ‘음악 하는 자세’와 관련하여 분류한다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가 처해 있는 시대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여 대중 정서의 현 위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며, 다른 한쪽은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무관하게 자신의 음악만을 표출하는 데 심혈을 쏟는 사람들이다. 두 가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는 음악인도 있을 테지만 대체로 전자의 무게 중심은 시각(view)일 것이며 후자는 예술(art)이다. 엘튼 존은 바로 후자를 대표하는 금세기 최고 록 스타 가운데 한사람이다. 흔히 그는 1970년대를 대변하는 톱 가수로서 록 역사에 기록된다. 1970년대가 개막되면서 ‘보더 송(Border song)’을 빌보드 차트에 랭크시키며 등장한 그는 이후 당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선율로 인기 차트를 석권했다. 그의 멜로디를 뽑아내는 재주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쌍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경이적이었고 또 천재적이었다. 만약 1970년대에 그가 없었더라면 팝계의 ‘예술적 활기’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관련, 록 평론가인 로버트 크리스트고(Robert Christgau)의 엘튼 존에 대한 서술은 참으로 맹쾌하다. “1960년대의 비치 보이스처럼 엘튼 존은 1970년대의 필수적인 시금석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그가 해악의 진부성을 축약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내 생각으로 그는 가장 유순하고 황량한 시절마저도 생기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인물이다.” 그런데 크리스트고도 인정하고 있듯이 1970년대는 사회성으로 특징지어진 1960년대 록 혁명의 정신이 함몰되어 버린 ‘록 예술성의 시대’로 정의된다. 크리스트고가 그때를 ‘해악’이니 ‘유순하고 황량한 시절’이니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엘튼 존 스스로도 ‘음악을 만들면서 정치적 이슈를 내거는 것은 넌센스다. 세상사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서 음악하는 것뿐’ 이라며 자신의 비(非)참여적 음악관을 천명하곤 했다. 그는 “음악에 있어서 정치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말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1960년대 가수들을 보라. 삶은 여전히 똑같지 않은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록의 사회성에 얼마나 등을 돌렸는지는 곡 쓰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그는 다른 송라이터들과 달리 작사는 직접 하지 않고 남에게 맡겼는데 당시 그의 작사 파트너는 버니 토핀(Bernie Taupin)이었다. 버니가 쓴 노랫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다. 버니는 사회를 떠난 신변잡기의 소재에 집착하면서 공상을 써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엘튼은 그의 가사를 좀처럼 따지지 않았다. 그저 즐겁게 그의 공상을 팬들에게 전달할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난 정말 버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에 대한 노래냐고 묻기는 하지만 의미를 캐내지는 않는다. 난 그의 가사 10편에 곡을 붙일 때까지 그를 만나지 않은 적도 있다”고 스스럼없이 밝히기도 했다. 자기 환상만을 늘어놓는 작사가, 그것을 검증도 없이 곡을 쓰고 즐겁게 노래하는 가수, 그들에게서 시각을 바랄 수 없다. 그런 음악은 본질적으로 예술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튼 존이 1970년대의 특성을 떠 안은 인물임을 시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있다. 1970년대는 1960년대 히피의 프리 섹스 여파로 성의 일반적 개념이 철저히 해체되어 독신, 동성애, 그룹 섹스, 배우자 바꾸기 등 새로운 섹스 스타일이 마구 고개를 들던 시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1970년대를 ‘자극의 시대’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엘튼은 소문난 양성(兩性)주의자였다. 아니, 스스로 바이 섹슈얼(Bi-sexual)이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그런 충격적 신상 공개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뺀다면 록 스타들 중에서는 그에게서 최초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양성주의자가 아니라 동성주의자, 즉 게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근 < 디테일즈 >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왜 그 때 호모라고 하지 않고 바이 섹슈얼이라고 했냐”하는 질문에 “아마 겁이 나서였기 때문일 거다. 진실 파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한 한 ‘외교적’으로 말하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 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 언제부터 여성 관계를 단계적으로 끝냈는가? :끝내다니? 어떠한 여성 관계도 결코 없었다. 그 누구도 나는 끝내고 자시고 하지 않았다. - 몇 살 때부터 자신이 게이임을 알았는가? :대략 23세쯤이었을 거다(그는 1947년생이므로 1970년쯤 된다). 그때가 나의 첫 실제 경험이었다. 아마 그 전부터 게이인지 알았을 텐데 23살에 실질적으로 그것을 맞이했다. - 그런데 결혼은 왜 했나? :잘못된 이유로 결혼했다. 