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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2000s : The Greatest Music From The 2000s (얼티메잇 20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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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ltimate 2000s : The Greatest Music From The 2000s (얼티메잇 2000s)

모두가 사랑하는 2000년대 대표곡

[ 4CD / 오리지널 음원 / 절판된 앨범 속 희귀곡 다수 수록 ]
Destiny′s Child, Ricky Martin, Britney Spears, R. Kelly, Kesha 노래 외 6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6년 11월 0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4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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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2000s : The Greatest Music From The 2000s (얼티메잇 2000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11월 01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1
  • 01 Survivor - Destiny's Child
  • 02 She Bangs - Ricky Martin
  • 03 Toxic - Britney Spears
  • 04 Ignition (Remix) - R. Kelly
  • 05 Tik Tok - Ke$Ha
  • 06 Beautiful Girls - Sean Kingston
  • 07 Love Don't Cost A Thing - Jennifer Lopez
  • 08 Million Dollar Bill - Whitney Houston
  • 09 Shape Of My Heart - Backstreet Boys
  • 10 Whenever, Wherever - Shakira
  • 11 Uptown Girl - Westlife
  • 12 How To Save A Life - Fray, The
  • 13 1 Thing - Amerie
  • 14 Hotel Room Service - Pitbull
  • 15 Love Sex Magic - Ciara (feat. Justin Timberlake)
  • 16 Ordinary People - John Legend
  • 17 Perfect Gentleman - Wyclef Jean
  • 18 White Flag - Dido
  • 19 Drops Of Jupiter - Train
CD2
  • 01 Like I Love You - Justin Timberlake
  • 02 Bye Bye Bye - Nsync
  • 03 Fallin' - Alicia Keys
  • 04 U Remind Me - Usher
  • 05 Beautiful - Christina Aguilera
  • 06 Let Me Love You - Mario
  • 07 Spotlight - Jennifer Hudson
  • 08 Breathe (Rap Version) - Blu Cantrell (feat. Sean Paul)
  • 09 Run It! - Chris Brown
  • 10 Left Outside Alone - Anastacia
  • 11 Girlfriend - B2K
  • 12 Dance (With U) - Lemar
  • 13 Born To Try - Delta Goodrem
  • 14 Battlefield - Jordin Sparks
  • 15 Maria Maria - Santana (feat. The Product G&B)
  • 16 By Your Side - Sade
  • 17 Wish I Didn't Miss You - Angie Stone
  • 18 Gravel Pit - Wu-Tang Clan
CD3
  • 01 Fire - Kasabian
  • 02 Heavy Cross - Gossip
  • 03 Time To Pretend - Mgmt
  • 04 Lifestyles Of The Rich & Famous - Good Charlotte
  • 05 Girl All The Bad Guys Want - Bowling For Soup
  • 06 Teenage Dirtbag - Wheatus
  • 07 Sk8Er Boi - Avril Lavigne
  • 08 So What? - P!nk
  • 09 Wherever You Will Go - Calling, The
  • 10 The Man Who Can't Be Moved - The Script
  • 11 Good Girl - Alexis Jordan
  • 12 She's So Lovely - Scouting For Girls
  • 13 Since U Been Gone - Kelly Clarkson
  • 14 Valerie - The Zutons
  • 15 Love Song - Sara Bareilles
  • 16 Shiver - Natalie Imbruglia
  • 17 Unwritten - Natasha Bedingfield
  • 18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 - Jessica Simpson
  • 19 Dancing In The Moonlight - Toploader
CD4
  • 01 Freestyler - Bomfunk Mcs
  • 02 Superstylin' - Groove Armada
  • 03 We Come 1 - Faithless
  • 04 Little L - Jamiroquai
  • 05 Crying At The Discoteque - Alcazar
  • 06 Falling Stars - Sunset Strippers
  • 07 Voodoo Child - Rogue Traders
  • 08 Thats Not My Name - The Ting Tings
  • 09 Bleeding Love - Leona Lewis
  • 10 Caught In The Middle - A1
  • 11 Can't Nobody - Kelly Rowland
  • 12 Acceptable In The 80's - Calvin Harris
  • 13 He Wasn't Man Enough - Toni Braxton
  • 14 Wonderful Life - Hurts
  • 15 Dashboard - Modest Mouse
  • 16 The River - Live
  • 17 I Don't Want To Be (Radio Edit) - Gavin Degraw
  • 18 Your Body Is A Wonderland - John Mayer

아티스트 소개 (68명)

노래 : Destiny's Child (데스티니스 차일드)
보이그룹 메누도의 아이돌스타에서 라틴영웅으로 훌쩍 커버린 리키 마틴은 단연 라틴열풍의 일등공신이다. 팝과 살사 리듬이 크로스오버된 라틴 팝을 들려주는 그는 ‘변방’에 있던 라틴음악을 ‘중앙’으로 화려하게 진입시켰다. 절충적 사운드와 함께 영어로 노래함으로써 팝에 친숙한 영어권 음악팬들과 라틴 본토의 팬들을 동시 만족시켰다. 또한 그의 격렬한 움직임과 넘치는 에너지, 강렬한 땀 냄새는 지구촌의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 보이그룹 메누도의 아이돌스타에서 라틴영웅으로 훌쩍 커버린 리키 마틴은 단연 라틴열풍의 일등공신이다. 팝과 살사 리듬이 크로스오버된 라틴 팝을 들려주는 그는 ‘변방’에 있던 라틴음악을 ‘중앙’으로 화려하게 진입시켰다. 절충적 사운드와 함께 영어로 노래함으로써 팝에 친숙한 영어권 음악팬들과 라틴 본토의 팬들을 동시 만족시켰다. 또한 그의 격렬한 움직임과 넘치는 에너지, 강렬한 땀 냄새는 지구촌의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그의 섹시한 매력은 여가수로 치자면 전성기 시절의 마돈나에 비견될 정도다. 거기에 레코드사의 든든한 후원까지 등에 업은 리키 마틴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며 팝 음악의 한 지류에 머물던 라틴음악을 ‘팝의 주류’에 입성시켰다. 리키 마틴은 1971년 12월 24일 푸에르토리코의 산 후안(San Juan)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엔리케 마틴 모랄레스(Enrique Martin Morales). 어렸을 적부터 합창단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카톨릭 학교를 거쳐 예술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노래와 연기 수업을 쌓아 나갔다. 1984년 리키 마틴은 변성기 이전의 미소년들로 구성된 보이그룹 메누도(Menudo)의 일원이 되었다. 5년간 메누도의 리드싱어로 활약하던 리키는 그룹의 까다로운 나이규정 탓에 팀을 떠났다. 이후 1991년 리키 마틴은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 Ricky Martin >을 발표했다. 향후 리키의 작업에 조력자로서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메누도 시절의 동료 로비 로사(Robi Rosa)가 이 음반의 공동작곡자로 참여했다. 2년 후에는 리키의 두 번째 앨범이 출시되었고, 이 2장의 앨범 발매 이후 점차 미국시장에도 그의 인지도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3년간 ABC의 인기 드라마 < General Hospital >에 바텐더 겸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출연한 덕도 봤다. 리키 마틴은 1995년 풍성한 라틴 리듬 위에 록 비트가 강화된 3집 < A Medio Vivir >를 발표했으며, 3년 뒤에는 4집 < Vuelve >를 내놓았다. ‘La copa de la vida’가 프랑스 월드컵 주제곡으로 만방에 울려 퍼져 한껏 기세가 오른 리키 마틴은 1999년 영어앨범 < Ricky Martin >을 진수시켰다. 블록버스터 싱글 ‘Livin` la vida loca’가 수록된 이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1천5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라틴 관중을 넘어 전세계 음악팬들이 그의 라틴 팝에 흥분하도록 만들었다. 그 흥행여파로 리키 마틴은 MTV 라틴 뮤직 시상식, 빌보드 시상식 등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석권했다. 각종 매체에서도 그를 집중 조명했다. < 피플(People) >지는 그를 ‘1999년 가장 흥미로운 인물 25명’중 한 명으로 뽑았으며, 시사주간지 < 타임 >은 ‘1999년 화제의 인물’로 선정했다. 2000년에는 두 번째 영어앨범 < Sound Loaded >의 발매에 맞춰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일이 너무 정형화된 그 앨범이 예상 밖의 부진에 빠지자 그는 수록곡 ‘Nobody wants to be lonely’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재녹음해서 인기만회를 시도했다. 2001년 3월에는 데뷔작부터 최근의 히트곡까지 수록한 스페인어 베스트앨범 < La Historia >를 출시했다. 2001년 1월 리키 마틴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을 가졌다. 이에 대해 그의 동반자 로비 로사가 강도 높은 비판을 해 화제다. 보수적인 부시의 취임식에서 노래한 것은 당파성이 다분한 행동이며 히스패닉에 대한 심각한 배반행위라는 것이다. 리키 마틴은 인터뷰에서 "그 공연에 정치적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나의 음악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에피소드를 보면 리키 마틴의 지향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상업가수이다. 상업가수로서 자신을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리키 마틴은 그러한 자신의 본분을 훌륭히 해냈다. 적어도 그의 음악은 우리를 충분히 흥분시킨다.
노래 :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팝 보컬))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잡아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틴에이저 가수가 출현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언론이 예외적으로 그녀를 다루는데 골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리지만 어른 특히 성인남자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성들한테 브리트니는 결코 소녀로 비치지 않는다. 옷을 하나 입어도 섹시하게 치장하고, 춤을 춰도 어른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가 내뿜는 강한 섹슈얼 파워에 어른들도 매혹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어린 섹스심벌’이다. 솔직히 그녀가 대단한 미모이거나 다리가 길다거나 하는 탁월한 신체조건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보통의 외모에 섹슈얼리티를 갖춘 것이 도리어 또래들에게는 자신감, 어른들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탓에 그녀는 ‘롤링스톤’과 같은 록 전문지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한다. 최신호 커버에 등장한 그녀가 던지는 인상은 ‘착해 보이면서도 섹시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악도 외모를 닮아있다. 달콤한 멜로디를 지닌 댄스곡들이지만 아주 힘차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있는 신곡 ‘Oops! ... I did it again''부터가 강렬한 비트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다른 댄스 팝 여가수들과 여기서 차별화된다. 실제의 그녀 또한 마돈나처럼 스스로 캐리어를 개척하는 독립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보에서 그녀는 대담하게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Satisfaction''를 부르고 있다. 레코드회사나 주변인들이 ‘해봤자 욕먹는다’며 말렸는데도 끝내 고집을 부려 새 앨범에 이 곡을 수록했다. 브리트니는 “강한 느낌의 곡을 만들어낼 테니 두고 보라”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브리트니가 록계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이처럼 음악계 어른들의 말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당돌한 자세 때문이다. 관심사는 신보가 과연 얼마나 팔려나가는데 있다. 전작의 판매고를 따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곡은 벌써 라디오 최다 신청곡 기록을 깼다. 현재 미국 라디오 전파는 브리트니의 노래로 완전히 장악되었다는 소식이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저기서 신보의 대박 조짐이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소지가 충분하다. 음반업계는 그녀만은 소포모어 징크스 즉 2집 앨범 징크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2000년 팝계가 다시 그녀의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기록]
-여섯 장의 정규 앨범으로 통산 8천 6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대한민국 통산 판매량 100만 장 돌파
-3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 5곡의 영국차트 1위곡 보유
-새싱글 ‘3’ 빌보드 싱글차트 1위로 핫샷데뷔 * 非아메리칸 아이돌 싱글로는 21세기 유일
-그래미상, 빌보드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등 주요 시상식 수상
-2003 포브스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가수로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
-야후! 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유명인사 7년간 1위
-2000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
-200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가수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10대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대 아티스트의 앨범 "...Baby One More Time"
-기네스 선정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인물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영국차트 1위를 기록한 여성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5장의 빌보드 넘버원 앨범을 보유한 아티스트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에 입성한 셀러브리티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여성 가수
-그녀의 저서 “Heart To Heart” - 뉴욕 타임즈 주간 및 베스트 셀러 선정
-역대 투어 티켓 수입 5억달러, 머천다이즈 수입 2억달러 이상 (역대 최고 기록)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셀러브리티 향수 “Curious” - 6억 달러 이상의 수익
-2004년 가장 많이 판매된 향수 “Curious” - 출시 5주만에 1억달러 수익 돌파
-브리트니의 향수 통산 수익 20억 달러 돌파 * 향수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드린 셀러브리티
-동명의 앨범/싱글을 같은 주에 빌보드 앨범/싱글차트 1위에 올린 최초의 아티스트
-영국에서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 "...Baby One More Time"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곡 “Oops!...I Did It Again”
-데뷔 앨범부터 두 장의 음반이 연속으로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인증 (1,000만장 이상 판매)
-2000년 이후 메인스트림 팝 라디오차트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아티스트: 22곡의 싱글
-역사상 많은 'Teen Choice Awards' 를 수상한 스타: 통산 16개
-여섯 장의 음반이 모두 빌보드 앨범차트 1위, 혹은 2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가수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순위에 올린 아티스트 (18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1위에 올린 아티스트 (15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명예 은퇴 시킨 아티스트 (13곡)
-영국 역사상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My Prerogative”
-월드 차트에서 가장 많은 1위 곡을 보유한 여가수 2위 (1위: 마돈나)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여성 가수의 앨범 "Oops!...I Did It Again" - 131만장
-미국에서 50만 장 이상의 오프닝 세일즈를 기록한 음반을 네 장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여가수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 8위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여성 가수의 싱글 "Womanizer" ? 28만 6천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 상승으로 1위를 기록한 곡 "Womanizer" - 96위 → 1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 선정 지난 25년간 가장 위대한 팝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된 ‘Britney’
-가장 많은 트위터 ‘Follower’ 를 보유한 아티스트
-미국 인기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 * 브리트니 카메오 출연분 시리즈 통산 시청률 1위
-최신 월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 61회에 걸친 북미 투어 전회 매진
-“Circus” 투어는 북미 공연으로만 94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 8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 기록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큰 규모의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2002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올해의 여성
-2003 글래머 매거진 UK 선정 올해의 여성
-2004 FHM 매거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2008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
-2008 GQ 매거진 독일 선정 ‘올해의 여성’
-2008 AOL 선정 가장 많이 검색된 유명인사
-2009 플레이보이 매거진 선정 가장 섹시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2009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수상 경력]
Grammy Awards
-2000 Best New Artist 후보
-2000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Best Pop Vocal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3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verprotected" 후보
-2005 Best Dance Recording "Toxic" 수상

Billboard Music Awards
-1999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Female Album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Hot 100 Singles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Best New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0 Best Album Artist 수상
-2000 World-Record Breaker "Oops!... I Did It Again" 수상
-2004 Best-selling Dance Single of the Year "Me Against the Music" 수상
-2007 Best Album of 2007 "Blackout" 선정
-2008 Best Album of 2008 "Circus" 선정
-2009 Best Album "Circus" 수상

American Music Awards
-2000 Favorite Pop/Rock New Artist 수상
-2000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0 Favorite Pop/Rock Album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MTV Video Music Awards
-1999 Best Female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Pop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0 Best Female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Pop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Dance Video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0 Viewer's Choi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Pop Video "Stronger" 후보
-2002 Best Femal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Danc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3 Best Video from a Film "Boys" 후보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후보
-2004 Best Female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Pop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Dance Video "Toxic" 후보
-2008 Video of the Year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Female Video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Pop Video "Piece of Me" 수상
-2009 Best Pop Video "Womanize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후보
-2009 Bes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Ar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Editing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inemat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MTV Europe Music Awards
-1999 Best Song "...Baby One More Time" 수상
-1999 Best Pop Act 수상
-1999 Best Female Solo Artist 수상
-1999 Best Breakthrough Act 수상
-2000 Best Song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0 Best Pop Artist 후보
-2001 Best Pop Artist 후보
-2002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4 Best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4 Best Song "Toxic" 후보
-2004 Best Pop Artist 후보
-2008 Album of the Year "Blackout" 수상
-2008 Best Act of 2008 수상
-2008 Best Act Ever 후보
-2009 Best Video "Circus" 후보

Kids' Choice Awards
-2000 Favorite Song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1 Favorite Female Singer 수상
-2001 Favorite Music Solo or Group 후보
-2003 Favorite Female Singer 후보
-2005 Favorite Song "Toxic" 후보

Teen Choice Awards: 총 16개 부문 수상 (역사상 가장 많이 수상한 스타)
-1999 Choice Singl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0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0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1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2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2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4 Choice Single "Toxic" 수상
-2009 The Ultimate Choice Awards 수상 등

MTV Total Request Live Awards
-2003 First Lady Award 수상
-2008 Most iconic video of the past TRL decad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8 Queen of TRL 수상
-2008 Queen of Music Videos 수상

World Music Awards
-2000 World's best 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Dance Female Artist 수상

Rolling Stone Magazine Awards
-2001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2 Best Dressed Female 수상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NRJ Radio Awards (프랑스)
-2000 Best International Female Artist
-2008 Best International Album "Blackout" 수상
-2009 Female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수상

Groovevolt Awards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수상
-2004 Best Female Album "In The Zone" 수상
-2004 Best Song Performance by a Female Artist "Everytime" 수상
-2004 Most Fashionable Artist 수상

Bravo A List Awards
-2009 A-List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A-List Album " Circus " 수상
-2009 A-List Download "Circus" 수상

NewNowNext-Awards
2009 Always Now, Forever Next Award 수상

People's Choice awards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MTV Asia Awards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MTV Video Music Brazil Awards
-2009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Bambi Awards (독일)
-2008 Best International Pop Star 수상

