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크리스 도트리?
크리스 도트리의 '아메리칸 아이돌 5' 출연은 충격에 가까웠다. 아이돌이라 볼 수 없는 외모와 스타일. 하지만 크리스 도트리가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모두 충격에 빠졌다. 애초 덴버에서 가졌던 최초의 오디션에서 로봇("robotic") 같다며 예의 그 잔인한 악담을 선보였던 사이먼 코웰 조차 회를 거듭하며 진화하는 그의 목소리에 찬사를 보냈다. 두 달이 조금 넘는 '아메리칸 아이돌 5'의 여정 동안, 크리스 도트리가 보여준 것은 미국인이 그리고 세계의 음악 팬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비록 그의 외모가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는 미국인이 좋아하고 항상 상상하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록스타'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스킨헤드와 약간의 수염), 록 음악 팬이 절대 저버릴 수 없는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퀸'의 브라이언 메이조차 그리고 목소리에 있어서 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로드 스튜어트조차 "환상적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죽하면 'Hemorrhage (In My Hands)'를 들은 '퓨얼'은 크리스 도트리에게 비어있는 보컬 자리를 주겠다고 했을까. 하지만 크리스 도트리가 회가 거듭할수록 진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정확히 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아이돌 5'의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단지 최종 4인에 이름을 올리는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전히 크리스 도트리를 언급하기 위해서 '아메리칸 아이돌 5'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만, 그는 그리고 밴드 '도트리'는 '아메리칸 아이돌'가 가지는 상징성 혹은 '아메리칸 아이돌'이 줄 수 있는 일종의 '드림'을 뛰어 넘었다.
도트리=크리스 도트리+세션?
밴드 '도트리'의 중심은 역시 보컬과 밴드의 대부분 곡을 쓰는 크리스 도트리이다. 밴드의 이름조차 그의 성을 그대로 따 만들었다. 물론 전략적인 선택이다. "정말 멋진 이름으로 데뷔할 수도 있었지만, '아메리칸 아이돌 5'를 통해서 유명해진 제 이름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 그냥 제 성으로 따서 밴드 이름으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일이었죠." 밴드의 구성 역시 이름을 그대로 따라갔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밴드 멤버조차 크리스 본인의 선택이 아닌 레이블의 오디션에 의해 결정이 됐고, 그들은 기계처럼 첫 앨범 'Daughtry'를 고작 다섯 달 만에 녹음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밴드의 멤버 대부분이 과거 약간의 일면식이라도 가지고 있던 사이라는 것("조금씩 얼굴은 알던 사이이긴 했죠. 그런데 처음 만나 함께 연주를 하는데 이 친구들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마이 케이컬 로맨스'의 하워드 벤슨이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사실이다. 2006년 11월 21일, 제이지의 새 앨범 뒤를 이어 2위로 데뷔한 '도트리'의 데뷔 앨범 'Daughtry'는 첫 주에 미국에서만 30만 장 넘게 팔리며 '가장 많이 팔린 록 밴드의 데뷔 앨범'이라는 칭호와 함께 무려 2년 넘게 빌보드 앨범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앨범의 전체 판매량이다. 미국에서만 신인 밴드의 데뷔 앨범 판매량이 450만 장에 달하는 것은 단지 '아메리칸 아이돌'의 힘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해 앨범을 발매한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앨범을 팔았다. 유명세를 등에 업은 채 시작한 투어 역시 연일 매진 행렬이었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는 물론 유럽에서도 그의 인기는 엄청났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방영하지 않는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밴드인 '니켈백'과 함께 시작한 그들의 투어는 어느새 '본 조비'의 투어 파트너까지 이어졌다. 크리스는 '본 조비'의 '로스트 하이웨이 투어' 오프닝을 마친 후에는 본 공연 무대에 올라 'Blaze of Glory'와 그가 '아메리칸 아이돌 5' 현장에서 불러 본 조비를 놀라게 한 'Wanted Dead or Alive'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도트리의 단독 공연 역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2007년 한 해 동안 도트리는 공연으로만 1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도트리'가 크리스 도트리의 밴드가 아닌 밴드 '도트리'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밴드가 되다. 그리고 밴드로 돌아오다
"3년을 함께 투어 다니면서 우리는 '훌륭한' 밴드가 되었어요." 조이 반스('도트리'의 드러머)
"우리는 밴드로 성장했어요. 거의 3년 동안 모든 것을 함께한 덕분이죠." 조시 폴('도트리'의 베이시스트)
"밴드에게 있어서 멋진 진화와 같은 거죠." 브라이언 크래독('도트리'의 기타리스트)
