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삼중당에서 『박목월 자선집』(1974)이 나오고, 1984년에 다시 서문당에서 『박목월 시전집』이 나왔지만, 박목월 시인의 전 시편들이 망라되고 그간의 어떤 전집에서도 수록되지 않은 102편을 발굴하여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엮은이 이남호 교수와 민음사는 박목월 시인의 시 세계 전모를 잘 정리하고 시인의 시적 성취를 새삼 복권(復權)시키고자 하는 계기로 이 책의 출간을 준비하였다. 3인 공동시집 『청록집』에서 「산도화」, 「난ㆍ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무순」, 「크고 부드러운 손」 그리고 102편의 미수록작 등 총 466편을 모았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해 엮어졌다.
1) 무엇보다 박목월 시의 기준 판본을 확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2) 기준 판본과 다른 판본과의 차이점을 주석을 통해 설명하였다.
3) 사후에 발굴된 유작 시와 기존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들을 엮어 모두 102편을 따로 실었다.(8부 미수록작 부분)
4) 맞춤법, 띄어쓰기, 구두점, 문장부호 등,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박목월 시인은 1939년에 등단하여 1978년 타계할 때까지 40년 동안 수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산문과 동시 분야에서도 빛났지만, 무엇보다도 시에서 가장 빛났다. “북에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 날 만하다.”라는 정지용의 평에서 보듯, 그는 등단할 때부터 주목받아 왔으며, 한국 시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크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시인 박목월과 그의 시는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시인의 사후에 태생한 세대들의 경우, 시인의 이름을 단지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이었다는 것으로만 기억하게 되었고, 민요풍 서정시의 대가로만 여기게 되었다. 한국 현대 시단에서 박목월 시인처럼 생전에 큰 영예를 누리다가 사후에 갑자기 잊혀진 시인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박목월이 없는 한국 현대시는 생각할 수 없다. 시인은, 올곧은 시 정신과 남다른 언어 감각 그리고 예민한 서정성으로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하였으며, 40년 동안 쉼없이 새로운 시 세계를 개척했다. 그런데도 그의 시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문학 교실 안에서 겨우 언급될 정도에 불과하다. 초기의 몇몇 작품들에 한정된 평단의 평가에 의해 그 외의 많은 수작(秀作)들이 간과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엮은이 이남호 교수는 “현재 한국 현대 시사에서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할 시인이 있다면 그 첫째가 박목월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목월의 초기 시의 세계는 『청록집』에서 첫 개인 시집 『산도화』로 이어진다. 초기의 시인은 매우 절제된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였으며, 짙은 서정성을 보여주었다. 초기에 성취한 미학은 매우 인상적이고 독특하였는데, 「나그네」, 「윤사월」, 「청노루」, 「산도화」 등의 시에서 보이는 자연은 인간이나 현실과는 상관이 없는 미학적 공간이다. 이남호 교수는 이를 가리켜 “이전의 우리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름다운 공간을 열어주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초기 시의 자연의 모습이며 미학적 공간은 시인에게 일약 명성을 갖다 준다. 정지용이 시인을 “북의 소월”에 비견하듯이, 그는 한국시의 민요적 서정의 한 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런데, 이 순도 높은 미학적 공간의 구축이라는 한국 시사적 의의가 상대적으로 폄훼된 면이 없지 않다. 민족의 도탄기에 현실 도피적, 음풍농월적인 시를 읊었다는 데서 거칠고 단순한 정치 이념의 논리로써 목월의 시를 평가한 것이다. 이남호 교수는 “인간이나 현실과 직접 상관이 없다고 해서 그 자연의 가치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그러한 아름다움의 공간을 창조하였던 점이 예술 본연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그는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산도화」, 「임에게」, 「청밀밭」 등 주옥같은 시편들을 써서 시인으로서 크나큰 명성을 획득한다.
시인은 두 번째 개인 시집 『난ㆍ기타』에서부터 새로운 시 세계를 열어가는데, 이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인간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신비한 미학의 세계로부터 자신의 일상적인 세계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극도의 압축과 생략을 구사하던 언어 사용 방식도 어느 정도 평이하게 풀어진다. 이 시집에서부터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는 시인의 내면적 성향이 본격적으로 시인의 시 세계를 주도하는데, 이는 세 번째 개인 시집 『청담』으로 이어진다.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면이었고,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은 항상 내면에서 변명과 이해와 만족을 구했으며, 그 과정이 곧 시쓰기의 과정인 경우가 많았다. 이 시집에서 보여준 세계는 「청노루」, 「윤사월」을 쓸 때와 같지 않다. 생활의 고달픔을 읊기도 하며 시인의 길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슬한 경지의 삶, 즉 시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기도 하고 고단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삶의 품위를 지키려는 시인의 고결한 마음씨를 보여준다. 「당인리 근처」, 「적막한 식욕」, 「난」, 「밥상 앞에서」, 「심야의 커피」, 「겨울장미」 등의 작품이 그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의 시들 중에는 유독 「무제(無題)」라는 제목의 시가 많이 나오는데, 시 전체를 통틀어 모두 18편에 달할 정도다. 이 ‘제목 없음’이라는 시인이 지닌 하나의 정서가 등장하게 된 시기도 이 중년기의 시작 활동 즈음이다.
말년에 시인이 추구한 또 하나의 세계는 “질박한 향토성의 미학”이다. 이것은 시인이 지향했던 삶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제4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제5시집 『무순』에서 시인은 고향의 소박한 삶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발견하여 시의 그릇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상당한 시적 성과를 얻는다. 「이별가」, 「만술 아비의 축문」, 「한탄조」, 「장 맛」, 「그저」 등에서 보듯, 초기 시만큼 값진 시적 성취를 얻는다.
시인 사후에는 유족들이 시인의 종교시를 모아 『크고 부드러운 손』을 내었다. 이 시집은 미망인 유익순 여사가 시인의 유작 중에서 종교시만을 보아 펴낸 것이다. 따라서 중기 이후 말년에 이르는 그의 시적 경향이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경향, 종교적이고 구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시인은 노년에 접어들어, 죽음에 대해서 보다 빈번하게 생각하고 신에게 더 많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초년의 시인이 박영종이란 본명으로 훌륭한 동시의 세계를 펼쳤다면, 말년의 목월은 훌륭한 종교시의 세계를 펼쳤다. 동시와 종교시는 시인의 시 세계에서 서론과 결론이 된다. 그리고 한 서정적 인간의 일상과 내면의 진실 그리고 독창적인 언어 미학으로 구축된 풍요로운 시적 공간은 시의 본론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목월이 성취한 시 세계는 섬세하면서도 넓고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