AOL Awards
-1999 Best New Artist 수상

Much Music Awards (캐나다)
-1999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Germany Bravo Gold Awards (독일)
-1999 Best International Female Vocalist 수상

Japan Golden Disc Awards (일본)
-Best International Music Video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수상
-Best International New Artist 수상 외 세계 각국에서 다수의 수상경력 보유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 홀어머니와 살아야 했으며, 흑인 갱들과 어울리다 총상을 입는 등 그의 유년기는 저질 흑인 빈민의 삶이었다. 저급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는 레나 맥린(Lena McLin)이라는 음악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어머니가 선물한 키보드를 가지고 뮤지션으로서의 도전을 시작한다. R&B 그룹 MGM을 결성한 그는 거리 공연을 통해 시카고 다운타운 최고의 뮤지션으로 성장해 간다. TV 음악 컨테스트인 < Big Break >에 출연하여 우승하는 등 지명도를 더해 나가던 알 켈리는 결국 자이브(Jive) 레코드의 웨인 윌리엄즈(Wayne Williams)의 눈에 들게 되었고, 1992년 데뷔 앨범 < Born Into The 90’s >를 발표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첫 싱글 ’She’s got that vibe’가 R&B 차트에서 선전하며 눈길을 끌었고, 이어지는 ’Honey love’, ’Slow dance(Hey Mr. DJ)’가 연이어 R&B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초대형 R&B 뮤지션의 탄생을 알렸다. 데뷔 이듬해인 1993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 12 Play >는 신인급 뮤지션 알 켈리를 R&B 정상의 인기 뮤지션으로 끌어올린다. 70년대 펑키(Funky)스타일과 90년대 힙합을 결합한 알켈리적 사운드가 위력을 발휘했고, 달콤하게 애원하는 발라드 곡 ’Bump n’ grind’가 싱글 차트에서 4주, R&B 차트에서 12주간 정상을 지키며 음악계를 강타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알 켈리는 프로듀서로서의 또 다른 정상을 향해 순항을 시작한다. 1994년 알리야(Aaliyah)의 데뷔 앨범 < Age Ain’t Nothin’ But A Number >를 프로듀싱하며 15세 소녀 가수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알리야를 통해 뉴잭/질 스윙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알 켈리는 이후 자신의 앨범은 물론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여 R&B 최고의 프로듀서로 자리하며 어번(Urban) R&B의 흐름을 주도한다. 1995년 ’You are not alone’을 프로듀싱하여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게 차트 정상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던 그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자넷 잭슨(Janet Jackson), 메리 제이 블라이지(Mary J. Blige),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등 거의 모든 정상급 어번 R&B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서 맹활약했다. 1995년 발표한 3집 앨범 < R. Kelly >는 상업적으로 음악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두며 알 켈리 최고의 앨범으로 자리했다. 4백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고, 발표한 세 장의 싱글 ’You remind me of something’, ’Down low(Nobody has to know)’, ’I can’t sleep baby(If I)’가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은 노골적으로 성적 유혹에만 치중한 전작과 달리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담았고, 고급스러움과 저속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빛을 발한다. 1996년 영화 < Space Jam > 수록 곡 ’I believe I can fly’가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에 알 켈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고, 이 곡으로 그래미(Grammy)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영화 < Batman & Robin >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여 ’Gotham city’를 연이어 히트시킨 알 켈리는 당시 최고의 인기 여가수였던 셀린 디욘(Celine Dion)과의 듀엣 곡 ’I’m your angel’을 발표하며 다시금 차트 정상을 밟는다. 싱글 ’I’m your angel’의 여세를 몰아 발표한 4집 < R. >(1998)은 더블 앨범에 30여 곡이 수록되었고, 퍼프 대디(Puff Daddy), 나스(Nas), 제이-지(Jay-Z) 등 화려한 게스트들이 힘을 보탰음에도 불구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이후 큰 히트 싱글 또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알 켈리 특유의 매력을 감소시켰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전작에서의 흔들림을 감안한 듯 2000년 발표한 < TP-2.com >은 대중성 강했던 < 12 Play >로 회귀하며 달콤함으로 앨범을 채웠다. ’I wish’, ’The storm is over now’, ’Fiesta’ 등이 고루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 역시 R&B 최고의 뮤지션 알 켈리에게 특별한 히트 싱글 하나 가져다 주지 못했다. 알 켈리는 2002년 < R. >앨범에서 함께 했던 제이-지(Jay-Z)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 The Best Of Both Worlds >를 발표하는 등 슬럼프로 접어드는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래 : Kesha (케샤, Kesha Rose Sebert)
로스 앤젤리스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태어난 케샤는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어머니 피비 세버트(Pebe Serbert) 아래에서 오빠와 함께 성장했다. 돌리 파튼(Dolly Parton)도 불렀던 ‘Old Flames Can't Hold A Candle To You’가 바로 피비 세버트의 곡이었다. 이 집안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심지어는 복지시설의 원조까지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가족이 테네시로 옮긴... 로스 앤젤리스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태어난 케샤는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어머니 피비 세버트(Pebe Serbert) 아래에서 오빠와 함께 성장했다. 돌리 파튼(Dolly Parton)도 불렀던 ‘Old Flames Can't Hold A Candle To You’가 바로 피비 세버트의 곡이었다. 이 집안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심지어는 복지시설의 원조까지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가족이 테네시로 옮긴 이후에는 어머니가 두 아이들을 스튜디오로 곧잘 데려갔다. 케샤가 곡을 쓰고 노래하는데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서포팅하려 했다. 그녀의 집은 패리스 힐튼(Paris Hilton)과 니콜 리치(Nicole Richie)의 리얼 버라이어티 [심플 라이프(Simple Life)]의 한 에피소드에도 등장했다. 후에는 패리스 힐튼의 앨범 두 번째 싱글의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기도 한다. 12세 무렵 케샤는 오빠의 레코드를 훔쳐서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자신이 듣던 [Now 23] 컴필레이션은 오빠한테 훔쳐 들었던 푸가지(Fugazi),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파티 할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비스티 보이즈의 노래 ‘Fight For Your Right’의 가사를 인용한 코멘트이기도 하다. 벡(Beck)과 퀸(Queen), 그리고 랩 뮤직과 올드 스쿨 펑크에 영향을 받았단다. 밥 딜런(Bob Dylan)의 [Nashville Skyline] 앨범이 자신의 올타임 페이버릿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의상의 경우 키스 리차즈(Keith Richards)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게 복합적인 영향은 그녀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갔다.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학교를 자퇴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케이티 페리(Katy Perry),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그리고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등의 셀 수도 없는 넘버원 히트를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송 라이터들인 닥터 루크(Dr. Luke)와 맥스 마틴(Max Martin)을 따라다녔는데 그녀의 음악에 큰 감명을 받은 닥터 루크는 맥스 마틴과 함께 LA와 뉴욕을 오가며 음악작업을 시작한다. 닥터 루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LA에 있을 당시 케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적은 돈으로 '생존'해야만 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는 [Degrassi: The Next Generation]나 [힐스(Hills)]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일류 송 라이터인 토비 게드(Toby Gad)와 함께 베로니카스(The Veronicas)의 싱글 ‘This Love’를 작업하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 ‘Lace and Leather’에서는 백 보컬을 하기도 했고 케이티 페리의 히트 넘버 ‘I Kissed a Girl’의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했다.

2009년이 지난 이후에야 케샤의 이름이 비교적 수면 위에 떠오른다. 닥터 루크(Dr. Luke)와 스튜디오에 있을 무렵, 플로 라이다(Flo Rida)가 작업 중이던 자신의 곡을 함께 들으면서 "이 부분에는 죽이는 여자애가 훅을 불러줬음 좋겠는데," 라며 의견을 제시하자마자 케샤가 투입됐다고 한다. 플로 라이다(Flo Rida)의 넘버원 히트싱글 ‘Right Round’는 국내에서도 꽤 시끄러운 곡이었다. 단순히 여기저기서 많이 흘러나왔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니라 한국의 DJ 샤인(DJ Shine)이 번안해 부르기도 했으며, 몇몇 DC 갤러리에서는 플로 라이다가 샘플링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의 원곡이 게이 엔썸 류의 것으로 분류 되면서 개그의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한창 시끄러웠던 G 드래곤의 표절 문제로 플로 라이다의 곡은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비공식적으로는 플로 라이다의 곡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줄 것을 요청했었다는 데 그러면서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런 식으로 처음 알려질 경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데 애로사항이 꽃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플로 라이다의 곡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돈은 일절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명문 레이블 RCA/자이브(Jive)와 계약한다. 재기 발랄한 듀오 3OH!3의 콘서트에서 데뷔 퍼포먼스를 갖고 이후에는 무려 롤라팔루자(Lollapalooza)에서 공식적인 솔로 데뷔 공연을 펼친다. 케샤의 데뷔 싱글 ‘Tik Tok’은 디지털로 8월 7일에 미국에서 우선 릴리즈 됐다. 그 무렵 꾸준히 다른 작업들을 이어갔는데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EP [The Time of Our Lives]와 핏불(Pitbull), 그리고 타이오 크루즈(Taio Cruz) 등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그리고 미키 아발론(Mickey Avalon)과 투어를 다니면서 서서히 스테이지의 감을 익혔다. 그녀의 성격에 걸맞게 2010년도에는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출연하기로 예약되어 있단다.

