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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ustic Woman

[ 3CD ]
Eva Cassidy, Beth Orton, Shelby Lynne, Alison Moyet, Rickie Lee Jones 노래 외 2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etro / Metro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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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ustic Woman

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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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영국

관련분류

디스크

CD 1
  • 01 Songbird - Eva Cassidy
  • 02 Central Reservation - Beth Orton
  • 03 Your Lies - Shelby Lynne
  • 04 Weak In The Presence Of Beauty - Alison Moyet
  • 05 Little Mysteries - Rickie Lee Jones
  • 06 Bicycle Named Heaven - Catie Curtis
  • 07 Last Love Letter - Alison Krauss And Union Station
  • 08 Sunshine - Gabrielle
  • 09 Hockey Skates - Kathleen Edwards
  • 10 Drake - Beth Gibbons
  • 11 Whole New You - Shawn Colvin
  • 12 Aragon Hill - Hazel Dickens
  • 13 You'll Get No More Of Me - The Lynn Morris Band
  • 14 Ill Wind - Clare Teal
  • 15 It's All Over Now, Baby Blue (Live) - Joan Baez
CD 2
  • 01 Didn’t Leave Nobody But The Baby - Emmylou Harris, Gilian Welch, Alison Krauss
  • 02 I Can't Get My Head Around It - Aimee Mann
  • 03 Honey Child - Eddie Reader
  • 04 I Wish It Would Rain - Nanci Griffith
  • 05 Show Me Heaven - Maria Mckee
  • 06 Come On In My Kitchen - Rory Block
  • 07 Motherless Child Blues - Tracy Nelson
  • 08 Yellow - Petra Haden & Bill Frisell
  • 09 The Girl From Ipanema - Paula Santoro
  • 10 He Thinks He'll Keep Her - Mary Chapin Carpenter
  • 11 Jolene - Dolly Parton
  • 12 Useless Desires - Patty Griffin
  • 13 Not Forgotten You - Kelly Willis
  • 14 The Shades Of Gloria - Maura O'connell
  • 15 Lighting Up The Mighty Mississippi - Cheryl Wheeler
CD 3
  • 01 Marlene On The Wall - Suzanne Vega
  • 02 My Baby Just Cares For Me - Nina Simone
  • 03 Mad About The Boy - Dinah Washington
  • 04 September In The Rain - Jaqui Dankworth
  • 05 Mmm My Best Friend - Sophie B. Hawkins
  • 06 Still I Long For Your Kiss - Lucinda Williams
  • 07 Can We Go Home Now - The Roches
  • 08 I'm Gonna Be An Engineer - Peggy Seeger
  • 09 Walkin’ After Midnight - Patsy Cline
  • 10 Broken Heart For Sale - Heather Myles
  • 11 When Your Lover Has Gone - Stacey Kent
  • 12 The Nearness Of You - Joanna Eden
  • 13 Movie Kisses - Thea Gilmore
  • 14 Warm & Tender Love - The Reel & Soul Association
  • 15 Baby, Don't You Quit Now - Carol Sloane

아티스트 소개 (32명)

미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미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1998년경부터 엘리엇 스미쓰(Elliott Smith)와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에 의해 시작된 ‘세기말 포크의 재조명’은 작지만 중요한 흐름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이전의 포크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중들과의 소통체계를 형성했다. 즉, 60년대 포크의 절정을 이루었던 대규모 대중들과의 만남이 아닌 동일한 감수성을 지닌 소규모 (열혈) 매니아들과의 교류를 구축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 1998년경부터 엘리엇 스미쓰(Elliott Smith)와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에 의해 시작된 ‘세기말 포크의 재조명’은 작지만 중요한 흐름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이전의 포크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중들과의 소통체계를 형성했다. 즉, 60년대 포크의 절정을 이루었던 대규모 대중들과의 만남이 아닌 동일한 감수성을 지닌 소규모 (열혈) 매니아들과의 교류를 구축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쓰 오튼(Beth Orton)은 비록 비슷한 씬(Scene)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둘과는 또 다른 음악적 접근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1996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인 < Trailer Park >는 전통적인 포크 사운드와 트립 합적인 일렉트로닉 기법을 결합시켜 그녀에게 ‘일렉트로니카 시대의 포키(folkie)’라는 칭호를 부여한 작품이었다. 솔로 활동 이전부터 그녀는 윌리엄 오빗(William Orbit), 케미컬 부라더tm(Chemical Brothers)등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 이로부터 형성된 내공을 자신의 데뷔에 십분 발휘,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다. 특히 어쿠스틱 사운드와 전자적인 사운드 사이의 (엄청난?) 갭(gap)을 현명한 방식으로 조율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1997년에 < Best Bit EP >를 발표한 후 나온 2집 < Central Reservation >(1999)에서 그녀는 어쿠스틱한 면을 보다 강조한 정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다. 물론 몇몇 트랙들은 1집에서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보다는 포크와 블루스, 재즈에 기반한 사운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오히려 1집보다 베쓰 오튼의 거칠면서도 고요한 목소리와 더욱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점점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 대중 음악 속에서 그것을 예전 것들과 성공적으로 조화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베쓰 오튼은 그녀의 데뷔 앨범에서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만의 독창성은 보증 수표를 부여받았다. 또한 이것은 동시대의 다른 포키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페르소나(persona)를 획득하게 했고, 트립 합 디바(diva)(포크 뮤지션이 트립 합의 디바?)라는 아이러니컬한 지위를 그녀에게 선사했다.
