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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가 될 때

[ 양장 ]
고재종, 고정희, 곽재구, 기형도, 김경미 저 외 2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북카라반 | 2016년 12월 20일 리뷰 총점9.3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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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가 될 때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40g | 120*187*20mm
ISBN13 9791160050097
ISBN10 116005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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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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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8명)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와 육필시선집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이 있고,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와 육필시선집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이 있고,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와 시론집 『주옥시편』, 『시간의 말』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평역에서』 『전장포아리랑』 『한국의 연인들』 『서울 세노야』 등이 있고,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기행』 『곽재구의 예술기행』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등이 있다. 동화집으로는 『아기참새 찌꾸』 『낙타풀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동서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공부 못했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평역에서』 『전장포아리랑』 『한국의 연인들』 『서울 세노야』 등이 있고,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기행』 『곽재구의 예술기행』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등이 있다. 동화집으로는 『아기참새 찌꾸』 『낙타풀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동서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공부 못했지?』는 등단 이후 처음으로 펴내는 동시집이다.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한 시인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 출생.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을 앞둔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 · 문화부 · 편집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한 시인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 출생.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을 앞둔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 · 문화부 · 편집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시집 『입 속은 검은 입』을 상자했으나, 출간을 준비 중이던 1989년 3월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그러나 살아생전 시집 한 권 묶지못하고, 첫시집이 유고시집이 되어버린 이 시인은 20년이 넘은 지금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시를 꿈꾸는 모든 문학청년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문학 대중의 압도적인 열광 속에,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화로 그리고 꺼지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2009년 3월을 기준으로, 1989년 5월에 출간된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초판 24쇄, 재판 41쇄, 총 65쇄를 찍었으며 24만 부가 판매되었다.

1999년 3월에 그의 10주기를 기리며 출간된 『기형도 전집』은 초판 15쇄를 찍었으며 4만 7천 부가 판매되었다. 또한 그의 20주기에는 그를 아끼고 추억하는 지인과 문우들의 산문, 그리고 그의 사후 그의 시를 분석하고 의미 지은 여러 비평가들의 밀도 높은 평문들을 한데 모은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가 출간되기도 하였다.

어둡고 축축한 현실에서 길어올린, 불길하고 처연한 상상력의 시어들은 90년대의 어떤 시인도 넘어서지 못한 울림을 낳았다. 평론가 남진우씨가 기형도 시의 양대 질료로 요약했던 '환멸과 환상' 이야말로 지난 천년의 끝무렵을 지배하는 심상이기 때문일까. 기형도 시의 처절한 아름다움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이란 이름을 붙였던 김현은 '그의 시는 현실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아름다움, 추함과 대립되는 의미의 아름다움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목표한다'고 읽어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한 시 60편을 담고 있는데, 그의 시 세계는 우울한 유년 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며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공간 속에 펼쳐 보인다.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실천문학사),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창비),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 비), 『밤의 입국심사』(문학과지성사)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바다, 내게 로 오다』, 『행복한 심리학』, 『심리학의 위안』, 『그 한마디에 물들다』, 『너 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등...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실천문학사),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창비),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 비), 『밤의 입국심사』(문학과지성사)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바다, 내게 로 오다』, 『행복한 심리학』, 『심리학의 위안』, 『그 한마디에 물들다』, 『너 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등이 있고, 노작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주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 참여 작가로 선 정되어 활동했으며, 한국참여작가로는 처음으로 IWP 발행 웹진 [92st Meridian]지에 영역 시 2편이 수록되었다. 한라대학, 경희사이버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방송작가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시작으로 [명작의 고향] [양희경의 가요응접실] [전기현의 음악풍경] [노래의 날개 위에] 등 다수의 라 디오 프로그램 원고를 썼으며 한국방송작가협회 라디오작가상을 수상 (2007)했다.