난 결혼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게이야. 난 정말 불행해’라고 여기곤 했으니까. 동성연애자라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고 결혼했다는 얘기다. 그는 1984년 독일 출신의 레코딩 엔지니어인 레니트 블라우어(Renete Blauer)와 결혼식을 올렸다. 게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사람이 여자에게 갔다는 이유로 화제를 모았던 이 관계는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다. 둘은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1987년 이혼했다. 게이 발언, 여성과 결혼, 그리고 이혼 등의 사건으로 이미 타블로이드 신문의 가십 단골이 된 그는 1988년 마침내 한 차례 커다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영국의 < 선 >지가 “엘튼이 10대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잡한 섹스 파티를 벌였다”는 기사를 게재한 것이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그는 게이를 초월하는 ‘성도착증 환자’이자 ‘성격 장애자’나 다름없었다. 인간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어머니마저 창피해 스페인으로 떠나버리자 분기탱천한 그는 두주먹 불끈 쥐고 < 선 >지를 고소했고 이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그는 이 재판에서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지만 이후 언론으로부터는 ‘흥미의 대사(Ambassador of Fun)’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얻었다. 애초부터 매스컴과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언론의 등쌀이 마릴린 먼로를 죽이게 했다는 내용을 노래 ‘바람속의 촛불(Candle in the wind)’로 알 수 있다-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에 몸서리를 치게 되었다. 그는 영화 < 라이온 킹 >의 사운드 트랙은 ‘오늘밤 그대는 사랑을 느끼나요?(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으로 재기한 94년까지 근 7년 간 가능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회피했다. 그의 기자 혐오증은 너무나 유명하다. 스스로도 “난 영국의 언론에 분노가 치민다. 정말로 그들이 싫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며 지구의 깡패들이다”라고 강도 높게 말하기도 했다. 그의 언론에 대한 분노는 지금도 살아 끓어 넘친다. 올해 발표된 새 앨범의 타이틀 송 ‘메이드 인 잉글랜드(Made in England-8월 19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52위)’가 그것을 실증해 주는 곡이다. “난 영국에서 만들어졌어. 블루 코티나차처럼 말야... ...넌 스캔들의 냄새를 좇았지. 여기 내 가운데 손가락을 봐. 난 고통의 40년을 살았어.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어... ...넌 아직도 호모라고 얘기하고 모든 사람이 웃지.” 그가 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도 일리는 있다. 원래가 솔직하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성(性)을 고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거치면서 일반인들의 미움과 손가락질이 생겨난 것이라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그의 인기가 하향세로 접어든 것도 양성주의자임을 밝힌 1976년부터였다. 그는 1989년 < 파리 마치 >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번 앨범 < 레그 스트라이크스 백(Reg Strikes Back) >은 전세계적으로 판매 성적이 대단히 좋았는데 유독 영국에서만은 결과가 안 좋았다. 영국인들 대부분이 < 선 >지의 악의적인 기사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어떤 논리적인 응수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술과 자극’의 1970년대라는 보수 시대를 살아왔으며 보수 성향의 인물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또 명백한 ‘록 엘리트’다. 부자라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음악 능력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는 “버니의 가사를 받아 기분이 좋을 때면 곡을 쓰는데 15분도 안걸린다”고 자랑했다. 그런 천부적 재능을 밑천 삼아 그는 지금까지 무려 3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물론 이 왕성한 생산력을 아티스트의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극구 칭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틀어보면 그것은 음악 엘리트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실제로 그는 비평계 일각으로부터 ‘음악의 과소비’를 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그가 1970년대 후반 ‘엘리트만이 아니라 누구나 음악할 수 있다’는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내건 펑크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의 이름에는 ‘로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며 연상되는 과거의 거친 피아노 연주나 기행적 무대는 분명 폭발과 반란을 특질로 하는 록의 전형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서 그러한 ‘록의 반항적 미학’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늘밤 사랑을 느끼나요’가 말해주듯 중산층의 격조와 결탁한 ‘AOR(Adult Oriented Rock)’이나 스탠더드 팝으로 색깔을 바꾸어 안전지대에 정착해 있다. < 타임 >지는 얼마전 그의 새로운 전성기가 도래했음을 대서특필하는 순간에도 ‘그에게는 실재(實在)하는 록 스타의 고뇌와 거친 감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그가 ‘팝계의 불사조’라는 작위를 하사 받아야 함은 마땅하다. 