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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Feelgood : 4CDs Of The Most Uplifting Music (얼티메잇 필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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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ltimate Feelgood : 4CDs Of The Most Uplifting Music (얼티메잇 필굿)

모두가 사랑하는 기분전환 음악

[ 4CD / 오리지널 음원 / 절판된 앨범 속 희귀곡 다수 수록 ]
Giorgio Moroder 작곡/Pharrell Williams, Destiny′s Child, One Direction, Outkast 노래 외 5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6년 11월 0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8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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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Feelgood : 4CDs Of The Most Uplifting Music (얼티메잇 필굿)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11월 01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1
  • 01 Happy (From "Despicable Me 2") - Pharrell Williams
  • 02 Bills - Lunchmoney Lewis
  • 03 Bootylicious - Destiny'S Child
  • 04 What Makes You Beautiful - One Direction
  • 05 D?j? Vu - Giorgio Moroder (feat. Sia)
  • 06 Work This Body - Walk The Moon
  • 07 Hey Ya! - Outkast
  • 08 Hold On Tight - Electric Light Orchestra
  • 09 Dance With Me Tonight - Olly Murs
  • 10 Can't Sleep Love - Pentatonix
  • 11 Budapest - George Ezra
  • 12 Remastered - Five Stairsteps, The
  • 13 Sexual Healing (Studio Rio Version) - Marvin Gaye & Studio Rio
  • 14 I'm So Excited - The Pointer Sisters
  • 15 Uptown Girl - Billy Joel
  • 16 Hey, Soul Sister - Train
  • 17 Float On - Modest Mouse
  • 18 Here Comes The Sun - Nina Simone
CD2
  • 01 Candyman - Christina Aguilera
  • 02 Ex's & Oh's - Elle King
  • 03 Dance To The Music - Sly & The Family Stone
  • 04 Ain't Your Mama - Jennifer Lopez
  • 05 I Need Your Love - Shaggy, Mohombi, Faydee, Costi
  • 06 New Girl - Reggie 'N' Bollie
  • 07 Jump In The Line - Harry Belafonte
  • 08 Worth It - Fifth Harmony (feat. Kid Ink)
  • 09 Smooth Sailin' - Leon Bridges
  • 10 Sax - Fleur East
  • 11 Die Young - Ke$Ha
  • 12 Waka Waka (This Time For Africa) - Shakira
  • 13 Ugly Heart - G.R.L.
  • 14 Blame It On The Boogie - Jacksons, The
  • 15 Dna - Little Mix
  • 16 Don't Stop Believin' - Journey
  • 17 Once In A While - Timeflies
  • 18 Remastered - Daryl Hall & John Oates
CD3
  • 01 Cheerleader (Felix Jaehn Remix Radio Edit) - Omi
  • 02 I Will Never Let You Down - Rita Ora
  • 03 Keep On Movin' - Five
  • 04 Dancing On Glass - St. Lucia
  • 05 Freedom - Wham!
  • 06 Here For You - Kygo (feat. Ella Henderson)
  • 07 (I've Had) The Time Of My Life - Bill Medley & Jennifer Warnes
  • 08 Classic - Mkto
  • 09 I'm Outta Love - Anastacia
  • 10 Never Gonna Give You Up - Rick Astley
  • 11 The Girl Is Mine (feat. Destiny's Child & Brandy) - 99 Souls
  • 12 Let Go For Tonight - Foxes
  • 13 Let The Sun Shine - Labrinth
  • 14 I Need Your Love - Calvin Harris (feat. Ellie Goulding)
  • 15 Blow Me (One Last Kiss) (Squeaky Radio Edit) - P!nk
  • 16 Hall Of Fame - The Script
  • 17 Boom! Shake The Room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 18 Used To Love U - John Legend
CD4
  • 01 A Little Less Conversation (Jxl Radio Edit Remix) - Elvis Presley Vs. Jxl
  • 02 Worth Something - Isac Elliot
  • 03 Girlfriend - Avril Lavigne
  • 04 More Than A Feeling - Boston
  • 05 Born To Make You Happy - Britney Spears
  • 06 Love Train - O'Jays, The
  • 07 Blush - Tp4Y
  • 08 I See You Baby (Fatboy Slim Radio Edit) - Groove Armada (feat. Gram'Ma Funk)
  • 09 Everybody (Backstreet's Back) - Backstreet Boys
  • 10 Stand By You - Rachel Platten
  • 11 You Can Call Me Al - Paul Simon
  • 12 You Bring Me Joy - Amelia Lily
  • 13 Girl On Fire - Alicia Keys
  • 14 Rock Your Body - Justin Timberlake
  • 15 Better When I'm Dancin' - Meghan Trainor
  • 16 Happiness - Alexis Jordan
  • 17 Perfect - Fairground Attraction
  • 18 Oh Happy Day - The Edwin Hawkins Singers

아티스트 소개 (61명)

작곡 : Giorgio Moroder (조지오 모로더 )
노래 : Destiny's Child (데스티니스 차일드)
노래 : One Direction (원 디렉션 (아이돌 밴드))
멤버 : 니엘 호란(Niall Horan), 잔 말리크(Zayn Malik), 리암 페인(Liam Payne),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루이스 톰린슨(Louis Tomlinson) 이 5명의 소년들이 원 디렉션을 함께 하게 된 계기는 꽤나 이색적이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펙터(X-Factor) 시즌7에서 각각 개인별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이들은 패널인 사이먼 코웰, 니콜 셰르징거에 의... 멤버 : 니엘 호란(Niall Horan), 잔 말리크(Zayn Malik), 리암 페인(Liam Payne),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루이스 톰린슨(Louis Tomlinson)

