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

트윈픽스, 이레이저 헤드, 멀홀랜드 드라이브.. 컬트영화의 제왕으로 불리는 데이빗 린치의 작품들이다. 나에게 컬트 영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괴하고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기억되었기 때문에 데이빗 린치 또한 음침한 분위기의 소유자가 아닐까 짐작했었다.

예술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 탓도 있다. 예술가들은 항상 광기에 휩쓸려 있으며,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살아 생전에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면서 창작 활동을 한다. 고독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찬 심정을 예술작품에 투영한다.

데이빗 린치도 전형적인 예술가였다. 하지만 그는 사회에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였고, 컬트영화의 제왕으로까지 인정받게 되었다. 그 또한 초기에는 갈등과 스트레스가 넘쳐서 가정 생활에도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달라지는 길을 선택했다.

p107. 갈등과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것은 예술가에게 유용한 일이다. 갈등과 스트레스는 아이디어를 준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창조할 수 없어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갈등이 지나치게 많아도 창의력을 저해할 것이다. 갈등을 이해해야 하지만 갈등의 삶을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데이빗 린치는 비정상에 가까운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평상시의 단정한 모습이 오히려 그의 독특한 정신상태를 부각시켰다. 이 책에서 데이빗 린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너무나 강박적으로 정상을 선호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극단에 존재하는 폭력과 섹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런 감정을 내면에 침잠시키는 대신, 데이빗 린치는 자신의 내면을 깊숙히 탐구하여 아이디어를 끄집어 낸 것이다.

린치처럼 비정상적으로 정돈된 정신 세계를 가진 한 남자가 우리의 보통 세계를 보는 관점은 어떨까요? 당연히 우리 세계의 폭력성은 과장되어 보일 것입니다. 정돈과 모범의 끝에 선 그 자신이 품고 있는 환상 역시 그만큼이나 과장되어 있을 것이고요. 보통 사람들이 어중간한 중간에 서서 어정쩡한 타락과 어정쩡한 정상성 사이를 오가는 대신 데이빗 린치와 같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극단을 탐하게 되는 것입니다.[http://djuna.cine21.com/movies/name_david_lynch.html]

영화에 대한 생각

컬트영화는 이성적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일반 대중이 컬트영화보다 헐리우드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 플롯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컬트영화는 뭔가 있는체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한 감상하는 사람 또한 자신만의 시각을 타인에게 설명하려 하지만, 영화를 이해하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더 큰 오해를 가져올 따름이었다.

문제는 관객들과 비평가들이 린치의 솔직담백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설명을 요구했고 비평가들은 설명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린치의 영화들은 뭔가 심오한 의미를 담은 '고급' 예술 작품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슬럼프 중에는 괜히 잘난 척하는 가짜 취급을 받았습니다. [http://djuna.cine21.com/movies/name_david_lynch.html]

데이빗 린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영화는 관객이 이해하는 것이 언제나 맞다고, 감독이 그 장면의 의도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는게 오히려 문제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이 백번 옳은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과 다른 생각인 사람에게 잘못 이해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다.

p36.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영화감독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를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렇듯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귀중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망쳐 버릴 수 있는 말과 행위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초월명상

이 책의 핵심은 데이빗 린치가 초월명상을 만나면서 변하게 된 과정이다. 이 책에 '거룩하신 요기 마하리시 마헤시 님께'라는 헌사를 바쳤는데, 마하리시 마헤시가 바로 초월명상을 창시한 사람이다.

데이빗 린치는 초월명상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고질적인 갈등과 스트레스를 떨쳐버렸다. 또한 내면에 숨겨진 자신의 비밀스런 기억들을 끄집어 내서 작품화 시켰다.

p18. 깊은 곳에 있는 물고기는 더 힘세고 더 순수하다. 그놈들은 덩치가 크고 심원하며 아주 아름답다.

데이빗 린치가 초월명상에 대해 극찬을 하니, 나도 초월명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지 않는지 불안한 마음이 많다. 책을 많이 읽어도 나에게는 아주 조금만 남아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모두 내가 가진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월명상을 통해 내 역량을 높일 수 있다면 나는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45. 당신의 의식이 골프공만 하다면, 당신은 책을 읽더라도 골프공 크기 정도만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의식을 확장해서 자라게 하면, 책을 읽더라도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따라서 의식을 확장하면 당신은 환상적인 게임을 즐기듯이 삶을 살 수 있다.

초월명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를 높여주고, 직관력을 키워준다. 무심코 지나쳤던 중요한 정보는 명상을 통해 다시 끄집어 낼 수 있다.

p60. 특정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의식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의식의 바다를 더 생생하게 하려고 잠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직관이 길러지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발견할 수 있다.

아쉬운 점

이 책을 통해 데이빗 린치 같은 한 분야의 거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찰력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책이 에세이란 점을 감안해도 일관된 주제로 묶이지 않아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내용 자체도 과거 이야기, 초월명상 이야기, 영화이야기로 크게 나뉠 수 있지만 각 주제에서도 통찰력은 느끼기 어려웠다.

또한 초월명상에 대해서도 좋다는 말만 하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초월명상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초월명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초월명상은 세계평화를 지향한다고 한다. 그렇게 공공적인 목적이라면 인터넷에 그럴듯한 자료라도 올려놓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데이빗 린치가 어떻게 초월명상을 수행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면 더 가치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