현재 활발한 시작활동과 함께 KBS 1FM의 [김미숙의 가정음악]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방송 오프닝에 소개되는 ‘가정음악을 위한 시’ 를 통해 애청자들에게 행복의 전율을 전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 들은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청취자들을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라디오 앞에 귀를 세우게 하던 바로 그 심미적 언어의 꽃이다
모윤숙(毛允淑) 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잇는 1960년대 대표 여류시인.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마산고교, 이화여고 교사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다. 대학 재학시절인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 모윤숙(毛允淑) 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잇는 1960년대 대표 여류시인.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마산고교, 이화여고 교사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다. 대학 재학시절인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그려내고자 했던 그녀의 첫 시집 『목숨』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조화된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작품집 속에 이러한 세계관에서 점차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어, 짙은 기독교적 정조와 더욱 심화된 종교적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만해대상, 일본지구문학상 등을 받았다. 2013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시집 『목숨』, 『사랑초서』, 『바람세례』, 『귀중한 오늘』 등 19권과 수필집 12권, 콩트집 『아름다운 사람들』 외 편저·논문 등이 있다.
저 : 김소월 (金素月, 김정식)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후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3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 후 귀국했을 시점에 시인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김소월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인 김억의 격려를 받아 그의 지도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등 5편을 소월(素月)이라는 필명으로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 「그리워」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1년 [동아일보]에 「봄밤」, 「풀 따기」 등을 발표했다. 1922년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를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1925년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이는 시인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으로 기록된다. 그 밖에 1923년 『깊고 깊은 언약』 『접동새』 1924년 『밭고랑 위에서』 『생과 사』 1926년 『봄』 『저녁』 『첫눈』 1934년 『제이, 엠, 에스』 『고향』 등을 발표했다.

1923년 도쿄상업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돕다가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어 1926년평안북도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하고서 이도 실패하자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김소월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후 류머티즘을 앓으며 친척들에게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등 고생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만 32세의 나이로 평안북도 곽산에서 아편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39년 스승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가 발간된다. 1977년 [문학사상] 11월호에 미발표 소월 자필 유고시 40여 편이 발굴, 게재된다.
저 : 김수영 (KIM, SU-YOUNG,金洙暎)
시인.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선린상고(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재학했고, 성적은 우수했으며 특히 주산과 미술에 재질을 보였다. 거쳐 동경 상대에 입학했고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을 공부하던 중 1944년 조선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했다. 곧 중국 길림으로 이주하고 연극 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왔다. 1945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 학기 만에... 시인.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선린상고(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재학했고, 성적은 우수했으며 특히 주산과 미술에 재질을 보였다. 거쳐 동경 상대에 입학했고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을 공부하던 중 1944년 조선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했다. 곧 중국 길림으로 이주하고 연극 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왔다. 1945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심영 등과 연극을 하다가 1946년 문학으로 전향했고 그후 연희전문 영문과 4년에 편입했다. [예술부락] 2호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했고,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하였고 김병욱, 박인환, 김경희, 임호권 등과 [신시론] 동인 활동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북한군 문화공작대에 강제 동원되어 군사훈련을 받다 탈출했으나 서울에서 체포되어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부산, 대구에서 통역관 및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지냈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상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1959년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인 『달나라의 장난』(춘조사)을 출간했다. 1960년 4·19혁명 발발. 이후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번역 등을 잡지와 신문 등에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보였다. 만년에는 자신을 번역가로 소개하기도 했다. 1968년 6월 15일, 귀가하던 중 집 근처에서 버스에 치여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숨을 거뒀다.
194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더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 194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더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나는 시와 산문들을 쓰고 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이 있고,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등 산문집 다수와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있다. 그 외 『콩, 너는 죽었다』 등 여러 동시집과 시 모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전5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그림책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사랑』 등 많은 저서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살았으면, 했는데 용케 그렇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여 고맙고 부끄럽고, 또 잘 살려고 애쓴다.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의 초빙 교수로 본과 2년생에게 새 학과목인 ‘문학과 의학’을 5년간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우리 얼마나 함께』 (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여성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통찰로 문단과 독자 모두의 사랑을 받아 온 문정희 시인은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진명여고 재학 중 백일장을 석권하며 주목을 받았고, 여고생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첫 시집 『꽃숨』을 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였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 여성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통찰로 문단과 독자 모두의 사랑을 받아 온 문정희 시인은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진명여고 재학 중 백일장을 석권하며 주목을 받았고, 여고생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첫 시집 『꽃숨』을 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였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포럼에서 작품 「분수」로 '올해의 시인상'(2004), 2008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문학 부문 등을 수상했다.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상도 수상하였다.

