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8월 전사
8월 혜택 모음
정재승 여름특강
책을 듣다
네네마트
북클럽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She & He -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다른 기억
미리듣기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CD

She & He -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다른 기억

[ 2CD 3단 디지팩 사양 ]
Charlie Wilson, John Legend, Anthony Hamilton, Cheryl Lynn, Savage Garden 노래 외 28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6년 07월 2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22,000원
할인가 17,8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모바일팝 모바일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수량
배송비 : 2,000원 해당 상품과 도서 포함하여 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She & He -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다른 기억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07월 25일
제조국 한국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1 He
선택듣기
Disc 2 She
선택듣기
  • 01 제니퍼 허드슨 Jennifer Hudson * Spotlight 선택듣기
  • 02 마일리 사이러스 Miley Cyrus * Someone Else 선택듣기
  • 03 티엘씨 TLC * No Scrubs 선택듣기
  • 04 피오나 애플 Fiona Apple * Paper Bag 선택듣기
  • 05 캠 Cam * Want It All 선택듣기
  • 06 제시카 심슨 Jessica Simpson * I Think I'm In love 선택듣기
  • 07 조딘 스팍스 Jordin Sparks * Next To You 선택듣기
  • 08 앨리샤 키스 Alicia Keys * No One 선택듣기
  • 09 판타지아 Fantasia * I Believe 선택듣기
  • 10 타마 브랙스톤 Tamar Braxton * I Love You 선택듣기
  • 11 사라 바렐리스 Sara Bareilles * Bottle It Up 선택듣기
  • 12 보이즈 라이크 걸스 Boys Like Girls * Stuck In The Middle 선택듣기
  • 13 가비 윌슨 Gabi Wilson * Something To Prove 선택듣기
  • 14 시아라 Ciara * I Bet 선택듣기
  • 15 어 그레이트 빅 월드 A Great Big World * I Don't Wanna Love Somebody Else 선택듣기
  • 16 이모젠 힙 Imogen Heap * Hide And Seek 선택듣기
  • 17 에이브릴 라빈 Avril Lavigne * When You're Gone 선택듣기
  • 18 도트리 Daughtry * Over You 선택듣기
  • 19 켈리 클락슨 Kelly Clarkson * Stronger (What Doesn't Kill You) 선택듣기
  • 20 캐리 언더우드 Carrie Underwood * Good In Goodbye 선택듣기

아티스트 소개 (33명)

R&B, 소울 가수 R&B, 소울 가수
디스코의 광기가 마지막 불꽃을 발산하던 1979년에 ‘Got to be real’이란 디스코 곡으로 등장한 세릴 린(Cheryl Lynn)은 TV 프로그램인 < Gong Show >에서 발탁된 흑인 여가수로 1957년 3월 1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1978년 콜롬비아 레코드와 정식 계약을 체결한 셰릴 린은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 Cheryl Lynn >을 공개해 첫 싱글 ‘Got to be real’이... 디스코의 광기가 마지막 불꽃을 발산하던 1979년에 ‘Got to be real’이란 디스코 곡으로 등장한 세릴 린(Cheryl Lynn)은 TV 프로그램인 < Gong Show >에서 발탁된 흑인 여가수로 1957년 3월 1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1978년 콜롬비아 레코드와 정식 계약을 체결한 셰릴 린은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 Cheryl Lynn >을 공개해 첫 싱글 ‘Got to be real’이 싱글 차트 12위, 리듬 앤 블루스 차트 1위에 오르며 재능 있는 신인이 탄생했음을 고했다. 명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 토토(TOTO)의 보컬리스트 겸 건반 주자인 데이비드 페이치(David Paich)가 셰릴 린과 공동으로 작곡한 ‘Got to be real’은 1990년대 이후에 디스코 시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그 위상이 격상됐으며 < 칼리토 >, < 키핑 더 페이스 > 같은 사운드트랙에도 삽입됐다. 또한 2004년에 발매된 애니메이션 영화 < 샤크 테일 >의 OST에서는 메리 J. 블라이즈(Mary J. Blige)가 재해석해 수록하기도 했다(이 음반에서 셰릴 린은 ‘Sweet kind of life’란 곡을 불렀다). 뿐만 아니라 국내 힙합 그룹 CB Mass는 ‘진짜’에서 이 곡을 샘플링 할 정도로 ‘Got to be real’은 동서양을 막론한 최고의 댄스곡임을 입증했다. ‘Got to be real’의 작곡으로 데이비드 페이치와 인연을 맺은 셰릴 린은 토토의 히트곡 ‘Gerogy Porgy’의 백 보컬로 참여해 은혜를 갚았고(?), 1981년에 발표한 ‘Shake it up tonight’은 레이 파커 주니어(Ray Parker Jr.)가 프로듀싱을 맡아 주는 등 좋은 인간성의 소유자임을 과시했다. 1984년에는 싱글 차트에서는 69위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리듬 앤 블루스 차트에선 1위에 오른 Encore로 다시 한번 팝 계의 정면에 부상한 셰릴 린은 1980년대 후반까지 모두 8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Got to be real’ 이상의 인기곡은 없었다.
