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대한민국 동행세일
7월 혜택모음
매장배송 중고도서
책을 듣다
주말엔 보너스
세이페이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CD

Joan Baez (존 바에즈) - Joan

[ 1967년 발매작 ]
Joan Baez 노래 | Vanguard Records / Vanguard Records | 2003년 12월 1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54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22,900원
할인가 18,6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seyPay seyPay 첫등록시 최대 3,000 포인트 지급 (2천 + 1천 포인트)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보너스 트랙 2곡 수록

판매중| 한정판매

수량
배송비 : 2,000원 해당 상품과 도서 포함하여 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03년 12월 15일
제조국 미국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 1
  • 01 Be Not Too Hard
  • 02 Eleanor Rigby
  • 03 Turquoise
  • 04 La Colombe-The Dove
  • 05 Dangling Conversation
  • 06 The Lady Came From Baltimore
  • 07 North
  • 08 Children Of Darkness
  • 09 The Greenwood Side
  • 10 If You Were A Carpenter
  • 11 Annabel Lee
  • 12 Saigon Bride
  • 13 Oh, Had I A Golden Thread
  • 14 Autumn Leaves

아티스트 소개 (1명)

노래 : Joan Baez (조안 바에즈 ,Joan Chandos Baez)
포크뮤직은 의식과 관계하는 음악이다. 누군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포크뮤직이라 말할 수 없다. 1960년대의 포크 뮤직이 저항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갖추어 청년들의 절대적 호응을 받게 된 데는 ‘남과 여’ 한 쌍의 힘이 컸다. 두 사람은 포크의 콤비로서 당시 젊은이들의 의식, 시각, 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또한 ‘노래란 선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가사 또한 살아 숨쉬어야... 포크뮤직은 의식과 관계하는 음악이다. 누군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포크뮤직이라 말할 수 없다. 1960년대의 포크 뮤직이 저항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갖추어 청년들의 절대적 호응을 받게 된 데는 ‘남과 여’ 한 쌍의 힘이 컸다. 두 사람은 포크의 콤비로서 당시 젊은이들의 의식, 시각, 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또한 ‘노래란 선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가사 또한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것도 두 사람의 공이었다. 남자는 밥 딜런이요, 여자는 존 바에즈였다. 존 바에즈는 포크 프로테스트 시대에 딜런의 여성 대응자(對應者)라는 위치 하나만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처럼 딜런과 ‘평등’을 누렸을 뿐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딜런보다 더 오래 간직했다. 딜런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후 정치성으로부터 멀어져갔지만 바에즈는 끝까지 시대의 변화에 타협하지 않고 현실적 테마의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노선조정 이후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던 딜런과 달리 그의 여성 파트너는 레코드 회사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등 제도권의 박해공작에 시달렸다. 또 하나 바에즈가 ‘비교 우위’를 점하는 부분은 포크의 대중화와 관련하여 바에즈가 딜런보다 시간상 한 발 앞섰다는 사실이다. 딜런이 1959년 미네소타 대학 주변의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있을 때 바에즈는 제1회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 1만 3천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했다. 딜런이 첫 앨범을 발표하여 신고식을 마친 1962년에 바에즈는 이미 스타로 떠올라 < 타임 >지의 커버스토리에까지 등장했다. 따라서 ‘포크 대중화의 선두주자’는 딜런이 아니라 엄연히 존 바에즈였다. 이를테면 그가 딜런의 선배인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그를 ‘딜런의 여성 대응자’라 일컫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딜런 우월주의(?) 혹은 습관적인 성차별이 깔려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존 바에즈는 실로 약자(弱者)를 위한 여교사와 같았다. 그는 늘 힘없는 사람과 상처받는 사람 편에 서서 노래했다. 세상살이에 뒤쳐지고 외롭고 망가진 사람들을 위해 통기타를 울렸고 미국내의 약자 가운데 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이주민의 정서를 노래에 자주 실었다. 모든 ‘어둠의 자식들’이 존 바에즈의 진정한 벗이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존 바에즈의 올타임 리퀘스트들인 ‘세상의 가련한 길손’, ‘도나도나’, ‘솔밭 사이에 강물은 흐르고’ 등이 깊은 애조를 띠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약자의 편에서 노래를 하니 그 가락이 슬플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바에즈는 그들을 달랜 것만이 아니라 잊혀진 자유, 잃어버린 권리를 쟁취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시장으로 가는 짐차 위의 슬픈 눈망울의 송아지 한 마리, 그 위로 제비 한 마리가 날고 있네... 농부가 말했지. 불평일랑 하지 마. 누가 멍에를 쓰라고 했니. 