그야말로 신데렐라같은 등장이었다. 온갖 어려운 역경을 다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설 채비를 하고있는 중이다. 마이스페이스(Myspace)의 페이지 뷰는 어느덧 천2백만 회를 돌파했다. MTV에서는 11월의 아티스트로 결정한 바 있기도 한데 MTV Push 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로 그녀의 곡들이 일정시간 동안 방송됐으며 영국 MTV에서는 다섯 곡의 라이브 세션을 펼치기도 했다. 21-7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 왜 이름 중간에 달러표시($)를 해 놓았냐는 질문에 케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그녀의 재정상태가 한동안 바닥이었는데 적어도 이름 중간에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골짜였다. 하지만 역으로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종이가 세상을 움직이는 게 좀 웃긴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한상철(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
노래 : Jennifer Lopez (제니퍼 로페즈)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리키 마틴(Ricky Martin),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등 걸출한 남성 스타들이 독점하는 라틴 팝 시장에서 당당히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미녀 가수이다. 그녀는 또한 가수 이전의 본업이었던 영화 배우로서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며, 헐리웃의 베스트 드레서답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 산업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멀티 엔터테이너의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 그래서 과감한 노출, 섹시한 외모와 함께 발표하는 음반마다 넘버원 싱글을 내놓는가 하면 찍는 영화마다 좋은 흥행 실적을 거둬온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라틴 팝의 흥겨운 리듬만큼이나 뜨겁다.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미국인인 제니퍼 로페즈는 1970년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에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보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6살 때 영화 < My little girl >에서 단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4년 후 텔레비전 시리즈인 < In living colors >의 주인공(댄서)인 ‘Fly girls’의 한 명으로 분하면서 본격적인 입지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이후 비운의 여가수 셀레나(Selena)의 생애를 담은 영화 < 셀레나(Selena) >등에서 엔터테이너로써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이후 그녀는 < 아나콘다(Anaconda) >와 < 유 턴(U-turn) > 등을 거치며 배우로써의 명함을 굳히는가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뜨거운 애정을 쏟아왔던 춤과 노래를 버릴 수 없었다. 실제로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댄서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녀는 결국 1999년 300만장의 판매고에 빛나는 데뷔작 < On The 6 >와 함께 가수로서도 매우 고무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의 남편 에미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 마크 앤소니 등 라틴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에 랭크되었고, 라틴의 흥겨움이 가득한 첫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싱글 차트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Let’s get loud’, ‘Waiting for tonight’ 등도 준(準)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은 그녀의 외모에 더욱 집중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엉덩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으며 도발적인 의상도 늘 화제 거리였다.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 ‘플레이걸’의 이미지도 굳어져갔고, 과감한 노출의 뮤직 비디오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따라서 외모가 실력보다 더 큰 인기 요인이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니퍼는 2001년 발표한 소포모어 음반 < J.Lo >로 주위의 색안경 낀 생각들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힙합 스타 자룰(Ja Rule)이 피처링한 ‘Love don’t cost a thing’(3위), ‘I’m real’(1위) 등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곡들이 담겨진 2집은 200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를 장악했다. 라틴의 느낌을 조금 가라앉히고 힙합 리듬을 배가시켜 팝 적인 접근을 꾀했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한층 발전한 그녀의 음악은 섹시함을 한껏 과시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이 선정한 2001년의 인물 중 하나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같은 해 제니퍼 로페즈 주연 영화 < 웨딩 플래너(Wedding Planner) >가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그녀는 한 해 동안 최고의 차트들을 다섯 번이나 정복하며 우먼 파워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002년 발매한 히트곡 리믹스 음반 < J To Tha Lo > 또한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새롭게 리믹스된 2집 수록곡 ‘Ain’t it funny’는 싱글로 발표되어 수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래퍼 피 디디(P. Diddy)와의 불륜, 그리고 그녀의 백댄서였던 크리스 주드(Chris Judd)와의 9개월 간의 짧은 결혼 생활 등 뭇 남성들과의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제니퍼 로페즈가 안착한 곳은 인기 절정의 배우 벤 에플렉(Ben Affleck)의 품이다. 지난 해 크리스 주드와의 이혼설을 기정사실화하고 2003년 초 벤 에플렉과 약혼식을 올린 제니퍼 로페즈는 새 음반 < This Is Me... Then >에서 더욱 힙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잘 나가는 래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피처링이 돋보이는 음반의 첫 싱글 ‘All I have’는 이미 빌보드 정상을 정복, 고수하고 있으며 판매량도 매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아직 가수의 길을 그리 오래 밟지 않은 그녀이지만 음반을 낼 때마다 수그러들지 않는 인기와 음악적 발전은 배우로서의 활동과는 별개로 음악인으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때로는 수많은 스캔들, 가십 거리를 양산해 내고는 있지만 배우와 가수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하고 있는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는 그칠 줄 모른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그 실력을 뽐냈다.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휘트니는 10대의 나이에 이미 모델, 배우, 가수의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샤카 칸(Chaka Khan) 등의 백업보컬로 또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는 1982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폴 자바라(Paul Zabara)의 ’Eternal love’라는 곡에 보조 보컬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정식 음반 녹음에 참여한다. 이듬해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했고,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레코드사는 데뷔 앨범에 27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85년 데뷔앨범 < Whitney Houston >은 흑인 디바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앨범은 14주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 중 가장 오랜 기간 1위에 머무른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2,3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이루어내며 데뷔 앨범 하나로 팝계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하게 된다. 앨범 내에서는 ’Saving all my love for you’,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조지 벤슨의 곡 리메이크)의 세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에 오르고, 앨범의 경이적인 성공으로 86년 그래미와, 86,8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차지한다. 1987년 그녀는 두 번째 앨범 < Whitney >를 통해 전작의 인기를 이어간다. 전작보다 비트감을 더한 이 앨범 역시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발매 첫 주에 미국과 영국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르는데 팝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기록이었다. 앨범은 차트 정상에 11주간 머물렀으며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 팔려나갔다. 싱글들의 인기도 대단해서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 ’Didn’t we almost have it all’,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 네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을 밟으며 이전 앨범부터 7개의 싱글이 연속해서 정상을 밟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앨범으로 또다시 1988년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역시 88년, 89년의 아메리칸 뮤직어워드를 수상한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같은 정통 소울 아티스트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그녀이지만 1,2집에서 보여준 음악은 대중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흑, 백의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이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1990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I’m Your Baby Tonight >에서는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정통 소울 음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루떠 반데로스(Luther Vandross)등과 함께 작업하는 등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했던 이 앨범은 역시 이전 앨범들만큼의 성공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I’m your baby tonight’, ’All the man that I need’가 1위에 올랐고, 앨범은 전 세계 1,2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그 인기는 대단했다. 세 장의 정규 앨범 이후 그녀는 영화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세 장의 사운드 트랙을 연속 발표한다. 시작은 < 보디가드 >였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보디가드’의 사운드 트랙에서 6곡을 노래했고, 이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경이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낸다. 첫 싱글 ’I will always love you’(돌리 파튼의 곡을 리메이크)는 차트 정상에 14주간 머물렀으며, 앨범은 20주간 1위를 지켰고, 세계적으로 3,5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4년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8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5년 휘트니 휴스턴은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자신이 주연한 < Waiting for Exhale >의 사운드 트랙에 3곡을 수록하면서 영화와 앨범의 성공에 기여한다. 이 앨범은 노장 흑인 여가수들과 신예 흑인 여가수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졌으며,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그래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6년 그녀는 영화 < The Preacher’s Wife >에서 주연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14곡을 자신이 직접 맡은 이 앨범은 가스펠 위주의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대중성보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어 앨범판매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영화와 사운드 트랙에만 전념해왔던 그녀는 98년 8년 만에 정규앨범 < My Love Is Your Love >을 발표한다.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에 충실함을 기했던 이 앨범은 1,00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앨범 내에는 영화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의 듀엣 곡 ’When you believe’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그녀는 자신의 15년 음악생활을 결산하는 베스트 앨범 < The Greatest Hits >를 발표한다. 조지 마이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의 듀엣 곡 등 네 곡의 신곡도 포함하고 있는 이 앨범은 발라드 곡들만을 모은 < Cool Down >과 댄스곡 및 댄스 리믹스 곡들을 모은 < Throw Down > 두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노래 : Backstreet Boys (백스트리트 보이즈)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라 하여 여기저기서 비판을 받는 와중에 권위 있는 록 언론에 의해 이들의 노래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분명 음반업계의 기획에 의해 ‘잘 만들어진 그룹’이다. 보통 이런 기획상품의 경우 아티스트의 자기 표현을 최고 덕목으로 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평가 절하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시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예상 밖으로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고있기 때문이다. 곡도 좋고 멜로디를 타는 멤버들의 노래솜씨와 코러스도 우수하다. 애들 음악이라고 푸대접하지만 막상 들으면 모든 곡들이 귀를 감는다. 또 하나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손꼽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버블 검 음악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팝 주요 경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요즘의 유행을 만들었고 또 주도하고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성공을 거두자 팝 음악계에서는 우후죽순으로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보이 밴드’들이 출현하고 있다. 닉 카터, 하위 D, 케빈 리처슨, AJ 맥클린 그리고 브라이언 리트렐 등 다섯 남자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케빈은 1972년 생이고 가장 어린 1980년 생 닉 카터도 나이 스물을 넘어섰다. 10대 음악을 하지만 멤버들 가운데 틴에이저는 없다. 1994년 결성될 때는 당시 음악이 얼터너티브 록과 갱스터 랩 판이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2집 < Backstreet''s back >부터 미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99년 초에 발표한 3집 < Millenium >에 와서는 세계적 열풍을 야기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1300만장이 팔려 틴 음악 앨범 중에서는 최고 판매고를 보이고 있다. 잠시 공백을 갖는 사이 같은 소속사의 라이벌 N싱크한테 추월 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새 앨범 < Black & blue >을 내놓고 왕관탈환에 나섰다. 그래서 과연 신작이 얼마만큼 팔려나갈 것인가가 관심이다. 관계자들은 이번 앨범이 그들의 장수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내다본다.
노래 : Shakira (샤키라,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그리고 무엇보다 노장 산타나(Santana) 등의 연이은 선전에도 불구, 라틴 팝의 황제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추락은 실로 충격이었다. 본토 팝 시장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신흥 메카로 자리잡았던 라틴 열풍이 점차 그 위용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그리고 무엇보다 노장 산타나(Santana) 등의 연이은 선전에도 불구, 라틴 팝의 황제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추락은 실로 충격이었다. 본토 팝 시장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신흥 메카로 자리잡았던 라틴 열풍이 점차 그 위용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관측이 빗발쳤다. 확실히 그 즈음의 라틴 뮤직은 ‘젊고 신선한 피’의 수혈이 시급했다. 때에 맞춰 무대에 입성한 샤키라(Shakira)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섹시한 자태와 화끈한 춤 실력, 거기에 수준 이상의 음악성 까지. 제1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성 팝 보컬’과 ‘최우수 여성 록 보컬’ 부문을 수상, 미리 검증 절차를 끝마친 점도 그의 미국 정복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뉴 라틴 팝 헤로인으로 단숨에 떠오른 샤키라의 본명은 샤키라 이사벨 메바랙 리폴(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1977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콜롬비아 토박이인 어머니와 레바논 이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두 문화권의 음악을 모두 섭렵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시에 영미 헤비메탈에도 심취, 자신만의 사운드 메커니즘 설계도를 그려나갔다. 8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그는 5년 뒤인 1991년에 데뷔작 < Magia >(Magic)로 음악 인생의 출항 경적을 울렸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상당한 성숙미를 내뿜은 점이 호평을 이끌어내며 샤키라는 모국에서 서서히 명성의 탑을 쌓아나갔다. 그는 1993년의 소포모어 음반 < Peligro >(Danger)에서 팝에 경도된 소리샘을 구현하며 본격적인 야심을 드러냈다. 허나 별다른 피드백을 얻지 못한데 좌절, TV 드라마에 얼굴품을 팔며 재기전 준비에 들어갔다. 절치부심 끝에 1995년 선보였던 3집 < Pies Descalzos >(Bare Feet)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브라질,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결국 미국에서도 100만장 이상을 세일즈 했던 것. 무엇보다 록의 에센스를 포섭한 것이 성공의 주동인(動因)이었다. 1997년 리믹스 앨범인 < The Remixes >의 발표 즈음에 그는 글로리아 에스테판(Gloir Estefan)의 남편이자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에밀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과 매니저 계약을 체결, 월드 스타가 되기 위한 시금석을 마련했다. 이후 등장한 작품이 바로 1998년의 < Donde Estan Los Ladrones? >(Where Are The Thieves?). 에밀리오 에스테판과 공동 프로듀스를 담당한 음반은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 1위를 무려 11주간 수성하며 샤키라 시대의 개막 축포를 터뜨렸다. 싱글 ‘Ciega, Sordomuda’, ‘Tu’ 등은 라틴 싱글 차트 정상을 꿰찼고 ‘Ojos As?’도 팬들의 폭 넓은 지지를 획득했다. 모두 라틴과 록, 중동풍 사운드의 트로이카적 조화를 일궈낸 덕분이었다. 이후 < MTV Unplugged >(2000)로 앞서 설명한 라틴 그래미 2개 부문과 그래미 라틴 팝 앨범 트로피를 차지한 그는 2001년의 < Laundry Service >로 그간 소망하던 모든 꿈을 이뤄냈다. 무엇보다 미국 마케팅을 겨냥해 대부분의 곡을 영어로 써낸 점이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 3위, 트리플 플래티넘, ‘Whenever, Wherever’(6위) ‘Underneath Your Clothes’(9위) 등의 탑 텐 히트 송이 이를 잘 대변해주었다.
노래 : Westlife (웨스트라이프)