이 5명의 소년들이 원 디렉션을 함께 하게 된 계기는 꽤나 이색적이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펙터(X-Factor) 시즌7에서 각각 개인별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이들은 패널인 사이먼 코웰, 니콜 셰르징거에 의해 그룹으로 결성하는 것이 어떠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다섯 소년은 이를 계기로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란 그룹을 결성하게 되며, 엑스팩터 파이널 리스트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들은 최종 파이널에서 아쉽게도 최종 3위를 차지했지만, 액스팩터가 끝난 후 결국 팝 계 최고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사이먼 코웰의'Syco Music'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정식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11월 18일 유럽지역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데뷔앨범 [Up All Night]는 먼저 아일랜드에서는 첫 주 앨범 차트 3위에 오르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영국에서는 첫 주 138,631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UK 앨범차트 2위로 데뷔했다.
노래 : Outkast (아웃캐스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듀오 아웃캐스트는 구디 몹(Goodie Mob)과 함께 남부 랩을 상징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서부 랩의 간판인 갱스타 랩을 남부로 끌어들여 서던 소울과 펑크(Funk) 등을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닥터 드레(Dr. Dre)가 창안한 지 펑크(G-Funk)를 남부 특유의 강직한 음악 스타일로 재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웃캐스트는 1992년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드레(Dre)와 빅 보이(Big Boi)에 의해 탄생된 팀. 그들은 그룹을 결성하기 전부터 서로 랩 배틀을 벌이며 차곡차곡 실력을 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듀오의 잠재력은 TLC와 엔 보그(En Vogue)의 프로듀서로 명망이 드높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se)의 눈에 띠게 됐고,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엘 에이 리드(L.A. Reid)가 세운 < 라페이스(LaFace) > 레이블과의 앨범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친구의 승승장구는 시작됐다. 1994년 그들의 데뷔 싱글 ''Player''s Ball''은 빌보드 랩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해 공개된 데뷔작 <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 >도 플래티넘을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다. 1996년 소포모어 앨범 < ATLiens >, 1998년 3집 < Aquemini > 역시 모두 사이좋게 차트 2위에 랭크되었고, 당연하게 백 만장을 돌파했다. ''Elevators (me and you)'', ''Two dope boyz (in a cadillac)'', ''Atliens'', ''Rosa parks'', ''Chonkyfire'' 등이 히트 행진을 벌였다. 아웃캐스트는 지난해 내놓은 네 번째 음반 < Stankonia >을 또다시 앨범 차트 2위에 올려놓으며 힙 합 팬들의 끊임없는 애정에 화답했다. 아직도 차트에 머물려 삼 백 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앨범은 듀오의 실험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속사포처럼 매우 빠르게 내리꽂는 그들의 래핑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B.O.B.'',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신선하고 독특한 ''So fresh, so clean'' 등이 대표적이다.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Ms. Jackson''은 아웃캐스트의 음악 본령이다. 단지 힙 합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2000년에 발표된 모든 팝 앨범들 사이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요즘 백인 악동 에미넴(Eminem)이 힙 합의 대변인을 자임하고 있지만, 힙 합의 주인은 역시 흑인이라는 것을 아웃캐스트는 뛰어난 음악으로서 증명하고 있다.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두 그의 보컬에 영향받았음을 인정하며 그의 음악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지 탁월한 창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록음악 역사에 있어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아티스트의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한 음악인이라는 점에서 그를 더욱 기억하게 한다. 70년대가 되기 전 만해도 밤낮으로 사랑과 낭만만을 얘기하며 소일하던 모타운식 소울 음악은 당시 대다수 흑인들이 공감해오던 ‘어두운 현실’엔 둔감했다. ‘팔리는 음악’을 원했던 회사측과의 마찰은 불가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을 위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산고 끝에 록 역사를 대표하는 명반 < What’s going on >(1971)은 탄생했다 소울 음악은 60년대 그가 소속되어있던 모타운 레코드사를 통해 보다 대중적인 음악 문법으로 자리 잡은데 이어, 그는 같은 회사 소속의 스티비 원더와 함께 미국 대도시 후미진 곳에서 벌어지는 ‘게토 리얼리티를’ 자신의 노래에 담아냄으로써 소울이 ‘사회성’이란 화두를 본격적으로 끌어내는데 기여를 했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그는 소위 후배 흑인 뮤지션들의 ‘대부’이다. 8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분수령을 일군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론트 맨 척 디(Chuck D)는 1988년도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을 발표하며 롤링스톤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는 이번 앨범에서 힙합의 < What’s going on > 버전을 내놓고 싶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마빈 게이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인정했다. 마빈 펜츠 게이 주니어라는 본명으로 1939년 4월 2일 워싱턴 디씨에서 태어난 그는 목사를 아버지로 둔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다소 억압적인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하게 해 아버지 때문에 억눌린 영혼을 달래줄 위안이 된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에 입대,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는 락 앤 롤 스타 보 디들리(Bo Didely)를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된다. 1958년 두왑 그룹인 레인보우에 가입, 이듬해엔 시카고로 진출해 ‘문 그로우’ 라는 두왑밴드에서 활동하며 체스(Chess) 레코드에서 그의 ct첫 싱글 ‘Mama roocie’를 녹음한다. 미국 전역 투어에 나선 문 그로우는 디트로이트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당시 그의 연주를 지켜보던 모타운의 설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는 3옥타브가 넘는 그의 탁월한 테너 창법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61년 모타운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베리 고디와 운명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처음엔 세션 드러머로서 모타운의 일원이 된 그는 모타운 간판스타이자 작곡가인 스모키 로빈슨과 함께 활동한다. 1961년 그는 사장인 베리 고디의 누이인 안나와 결혼한다(무려 18살의 연상). 사장과 사돈관계가 된 덕에 회사측에 전폭적인 지원을 얻게 된 그는 이듬해 첫 싱글 ‘Stubborn kind of fellow’(1962)를 발표하고 흥겨운 댄스 팝 ’Hitch hike’(1962)로 빌보드 Top 40에 진입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크루닝 창법에 영향 받았던 그는 당시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원했지만, 회사 측은 그에게 흥겹게 흔들기 좋은 빠른 댄스 음악만을 요구했다. 큰 키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덕에 유난히 여성 팬들이 많이 따랐던 그였지만, 무대에 올라 몸을 흔들며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것은 늘 못 마땅했다. 후에 그가 회고하길 ‘나는 무대에 나가 청중들 앞에서 내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했을 정도이니, 얼마 후 있을 회사 측과 창작권을 두고 생긴 갈등은 이미 데뷔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1960년대 내내 그는 모타운 사를 통해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했다. ‘Pride & joy’(1963)로 처음 Top 10에 진출한 그는 잇달아 발표한 싱글 ’How sweet it is’(1964), ‘Aint that peculiar’(1965)을 Top 10에 진입시킨다. 솔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갈 무렵 그는 모타운 소속의 실력 있는 디바들과 듀엣 곡을 많이 취입했는데, 메리 웰즈(Mary Wells)과 함께 한 ’What’s the matter with you baby’(1964)을 시작으로, 킴 웨스튼(Kim Weston)과 함께 한 ’It takes two’(1966), 70년대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와 함께 한 ‘My mistake is to love you’(1974)등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와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디바는 바로 타미 테렐(Tammi Terell)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66), ’Your precious love’(1967),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1968), ’You’re all I need to get by’(1968) 모두 Top 10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콤비’는 안타깝게도 타미 테렐의 요절로 인해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에게 첫 팝 차트 넘버원의 영광을 안겨준 ‘I heard it through grapevine’(1968)로 그의 인기전선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듬해 ’Too busy thinking about my baby’(1969), ’That’s the way love is’(1969)를 Top 10에 진입시키며 인기는 더해갔지만, 이내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데뷔 때부터 창작권을 두고 벌어진 회사 측과의 끈질긴 줄다리기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그에게 투쟁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달콤한 사랑타령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표출해보길 갈망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얻기 위한 힘겨운 투쟁 끝에 결국 모타운 사의 백기를 받아내며 ‘음반 제작에 관한 모든 전권을 그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전리품을 얻어낸다. 흑인의 입장에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의 비참한 현실을 늘 생각해왔던 그는 주저 없이 이런 자신의 고민을 음악 속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다. 흑인 빈곤문제, 실업, 월남전등, 70년대 초 그의 눈에 보인 흑인의 현실은 ‘참담함’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노래했던 발랄한 60년대의 흑인 음악은 슬라이&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등 기라성같은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한층 진지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1971)이었다. 흑인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놓은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은 회사 측에 우려에도 불구, 앨범 수록 곡 중 무려 4곡(What’s going on, God is love,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이 Top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앨범은 지금까지 8백만장이라는, 당시로선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스트링을 동원한 세련된 연주 편곡, 참회록을 쓰듯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진행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은 당시 소울음악에선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앨범 < What’s going on >은 그의 음악 경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성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Inner city blues’(1971)에서 목격했던 퍼커션의 가열 찬 울림은 70년대 흑인 음악의 대표 트렌드인 ‘펑키 사운드’로의 변화를 예고했고, 앨범으로는 발표 안 된 저주받은 싱글 ‘You ’re the man pt. 1, 2’(1972)에선 가성, 두성, 진성 등 한층 다채로워진 그의 보컬 연기가 압권이다. 재즈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영화 음악 작곡으로도 이어져 노래보다 연주 쪽에 관심이 반영된 영화음악 앨범 < Trouble man >(1972)으로 이어진다. < What’s going on >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이전의 고뇌하는 흑인 지성임을 포기하고 이번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사랑의 전령사로 변신한다. 그의 두 번째 넘버원을 안겨다 준 앨범< Let’s get it on >(1973)은 ‘성 행위’를 찬미하는 노래들로 가득 찬 앨범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게 했다. 빌보드 No.1 곡인 ‘Let’s get it on’은 그를 단번에 섹시 스타로 변모시켰고, 그가 앨범에서 얘기했던 ’자연스러운 성의 표현 ‘은 80년대 들어 프린스나 조지 마이클같은 팝 스타들의 음악 세계로 계승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첫 아내였던 안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재니스라는 여인과 이미 두 집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았던 그의 성적 편력은 결국 아내와의 별거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충격에 슬럼프에 빠져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재기의 몸부림을 친 그는 베리 고디의 주선으로 만난 레온 웨어(Leon Ware)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 < I want you >(1976)을 발표하지만, 수록곡 ‘I want you’, ’After the dance’가 약간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히트곡에 목말라하던 그는 1977년 런던 팔라디움 구장에서의 콘서트 더블 실황 앨범< Live at the Palladium >을 발표하며, 13분이 넘는 디스코 곡 ‘Got to give up’을 수록하고, 4분대의 싱글로도 커팅, 그의 세 번째 넘버 원 싱글로 등극된다.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던 ’Got to give up’은 팝 차트, 앨 앤 비 차트 1위를 석권하며 그에게 가수로서 회생의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Got to give up’의 기쁨도 잠시, 결국 그는 안나와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에 대한 위자료를 다음에 발표하는 앨범 인세로 한다는 합의를 보게 된다. 앨범 < Here, my dear >(1978)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고 수록 곡 ’When did you stop loving me, When did I stop loving you’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남과 해어짐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그의 뼈저린 고해성사는 아름다운 가사말과 편곡의 세련됨에도 불구, 이렇다할 히트 싱글 없이 앨범은 파묻히며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안 알려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안나는 앨범 내용이 사생활 침해라며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에 이어 다시 몇 년간은 그에게 혼란의 시기였다. 두 번째 아내였던 제니스와 급기야 파경에 이르렀고, < Love Man >(1979-발매 취소)과 < In our life time >(1981)의 흥행실패는 그를 더욱 마약으로 치닫게 했다. 급기야 그는 1981년 20년간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게 했던 모타운 사를 떠나, 하와이로 이주,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 정확히 1년 후인 1982년, CBS 레코드와 전속 계약하며 그에겐 마지막 걸작으로 남게 된 < Midnight Love >(1982)를 발표한다. ‘Let’s get it on’에 버금갈만한 농염한 보컬이 인상적인 싱글 ‘Sexual healing’이 팝 차트 3위까지 오르며 그는 화려하게 재기한다. 공백기 동안대중들과의 소원함을 해소하기 위해 TV 출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그는 베리 고디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둘의 악연(?)을 만회해보려고도 했고, NBA 농구 경기때 미국 국가를 소울 창법으로 불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에서 연주했을 때 이후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재기 의지는 이내 사그러들고 있었다. 이미 코케인에 찌들 때로 찌든 그의 몸은 말을 듣질 않았고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던 목사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극은 그의 아버지와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고, 1984년 4월, 그의 45회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심한 다툼 끝에 화를 가누지 못한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듬해인 1985년 모타운사와 CBS가 공동으로 그의 미 발표곡을 모은 < Dream of a life time >과 < Romantically Yours >를 내놓는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히 이뤄져 < 롤링스톤 >을 비롯한 록 전문지들은 앞 다투어 그의 앨범 < What’s going on >을 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추대하기 시작했고,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등재된다.
노래 : Pointer Sisters (포인터 시스터즈)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수련해 온 한 소년은 어느 날 에드 셜리번 쇼에 나온 비틀즈의 모습에 감명 받아 뮤지션으로서 삶을 영위하기로 결심했다. 피아노만큼이나 좋아했던 권투 선수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한 우물만 파기로 한 뒤 로컬 밴드에 몸담으며 내공을 연마해나갔다. 당시 20살이 채 안된 어린애가 장차 거물급 싱어 송라이터 명단에 세세토록 이름을 남길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건 당연지사.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수련해 온 한 소년은 어느 날 에드 셜리번 쇼에 나온 비틀즈의 모습에 감명 받아 뮤지션으로서 삶을 영위하기로 결심했다. 피아노만큼이나 좋아했던 권투 선수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한 우물만 파기로 한 뒤 로컬 밴드에 몸담으며 내공을 연마해나갔다. 당시 20살이 채 안된 어린애가 장차 거물급 싱어 송라이터 명단에 세세토록 이름을 남길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건 당연지사.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 했던 그 아이, 바로 영원한 피아노맨 빌리 조엘(Billy Joel)이다. 빌리 조엘은 1965년부터 에코스(The Echoes), 해슬스(The Hassles), 아틸라(Attila)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팝 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허나 당시 하드록, 사이키델릭이 주를 이뤘던 음 세계는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사장되고 말았다. 생계를 위해 저널에 비평을 기고하고 음악적 실패로 인해 마약 센터에 들락거리며 자살을 기도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그를 엄습한 시기였다. 1971년에 빌리 조엘은 솔로 데뷔작 < Cold Spring Harbor >를 내놓으며 복귀식을 치렀다. 발표 직후 가졌던 공연 릴레이는 호평 받았지만 지지부진한 판매고는 여전했다. 결국 빌리 조엘은 L.A.에 새 둥지를 틀었고, 빌 마틴(Bill Martin)이란 가명으로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재기를 꿈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비슷한 시기에 겹경사가 일어났다. 1973년 엘리자베스 웨버와 결혼하며 안정을 찾았고 ’Captin Jack’의 라이브 버전이 라디오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을 간파한 콜롬비아(Columbia)가 구애의 손길을 보낸 것은 예정된 순서였다. 같은 해에 2집 < Piano Man >이 등장했다. ’피아노맨’이라는 별명의 진원지이기도 한 앨범은 빌보드 차트 27위까지 올랐고 타이틀 트랙 역시 싱글 차트 40위권에 안착하며 그에게 처음으로 성공의 단 열매를 맺어주었다. 제이 가일스 밴드(The J. Geils Band),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의 오프닝을 맡아 투어를 돈 뒤, 1974년 말에 내놓은 3집 < Streetlife Serenade >(1974)은 차트 35위를 기록하며 탄탄대로를 열어주는 듯 했다. 허나 4집 < Turnstiles >(1976)는 명곡 ’New York State of Mind’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 차트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제작 전에 프로듀서인 궈시오(Guercio)를 해고하고 아내를 매니저로 기용하는 등, 잡음이 많았던 점이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1977년의 < The Stranger >는 오늘날의 빌리 조엘이 있게 한 명반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미국에서 각광받았던 시티 뮤직을 대폭 수용한 작품은 차트 2위까지 상승하며 단숨에 플래티넘을 따냈고 ’Just the way you are’(3위), ’Monin’ out’(17위), ’Only the good die young’(24위), ’She’s always a woman’(17위)등, 네 곡의 히트작을 쏟아냈다. ’Just the way you are’는 그래미에서 ’Record of the Year’와 ’Song of the Year’, 두 개 부문을 수상하며 비평적 찬사를 안겼다. 6집 < 52nd Street >(1978)도 맹렬한 기세를 이어나갔다. 아니, 오히려 능가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주간 1위를 고수하며 한달 만에 200만장을 세일즈했고 ’My life’(3위), ’Big shot’(14위) ’Honesty’(24위)등이 수시로 울려 퍼졌다. 마침내 그는 그토록 소망했던 그래미 ’올해의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펑크와 뉴 웨이브의 세상 속으로 과감히 돌진한 < Glass Houses >(1980)에서도 한번 불붙은 열기는 식지 않았다. 급격한 음악적 변화에도 기존 팬들은 쌍수 들어 그를 환영했다. 앨범 차트 6주간 1위, 4곡의 히트송 배출, 그래미 ’Best Rock Vocal Performance, Male’ 부문 수상이 마치 자연스런 수순처럼 보일 정도였다. 1년 뒤, 초기곡들의 라이브 콜렉션인 < Songs in the Attic >(1981)을 발표한 뒤, 빌리 조엘은 이혼과 오토바이 사고를 겪으며 위기의 남자가 되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삶에 대해 컨셉트 앨범으로 꾸민 야심작 < The Nylon Curtain >(1982)마저 낮은 판매량에 허덕이며 전성 시대가 지난 것 아니냐는 추측성 발언을 낳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과거 사운드로 회귀한 < An Innocent Man >(1983)을 내놓으며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되찾았다. 차트 1위에 오른 ’Tell her about it’을 비롯해, ’Uptown girl’, ’An innocent man’, ’Keeping the faith’ 등이 바톤 터치하며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다. MTV 시대를 맞이하며 비디오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그는 이를 계기로 만난 슈퍼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와 결혼에 골인했다. 1985년에 중간 결산 차원에서 피아노 맨은 히트곡 모음집 < Greatest Hits, VolumeⅠand VolumeⅡ >을 내놓으며 미국에서만 무려 2천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앨범 판매량 역대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자 미국인들이 그의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 The Bridge >를 발표하여 성공을 이어나간 빌리 조엘은 1987년, 소련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이 때의 실황을 담은 더블 앨범 < Kohuept(Live In Leningrad) >(1987)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장 결석과 법정 소송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 Storm Front >(1989)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을 선물한 작품이었다.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싱글 ’We didn’t start the fire’가 세계 역사를 훌륭히 그려냈다는 이유로 미국 전역의 고교에 악보가 배포되는 등 화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베스트 앨범에서 숫자로 드러난 미국인들의 애정이 공적으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퀸시 존스, 자니 캐쉬, 아레사 프랭클린과 함께 1990년부터 1년 간 가졌던 월드 투어로 ’Grammy Living Legend’상을 수상한 빌리 조엘은 1993년 나온 < River of Dreams >(1위)로 순항을 거듭했다. 1996년 크리스티 브링클리와 이혼한 후, 이 위대한 싱어 송라이터는 20세기 마지막 날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에서 가졌던 공연 결과물 < 2000 Years: The Millennium Concert >를 발매하며 새 출발을 암시했다. 결국 그는 또 다른 히트송 콜렉션인 < The Essential Billy Joel >(2001)로 팝 아티스트로서의 화려했던 시절을 마감했다. 그리고 같은 해, 빌리 조엘은 클래식 크로스오버 작품인 < Fantasies & Delusions >을 소개하며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야심한 행보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노래 : Modest Mouse (모디스트 마우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통한과 슬픔, 분노와 격정 그리고 발산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떠도는 영혼들에게 그녀는 구원의 손짓을 보낸다. 어둡고 습한 곳에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말고 잘못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라고. 화를 내고, 하고 싶은 소리를 외치라고. 이제 너의 주장을 펴고 권리를 찾을 때라고. 속삭이듯 한탄하듯 때론 비단처럼 윤기 나게 때론 벨벳처럼 부드럽게 노래에 실어 전언한다. 