포크/컨트리 싱어송 라이터 포크/컨트리 싱어송 라이터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국 일렉트릭 팝 듀오 야주(Yazoo) 출신 싱어송라이터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국 일렉트릭 팝 듀오 야주(Yazoo) 출신 싱어송라이터
팝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로 기억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한 독특한 가사에 포크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거기에 팝을 혼합한 그녀의 음악은 캐나다 출신의 위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A lover''s concerto''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알... 팝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로 기억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한 독특한 가사에 포크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거기에 팝을 혼합한 그녀의 음악은 캐나다 출신의 위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A lover''s concerto''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알려진 재즈 싱어 사라 본(Sarah Vaughn), 그리고 괴짜 뮤지션으로 악명 높은 랜디 뉴만(Randy Newman)과 톰 웨이츠(Tom Waits) 같은 대가들로부터 채무를 지고 있다. 그러한 그녀의 독특한 음악을 형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1954년 11월 8일, 미국의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와의 불화로 10대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 그리고 이성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집에서 가출해 서부 해안 도시들을 배회하면서 사회 밑바닥 인생도 겪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의 경험을 토대로 쓴 가사가 단지 아름다운 사랑 타령일 수만은 없었다. 이 금발의 싱어 송라이터가 자신의 노래 소재로 삼은 것들은 죽음, 변화, 진화처럼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러한 방황 후 이 아리따운 여성이 정착한 곳은 로스앤젤레스였고, 거기서 레스토랑 서빙과 1인 독백극 공연을 통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가 일명 ''카바레 음악의 대부'' 톰 웨이츠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입문했다. 1979년에 나온 처녀작 < Rickie Lee Jones >는 재즈와 팝, 포크, 리듬 앤 블루스, 록이 혼재되어 있는 음반으로 판매적인 면은 물론 비평적인 면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느긋하지만 변덕스럽고, 약물 기운으로 조금은 나른한 데뷔 음반에서는 싱글 ''Chuck E''s in love(4위)''가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며 그녀에게 그래미 신인상의 길로 인도했고 ''Youngblood(40위)''가 후속타를 기록했다. 이 처녀작 이후 1984년의 < Magazine >까지 4장의 LP를 공개했지만 상업적인 잣대인 히트 차트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평론가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1980년대 중반 다시 도진 음주벽과 부진한 음반 판매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딸의 출산으로 5년의 공백기를 가진 리키 리 존스는 올해 그래미 주요 부문을 휩쓴 스틸리 댄(Steely Dan)의 월터 벡커(Walter Becker)의 진두지휘 아래 1989년에 제작한 음반 < Flying Cowboys >로 인상적인 재기를 했고, 1991년에는 팝록 밴드 워스 (낫 워스)[Was (Not Was)]의 리더 돈 워스(Don Was)의 프로듀싱으로 < Pop Pop >을 발표했다. 유년 시절의 어두웠던 기억과 경험을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리키 리 존스는 ''음악의 힘''을 증명했다. 만약 그녀가 1990년대 등장했다면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숀 콜빈(Shawn Colvin)과 함께 막강한 여성 포크록 싱어 송라이터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성했을 것이다.
Portishead의 보컬 Portishead의 보컬
영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영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노래 : Joan Baez (조안 바에즈 ,Joan Chandos Baez)
포크뮤직은 의식과 관계하는 음악이다. 누군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포크뮤직이라 말할 수 없다. 1960년대의 포크 뮤직이 저항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갖추어 청년들의 절대적 호응을 받게 된 데는 ‘남과 여’ 한 쌍의 힘이 컸다. 두 사람은 포크의 콤비로서 당시 젊은이들의 의식, 시각, 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또한 ‘노래란 선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가사 또한 살아 숨쉬어야... 포크뮤직은 의식과 관계하는 음악이다. 누군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포크뮤직이라 말할 수 없다. 1960년대의 포크 뮤직이 저항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갖추어 청년들의 절대적 호응을 받게 된 데는 ‘남과 여’ 한 쌍의 힘이 컸다. 두 사람은 포크의 콤비로서 당시 젊은이들의 의식, 시각, 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또한 ‘노래란 선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가사 또한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것도 두 사람의 공이었다. 남자는 밥 딜런이요, 여자는 존 바에즈였다. 존 바에즈는 포크 프로테스트 시대에 딜런의 여성 대응자(對應者)라는 위치 하나만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처럼 딜런과 ‘평등’을 누렸을 뿐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딜런보다 더 오래 간직했다. 딜런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후 정치성으로부터 멀어져갔지만 바에즈는 끝까지 시대의 변화에 타협하지 않고 현실적 테마의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노선조정 이후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던 딜런과 달리 그의 여성 파트너는 레코드 회사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등 제도권의 박해공작에 시달렸다. 또 하나 바에즈가 ‘비교 우위’를 점하는 부분은 포크의 대중화와 관련하여 바에즈가 딜런보다 시간상 한 발 앞섰다는 사실이다. 