아일랜드 남성 5인조 웨스트라이프는 비슷비슷한 보이밴드들의 범람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건히 마련한 그룹이다. 5명의 멤버가 유려한 하모니로 아름다운 발라드 중심의 팝 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의 ‘특화’된 발라드는 댄스음악 중심인 여타 보이밴드들과 구별되게 한다. 이들의 차별화 전략은 천편일률적인 댄스음악에 둔감해진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소녀 팬들의 상당한 지지를... 아일랜드 남성 5인조 웨스트라이프는 비슷비슷한 보이밴드들의 범람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건히 마련한 그룹이다. 5명의 멤버가 유려한 하모니로 아름다운 발라드 중심의 팝 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의 ‘특화’된 발라드는 댄스음악 중심인 여타 보이밴드들과 구별되게 한다. 이들의 차별화 전략은 천편일률적인 댄스음악에 둔감해진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소녀 팬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발라드를 선호하는 국내에서는 가히 절대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인기도는 보이밴드 계의 ‘절대강자’ 백스트리트 보이스나 엔싱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차트성적도 화려하다. 영국에서 지금껏 이들이 발표한 7장의 싱글은 연거푸 차트정상을 차지했다. 이는 비틀스도 감히 달성하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팬 층을 10대에서 20대 이상까지 끌어올린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렇듯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기대치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그룹이 웨스트라이프다. 브라이언 맥파든(Bryan McFadden), 키언 이건(Kian Egan), 마크 필리(Mark Feehily), 니키 번(Nicky Byrne), 셰인 필런(Shane Filan)으로 구성된 웨스트라이프는 원래 3인조로 출발했다. 6인조 그룹으로 활동하던 키언과 마크, 셰인이 보이존의 매니저였던 루이스 월시에 의해 처음 발탁되었다. 월시는 이들을 보이존의 로넌 키팅에게 소개시켜줬고, 곧 이 둘은 매니저가 되어 웨스트라이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로넌 키팅의 제안으로 브라이언과 니키를 영입해 완전한 라인업을 갖춘 웨스트라이프는 1999년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Westlife]을 발표했다. 그해 5월에 발매한 첫 싱글 ‘Swear it again’은 곧바로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앞서 말한 대로 이 싱글을 필두로 7장의 싱글이 연속 차트정상에 오른다. 2000년에 내놓은 2집 [Coast To Coast] 역시 차트를 정복하며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히트행진을 이어갔다. 발라드 외에 이들의 또 하나의 특기는 리메이크다. 이 점은 아일랜드의 선배 그룹 보이존과도 닮은꼴인데, 이들은 주옥같은 팝의 명곡들을 웨스트라이프 식으로 재해석해 옛 추억을 자극하고 있다. 익스트림의 ‘More than words’,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아바의 ‘I have a dream’, 킹스턴 트리오의 원곡으로 테리 잭스가 히트시켰던 ‘Seasons in the sun’을 깔끔하게 재생시켰다. 이들은 수많은 보이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프로듀서들에 의해 다듬어졌다. 이들의 전담 프로듀서 스티브 맥(Steve Mac)과 웨인 헥터(Wayne Hector) 외에 ‘틴 팝 히트제조기’ 맥스 마틴,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 싱크에게 곡을 써줬던 라미, 역시 브리트니 앨범에 참여했던 페르 매그누손(Per Magnusson) 등이 웨스트라이프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이처럼 프로듀서에 의존도가 높은 보이밴드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이들은 거기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해맑은 감성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이밴드로서 음악팬들에게 더 없는 만족을 주는 웨스트라이프는 충분히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핏불(Pitbull)의 본명은 아르만도 크리스티안 페레스(Armando Christian Perez) 로 미국의 랩퍼, 가수, 프로듀서이다. 핏불(Pitbull)의 본명은 아르만도 크리스티안 페레스(Armando Christian Perez) 로 미국의 랩퍼, 가수, 프로듀서이다.
노래 : Ciara (시아라,Ciara Princess Harris)
R&B, 소울 가수 R&B, 소울 가수
노래 : Wyclef Jean (와이클리프 진)
푸지스(Fugees)하면 먼저 보컬리스트 로린 힐을 떠올리게 되지만 음악의 실세는 엄연히 와이클리프 진(Wyclef Jean)이다. 산타나의 두 번째 히트곡 ‘Maria Maria’를 불러 유명해진 바로 그 인물이다. 이미 1997년 첫 솔로 앨범을 통해 푸지스의 성과에 육박하는 발군의 음악성을 펼쳐 보였던 그가 방금 2집 ‘The Ecleftic-2 Sides Ⅱ A Book’을 발표했다. 푸지스 때의 ‘Kil... 푸지스(Fugees)하면 먼저 보컬리스트 로린 힐을 떠올리게 되지만 음악의 실세는 엄연히 와이클리프 진(Wyclef Jean)이다. 산타나의 두 번째 히트곡 ‘Maria Maria’를 불러 유명해진 바로 그 인물이다. 이미 1997년 첫 솔로 앨범을 통해 푸지스의 성과에 육박하는 발군의 음악성을 펼쳐 보였던 그가 방금 2집 ‘The Ecleftic-2 Sides Ⅱ A Book’을 발표했다. 푸지스 때의 ‘Killing me softly’와 ‘No woman no cry’ 그리고 솔로 때의 ‘Guantanamera’가 증명하듯 ‘리메이크 명수’인 그는 이번에도 핑크 플로이드의 명곡 ‘Wish you were here’를 재해석했다. 더욱이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의 1970년대 컨트리 팝 히트곡 ‘The gambler’를 랩과 결합시켜 놀라움을 주는 곡 ‘Kenny Rogers-Pharoahe monch dub plate’는 ‘컨트리힙합’의 새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컨트리 송을 리메이크한 것에 대해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라고 설명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슈가힐 갱(Sugarhill Gang)과 같은 힙합도 들었지만 그 못지 않게 크리스탈 게일(Crystal Gayle)이나 찰리 다니엘스 밴드(Charlie Daniels Band) 등의 컨트리도 들었다. 그래서 케니 로저스가 내 음반에 참여해준 것은 영광이다. 내가 의사를 타진했을 때 그가 굵은 목소리로 ‘케니 로저스입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을 때 난 미치는 줄 알았다." 와이클리프 진은 "케니 로저스가 내게 전화해준 것은 내 어린 시절에 마이클 잭슨이 내게 전화해준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갖가지 퓨전과 다양한 실험이 다시 한번 농축된 앨범이다. 푸지스의 재결합설이 나도는 가운데 나왔지만 첫 곡 ‘Colombia records’로 볼 때는 그가 로린 힐, 프라스와 다시 뭉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룹의 명성보다는 개인의 자유독립을 선택한 셈이다. 신보는 빌보드 9위에 오르며 이미 골드레코드를 기록했다.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많은 이미지들이 그녀 안에서는 하나가 된다. 다이도는 1971년 크리스마스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다이도 암스트롱(Dido Armstrong)이다. 5살 때 리코더를 훔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클래식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국의 줄리아드’로 알려진 길드홀(Guildhall) 음악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10대의 대부분을 클래식 음악에 파묻혀 살았던 그녀는 피아노, 바이올린, 리코더 연주에 능했고, 작곡 실력과 노래 실력 또한 늘려 나간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클래식에 묻혀 살았다. 18살이 되어서 대중음악을 처음 접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뒤늦게 접한 대중음악의 매력은 클래식에서 맛볼 수 없는 강한 것이었고, 결국 다이도는 클래식을 버리고 대중음악 뮤지션으로 음악적 방향을 바꾼다. 여기에는 친오빠 롤로(Rollo)의 도움이 컸다. 정상급 소울 테크노 그룹 페이스리스(Faithless)의 리더였던 롤로는 일렉트로니카와 클래식의 접목을 원했고, 클래식을 공부한 동생 다이도를 멤버로 맞아들인다. 페이스리스의 멤버로 투어를 펼치며 팝 뮤지션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다이도는 ‘My lover’s gone’을 데모 앨범으로 제작하며 솔로전향을 선언했고,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에서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아카펠라나 기타, 피아노를 사용한 심플한 사운드를 생각하고 있었던 데뷔 앨범은 프로듀싱에 참여한 오빠 롤로 및 엔지니어의 요구에 따라 네오팝적인 사운드가 가미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포크 사운드가 결합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 탄생하게 된다. 이리하여 탄생한 데뷔작 < No Angel >은 1999년 6월, 자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었다. 발매 직후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시작은 ‘Here with me’였다. 미국 TV 시리즈인 < 로스웰 >(Roswell)에 이 곡이 테마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이어 기네스 펠트로우 주연의 영화 < 슬라이딩 도어스 >(Sliding Doors)에 그녀의 곡 ‘Thank you’가 삽입된다. 별 반응 없이 사라져가던 < No Angel >은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그와 때맞추어 인기 래퍼 에미넴(Eminem)이 자신의 곡 ‘Stan’에 다이도의 곡 ‘Thank you’를 샘플링으로 사용한 덕분에 그녀의 음악과 이름은 뒤늦게 널리 퍼지게 됐다. (‘Stan’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바로 다이도!). 이 곡은 2001년 빌보드 톱10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다이도는 이 무렵 고국 영국에 돌아와 마침내 인기스타로 올라섰고 에미넴도 ‘Stan’으로 첫 영국차트 1위의 영예를 누리며 서로 도움을 교환했다. *Dido Interview http://nine4u.asiamusic.net/dj/program.asp?popstory+15
노래 : Justin Timberlake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과 함께 어린 시절 디즈니 채널의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면서 ‘엔터테이너’로써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96년에 엔싱크에 참여했고, 2년 뒤인 1998년에 엔싱크의 첫 음반 < ’Nsync >가 발표되었다. 데뷔 음반에서는 ‘I want you back’가 준(準)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발표된 2집 < No Strings Attached >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얻었다. ‘Bye bye bye’, ’It’s gonna be me’ 등의 박진감 넘치는 댄스곡들은 메가 히트를 달성하였고, 음반은 2주일만에 더블 플래티넘을 획득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틴에이저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가공할 만한 엔싱크의 파워는 당시 인기 정상에 올라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Bakcstreet Boys)를 차츰 뒷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저스틴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3집 < Celebrity >(2001년)부터. 작곡가로써, 공동 프로듀서로써 저스틴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첫 싱글이었던 ’Pop’, ‘Celebrity’, ‘Gone’등의 주요 곡들을 포함한 7곡이 저스틴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다섯 곡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그러나 엔싱크는 어디까지나 풍선껌처럼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10대들의 버블검 밴드였다. 슈퍼급 보이밴드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가면서 엔싱크도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었다. 특히 독립을 꿈꾸던 저스틴에게 틴에이저들의 트렌드를 지향해야하는 보이밴드에서 자신의 음악적 포부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저스틴은 솔로로 나섰다. 그 스스로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첫 솔로 음반 < Justified >는 < Celebrity >에서 보여주었던 재능을 한층 발전시켜 아티스트로써의 가능성 또한 내비친 작품이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넵튠스(The Neptunes)와 팀발랜드(Timbaland), 그리고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의 음반 작업 참여 또한 데뷔 음반의 퀄리티를 높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 이에 힘입어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은 2002년을 빛낸 음반 중 하나로 저스틴 팀벌레이크의 < Justified >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 문제는 연령층이다. 저스틴의 음악은 다분히 십대 후반과 이십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팬 층은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틴에이저들이기 때문이다. < 타임 키즈 매거진 > 등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 ‘보이밴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어렵다. 대형 아티스트로 도약하려하는 저스틴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팬 연령 스펙트럼의 확대이다.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잘 들리는 피아노 멜로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소울 식의 고전적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이며, 이 때문에 1970년대 여성 소울의 거성인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재래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복고형 R&B라고 하기보다는 거기에다 현대적 힙합 분위기를 삼투한 최신 스타일을 부각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반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블루스와 재즈에 뿌리를 둔 음악을 현대적 창구로 전달하는 셈인데 실제로 피아노의 선율, 1970년대 풍의 소울 창법, 세련된 힙합 분위기가 어울린 그녀의 ‘모던한’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는 2001년에 발표되어 화려히 인기차트를 누볐다. 미국 뉴욕 토박이로 1982년에 태어난 앨리샤 키스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자신의 미래분야로 삼아 맨하탄의 퍼포먼스 아트 스쿨(Performance Art School)에서 합창을 훈련했고 10대 내내 피아노교습에 열중한다. 이 합창과 피아노는 훗날 데뷔 앨범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피아노 외의 다른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 편곡 등 음악작업 전반에 걸친 실력과 감각을 쌓았다. 고교를 졸업한 16살에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학업을 도중 포기했고 대신 1998년 명문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다. 아리스타 사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 의해 픽업된 관계로, 그가 1999년 아리스타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 제이(J)를 출범시키자 앨리샤도 그를 따라 제이 레코드사로 적을 옮기게 된다. 19살이던 2001년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은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자신이 프로듀스한 첫 싱글 ‘Fallin’’은 전미차트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각별한 신구(新舊)결합형 음악은 시장 뿐 아니라 마침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그리고 그래미상이라는 공인 절차마저 거뜬히 통과했다.
1990년대 중반 어른 뺨치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2001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R&B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셔(본명: Usher Raymond)는 1979년 미국 테네시(Tennessee)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인 조네타 패튼(Jonnetta Pat... 1990년대 중반 어른 뺨치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2001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R&B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셔(본명: Usher Raymond)는 1979년 미국 테네시(Tennessee)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인 조네타 패튼(Jonnetta Patton,이후 그의 매니저로서 활동한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며 역량을 키운다. 아틀란타(Atlanta)로 이주해 온 그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벌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출중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1992년 라페이스(LaFace) 레코드사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브라이언트 레이드(Bryant Reid)의 눈에 들게 된다. 라페이스 레코드사 공동 대표 안토니오 “엘에이” 레이드(Antonio "LA" Reid)의 동생이었던 그는 형에게 이 출중한 소년을 소개했고, 어셔 레이먼드는 1994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안토니오 “엘에이” 레이드(Antonio "LA" Reid)와 퍼프 대디를 프로듀서로 삼아 데뷔 앨범 < Usher >를 선보인다. 14살 어린 소년의 음악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며 큰 인기를 누렸다. ’Think of you’가 R&B 차트 톱10(팝에선 58위) 히트를 기록했으며 앨범 또한 골드를 획득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1995년에는 ‘코카콜라’ 음료수 회사의 레코딩에 나섰으며, 남성 R&B 그룹인 블랙 멘 유나이티드(Black Men United)의 ‘You will know’에 입을 보탰다. 이어 영화 < Jason’s Lyric >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으며, 모니카(Monica)와 듀엣 곡 ’Let’s straighten it out’을 부르기도 했다. 어셔가 가진 매력은 남다른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가져야 할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인 못지 않은 감성을 이끌어 내는 매력은 어느 뮤지션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의 재기는 1997년의 두 번째 앨범 < My Way >로 용트림을 한다.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베이비페이스(Babyface)를 공동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끌어 들였고, 이들의 참여는 어셔의 탁월한 재능이 돋보이게끔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18살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내 놓은 이 앨범에서 그는 소년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며 ‘보이 투 맨’ 한다. 직접 곡 작업에도 참여하여 9곡의 노래 중 6곡에 참여하였으며, 보컬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년의 티를 벗은 그에게 대중은 열렬한 지지의 뜻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첫 싱글로 커트 된 정통 R&B 곡 ’You make me wanna’는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차트 2위에 7주 동안 머무르게 된다. 당시 1위 곡이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과 맞물려 14주간 굳건히 1위를 지킨 엘튼 존(Elton John)의 ’Candle in the wind ’97’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곡의 인기가 다른 1위 곡들에 못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기행진은 쉴 틈 없이 계속되었다. 힙합 스타일의 ’Nice and slow’가 1998년 드디어 차트 정상을 정복했고, 동명 타이틀의 ‘My way’도 차트 2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노래까지 세 싱글은 모조리 플래티넘(100만장)을 기록했다. 한편 미드나잇 스타(Midnight Star)의 곡을 리메이크한 ’Slow jam’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거물급 프로듀서들말고도 낯익은 뮤지션들이 참여해 ’Slow jam’에는 모니카(Monica)가, ’Just like me’에는 릴 킴(Lil’ Kim)이 참여했다. 1997년 흑인 음악계를 이끌어 갈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 받은 어셔는 97년 소울 트레인 어워드(Soul Train Award)에서 ’Best R&B Single by a Male’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으며, 그레미(Grammy)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최고의 R&B 스타로 등극했지만 그는 춤과 연기에도 재주를 가진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수준 급의 연기로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는 1998년 호러 영화인 < 더 패컬티 >(The Faculty)에 연기자로 출연했고, 이후 학교 드라마인 < 라이트 잇 업 >(Light It Up) 등 3작품에서 가수 이외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앨범의 성공 이후 라이브 투어 활동에 진력하던 어셔는 2000년 싱글인 ‘Pop ya collar’를 발표하며 컴백한다. 미국 뮤지션인 그에게 이 곡은 색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었는데 이 곡은 자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2001년 2월 영국 차트 2위의 성공을 이끌어 낸다. 2000년 11월 2.5집이라고 할 < All About U >를 내놓았으며 < All About U >의 곡들에 새로운 싱글들을 더해 2001년 8월 < 8701 >을 내놓는다. 발매 이전에 이미 싱글 ’U remind me’가 발매 4주만에 정상을 밟은 이 앨범은 전작에 참여했던 거물급 뮤지션들이 다시 손을 걷었음은 물론 어셔 자신 또한 이전 앨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뽐내고있다. 사실상 세 번째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 8701 >은 정통 R&B 곡들의 매력이 주를 이루면서도 지난 앨범보다 힙합에 더 치중한 듯 보이며, 스패니시 요소를 삽입하는 등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성숙한 기량을 드러내고있다. 역시 차트 정상을 밟은 두 번째 싱글 ’You got it bad’는 한국 그룹인 지오디(god)의 곡 ‘길’과 표절 논란이 일며 한국 팬들에게도 관심을 끌었다.