본명은 유니스 웨이몬(Eunice Waymon), 가수 니나 시몬(Nina Siomone)으로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트라이온에서 가난한 집안의 여섯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피아노신동으로 불린 그는 ‘유니스 웨이몬 기금’(Eunice Waymon Fund)을 설립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음악선생님의 도움으로 음악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었고 뉴욕 소재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가정을 지탱하기위해, 그는 피아노반주자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1954년 여름 그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아일랜드 바의 연주자로 직업을 잡았는데, 바 주인은 그에게 노래도 잘하길 요구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해왔던 유니스 웨이몬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연예사업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름을 니나(리틀 원)시몬으로 바꿨다.(1950년대 할리우드의 쟁쟁한 여배우들과 어깨를 겨룬 프랑스의 여배우 시몬 시뇨레(Simone Signoret)의 이름을 차용) 1950년대 후반, 니나 시몬은 베들레헴 레이블에서 최초의 트랙들을 녹음했다. 이 곡들에서 피아니스트, 가수, 편곡과 작곡가로서 그의 비범한 재능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Plain gold ring’, ’Don’t smoke in bed’, ’Little girl blue’와 같은 노래들은 곧 그의 상연목록에서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페라 (Porgy and Bess)의 곡 중 하나인 ‘I love you, Porgy’가 타운 홀, 카네기 홀 그리고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불리고 히트를 기록하면서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그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재즈스탠더드, 가스펠, 흑인영가, 클래식음악, 유래가 다양한 포크음악, 블루스, 팝, 뮤지컬과 오페라 송, 아프리카의 영창 게다가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까지, 이미 음악활동의 시작부터 창대했던 그는 준비된 스타였다. 기회는 당연한 만찬이었다. 클래식의 대위법, 재즈의 즉흥연주, 블루스의 변조 등 다방면의 음악요소를 결합해내는 시몬의 재능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는 발군의 실력이었다. 독자적인 타이밍, 고요함의 음악적 극대화, 몇몇 코드로만 곡을 진행시키는 피아노연주 등의 방식으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자신만의 공연분위기를 주조해내는 실력은 가히 범접을 불허할 정도로 특징적이었으며 그의 여러 작품들에 녹아들었다. 때로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것에서부터 부드럽고 달콤한 것까지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잠시의 휴지와 반복 속에 그의 목소리는 외치고 속삭이고 또 한탄했다. 가끔은 피아노, 노래 소리, 몸짓이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결정체로 모아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는 청중들에게 주문을 걸었다. 여러 가지 주문 중 하나에만 걸려도 니나 시몬이 비교불허의 아티스트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에 청중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1963년 버밍햄의 교회에서 터진 폭파사건으로 네 명의 흑인아이들이 사망하자, 니나는 미국에서 동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통함과 격노를 금치 못했고 곧 규탄의 의미를 담은 ‘Mississippi Goddam’(빌어먹을 미시시피)을 썼다. 이 노래의 강력한 호소력과 필립스 레코드에서 처음 녹음 발표한 < Nina Simone in Concert >에 실린 노래들은 그녀의 또 다른 예술적 지평을 보여주었다. 예술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만의 음색과 세심한 피아노연주에 심혈을 기울인 그는 사랑, 증오, 슬픔, 기쁨, 외로움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노래에 실어 분명하게 전해주었다. 한때 커트 웨일(Kurt Weill)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가 작곡한 노래 ‘Pirate Jenny’를 부르며 여배우로서 대극장을 순회하기도 했던 그는 프랑스에서 자끄 브렐(Jacques Brel)의 연약한 사랑노래 ’날 떠나지 말아요’(Ne me quitte pas)를 부르기로 했다. 니나는 ‘소울의 여대사제’로 불리며 팬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신비로운 인물로 존경받음과 동시에 거의 종교계인사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 1966년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네 명의 흑인여성들의 비애로 써낸 ‘네 여인들’(Four women)을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흑인들에게 모욕적이라는 이유로 필라델피아와 뉴욕 라디오방송에서 금지되었다. 여대사제는 말씀전파에 적당한 음악을 찾기 위해 다른 길을 걸어갔다. RCA레이블로 옮겨 발표한 첫 앨범 < Nina Simone Sings The Blues >에 실린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 ’Do I move you?’, ’My man’s gone now’ 그리고 랭스톤 휴스(Langston Hughes)가 그녀를 위해 써준 시를 토대로 한 저항가요 ‘Backlash blues’를 포함해 더 많은 공민권운동가요를 불러 자신의 노선을 확증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의 비극을 노래한 ‘Why?(The King of Love is Dead)’을 위시해 ’Brown baby’, ’Images’(워링 쿠니의 시에 근거한), ‘Go limp’, ’Old Jim Crow’, ’To be Young, Gifted and Black’ 등의 노래들은 미국에서 흑인국민적인 찬가가 되었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노래하고 연주한 앨범 < Nina Simone and Piano ! >(1970)로 열성적인 팬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환생, 죽음, 고독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내성적인 노래들로 채운 모음집은 그녀의 녹음경력에 변함없는 하이라이트였다. 노래들에 새롭고 더 깊은 차원의 선물을 담아냈다. ‘Ain’t got no/I got life’(뮤지컬 “헤어”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Suzanne’, ‘To love somebody’와 같은 비지스의 노래들, 봉고연주로 두 배의 속도감을 붙인 클래식 ’My way’, ‘Just like Thumb’s blues’ 그리고 네 곡의 밥 딜런의 노래들의 주목할 만한 버전들에는 더 새롭고 깊은 차원의 재능을 담아냈다. < Emergency Ward >는 절정의 선물이었다. 그녀는 조지 해리슨이 쓴 두 곡 ’My sweet lord’와 ‘Isn’t it a pity’의 긴 버전을 연주하면서 환각과 도피성을 배제한 분위기로 꾸몄다. 니나는 그러나 어쨌든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그녀는 자신이 조종당해 왔다고 느꼈고, 음반회사, 연예사업, 인종차별주의에 넌더리가 났다. 1974년 미국을 떠나 바바도스(Barbados)로 향한 그녀는 이듬해 리베리아, 스위스, 파리,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남부에 안착했다. 1978년엔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의 ‘My father’를 정확한 해석으로 다시 부른 버전과 최면술을 거는 ’Everything must change’가 실린 새 앨범 < Baltimore >을 오랜만에 내놓았다. 그리고 1982년 미국으로부터 자진 “망명”을 선언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시한 앨범 < Fodder On My Wings >을 파리에서 녹음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여느 때보다도 잘 담긴 앨범이었다. 니나는 곡을 쓰고 개작하고 편곡했다. 피아노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노래했다. 이 앨범은 1988년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추억)하는 노래 ‘Alone again naturally’의 특별버전을 포함한 몇몇 보너스트랙이 더해져 CD로 재발매 되었다. 1984년, 런던의 로니 스콧(Ronnie Scott)에서 열린 그녀의 콘서트실황을 담은 필름이 매혹적인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드럼에 폴 로빈슨(Paul Robinson)이 찬조 출연한 이 비디오에는 그녀의 첫 레코드에서 발췌한 노래 ‘My baby just cares for me’가 포함돼 큰 인기를 누렸다. 다음 해 < Nina’s Back >(니나의 귀환)이란 제목의 새 앨범을 발표한 그녀는 전 세계를 누비는 콘서트에 나섰다. 1989년 그녀는 피트 타운젠트(Pete Townsend)의 뮤지컬 < The Iron Man >에 공헌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과 1991년 브라질 팝가수 마리아 베사니아(Maria Bethania)와 아프리카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유명 여성보컬리스트 마리암 마케바(Mariam Makeba)와 함께 녹음했다. 1991년엔 또한 자서전 < I Put A Spell On You >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어 번역본으로도 출판되었다. 1993년 스튜디오에서 만든 새 앨범 < A Single Woman >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로드 맥퀸(Rod McKuen)의 노래들, 자신의 노래 ‘Marry me’, 프랑스의 스탠더드를 자기버전으로 부른 ’Il n’y a pas d’amour heureux’, 매우 감동적인 ‘Papa, can you hear me?’가 수록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영화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레퍼토리 중 5곡이 사운드트랙에 들어간 1993년 영화 (Point Of No Return, The Assassin, code name: Nina로도 불린다)를 위시해 (1996)에 사용된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 (1996)에 삽입된 ’My baby just cares for me’ 그리고 (1997)의 ‘Exactly like you’까지 그의 목소리는 영화와 함께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월은 흘러도 그녀의 음악은 변함없이 새롭고 젊은 청취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Ain’t got no/I got life’는 1988년 네덜란드에서 대형히트를 기록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절친한 반주자들, 퍼커션의 레폴도 플레밍(Lepoldo Fleming), 베이스의 토니 존스(Tony Jones), 드럼의 폴 로빈슨(Paul Robinson), 키보드의 하비에르 콜라도스(Xavier Collados) 그리고 기타리스트 겸 그녀의 음악 감독 알 섀크만(Al Schackman)과 함께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며 청중들과 함께 여전히 흥분의 순간을 맛봤다. 1997년 런던에 바비칸(Barbican) 극장에서 그는 공민권운동, 형제애를 위해 미국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리더들 중 한사람에게 헌정하는 의미의 노래 ’Every Time I Feel The Spirit’을 불렀다. ‘Reached down and got my soul’, ’The blood done changed my name’, ’When I see the blood’와 같이 더욱 영가(Spiritual)적이고 생명과 같은 노래들이 뒤를 이었다. 니나는 1997년 프랑스에서 열린 니스 재즈 페스티벌(Nice Jazz Festival), 1998년 그리스의 의 데살로니가 재즈 페스티벌(Thessalonica Jazz Festival)의 하이라이트였다. 199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기네스 블루스 페스티벌에서는 그녀의 딸 리사 첼레스테(Lisa Celeste)와 함께 몇몇 곡을 듀엣으로 합창해 모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몬은 라틴 수퍼스타 라파엘(Rafael)과 함께 노래하고 두 번의 디즈니 연극 워크숍에 참여, 의 타이틀 역과 의 날라 역을 맡아 공연하면서 세계 투어를 했다. 1998년 7월 24일, 니나 시몬은 넬슨 만델라의 80회 생일파티에 특별손님으로 초대됐다. 1999년 10월 7일 그녀는 더블린에서 개최된 음악시상식에서 평생업적을 기리는 공로상을 품에 안았다. 2000년에 들어 그녀는 5월 26일 애틀랜타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았다. 6월 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협회로부터 다이아몬드 상을 수상한데 이어 8월 7일에는 프랑스에서 명예로운 총사상을 수상했다. 닥터. 시몬은 2003년 4월 21일 프랑스 남부 까리-르-루에에 그녀의 별장에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소망대로 유해는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뿌려졌다. 매사추세츠대학으로부터 음악과 인류애에 대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바로 최후의 전승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다. 최고의 여류시인, 우리시대의 음악작가로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노래 : Christina Aguilera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국에도 최근 10대 댄스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음악계의 교사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도리어 한국 음악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있는 곡 ‘Genie in a bottle’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라는 이름의 여가수다. 올해 나이 겨우 18살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뛰어난 미모를 소유해 노래 이상으로 가수 본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티나를 출세시킨 곡 ‘Genie in a bottle’은 물론 댄스음악이다. 이러한 10대 여가수 선풍은 벌써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상반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소녀가수 얘기로 팝계가 한바탕 떠들썩했다. 크리스티나처럼 미모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7살이며 역시 댄스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크리스티나와 브리트니는 모두 올란도 지역의 TV 쇼프로 ‘미키 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다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미국 음반업계의 스타시스템이 그간의 록 그룹이나 성인 여가수 중심에서 ‘미모의 틴에이저 여가수’를 키우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근래 국내 가요계의 모습과 비슷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아무리 어린 여가수를 뽑아내 홍보와 마케팅으로 스타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본’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 기본이란 바로 가수의 필요조건인 가창력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확실히 증명한다. 얼핏 금발의 미모라서 비디오만 믿고 내보낸 것 같지만 실은 나이답지 않게 노래를 잘한다. ‘Genie in a bottle’외에 그녀의 데뷔작에 수록된 곡 ‘I turn to you’ ‘So emotional’ ‘Reflection’ 등은 기성 가수가 들어도 인정할 정도의 노래 실력이다. 우리의 어린 여가수처럼 듣기가 전혀 거북하지 않다. 특히 발라드 ‘I turn to you’는 감정처리마저 아주 능란하다. 어린 백인 여가수치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흑인 리듬 앤 블루스의 소화력이 뛰어나다. 크리스티나의 포부는 감각이나 앳된 외모를 내세운 하이틴 스타가 아니라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디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반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팝계에 어린 여가수 붐이 일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같거나 또는 앞서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노래 : Sly & The Family Stone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1944년 달라스 태생인 흑인 실베스터 스튜어트(Sylvester Stewart/별명이 슬라이 스톤)가 이끈 그룹.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하면서 히피의 개혁 사조에 공감, 사이키델릭한 소울에 정치색과 사회성이 강한 노래들을 불렀다. ‘Don’t call me nigger, Whitey(날 검둥이라고 부르지 마, 흰둥이야!)’란 제목의 노래가 말해준다. 메시지보다 더 영감을 준 것은 리더 슬라이 스톤이 펼쳐내는 변화... 1944년 달라스 태생인 흑인 실베스터 스튜어트(Sylvester Stewart/별명이 슬라이 스톤)가 이끈 그룹.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하면서 히피의 개혁 사조에 공감, 사이키델릭한 소울에 정치색과 사회성이 강한 노래들을 불렀다. ‘Don’t call me nigger, Whitey(날 검둥이라고 부르지 마, 흰둥이야!)’란 제목의 노래가 말해준다. 메시지보다 더 영감을 준 것은 리더 슬라이 스톤이 펼쳐내는 변화무쌍한 폴리리듬이었다. 때문에 펑크(funk)의 원조로 항상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함께 언급되며 나중의 디스코에도 길을 열어준 ‘리듬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재즈의 거성 마일스 데이비드(Miles David)도 펑크(funk)에 관심을 가졌을 때 이들의 음반을 열심히 들었을 정도. 흑인가수의 경우 단일 곡이 팔릴 뿐 앨범판매는 저조한 관행에도 이 그룹의 앨범은 잘 팔렸다. 1970년 히트곡 모음집은 판매고 500만장을 상회했다. 하지만 슬라이 스톤은 마약에 찌들어 1970년대 중반부터는 급격히 내리막길로 빠졌다. 천재는 기인임을 말해주는 사례. 대표곡으로는 ‘Dance to the music’, ‘Everyday people’, ‘Hot fun in the summertime’ 등이 있다.
노래 : Jennifer Lopez (제니퍼 로페즈)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업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멀티 엔터테이너의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 그래서 과감한 노출, 섹시한 외모와 함께 발표하는 음반마다 넘버원 싱글을 내놓는가 하면 찍는 영화마다 좋은 흥행 실적을 거둬온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라틴 팝의 흥겨운 리듬만큼이나 뜨겁다.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미국인인 제니퍼 로페즈는 1970년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에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보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6살 때 영화 < My little girl >에서 단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4년 후 텔레비전 시리즈인 < In living colors >의 주인공(댄서)인 ‘Fly girls’의 한 명으로 분하면서 본격적인 입지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이후 비운의 여가수 셀레나(Selena)의 생애를 담은 영화 < 셀레나(Selena) >등에서 엔터테이너로써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이후 그녀는 < 아나콘다(Anaconda) >와 < 유 턴(U-turn) > 등을 거치며 배우로써의 명함을 굳히는가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뜨거운 애정을 쏟아왔던 춤과 노래를 버릴 수 없었다. 실제로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댄서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녀는 결국 1999년 300만장의 판매고에 빛나는 데뷔작 < On The 6 >와 함께 가수로서도 매우 고무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의 남편 에미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 마크 앤소니 등 라틴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에 랭크되었고, 라틴의 흥겨움이 가득한 첫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싱글 차트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Let’s get loud’, ‘Waiting for tonight’ 등도 준(準)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은 그녀의 외모에 더욱 집중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엉덩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으며 도발적인 의상도 늘 화제 거리였다.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 ‘플레이걸’의 이미지도 굳어져갔고, 과감한 노출의 뮤직 비디오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따라서 외모가 실력보다 더 큰 인기 요인이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니퍼는 2001년 발표한 소포모어 음반 < J.Lo >로 주위의 색안경 낀 생각들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힙합 스타 자룰(Ja Rule)이 피처링한 ‘Love don’t cost a thing’(3위), ‘I’m real’(1위) 등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곡들이 담겨진 2집은 200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를 장악했다. 라틴의 느낌을 조금 가라앉히고 힙합 리듬을 배가시켜 팝 적인 접근을 꾀했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한층 발전한 그녀의 음악은 섹시함을 한껏 과시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이 선정한 2001년의 인물 중 하나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같은 해 제니퍼 로페즈 주연 영화 < 웨딩 플래너(Wedding Planner) >가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그녀는 한 해 동안 최고의 차트들을 다섯 번이나 정복하며 우먼 파워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002년 발매한 히트곡 리믹스 음반 < J To Tha Lo > 또한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새롭게 리믹스된 2집 수록곡 ‘Ain’t it funny’는 싱글로 발표되어 수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래퍼 피 디디(P. Diddy)와의 불륜, 그리고 그녀의 백댄서였던 크리스 주드(Chris Judd)와의 9개월 간의 짧은 결혼 생활 등 뭇 남성들과의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제니퍼 로페즈가 안착한 곳은 인기 절정의 배우 벤 에플렉(Ben Affleck)의 품이다. 지난 해 크리스 주드와의 이혼설을 기정사실화하고 2003년 초 벤 에플렉과 약혼식을 올린 제니퍼 로페즈는 새 음반 < This Is Me... Then >에서 더욱 힙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잘 나가는 래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피처링이 돋보이는 음반의 첫 싱글 ‘All I have’는 이미 빌보드 정상을 정복, 고수하고 있으며 판매량도 매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아직 가수의 길을 그리 오래 밟지 않은 그녀이지만 음반을 낼 때마다 수그러들지 않는 인기와 음악적 발전은 배우로서의 활동과는 별개로 음악인으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때로는 수많은 스캔들, 가십 거리를 양산해 내고는 있지만 배우와 가수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하고 있는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그칠 줄 모른다.
노래 : Fifth Harmony (피프스 하모니)
멤버 : Ally Brooke Hernandez, Camila Cabello, Normani Kordei, Dinah Jane Hansen, Lauren Jauregui 멤버 : Ally Brooke Hernandez, Camila Cabello, Normani Kordei, Dinah Jane Hansen, Lauren Jauregui
노래 : Leon Bridges (리온 브릿지스)
노래 : Fleur East (플레르 이스트)
노래 : Kesha (케샤, Kesha Rose Sebert)
로스 앤젤리스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태어난 케샤는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어머니 피비 세버트(Pebe Serbert) 아래에서 오빠와 함께 성장했다. 돌리 파튼(Dolly Parton)도 불렀던 ‘Old Flames Can't Hold A Candle To You’가 바로 피비 세버트의 곡이었다. 이 집안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심지어는 복지시설의 원조까지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가족이 테네시로 옮긴... 로스 앤젤리스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태어난 케샤는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어머니 피비 세버트(Pebe Serbert) 아래에서 오빠와 함께 성장했다. 돌리 파튼(Dolly Parton)도 불렀던 ‘Old Flames Can't Hold A Candle To You’가 바로 피비 세버트의 곡이었다. 이 집안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심지어는 복지시설의 원조까지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가족이 테네시로 옮긴 이후에는 어머니가 두 아이들을 스튜디오로 곧잘 데려갔다. 케샤가 곡을 쓰고 노래하는데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서포팅하려 했다. 그녀의 집은 패리스 힐튼(Paris Hilton)과 니콜 리치(Nicole Richie)의 리얼 버라이어티 [심플 라이프(Simple Life)]의 한 에피소드에도 등장했다. 후에는 패리스 힐튼의 앨범 두 번째 싱글의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기도 한다. 12세 무렵 케샤는 오빠의 레코드를 훔쳐서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자신이 듣던 [Now 23] 컴필레이션은 오빠한테 훔쳐 들었던 푸가지(Fugazi),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파티 할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비스티 보이즈의 노래 ‘Fight For Your Right’의 가사를 인용한 코멘트이기도 하다. 벡(Beck)과 퀸(Queen), 그리고 랩 뮤직과 올드 스쿨 펑크에 영향을 받았단다. 밥 딜런(Bob Dylan)의 [Nashville Skyline] 앨범이 자신의 올타임 페이버릿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의상의 경우 키스 리차즈(Keith Richards)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게 복합적인 영향은 그녀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갔다.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학교를 자퇴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케이티 페리(Katy Perry),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그리고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등의 셀 수도 없는 넘버원 히트를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송 라이터들인 닥터 루크(Dr. Luke)와 맥스 마틴(Max Martin)을 따라다녔는데 그녀의 음악에 큰 감명을 받은 닥터 루크는 맥스 마틴과 함께 LA와 뉴욕을 오가며 음악작업을 시작한다. 닥터 루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LA에 있을 당시 케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적은 돈으로 '생존'해야만 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는 [Degrassi: The Next Generation]나 [힐스(Hills)]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일류 송 라이터인 토비 게드(Toby Gad)와 함께 베로니카스(The Veronicas)의 싱글 ‘This Love’를 작업하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 ‘Lace and Leather’에서는 백 보컬을 하기도 했고 케이티 페리의 히트 넘버 ‘I Kissed a Girl’의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했다.