정글과도 같은 팝계를 4반세기에 걸쳐 롱런한 ‘영광의 생존’만으로도 그는 위대하다. 1993년에 이미 엘비스 프레슬리의 벽을 넘어 2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차트 40위권의 히트곡을 낸(올해로 그 햇수는 26년으로 늘어났다) 사실만으로도 그의 위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마흔여덟 살의 노장이 신인들 틈새에서 몇 백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는 것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나이의 사람에게 록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각이 없다. 그는 4반세기 동안 그의 관점을 개인으로부터 해방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시대에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내내 부진하다가 미국 사회에 보수적인 기류가 소생한 지난해(1994년) 재기한 것을 보라. 그의 노래들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Goodbye yellow brick road)’ ‘오늘밤(Tonight)’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어려워(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등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팝송 청취와 수용이 예술적 가치에만 집중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 : Diana Krall (다이애나 크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 밴쿠버섬에 있는 도시 너나이모(Nanaimo)출신 가수 겸 피아니스트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은 타고난 음악적 교육환경에서 성장했다. 4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 교습을 받기 시작해 고교시절에는 재즈밴드에서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그의 음악활동영역에 대부분은 음반수집가이자 스트라이드 피아노 연주자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여기에 대해 다이애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 밴쿠버섬에 있는 도시 너나이모(Nanaimo)출신 가수 겸 피아니스트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은 타고난 음악적 교육환경에서 성장했다. 4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 교습을 받기 시작해 고교시절에는 재즈밴드에서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그의 음악활동영역에 대부분은 음반수집가이자 스트라이드 피아노 연주자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여기에 대해 다이애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제 생각에 아버지께선 팻츠 웰러(Fats Waller)의 전 음반을 모두 소유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전 그걸 다 익히려했죠.”라고. 1980년대 초 버클리 음대 진학 후 로스앤젤레스로 터전을 옮긴 다이애나는 3년 간 머물다 토론토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1990년에는 뉴욕을 거점도시로 트리오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저스틴 타임 음반사(Justin Time Records)에서 자신의 첫 번째 앨범 < Steppin’ Out >(1993)을 발매 한 그는 이듬해 GRP와 계약을 맺고 2집 < Only Trust Your Heart >를 발표했다. 그리고 1995년과 1997년에는 지알피(GRP)와 더불어 1960년대 아방가르드 시대의 대표적인 레이블 임펄스!(Impulse!)를 통해 냇 킹 콜(Nat King Cole)트리오에게 바치는 헌정앨범 < All for You >(impulse)와 < Love Scenes >를 발매했다. 1998년 말 크리스마스시즌에 세션앨범 < Have Yourself A Merry Christmas >을 내놓으며 한껏 분위기를 탄 크롤은 곧이어 발표한 < When I Look in Your Eyes >(1999)로 국제적 부와 영예를 한꺼번에 얻기에 이른다. 앨범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해 그래미시상식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연주부문(Best Jazz Vocal Performance)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었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상 후보에 오른 것도 경이로운 결과였다. 이는 곧 25년 동안 꾸준히 음악활동을 펼쳐온 그의 다년간에 명성과 실력을 공인받는 순간이었다. 재즈아티스트로 공력을 인정받은 다이애나는 또한 여성뮤지션 중심의 록뮤직 투어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동참해 연주한 것을 비롯해 TV드라마 < 섹스 앤 시티 >(Sex in the City) 에피소드와 영화<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1997)의 사운드트랙에 자신의 곡을 삽입시키며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도 성공을 맛보았다. 