노래 : Christina Aguilera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국에도 최근 10대 댄스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음악계의 교사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도리어 한국 음악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있는 곡 ‘Genie in a bottle’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라는 이름의 여가수다. 올해 나이 겨우 18살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뛰어난 미모를 소유해 노래 이상으로 가수 본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티나를 출세시킨 곡 ‘Genie in a bottle’은 물론 댄스음악이다. 이러한 10대 여가수 선풍은 벌써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상반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소녀가수 얘기로 팝계가 한바탕 떠들썩했다. 크리스티나처럼 미모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7살이며 역시 댄스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크리스티나와 브리트니는 모두 올란도 지역의 TV 쇼프로 ‘미키 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다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미국 음반업계의 스타시스템이 그간의 록 그룹이나 성인 여가수 중심에서 ‘미모의 틴에이저 여가수’를 키우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근래 국내 가요계의 모습과 비슷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아무리 어린 여가수를 뽑아내 홍보와 마케팅으로 스타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본’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 기본이란 바로 가수의 필요조건인 가창력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확실히 증명한다. 얼핏 금발의 미모라서 비디오만 믿고 내보낸 것 같지만 실은 나이답지 않게 노래를 잘한다. ‘Genie in a bottle’외에 그녀의 데뷔작에 수록된 곡 ‘I turn to you’ ‘So emotional’ ‘Reflection’ 등은 기성 가수가 들어도 인정할 정도의 노래 실력이다. 우리의 어린 여가수처럼 듣기가 전혀 거북하지 않다. 특히 발라드 ‘I turn to you’는 감정처리마저 아주 능란하다. 어린 백인 여가수치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흑인 리듬 앤 블루스의 소화력이 뛰어나다. 크리스티나의 포부는 감각이나 앳된 외모를 내세운 하이틴 스타가 아니라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디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반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팝계에 어린 여가수 붐이 일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같거나 또는 앞서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노래 : Mario (마리오,Mario Barett)
*1986년 미국 생. 본명은 마리오 버레트(Mario Barett). *스스로를 '보이 원더(Boy Wonder)'라 칭할 정도로 R&B의 거장 스티비 원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브라이언 맥나이트, 어셔, 마이클 잭슨 등을 우상으로 성장. *14살 되던 해, 현존하는 팝계 최고의 마이다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제이 레코드(J Records)와의 메이저 계약이... *1986년 미국 생. 본명은 마리오 버레트(Mario Barett).
*스스로를 '보이 원더(Boy Wonder)'라 칭할 정도로 R&B의 거장 스티비 원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브라이언 맥나이트, 어셔, 마이클 잭슨 등을 우상으로 성장.
*14살 되던 해, 현존하는 팝계 최고의 마이다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제이 레코드(J Records)와의 메이저 계약이라는 개가를 올림.
*2002년 , 의 연속 Top 10 히트를 통해, 데뷔 앨범 [Mario]가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오름.
*어셔, 알 켈리 보컬의 장점만을 취한 듯 빼어난 노래 실력, 영화계로부터 지속적인 러브 콜을 받을 정도의 수려한 외모로 어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과 어깨를 견줄 최고의 차세대 슈퍼스타로 집중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음.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81년 9월 12일 (미국) 수상 2007년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영화 드림걸즈 (에피 화이트 역/2006)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81년 9월 12일 (미국)
수상 2007년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영화 드림걸즈 (에피 화이트 역/2006)
노래 : Chris Brown (크리스 브라운)
노래 : B2K (비투케이)
1997년, 지 부그(J-Boog)와 릴 피즈(Lil’ Fizz), 래즈 비(Raz-B)라는 코흘리개 친구들이 가수의 꿈을 품고 결성한 B2K. IMx의 멤버 배트맨(Batman)의 사촌 동생(지 부그)과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마크스 휴스턴(Marques Houston)과 작업한 크리스 스톡스(Chris Stokes)의 친척(래즈 비)이 뭉쳤다는 소문만으로 기대와 총아를 받기에 충분했... 1997년, 지 부그(J-Boog)와 릴 피즈(Lil’ Fizz), 래즈 비(Raz-B)라는 코흘리개 친구들이 가수의 꿈을 품고 결성한 B2K. IMx의 멤버 배트맨(Batman)의 사촌 동생(지 부그)과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마크스 휴스턴(Marques Houston)과 작업한 크리스 스톡스(Chris Stokes)의 친척(래즈 비)이 뭉쳤다는 소문만으로 기대와 총아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후 TV 광고에서 활약하던 오마리온(Omarion)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팝 스타로의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크리스 스톡스의 지휘 아래 보컬과 댄스를 연마해 가던 중, LA에서 개최된 신인 발굴 오디션에 출전, 레코드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뉴욕 본사로부터 호출 받는 행운이 찾아온다. 총수, 사장 등 여러 중역 앞에서 당당하게 퍼포먼스로 펼쳐 보인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고 즉시 데뷔전 준비에 들어간다. 물론 릴 바우 와우(Lil Bow Wow)의 투어와 MTV, 소울 트레인, 폭스 패밀리 채널 등에 출연하면서 21세기 만능 팝 스타가 되기 위한 갖은 경험 쌓기에도 주력했다. 그러던 중 발매된 데뷔 싱글 ‘Uh huh’는 어셔(Usher)와 블루 캔트렐(Blu Cantrell)의 곡을 만든 크리스 “트리키” 스튜어트(C. “Tricky” Stewart)가 프로듀스하여 트렌트를 정확히 꿰찬 리듬과 멤버들의 고운 미성을 부각시켰는데, 호시탐탐 적기만을 노리고 있던 B2K는 이 곡과 함께 10주 연속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메인 스트림으로 점핑한다. 비록 수상까지 가지는 못했으나 BET 어워드에서 세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영국 투어에서 개막 공연을 맡는 등 등장하자마자 종횡무진 인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세를 몰아 조속히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 < B2K >는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브라이언 마이클 콕스(Bryan Michael Cox) 등 호화 제작진이 참여하여 파워풀한 역동성과 스무디한 유연성을 동시에 갖췄다. ‘Uh huh’의 뒤를 이어 ‘Gots ta be’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한 달 후에는 리믹스 음반 < B2K; The Remixes Vol. 1 >과 크리스마스 앨범 < Santa Hooked Me Up >을 차례로 발매한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발포한 두 번째 정규 앨범 < Pandemonium! >에서 피 디디(P. Diddy)와 알 켈리(R. Kelly)가 서포트한 메가 히트 싱글 ‘Bump, bump, bump’으로 다시 한번 차트를 점령한다. 풋내기 티가 풀풀 풍기던 전작에 비해 이제는 듬직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것이 확연히 눈에 띄는데, 오래 전에 맥이 끊긴 흑인 보이밴드의 자존심을 지킨 것을 격찬하며 (지난번 약만 된통 올렸던) BET 어워드가 베스트 그룹상을 포함한 두 개의 상을 수여했다. 멤버들이 주연한 영화 < You Got Served >(2004년)의 사운드 트랙까지 포함해 총 다섯 장의 음반을 반년 동안 팔아치웠다. 2002년 하반기 차트에서 B2K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속도에 불을 붙이다보니 정통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신통하게도 아이들은 그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보이밴드의 수명을 간파하여 일망타진 전법으로 한꺼번에 밀어 붙인 것이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21세기를 대표하는 팀이 되겠다는 뜻의 B2K라는 이름이 얼마나 후대에 전해질지는 의문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목 < Dark Side Of The Moon >처럼 팝계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프린스, 레이 파커 주니어 등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한테서도 상당한 지지기반을 획득했고, 이것은 곧 블랙뮤직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흑인 음악의 변질이라며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샤데이는 이렇게 회색(?)으로 변색되던 검은 ...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목 < Dark Side Of The Moon >처럼 팝계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프린스, 레이 파커 주니어 등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한테서도 상당한 지지기반을 획득했고, 이것은 곧 블랙뮤직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흑인 음악의 변질이라며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샤데이는 이렇게 회색(?)으로 변색되던 검은 음악을 다시 정상의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샤데이의 음악은 검정색 테두리 안에서 다중적(多重的)이다. 리듬 앤 블루스와 재즈, 소울이 있고, 펑키(funky)함도 한 기둥을 이루고 있다. 노래의 분위기마다 그녀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지만 일정한 스타일이 있다. 그것은 샤데이의 관능과 유연함이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종의 결합은 음악의 퓨젼(fusion)이라는 이상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어머니를 따라서 영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이 흑진주는 어머니의 고향 영국에서 패션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모델 활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악에 대한 흑인의 선천적인 감각과 백인의 후천적인 노력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상적인 결합이 되어 샤데이라는 보석을 가공한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몸담았던 펑크(funk) 밴드 프라이드(Pride)에서 나와 공개한 1984년의 솔로 데뷔 앨범 < Diamond Life >는 검은 진주의 화려한 비상(飛上)이었다. 200만장이 팔린 이 음반은 싱글 ‘Smooth operator(5위)’와 ‘Your love is king(54위)’ 등을 잉태했고, 그녀는 1985년도 그래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샤데이와 그래미와의 친분(?)은 1993년의 최우수 리듬 앤 블루스 보컬 그룹상과 2001년도 최우수 팝보컬 앨범까지 지속되었다. ‘Sweetest taboo(5위)’와 ‘Never as good as the first time(20위)’가 수록된 1985년의 소포모어 앨범 < Promise >는 1집의 인기가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1988년과 1992년에 발표한 < Stronger Than Pride >와 < Love Deluxe >에서는 ‘Paradise(16위)’와 ‘No ordinary world(28위)’, ‘Kiss of life(78위)’ 같은 곡들만이 준 히트를 기록하는 부진을 보였다. 2000년에는 8년 동안의 공백 기간을 깨고 < Lovers Rock >으로 팝계에 복귀했지만 평단의 호평과 대중들의 반응은 많은 차이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By your side’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Angie’s Black Diamond 언젠가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은 ‘소울의 새 여왕들(New Queens of Soul)’이란 제목으로 흑인 여가수 16인의 이미지 포토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살펴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굵직한 여가수들이 대거 뽑혔다. 매이시 그레이, 에리카 바두, 메리 제이 블라이지, 인디아 아리, 미시 엘리어트, 질 스코트, 페이스 에반스, 로린... Angie’s Black Diamond 언젠가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은 ‘소울의 새 여왕들(New Queens of Soul)’이란 제목으로 흑인 여가수 16인의 이미지 포토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살펴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굵직한 여가수들이 대거 뽑혔다. 매이시 그레이, 에리카 바두, 메리 제이 블라이지, 인디아 아리, 미시 엘리어트, 질 스코트, 페이스 에반스, 로린 힐, 알리샤 키스 그리고 그 외 한 장의 티켓은 바로 앤지 스톤(Angie Stone)의 몫이었다. 앤지 스톤은 세기말과 새 천년에 걸쳐 폭발한 네오 소울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으로, 이미 비평계로부터 찬사를 획득했다. 복고 소울과 모던 힙합/R&B를 절묘하게 뒤섞은 데뷔 앨범 < Black Diamond >(1999)의 반짝이는 결과물이 그의 잠재력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 스스로 음반 제작 능력을 보였고, 노래 솜씨 역시 발군의 기량을 보였기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전통 소울을 그리워했던 이들에게 흑인 음악의 옛 유산을 토해낸 앤지 스톤의 소리샘은 절로 흥에 겨웠을 것이다. 즉 1999년 그래미상을 석권한 로린 힐(Lauryn Hill)을 굳이 마이클 잭슨에 비유하자면 앤지 스톤은 프린스에 가깝다. 푸지스와 연계된 로린 힐이 좀더 ‘주류 지향적 뮤직’으로 흑백 청중 모두를 사로잡았다면 앤지 스톤은 ‘퍼펙트 블랙 서클’을 그리며 다수 흑인들에게 환영받는 쪽을 택했다. 이는 프린스의 자양분을 흡수했고 팔세토 창법을 섬세하게 표출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앤지 스톤은 35세 때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사자 머리’ 매이시 그레이(Macy Gray)가 스물 아홉에 데뷔한 것보다 훨씬 느리다. 똑같이 서구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매이시 그레이의 데뷔작 < On How Life Is >가 1999년 7월 세상에 나왔고, 앤지 스톤의 데뷔작은 같은 해 9월 출시됐다. 원래는 1980년대 초반 등장, 첫 번째 메이저 여성 힙합 팀으로 기록된 시퀀스(The Sequence)의 리드 싱어/래퍼로 활동했고, 이후 힙합/알앤비 혼성 트리오 버티컬 홀드(Vertical Hold)에 몸담으며 2장의 음반을 발표했었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코 데뷔 지각생인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디안제로(전남편)와 레니 크라비츠(음악 친구)를 작업 파트너로 만나기 전까진 완전 무명에 가까웠다. 결국 오랜 기간 지하세계에서 땀흘린 대가는 훗날 성공으로 보상받았다. ‘음반 업계의 거물인사’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새 왕국 < J > 레코드사를 설립하자 앤지 스톤은 보금자리를 그곳으로 옮겼다. 1집 음반이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전(前) 소속사 < 아리스타 >에서 발매됐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개된 2집 < Mahogany Soul >(2001)은 레니 크라비츠와 디안젤로, 그리고 프린스의 개성을 흡수, ‘여성 프린스의 등장’을 알린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3년 뒤 내놓은 3집 < Stone Love >(2004)의 내용물도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지금까지 ‘No more rain (In this cloud)’, ’Brotha’, ’Wish I didn’t miss you’, ’I Wanna thank ya’ 등의 싱글을 쏟아낸 3장의 음반이 전부 평단의 찬사를 획득했고, 흑음(黑音) 팬들에게 널리 환영받았다. 196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콜롬비아에서 앤젤라 라베른 브라운(Angela Laverne Brown)이란 본명으로 태어난 그가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뿌리내리는 데는 가스펠 그룹에서 노래했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 자신의 음악적 영웅을 묻는 질문에 그는 아레사 프랭클린과 도니 하더웨이, 스모키 로빈슨과 마빈 게이를 주저 없이 손꼽았다. 1집 < Black Diamond >의 수록곡으로 마빈 게이의 ‘Trouble man’이 커버됐다는 것이 그 사실을 대번 입증해준다.
우탱 클랜의 소림 검법이 예전만큼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군웅할거의 중원 무림계를 평정하고, 나아가 전 세계 인구 중 5퍼센트만이 지구 종말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며 ’ 5 Percent Nation’라는 신흥 종교를 전파시키는데 앞장섰던 그들의 패밀리 파워가 점차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들의 공동체 네트워크는 틈이 갈라져 보이고, 음악 역시 답보 상태에 있다. 위기의 우탱 클랜이여, 다시 한번 지구촌을 ... 우탱 클랜의 소림 검법이 예전만큼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군웅할거의 중원 무림계를 평정하고, 나아가 전 세계 인구 중 5퍼센트만이 지구 종말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며 ’ 5 Percent Nation’라는 신흥 종교를 전파시키는데 앞장섰던 그들의 패밀리 파워가 점차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들의 공동체 네트워크는 틈이 갈라져 보이고, 음악 역시 답보 상태에 있다. 위기의 우탱 클랜이여, 다시 한번 지구촌을 진동시킬 신공을 만들어 부활하라!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가져온 결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거와 같다. 우탱 클랜이 현재 너무나 많은 무리수를 두고 있다. 9명으로 시작한 우탱 패밀리는 200명, 400명을 넘어서더니 이제는 어느새 그 수를 헤아리기가 벅찰 정도다. 계속되는 가지치기로 인하여 누가 우탱 패밀리의 적자(嫡子)인가 서자(庶子)인가 하는 문제가 거론되고, 상당한 양의 힙 합/ 리듬 앤 블루스 앨범에서 소림 검법의 크레딧이 남발되고 있다. 또한 우탱 클랜의 리더이자 음악 감독인 르자(Rza)의 혁명적이라고까지 불렸던 프로듀싱 능력도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잦은 품앗이를 해줌으로써 오히려 반감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르자의 프로듀서로 발표되는 음반들이 대부분 비슷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메소드 맨(Method Man)이라는 최고의 인기 래퍼를 탄생시켰던 멤버들의 솔로 활동도 도를 넘어서 일일이 체크할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뿐이 아니다. 우 맨션(Wu Mansion)에서 함께 살며 진정한 공동체를 이끌어나가자고 다짐했던 그들의 신념은 멤버들의 잦은 사건/사고로 인해 이미 물거품이 된지 오래다. 최근 몇 년간 마약 소지와 테러 협박, 불법 운전 등으로 법원과 감옥을 오가고 있는 올 더티 배스터디(Ol’ Dirty Bastard)의 부적절한 행동이 잘 말해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2000년 3집 앨범 부터 배스터디가 빠지고 우탱 사단의 일원인 카파도나(Cappadonna)가 가세했을까. 이런 여러 정황 때문에 언론에서는 우탱 클랜이 소림사에서 하산 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계속 내보냈다. 팬들의 대부분도 어느 정도는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그룹의 해체설에 대해 르자는 ‘멤버들이 우탱을 떠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며, 우탱 포에버를 연신 외쳐댔다. 그리고 불안한 소문을 일축시키기라도 한 듯 2001년 12월 우탱 클랜은 4번째 작품 을 발표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선 신보 ’We back’, ’Wu is back’을 서로 외쳐대며 우탱 클랜은 신보에서 자신들의 귀환을 알리고 있다. 3집 음반을 낸 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컴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이상할 법도 한데 이번 경우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것은 팬뿐만 아니라 멤버들 스스로도 전작 의 음악적 지지부진을 인정한다는 것이었고, 그간에 불거져 나왔던 우탱 패밀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탱 클랜의 4집은 컴백 작품이라고 불릴만한 차별되는 장치들을 포함하고 있을까.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르자의 프로덕션이다. 그 동안 B급 호러 무비나 무협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침한 사운드와 갖가지 샘플링, 마이너 코드를 이용한 어두운 피아노의 루핑, 그 뒤를 무겁게 받쳐주는 드럼 등으로 닥터 드레(Dr Dre)의 웨스트 코스트와는 완전히 차별화 된 ’우탱 힙 합’을 창조해냈던 르자의 사운드 메이킹은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 화려함으로 치장했다. 방방 뛰는 혼 섹션, 경쾌한 드럼, 신나는 코러스 라인 등으로 무장한 사운드는 예전의 축 처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선 모습이랄까. 첫 싱글로 내놓은 ’Uzi (Pinky ring)’, 여성 래퍼 메덤 디(Madame D)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Babies’ 등의 트랙들이 대변해준다. 그리고 르자가 주도하는 프로듀싱에 트랙마스터스(Trackmasters)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 프로덕션(Organized Noize Production)의 리코 웨이드(Rico Wade)가 가세한 점도 사운드의 질적 변화를 이끈 중요 요인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올드 스쿨 랩의 전통을 밟았던 곡 구조도 ’보컬’을 삽입시키며 일신했다. 리듬 앤 블루스의 노래와 올드 스쿨의 래핑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듣기 좋게 만들어진 것이다. 역시 메덤 디가 참여한 ’Chrome wheels’, 블루스의 질퍽한 감정을 접할 수 있는 ’One of these days’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911 테러에 대한 고스트페이스 킬러(Ghostface Killah)의 거침없는 지껄임이 인상적인 ’Rules’, 아이즐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의 론 아이즐리(Ron Isley)가 피처링한 ’Back in the game’도 주목할 만한 넘버들이다. 우탱은 영원하다 우탱 클랜은 1992년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결성되었다. B급 중국 무술 영화광들이었던 동네 친구들과 친척들로 이뤄진 그들은 이슬람교에서 갈라져 나온 한 종파인 ‘5% Nation’에 몰두하며 서로 음악을 하기 이전부터 공통된 의식을 공유했다. 그룹의 음악 컨덕터 르자를 중심으로, 즈자(Gza), 올 더티 배스터드, 마스터 킬러(Master Killa), 메소드 맨, 인스펙터 데크(Inspectah Deck), 레이퀀(Raekwon), 고스트페이스 킬러, 유 갓(U-God) 등의 아홉 명이 그들이다. 1991년 발표한 데뷔 싱글 ’Protect ya neck’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좋은 반응은 얻자, 그들은 2년 뒤인 1993년 데뷔작 를 내놓았다. 이 음반으로 비평과 상업적 면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웨스트 코스트의 닥터 드레에 비견될만한 이스트 코스트의 대표주자로 단숨에 떠올랐다. 우탱 클랜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아홉 명의 멤버들은 1994년 메소드 맨(Method Man)의 솔로 앨범 을 시작으로 다양한 음반 작업과 솔로 프로젝트를 벌이며 홀로 서기에도 성공하는 등 안팎으로 우탱 패밀리의 위력을 과시했다. 이후 그들은 힙 합 앨범의 클래식으로 꼽히고 있는 1집의 네임밸류를 1997년 소포모어 음반 로 지켜나갔고, 2000년에는 3집 , 1년 뒤인 지난해에는 네 번째 작품 을 공개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 상태에 머물고만 있는 우탱 클랜이 신보를 계기로 전진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앨범에 풍성함을 덧입히는 새 전략을 구사했지만, 과연 데뷔 앨범의 투박함과 검소함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 통할지가 문제다. 빌보드 앨범 차트 32위라는 순위로 그에 대한 해답은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가 있다. 십시일반으로 멤버들이 돈을 모아 어렵게 만든 데뷔작의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처음 그대로의 마음가짐을 유지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나친 부탁일까.