2009년이 지난 이후에야 케샤의 이름이 비교적 수면 위에 떠오른다. 닥터 루크(Dr. Luke)와 스튜디오에 있을 무렵, 플로 라이다(Flo Rida)가 작업 중이던 자신의 곡을 함께 들으면서 "이 부분에는 죽이는 여자애가 훅을 불러줬음 좋겠는데," 라며 의견을 제시하자마자 케샤가 투입됐다고 한다. 플로 라이다(Flo Rida)의 넘버원 히트싱글 ‘Right Round’는 국내에서도 꽤 시끄러운 곡이었다. 단순히 여기저기서 많이 흘러나왔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니라 한국의 DJ 샤인(DJ Shine)이 번안해 부르기도 했으며, 몇몇 DC 갤러리에서는 플로 라이다가 샘플링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의 원곡이 게이 엔썸 류의 것으로 분류 되면서 개그의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한창 시끄러웠던 G 드래곤의 표절 문제로 플로 라이다의 곡은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비공식적으로는 플로 라이다의 곡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줄 것을 요청했었다는 데 그러면서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런 식으로 처음 알려질 경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데 애로사항이 꽃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플로 라이다의 곡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돈은 일절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명문 레이블 RCA/자이브(Jive)와 계약한다. 재기 발랄한 듀오 3OH!3의 콘서트에서 데뷔 퍼포먼스를 갖고 이후에는 무려 롤라팔루자(Lollapalooza)에서 공식적인 솔로 데뷔 공연을 펼친다. 케샤의 데뷔 싱글 ‘Tik Tok’은 디지털로 8월 7일에 미국에서 우선 릴리즈 됐다. 그 무렵 꾸준히 다른 작업들을 이어갔는데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EP [The Time of Our Lives]와 핏불(Pitbull), 그리고 타이오 크루즈(Taio Cruz) 등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그리고 미키 아발론(Mickey Avalon)과 투어를 다니면서 서서히 스테이지의 감을 익혔다. 그녀의 성격에 걸맞게 2010년도에는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출연하기로 예약되어 있단다.