그리고 2001년에는 < The Look of Love >를 빌보드 ‘Top Canadian Album’차트 정상에 쏘아 올리며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캐나다 출신 재즈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캐나다에서만 5백만 장 이상의 앨범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앨범대박은 기정사실. 2002년 캐나다의 ‘그래미어워드’(Grammy Award)아 불리는 ’주노 어워드’(Juno Award)에서는 ‘올해의 아티스트’(Artist of the Year),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올해의 최우수 보컬 재즈 앨범‘(Best Vocal Jazz Album of the Year) 3개 부문 트로피를 품에 안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다음해 인 2002년에는 < Live in Paris >로 그래미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Best Jazz Vocal Album)상을 수상해 확고부동한 크로스오버/컨템포러리 재즈아티스트로서의 존재적 가치를 제고했다. 과거 유명선배뮤지션들의 스탠더드 커버 곡을 자신의 감성을 담아 재해석한 트랙들로 꾸민 < The Girl in the Other Room >(2004)을 발표해 다재다능한 역량을 발휘한 다이내나 크롤은 1999년과 2002년에 이어 2005년 3월 내한해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우아한 외모까지 갖춘 다이애나 크롤을 향한 한국음악팬들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노래 : Rufus Wainwright (루퍼스 웨인라이트)
루퍼스 웨인라이트(Rfus Wainwright)는 2001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 슈렉 >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Hallelujah’와 2002년도 작품인 < 아이 앰 샘 >에서 비틀스(Beatles)의 ‘Across the universe’를 리메이크하면서 국내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진 남성 싱어 송라이터다. 포크와 얼터너티브의 감성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그 위에 팝과 록, 그리고... 루퍼스 웨인라이트(Rfus Wainwright)는 2001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 슈렉 >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Hallelujah’와 2002년도 작품인 < 아이 앰 샘 >에서 비틀스(Beatles)의 ‘Across the universe’를 리메이크하면서 국내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진 남성 싱어 송라이터다. 포크와 얼터너티브의 감성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그 위에 팝과 록, 그리고 탐 웨이츠(Tom Waits)의 카바레 스타일을 적절하게 융합한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음악은 매우 지적이며 사색적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음악팬들보다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집단에 먼저 알려졌다. 1973년 7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난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아버지는 포크 싱어인 로던 웨인라이트 3세(Loudon Wainwright III)이고 어머니인 케이트 맥개리글(Kate McGarrigle) 또한 포크 싱어이기에 루퍼스에게는 태생적으로 음악적인 DNA가 내재하고 있었다. 루퍼스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자 그는 어머니를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주거지를 옮겨 그곳에서 음악으로 충만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피아노를 배운 그는 10대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 각지를 돌며 공연 무대를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그의 자유스러운 생활은 자신이 게이라고 떳떳하게 밝히는 커밍아웃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대학에서 잠시동안 클래식을 전공한 그는 곧 대중음악으로 방향타를 틀고는 드림웍스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본인이 전곡을 만든 데뷔작 < Rufus Wainwright >를 1998년에 발표했다. 그래서 3년 후인 2001년에 루퍼스가 드림웍스 제작의 애니 영화 < 슈렉 >에서 ‘Hallelujah’를 불러 수록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으로 이 젊고 유능한 싱어 송라이터는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벤 폴즈(Ben Folds) 등과 함께 새로운 세기에 기대되는 싱어 송라이터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2001년에 발표한 두 번째 음반 < Poses >이 빌보드 앨범차트 117위에 오르며 대중들과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상견례를 가졌다. ‘Cigarettes and chocolate milk’와 ‘California’, 그리고 < 아이 앰 샘 > 사운드트랙에 있는 ‘Across the universe’ 등이 수록된 이 소포모어 음반으로 인기의 기반을 넓힌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2003년에 세 번째 앨범 < Want One >으로 다시 한번 앨범차트 6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오버그라운드 입성에 성공했다.