멤버 : 베스 디토(보컬, Beth Ditto), 브레이스 페인(기타, 베이스, Brace Paine), 한나 브릴리(드럼, Hannah Blilie) 멤버 : 베스 디토(보컬, Beth Ditto), 브레이스 페인(기타, 베이스, Brace Paine), 한나 브릴리(드럼, Hannah Blilie)
노래 : MGMT (엠지엠티)
앤드류 밴웨인가든 (Andrew VanWyngarden) 벤 골드바서 (Ben Goldwasser) 앤드류 밴웨인가든 (Andrew VanWyngarden)
벤 골드바서 (Ben Goldwasser)
노래 : Avril Lavigne (에이브릴 라빈)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에 들어앉아 아버지에게 빌린 기타로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의 ’Fly Away’등을 카피하며 반항적인 로커를 동경했다. 이 예비 슈퍼 스타는 자신이 출연했던 지방 행사에 휴가 차 들린 [아리스타 레코드(Arista Records)] 경영자 겸 저명한 프로듀서 안토니오 LA 리드(Antonio ‘L.A.’ Reid)의 러브 콜을 받아 L.A.로 음악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이후 작곡가인 클리프 매그니스(Clif Magness)와 심혈을 기울여 곡 작업에 들어가는 등, 데뷔 앨범의 준비에 만반을 기울였다. 첫 싱글 ‘Complicated’가 그 시작이었다. [MTV]의 간판 프로그램 [TRL]에서 인기를 모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곡은 톱 40 라디오에서도 1위에 등극하며 걸 록 전성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어 발표한 공식 1집 [Let Go]는 빌보드 앨범 차트(2위)를 비롯한 각국 차트의 정상권에서 마음껏 뛰놀며 차세대 록 주자의 탄생을 신고했다. 미국 내에서만 600만장이라는 매머드 석세스를 쾌척했으며 후속 싱글 ‘Sk8er Boy’도 톱 텐에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팬들이 < 롤링 스톤 >에서 실시한 ‘당신의 아메리칸 아이들은 누가 될 것인가’라는 투표에서 그녀를 1순위로 꼽으며 대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오랜 기간의 꿈이 이루어진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에이브릴 라빈은 3000천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한 한국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끝마치는 등, 현재의 범세계적인 센세이션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곳곳에서 증명해나갔다. 이러한 국제적인 호응은 곧 최고의 음악 잔치인 < 그래미 시상식 >으로 이어졌다. 모두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에이브릴 라빈은 멋진 라이브 공연권도 손에 쥐며 수상에의 기대를 부풀렸다.(그래미에서는 그 동안 공연을 치른 뮤지션들이 트로피를 많이 가져갔다.) 그러나 9.11의 여파로 뉴욕풍 재즈를 시범한 노라 존스(Norah Jones)에게 상이 몰리며 에이브릴 라빈은 빈손으로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미국인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그녀의 음악이 너무 거칠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국인 캐나다에서는 달랐다.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 주노 어워드 >는 에이브릴 라빈에게 최우수 앨범과 최우수 팝 앨범 등, 모두 4개의 트로피를 안겨주며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 로커에게 따뜻한 환대식을 치러주었다. 이 때부터 상복이 줄줄이 터져 [머치 뮤직 시상식]에서는 2관왕을, 2002년 [MTV VMA]에서는 신인상을, [MTV Latin America VMA]에서는 최우수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상을 싹쓸이했다. [Nickelodeon Kids Choice Award]의 최고 인기곡상과 [Teen Choice Music Award]의 최우수 싱글상도 그녀의 몫이었다. 둘 모두 ‘Sk8ter boy’의 선전 덕분이었다. 3번째 싱글 ‘I’m With You’가 발매되자 한번 붙은 인기의 화염은 더욱 높이 치솟아 올랐다. 팝 싱글 차트에서 4위에 오른 이 매력적인 발라드 트랙은 어덜트 팝 차트에서도 4위를 꿰차며 팬 베이스의 연령층을 높이는데 견인차의 역할을 해주었다. 화끈한 록 넘버 ‘Losing Grip’을 차트 중위권에 올려놓는 것으로 에이브릴 라빈은 공식적인 1집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노래 : Pink (핑크,Alicia Beth Moore)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라페이스 >가 선택한 가수답게 핑크는 충분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진 가수다. 197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핑크는 음악가정에서 성장했다. 밥 딜런과 돈 맥클린의 노래를 기타로 즐겨 치곤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러 클럽을 순회하며 댄스와 힙합에 젖어들었으며, 14살 때에는 처음으로 노래를 작곡했다. 얼마후 이를 눈여겨본 음반사 관계자에 의해 오디션을 보게 되지만 탈락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핑크는 초이스(Choice)라는 여성 3인조 그룹을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 라페이스 >에 보냈다. 다행히도 그 테이프가 통과되어 핑크는 당당 < 라페이스 > 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얼마 후 초이스는 해체되고 핑크는 솔로로 독립했다. 그 첫 행보가 2000년 출시된 데뷔앨범 < Can’t Take Me Home >이다. ‘마이다스의 손’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 그리고 대릴 시몬의 손길이 닿은 이 앨범은 새로운 여성 R&B 스타를 탄생시켰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요즘의 프로듀서진들이 얼마만큼 뛰어난 지 느낄 수 있다. 꽉 찬 사운드에 탄탄한 곡 구성력은 감탄할 정도다. 가히 ‘프로듀서들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프로듀서들은 핑크의 매력적이고 원기 충만한 보컬을 충분히 부각시켰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의 곡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색. 데뷔 싱글 ‘There you go’은 TLC의 ‘No scrub’을 만들어 크게 히트시켰던 섹스피어(She’kspeare)가 작곡한 곡이다. 펑키함이 꿈틀거리는 이 곡은 톱10 히트를 기록했다. 닐 크리크의 곡을 샘플링한 발라드 곡 ‘Let me let you know’에서 핑크의 보컬은 머라이어 캐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내 모 틴 여가수가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기도 한 ‘Most girls’ ‘Just to be loving you’ 같은 곡에서의 검은 정글 리듬은 근래 틴 팝의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체적으로 TLC의 영향이 감지되는 가운데 틴 팝과 머라이어 캐리 풍의 발라드도 함께 구사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재능을 지녔지만 1집만 가지고 본다면 이 앨범의 영광은 프로듀서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2001년 6월에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야, 릴 킴과 함께 영화 < 물랑 루즈 >의 삽입곡 ‘Lady Marmalade’를 불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노래 : The Script (더 스크립트)
노래 : Alexis Jordan (알렉시스 조던)
노래 : Scouting For Girls (스카우팅 포 걸즈)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를 즐겨 듣는 정도였다. 그러나 선생님의 용안은 훗날 전미를 정복할 한 소녀의 잠재력을 미리 점치고 있던 것이다. 비록 시작은 타의였으나, 점차 켈리 클락슨의 내면에서도 노래를 향한 열정의 꽃망울이 싹트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발성 연습으로 창법을 연마해가던 중, 지역 내 콘테스트에서 진가를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학교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할리우드 행을 택했지만 이름 없고 연줄 없는 시골 소녀를 자선할 만큼 인정 많은 곳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켈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제리 고핀(Gerry Goffin)마저 병으로 몸져누우면서 희망의 빛줄기는 한순간에 소멸해버렸고, 결국 웨이트리스와 극장 아르바이트, TV 드라마 < 사브리나 >에서 대사 없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막연히 호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민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참가 신청서는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서광의 실마리였다. 이미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여유롭게 오디션에 응해 본선까지 진출하게 된다. 꾸준히 단련해온 가창력과 전형적인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음색,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성실하고 다부진 캐릭터가 TV를 시청하는 전국의 수백만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마침내 저스틴 구아리니(Justin Guarini)와 겨룬 최종 결선 무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 58%의 지지율로 우승을 거머쥐며 인생역전, 그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던 가수의 길로 진입한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켈리는 조속히 싱글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한다. 컨트리의 영향이 컸던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을 그린 순도 높은 팝 발라드로 차트 정상을 꿰차며 켈리 클락슨의 이름을 전 세계에 분포시켰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호수처럼 맑은 두 눈을 글썽이던 소녀는 차기 싱글 ’Miss independent’에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은 기타 사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독립 여성으로 변신을 꾀했다. 켈리의 변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앨범 차트 1위로 핫 샷 데뷔한 처녀작 < Thankful >은 록, 발라드, 소울, 포크, 댄스 뮤직 등을 아울렀고, 2005년에 공개한 < Breakaway >에서는 ’Since you been gone’, ’Behind theses hazel eyes’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탄탄한 록 사운드를 구축하여 걸리시 록의 새로운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다. 아이돌 콘테스트 출신자로서 저항할 수 없는 정약인 틴 팝의 운명을 버리고 굳이 록을 택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 공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이 세상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 가지 장르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보고 싶거든요.” 아이돌인 상태로 롱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미국 폭스 TV가 주최한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초대 우승자. 이는 앞으로 가수 켈리 클락슨의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닐 문구임에 틀림없다. 초년생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역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아래 데뷔전을 치러냈어도,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 안에서 성숙한 음악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켈리의 휴먼 드라마는 오늘도 방영 중이다.
노래 : Sara Bareilles (사라 바렐리스)
노래 : Natalie Imbruglia (나탈리 임브룰리아)
# ‘진정한 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 ‘Torn’의 위력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Natalie Imbruglia)의 데뷔싱글이었던 그 곡은 전 세계 음악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영국에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도 10주가 넘게 방송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를 ‘팝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그... # ‘진정한 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 ‘Torn’의 위력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Natalie Imbruglia)의 데뷔싱글이었던 그 곡은 전 세계 음악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영국에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도 10주가 넘게 방송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를 ‘팝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그 곡은 그러나 동시에 그녀에게 치명적인 해악이었다. 문제는 ‘Torn’과 그녀 자신이 너무나 예뻤다는 것. 상큼한 팝과 성난 록이 잘 정제된 음악적 내용물도, 시원한 향기가 배어나는 목소리도, 그리고 ‘밤비’ 같은 큰 눈을 가진 그녀의 얼굴도 너무 예뻤다. 때문에 대중들이 그녀를 소비하는 것은 단 한가지, 바로 그 예쁘장함이었다.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데뷔앨범 < Left Of The Middle >은 ‘Torn’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얼마 후에 발매되었다. 만만치 않은 음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곡의 빛에 가려 음반에 실린 다른 곡들은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사실 ‘Torn’은 라디오를 통해, 또 수많은 컴필레이션 음반들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으니 정규음반은 사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게다가 잡지나 신문들은 주로 그녀의 외모나 스캔들 따위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팬들은 그 매체에 실린 사진을 오려 방에 걸어두며 그녀를 ‘핀업 걸’로 대했다. 사람들은 그저 ‘Torn’만 들으면, 그녀의 얼굴만 보면 만족했다. 사실 어찌 보면 나탈리에게 그러한 것들은 당연한 결과다. 태어나고 자랐던 호주에서 10대 시절부터 TV스타였던 그녀는 1996년 가수를 꿈꾸며 영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의 음반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의 데뷔앨범은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 일도 못하고 1년여를 방황했던 탓에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가수가 되길 원했으며, 그 때문에 음반사에서 자신을 부르자 바로 계약했다. 따라서 음반계약 후에도 음악이나 이미지에 대한 선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었다. 그녀를 선택한 레이블은 그녀의 청순한 비주얼과 생기 있는 목소리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당시 강세를 보이던 앨라니스 모리셋 류의 여성 얼터너티브 록과 어쿠스틱 팝/록 사운드를 덧입히려 했다. 그를 위해 그룹 큐어(Cure)의 베이시스트였던 필 토낼리(Phil Thornalley),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를 제작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 등의 일류 프로듀서들을 동원했고,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 결과 ‘Torn’이라는 빅히트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외에도 ‘Big mistake’, ‘Wishing I was there’, ‘Smoke’ 같은 괜찮은 느낌을 주는 곡들을 배출했다. 이렇게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음악과 이미지는 결정되었고,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는 ‘Torn’과 핀업 걸의 이미지가 고정되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었을 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그것은 분명 상당한 부담이었으며 앞날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뮤지션이라면 그러한 장애물은 음악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3년여 동안 음악에 전념하며 자신과의 투쟁을 벌였고, 드디어 이번에 그 흔적들이 담긴 두 번째 앨범 < White Lilies Island >를 내놓았다. # 예쁜 이미지 벗고 내적 성숙 완연한 새 앨범 그렇다고 이번 신보가 전작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Torn’의 작곡자였던 필 토낼리가 또 다시 참여하고 있으며 여전히 풋풋하고 싱그러운 곡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았다. 같은 상큼함이라도 더욱 멜랑콜리하게, 더욱 애처롭게 들린다. 그런 변화의 조짐은 1999년도 영화 < 스티그마타 > 사운드트랙에서 불렀던 ‘Identify’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이 작곡했던 그 곡은 나탈리답지 않은 음울함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부르는 보컬도 편안하게 들린다. 의도적으로 앨라니스 모리셋를 따라했던 전작에서의 보컬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으며, 또 발전했다. 첫 싱글부터 큰 차이가 난다. 전자기타와 피아노, 현악이 묘한 화음을 이루는 첫 싱글 ‘That day’에서 리드미컬한 나탈리의 보컬은 무언가에 불만에 찬 듯 노래하며 예쁘장함 따위는 벗어 던진다. 첼로의 묵직한 연주로 시작하는 ‘Wrong impression’은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함에 슬라이드 기타의 푸근함이 더해져 분위기가 ‘업’된 팝/록 넘버다. 공간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Beauty on the fire’에서는 일렉트로닉의 몽롱한 전자음이 일렁이며, 사랑스런 느낌이 가득 한 ‘Satellite’는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톤과 코러스가 돋보이는 곡. 앨범의 베스트라면 5번째 트랙인 ‘Do you love’을 꼽을 수 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절제된 보컬이 이끌어 가는 이 곡은 멜랑콜리함을 극대화시키는 중간의 하드 록 연주와 귀를 잡아채는 멋진 멜로디의 훅이 잊혀지지 않는다. 꿈속에 있다가 뒤늦게 꿈에서 깨어나 절규하는 듯한 진행이 압권인 ‘Goodbye’, 인트로 부분이 국내밴드 미선이의 ‘진달래 타이머’를 연상시키는 ‘Everything goes’, "동화 속 신데렐라는 이제 없다"며 담담히 노래하는 마지막 트랙 ‘Come September’ 등이 매력적인 트랙들이다. 음반에 수록된 10곡 모두 나탈리 임부를리아가 공동작곡과 작사를 담당했으며, 그중 절반은 희망을, 나머지 절반은 삶의 비의(悲意)와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 외의 프로듀서들로는 마돈나의 작업으로 유명한 패트릭 레너드와 필 토낼리, 게리 클락 등이 앨범제작에 참여했다. 몇 년 간 내적 침잠의 결과물인 이번 앨범으로 그녀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확보했다.
노래 : Natasha Bedingfield (나타샤 베딩필드)