그야말로 신데렐라같은 등장이었다. 온갖 어려운 역경을 다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설 채비를 하고있는 중이다. 마이스페이스(Myspace)의 페이지 뷰는 어느덧 천2백만 회를 돌파했다. MTV에서는 11월의 아티스트로 결정한 바 있기도 한데 MTV Push 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로 그녀의 곡들이 일정시간 동안 방송됐으며 영국 MTV에서는 다섯 곡의 라이브 세션을 펼치기도 했다. 21-7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 왜 이름 중간에 달러표시($)를 해 놓았냐는 질문에 케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그녀의 재정상태가 한동안 바닥이었는데 적어도 이름 중간에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골짜였다. 하지만 역으로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종이가 세상을 움직이는 게 좀 웃긴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한상철(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
노래 : Shakira (샤키라,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그리고 무엇보다 노장 산타나(Santana) 등의 연이은 선전에도 불구, 라틴 팝의 황제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추락은 실로 충격이었다. 본토 팝 시장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신흥 메카로 자리잡았던 라틴 열풍이 점차 그 위용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그리고 무엇보다 노장 산타나(Santana) 등의 연이은 선전에도 불구, 라틴 팝의 황제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추락은 실로 충격이었다. 본토 팝 시장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신흥 메카로 자리잡았던 라틴 열풍이 점차 그 위용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관측이 빗발쳤다. 확실히 그 즈음의 라틴 뮤직은 ‘젊고 신선한 피’의 수혈이 시급했다. 때에 맞춰 무대에 입성한 샤키라(Shakira)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섹시한 자태와 화끈한 춤 실력, 거기에 수준 이상의 음악성 까지. 제1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성 팝 보컬’과 ‘최우수 여성 록 보컬’ 부문을 수상, 미리 검증 절차를 끝마친 점도 그의 미국 정복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뉴 라틴 팝 헤로인으로 단숨에 떠오른 샤키라의 본명은 샤키라 이사벨 메바랙 리폴(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1977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콜롬비아 토박이인 어머니와 레바논 이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두 문화권의 음악을 모두 섭렵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시에 영미 헤비메탈에도 심취, 자신만의 사운드 메커니즘 설계도를 그려나갔다. 8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그는 5년 뒤인 1991년에 데뷔작 < Magia >(Magic)로 음악 인생의 출항 경적을 울렸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상당한 성숙미를 내뿜은 점이 호평을 이끌어내며 샤키라는 모국에서 서서히 명성의 탑을 쌓아나갔다. 그는 1993년의 소포모어 음반 < Peligro >(Danger)에서 팝에 경도된 소리샘을 구현하며 본격적인 야심을 드러냈다. 허나 별다른 피드백을 얻지 못한데 좌절, TV 드라마에 얼굴품을 팔며 재기전 준비에 들어갔다. 절치부심 끝에 1995년 선보였던 3집 < Pies Descalzos >(Bare Feet)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브라질,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결국 미국에서도 100만장 이상을 세일즈 했던 것. 무엇보다 록의 에센스를 포섭한 것이 성공의 주동인(動因)이었다. 1997년 리믹스 앨범인 < The Remixes >의 발표 즈음에 그는 글로리아 에스테판(Gloir Estefan)의 남편이자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에밀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과 매니저 계약을 체결, 월드 스타가 되기 위한 시금석을 마련했다. 이후 등장한 작품이 바로 1998년의 < Donde Estan Los Ladrones? >(Where Are The Thieves?). 에밀리오 에스테판과 공동 프로듀스를 담당한 음반은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 1위를 무려 11주간 수성하며 샤키라 시대의 개막 축포를 터뜨렸다. 싱글 ‘Ciega, Sordomuda’, ‘Tu’ 등은 라틴 싱글 차트 정상을 꿰찼고 ‘Ojos As?’도 팬들의 폭 넓은 지지를 획득했다. 모두 라틴과 록, 중동풍 사운드의 트로이카적 조화를 일궈낸 덕분이었다. 이후 < MTV Unplugged >(2000)로 앞서 설명한 라틴 그래미 2개 부문과 그래미 라틴 팝 앨범 트로피를 차지한 그는 2001년의 < Laundry Service >로 그간 소망하던 모든 꿈을 이뤄냈다. 무엇보다 미국 마케팅을 겨냥해 대부분의 곡을 영어로 써낸 점이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 3위, 트리플 플래티넘, ‘Whenever, Wherever’(6위) ‘Underneath Your Clothes’(9위) 등의 탑 텐 히트 송이 이를 잘 대변해주었다.
멤버 : Perrie Edwards, Jesy Nelson, Leigh-Anne Pinnock, Jade Thirlwall 멤버 : Perrie Edwards, Jesy Nelson, Leigh-Anne Pinnock, Jade Thirlwall
가수이자 배우로 [Ora] [R.I.P.] [Poison] [Body On Me]등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사우스포><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가지 그림자: 심연><50가지 그림자: 해방> 등에 출연하였다. 가수이자 배우로 [Ora] [R.I.P.] [Poison] [Body On Me]등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사우스포><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가지 그림자: 심연><50가지 그림자: 해방> 등에 출연하였다.
노래 : St. Lucia (세인트 루시아)
조지 마이클이라는 걸출한 팝 스타를 배출한 팝 듀오 왬(Wham!)은 80년대 팝 역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중요한 그룹이다. 소울 음악과 결합된 즐겁고 흥겨운 팝 댄스를 들려줬던 이들은 80년대 특유의 ‘가벼움’을 관통함으로써 80년대 팝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이들은 사실상 90년대에 들어 맹위를 떨친 보이밴드의 효시였다. 잘 생긴 외모와 수준급 가창력, 거기... 조지 마이클이라는 걸출한 팝 스타를 배출한 팝 듀오 왬(Wham!)은 80년대 팝 역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중요한 그룹이다. 소울 음악과 결합된 즐겁고 흥겨운 팝 댄스를 들려줬던 이들은 80년대 특유의 ‘가벼움’을 관통함으로써 80년대 팝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이들은 사실상 90년대에 들어 맹위를 떨친 보이밴드의 효시였다. 잘 생긴 외모와 수준급 가창력, 거기에 경쾌한 댄스 팝과 매혹적인 발라드 등 현 보이밴드의 전형이랄 수 있는 특질을 이미 80년대 초반에 확립해, 전부 보여줬기 때문이다. 1981년, 왬은 ‘나이트클럽 광’이었던 조지 마이클과 그의 친구 앤드류 리즐리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마이클이 작곡과 작사, 보컬, 제작 등 음악에 관한 한 모든 걸 담당했고, 앤드류 리즐리는 그룹의 스타일과 이미지, 비주얼 등 외적인 측면에만 힘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팀 해산할 때까지 자주 앤드류 리즐리의 역할 부재론이 거론되기도 했다(그렇지만 그룹의 방향성은 앤드류 리즐리가 결정했던 만큼 역할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꽝!’이란 의미의 그룹이름과 이미지는 앤디 워홀과 더불어 팝 아트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주로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매스미디어를 묘사한 바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서 따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이 둘은 1979년, 이그제큐티브(Executive)라는 스카 밴드활동을 하면서 음악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밴드가 해산되고 향후 약 2년간 작곡과 홈메이킹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는 등 수련과정에 들어간다. 당시 작곡한 곡 중에는 나중 메가히트를 기록하는 ‘Careless whisper’와 ‘Club tropicana’가 있었다. 몇 번의 오디션 끝에 1982년, 댄스 레이블 < 이너비전 >(Innervision)과 계약을 체결한 왬은 데뷔싱글 ‘Wham rap!’을 발표했지만 영국차트 100위권에도 못 오르는 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 내놓은 두 번째 싱글 ‘Young guns(go for it)’은 BBC 방송국의 프로그램 < 탑 오브 더 팝스 >(TOTP)에서의 인상적인 댄스 공연으로 차트 3위로 도약했다. 1983년 6월 9일, 팝 댄스로 가득 찬 이들의 데뷔앨범 < Fantastic >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곧장 영국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편 조지 마이클은 이미 이때부터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같은 해 8월 그는 미국의 머슬 쇼울스(Muscle Shoals) 스튜디오에서 전설적인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와 함께 ‘Careless whisper’를 녹음했다(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고 나중에 런던에서 재녹음되어 나중에 출시된다). 1984년부터 왬의 센세이션이 일어났고, 동시에 그들의 히트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침대 맡에 적어놓았던 앤드류 리즐리의 노트에서 영감을 얻어 조지 마이클이 만든 ‘Wake me up before you go go’는 영국차트는 물론 미국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수년간 공력을 들인 발라드 ‘Careless whisper’도 3주간 영국차트 넘버원을 지켰다. 이듬해에는 미국차트에서도 역시 3주간 1위를 기록했다. 조지 마이클이 자신의 부모님께 바친 이 싱글의 미국판 크레딧에는 ‘조지 마이클이 피처링한 왬의 곡’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앤드류 리즐리가 두 번째 앨범을 구상하는 동안, 조지 마이클은 다른 음악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했고, 엘튼 존과의 파트너십도 쌓기 시작했다. 12월에는 밴드 에이드의 난민 구호곡 ‘Do they know it''s christmas time?’ 녹음에도 참여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곡 때문에 그들의 크리스마스송 ‘Last christmas’가 차트 2위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이듬해인 1985년 3월에는 서포모어 앨범 < Make It Big >이 출시되었고, 그 앨범은 제목대로 미국에서만 5백만 장이 팔리는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해 4월 왬은 서구 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은 1만여명이 운집한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공연함으로써 ‘중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방 그룹’으로 기록되었다. 계속해서 조지 마이클은 라이브 에이드 행사에서 엘튼 존과 듀엣으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렀고, 또 엘튼 존의 싱글 ‘Nikita’에서 백업보컬을 담당하는 등 확실하게 솔로활동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결국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여전히 친한 사이였지만 서로를 위해 1986년 왬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1986년 4월 발매된 조지 마이클의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는 공식적으로 밴드의 종말을 알리는 곡이었다. 같은 해 6월 윔블던 스타디움에 모인 7만2천명의 관객 앞에서 행한 마지막 콘서트 ‘The Final’을 끝으로 왬은 해산되었다. 왬 이후 조지 마이클은 < Faith >를 시작으로 솔로가수로서 놀랄만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앤드류 리즐리는 < Son Of Albert >를 발표했지만 ‘Shake’라는 희미한 히트곡만 남겼을 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왬의 음악을 담당했던 조지 마이클이 성공을 거두고, 음악적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못했던 앤드류 리즐리가 실패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만 추억 속에 남아있던 앤드류 리즐리의 아름다운 매력이 솔로활동의 참담한 실패로 그나마 퇴색해버린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어쨌거나 왬은 80년대를 살아왔던 음악팬들에게는 아련한 기억으로, 또 아쉬움으로 존재하는 그런 그룹이다.
노래 : Kygo (카이고 (DJ, 음악 프로듀서),Kyrre Gørvell-Dahll )
노르웨이 출신의 DJ, 음악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2013년 리믹스한 Ed Sheeran의 "I See Fire"가 큰 인기를 끌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노르웨이 출신의 DJ, 음악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2013년 리믹스한 Ed Sheeran의 "I See Fire"가 큰 인기를 끌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청아한 음색과 미인은 아니지만 이지적이고 고결한 모습으로 다른 가수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둔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는 영화 < 사관과 신사 >와 < 더티 댄싱 >의 주제곡 'Up where we belong'과 '(I've had) The time of my life'로 1980년대에 알려졌지만 음악을 꼼꼼히 찾아 듣는 사람들에겐 그 이전인 1977년에 전미 차트 6위를 차지한 'Rig... 청아한 음색과 미인은 아니지만 이지적이고 고결한 모습으로 다른 가수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둔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는 영화 < 사관과 신사 >와 < 더티 댄싱 >의 주제곡 'Up where we belong'과 '(I've had) The time of my life'로 1980년대에 알려졌지만 음악을 꼼꼼히 찾아 듣는 사람들에겐 그 이전인 1977년에 전미 차트 6위를 차지한 'Right time of the night'로 이미 익숙해진 여가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곡 외에도 1987년에 공개한 'Famous Blue Raincoat'로 다운타운을 점령하며 국내 팬들과의 착상에 다시 한번 성공하기도 했다. 1947년 3월 3일, 시애틀에서 태어난 제니퍼 원스는 갓 20살이던 1967년에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해 이듬해에 뮤지컬 < 헤어 >에 주연 급으로 출연하면서 가수로서의 워밍업을 시작했다. 뮤지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정치, 사회적으로 어수선하던 1968년에 차분한 포크 성향의 데뷔앨범 < I Can Remember Everything >으로 가멸찬 스타트를 했지만 블루스 리바이벌과 사이키델릭이 대세이던 당시의 음악 시장에 삼투하지 못했다. 1969년에는 더 후(The Who)의 노래 제목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앨범 < See Me, Feel Me, Touch Me, Heal Me >로 기백 있는 두 번째 도전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철저히 가려졌다. 좌절한 제니퍼 원스는 3년 동안 신작을 발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한 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멤버였던 존 케일(John Cale)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3집 < Jennifer >를 발표했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자 개인적인 좌절을 마음에 안고 캐나다 출신의 거물 싱어 송라이터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백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제니퍼 원스는 레너드 코헨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공감하고, 느끼게 된다. 결국 레너드 코헨은 제니퍼 원스의 '멘토'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제니퍼는 레너드 코헨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1987년에 그의 노래들로만 채워진 명반 < Famous Blue Raincoat >를 내놓아 흠모의 정을 표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는 72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국내에서 이 타이틀곡만큼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확실히 장악했고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신청이 끊이지 않는 그의 시그니처 송이 되었다. 제니퍼 원스가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77년에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세운 4집에서 컨트리 풍의 'Right time of the night'이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 오르면서부터. 후속 곡 으로 낙점된 발라드 'I'm dreaming'이 50위에 랭크되는 성적을 거둔 그는 1979년에 다섯 번째 음반 < Shot Through The Heart >을 발표해 컨트리 팝 스타일의 'I know a heartache when I see one'이 19위를 차지하며 '원히트원더 가수'라는 꼬리표를 뗐다. 그로부터 8년 동안 제니퍼 원스는 정규앨범 제작에 착수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는 아이러니를 맞이했다. 제니퍼 원스는 1982년에 리차드 기어와 데보라 윙어가 주연한 영화 < 사관과 신산 >의 주제곡 'Up where we belong'을 허스키 보이스로 유명한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 조 카커(Joe Cocker)와 듀엣으로 불러 그해 가장 큰 히트 곡이 되었다. 이 곡은 3주 동안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그래미 최우수 듀엣 부문과 아카데미에서 주제가 부문도 수상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제 제니퍼 원스는 더 이상 '레너드 코헨'의 백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당대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그 위치가 격상됐다. 하지만 이 노래의 스매시 히트는 그를 옭아맸다. 1983년에는 당시 신인이었던 탐 크루즈가 주연한 미식축구 영화 < All The Rights Moves/뜨거운 가슴으로 내일을 >의 동명 주제곡을 크리스 톰슨(Chris Thompson)과 함께 부르며 'Up where we belong'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랐으나 영화와 주제곡 모두 참패하자 제니퍼 원스는 다시 자신 속으로 움츠려 들었다. 4년 후인 1987년, 이 지적인 여가수는 다시 남성 가수와 함께 영화 주제곡을 취입했다. 바로 'Unchained melody'로 유명한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멤버였던 빌 메들리(Bill Medley)와 함께 그 유명한 댄스 무비 < 더티 댄싱 >의 주제가 '(I've had) The time of my life'를 부른 것. 이 곡으로 제니퍼 원스는 'Up where we belong'으로 달성한 그랜드슬램(싱글차트 1위, 그래미 수상, 아카데미 주제가 부문 수상)을 재현하며 다시 한번 영화 주제가 여왕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1992년에 발표한 일곱 번째 앨범 < The Hunter >와 2001년에 공개한 8집 < The Well >은 빌보드 앨범차트 200위에 랭크되지도 못한 채 대중들과의 접점 찾기에 실패했지만 < The Well >에 수록된 빌리 조엘(Billy Joel)의 원곡을 재해석한 'And so it goes'는 국내에서 은은한 사랑을 받았다.
DJ DJ
노래 : Pink (핑크,Alicia Beth Moore)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라페이스 >가 선택한 가수답게 핑크는 충분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진 가수다. 197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핑크는 음악가정에서 성장했다. 밥 딜런과 돈 맥클린의 노래를 기타로 즐겨 치곤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러 클럽을 순회하며 댄스와 힙합에 젖어들었으며, 14살 때에는 처음으로 노래를 작곡했다. 얼마후 이를 눈여겨본 음반사 관계자에 의해 오디션을 보게 되지만 탈락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핑크는 초이스(Choice)라는 여성 3인조 그룹을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 라페이스 >에 보냈다. 다행히도 그 테이프가 통과되어 핑크는 당당 < 라페이스 > 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얼마 후 초이스는 해체되고 핑크는 솔로로 독립했다. 그 첫 행보가 2000년 출시된 데뷔앨범 < Can’t Take Me Home >이다. ‘마이다스의 손’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 그리고 대릴 시몬의 손길이 닿은 이 앨범은 새로운 여성 R&B 스타를 탄생시켰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요즘의 프로듀서진들이 얼마만큼 뛰어난 지 느낄 수 있다. 꽉 찬 사운드에 탄탄한 곡 구성력은 감탄할 정도다. 가히 ‘프로듀서들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프로듀서들은 핑크의 매력적이고 원기 충만한 보컬을 충분히 부각시켰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의 곡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색. 데뷔 싱글 ‘There you go’은 TLC의 ‘No scrub’을 만들어 크게 히트시켰던 섹스피어(She’kspeare)가 작곡한 곡이다. 펑키함이 꿈틀거리는 이 곡은 톱10 히트를 기록했다. 닐 크리크의 곡을 샘플링한 발라드 곡 ‘Let me let you know’에서 핑크의 보컬은 머라이어 캐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내 모 틴 여가수가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기도 한 ‘Most girls’ ‘Just to be loving you’ 같은 곡에서의 검은 정글 리듬은 근래 틴 팝의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체적으로 TLC의 영향이 감지되는 가운데 틴 팝과 머라이어 캐리 풍의 발라드도 함께 구사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재능을 지녔지만 1집만 가지고 본다면 이 앨범의 영광은 프로듀서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2001년 6월에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야, 릴 킴과 함께 영화 < 물랑 루즈 >의 삽입곡 ‘Lady Marmalade’를 불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노래 : The Script (더 스크립트)
노래 :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시 프린스)
힙합 듀오 힙합 듀오
R&B, 소울 가수 R&B, 소울 가수
노래 : Avril Lavigne (에이브릴 라빈)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에 들어앉아 아버지에게 빌린 기타로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의 ’Fly Away’등을 카피하며 반항적인 로커를 동경했다. 이 예비 슈퍼 스타는 자신이 출연했던 지방 행사에 휴가 차 들린 [아리스타 레코드(Arista Records)] 경영자 겸 저명한 프로듀서 안토니오 LA 리드(Antonio ‘L.A.’ Reid)의 러브 콜을 받아 L.A.로 음악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이후 작곡가인 클리프 매그니스(Clif Magness)와 심혈을 기울여 곡 작업에 들어가는 등, 데뷔 앨범의 준비에 만반을 기울였다. 첫 싱글 ‘Complicated’가 그 시작이었다. [MTV]의 간판 프로그램 [TRL]에서 인기를 모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곡은 톱 40 라디오에서도 1위에 등극하며 걸 록 전성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어 발표한 공식 1집 [Let Go]는 빌보드 앨범 차트(2위)를 비롯한 각국 차트의 정상권에서 마음껏 뛰놀며 차세대 록 주자의 탄생을 신고했다. 미국 내에서만 600만장이라는 매머드 석세스를 쾌척했으며 후속 싱글 ‘Sk8er Boy’도 톱 텐에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팬들이 < 롤링 스톤 >에서 실시한 ‘당신의 아메리칸 아이들은 누가 될 것인가’라는 투표에서 그녀를 1순위로 꼽으며 대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오랜 기간의 꿈이 이루어진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에이브릴 라빈은 3000천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한 한국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끝마치는 등, 현재의 범세계적인 센세이션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곳곳에서 증명해나갔다. 이러한 국제적인 호응은 곧 최고의 음악 잔치인 < 그래미 시상식 >으로 이어졌다. 모두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에이브릴 라빈은 멋진 라이브 공연권도 손에 쥐며 수상에의 기대를 부풀렸다.(그래미에서는 그 동안 공연을 치른 뮤지션들이 트로피를 많이 가져갔다.) 그러나 9.11의 여파로 뉴욕풍 재즈를 시범한 노라 존스(Norah Jones)에게 상이 몰리며 에이브릴 라빈은 빈손으로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미국인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그녀의 음악이 너무 거칠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국인 캐나다에서는 달랐다.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 주노 어워드 >는 에이브릴 라빈에게 최우수 앨범과 최우수 팝 앨범 등, 모두 4개의 트로피를 안겨주며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 로커에게 따뜻한 환대식을 치러주었다. 이 때부터 상복이 줄줄이 터져 [머치 뮤직 시상식]에서는 2관왕을, 2002년 [MTV VMA]에서는 신인상을, [MTV Latin America VMA]에서는 최우수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상을 싹쓸이했다. [Nickelodeon Kids Choice Award]의 최고 인기곡상과 [Teen Choice Music Award]의 최우수 싱글상도 그녀의 몫이었다. 둘 모두 ‘Sk8ter boy’의 선전 덕분이었다. 3번째 싱글 ‘I’m With You’가 발매되자 한번 붙은 인기의 화염은 더욱 높이 치솟아 올랐다. 팝 싱글 차트에서 4위에 오른 이 매력적인 발라드 트랙은 어덜트 팝 차트에서도 4위를 꿰차며 팬 베이스의 연령층을 높이는데 견인차의 역할을 해주었다. 화끈한 록 넘버 ‘Losing Grip’을 차트 중위권에 올려놓는 것으로 에이브릴 라빈은 공식적인 1집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세계의 석학들이 모인 MIT 공과 대학,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 중 하나, 자신이 손수 제작한 기타와 이펙터,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팀워크에 의한 깨끗한 사운드. 바로 이런 것들이 1970년대 중반 미국 록음악 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한 보스톤(Boston)을 가장 짧게,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구들이다. 1976년에 데뷔 음반을 발표해 록음악 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보스톤은 포리너(... 세계의 석학들이 모인 MIT 공과 대학,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 중 하나, 자신이 손수 제작한 기타와 이펙터,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팀워크에 의한 깨끗한 사운드. 바로 이런 것들이 1970년대 중반 미국 록음악 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한 보스톤(Boston)을 가장 짧게,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구들이다. 1976년에 데뷔 음반을 발표해 록음악 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보스톤은 포리너(Foreigner), 저니(Journey), 후반기의 스틱스(Styx) 등과 함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화려하게 수놓은 성인 취향의 하드록이 메인스트림에 정착하는데 선두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그룹 보스톤의 중심 인물은 기타리스트 톰 슐츠(Tom Scholz)다. 메사츄세츠 공과 대학(MIT)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은 그는 자신의 박식한 전자 지식을 기타와 사운드 이펙터의 개념에 이식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일렉트릭 사운드를 구현했다. 보스톤의 깔끔하고 빈틈없는 연주는 완벽 주의자인 톰 슐츠의 기타 사운드가 정의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70년대 초반 이 엘리트 청년은 지방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배리 구드루(Barry Goudreau)와 고음의 소화력이 출중한 브래드 델프(Brad Delp/보컬), 프랜 쉬한(Fran Ssheehan/베이스), 시브 하시한(Sib Hashihan/드럼)을 만나면서 보스톤의 지형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1975년에 데모 테이프를 제작해 에픽 레코드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이듬해에 공개된 처녀작이 록의 고전으로 추앙 받는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 Boston >이다. 기세 등등한 디스코와 펑크록의 물결 속에서 정통 록의 자존심을 지킨 이 LP에서 첫 싱글로 커트된 ’More than a feeling(5위)’을 필두로 ’Foreplay/Long time(22위)’, ’Peace of mind(38위)’가 차례로 싱글 차트를 방문해 록의 건재함을 증명해 보였다. 특히 1997년에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 밴드 엔 싱크(N’ Sync)가 발표한 아시아판 데뷔 앨범에서 ‘More than a feeling’을 리메이크해 실었으며, 1998년에도 라틴계 남성 3인조 댄스 보컬 그룹 노 머시(No Mercy)가 다시 한번 재해석함으로써 록과 팝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1978년에 발표된 두 번째 작품 < Don’t look back >도 록팬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들의 음악 중에서 가장 멋진 기타 리프를 선보인 앨범 타이틀 트랙 ’Don’t look back(4위)’을 비롯해 ’A man I’ll never be(31위)’와 ’Feelin’ satisfied(46위)’가 그 견인차 역할을 했다. 1집에 이어 이 음반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름으로써 그동안 영국 세에 밀린 아메리칸 하드록의 자존심을 회복하는데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록밴드가 그러하듯 그들도 음반사와의 함수 관계는 좋지 못했다. 레코드사와의 의견 충돌 때문에 보스톤의 차기작 < Third Stage >는 < Don’t Look Back >이 탄생 한지 8년이 지난 1986년에 발표되었다. 국내에서 보스톤의 이름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록발라드 ’Amanda’는 그들에게 유일한 넘버원의 영광을 부여한 곡이며 ’We’re ready(9위)’와 ’Can’tcha say (You believe in me)/Still in love(20위)’도 히트 차트를 누볐다. 하지만 8년이란 긴 세월은 보컬리스트인 브래드 델프와 팀의 리더 톰 슐츠만을 원년 멤버로 남겨 두고 나머지 구성원들을 보스톤으로부터 떠나게 했다. 처녀작 공개 이후 정확히 10년이 흘러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해 제작한 음반 < Third Stage >는 이전의 음반들에 비해 확실히 연륜있는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 반면 전작들에 비해 스트레이트한 질주감이 반감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로부터 다시 한번 8년이란 세월을 감내 한 보스톤은 1994년에 네 번째 앨범 < Walk On >을 내놓았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브래드 델프 대신 새로운 목소리 프랜 코스모(Fran Cosmo)를 영입해 발표한 보스톤의 4집에서는 ’I need your love’만이 고독하게 51위에 올랐다. 거칠면 거친대로, 있는 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을 미덕으로 하는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그런지 시대에 깔끔하고 깨끗한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보스톤의 프로페셔날한 사운드 사이에는 분명한 갭이 존재했었다. 현재는 새로운 음반 제작보다는 공연 위주의 활동을 통해 팬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발명한 기타와 이펙터를 통해 능숙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 한지 25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단 4장의 정규 앨범을 공개한 아메리칸 하드록의 지존 보스톤은 레코드사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음반을 제작했다. 그 원초적인 힘은 음악적인 믿음을 고집하는 리더 톰 슐츠의 장인 정신에서 기인한다.
노래 :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팝 보컬))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잡아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틴에이저 가수가 출현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언론이 예외적으로 그녀를 다루는데 골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리지만 어른 특히 성인남자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성들한테 브리트니는 결코 소녀로 비치지 않는다. 옷을 하나 입어도 섹시하게 치장하고, 춤을 춰도 어른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가 내뿜는 강한 섹슈얼 파워에 어른들도 매혹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어린 섹스심벌’이다. 솔직히 그녀가 대단한 미모이거나 다리가 길다거나 하는 탁월한 신체조건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보통의 외모에 섹슈얼리티를 갖춘 것이 도리어 또래들에게는 자신감, 어른들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탓에 그녀는 ‘롤링스톤’과 같은 록 전문지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한다. 최신호 커버에 등장한 그녀가 던지는 인상은 ‘착해 보이면서도 섹시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악도 외모를 닮아있다. 달콤한 멜로디를 지닌 댄스곡들이지만 아주 힘차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있는 신곡 ‘Oops! ... I did it again''부터가 강렬한 비트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다른 댄스 팝 여가수들과 여기서 차별화된다. 실제의 그녀 또한 마돈나처럼 스스로 캐리어를 개척하는 독립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보에서 그녀는 대담하게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Satisfaction''를 부르고 있다. 레코드회사나 주변인들이 ‘해봤자 욕먹는다’며 말렸는데도 끝내 고집을 부려 새 앨범에 이 곡을 수록했다. 브리트니는 “강한 느낌의 곡을 만들어낼 테니 두고 보라”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브리트니가 록계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이처럼 음악계 어른들의 말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당돌한 자세 때문이다. 관심사는 신보가 과연 얼마나 팔려나가는데 있다. 전작의 판매고를 따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곡은 벌써 라디오 최다 신청곡 기록을 깼다. 현재 미국 라디오 전파는 브리트니의 노래로 완전히 장악되었다는 소식이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저기서 신보의 대박 조짐이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소지가 충분하다. 음반업계는 그녀만은 소포모어 징크스 즉 2집 앨범 징크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2000년 팝계가 다시 그녀의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기록]
-여섯 장의 정규 앨범으로 통산 8천 6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대한민국 통산 판매량 100만 장 돌파
-3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 5곡의 영국차트 1위곡 보유
-새싱글 ‘3’ 빌보드 싱글차트 1위로 핫샷데뷔 * 非아메리칸 아이돌 싱글로는 21세기 유일
-그래미상, 빌보드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등 주요 시상식 수상
-2003 포브스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가수로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
-야후! 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유명인사 7년간 1위
-2000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
-200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가수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10대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대 아티스트의 앨범 "...Baby One More Time"
-기네스 선정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인물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영국차트 1위를 기록한 여성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5장의 빌보드 넘버원 앨범을 보유한 아티스트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에 입성한 셀러브리티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여성 가수
-그녀의 저서 “Heart To Heart” - 뉴욕 타임즈 주간 및 베스트 셀러 선정
-역대 투어 티켓 수입 5억달러, 머천다이즈 수입 2억달러 이상 (역대 최고 기록)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셀러브리티 향수 “Curious” - 6억 달러 이상의 수익
-2004년 가장 많이 판매된 향수 “Curious” - 출시 5주만에 1억달러 수익 돌파
-브리트니의 향수 통산 수익 20억 달러 돌파 * 향수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드린 셀러브리티
-동명의 앨범/싱글을 같은 주에 빌보드 앨범/싱글차트 1위에 올린 최초의 아티스트
-영국에서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 "...Baby One More Time"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곡 “Oops!...I Did It Again”
-데뷔 앨범부터 두 장의 음반이 연속으로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인증 (1,000만장 이상 판매)
-2000년 이후 메인스트림 팝 라디오차트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아티스트: 22곡의 싱글
-역사상 많은 'Teen Choice Awards' 를 수상한 스타: 통산 16개
-여섯 장의 음반이 모두 빌보드 앨범차트 1위, 혹은 2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가수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순위에 올린 아티스트 (18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1위에 올린 아티스트 (15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명예 은퇴 시킨 아티스트 (13곡)
-영국 역사상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My Prerogative”
-월드 차트에서 가장 많은 1위 곡을 보유한 여가수 2위 (1위: 마돈나)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여성 가수의 앨범 "Oops!...I Did It Again" - 131만장
-미국에서 50만 장 이상의 오프닝 세일즈를 기록한 음반을 네 장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여가수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 8위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여성 가수의 싱글 "Womanizer" ? 28만 6천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 상승으로 1위를 기록한 곡 "Womanizer" - 96위 → 1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 선정 지난 25년간 가장 위대한 팝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된 ‘Britney’
-가장 많은 트위터 ‘Follower’ 를 보유한 아티스트
-미국 인기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 * 브리트니 카메오 출연분 시리즈 통산 시청률 1위
-최신 월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 61회에 걸친 북미 투어 전회 매진
-“Circus” 투어는 북미 공연으로만 94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 8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 기록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큰 규모의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2002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올해의 여성
-2003 글래머 매거진 UK 선정 올해의 여성
-2004 FHM 매거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2008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
-2008 GQ 매거진 독일 선정 ‘올해의 여성’
-2008 AOL 선정 가장 많이 검색된 유명인사
-2009 플레이보이 매거진 선정 가장 섹시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2009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수상 경력]
Grammy Awards
-2000 Best New Artist 후보
-2000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Best Pop Vocal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3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verprotected" 후보
-2005 Best Dance Recording "Toxic" 수상