노래 : Michael Buble (마이클 부블레)
캐나다 제3의 도시이자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벤쿠버 출신의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는 2003년에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 Michael Buble >를 공개한 25세의 미남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부블레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세계를 무대로 성공가두를 달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플래티넘을 기록한 본국인 캐나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캐나다 제3의 도시이자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벤쿠버 출신의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는 2003년에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 Michael Buble >를 공개한 25세의 미남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부블레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세계를 무대로 성공가두를 달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플래티넘을 기록한 본국인 캐나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가진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연으로 영국에서는 골드 레코드를,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플램티넘을 기록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이클 부블레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3곡이 수록된 1집 중에서 무려 다섯 곡이 현재 TV 광고 음악으로 쓰이면서 시청자들을 부드럽게 매료시키고 있다. ‘Kissing a fool’은 전자 제품의 배경 음악으로 깔리고 있으며 ‘Sway’와 ‘Fever’는 양복, ‘Come fly with me’는 은행, 그리고 ‘The way you look tonight’은 증권 회사의 CF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시청자들의 귀를 무장해제 시킨다. 또한 르네 젤위거(Renee Zellweger)와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 Down With Love >에 ‘Kissing a fool’이 삽입되어 그의 신드롬은 당분간 지속될 준비를 갖추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음악에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은 바로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가 들려준 스윙 시대의 재즈 보컬 그룹 밀스 브라더스(Mills Brothers)의 노래를 듣고 ‘음악의 아룸다움’을 발견한 ‘어린 손자’ 마이클 부블레는 이후 자기 또래의 소년들과는 달리 사라 본(Sarah Vaughn), 엘라 핏츠제랄드(Ella Fitzgerald), 로즈매리 클루니(Rosemary Clooney),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바비 다린(Bobby Darin) 등 그 옛날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놓쳤던 멋진 노래들을 알게 되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10대 시절에 벤쿠버에서 열린 지방 예능 콘테스트와 Canadina Youth Talent Search에 입상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마이클 부블레는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수상의 딸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세계적인 음반 제작자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의 예리한 레이다 망에 포착되어 포스터가 설립한 143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현재의 성공 신화를 이루게 되었다. 데이비드 포스터는 물론 그의 옛 동료이기도 한 훔베르토 가티카(Humberto Gatica)와 ‘Diana’의 주인공 폴 앵카(Paul Anka)로부터 집중적인 보컬 훈련을 받은 마이클 부블레는 데뷔 음반을 준비한 지 2년 만인 2003년에 1집 < Michael Buble >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 앨범을 제작한 데이비드 포스터는 마이클 부블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번 음반을 통해 마이클 부블레는 노래와 음악만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는 대중 음악의 고전에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이 앨범에는 고전적인 부드러움과 현대의 거친 숨결이 공존한다. 이것은 마이클 부블레의 긴 경력에 있어 단지 시작일 뿐이다”
노래 : Andrea Bocelli (안드레아 보첼리)
‘영혼의 목소리’, ‘눈먼 천사’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보첼리는 비록 본격적인 오페라 가수는 못되었을지언정 자신만이 갖는 음악재능을 극대화시키며 전 세계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클래식 가수로 우뚝 섰다. 그의 음악은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굳이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차태현, 김민희가 출연했던 모 이동통신 CF연작과 ‘결혼할까요’라는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그의 음... ‘영혼의 목소리’, ‘눈먼 천사’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보첼리는 비록 본격적인 오페라 가수는 못되었을지언정 자신만이 갖는 음악재능을 극대화시키며 전 세계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클래식 가수로 우뚝 섰다. 그의 음악은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굳이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차태현, 김민희가 출연했던 모 이동통신 CF연작과 ‘결혼할까요’라는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그의 음악을 기억할 게다.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불러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Time to say goodbye’와 ‘Canto della terra’, ‘Mai piu’ cosi’ lontano’ 등이 연속으로 방송전파를 타면서 국내 음악 팬들도 보첼리에 중독되었다. 가장 최근에도 모 광고를 통해 ‘Time to say goodbye’의 원곡 ‘Con te partiro’를 들을 수 있다.