나타샤 베딩필드(Natasha Bedingfield)가 처음 등장했을 땐 ‘Gotta get thru this’와 ‘If you’re not the one’으로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다니엘 베딩필드(Daniel Bedinfield)의 여동생이라는 어드밴티지를 이용한 벤치 마케팅 틴 아이돌 가수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타샤 베딩필드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제시카 심슨(Jessica S... 나타샤 베딩필드(Natasha Bedingfield)가 처음 등장했을 땐 ‘Gotta get thru this’와 ‘If you’re not the one’으로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다니엘 베딩필드(Daniel Bedinfield)의 여동생이라는 어드밴티지를 이용한 벤치 마케팅 틴 아이돌 가수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타샤 베딩필드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제시카 심슨(Jessica Simpson)의 동생 애슐리 심슨(Ashlee Simpson)과 얼떨결에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애슐리 심슨의 음악이 좀 더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10대의 감성에 익숙하다면 나타샤 베딩필드는 빨리 어른이 되고자 하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향에 가깝다. 1981년 11월 26일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나타샤 베딩필드는 유년시절에 영국으로 건너와 런던에 정착하면서 뮤지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오빠 다니엘 베딩필드와 친구 니콜라와 함께 DNA 알고리듬(DNA Algorhythm)을 결성해 목표에 다가섰지만 큰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2001년에 다니엘이 ‘Gotta get thru this’로 성공적인 솔로활동을 펼치자 나타샤의 첫 음악인생은 흐지부지 되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나타샤. 2004년에 대망의 솔로 데뷔앨범 < Unwritten >으로 영국을 초토화시킨 그는 미국에서도 타이틀 곡 ‘Unwritten(5위)’과 ‘These words(17위)’, ‘Single(57위)’이 연이어 싱글 차트를 정복했고 제49회 그래미에서는 ‘Unwritten’으로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부문 후보에 오르며 대영제국과 아메리카 대륙을 성공적으로 접수했다. 오빠 다니엘을 능가하는 호성적에 고무된 나타샤는 2007년에 마돈나(Madonna)의 옛 작곡 파트너 패트릭 레너드(Patrick Leonard)와 마룬 5(Maroon 5)의 보컬리스트 아담 레빈(Adam Levine) 등이 조력자로 참여한 2집 < N.B. >을 공개했지만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큰 피드백을 얻었고 ‘I wanna have your babies’라는 발칙한 제목의 노래가 구라파에서 인기를 누렸다. 2008년에 출산(?)한 세 번째 앨범 < Pocketful Of Sunshine >은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르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첫 싱글 ‘Pocketful of sunshine’은 싱글 차트 8위를 기록했다.
1999년 18살의 나이로 데뷔한 제시카 심슨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I wanna love you forever’ 같은 파워 넘치는 발라드를 훌륭히 소화해내 ‘차세대 머라이어 캐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그래서 버블검 팝 가수라도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성숙한 면모가 두드러졌다. 1999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전염성 강한 댄스음악으로 10대 팝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해다. 10대 여가... 1999년 18살의 나이로 데뷔한 제시카 심슨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I wanna love you forever’ 같은 파워 넘치는 발라드를 훌륭히 소화해내 ‘차세대 머라이어 캐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그래서 버블검 팝 가수라도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성숙한 면모가 두드러졌다. 1999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전염성 강한 댄스음악으로 10대 팝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해다. 10대 여가수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 둘은 이후 팽팽한 라이벌 전선을 형성하며 독보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러한 2파전의 구도 속에 용감히 뛰어든 가수가 제시카 심슨이다. 그녀는 브리트니, 크리스티나와 같은 또래였지만 그들과는 왠지 다른 분위기였다. 보다 정통의 느낌이랄까. 머라이어 캐리를 빼 닮은 음색과 창법, 가스펠로 다져진 탄탄한 가창력은 그러한 느낌을 뒷받침했다. 어리고 미모인데다 ‘포스트 머라이어 캐리’라는 화제성까지 갖춘 제시카 심슨은 그때부터 차세대 틴 팝 진영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980년 7월 10일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태어난 제시카 심슨은 12살 때부터 노래실력을 키워갔다. 침례교 목사였던 아버지를 둔 탓에 그녀의 수련장이 된 곳은 교회였다. 얼마 후에는 ‘아이돌 스타 등용문’ < 미키마우스 클럽 >을 통해 주류로의 편입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가스펠 음악진영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이어갔다. 여기서 제시카 심슨의 꿈을 이루게 도와준 이가 < 소니뮤직 >의 사장 토미 모톨라(Tommy Mottola)였다. 집에서 손수 제작한 그녀의 레코드가 좋은 평판을 얻자 토미 모톨라가 그녀를 즉각 불러들여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그러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상부상조였다. 당시 이렇다할 10대 여가수가 없었던 < 소니 뮤직 >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소속된 < BMG >,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소속된 < 자이브 >의 대박 흥행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했다. 따라서 그 같은 열세를 만회하길 바랬던 < 소니 뮤직 >으로선 제시카 심슨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1999년 말 첫 앨범 < Sweet Kisses >를 공개하며 예정된 팝 스타의 수순을 밟아갔다. 2년 만에 출시되는 2집 < Irresistible >는 전작에서 선보였던 디바형 발라드에서 10대 취향인 댄스 팝 사운드로 전향한 앨범이다. 말하자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가깝다. 강렬한 후크가 제목처럼 거부하기 힘든 ‘Irresistible’, 질주하는 신서사이저 연주와 급박한 비트가 인상적인 ‘A little bit’ 등의 곡들은 강한 리듬이 중심인 틴 팝 사운드에 기초한 곡들이다. 창법도 변화무쌍하다. 제니퍼 로페즈,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의 음반작업에 참여했던 코리 루니(Cory Rooney)가 프로듀스한 R&B 넘버 ‘Hot Like Fire’에서 그녀는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힘찬 흑인 창법을 구사하며 발라드를 들려 줄 때의 직선적 창법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리듬이 대폭 강화되었지만 발라드를 소홀히 다루진 않았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같은 ‘원조 디바’들에게 노래를 공급했던 초특급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가 앨범에 참여해 발라드감각을 조율했다. ‘There your were’, ‘To fall in love’가 예의 발라드 트랙. 특히 ‘There your were’는 ‘You sang to me''에서 화려한 발라드 실력을 자랑한 라틴 팝 가수 마크 앤소니(Marc Anthony)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멋진 듀엣 곡이다.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가스펠 ‘His eyes is on the sparrow’는 교회에서 성장한 제시카 심슨의 음악적 뿌리를 알 수 있는 곡이다. 이전까지 그녀가 다른 10대 여가수들과 다소 차별화 되었다면 그것은 기존의 댄스음악보다는 발라드를 특화해서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 비율이 역전되었다. 다른 댄스 가수의 앨범들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좀 문제가 있다. 댄스음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미 정형화된 틀에 자신을 맞춰가려는 퇴행적 방식이다. 그녀보다 더 어리지만 최근 새 앨범에서 틴 팝 공식을 벗어나려고 시도한 맨디 무어와는 무척 대조적이다. 지금껏 제시카 심슨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적할 제3의 인물로 평가받아왔지만 이젠 그 자리를 맨디 무어에게 양보해야 할 듯하다. 이번 앨범으로 더 많은 10대 팬들을 끌어들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제 그녀는 결코 브리트니나 크리스티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노래 : Groove Armada (그루브 아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 영국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댄스 듀오 그루브 아마다(Groove Armada)는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 모치바(Morcheeba), 엠제이 콜(MJ Cole) 등과 함께 세기말 유행처럼 번진 일렉트로니카와 트립 합의 계보를 이어간 그룹이다. 이들은 레벨 42(Level 42),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샤카탁(Shakatak) 같은 일련의 재즈펑크(Jazz-Funk) 퓨전 그룹들처럼 언더그라운드 클럽가를 중심으로 출발해 이후 영국 실험주의 음악노선을 초토화시키는데 든든한 공을 세웠다. 톰 핀들레이(Tom Findlay)와 앤디 카토(Andy Cato)의 2인 체제로 구성된 그루브 아마다는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다운비트, 트립 합, 테크노 등의 다양한 장르를 한데 융합한다. 아울러 이들은 음반을 통해 몽환적이고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연주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객원싱어들을 초빙해 각 앨범마다 독특한 색깔을 주조해낸다. 1997년에 이르러 선보인 ‘4 tune cookie’, ‘At the river’ 등의 몇몇 싱글과 이듬해 발표한 데뷔음반 < Northern Star >(1998)부터 그러한 사운드 특징을 잘 증명한다. 그룹은 1999년 보다 범위가 폭넓어진 2집 음반 < Vertigo >을 발표해 영국차트 톱 20에 들어가는 성적표를 얻어냈다. ‘If everybody looked the same’, ‘At the river’, ‘I see you baby’(팻보이 슬림에 의해 리믹스) 같은 히트곡을 배출해내며 이들을 일렉트로티카 계열 그룹의 리스트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이후 그룹은 엘튼 존(Elton John)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며 조금씩 성공가도를 내달렸고, 2000년에 접어들어 2집 < Vertigo >를 미국에서 재 발매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2000년 발표된 < The Remixes >에 뒤이어 선보인 < Back to Mine >(2000)은 알그린(Al Green), 베리 화이트(Barry White),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루츠 마누바(Roots Manuva) 등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앨범의 질을 드높였다. 나아가 그룹은 이듬해에 드디어 주류로 진입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7위를 기록한 3집 음반 < Goodbye Country (Hello Nightclub) >에서 이스트코스트 래퍼 제루(Jeru)가 피처링한 ‘Suntoucher’와 싱글 ‘Superstylin’ 등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자신들의 개성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2년 뒤인 2003년에 발표된 4집 < Lovebox >은 전작보다 진일보해 일렉트로닉 앨범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특히 앨범은 이글 아이 체리(Eagle-Eye Cherry)의 누나인 네네 체리(Neneh Cherry), 랩 그룹 내피 루츠(Nappy Roots), R&B 여가수 선샤인 앤더슨(Sunshine Anderson), 포크 싱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 등과 함께 작업해 다양한 양질의 사운드를 구사하기도 했다.
2001년 영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았다는 다이도(Dido)... 그녀는 자신의 음악에 담긴 일렉트로니카의 요소들의 성공을 자신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페이스리스(Faithless) 멤버들의 덕으로 돌렸다. 포크적 감성으로 만든 다이도의 음악에 일렉트로니카의 서정성을 덧입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 낸 주인공들이 바로 페이스리스이다. 1995년 영국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니카 밴드 페이스리스는 다이도가 속해 있던... 2001년 영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았다는 다이도(Dido)... 그녀는 자신의 음악에 담긴 일렉트로니카의 요소들의 성공을 자신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페이스리스(Faithless) 멤버들의 덕으로 돌렸다. 포크적 감성으로 만든 다이도의 음악에 일렉트로니카의 서정성을 덧입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 낸 주인공들이 바로 페이스리스이다. 1995년 영국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니카 밴드 페이스리스는 다이도가 속해 있던 그룹으로 뒤늦게 국내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다이도가 팝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키운 페이스리스의 메인 브레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친오빠 롤로 암스트롱(Rollo Armstrong)... 페이스리스는 1993년 프로듀서 겸 리믹서로 이름을 날리던 롤로 암스트롱과 DJ로 인기를 누리던 시스터 블리스(Sister Bliss)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롤로 암스트롱은 1992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펠릭스(Felix)라는 이름으로 ’Don’t you want me’를 제작하여 2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바 있으며 영국 차트에서 세 곡의 No.1과 4곡의 Top10 싱글을 리믹스 해 낸 정상의 프로듀서와 리믹서로 활약해 왔다. 롤로와 함께 페이스리스를 이끌어 가는 시스터 블리스 역시 이전 경력이 화려하다. 최고의 하우스 DJ로 대접받는 그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업을 정식으로 받았으며, 섹소폰과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1987년부터 하우스 뮤직에 심취한 그녀는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그녀만의 차별화 된 능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음악들을 만들어 가며 영국 최고의 DJ로 자리 한다. 1993년 페이스리스로서의 작업을 시작한 화려한 경력의 두 하우스 뮤지션은 1995년 두 명의 보컬리스트 재미 카토(Jamie Catto)와 맥시 재즈(Maxi Jazz)를 영입하여 데뷔 싱글 ’Salva mea’를 발표한다. 재미 카토는 빅 투르스 밴드(The Big Truth Band) 출신의 보컬리스트이자 송라이터로 현재는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소울 푸드 카프 밴드(The Soul Food Caf Band) 출신인 맥시 재즈는 재즈, 힙합 보컬리스트이면서 동시에 DJ로도 활약하며 그룹의 또 하나의 핵심 인물로 자리해 있다. 1983년에 힙합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DJ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고, 1992년에는 자신의 레이블인 나무 레코드(Namu Record)를 세우기도 하였다. 후에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밴드 멤버로 투어를 하기도 했던 그는 불교 신자로서 그룹에 레게 스타일과 애시드 스타일의 곡을 제공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의 DJ들로 구성된 페이스리스는 ’Salva mea’를 크게 히트시키고, 연이어 ’Insomnia’, ’Reverence’로 성공 행진을 이어간다. 멤버들이 DJ, 프로듀서로서 솔로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던 만큼 이들은 프로젝트 그룹의 성격이 강했지만 세 싱글의 연이은 성공은 이들의 결속력을 강화 시켰고, 1996년 롤로의 레이블인 치키(Cheeky) 레코드를 통해 데뷔 앨범인 < Reverence >를 내놓으며 페이스리스의 이름을 이어가게 된다. 하우스 씬의 강자들답게 이들의 데뷔앨범은 영국 댄스 씬에서 히트했고, 각 멤버들은 자신들 나름의 바쁜 활동 속에서도 ’페이스리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일렉트로닉 시도들을 이어나가게 된다. 데뷔 앨범의 성공으로 메이저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1998년 두 번째 앨범 < Sunday 8pm >을 발표한다. 맥시 재즈의 곡인 ’God is a DJ’를 비롯한 여러 곡들이 히트하면서 명성을 이었고, 1999년에는 인기에 보답하듯 < Sunday 8pm >을 리믹스 앨범으로 다시 선뵈기도 하였다. 하우스라고 하는 최종적으로 춤을 위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의 음악이 단순한 하우스 비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렉트로니카 음악 속에서도 감수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일렉트로니카의 소울 음악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소울이 가진 보컬의 가치, 가사의 가치, 선율의 가치에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소울 리메이크 곡들이 눈에 띄는 리믹스 앨범 < Back to Mine >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어졌다. 2001년 이들은 다이도의 후광(?)을 업고 세 번째 정규 앨범인 < Outrospective >를 내놓았다. 데뷔 앨범 시절부터 백보컬 등으로 활약하며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해 온 다이도와 폴린 테일러(Paulin Taylor)가 그룹의 보컬로 전면에 자리한 이 앨범 역시 페이스리스만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일렉트로니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래어 버드(Rare Bird)의 명곡 ’Sympathy’를 샘플링하기도 하였으며, 다이도가 4곡에서 보컬로 등장하며, 오빠에 대한, 또 자신을 키워준 밴드에 대한 고마움을 선사하고 있다.
‘카우보이’ 제이 케이(Jay Kay)가 이끌고 있는 영국 밴드 자미로콰이는 고품격 댄스 음악으로 1990년대 전세계 클럽 신을 뒤흔든 팀이다. 펑크(Funk), 소울, 재즈, 리듬 앤 블루스, 하우스, 힙 합, 팝,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곳간을 넘나들며 일궈낸 그들의 올드 앤 와이즈(Old And Wise) 퓨전 사운드는 새로운 트렌드를 갈구하던 클러버들에게 이상적인 음악이었다. 그들은 다채로운 색깔의 소리... ‘카우보이’ 제이 케이(Jay Kay)가 이끌고 있는 영국 밴드 자미로콰이는 고품격 댄스 음악으로 1990년대 전세계 클럽 신을 뒤흔든 팀이다. 펑크(Funk), 소울, 재즈, 리듬 앤 블루스, 하우스, 힙 합, 팝,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곳간을 넘나들며 일궈낸 그들의 올드 앤 와이즈(Old And Wise) 퓨전 사운드는 새로운 트렌드를 갈구하던 클러버들에게 이상적인 음악이었다. 그들은 다채로운 색깔의 소리들을 끌어다 쓰면서도 단 한차례의 난잡함과 엉성함을 내비치지 않는다. 각각의 장르가 가진 특성들을 정확히 해독하여 일정한 통일성과 화려함이 번뜩이는 댄스 음악으로 완벽하게 주조해낸다. 그 안에는 보통의 댄스 음악에 주어지는 천박스러움이 없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들이 듣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다. 대중 친화적이며, 고급스럽다. 이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신나는 펑크(Funk)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자미로콰이, 특히 제이 케이가 어릴 적부터 꿈꿔온 소망이었다. 랭크셔 지방에서 태어난 제이 케이(1969년 생)는 1970년대 나이트클럽 재즈 싱어로 활약했던 어머니 카렌 케이(Karen Kay)로부터 영향을 받아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로이 에이어스(Roy Ayers), 슬라이 스톤(Sly Stone)의 음악을 들으며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소울 등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1980년대 런던으로 이주한 그는 어렵게 구입한 신디사이저로 곡을 만들며 여러 개의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다. 그 중 한 트랙이었던 ‘When you gonna learn?’이 런던의 리듬 앤 블루스 라디오 방송 < Kiss FM >에 소개되면서 그는 서서히 지명도를 확보했고, 인디 레이블 < 애시드 재즈(Acid Jazz) >-이후 자미로콰이의 음악은 애시드 재즈라는 장르로 정의되며 오해 아닌 오해를 받게 됐다-에서 정식 싱글로 발매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92년 메이저 레코드사 < 소니(Sony) >와 8장의 음반 계약이라는 파격을 연출하며 단번에 주목받는 신인으로 급부상 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위해 제이 케이는 키보디스트 토비 스미스(Toby Smith), 비브라폰 연주자 월리스 부캐넌(Wallis Buchanan), 드러머 닉 밴 겔더(Nick Van Gelder), 베이시스트 스튜어트 젠더(Stuart Zender) 등을 영입하여 자미로콰이를 결성하고 1년 뒤인 1993년 데뷔작 < Emergency On Planet Earth >를 발표했다. 이미 공식 음반을 공개하기 전부터 타올랐던 자미로콰이의 열기는 데뷔 앨범의 영국 차트 1위라는 결과로 정점에 달했고, 곧장 플래티넘으로 직행했다. 도발적인 펑키 리듬과 관능적인 그루브, 경쾌한 록 필, 진한 소울의 향기가 한 몸으로 용해된 ‘Emergency on planet earth’(32위), ‘Too young to die’(10위), ‘Blow your mind’(12위), ‘When You Gonna Learn?’(28위) 등의 히트곡들을 터트리며 밴드는 영국 클럽 신에 메가톤급 폭풍우를 일으켰다. 이때부터 음반 재킷에 등장하는 버팔로 모자를 눌러쓴 제이 케이의 모습은 자미로콰이를 상징하는 로고로 자리잡았다. 1년 뒤인 1994년 데릭 매켄지(Derrick McKenzie)로 드럼 주자를 교체한 그룹은 재즈적 색채가 강화된 소포모어 작품 < Return Of The Space Cowboy >를 내놓았다. 이 음반 역시 차트 2위에 오르며 전작의 흥분을 그대로 이어나갔고, ‘Space cowboy’(17위), ‘Half the man’(15위), ‘Stillness in time’(9위) 등의 인기 곡들을 영국 전역으로 쏘아 올렸다. 앞선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밴드 중 하나로 성장한 자미로콰이는 1996년 3집 < Travelling Without Moving >과 1999년 4집 < Synchronized >로 세계적인 그룹의 반열에 도달했다. 친근한 멜로디와 리듬을 앞세운 스매시 히트곡 ‘Virtual insanity’(3집)와 세련된 디스코와 테크노로 무장한 ‘Canned heat’(4집)의 폭발력은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를 포함한 지구촌 전역을 들썩거리게 했다. 천 백 만장이라는 두 음반의 판매 합계 역시 그룹의 뜨거운 인기도를 잘 나타내는 증거이다. 자미로콰이는 오는 9월 초 다섯 번째 정규 음반 < A Funk Odyssey >를 공개할 예정이다. 신보는 첫 싱글로 커트된 ‘Little l’을 비롯하여, ‘Feels so good’, ‘Black crow’, ‘Twenty zero one’ 등 그들의 음악 주요소인 펑크(Funk)에 대한 찬가로 가득하다.
멤버 :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 2006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이 혼성 2인조 일렉트로-팝 유닛은 3인조 걸그룹 Tko 출신의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와 TKO에게 네 곡을 써준 송라이터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에 의해 결성됐다. 결성 이후 네번째 라이브에서는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고, 다섯번째... 멤버 :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