호주의 듀오 새비지 가든(Savage Garden)의 성공담이 반복되고 있다. 에어 서플라이 이후 최고의 호주출신 팝 스타로 평가받는 이들은 새해 들어 또 다시 신곡 ''I Knew I Loved You''로 팝 천하를 평정했다. 전형적인 발라드인 이 곡은 지난해 발표됐을 때 산타나 ''Smooth''의 장기집권을 저지할 유력한 후보 곡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0대 소녀 선풍의 주역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 호주의 듀오 새비지 가든(Savage Garden)의 성공담이 반복되고 있다. 에어 서플라이 이후 최고의 호주출신 팝 스타로 평가받는 이들은 새해 들어 또 다시 신곡 ''I Knew I Loved You''로 팝 천하를 평정했다. 전형적인 발라드인 이 곡은 지난해 발표됐을 때 산타나 ''Smooth''의 장기집권을 저지할 유력한 후보 곡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0대 소녀 선풍의 주역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What A Girl Wants''에 밀려 정상 문턱에 주저앉는가 싶더니 기어코 금주 빌보드 1위에 올랐다. 작곡하고 노래하는 대런 헤이즈와 악기편곡 담당 다니엘 존스로 이뤄진 새비지 가든은 1998년 ''Truly, Madly, Deeply''로 이미 차트 정상을 정복한 바 있다. 이 곡이 수록된 데뷔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1100만장이라는 가공할 판매고를 수립했다. 하지만 불확실한 팝 음악계의 생리상 아무도 두 번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 반짝 그룹으로 전락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들은 이번에 빅히트를 재현하면서 사슬과도 같은 ''2집 앨범 징크스''를 떨쳐낸 동시에 히트 메이커로서 롱런할 가능성을 열었다. 두 번째 앨범 ''Affirmation'' 역시 전작처럼 단번에 귀를 잠식하는 전염성 높은 멜로디 감각과 고급스런 편곡이 돋보인다. 머라이어 캐리를 슈퍼스타로 비상시킨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예프의 도움도 컸다. 음반은 빌보드지로부터 "여기에 히트가 안될 곡은 하나도 없다"는 평을 받았다. 빠른 템포의 곡도 좋지만 ''I Knew I Loved You''와 함께 ''Hold Me'' ''Two Beds And A Coffee Machine'' 등 특허인 발라드들이 더 인상적이다. 그들이 에어 서플라이를 능가할 호주 팝 스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출생 : 1984년 10월 15일 데뷔 : 2006년 1집 'Shayne Ward' 경력 : 2005년 12월 4주간 영국 싱글 차트 1위 2005년 영국 최고 스타 서치 프로그램 'X-Factor' 우승자 출생 : 1984년 10월 15일
데뷔 : 2006년 1집 'Shayne Ward'
경력 : 2005년 12월 4주간 영국 싱글 차트 1위
2005년 영국 최고 스타 서치 프로그램 'X-Factor' 우승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이 어떻게 살아가리?(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1990년대 첫 슈퍼스타가 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메가톤급 히트 앨범 < 영혼의 공급자(Soul Provider) >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기록적인 판매로 대중적인 명성을 구가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 평론가들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에게 호된 질책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거의 ‘두들겨 패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지의 유명 저널리스트 ‘로버트 힐번’은 그를 가리켜 창조성 없이 악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단계에 그친다는 의미에서 ‘팝의 썰매’라고 규정짓고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이 돌파 할 수 없는 노래에 결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틀 속에 안주하려 한다. 그와 음악과의 관계는 스티븐 시걸과 영화와의 관계나 같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모욕이나 매 한가지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가 평자들로부터 아티스트란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볼튼이 소울의 고전을 비롯해 흘러간 명곡을 멋들어지게 재해석해 노래해도 그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구동성으로 “원작의 기품을 버려 놓았다”고 질타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 롤링 스톤 >지의 평가였다. 이 잡지는 1993년 43명의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 그를 ‘최악의 남자 가수’로 선정했다. 또한 빅 히트작 < 불후의 고전(Timeless, The Classics) >를 ‘최악의 앨범’으로 뽑아 미국에서만 5백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간 대중적 인기를 무색케 해 버렸다. 그가 이처럼 비평계의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물론 그의 보컬 스타일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핏줄을 솟게 하고 마치 토해 내는 듯한’ 창법을 구사한다. 4옥타브를 충분히 넘나드는 넓은 음역, 이것이 팬들에게는 환상이었지만 평론가들의 귀에는 높고 답답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창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금방 눈치챌 정도로 ‘작위적’이어서 곧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들은 예술적 고뇌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없는 그 작위가 결국은 상업성을 노린 것임을 경계한다. 