어린 시절 시를 쓰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50여 년 동안 시를 쓰고 있다. 젊은 날부터 뉴욕 등 세계를 살며 부딪치며 많은 저서를 냈다. 15종의 시집과 다수의 장시집, 시극집, 산문집, 논문, 편저 등이 있으며 영어를 비롯한 11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14종의 저서가 있다. 프랑스 ‘시인들의 봄’ 등 국제 도서전 및 문학 행사에 수차례 초청되었다.

1996년 미국 Iowa대학(IWP)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버클리 대학, 이탈리아 베니스 대학,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프랑스 시인들의 봄 및 세계도서전, 쿠바 아바나 북페어 등 다양한 국제행사에 초청되었다. 영어 번역시집 『Windflower』, 『Woman on the Terrace』, 독어 번역시집 『Die Mohnblume im Haar』, 스페인어 번역시집 『Yo soy Moon』, 알바니아어 번역시집 『kenga e shigjetave』, 『Mln ditet e naimit』외 다수의 시가 프랑스어, 히부르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문정희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지금 장미를 따라』, 『사랑의 기쁨』,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응』, 『작가의 사랑』 외에 장시집 『아우내의 새』, 시극집 『구운몽』 등 다수의 산문집을 포함하여 5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962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고요한 저녁이 왔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과 청소년시집 『운동장 편지』, 교육 에세이집 『선... 1962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고요한 저녁이 왔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과 청소년시집 『운동장 편지』, 교육 에세이집 『선생님 마음 사전』을 출간하였다. 편운문학상신인상,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작지만 야무진 시를 쓰자는 시 창작 동인 [작은 詩앗 채송화]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남원 대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호는 평전(平田). 1975년 〈산문(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남도의 서정(抒情)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종래의 서정시가 생(生)의 에너지를 상실하게 하고, 자기 탐닉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한을 민족적·역사적 힘으로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송수권 시인은, 문공부예술상을 비롯해 금호문화예...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호는 평전(平田). 1975년 〈산문(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남도의 서정(抒情)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종래의 서정시가 생(生)의 에너지를 상실하게 하고, 자기 탐닉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한을 민족적·역사적 힘으로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송수권 시인은, 문공부예술상을 비롯해 금호문화예술상, 소월시문학상, 전라남도문화상, 김달진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님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1998. 시와시학사), 제10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다.

그 밖에 시선집으로는 『지리산 뻐꾹새』『들꽃세상』『별 아래 잠든 시인』『여승』『한국 대표시인 101인 선집-송수권』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다시 산문(山門)에 기대어』『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남도역사기행』『아내의 맨발』등과, 비평집으로 『송수권 시 깊이 읽기』『사랑의 몸시학』『그대, 그리운 날의 시』등, 그리고 장편동화집으로『옹달샘 꽃누름』 등이 있다.
경남 거창에서 출생, 부산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숙명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문화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시와 연애하던 대학 시절의 열정으로 1964년 《여상》여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결혼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게재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 경남 거창에서 출생, 부산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숙명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문화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시와 연애하던 대학 시절의 열정으로 1964년 《여상》여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결혼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게재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 공초 오상순문학상, 2011년에는 김준성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2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시집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수필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고백』『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등이 있다.

『나이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낸 감동적인 드라마로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시인의 깊은 상처를 온몸으로 고백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삶의 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여유로움과 따스함, 모성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이 뜨겁다.

