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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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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몽골 제국과 고려-01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이승한 | 푸른역사 | 2009년 05월 15일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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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9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83쪽 | 578g | 153*224*30mm
ISBN13 9788991510944
ISBN10 899151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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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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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이승한
전남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광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요즘 민족사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제의 식민 통치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는 성급하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받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다행스런 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민족’이나 ‘민족주의’의 시각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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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제국의 변경으로 전락한 고려
― 세조 쿠빌라이는 왜 일본을 정복하려고 했을까?


2001년 출간 당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중한 접근’으로 대중적 역사서의 새로운 모델로 호평받았던 『고려무인 이야기』(전 4권)의 저자 이승한이 ‘원 간섭기’ 고려사를 새롭게 조명한 책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을 출간했다. 『고려무인 이야기』 4권 이후 4년 만의 찾아온 저자의 책은 그의 전작 못지않게 생동감 넘치며 원숙미가 느껴진다.
좀더 깊어진 역사가의 눈이 주목한 ‘원 간섭기’ 고려사는 어떤 의미일까?
역사를 연구하는 데 ‘민족’이나 ‘민족주의’의 시각을 갖는 것은 불가피하게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기제를 작동시키고, 이는 상대에게도 마찬가지의 기제를 작동시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시 긴장하여 더욱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기제를 강화하는데, 이런 속에서 우리 역사 연구는 수단화되고 도구화되고 만다. 저자는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 연구가 지금까지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저자는 ‘원 간섭기’의 고려사가 이런 연구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먼저 이 시기는 일제 식민 통치 시기와 다르게 우리 시대와 멀리 떨어져 있다. 또한 그 시대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다. ‘민족’이나 ‘민족주의’ 시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더라도 심리적 부담이 적다. 따라서 ‘원 간섭기’의 고려사가 저자에게 색다른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안겨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 간섭기, 왜 제국의 변경인가
강화도에 들어가 몽골의 침략에 30년 동안 저항하다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부터 공민왕 초까지 약 80여 년간, 이 시기를 학계에서는‘원 간섭기’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당시 고려 왕조가 겪었던 원의 간섭과 지배의 정도를 조금이나마 약화 혹은 축소시켜보려는 의도를 다분히 숨기고 있다. 이 시기의 양국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제 그 지배나 간섭의 정도는 훨씬 더했기 때문이다.
당시 ‘충○왕’들이 당했던 개인적 수모나 굴욕은 차치하더라도 양국의 관계에서 이들 국왕들의 처지나 정치적 위상은 ‘간섭’을 받는 정도가 결코 아니었다. 고려의 독립 왕조로서의 위상도 심하게 훼손되었음은 물론이다. ‘원 간섭기’가 아니라 ‘원 지배기’라고 해야 당시 실상에 그나마 부합할 수 있다. 고려 왕조는 명맥만 겨우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고 실제는 원의 지배를 철저히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 시기 양국의 관계를 ‘부마국 체제’라 부르기도 한다. 충렬왕이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고려 국왕과 원의 황제를 사위와 장인이라는 개인적 관계로 환원하여 규정한 것이다. 이런 사적인 인척 관계가 양국 관계를 비롯한 고려의 국가적 위상이나 정치 운영 등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양국 관계를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고려 왕조는 그 당시 독립국이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같은 망국의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선 시대와 같은 사대 조공의 관계와도 다른 것이었다. 일반적인 지배와 종속의 관계라고 하기에도 양국의 그 복잡한 면면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황제와 제후의 봉건적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도 전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여러 관계의 일면들이 조금씩 뒤섞인 것이 아닌가 싶다. ‘제국의 변경’이라는 표현은 이런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국 관계를 단순하게 표현해 본 것이다.

고려 정부는 일본 원정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고려가 원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나마 왕조의 명맥을 조금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인 정권(최씨 정권)의 끈질긴 대몽항쟁 덕택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그것은 쿠빌라이와 아릭부케 형제 사이에 대칸 계승을 놓고 벌인 제국의 내전에서 비롯되었다. 쿠빌라이는 주변국의 지지와 후원을 얻기 위한 외교 전략으로 주변의 분봉국이나 정복국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무렵 독립성이 보장되었던 일 칸국이나 차가타이 칸 국처럼 고려도 그 덕을 본 것이다.
원이 고려를 지배한 80여 년 동안 유지하였던 양국 관계의 구조나 그 틀은 쿠빌라이에 의해 확립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조나 틀은 고려를 일본 원정에 효과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로 마련한 것이었다. 사위와 장인이라는 부마 관계가 그렇고, 정동행성이라는 ‘행성’의 설치가 그것이다. 부마 관계는 고려 국왕의 위상을 규정했고, 행성의 설치는 고려 국가의 위상을 결정했다.
두 차례 일본 원정의 실패는 태풍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히 1차 원정은 진정 일본 정벌을 성공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 원정군의 규모가 너무나 소규모였고 약세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본의 입조를 이끌?내기 위한 무력시위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2차 원정도 실상 그 원정군의 규모만 커졌지 대원 제국의 온 국력을 쏟은 원정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1차 원정은 오로지 고려를 앞장세워 동원한 원정이었고, 2차는 전적으로 남송의 군민을 동원한 원정이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제국 내부의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을 반드시 정복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

1. 몽골 제국의 눈부신 정복활동
몽골 제국의 정복활동은 마치 폭탄이 폭발하듯이 순식간에 동서양을 휩쓸었다. 이와 같은 정복활동은 그 이유가 대단히 궁금한데 속 시원한 해답이 없다. 이건 마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에 오르는 이유와 같다. 고려를 침략하고 일본 정벌을 단행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금나라를 정복하니 고려가 보였고, 고려를 정복하니 또 일본이 보였던 것이다. 이러하니 고려와 일본이 몽골 제국의 정복활동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금나라 동쪽에 고려가 있고, 고려의 동쪽에 일본이 있는데도 정복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몽골 제국이 일본을 정벌한 이유보다는 그 과정을 살피는데 주력하고 있다.