Billboard Music Awards
-1999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Female Album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Hot 100 Singles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Best New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0 Best Album Artist 수상
-2000 World-Record Breaker "Oops!... I Did It Again" 수상
-2004 Best-selling Dance Single of the Year "Me Against the Music" 수상
-2007 Best Album of 2007 "Blackout" 선정
-2008 Best Album of 2008 "Circus" 선정
-2009 Best Album "Circus" 수상

American Music Awards
-2000 Favorite Pop/Rock New Artist 수상
-2000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0 Favorite Pop/Rock Album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MTV Video Music Awards
-1999 Best Female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Pop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0 Best Female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Pop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Dance Video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0 Viewer's Choi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Pop Video "Stronger" 후보
-2002 Best Femal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Danc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3 Best Video from a Film "Boys" 후보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후보
-2004 Best Female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Pop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Dance Video "Toxic" 후보
-2008 Video of the Year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Female Video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Pop Video "Piece of Me" 수상
-2009 Best Pop Video "Womanize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후보
-2009 Bes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Ar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Editing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inemat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MTV Europe Music Awards
-1999 Best Song "...Baby One More Time" 수상
-1999 Best Pop Act 수상
-1999 Best Female Solo Artist 수상
-1999 Best Breakthrough Act 수상
-2000 Best Song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0 Best Pop Artist 후보
-2001 Best Pop Artist 후보
-2002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4 Best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4 Best Song "Toxic" 후보
-2004 Best Pop Artist 후보
-2008 Album of the Year "Blackout" 수상
-2008 Best Act of 2008 수상
-2008 Best Act Ever 후보
-2009 Best Video "Circus" 후보