시선집 『바람 멈추다』는 개성적인 시세계의 영역을 폭넓게 확장시켜 온 시인의 시선집으로, 시력 40년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첫 시집 『봉헌문자』에서부터, 『겨울축제』, 『고향의 물』, 『모순의 방』, 『새를 보면서,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열애』 에 이르기는 10여 권의 시집에서 저자 스스로 뽑은 대표시 100편을 모아 구성하였다. 오랫동안 자신의 몸 속에 쌓아온 고통의 시간들을 성찰하고 치유하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온 시인의 시에서, 그러한 고통을 넘어 새로운 삶의 기율을 ‘사랑’의 에너지로 생성해 가려는 시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196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196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까지 11권의 시집을 냈다.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 등의 동시집과 『물고기 똥을 눈 아이』, 『고양이의 복수』, 『눈썰매 타는 임금님』 등 여러 권의 동화를 썼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국내에서 100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로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되었다. 『백석평전』, 『그런 일』 등의 산문을 냈다. 현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저 : 유치환 (柳致環, 호:청마(靑馬))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으로 꼽히는 시인으로, 1908년 음력 7월 14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청마의 맏형이다. 동래보통학교와 일본 부장중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였으나, 1928년 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0월, 11세부터 알고 지내던 권재순과 결혼한다. 1930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후, 1939년에 첫 시...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으로 꼽히는 시인으로, 1908년 음력 7월 14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청마의 맏형이다. 동래보통학교와 일본 부장중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였으나, 1928년 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0월, 11세부터 알고 지내던 권재순과 결혼한다. 1930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후, 1939년에 첫 시집인 『청마시초』를 출간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 '깃발'을 비롯한 53편의 초기의 시를 『청마시초』에 담았으며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한 바 있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는데,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교직에 몸담으며 40여 년 간의 열정적인 시작활동을 통해 총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출간했다. 1947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특별시 문화상, 아시아재단 자유문화상, 제7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1967년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60세에 생을 마감했다. 문단의 거목 청마가 영면에 잠긴지 40년이 넘었지만 생명력 넘치는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 뜨겁게 숨쉬고 있다.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1946년 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꽃다발〉로 당선의 영예를 안고 등단했다. 그 후 대한민국문학상(1983), 새싹문화상(1986), 한국불교아동문학상(1989), 동국문학상(1991), 세종아동문학상(1992), 소천아동문학상(2000)을 수상했다.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한국 동화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 온... 1946년 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꽃다발〉로 당선의 영예를 안고 등단했다. 그 후 대한민국문학상(1983), 새싹문화상(1986), 한국불교아동문학상(1989), 동국문학상(1991), 세종아동문학상(1992), 소천아동문학상(2000)을 수상했다.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한국 동화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
온 새』가 독일에서, 『오세암』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마해송, 이원수로 이어지는 아동 문학의
전통을 잇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모교인 동국대, 문학아카데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 등을 통해 숱한 후학을 길러 온 교육자이기도 했다.
동화 작가,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동국대 국문과 겸임 교수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던 1998년 말에 간암이 발병했다. 죽음의 길에 섰던 그는 투병 중에도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으며 그가 겪은 고통, 삶에 대한 의지, 자기 성찰을 담은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 길』을 펴냈고, 환경 문제를 다룬 동화집 『푸른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첫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펴내며 마지막 문학혼을 불살랐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정채봉은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물질화된 사회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대해 노래하며,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시인.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발레/철학 등에 심취하였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시절... 물질화된 사회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대해 노래하며,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시인.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발레/철학 등에 심취하였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84년 5월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에는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하였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하였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5년에 정년퇴임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오르고, 1972년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쉬임없는 창작열과 언제나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하였다. 2008년 내놓은 아홉 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 역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하게 된 시인의 태도에,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작품집이다.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상자했다. 그는 또한 독특한 시론과 탁월한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펴냈으며, 시 번역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예이츠, 네루다, 로르카의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다.
저서 『사랑이 시가 될 때』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저서 『사랑이 시가 될 때』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저 : 조지훈 (趙芝薰, 본명 동탁(東卓))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으로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중학과정을 마쳤다. 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의 외전강사를 역임하였고 조선어학회〈큰사전〉편찬에도 참여했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으로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중학과정을 마쳤다. 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의 외전강사를 역임하였고 조선어학회〈큰사전〉편찬에도 참여했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1946년《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렸다. 1948년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4·19와 5·16을 계기로 현실에도 적극 참여하여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을 썼다. 1963년에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한국학 연구》,《채근담》등의 논저를 남겼다.
저 : 한용운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일명 '국민 연애시'라고 할수 있는 '즐거운 편지'의 작가. 등단작인 '즐거운 편지'로 주목을 받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쉼 없고 경계 없는 사유로 발전을 거듭해온 시인이다. 본관은 제안(濟安)이다. 193...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일명 '국민 연애시'라고 할수 있는 '즐거운 편지'의 작가. 등단작인 '즐거운 편지'로 주목을 받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쉼 없고 경계 없는 사유로 발전을 거듭해온 시인이다.