딜런이 1959년 미네소타 대학 주변의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있을 때 바에즈는 제1회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 1만 3천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했다. 딜런이 첫 앨범을 발표하여 신고식을 마친 1962년에 바에즈는 이미 스타로 떠올라 < 타임 >지의 커버스토리에까지 등장했다. 따라서 ‘포크 대중화의 선두주자’는 딜런이 아니라 엄연히 존 바에즈였다. 이를테면 그가 딜런의 선배인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그를 ‘딜런의 여성 대응자’라 일컫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딜런 우월주의(?) 혹은 습관적인 성차별이 깔려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존 바에즈는 실로 약자(弱者)를 위한 여교사와 같았다. 그는 늘 힘없는 사람과 상처받는 사람 편에 서서 노래했다. 세상살이에 뒤쳐지고 외롭고 망가진 사람들을 위해 통기타를 울렸고 미국내의 약자 가운데 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이주민의 정서를 노래에 자주 실었다. 모든 ‘어둠의 자식들’이 존 바에즈의 진정한 벗이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존 바에즈의 올타임 리퀘스트들인 ‘세상의 가련한 길손’, ‘도나도나’, ‘솔밭 사이에 강물은 흐르고’ 등이 깊은 애조를 띠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약자의 편에서 노래를 하니 그 가락이 슬플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바에즈는 그들을 달랜 것만이 아니라 잊혀진 자유, 잃어버린 권리를 쟁취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시장으로 가는 짐차 위의 슬픈 눈망울의 송아지 한 마리, 그 위로 제비 한 마리가 날고 있네... 농부가 말했지. 불평일랑 하지 마. 누가 멍에를 쓰라고 했니. 넌 왜 제비처럼 자랑스레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날개가 없니... 송아지는 쉽게 갇혀 도살되지. 이유도 모른 채. 하지만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법을 배우지’ ‘도나 도나(Donna Donna)’ 존 바에즈는 나아가 이런 소외받는 계층 위에 군림하는 미국 정부, 그러면서도 전쟁만을 밝히는 미국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너무 이상한 꿈(Strangest dream)’과 같은 반전가요를 잇따라 발표했고 심지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과격한 노래까지 불러 주위를 깜짝 놀라게도 했다. 정치색이 짙은 노래를 지향한 맹렬 여성의 이미지는 이미 출생 순간부터 고리가 맺어진 운명이었다. 존 바에즈는 1941년 멕시코가 모국인 아버지, 스코틀랜드와 아이랜드 피가 섞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피부는 검었다. 백인 지배의 세상이었으니 어렸을 적부터 인종차별에 직면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 인구 8백 명인 뉴욕의 조그만 클레어렌스센터 마을에서 본낸 소녀시절에 대한 짧은 술회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 우리는 니그로였다.” 그의 부친은 핵물리학자였다. 그래서 방위산업체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곤 했지만 원폭의 가공할 위력을 알고 있는지라 번번히 거절했다고 하다. 존 바에즈의 아버지는 뼈대있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보다는 인류애’를 선택하는 이러한 줏대는 고스란히 딸에게 대물림한다. 딸은 민중적, 반(反)상업적 성격을 특질로 하는 포크 음악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집에서 들은 음악은 바하, 비발디, 모차르트였고, 여고시절에는 교내합창단(캘리포니아 팔로 알토 소재의 학교)에서 노래를 불러 다분히 ‘클래식적인’ 분위기였지만 마음은 통기타에 끌렸다. 졸업 직전 주머니를 털어 시어즈 로벅 기타를 구입한 그는 모친의 영향으로 보스톤 대학의 연극과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었고 포크의 전당인 하바드 스퀘어 주변의 다방을 드나들곤 했다. 그는 한때 1년 공연 개런티로 10만 달러 이상을 주겠다는 프로모터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다. 그는 “포크 뮤직은 의식과 관계하는 음악이다. 누군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 뮤직으로 말할 수 없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존 바에즈는 이 세상이 부자와 빈자로 뚜렷이 이분되어 있음을 일찍이 간파했다. 초기 노랫말을 보면 약자의 교사답게 ‘가난’이라는 어휘가 무수하게 등장한다. ‘난 가난한 소녀야. 운명이 변변치 못하지. 날 항상 쫓아다니는 짐마차꾼의 아이가 있지. 그 앤 밤낮으로 날 유혹하지... 우리 부모는 그를 좋아하지 않아. 가난하기 때문이래. 따를 가치가 없다는 거야. 그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그 돈은 자기 것인데.’ ‘짐마차꾼 아이(Wagoner`s Lad)’ ‘삶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면 아마 부자는 살고 가난한 자는 죽어야 할거야. 신이여, 나의 시련을 끝내주소서.’ ‘나의 시련(All My Trials)’ 미리 지적했듯 존 바에즈는 1950년대 말 보스톤으로 이사와 하바드 스퀘어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수면위 급부상의 기틀을 다진다. 이윽고 1959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포크가수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는데 얼마전 이를 담은 음반이 국내에 소개되었다)에 출연, 1만3천 명 청중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당시 < 뉴욕 타임즈 > 기자 로버트 셀톤이 그 관객들 가운데 끼어 있었고 그는 바에즈의 노래를 듣고 난 뒤 ‘스타가 탄생했다’는 기사를 썼다. 셀튼 기자는 그녀를 ‘전율을 자아내는 풍부한 비브라토와 열정적이고 잘 통제된 전달능력을 소지한 젊은 소프라노’라고 극찬했다. 1962년 < 타임 >지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존 바에즈는 현 포크진영의 신인 가운데 가장 재능있는 가수’라고 언급했다. 그 해 그녀는 3장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포크 무대에서 자신의 ‘남성 대응자’인 밥 딜런과 조우하여 함께 뉴 포트 포크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등 콤비플레이를 전개, 주목을 끌기도 했다. 존 바에즈는 관념적 지성을 배격하고 실천적 가치를 최고로 삼고 사고를 행동에 직결시키려는 자세로 살아갔다. 