2. 몽골의 침략과 고려의 무인 정권
고려의 무인 정권이 폭발하듯 팽창하는 몽골 제국과 맞닥뜨린 것은 뜻밖의 사건이었지만 이어지는 고려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일본의 무사 정권이 몽골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 수백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려의 무인 정권이 일본의 무사 정권에 비해 단명했던 것은 몽골의 침략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양국의 무인 정권이 그렇게 다르게 전개된 것은 몽골의 침략만 가지고 설명할 일은 아니다. 여기에는 양국 사회의 구조적인 차이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겠지만 몽골의 침략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을 이 책은 시사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본원정 문제를 살펴 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시기로 보나 그 내용으로 보나 『고려무인 이야기』에 바로 이어지는 후속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3. 쿠빌라이 칸의 대 고려 정책
고려는 수십 년 동안 항전하다가 결국 몽골 제국에 복속되는데, 이것은 강제적인 무력 정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몽골의 유화적인 외교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이 당시 고려는 더 이상 군사적인 저항을 할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려 있어 이미 무력적으로 정복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몽골이 요구한 항복의 마지막 조건이었던 개경 환도와 국왕의 친조(親朝)가 이루어진 것은 몽골의 외교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개경 환도와 친조를 성사시킨 인물이 바로 몽골의 5대 황제 세조 쿠빌라이 칸이었다. 쿠빌라이 칸은 고려에 대한 침략을 중단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문화적 전통을 그대로 지키게 하고 자율성도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황제 조서를 내린다. 쿠빌라이 칸은 대칸 계승 다툼 과정에서 주변 분봉국이나 정복국의 이반을 막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었다. 고려뿐만 아니라 서방의 분봉국에 대해서도 독자성을 보장한다는 외교적인 유화책을 취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고려는 그 덕분에 왕조의 독자성을 유지한 채 몽골에 복속되는 특별한 경우가 되었다.
원 간섭기에 고려의 독자성이 유지되었던 것에 대해 최씨 무인 정권의 장기 항전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무인 정권의 끈질긴 대몽항쟁 때문에 고려는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나마 왕조를 유지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이다.

4. 쿠빌라이 칸의 일본원정
일본을 정벌하겠다는 쿠빌라이의 의도는 개경 환도가 이루어지기 전인 1264년 무렵에 이미 고려 측에 전달되었다. 이는 남송 정벌이 시작되기 전으로써 일본원정을 남송 정벌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쿠빌라이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일본원정은 1274년(충렬왕 즉위년)과 1281년(충렬왕 7년) 두 차례 단행했는데, 처음은 남송 정벌과 동시에 이루어졌고 두 번째는 남송 정벌이 대강 마무리된 직후였다. 그래서 1차 원정은 온전히 고려를 동원한 것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고려의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은 그 고통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군마에 먹일 사료까지 착취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1차 원정은 실패하고 말았다.
2차 원정은 고려에 대한 물자 동원보다 정복한 남송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에 더 의존했다. 따라서 고려의 부담은 1차 원정 때보다 조금 가벼웠다고 볼 수 있다. 2차 원정은 군사 10만과 5천 척 가까운 전함을 동원하여 중국 강남과 고려에서 동시에 출정하는 비로소 원정다운 원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태풍을 만나 실패하고 만다.
5. 일본원정과 ?렬햿, 그리고 고려
일본원정은 고려의 국가 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2차 원정을 준비하면서 고려에 설치된 정동행성(征東行省)이 여기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정동행성은 본래는 일본원정을 위한 군사기구였지만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원 제국 내지의 지방 행정기구나 고려에 대한 내정 간섭 기구와 유사한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울러 충렬왕은 그런 행성의 장관직을 겸하여 마치 고려 국왕이 원 제국의 지방 행정 장관처럼 보일 수 있었다. 이는 국왕이나 고려의 국가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이었다.
원 제국과 고려, 그리고 쿠빌라이 칸과 충렬왕의 이런 특수한 관계는 바로 일본원정을 통해서 확립되었고, 이후 공민왕 대 반원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그 틀이 유지되었다.

6. 일본원정의 영향
쿠빌라이 칸의 일본원정이 실패로 끝나면서 원 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원정은 몽골 제국이 성립하여 망할 때까지의 150여 년의 역사에서 쇠퇴의 분수령이었다. 그 만큼 일본원정은 당시 원 제국에 무리한 정복 사업이었던 것이다. 쿠빌라이 칸은 몽골 제국을 초원의 유목 제국에서 중원의 정주 제국으로 탈바꿈시켰는데, 만약 일본원정이 성공했다면 몽골 제국은 다시 해양 제국으로 발전하여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고려는 일본원정을 준비하면서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이라는 고통을 받았지만 농업의 발달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라는 특수 효과로 인한 산업의 발전이었다. 군량 확보를 위해 원이 고려에 설치한 둔전(屯田)은 일종의 산업특구였고 농업 선진화 지역이었다. 또한 원정을 준비하면서 전국적으로 농민을 동원했는데, 이때 나타난 의무병제의 시작도 일본원정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원정을 준비할 당시 고려의 직업 군인 제도인 군반제도는 이미 잔해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동원한 농민은 ‘모든 농민이 병사’라는 병농일치제(兵農一致制)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조선 초에 확립된 의무병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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