본관은 제안(濟安)이다. 1938년 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7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66∼1967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다. 1970∼197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1987∼1988년 미국 뉴욕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와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58년 서정주(徐廷柱)에 의해 시 「시월」 「동백나무」「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초기에는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로 썼지만 두번째 시집 『비가(悲歌)』(1965)부터는 숙명적 비극성을 받아들여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1966년에는 정현종(鄭玄宗) 등과 함께 동인잡지 『사계』를 발행했다. 1968년 마종기(馬鍾基), 김영태(金榮泰)와의 3명의 공동시집 『평균율 1』을 출간하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열하일기』『전봉준』『허균』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변화를 시도했고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모더니즘으로 자리잡았다.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1975)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초기의 고뇌에서 자기 삶의 내부로 비극의 비전을 비쳤던 그는 차츰 자기 밖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수행하면서 민족의 약소함과 황량한 우리 삶의 풍경을 묘사했고 이 참담한 상황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힘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무력감을 표명했다. ... 그의 사랑은 이웃으로 번지고 드디어는 삼남 - 이 가냘픈 한국과 그곳에서 괴로이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로 확산되었다.”라는 평을 하고 있다.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데 이 시집에서는 지적 시선에 의한 상상력의 조형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시인이 이 세계의 존재성과 거기에 얹혀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적 구조를 투시하면서 그것들과 친화와 역설의 이중적 얽힘을 그의 언어로써 새로이 구성해내고 있다. 1995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 70」을 발표하면서, 1982년에 시작한 연작시가 마감되었다. 황동규 시인의 죽음관에 대해서 대면할 수 있는 이 시집은 독일어판으로도 번역되었다.
시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와 경영의 의미를 접목한 베스트셀러 《시 읽는 CEO》로 기업에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중·고교 교과서에 시와 산문이 수록돼 있다.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남해, 바다를 걷다》, 시산문집 《옛시 읽는 CEO》 《마흔에 읽는 시》 《마음필사》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 시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와 경영의 의미를 접목한 베스트셀러 《시 읽는 CEO》로 기업에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중·고교 교과서에 시와 산문이 수록돼 있다.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남해, 바다를 걷다》, 시산문집 《옛시 읽는 CEO》 《마흔에 읽는 시》 《마음필사》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독서경영서 《경영의 품격》 《생각의 품격》 《교양의 품격》 《나무 심는 CEO》 등을 펴냈다.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 출생. 1995년 [민족예술]에 신경림 시인의 추천으로 시 가구를 옮기다가 외 4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2004년 『이 환장할 봄비에(창비)』가 있으며, 2010년 ‘제비꽃서민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로, 저서로 『경허 선시 연구』가 있으며, 「법정 무소유에서 드러나는 선적 사유」,「달라이라마의 행복론에서 설하는 지혜와 자비와 인문학적 고찰」,「조주 십이시가의 선시학적 특성 연구」등 ... 서울 출생. 1995년 [민족예술]에 신경림 시인의 추천으로 시 가구를 옮기다가 외 4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2004년 『이 환장할 봄비에(창비)』가 있으며, 2010년 ‘제비꽃서민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로, 저서로 『경허 선시 연구』가 있으며, 「법정 무소유에서 드러나는 선적 사유」,「달라이라마의 행복론에서 설하는 지혜와 자비와 인문학적 고찰」,「조주 십이시가의 선시학적 특성 연구」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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