본인의 의사보다 레이블의 의도가 진지하게 담긴 크리스 도트리 그리고 '도트리'의 데뷔 앨범 'Daughtry'는 놀라운 판매고와 달리 악평으로 가득한 앨범이었다. 찬사는 단지 크리스 도트리의 목소리와 곡 해석력에만 머물렀다. 오죽하면 어느 평론가는 '도트리'를 비슷비슷한 몇 개의 밴드가 묶였다며 'FuelNickelStaindback'이라 부르며 비아냥거렸을까. "사람들이 좋아할 만큼 적당히 잘 재단된 음악"은 호평에 가까울 정도였다. 엄청난 판매량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트로피를 안겨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미에서는 단지 후보(4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밴드의 핵심인 크리스 도트리 역시 이 상황이 답답했다. "단지 앨범을 빨리 만들고 싶었고, 모두가 재빨리 앨범을 발매하자도 부추겼을 뿐이었어요. 그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속아난 게 문제였죠." 하지만 이러한 혹평이 그들에게는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쉴 새 없는 투어 가운데 그들의 호흡은 점차 하나가 되어 갔고, 새 노래를 만드는 작업도 밴드답게 해결되기 시작했다. 새 앨범 'Leave This Town'에는 여전히 크리스 도트리의 곡이 많지만, 멤버들이 새 앨범의 작곡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던 중에 서로가 치열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내는 게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런 식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정말 지난 앨범을 녹음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Leave This Town'의 놀라움은 크리스 도트리의 이 한마디로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
"데뷔 앨범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앨범이 진짜 제 첫 앨범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것은 밴드 '도트리'의 새로운 시작을 담은 앨범입니다."
Leave This Town
2009년 5월, '도트리'의 새 앨범 소식이 공식 홈페이지와 크리스 도트리의 트위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새 앨범의 제목이 'Leave This Town'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이어 하워드 벤슨이 여전히 프로듀서를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곧이어 새 앨범의 첫 싱글 'No Surprise'가 발표됐다. 같은 날, '도트리'는 '아메리칸 아이돌 8'의 '록 특집'에 출연해 새 노래를 연주했다. '니켈백'의 채드 크로거와 '클릭 파이브'의 에릭 딜이 함께 쓴 이 노래는 그들이 지금껏 발표한 싱글 중 가장 좋은 성적인 빌보드 싱글 차트 15위로 데뷔했다. 더 놀라운 것은 확 바뀐 평단의 반응이다. "새로운 도트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라는 반응에 이어, "그래미 후보가 되는 게 놀랍지 않다"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저 뉴 메탈 밴드들의 혼합된 복제품에 지나지 않았던 '도트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 앨범은 좀 더 강력한 사운드를 담을 것입니다"라는 크리스 도트리의 호언장담 그대로 여느 때보다 강하고 묵직한 사운드를 담아 낸 'No Surprise'는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그 무게를 더해간다. 여타의 히트곡과 비슷한 분위기와 전개이지만, 크리스 도트리의 목소리와 밴드로서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도트리'의 성장이 그대로 느껴지는 모습만큼은 이 노래에 '오리지널 도트리'이라는 인증을 붙여주기 충분하다.
'Leave This Town'에 실린 다른 곡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새 앨범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줍니다"라는 말을 따라 'Leave This Town'은 새로운 '도트리'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비춰준다. '도트리'는 'No Surprise'에서 "내가 내일 여기 없더라도 놀랄 일이 아냐"라고 이야기한다. 가사 한 구절로 앨범 전체의 윤곽을 상상하는 것은 무리에 가깝지만, 크리스 도트리가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들이 변하듯 장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가끔 떠나는 것이 최선일 경우도 있잖아요." 그는 'Leave This Town'을 통해 성장과 이동 그리고 떠남에 대해서 노래한다. 크리스 도트리가 아닌 '도트리'가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곡마다 그리고 가사 마다 차곡차곡 담겨 있는 것이다. 앨범 타이틀인 "Leave This Town"이라는 구절이 포함된 노래 'September'에는 그 바람이 노골적으로 담겨있다. 기타리스트인 조쉬 스틸리와 함께 작업한 이 노래는 크리스 도트리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발라드 곡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어릴 적 노스캐롤라이나 시골 마을에서 보낸 여름을 회상한다.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그 여름은 절대 예전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고, 몇 해가 또 지나도 내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리고 크리스 도트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제 인생에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좋은 곳마저도 떠나야 하는 법이죠."