넌 왜 제비처럼 자랑스레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날개가 없니... 송아지는 쉽게 갇혀 도살되지. 이유도 모른 채. 하지만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법을 배우지’ ‘도나 도나(Donna Donna)’ 존 바에즈는 나아가 이런 소외받는 계층 위에 군림하는 미국 정부, 그러면서도 전쟁만을 밝히는 미국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너무 이상한 꿈(Strangest dream)’과 같은 반전가요를 잇따라 발표했고 심지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과격한 노래까지 불러 주위를 깜짝 놀라게도 했다. 정치색이 짙은 노래를 지향한 맹렬 여성의 이미지는 이미 출생 순간부터 고리가 맺어진 운명이었다. 존 바에즈는 1941년 멕시코가 모국인 아버지, 스코틀랜드와 아이랜드 피가 섞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피부는 검었다. 백인 지배의 세상이었으니 어렸을 적부터 인종차별에 직면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 인구 8백 명인 뉴욕의 조그만 클레어렌스센터 마을에서 본낸 소녀시절에 대한 짧은 술회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 우리는 니그로였다.” 그의 부친은 핵물리학자였다. 그래서 방위산업체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곤 했지만 원폭의 가공할 위력을 알고 있는지라 번번히 거절했다고 하다. 존 바에즈의 아버지는 뼈대있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보다는 인류애’를 선택하는 이러한 줏대는 고스란히 딸에게 대물림한다. 딸은 민중적, 반(反)상업적 성격을 특질로 하는 포크 음악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집에서 들은 음악은 바하, 비발디, 모차르트였고, 여고시절에는 교내합창단(캘리포니아 팔로 알토 소재의 학교)에서 노래를 불러 다분히 ‘클래식적인’ 분위기였지만 마음은 통기타에 끌렸다. 졸업 직전 주머니를 털어 시어즈 로벅 기타를 구입한 그는 모친의 영향으로 보스톤 대학의 연극과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었고 포크의 전당인 하바드 스퀘어 주변의 다방을 드나들곤 했다. 그는 한때 1년 공연 개런티로 10만 달러 이상을 주겠다는 프로모터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다. 그는 “포크 뮤직은 의식과 관계하는 음악이다. 누군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 뮤직으로 말할 수 없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존 바에즈는 이 세상이 부자와 빈자로 뚜렷이 이분되어 있음을 일찍이 간파했다. 초기 노랫말을 보면 약자의 교사답게 ‘가난’이라는 어휘가 무수하게 등장한다. ‘난 가난한 소녀야. 운명이 변변치 못하지. 날 항상 쫓아다니는 짐마차꾼의 아이가 있지. 그 앤 밤낮으로 날 유혹하지... 우리 부모는 그를 좋아하지 않아. 가난하기 때문이래. 따를 가치가 없다는 거야. 그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그 돈은 자기 것인데.’ ‘짐마차꾼 아이(Wagoner`s Lad)’ ‘삶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면 아마 부자는 살고 가난한 자는 죽어야 할거야. 신이여, 나의 시련을 끝내주소서.’ ‘나의 시련(All My Trials)’ 미리 지적했듯 존 바에즈는 1950년대 말 보스톤으로 이사와 하바드 스퀘어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수면위 급부상의 기틀을 다진다. 이윽고 1959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포크가수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는데 얼마전 이를 담은 음반이 국내에 소개되었다)에 출연, 1만3천 명 청중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당시 < 뉴욕 타임즈 > 기자 로버트 셀톤이 그 관객들 가운데 끼어 있었고 그는 바에즈의 노래를 듣고 난 뒤 ‘스타가 탄생했다’는 기사를 썼다. 셀튼 기자는 그녀를 ‘전율을 자아내는 풍부한 비브라토와 열정적이고 잘 통제된 전달능력을 소지한 젊은 소프라노’라고 극찬했다. 1962년 < 타임 >지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존 바에즈는 현 포크진영의 신인 가운데 가장 재능있는 가수’라고 언급했다. 그 해 그녀는 3장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포크 무대에서 자신의 ‘남성 대응자’인 밥 딜런과 조우하여 함께 뉴 포트 포크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등 콤비플레이를 전개, 주목을 끌기도 했다. 존 바에즈는 관념적 지성을 배격하고 실천적 가치를 최고로 삼고 사고를 행동에 직결시키려는 자세로 살아갔다. 단호하고 대담하기만 했던 그의 행적을 약식으로 정리해 본다. *1963년 8월 : 흑백 차별 폐지와 인종평등을 기치로 내건 워싱턴 대행진에 참여 *1964년 4월 : 자신에게 부과된 1963년 소득세의 60%에 대해서는 납세를 거부한다고 국세청에 통보(그 60%가 국방비로 지출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1964년 11월 : 국세청은 1963년 소득세의 납부 거부에 대해 5만1백82달러의 벌금을 부과(1965년 12월에는 1964년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데 대해 3만7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1966년 12월에도 전년도 소득세를 내지 않아 세액이 75%증가했다고 통보. 2년 연속 그의 납세거부 이유는 ‘월남전 분위기 고조’였다) *1965년 4월 : 백악관 정문에서 반전 시위 *1966년 12월 : 1964년 데스로 죄수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감형을 촉구하는 크리스마스 기도회에 참석 *1967년 9월 : 징병거부자를 대상으로 입대영장 반송 운동을 조직화하는데 가담(5백명이 실행) *1967년 10월 :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육군 검사대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연좌 농성. 해산하지 않고 도로를 점령, 통행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3명 모두 10일간 수감(집안 전체가 운동권이다!) *1968년 3월 : 징병거부 운동의 지도자인 데이비드 해리스와 연대, 여학생들에게 ‘No라고 말하는 남학생들한테 Yes’할 것을 촉구 반전과 인종평등을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했다. 