단호하고 대담하기만 했던 그의 행적을 약식으로 정리해 본다. *1963년 8월 : 흑백 차별 폐지와 인종평등을 기치로 내건 워싱턴 대행진에 참여 *1964년 4월 : 자신에게 부과된 1963년 소득세의 60%에 대해서는 납세를 거부한다고 국세청에 통보(그 60%가 국방비로 지출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1964년 11월 : 국세청은 1963년 소득세의 납부 거부에 대해 5만1백82달러의 벌금을 부과(1965년 12월에는 1964년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데 대해 3만7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1966년 12월에도 전년도 소득세를 내지 않아 세액이 75%증가했다고 통보. 2년 연속 그의 납세거부 이유는 ‘월남전 분위기 고조’였다) *1965년 4월 : 백악관 정문에서 반전 시위 *1966년 12월 : 1964년 데스로 죄수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감형을 촉구하는 크리스마스 기도회에 참석 *1967년 9월 : 징병거부자를 대상으로 입대영장 반송 운동을 조직화하는데 가담(5백명이 실행) *1967년 10월 :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육군 검사대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연좌 농성. 해산하지 않고 도로를 점령, 통행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3명 모두 10일간 수감(집안 전체가 운동권이다!) *1968년 3월 : 징병거부 운동의 지도자인 데이비드 해리스와 연대, 여학생들에게 ‘No라고 말하는 남학생들한테 Yes’할 것을 촉구 반전과 인종평등을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했다. 연좌 농성, 프리덤 라이드, 데모, 시가행진 등 모든 형식의 ‘저항’에 적극 참여했으며, 그런 것들이 순회공연을 대신했고 또 그런 것들이 순회공연 내용이기도 했다. 심지어 1965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카멜 밸리에 있던 교사(校舍)를 개조해 ‘비폭력 연구사무소’(그 모토는 비폭력은 반드시 폭력을 이긴다)를 개설하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은 『간디와 핵시대』와 같은 평화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평화에 대한 세미나와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물론 존 바에즈! 그런데 카벨 밸리의 일부 주민들은 연구소 회원과 수강생들이 ‘아름다운’ 자기네 영토에 침투,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즉각 연구소 활동을 중지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 눈에는 이들이 히피, 그리고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위험 인물’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클레임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연구소는 상당 기간활동을 지속했다. 마을주민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존 바에즈를 ‘통기타치는 파괴분자’쯤으로 간주했고 ‘페스트’같은 존재로 치부했다. 그가 대학생들에게는 ‘명성’일지 몰라도 정부에게는 ‘악명’이었다. 여러 차례 정부 관계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해왔지만, 그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현장을 뛴 동지이자 운동권의 지휘자인 데이비드 해리스와 1968년 결혼했다. 개혁과 투쟁을 결혼생활에 까지 이어간 이런 여성이 어찌 제도권의 협박에 흔들렸으랴. 우리에게 존 바에즈는 밥 딜런과의 로맨스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녀는 딜런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딜런도 그를 모델로 한 ‘조안나의 비전(Vision of Johanna)’ 등의 곡을 써 간접적으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입장의 동일함(기간이 짧았지만)에 의한 동지애로 평가해야 할 줄로 여긴다.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면 밥 딜런은 포크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등 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인으로 추대되는 반면 막상 존 바에즈는 음악적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록 평론가들 중에 그의 작품을 걸작으로 꼽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그가 직접 곡을 쓰지 못했다는 실력 폄하와 포크는 했지만 너무나 고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거부감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딜런도 언젠가 “존 바에즈의 목소리는 포크하기에 너무 아름다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실상 음반 판매면에서는 딜런을 앞서나갔고, 특히 포크의 프로테스트적 성격을 오래 견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비평계가 조금은 잔인했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1970년대 이후 존 바에즈에게 정치색은 즐어들고 대신 사회사업가적 면모가 나타난다. 음악에도 변화가 일어나 전속 레코드사가 뱅가드에서 A&M으로 바뀌면서 통기타의 자연음으로부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로 탈바꿈, 딜런의 전철을 밟는다. 이렇듯 변화가 깃들고 존 바에즈라는 이름 자체가 갖는 신비력이 떨어지고 있던 1971년에 이르러서야 ‘올드 딕스를 내몰았던 밤(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이라는 곡이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권에 진입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1980년대에 그는 팝 음악의 공식 무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메이저 레코드사들의 기피 때문이다) 간간이 군비축소, 인종 차별 폐지, 자연보호 등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반전가요나 이념송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입장선회로 빠지지 않았으며 50대인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지향하는 상업가요를 배격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실로 ‘1960년대의 존 바에즈’는 기념비적이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현실 반영과 저항의 올곧은 태도로 무대 또는 장외활동에 임했던 여가수는 그 외에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1963년 존 바에즈는 잡지 < 룩 >에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는 낙태로 아이를 죽이는 행위, 인종차별로 정신을 말살시키는 행위 등과 같은 실제사건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다. 난 노래하길 좋아하고 신소리를 하자면 사람들은 내 노래 듣기를 좋아한다. 난 이 두 가지 측면을 결코 분리시킬 수가 없다. 그것들이 나의 모든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애정도 계속되고 있다. 두 부분 아니 그의 모든 부분은 그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1992년 말 존 바에즈는 버진 레코드사에서 앨범 < 나를 되돌려주오(Play Me Backwards) >를 발표했다. 그의 28번째 음반이었다.