클래식을 수업을 받은 보첼리는 탄탄한 성악적 실력을 기반으로 클래식과 대중음악과의 부드러운 결합을 시도했다. 이탈리아 특유의 벨 칸토 창법으로 오페라를 부르는 한편, 감미로운 목소리로 팝 발라드를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클래식과 팝을 섞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감동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의 음악에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의 목소리가 지닌 특별함 때문이다. 파스빈더의 영화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할까? 상처를 극복한 영혼의 심연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을 잠식하며 숭고함마저 일깨운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팝과 클래식의 결합은 결코 한때의 방편이나 줄타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그것은 일부 한정된 클래식 팬들하고만 소통하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대중과 호흡하고 싶다는 보첼리의 신념이 낳은 결과이기에 우리는 그 진솔한 열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클래식과 팝 음악 활동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그가 확립한 것은 팝과 클래식의 크로스오버이며, 최근 등장한 용어로는 ‘대중화된 오페라’, ‘팝 스타일로 부른 오페라’라는 뜻의 팝페라(Popera)였다. 그가 등장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팝과 클래식의 크로스오버 또는 팝페라는 대중들에게 더욱 폭넓게 흡수되었고, 여러 스타들을 배출하며 클래식 음반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활약중인 사라 브라이트만, ‘이탈리아의 마리아 칼라스’ 필리파 지오다노(Filippa Giordano), 그리고 이지(Izzy) 같은 팝페라 가수들은 모두 보첼리의 수혜자들이다.

잘 알려진 대로 보첼리는 시각장애인이다. 오페라 가수를 소망했던 그에게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시골의 소산’이라고 칭할 정도로 이탈리아 투스카니(Tuscany)의 가족생활, 그리고 시골의 목가적인 문화와 전통에서 자양분을 얻으며 자란 그는 그 불편함을 딛고 일어섰다. 오페라 무대를 휘저으며 노래할 수는 없었지만 기어코 성악가수라는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자신의 영웅이던 성악가 프랑코 코넬리(Franco Corelli)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수련을 쌓던 그는 1992년 ‘Miserere’란 곡의 데모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 뮤지션 주케로(Zucchero)와의 운명적 만남이 성사되었다. 벨 칸토 창법에 충실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공명하는 비브라토가 특징인 그의 목소리는 주케로와 테너 파바로티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이어 1994년에는 산 레모 가요제에서 ‘Il mare calmo della sera’란 곡으로 우승하며 그때부터 그의 음악생활이 꽃피기 시작한다. 1994년과 1995년 클래식 음반 2장을 잇따라 발표한 그는 1997년 드디어 첫 크로스오버 앨범 를 출시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어 1999년에는 본격적인 팝 음반 가 발매 즉시 빌보드 팝 차트 5위 내에 진입하는 ‘사건’을 연출했다.

셀린 디온, 에로스 라마조티 같은 팝 가수들이 참여한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더욱 더 눈높이를 맞춰 훌륭한 팝 음반으로 평가받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앨범이 발매되자 동시에 그가 전에 발표했던 앨범 4장이 모조리 미국 팝 차트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87년 U2, 1992년 가스 브룩스 이후에 첫 번째 위업이었으며, 그와 같은 현상을 지켜본 미국 언론들은 비틀매니아, 데드헤드에 버금가는 ‘보첼리매니아’(Bocellimania)라는 문구를 붙여줬다.

특히 국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는, 내한 공연에서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를 열창, 한국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음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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