연좌 농성, 프리덤 라이드, 데모, 시가행진 등 모든 형식의 ‘저항’에 적극 참여했으며, 그런 것들이 순회공연을 대신했고 또 그런 것들이 순회공연 내용이기도 했다. 심지어 1965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카멜 밸리에 있던 교사(校舍)를 개조해 ‘비폭력 연구사무소’(그 모토는 비폭력은 반드시 폭력을 이긴다)를 개설하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은 『간디와 핵시대』와 같은 평화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평화에 대한 세미나와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물론 존 바에즈! 그런데 카벨 밸리의 일부 주민들은 연구소 회원과 수강생들이 ‘아름다운’ 자기네 영토에 침투,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즉각 연구소 활동을 중지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 눈에는 이들이 히피, 그리고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위험 인물’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클레임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연구소는 상당 기간활동을 지속했다. 마을주민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존 바에즈를 ‘통기타치는 파괴분자’쯤으로 간주했고 ‘페스트’같은 존재로 치부했다. 그가 대학생들에게는 ‘명성’일지 몰라도 정부에게는 ‘악명’이었다. 여러 차례 정부 관계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해왔지만, 그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현장을 뛴 동지이자 운동권의 지휘자인 데이비드 해리스와 1968년 결혼했다. 개혁과 투쟁을 결혼생활에 까지 이어간 이런 여성이 어찌 제도권의 협박에 흔들렸으랴. 우리에게 존 바에즈는 밥 딜런과의 로맨스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녀는 딜런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딜런도 그를 모델로 한 ‘조안나의 비전(Vision of Johanna)’ 등의 곡을 써 간접적으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입장의 동일함(기간이 짧았지만)에 의한 동지애로 평가해야 할 줄로 여긴다.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면 밥 딜런은 포크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등 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인으로 추대되는 반면 막상 존 바에즈는 음악적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록 평론가들 중에 그의 작품을 걸작으로 꼽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그가 직접 곡을 쓰지 못했다는 실력 폄하와 포크는 했지만 너무나 고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거부감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딜런도 언젠가 “존 바에즈의 목소리는 포크하기에 너무 아름다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실상 음반 판매면에서는 딜런을 앞서나갔고, 특히 포크의 프로테스트적 성격을 오래 견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비평계가 조금은 잔인했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1970년대 이후 존 바에즈에게 정치색은 즐어들고 대신 사회사업가적 면모가 나타난다. 음악에도 변화가 일어나 전속 레코드사가 뱅가드에서 A&M으로 바뀌면서 통기타의 자연음으로부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로 탈바꿈, 딜런의 전철을 밟는다. 이렇듯 변화가 깃들고 존 바에즈라는 이름 자체가 갖는 신비력이 떨어지고 있던 1971년에 이르러서야 ‘올드 딕스를 내몰았던 밤(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이라는 곡이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권에 진입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1980년대에 그는 팝 음악의 공식 무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메이저 레코드사들의 기피 때문이다) 간간이 군비축소, 인종 차별 폐지, 자연보호 등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반전가요나 이념송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입장선회로 빠지지 않았으며 50대인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지향하는 상업가요를 배격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실로 ‘1960년대의 존 바에즈’는 기념비적이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현실 반영과 저항의 올곧은 태도로 무대 또는 장외활동에 임했던 여가수는 그 외에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1963년 존 바에즈는 잡지 < 룩 >에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는 낙태로 아이를 죽이는 행위, 인종차별로 정신을 말살시키는 행위 등과 같은 실제사건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다. 난 노래하길 좋아하고 신소리를 하자면 사람들은 내 노래 듣기를 좋아한다. 난 이 두 가지 측면을 결코 분리시킬 수가 없다. 그것들이 나의 모든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애정도 계속되고 있다. 두 부분 아니 그의 모든 부분은 그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1992년 말 존 바에즈는 버진 레코드사에서 앨범 < 나를 되돌려주오(Play Me Backwards) >를 발표했다. 그의 28번째 음반이었다.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