노래 : Emmylou Harris (에밀루 해리스 )
노래 : Alison Krauss (앨리슨 크라우스)
블루그래스 컨추리 보컬 블루그래스 컨추리 보컬
포크/컨추리, 락 보컬, 기타 연주자 포크/컨추리, 락 보컬, 기타 연주자
노래 : Nanci Griffith (낸시 그리피스)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컨트리 곡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보인 < 보디가드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비롯해 4인조 보컬 그룹 올 포 원(All 4 One)의 ‘I swear’, ‘I can love you like that’ 등의 원곡은 모두 컨트리 아티스트의 노래였다. ‘I wi...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컨트리 곡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보인 < 보디가드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비롯해 4인조 보컬 그룹 올 포 원(All 4 One)의 ‘I swear’, ‘I can love you like that’ 등의 원곡은 모두 컨트리 아티스트의 노래였다. ‘I will always love you’는 ‘9 to 5''로 유명한 돌리 파튼(Dolly Parton)이 1974년에 발표한 노래이고, ‘I swear’와 ‘I can love you like that’은 남성 컨트리 싱어 존 마이클 몽고메리(John Michael Montgomery)의 원곡을 커버한 것이다. 1946년 1월 19일 컨트리 음악의 심장부 테네시 주에서 출생한 돌리 파튼은 작사, 작곡은 물론 영화 배우와 TV 프로그램 사회자로도 활동하는 컨트리 계의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실력자다. 1960년대 컨트리 싱어 포터 와고너(Porter Wagoner)와 결혼 반지를 주고받은 그녀는 1960년대 후반에 발표한 음반들을 통해 차세대 컨트리 음악의 기대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3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컨트리 음악계의 거목으로 대우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은발의 컨트리 여성 싱어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은 1980년대 영화 < 나인 투 파이브 >가 개봉하면서 드높아졌다. 영화의 주연도 맡고 주제가도 불러 제작비를 절감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그녀는 이 곡으로 컨트리 차트는 물론 생애 처음으로 싱글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면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만능 연예인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영화 출연에 적극적이었던 돌리는 버트 레이놀즈(Burt Reynolds),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 등과 함께 스크린에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음악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거의 매년 새로운 음반을 발표했고, 1983년에는 비지스(Bee Gees)의 배리 깁(Barry Gibb)이 작곡한 ‘Islands in the stream’을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와 듀엣으로 취입해 다시 한번 싱글 차트를 탈환했다. 이 곡에서 케니 로저스가 돌리 파튼의 보컬에 눌린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보컬이나 곡의 소화력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밀물로 들어왔으면 썰물로 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 1980년대 초반 이렇듯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1980년대 중반에는 그녀의 음악 인생 중 가장 우울한 시기를 겪게 된다. 더 이상 컨트리 팝은 컨트리 팬들은 물론 팝 팬들에게도 어필하지 못했다. 그 타개책으로 이 영특한 가수가 선택한 것은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와 함께 정통 컨트리로 회귀한 음반 < Trio >였다. 그 당시 랜디 트래비스(Randy Travis)를 중심으로 신 전통주의 컨트리가 개화하려던 시점을 정확히 포착한 이 앨범으로 그녀는 다시 한번 멋지게 부활했다. 돌리 레베카 파튼(Dolly Rebecca Parton-본명)은 현재까지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고 구상하면서 컨트리 음악계의 지존으로 남아 있다. Hello Dolly!