'Leave This Town'은 크리스 도트리의 매력적인 보컬과 모두가 따라 부르기 쉬운 구절로 가득하다. 또 한 번 대대적인 히트곡 행렬을 이어갈 수 있는 곡들로 가득 찬 앨범이라는 의미다. 우리 나이로 서른이 갓 넘은 크리스 도트리 뮺인의 경험이 녹아든 가사 역시 앨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크리스는 새 앨범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장의 앨범 안에 굉장히 다양한 것을 담았어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하드록이나 팝 록, 발라드 같은 우리가 그 동안 해왔던 것은 물론 컨트리나 댄스 음악 같은 분위기의 색다른 것도 넣었어요." 비슷하게 분류되는 다른 밴드(그러니까 '니켈백'이나 '퓨얼' 등)의 노래처럼 나긋하게 시작해 정점에 이르는 곡('No Surprise' 'Ghost of Me')도 있지만 그의 목소리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발라드('September')도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Life After You' 'Learned My Lesson'이 요즘 밴드에게 빠질 수 없는 당연한 구성이라면, 컨트리의 향내가 진한 'Tennessee Line'은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밴드에서 리듬 기타를 맡고 있는 브라이언 크래독과 함께 만든 이 노래는 컨트리 노래에 빠질 수 없는 피들과 함께 빈스 길("그는 컨트리 음악 역사상 최고의 보컬 중 한 명이죠.")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장르는 물론 세대까지 초월한(빈스 길은 1958년생이다) 둘의 호흡은 크리스 도트리의 욕심이 얼마나 거대한지('아메리칸 아이돌 5' 시절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다루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 있다) 그리고 크리스 도트리 자체가 얼마나 미국인에게 사랑 받는 존재인지를 역으로 증명한다. "이 앨범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줄 것 같아요. 아, 물론 저의 바람이죠."
"'Leave This Town'은 다소 '무식한' 앨범입니다. 아, 물론 좋은 의미로요."
크리스 도트리('도트리'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이미 성공은 보장됐다. 아직도 '아메리칸 아이돌 5'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는 첫 앨범으로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브랜드를 넘어섰고, 새 앨범으로 '도트리'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브랜드 자체가 최초로 거두는 성공이 눈앞에 보인다는 의미다. 이미 발매된 싱글이 이룩한 성공이 그들이 앞으로 걷게 될 비단길의 사이즈를 견주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은 단지 하나의 척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줄까? 해답은 바로 '밴드'이다. 진정한 밴드 '도트리'로 거듭난 덕분이다. 덕분에 그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업적인 성공 뿐 아니라 평단의 호응까지 예측할 수 있다. 'Leave This Town'이 가지는 의미 역시 '도트리'를 크리스 도트리라 인식할 때가 아닌 '도트리'라는 밴드 자체로 인식할 때 분명해 진다. 밴드 멤버의 구성부터 녹음까지 멤버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밴드의 첫 앨범 'Daughtry'가 단지 여러 사운드의 혼합과 오로지 크리스 도트리의 목소리만으로 만들어진 앨범에 불과했다면, 새 앨범은 밴드가 만들어낸 앨범이기 때문이다. '도트리'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는 조시 폴이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새 앨범은 우리가 밴드로서 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우리는 정말 하나가 되어 연주하고, 녹음을 해 앨범을 만들었어요." 조이 반스(드럼) 역시 거든다. "밴드에게는 '밴드의' 노래가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우리 각자의 성격이 밴드의 느낌으로 드러나야 하죠. 그 점에 있어서 크리스에게 굉장히 고마워요. 크리스는 우리가 밴드로 하나가 될 수 있게 한 장본인이자, 우리 각자에게 밴드의 멤버로서 각자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주었거든요."
진화형 밴드로서 첫 걸음
"아직도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을 합니다. 예전과 다른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거죠. 과거에는 단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민을 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에게 밴드의 멤버로서 크리스 도트리가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Leave This Town'이 아마 그 첫 해답이 될 것입니다." 크리스 도트리의 고민은 새 앨범에 대해 많은 것을 환기시킨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아메리칸 아이돌 5'의 출연자이자, 진정한 우승자로 크리스 도트리를 생각하고 있고, 여전히 그의 음악적 재능보다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 크리스 도트리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새 앨범을 작업했을 게 분명하다. 물론 그 고민이 끝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크리스 도트리 그리고 밴드 '도트리'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대중은 이 앨범에 열광할 것이고, 크리스 도트리는 또 그 기대에 더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트리'에게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리고 분명히 밴드로 진화한 도트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어려움 없이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가 아닌 다섯이 모인 새로운 하나이기 만은 아니다. 그냥 이 앨범을 들으면 그 믿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