2006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이 혼성 2인조 일렉트로-팝 유닛은 3인조 걸그룹 Tko 출신의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와 TKO에게 네 곡을 써준 송라이터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에 의해 결성됐다. 결성 이후 네번째 라이브에서는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고, 다섯번째 공연을 2007년도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페스티발에서 치루며 급성장을 보인다. 2008년 3월 재발매된 [Great Dj]의 싱글은 Nme '이주의 트랙'으로 랭크됐고, 두번째 싱글 [That's Not My Name]은 Uk 싱글차트 첫 등장 1위를 기록하면서 급속도로 수순을 밟아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5월 13일에 발매된 데뷔작 [We Started Nothing]은 Uk 앨범차트 1위로 데뷔하면서 이 기세를 이어간다. 이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됐다. 'Shut Up And Let Me Go'의 경우 아이팟/아이튠즈 CM으로 사용되면서 전세계 젊은 층들에게 각인되기도 했고, 각종 TV 토크쇼와 드라마 삽입곡으로도 이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데뷔앨범 발매 이전부터 화제를 모으다가 뚜껑이 열리고 나서는 거의 전세계를 한번 들었다가 놓았다. TV CF나 라디오 시그널로는 물론, 국내경우, [슈퍼스타 K]에 출연했던 어느 밴드가 이들의 곡 'Shut Up And Let Me Go'를 부르면서 다시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을 통해 국내에도 다녀가면서 눈도장까지 확실하게 찍었다.
노래 : Leona Lewis (리오나 루이스)
2006년에 방송된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 < X Factor >의 시즌 3 우승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장점을 겸비한 21세기 형 섹시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은 기교를 앞세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고 라틴 혈통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구리 빛 피부와 뇌쇄적... 2006년에 방송된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 < X Factor >의 시즌 3 우승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장점을 겸비한 21세기 형 섹시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은 기교를 앞세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고 라틴 혈통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구리 빛 피부와 뇌쇄적인 외모 그리고 파마기 있는 헤어스타일은 머라이어 캐리를 떠올린다. 시장성과 성장성을 자체 프로세스한 이 두 강점은 리오나 루이스가 빠른 시간에 비상(飛上)할 수 있는 날개였다. 1985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오나 루이스는 10대 때부터 스스로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 송라이팅 기술을 습득하면서 접수원이나 웨이트리스의 피곤한 일상을 극복해나갔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가 < X Factor >에 지원하면서 리오나 루이스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 X Factor >에서 ‘Over the rainbow’, ‘Hero’, ‘Without you’처럼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들을 불러 우승을 차지한 리오나 루이스는 곧바로 메이저 데뷔 싱글로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해 인기가도에 박차를 가했고 대세를 이어 2007년에 데뷔앨범 < Spirit >를 공개했다. ‘Apologize’를 부른 그룹 원 리퍼블릭(One Republic)의 리더 라이언 테더(Ryan Tedder)와 ‘Beautiful soul’과 ‘She's no you’로 친숙한 아이돌 가수 제시 매카트니(Jesse McCartney)가 공공으로 작곡한 ‘Bleeding love’는 20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탑 텐에 머물며 4주간 정상을 차지하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두 번째 싱글 ‘Better in time’도 11위에 랭크되었다. 이제 리오나 루이스는 2008년에 대중들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런던을 알리기 위해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함께 무대에 올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명곡 ‘Whole lotta love’를 불러 평생의 영광을 메모리 했으며 2008년 브릿 어워즈에서 4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고 2009년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레코드와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등 모두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에이원(a1)에게는 보이밴드도 곡을 쓰고 연주할 수 있다는 확신과 야망이 있었다. 교회 성가대 출신인 벤(Ben Adams/키보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설립한 < Liverpool Institute Of Performing Arts >에서 보컬과 작곡 과정을 밟은 크리스찬(Christian Ingebrigtsen/베이스, 기타), 루마니아 국제 가요제의 수상자인 마크(Mark Read... 에이원(a1)에게는 보이밴드도 곡을 쓰고 연주할 수 있다는 확신과 야망이 있었다. 교회 성가대 출신인 벤(Ben Adams/키보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설립한 < Liverpool Institute Of Performing Arts >에서 보컬과 작곡 과정을 밟은 크리스찬(Christian Ingebrigtsen/베이스, 기타), 루마니아 국제 가요제의 수상자인 마크(Mark Read/키보드, 드럼), 모델과 클럽 댄서를 거친 폴(Paul Marazzi/베이스, 퍼커션)은 타고난 재능과 3년간의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보이밴드에서 한 단계 진보한 팝 밴드의 풍채를 구비했다. 스텝스(Steps)의 투어와 각종 페스티벌을 전전하며 이름을 알려가던 그들은 1999년에 발표한 데뷔 싱글 ‘Be the first to believe’를 시작으로 ‘Summertime of our lives’, ‘Everytime’을 줄줄이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으면서 순식간에 인기 가수 대열로 진입한다. 댄스 팝과 발라드를 적절히 포진시킨 처녀작 < Here We Come >으로 골드 디스크라는 영예로운 훈장을 수여받자 여세를 몰아 두 번째 앨범 < a1 : The A List >를 히트 공식의 약관에 따라 단기간 내에 제작했다. 이 음반에는 싱글 차트 1위에 빛나는 아하(A-ha)의 리메이크 곡 ‘Take on me’와 맥스 마틴(Max Martin) 류의 정글 리듬을 슬며시 도입한 ‘Same old brand new’ 등 에이원의 명성을 드높인 대표곡들이 군집해있다. 또한 신인의 젖내(?)가 가시기도 전에 영국 투어를 개최하며 소포모어 징크스의 압박을 말끔히 씻었지만 일부에서는 유니크한 음악적 루트를 찾지 못했다는 정체성 결함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 2001 브릿 어워즈 >에서 ‘최우수 영국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명실 공히 영국 보이밴드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시대적으로 틴 팝이 퇴보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팝 신이 그런 호의를 베풀었던 데는 지기 싫어하는 영국인들의 긍지도 한 몫 했을 터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엔싱크(Nsync),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침공은 눈뜨고 볼 수 없는 그들의 도도한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다. 테이크 댓(Take That)과 보이존(Boyzone)의 뒤를 이을 실력파 보이밴드의 부재가 길어지던 중 때마침 노래하면서 연주까지 하는 에이원의 등장이 눈물나게 고맙고 반가웠을 것이다. 에이원의 베스트 레코드로 손꼽히는 < Make It Good >은 멤버들이 전곡을 작곡하는 역량을 발휘했는데, 준비 기간에만 무려 60곡을 만들었다는 후일담까지 전해져 더욱 화제를 모았다.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부터 칭찬받고 사기가 잔뜩 오른 팀원들이 여느 때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음반 제작에 관여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유투(U2)와 트래비스(Travis)의 앨범을 프로듀스한 마이크 헤지스(Mike Hedges)의 영향으로 록의 무게가 한층 두터워졌지만, 주인공들이 빚어낸 멜로디도 출중하게 진보했다. ‘Caught in the middle’, ‘Make it good’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애청 레퍼토리들이다. 그러나 만사가 순탄하던 날들은 팀의 연장자인 폴이 홀로서기를 선언하며 탈퇴하는 순간으로 종국을 고했다. 해산에 관한 그 어떤 공식적인 표명도 하지 않은 채 남은 멤버들까지 팀을 이탈하여 에이원은 현재 주인 없는 빈 집 상태다. 그저 2003년에 소니와의 계약이 말로하면서 발표한 베스트 앨범 < The Best Of a1 >만이 씁쓰름한 결말을 암시할 뿐이다.
DJ DJ
노래 : Toni Braxton (토니 브랙스톤)
1967년생으로 미국 매릴랜드 주 출신인 토니 브랙스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모 아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교사 자격증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프로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 윌리엄 페타웨이(William E... 1967년생으로 미국 매릴랜드 주 출신인 토니 브랙스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모 아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교사 자격증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프로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 윌리엄 페타웨이(William E. Pettaway)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녀와 자매들을 함께 그룹으로 묶어 브랙스톤스(Braxtons)를 결성, 1989년 아리스타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후,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싱글 [Good Life]의 성적은 그리 좋진 않았으나, 그 곡은 그녀의 존재를 작곡 콤비이자 자신들의 레이블인 라페이스(LaFace)를 런칭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엘에이 리드(Antonio "L.A." Reid)와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눈에 띄는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서 아니타 베이커의 매력을 가졌으면서 더 대중성이 있는 보이스의 매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1992년 영화「Boomerang」OST를 제작하면서 원래 아니타에게 부탁하려던 [Love Shoulda Brought You Home]을 그녀에게 부르게 했고, [Give U My Heart]를 베이비페이스와 함께 듀엣으로 녹음하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그녀를 팝 씬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이은 데뷔 앨범 「Toni Braxton」(1993)을 통해 [Another Sad Love Song](7위), [Breathe Again](3위), [You Mean the World to Me](7위), [I Belong to You/How Many Ways](28위)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그녀는 '중저음 소울 디바'의 위상을 계승할 후보 1순위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의 데뷔작은 미국 내에서만 8백만 장 이상을 판매하는, 신인의 데뷔앨범으로서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그래미는 1994년 시상식에서 그녀에게 '최우수 신인상'의 영예를, 그리고 그 해부터 2년 연속으로 '최우수 R&B 보컬 퍼포먼스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된 그녀의 인기는 2집「Secret」(1996)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고, 기존 프로듀서 라인업 외에도 알 켈리(R.Kelly),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등이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이 앨범 속에서는 [You Makin' Me High]와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애청되고 있는 발라드 [Unbreak My Heart](이 곡 역시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여류 작곡가 다이앤 워렌(Diane Warren)의 작품이다.)이 모두 팝 싱글 차트 1위 자리를 차지했고, [I Don't Want To/I Love Me Some Him], 케니지(Kenny G)와의 조인트였던 [How Could an Angel Break My Heart] 등이 뒤를 이어 히트했다. 앨범 역시 세계적으로 총 2천만 장 이상을 판매하면서 그녀의 인기 곡선은 끝을 모르는 듯 상승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계속 험난한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집의 히트 이후 시작된 라페이스 레이블과 그녀 사이의 계약 분쟁은 1999년 2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해결을 보긴 했으나, 2000년에 발표된 그녀의 3집 「The Heat」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한 싱글 [He Wasn't Man Enough](2위)로 기분 좋게 시작하긴 했지만, 후속 싱글들인 [Just Be a Man About It](32위), 그리고 카를로스 산타나의 기타가 가세했던 발라드 [Spanish Guitar](98위) 등이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이 앨범으로 미국 내 2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와 6번째 그래미 트로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전작과 비교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문제로 그녀는 레이블과 갈등을 빚었다. 3집 작업을 통해서 만난 민트 컨디션(Mint Condition) 출신의 멤버이자 작곡자인 케리 루이스(Keri Lewis)와 2001년 결혼한 후, 4집 앨범을 막 작업 완료를 했던 시기에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때 토니 측에서는 앨범 발매를 미뤄줄 것을 요청했으나, 레이블 측이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4집「More Than A Woman」(2002)의 홍보 활동은 그녀의 건강 문제로 계속 꼬여버렸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탄생한 둘째 아들 디젤(Diesel)은 2006년 자폐 판정을 받았다.) 넵튠스(Neptunes)가 작업한 [Hit the Freeway]가 히트하긴 했지만, 앨범의 성과는 골드 레코드로 만족해야했고, 결국 그녀는 라페이스-아리스타 레이블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블랙그라운드(Blackground) 레이블로 이적한 그녀는 2005년 5번째 앨범「Libra」로 재기를 노렸지만, 첫 싱글과 앨범의 발매가 미뤄지면서 이 앨범은 제대로 홍보를 받지 못했고, 간신히 골드 레코드에 머물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이전 레이블에게 각각 다른 말을 했던 전 매니저에게 소송을 제기, 법원의 판결을 통해 37만 5천 달러의 선불금을 돌려주고 레이블과의 계약을 종결했다. 일단 2008년 TV 리얼리티 쇼 'Dancing with the Stars'의 시즌 7에 출연하고 관련 투어를 돌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재기의 발판을 찾았고, 결국 새로운 레이블과 계약을 채결하면서 5년 만인 2010년 새 앨범 [Pulse]를 발매했다.
노래 : Modest Mouse (모디스트 마우스)
버클리 음악 학교에 입학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한 젊은이. 얼마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몽땅 써버려 위기(?)에 봉착한다. 궁해진 아들에게 돈을 주며 아버지가 던졌던 한마디. “네 음반이 플래티넘을 따내거든, 결코 날 잊어선 안돼.” 그리고 정확히 5년 뒤 그는 소포모어 앨범으로 플래티넘 고지를 정복하며 부모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한다. 바로 ’아름다운 청년’ 존 마이어(John Mayer)다.... 버클리 음악 학교에 입학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한 젊은이. 얼마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몽땅 써버려 위기(?)에 봉착한다. 궁해진 아들에게 돈을 주며 아버지가 던졌던 한마디. “네 음반이 플래티넘을 따내거든, 결코 날 잊어선 안돼.” 그리고 정확히 5년 뒤 그는 소포모어 앨범으로 플래티넘 고지를 정복하며 부모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한다. 바로 ’아름다운 청년’ 존 마이어(John Mayer)다. 존 마이어는 미국 커네티컷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 세 살에 이웃이 건네 준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의 음악에 심취,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써 인생의 미래를 설계했다. 이후 오직 연습에만 매진한 결과 지방의 조그마한 바에서 출중한 연주 실력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기타를 손에 잡은 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허나 그는 곧 음악 항로를 새로이 수정했다. 기타 플레이어가 아닌 ’좋은 곡을 쓸 줄 아는 뮤지션’이 그 해답이었다. 기타 테크닉보다 멜로디와 리듬의 전체적인 어울림을 높이는데 필요한 송 라이팅 능력을 길러나갔던 것이다. 열 아홉 살이 되자 존 마이어는 버클리 음악 학교에 입학하며 진로를 본격 모색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이내 학교를 그만두었다. 음악을 ’공부’하기보다 그것을 ’연주’하기 원하는 자신의 내적 욕망을 절감한 때문이었다. 친구의 권유로 아틀랜타로 남행한 이 전도유망한 싱어 송라이터는 에디의 애틱(Eddie’s Attic)등의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펼치며 기회를 엿봤다. 1999년에는 인디 레이블에서 을 발매하며 지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0년, 드디어 그에게 도약의 때가 찾아왔다. 당해 거행된 에서의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메이저 레이블 스카우터들의 레이다에 포착된 것. 결국 컬럼비아 산하의 와 계약을 체결한 존 마이어는 2001년 데뷔작 (1963년 행크 모블리의 작품 에서 따왔다.)를 내놓으며 주류 무대로 입성했다. ’No such thing’, ’Your body is wonderland’ 등의 싱글들이 히트 퍼레이드를 펼치며 최고 차트 15위까지 음반을 견인했다. 현재 무려 200만장을 세일즈하며 50주 이상 빌보드 차트에 머무는 중이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그레이(David Gray), 데이브 매튜스(Dave Matthews) 등을 연상케 하는 편안한 보이스와 탁월한 선율 감각,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기타 실력 등이 성공의 주동인(動因)이었다.
노래 : Gavin DeGraw (게빈 디그로,Gavin Shane DeGraw)
멤버 : 이삭 슬레이드(Isaac Slade, 보컬), 조 킹(Joe King, 기타), 데이브 웰쉬(Dave Welsh, 기타), 벤 와이삭키(Ben Wysocki, 드럼) 멤버 : 이삭 슬레이드(Isaac Slade, 보컬), 조 킹(Joe King, 기타), 데이브 웰쉬(Dave Welsh, 기타), 벤 와이삭키(Ben Wysocki, 드럼)
1994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결성된 트레인(Train)은 1990년대 초반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로부터 발흥된 복고 성향의 아메리칸 하드록을 구사하는 그룹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country)와 포크(folk)를 기저로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덧입혔던 이 흐름의 최선봉에 위치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트레인은 패트릭 모나한(Patrick Monahan, 보컬, ... 1994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결성된 트레인(Train)은 1990년대 초반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로부터 발흥된 복고 성향의 아메리칸 하드록을 구사하는 그룹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country)와 포크(folk)를 기저로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덧입혔던 이 흐름의 최선봉에 위치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트레인은 패트릭 모나한(Patrick Monahan, 보컬, 퍼커션), 롭 호치키스(Rob Hotchkiss, 기타, 보컬), 지미 스태포드(Jimmy Stafford, 기타), 찰리 콜린(Charlie Colin, 베이스), 스콧 언더우드(Scott Underwood, 드럼)의 5인조로 구성되었다. 결성 직후, 다섯은 꾸준한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며 팬층을 확보하였고, 이것은 마이너 레이블인 < Aware >와 컨택트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데뷔작 < Train >은 진득한 미국 전통 록 사운드를 가감 없이 펼쳐 보임으로서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러냈다. 1997년부터 밴드는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카운팅 크로우즈(Counting Crows)등의 오프닝을 맡으며 제 2의 도약의 기회를 모색했다. 메이저 음반사들로부터 구애의 손길이 뻗친 때가 바로 이즈음이었다. 멤버들은 컬럼비아(Columbia)와 손잡은 뒤, 1집을 재발매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의 시작점을 찍었다. ’Meet Virginia’가 당시 라디오 전파를 수시로 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4년 뒤, 두 번째 음반 < Drops of Jupiter >(2001)를 발표한 트레인은 그래미상 3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는 등의(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앨범은 현재까지 2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밴드 : Santana (산타나 (라틴 락 밴드))
20세기 마지막 팝 음악의 유행은 음반산업이 주조했든 아니든 정열의 라틴음악이 장악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 발표된 제42회 그래미상 후보자 명단이 웅변한다. ‘Livin’ la vida loca’의 주인공 리키 마틴(Ricky Martin)을 비롯 제니퍼 로페즈(Jenifer Lopez),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루 베가(Lou Bega) 등 지난해 라틴 열풍을 주도했던 신성(新星)들이 그... 20세기 마지막 팝 음악의 유행은 음반산업이 주조했든 아니든 정열의 라틴음악이 장악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 발표된 제42회 그래미상 후보자 명단이 웅변한다. ‘Livin’ la vida loca’의 주인공 리키 마틴(Ricky Martin)을 비롯 제니퍼 로페즈(Jenifer Lopez),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루 베가(Lou Bega) 등 지난해 라틴 열풍을 주도했던 신성(新星)들이 그래미상의 주요 부문에 공천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름 아닌 ‘라틴 록의 거장’ 카를로스 산타나가 버티고 있어서다. 올해로 52세인 그는 1999년에 발표한 앨범 < Supernatural >로 그래미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포함, 무려 11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되는 기염을 토했다. < 뉴스위크 >는 최신호에서 1998년 밥 딜런에 이어 이번 그래미 시상식은 산타나의 컴백 무대가 될 것이라며 그의 압승을 예견했다. 뉴 밀레니엄을 전후로 빌보드 차트를 장기간 점령한 빅히트 싱글 < Smooth >와 500만장이라는 가공할 음반판매량이 화려한 재기를 견인했다. 음악팬들은 10대 틴 음악의 싹쓸이 판에서 모처럼 대가의 위용을 체험하고 있다. 멕시코 태생의 기타리스트 산타나는 1966년 히피 문화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타나 블루스 밴드’란 이름으로 음악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출연, 전설적인 연주곡 ‘Soul sacrifice’를 들려주어 일대 주목을 받았다. 산타나로 그룹명을 바꾼 그는 같은 해 셀프 타이틀 앨범에서 당시의 주도적 경향인 사이키델릭에 라틴 비트, 아프리카 리듬, 그리고 블루스를 이입한 음악을 연주했다. 산타나는 그러나 1970년대가 열리면서 1960년대 말을 어지러이 수놓았던 사이키델릭과 블루스가 퇴조하자 라틴 리듬과 정통 로큰롤을 뒤섞은 이른바 ‘라틴 록’으로 조정을 꾀했다. 1970년에 발표되어 지금도 명반으로 남아있는 2집 < Abraxas >가 바로 처음 라틴 록의 정체를 천하에 고한 작품이었다. 이 음반의 수록곡 ‘Black magic woman/Gypsy queen’과 ‘맘보의 왕’ 티토 푸엔테(Tito Puente)의 곡을 재해석한 ‘Oye como va’는 각각 차트 4위, 13위에 랭크되며 히트했다. 특히 그가 이 음반 수록곡 ‘Samba pa ti’에서 구사한 애절한 기타연주는 국내에서 그의 명성을 한층 드높인 계기를 마련했다. 발라드 선호의 우리 정서와 심금을 울리는 그의 라틴기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 같은 어울림은 기타에 멜로디를 집어넣은 카를로스의 연주기법 때문에 가능했다. "나의 음악 키워드는 음(音)으로 이야기하듯 말하는 것이다. 기타를 통해 나는 노래하고 있다" 라틴 록 보석 ‘Europa’가 담겨있는 1976년 앨범 < Amigos >도 앨범차트 10위에 올랐고, 그해 일본 평론가협회 제정 최우수 앨범 상을 받았다. 지금도 기타지망생들은 ‘Europa’와 산타나의 이름을 등식화한다. 이듬해 발표한 작품 < Moonflower >에서도 좀비스(Zombies)의 명곡을 라틴 사운드로 새 단장한 ‘She’s not there’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카를로스 산타나의 ‘절충주의’ 음악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의 맛깔스런 기타 연주는 계속해서 위용을 과시했지만, 순하게 들리는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뒷심은 뚝 떨어졌다. 새로운 세대의 변화무쌍한 감성을 파고드는 필살(必殺)의 포인트를 상실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시대분위기에 편승하여 팝 성향이 강화된 1979년 앨범 < Marathon >을 발표한 데 이어 1980년 재즈 록 앨범 < Swing Of Delight >, 1987년 명상 앨범 < Blues For Salvador > 등 장르를 따지지 않는 합종연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록 장기외유였지만 ‘록의 경계선을 허문’ 고유업적이 빛이 바랜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이후의 활동도 사실 ‘퓨전’이란 그의 평생 과업의 선상에 있었다. 199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당당히 들어섰고, 같은 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입적되었다. 마침내 그의 ‘장르 뒤섞기’ 실험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타나는 지난해 < Supernatural >로 역사에 안치되기를 거부하고 현실무대로 화려히 컴백했다.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파워 맨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만든 이 앨범에는 데이브 매튜스, 로린 힐, 와이클레프 진 그리고 매치박스 20의 롭 토마스 등 신세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산타나는 평소 자신을 존경해온 이들의 도움으로 상기한 신진 라틴스타들에 못지 않은 활기를 내뿜었다. ‘신구세대의 통합’을 목표로 산타나와 데이비스 사장이 제휴하여 치밀히 계획한 전략의 결과였다. 이 작품이 구현한 절충과 타협의 미학은 젊은 층과 기성세대를 막론했다. 올해 그래미상은 그를 위한 잔치가 될 게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산타나 본인은 성공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앨범 < Supernatural >이 자신의 계획 중 일부분이라고만 했다. 원대한 포부를 시사한다. 하지만 그의 마스터플랜은 인기나 성공이 아니라 ‘음악의 완성’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서 이미 진실함을 읽을 수 있다.
밴드 : Calling (콜링 (락 밴드))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결성된 록 밴드 콜링(The Calling)은 크리드(Creed)로 대표되는 포스트 그런지(Post-Grunge) 사운드를 표방하며 등장한 무서운 신예이다. 이들은 라디오 친화적인 멜로디와 기타 노이즈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스타일로 인기 가도에 진입했다. 멤버 전원이 걸출한 외모의 소유자라는 점 또한 플러스 요인 중에 하나이다. 기타 키드였던 아론 카민(Aaron Kamin...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결성된 록 밴드 콜링(The Calling)은 크리드(Creed)로 대표되는 포스트 그런지(Post-Grunge) 사운드를 표방하며 등장한 무서운 신예이다. 이들은 라디오 친화적인 멜로디와 기타 노이즈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스타일로 인기 가도에 진입했다. 멤버 전원이 걸출한 외모의 소유자라는 점 또한 플러스 요인 중에 하나이다. 기타 키드였던 아론 카민(Aaron Kamin)은 어느 날 그의 여자친구의 동생인 알렉스 밴드(Alex Band)를 소개받았고 둘은 의기투합, 제너레이션 갭(Generation Gap)을 결성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윽고 이들은 리사이클러(Recycler) 출신의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콜링으로 밴드명을 바꾼 후, 데뷔작 를 발표했다. 앨범에서 밴드는 매치박스 트웬티(Matchbox Twenty)와 크리드를 결합시킨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훌륭한 신고식을 치러냈다. 2001년 3월 현재, 첫 싱글 ‘Wherever you’ll go’ 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0위권에 진입하며 고속 승진의 기쁨을 맛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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