포크/재즈 보컬 포크/재즈 보컬
흔히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말을 한다. 원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에서 떠돌이 시인을 일컫는 용어였던 그 말은 최근에 와서 레오나드 코헨처럼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때론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노래하는 가수에게 전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수잔 베가(Suzanne Vega)는 여성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 만점인 수잔 베가는 가사를 쓸 줄... 흔히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말을 한다. 원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에서 떠돌이 시인을 일컫는 용어였던 그 말은 최근에 와서 레오나드 코헨처럼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때론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노래하는 가수에게 전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수잔 베가(Suzanne Vega)는 여성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 만점인 수잔 베가는 가사를 쓸 줄 아는 ‘지적인’ 포크 가수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포크 사운드는 물론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쓰는 진지한 노랫말이 그녀가 지닌 최대의 미덕이다. 일례로, 학대받는 아이의 관점에서 가사를 쓴 ‘Luka’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며 아동학대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가사 속의 상처받은 아이는 지난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감춘 채, "난 괜찮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말아요"라고 아래층 사람에게 쓸쓸히 말한다. 수잔 베가가 높이 평가받는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980년대 후반 트레이시 채프먼과 더불어 포크 음악을 리바이벌시킨 주역이라는 점이다. 1985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음반이 비평적인 갈채를 받으며 새로운 포크 붐을 일으켰다. 여성만이 갖는 섬세한 감수성이 어필했던 것이다. 그녀의 성과는 자신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당시의 여성 포크 운동은 계속 이어져서 얼마 후 등장하는 숀 콜빈, 토리 에이모스, 애니 디프랑코, 주얼 같은 90년대 여성 포크 가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1959년 8월 12일 뉴욕에서 태어난 수잔 베가는 소설가였던 양아버지의 문학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 또한 레오나드 코헨, 루 리드의 음악에 감동 받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덕분에 싱어 송 라이터의 자질을 완벽히 갖출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던 그녀는 그때(1975년경)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회사 접수원으로 일하는 한편,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 순회공연에서 홀로 어쿠스틱 공연을 벌여나갔다. 수잔 베가의 공연은 차츰 주목받았으며, 1984년 < 뉴욕 타임즈 > 리뷰에서는 ‘뉴욕 포크 진영에서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 중 하나’로 그녀를 기술하기도 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베가는 < A&M > 레코드와 계약하고 이듬해인 1985년 데뷔앨범 < Suzanne Vega >를 발표했다.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문학적 노랫말, 청초한 여성의 음색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에 잠시 당황한 비평가들은 그녀의 음악에 ‘네오 포크’라는 신종 용어를 붙여줬고, 이후 그녀는 신흥 여성 포크의 기수로 대두된다. 1987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 Solitude Standing >에서는 앞서 언급한 ‘Luka’와 담백한 아 카펠라 트랙 ‘Tom’s diner’ 등이 크게 히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던 숀 콜빈이 백보컬로 참여한 ‘Luka’는 < 그래미상 >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작인 < Days Of Open Hand >를 기점으로는 테크노 등 음악적인 실험이 시작된다. 한편, 1990년에는 영국의 댄스 리믹스 듀오 DNA가 아카펠라 곡 ‘Tom’s diner’를 반복되는 댄스리듬과 함께 샘플링해서 발표, 그 곡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수잔 베가는 그 후 미첼 프룸(Mitchell Froom)을 프로듀서로 맞이해 두 장의 앨범, < 99.9F >(1992년)와 < Nine Objects Of Desire >(1996년)를 발표했다. 1995년에 그녀와 결혼하기도 한 미첼 프룸은 포크 록이었던 베가의 음악을 전자음, 인더스트리얼 등 보다 실험적으로 이끌었다. 2001년 10월에는 새 앨범 < Songs In Red And Gray >을 통해 포크 록으로 돌아왔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함께 최고의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 음지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깥세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통한과 슬픔, 분노와 격정 그리고 발산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떠도는 영혼들에게 그녀는 구원의 손짓을 보낸다. 어둡고 습한 곳에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말고 잘못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라고. 화를 내고, 하고 싶은 소리를 외치라고. 이제 너의 주장을 펴고 권리를 찾을 때라고. 속삭이듯 한탄하듯 때론 비단처럼 윤기 나게 때론 벨벳처럼 부드럽게 노래에 실어 전언한다. 