Kids' Choice Awards
-2000 Favorite Song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1 Favorite Female Singer 수상
-2001 Favorite Music Solo or Group 후보
-2003 Favorite Female Singer 후보
-2005 Favorite Song "Toxic" 후보

Teen Choice Awards: 총 16개 부문 수상 (역사상 가장 많이 수상한 스타)
-1999 Choice Singl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0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0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1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2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2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4 Choice Single "Toxic" 수상
-2009 The Ultimate Choice Awards 수상 등

MTV Total Request Live Awards
-2003 First Lady Award 수상
-2008 Most iconic video of the past TRL decad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8 Queen of TRL 수상
-2008 Queen of Music Videos 수상

World Music Awards
-2000 World's best 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Dance Female Artist 수상

Rolling Stone Magazine Awards
-2001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2 Best Dressed Female 수상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NRJ Radio Awards (프랑스)
-2000 Best International Female Artist
-2008 Best International Album "Blackout" 수상
-2009 Female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수상

Groovevolt Awards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수상
-2004 Best Female Album "In The Zone" 수상
-2004 Best Song Performance by a Female Artist "Everytime" 수상
-2004 Most Fashionable Artist 수상

Bravo A List Awards
-2009 A-List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A-List Album " Circus " 수상
-2009 A-List Download "Circus" 수상

NewNowNext-Awards
2009 Always Now, Forever Next Award 수상

People's Choice awards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MTV Asia Awards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MTV Video Music Brazil Awards
-2009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Bambi Awards (독일)
-2008 Best International Pop Star 수상

AOL Awards
-1999 Best New Artist 수상

Much Music Awards (캐나다)
-1999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Germany Bravo Gold Awards (독일)
-1999 Best International Female Vocalist 수상

