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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8년 08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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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1,500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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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5집 -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노래 | 엠넷미디어 | 2008년 08월
상병 휴가 때 였을 것이다. 휴가 나온 군인이 대부분 그러하듯 친구를 만나거나 친구와 만난다거나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휴가동안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드물었다. 아니면 완전히 집에 머무르며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드물거나 둘 중 하나다. 어쨌든 나는 집 안과 밖을 드나들며 한껏 임시 민간인 행세를 하다가 하루는 고급 군인으로 승격할 수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군인 월급은 그리 많은 책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서점에서 책을 다 읽고 오는 편이었다. 그렇게 여러 책을 읽고 노르웨이의 숲 상하권을 사고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데 왠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언니네 이발관?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 맞다 '순간을 믿어요' 불렀던 밴드였지. 고등학교 방송반에서 신청곡으로 받은 노래였는데. PD랍시고 음악에 대해 아는건 하나도 없었던 나였다. 아는 친구녀석이 곧 5집이 나온다며 나도 꼭 사라고 사라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던 게 떠올랐다. 그게 작년('07년)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 신보가 이제야 나오는 거지? 1541로 걸어도 반갑게 받아주던 그 친구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 결국 그 5집을 샀다.
짧게 말하자면 명반이다. 시디로 음악을 듣는 습관을 갖게 된 첫 음반이자 앨범을 통채로 듣는 방법을 알려준 명반. 솔직히 5집 이전의 1,2,3,4집은 어디서나 스트리밍 프로그램으로 들을 수는 있지만 잘 안듣게 된다. 물론 언니네 이발관의 팬들 중 일부는 인터넷 경매나 중고음반 매장을 통해 전집을 모으기도 하지만 나에겐 그만한 여유가 없고, 이미 시디로 앨범 통채로 듣는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하다보니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이 일기를 올리는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해놓고 생각날 때마다 들어가서 그의 일기를 읽어보기도 한다. 최초의 일기부터 가끔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일기를 읽다보면 일기가 노래 가사인 것 같고 가사가 일기 같다. 이렇게 깔끔한 가사를 쓰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생각해보지만 역시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다. 몇 번씩이나 발매일이 연기되었다는 얘기를 이제야 믿게 되었다.
사실 첫 트랙인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들으면서 내가 산 시디가 불량인가?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첫 곡부터 불편했다. 앨범의 첫 곡- 에 대한 나도 모르게 자리잡은 고정관념 같은 것이 허물어지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때엔 바로 깨닫지 못했다.
앨범을 들을 땐 꼭 방의 커튼을 치고 이불을 펴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야 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얘기해준 적은 없었지만 괜히 그런 준비를 하고 들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들으니 마지막 트랙인 '산들산들'의 마지막 건반 소리가 너무 아쉬웠다. 이럴 수가. 이게 노래구나. 단지 앨범 하나가 노래 그 자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열 곡의 노래 모두 타이틀 곡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타이틀 곡 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상관 없을 것 같고.
가장 파격적(?)인 트랙을 고르라면 7번 '100년 동안의 진심'이다. 오로지 기타 한 대로 연주하고 부르는 노래라서 이기도 하지만 이전 트랙에서의 숨막힐 듯한 공기를 한번에 가라앉히는 쉼터 같아서 단박에 노래를 외웠다. 집에 굴러다니는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코드를 따봤지만 Bm와 C#m와 A만 겨우 알아내는데 그쳤다. 손가락 끝에 녹이 서서히 묻을 때 과연 100년 동안의 진심은 얼마나 강할까 얼마나 진심의 냄새가 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건너와 옛날을 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진심이란 걸 따로 생각하긴 했었나 궁금하기도 하다. 처음 밴드라는 걸 만들어서 공연 연습을 하고 학교 학원 친구들에게 3천원짜리 빳빳한 공연입장권도 팔아보고 했던 중3 시절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 내가 이렇게 되리라는 걸 기타 프렛 한 칸 만큼이라도 생각해봤을까. 이런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노래라는 얘기다 결국엔.
얼마전 뜨거운 감자의 신보가 발매되었다. 이들 또한 시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디가 사라지는 시대에서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며 언니네 이발관의 노력도 언급했다. 동감한다. 사라져가는 것은 지금 당장에는 있지만 언제 사라진 것이 될 지 모른다. 그래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당장의 내일이 아니라 5년, 10년이 지난 내일이 희미하게 보일 때도 있다. 과연 그 때의 나는 어떻게 음악을 듣고 있을까. 매일밤 충전하며 듣는 시디플레이어는 서랍 속에 쳐박혀 있을까 아니면 중고매매 카페에 올려 팔아버렸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이럼에도 언니네 이발관의 콘서트에 가보지 못한 것은 정말 실수다. 아는 후배는 부산 락 페스티벌에서 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이들을 인터뷰 해보기도 했다는데 그저 부러움뿐이었다. 당분간은 지역적인 불리함을 이유로 콘서트는 마음에만 담아둘 생각이다. 공부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때의 나를 탓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그때의 나에게 잘못을 탓하면서도 여전히 공부에 게으른 지금의 나를 탓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한때 전부라고 믿고 싶었던, 당신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것은 아직 살아있나요?
물론 가사의 일부이긴 하지만 앨범을 듣고나니 절로 떠오른 문장이었다. 아직 대답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충분히 팔뚝이나 모자 안쪽 챙이나 안경테 바깥쪽이나 이불이나 창문이나 냉장고 문짝이나 칫솔이나 거울에 새겨두고 혼자 묻고 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인 것 같다. 나는 언제쯤 대답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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