본명은 유니스 웨이몬(Eunice Waymon), 가수 니나 시몬(Nina Siomone)으로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트라이온에서 가난한 집안의 여섯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피아노신동으로 불린 그는 ‘유니스 웨이몬 기금’(Eunice Waymon Fund)을 설립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음악선생님의 도움으로 음악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었고 뉴욕 소재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가정을 지탱하기위해, 그는 피아노반주자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1954년 여름 그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아일랜드 바의 연주자로 직업을 잡았는데, 바 주인은 그에게 노래도 잘하길 요구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해왔던 유니스 웨이몬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연예사업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름을 니나(리틀 원)시몬으로 바꿨다.(1950년대 할리우드의 쟁쟁한 여배우들과 어깨를 겨룬 프랑스의 여배우 시몬 시뇨레(Simone Signoret)의 이름을 차용) 1950년대 후반, 니나 시몬은 베들레헴 레이블에서 최초의 트랙들을 녹음했다. 이 곡들에서 피아니스트, 가수, 편곡과 작곡가로서 그의 비범한 재능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Plain gold ring’, ’Don’t smoke in bed’, ’Little girl blue’와 같은 노래들은 곧 그의 상연목록에서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페라 (Porgy and Bess)의 곡 중 하나인 ‘I love you, Porgy’가 타운 홀, 카네기 홀 그리고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불리고 히트를 기록하면서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그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재즈스탠더드, 가스펠, 흑인영가, 클래식음악, 유래가 다양한 포크음악, 블루스, 팝, 뮤지컬과 오페라 송, 아프리카의 영창 게다가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까지, 이미 음악활동의 시작부터 창대했던 그는 준비된 스타였다. 기회는 당연한 만찬이었다. 클래식의 대위법, 재즈의 즉흥연주, 블루스의 변조 등 다방면의 음악요소를 결합해내는 시몬의 재능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는 발군의 실력이었다. 독자적인 타이밍, 고요함의 음악적 극대화, 몇몇 코드로만 곡을 진행시키는 피아노연주 등의 방식으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자신만의 공연분위기를 주조해내는 실력은 가히 범접을 불허할 정도로 특징적이었으며 그의 여러 작품들에 녹아들었다. 때로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것에서부터 부드럽고 달콤한 것까지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잠시의 휴지와 반복 속에 그의 목소리는 외치고 속삭이고 또 한탄했다. 가끔은 피아노, 노래 소리, 몸짓이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결정체로 모아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는 청중들에게 주문을 걸었다. 여러 가지 주문 중 하나에만 걸려도 니나 시몬이 비교불허의 아티스트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에 청중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1963년 버밍햄의 교회에서 터진 폭파사건으로 네 명의 흑인아이들이 사망하자, 니나는 미국에서 동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통함과 격노를 금치 못했고 곧 규탄의 의미를 담은 ‘Mississippi Goddam’(빌어먹을 미시시피)을 썼다. 이 노래의 강력한 호소력과 필립스 레코드에서 처음 녹음 발표한 < Nina Simone in Concert >에 실린 노래들은 그녀의 또 다른 예술적 지평을 보여주었다. 예술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만의 음색과 세심한 피아노연주에 심혈을 기울인 그는 사랑, 증오, 슬픔, 기쁨, 외로움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노래에 실어 분명하게 전해주었다. 한때 커트 웨일(Kurt Weill)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가 작곡한 노래 ‘Pirate Jenny’를 부르며 여배우로서 대극장을 순회하기도 했던 그는 프랑스에서 자끄 브렐(Jacques Brel)의 연약한 사랑노래 ’날 떠나지 말아요’(Ne me quitte pas)를 부르기로 했다. 니나는 ‘소울의 여대사제’로 불리며 팬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신비로운 인물로 존경받음과 동시에 거의 종교계인사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 1966년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네 명의 흑인여성들의 비애로 써낸 ‘네 여인들’(Four women)을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흑인들에게 모욕적이라는 이유로 필라델피아와 뉴욕 라디오방송에서 금지되었다. 여대사제는 말씀전파에 적당한 음악을 찾기 위해 다른 길을 걸어갔다. RCA레이블로 옮겨 발표한 첫 앨범 < Nina Simone Sings The Blues >에 실린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 ’Do I move you?’, ’My man’s gone now’ 그리고 랭스톤 휴스(Langston Hughes)가 그녀를 위해 써준 시를 토대로 한 저항가요 ‘Backlash blues’를 포함해 더 많은 공민권운동가요를 불러 자신의 노선을 확증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의 비극을 노래한 ‘Why?(The King of Love is Dead)’을 위시해 ’Brown baby’, ’Images’(워링 쿠니의 시에 근거한), ‘Go limp’, ’Old Jim Crow’, ’To be Young, Gifted and Black’ 등의 노래들은 미국에서 흑인국민적인 찬가가 되었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노래하고 연주한 앨범 < Nina Simone and Piano ! >(1970)로 열성적인 팬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환생, 죽음, 고독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내성적인 노래들로 채운 모음집은 그녀의 녹음경력에 변함없는 하이라이트였다. 노래들에 새롭고 더 깊은 차원의 선물을 담아냈다. ‘Ain’t got no/I got life’(뮤지컬 “헤어”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Suzanne’, ‘To love somebody’와 같은 비지스의 노래들, 봉고연주로 두 배의 속도감을 붙인 클래식 ’My way’, ‘Just like Thumb’s blues’ 그리고 네 곡의 밥 딜런의 노래들의 주목할 만한 버전들에는 더 새롭고 깊은 차원의 재능을 담아냈다. < Emergency Ward >는 절정의 선물이었다. 그녀는 조지 해리슨이 쓴 두 곡 ’My sweet lord’와 ‘Isn’t it a pity’의 긴 버전을 연주하면서 환각과 도피성을 배제한 분위기로 꾸몄다. 