Japan Golden Disc Awards (일본)
-Best International Music Video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수상
-Best International New Artist 수상 외 세계 각국에서 다수의 수상경력 보유
노래 : Groove Armada (그루브 아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그룹들처럼 언더그라운드 클럽가를 중심으로 출발해 이후 영국 실험주의 음악노선을 초토화시키는데 든든한 공을 세웠다. 톰 핀들레이(Tom Findlay)와 앤디 카토(Andy Cato)의 2인 체제로 구성된 그루브 아마다는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다운비트, 트립 합, 테크노 등의 다양한 장르를 한데 융합한다. 아울러 이들은 음반을 통해 몽환적이고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연주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객원싱어들을 초빙해 각 앨범마다 독특한 색깔을 주조해낸다. 1997년에 이르러 선보인 ‘4 tune cookie’, ‘At the river’ 등의 몇몇 싱글과 이듬해 발표한 데뷔음반 < Northern Star >(1998)부터 그러한 사운드 특징을 잘 증명한다. 그룹은 1999년 보다 범위가 폭넓어진 2집 음반 < Vertigo >을 발표해 영국차트 톱 20에 들어가는 성적표를 얻어냈다. ‘If everybody looked the same’, ‘At the river’, ‘I see you baby’(팻보이 슬림에 의해 리믹스) 같은 히트곡을 배출해내며 이들을 일렉트로티카 계열 그룹의 리스트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이후 그룹은 엘튼 존(Elton John)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며 조금씩 성공가도를 내달렸고, 2000년에 접어들어 2집 < Vertigo >를 미국에서 재 발매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2000년 발표된 < The Remixes >에 뒤이어 선보인 < Back to Mine >(2000)은 알그린(Al Green), 베리 화이트(Barry White),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루츠 마누바(Roots Manuva) 등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앨범의 질을 드높였다. 나아가 그룹은 이듬해에 드디어 주류로 진입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7위를 기록한 3집 음반 < Goodbye Country (Hello Nightclub) >에서 이스트코스트 래퍼 제루(Jeru)가 피처링한 ‘Suntoucher’와 싱글 ‘Superstylin’ 등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자신들의 개성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2년 뒤인 2003년에 발표된 4집 < Lovebox >은 전작보다 진일보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특히 앨범은 이글 아이 체리(Eagle-Eye Cherry)의 누나인 네네 체리(Neneh Cherry), 랩 그룹 내피 루츠(Nappy Roots), R&B 여가수 선샤인 앤더슨(Sunshine Anderson), 포크 싱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 등과 함께 작업해 다양한 양질의 사운드를 구사하기도 했다.
노래 : Backstreet Boys (백스트리트 보이즈)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라 하여 여기저기서 비판을 받는 와중에 권위 있는 록 언론에 의해 이들의 노래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분명 음반업계의 기획에 의해 ‘잘 만들어진 그룹’이다. 보통 이런 기획상품의 경우 아티스트의 자기 표현을 최고 덕목으로 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평가 절하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시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예상 밖으로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고있기 때문이다. 곡도 좋고 멜로디를 타는 멤버들의 노래솜씨와 코러스도 우수하다. 애들 음악이라고 푸대접하지만 막상 들으면 모든 곡들이 귀를 감는다. 또 하나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손꼽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버블 검 음악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팝 주요 경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요즘의 유행을 만들었고 또 주도하고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성공을 거두자 팝 음악계에서는 우후죽순으로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보이 밴드’들이 출현하고 있다. 닉 카터, 하위 D, 케빈 리처슨, AJ 맥클린 그리고 브라이언 리트렐 등 다섯 남자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케빈은 1972년 생이고 가장 어린 1980년 생 닉 카터도 나이 스물을 넘어섰다. 10대 음악을 하지만 멤버들 가운데 틴에이저는 없다. 1994년 결성될 때는 당시 음악이 얼터너티브 록과 갱스터 랩 판이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2집 < Backstreet''s back >부터 미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99년 초에 발표한 3집 < Millenium >에 와서는 세계적 열풍을 야기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1300만장이 팔려 틴 음악 앨범 중에서는 최고 판매고를 보이고 있다. 잠시 공백을 갖는 사이 같은 소속사의 라이벌 N싱크한테 추월 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새 앨범 < Black & blue >을 내놓고 왕관탈환에 나섰다. 그래서 과연 신작이 얼마만큼 팔려나갈 것인가가 관심이다. 관계자들은 이번 앨범이 그들의 장수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내다본다.
노래 : Rachel Platten (레이첼 플래튼)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잘 들리는 피아노 멜로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소울 식의 고전적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이며, 이 때문에 1970년대 여성 소울의 거성인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재래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복고형 R&B라고 하기보다는 거기에다 현대적 힙합 분위기를 삼투한 최신 스타일을 부각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반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블루스와 재즈에 뿌리를 둔 음악을 현대적 창구로 전달하는 셈인데 실제로 피아노의 선율, 1970년대 풍의 소울 창법, 세련된 힙합 분위기가 어울린 그녀의 ‘모던한’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는 2001년에 발표되어 화려히 인기차트를 누볐다. 미국 뉴욕 토박이로 1982년에 태어난 앨리샤 키스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자신의 미래분야로 삼아 맨하탄의 퍼포먼스 아트 스쿨(Performance Art School)에서 합창을 훈련했고 10대 내내 피아노교습에 열중한다. 이 합창과 피아노는 훗날 데뷔 앨범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피아노 외의 다른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 편곡 등 음악작업 전반에 걸친 실력과 감각을 쌓았다. 고교를 졸업한 16살에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학업을 도중 포기했고 대신 1998년 명문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다. 아리스타 사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 의해 픽업된 관계로, 그가 1999년 아리스타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 제이(J)를 출범시키자 앨리샤도 그를 따라 제이 레코드사로 적을 옮기게 된다. 19살이던 2001년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은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자신이 프로듀스한 첫 싱글 ‘Fallin’’은 전미차트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각별한 신구(新舊)결합형 음악은 시장 뿐 아니라 마침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그리고 그래미상이라는 공인 절차마저 거뜬히 통과했다.
노래 : Justin Timberlake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과 함께 어린 시절 디즈니 채널의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면서 ‘엔터테이너’로써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96년에 엔싱크에 참여했고, 2년 뒤인 1998년에 엔싱크의 첫 음반 < ’Nsync >가 발표되었다. 데뷔 음반에서는 ‘I want you back’가 준(準)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발표된 2집 < No Strings Attached >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얻었다. ‘Bye bye bye’, ’It’s gonna be me’ 등의 박진감 넘치는 댄스곡들은 메가 히트를 달성하였고, 음반은 2주일만에 더블 플래티넘을 획득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틴에이저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가공할 만한 엔싱크의 파워는 당시 인기 정상에 올라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Bakcstreet Boys)를 차츰 뒷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저스틴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3집 < Celebrity >(2001년)부터. 작곡가로써, 공동 프로듀서로써 저스틴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첫 싱글이었던 ’Pop’, ‘Celebrity’, ‘Gone’등의 주요 곡들을 포함한 7곡이 저스틴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다섯 곡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그러나 엔싱크는 어디까지나 풍선껌처럼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10대들의 버블검 밴드였다. 슈퍼급 보이밴드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가면서 엔싱크도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었다. 특히 독립을 꿈꾸던 저스틴에게 틴에이저들의 트렌드를 지향해야하는 보이밴드에서 자신의 음악적 포부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저스틴은 솔로로 나섰다. 그 스스로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첫 솔로 음반 < Justified >는 < Celebrity >에서 보여주었던 재능을 한층 발전시켜 아티스트로써의 가능성 또한 내비친 작품이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넵튠스(The Neptunes)와 팀발랜드(Timbaland), 그리고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의 음반 작업 참여 또한 데뷔 음반의 퀄리티를 높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 이에 힘입어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은 2002년을 빛낸 음반 중 하나로 저스틴 팀벌레이크의 < Justified >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 문제는 연령층이다. 저스틴의 음악은 다분히 십대 후반과 이십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팬 층은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틴에이저들이기 때문이다. < 타임 키즈 매거진 > 등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 ‘보이밴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어렵다. 대형 아티스트로 도약하려하는 저스틴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팬 연령 스펙트럼의 확대이다.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는 2014년과 2015년에 미국 팝 씬에서 가장 화려하게 주목받았던 신인 여성 아티스트였다. 일단 2014년 6월 (메이저) 데뷔 싱글 'All About That Bass'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총합 8주간 정상에 오르면서 화려하게 대중의 시선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이 싱글로 미국을 포함 세계 58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디지털과 피지컬 세일을 종합해 총 ...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는 2014년과 2015년에 미국 팝 씬에서 가장 화려하게 주목받았던 신인 여성 아티스트였다. 일단 2014년 6월 (메이저) 데뷔 싱글 'All About That Bass'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총합 8주간 정상에 오르면서 화려하게 대중의 시선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이 싱글로 미국을 포함 세계 58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디지털과 피지컬 세일을 종합해 총 1100만 단위를 판매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뒤이어 같은 해 가을에 발매된 후속 싱글 'Lips Are Movin''도 빌보드 Hot 100 4위를 기록하는 히트를 이어갔으며, 2015년 벽두에 공개된 그녀의 메이저 데뷔 앨범인 [Title]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면서 모든 음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Dear Future Husband'(14위)와 존 레전드(John Legend)와 함께한 'Like I'm Gonna Lose You'(8위) 등이 계속 싱글 히트를 거두었고, 이러한 확고한 대중적 인기 기반을 바탕으로 그녀는 2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피플즈 초이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리고 2년 동안 연속(2015년에는 'All About That Bass'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에 올랐다)으로 그래미 후보에 오르는 화제를 모은 끝에 어느 아티스트건 평생 한 번 탈 기회를 갖는 그래미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 수상자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노래 : Alexis Jordan (알렉시스 조던)
노래 : Edwin Hawkins Singers (에드윈 호킨스 싱어스)
멤버 : 미치 그래시(Mitch Grassi), 스콧 호잉(Scott Hoying), 아비 카플랜(Avi Kaplan), 커스티 말도나도(Kirstie Maldonado), 케빈 올루졸라(Kevin Olusola) 멤버 : 미치 그래시(Mitch Grassi), 스콧 호잉(Scott Hoying), 아비 카플랜(Avi Kaplan), 커스티 말도나도(Kirstie Maldonado), 케빈 올루졸라(Kevin Olusola)
락앤롤, 팝락, 인디팝 밴드 락앤롤, 팝락, 인디팝 밴드
밴드 : Electric Light Orchestra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
1994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결성된 트레인(Train)은 1990년대 초반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로부터 발흥된 복고 성향의 아메리칸 하드록을 구사하는 그룹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country)와 포크(folk)를 기저로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덧입혔던 이 흐름의 최선봉에 위치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트레인은 패트릭 모나한(Patrick Monahan, 보컬, ... 1994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결성된 트레인(Train)은 1990년대 초반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로부터 발흥된 복고 성향의 아메리칸 하드록을 구사하는 그룹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country)와 포크(folk)를 기저로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덧입혔던 이 흐름의 최선봉에 위치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트레인은 패트릭 모나한(Patrick Monahan, 보컬, 퍼커션), 롭 호치키스(Rob Hotchkiss, 기타, 보컬), 지미 스태포드(Jimmy Stafford, 기타), 찰리 콜린(Charlie Colin, 베이스), 스콧 언더우드(Scott Underwood, 드럼)의 5인조로 구성되었다. 결성 직후, 다섯은 꾸준한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며 팬층을 확보하였고, 이것은 마이너 레이블인 < Aware >와 컨택트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데뷔작 < Train >은 진득한 미국 전통 록 사운드를 가감 없이 펼쳐 보임으로서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러냈다. 1997년부터 밴드는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카운팅 크로우즈(Counting Crows)등의 오프닝을 맡으며 제 2의 도약의 기회를 모색했다. 메이저 음반사들로부터 구애의 손길이 뻗친 때가 바로 이즈음이었다. 멤버들은 컬럼비아(Columbia)와 손잡은 뒤, 1집을 재발매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의 시작점을 찍었다. ’Meet Virginia’가 당시 라디오 전파를 수시로 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4년 뒤, 두 번째 음반 < Drops of Jupiter >(2001)를 발표한 트레인은 그래미상 3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는 등의(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앨범은 현재까지 2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밴드 : Journey (저니 (락 밴드))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저니는 1980년대 초, 중반을 강타했던 록 그룹이다. 하드록, 재즈록 밴드로 출발했던 저니는 미성의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면서 팀컬러를 팝 록으로 완전히 전환한다.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운 것이어서 그 변화가 처음으로 나타난 앨범인 < Evolution >부터 이들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우는 ...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저니는 1980년대 초, 중반을 강타했던 록 그룹이다. 하드록, 재즈록 밴드로 출발했던 저니는 미성의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면서 팀컬러를 팝 록으로 완전히 전환한다.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운 것이어서 그 변화가 처음으로 나타난 앨범인 < Evolution >부터 이들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우는 빅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멤버들의 역량이 집대성된 1981년작 < Escape >는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하며 저니의 명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이 음반에서만 ‘Open arms’(후에 머라이어 캐리가 리메이크),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등 톱 텐 싱글이 3개가 쏟아졌다. 이들은 곧 동시대의 포리너(Foreigner), REO 스피드웨건(REO Speedwagon)등과 함께 성인 취향의 록(AOR)과 발라드를 가장 잘 만드는 팀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처럼 세계인들을 열광시키며 연이은 히트 퍼레이드를 벌인 저니는 라틴 록의 거장 산타나(Santana)에서 활약하던 두 청년 닐 숀(Neal Schon)과 그렉 롤리(Greg Rolie)가 손을 잡으면서 출범했다. 여러 뮤지션들을 영입해 록 밴드의 모양을 갖춘 저니는 곧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며 단번에 씬의 실력파 그룹으로 각광받았다. 달콤한 멜로디보다 청자의 예측을 거부하는 굴곡이 심한 리듬과 재기 발랄한 솔로 파트를 강조한 저니의 초창기 작품들은 다분히 매니아 취향이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마음 편하게 다가서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데뷔작 < Journey >에서 < Look Into The Future >, < Next >에 이르는 일련의 앨범들은 다소 거칠지만 록의 원시적 매력으로 똘똘 뭉친 곡들로 넘쳐 났다. 저니의 중, 후반기 사운드는 아련한 키보드를 축으로 선율미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가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어필한 시기였다. 기-승-전-결의 구도를 가지고 점층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극적인 구성이 밴드의 상징처럼 굳어졌다. 고혹적이고도 애절한 보이스를 지닌 스티브 페리는 그 구성에 꼭 맞는 보컬리스트였고 완벽한 시스템을 장비한 밴드는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싱글 ‘Wheel in the sky’가 수록된 앨범 < Infinity >는 첫 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어 < Evolution >부터 < Frontiers >에 이르는 멈추지 않는 성공가도가 열리게 되었다. 저니의 포근한 록은 여러 세대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그들의 이름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샘솟던 그들의 창작력도 이후 둔화되기 시작했고, 멤버들의 빈번한 과외 활동까지 겹치면서 저니는 결국 1986년 < Raised On Radio >를 마지막으로 해체를 맞이하게 됐다. 해산 이후 밴드 사운드의 핵이였던 닐 숀은 배드 잉글리시(Bad English)를 결성해 ‘When I see you smile’, ‘Price of love’라는 히트 싱글들을 제조해 냈고, 드러머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는 자신의 전공인 재즈로 돌아갔다. 싱어 스티브 페리 역시 앨범들을 발표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캐리어를 다져 나갔다.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각자 개인 플레이에 열심이던 멤버들은 정확히 해체 10년이 되는 1996년 < Trial By Fire >로 다시 뭉쳤고, 차트에서도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두 스티브는 결국 투어 도중에 이별을 선언했고, 새롭게 정비된 저니는 2001년 통산 11번째 음반 < Arrival >을 내놓으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저니는 팝 전성시대의 화사함 속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던 그룹이다. 록에 이유모를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마저도 살며시 보듬어 안았던 이 매력적인 밴드는 앞으로도 ‘편안한 록’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아직 남아 있을 팬들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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