니나는 그러나 어쨌든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그녀는 자신이 조종당해 왔다고 느꼈고, 음반회사, 연예사업, 인종차별주의에 넌더리가 났다. 1974년 미국을 떠나 바바도스(Barbados)로 향한 그녀는 이듬해 리베리아, 스위스, 파리,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남부에 안착했다. 1978년엔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의 ‘My father’를 정확한 해석으로 다시 부른 버전과 최면술을 거는 ’Everything must change’가 실린 새 앨범 < Baltimore >을 오랜만에 내놓았다. 그리고 1982년 미국으로부터 자진 “망명”을 선언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시한 앨범 < Fodder On My Wings >을 파리에서 녹음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여느 때보다도 잘 담긴 앨범이었다. 니나는 곡을 쓰고 개작하고 편곡했다. 피아노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노래했다. 이 앨범은 1988년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추억)하는 노래 ‘Alone again naturally’의 특별버전을 포함한 몇몇 보너스트랙이 더해져 CD로 재발매 되었다. 1984년, 런던의 로니 스콧(Ronnie Scott)에서 열린 그녀의 콘서트실황을 담은 필름이 매혹적인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드럼에 폴 로빈슨(Paul Robinson)이 찬조 출연한 이 비디오에는 그녀의 첫 레코드에서 발췌한 노래 ‘My baby just cares for me’가 포함돼 큰 인기를 누렸다. 다음 해 < Nina’s Back >(니나의 귀환)이란 제목의 새 앨범을 발표한 그녀는 전 세계를 누비는 콘서트에 나섰다. 1989년 그녀는 피트 타운젠트(Pete Townsend)의 뮤지컬 < The Iron Man >에 공헌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과 1991년 브라질 팝가수 마리아 베사니아(Maria Bethania)와 아프리카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유명 여성보컬리스트 마리암 마케바(Mariam Makeba)와 함께 녹음했다. 1991년엔 또한 자서전 < I Put A Spell On You >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어 번역본으로도 출판되었다. 1993년 스튜디오에서 만든 새 앨범 < A Single Woman >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로드 맥퀸(Rod McKuen)의 노래들, 자신의 노래 ‘Marry me’, 프랑스의 스탠더드를 자기버전으로 부른 ’Il n’y a pas d’amour heureux’, 매우 감동적인 ‘Papa, can you hear me?’가 수록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영화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레퍼토리 중 5곡이 사운드트랙에 들어간 1993년 영화 (Point Of No Return, The Assassin, code name: Nina로도 불린다)를 위시해 (1996)에 사용된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 (1996)에 삽입된 ’My baby just cares for me’ 그리고 (1997)의 ‘Exactly like you’까지 그의 목소리는 영화와 함께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월은 흘러도 그녀의 음악은 변함없이 새롭고 젊은 청취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Ain’t got no/I got life’는 1988년 네덜란드에서 대형히트를 기록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절친한 반주자들, 퍼커션의 레폴도 플레밍(Lepoldo Fleming), 베이스의 토니 존스(Tony Jones), 드럼의 폴 로빈슨(Paul Robinson), 키보드의 하비에르 콜라도스(Xavier Collados) 그리고 기타리스트 겸 그녀의 음악 감독 알 섀크만(Al Schackman)과 함께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며 청중들과 함께 여전히 흥분의 순간을 맛봤다. 1997년 런던에 바비칸(Barbican) 극장에서 그는 공민권운동, 형제애를 위해 미국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리더들 중 한사람에게 헌정하는 의미의 노래 ’Every Time I Feel The Spirit’을 불렀다. ‘Reached down and got my soul’, ’The blood done changed my name’, ’When I see the blood’와 같이 더욱 영가(Spiritual)적이고 생명과 같은 노래들이 뒤를 이었다. 니나는 1997년 프랑스에서 열린 니스 재즈 페스티벌(Nice Jazz Festival), 1998년 그리스의 의 데살로니가 재즈 페스티벌(Thessalonica Jazz Festival)의 하이라이트였다. 199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기네스 블루스 페스티벌에서는 그녀의 딸 리사 첼레스테(Lisa Celeste)와 함께 몇몇 곡을 듀엣으로 합창해 모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몬은 라틴 수퍼스타 라파엘(Rafael)과 함께 노래하고 두 번의 디즈니 연극 워크숍에 참여, 의 타이틀 역과 의 날라 역을 맡아 공연하면서 세계 투어를 했다. 1998년 7월 24일, 니나 시몬은 넬슨 만델라의 80회 생일파티에 특별손님으로 초대됐다. 1999년 10월 7일 그녀는 더블린에서 개최된 음악시상식에서 평생업적을 기리는 공로상을 품에 안았다. 2000년에 들어 그녀는 5월 26일 애틀랜타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았다. 6월 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협회로부터 다이아몬드 상을 수상한데 이어 8월 7일에는 프랑스에서 명예로운 총사상을 수상했다. 닥터. 시몬은 2003년 4월 21일 프랑스 남부 까리-르-루에에 그녀의 별장에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소망대로 유해는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뿌려졌다. 매사추세츠대학으로부터 음악과 인류애에 대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바로 최후의 전승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다. 최고의 여류시인, 우리시대의 음악작가로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노래 : Sophie B. Hawkins (소피 B. 호킨스,Sophie Ballantine Hawkins)
노래 : Lucinda Williams (루신다 윌리암스)
노래 : Stacey Kent (스테이시 켄트 )
재즈 보컬 재즈 보컬
기타 연주자 기타 연주자
밴드 :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앨리슨 크라우스 앤 유니언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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