로버트 힐번이 지적하는 ‘안주적 자세’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를테면 대중적 성공에 떠밀려 아티스트적 실험 정신을 휴지화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볼튼은 < 영혼의 공급자 > 이후 앨범들인 < 시간, 사랑 그리고 부드러움(Time, Love And Tenderness) >과 < 불후의 고전 >에서 새로움을 선사하기보다는 전작의 성공패턴을 답습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옛 곡의 리메이크가 성공하자, 줄줄이 리메이크 작품을 내놓았으며 더구나 보컬 스타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변명의 여지없이 전작의 성공 재창출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팔리는 음반을 만들기 위해 모험을 가능한 배제한 채 빅히트된 음반(Soul provider)을 모델로 그 스타일을 철저히 쫓는다는 얘기다. 비평가들이 이처럼 유난히 그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 데는 그가 곡을 만들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평론가들은 노래만 하는 싱어일 경우 그가 대중적 호응만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에 따라 그들의 정서를 위무해 주는 팝 가수도 나름대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곡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 즉 싱어송라이터의 경우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가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에 얽매여 있을 때는 가차없이 장사꾼으로 매도해 버린다. 만약 볼튼이 단순한 싱어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그처럼 잔인한 혹평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과연 이러한 비평가들의 철저한 외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평가들이 뭐라 떠들어도 압도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 주는 대중이라는 ‘응원군’을 내세워 여유를 잃지 않았고 앨범의 높은 판매고를 ‘비평에 견디는’(Critic-proof) 방파제로 제시하곤 했다. 사실 그의 노래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음악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우선 그가 1988년 ‘만의 부두에 앉아(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를 리메이크했을 때 이 곡의 원작자인 오티스 레딩의 미망인 젤마 여사로부터 극찬을 받은 사실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볼튼에게 편지를 써서 또는 공개석상에서 그의 노래가 “지금까지 나온 남편 곡의 무수한 버전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며 “만약 지하에 있는 남편도 들었다면 흡족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볼튼의 강력한 후원자인 어머니 헬렌 볼로틴(볼튼의 본명은 Bolotin) 여사는 “내 아들이 노래하는 것을 비명을 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라며 비평계의 시각을 몰지각으로 단정한다. 그와 곡을 함께 쓰는 오랜 친구 다이안 워렌(Diane Warren)은 한편으로 볼튼에 대한 평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오히려 대중의 호응을 증폭시켰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의 주장은 “한 남자가 혹독하게 비판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게 노래할 때 여성들은 오히려 그를 사랑해 준다. 여성들은 거기서 녹아 버린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평론가들의 무차별 공격이 도리어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을 자극해 그를 감싸주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의 음악팬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처럼 비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엾은(?) 남자가-더구나 수려한 외모를 갖춘 남자가!-애절하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노래할 때 대부분이 여성들은 이성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이클 볼튼과 비평과의 대치는 곧 ‘감성적인 여성 팬들’과 ‘날카로운 평론가들’간의 보이지 않는 대결(?)의 측면도 가세된 셈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란 어떤 형태로든 비평가들의 눈초리를 암암리에 의식하게 된다. 그는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던지 1991년 그래미 최우수 남자 팝 가수상을 받던 날 밤 기자들에게 “무례한 사람들은 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퍼붓기도 했다. 여기서 무례한 사람들이란 마구 펜을 휘갈기는 저널리스트나 비평가를 가리킴은 물론이다. 그런데 1993년 하반기에 그가 내놓은 앨범 < 한가지 >는 상당히 비평가들을 의식해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보컬의 톤도 많이 낮추고 자작곡의 비중을 높였으며 비판의 핵이었던 리메이크 남발도 자제, 옛곡은 빌 위더스의 ‘내게 기대어(Lean on me)’ 한 곡으로 대폭 줄여 버린 것이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제까지 볼튼의 앨범 중 최고’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대가로 대중적인 음반 판매 실적은 과거에 비해 저조해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지는 못했다. 그의 상업성이 유달리 지적 받게 된 데는 또한 그의 ‘눈물겨운 과거’도 한 요인이 되었다. 7살 때 섹스폰을 잡고 11살에 기타를 치는 등 음악 생활을 일찍 시작했지만 그의 청년기는 지극히 불우했다. 발표하는 음반마다 실패해 야간 업소 출연으로 겨우 연명해 나갈 정도였다. 1975년 레코드점 여직원인 모린(Maureen)과 결혼한 이후에도 생활은 개선되지 않아 노래 과외와 아이 돌봐주는 일, 즉 베이비시터로 집세를 충당하곤 했다(참고로 그가 봐 준 아이 중의 한 사람이 다름 아닌 폴라 압둘이었다.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악연으로 발전해 1990년 마이클 볼튼의 ‘그대 없이 어떻게 살아가리?’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린 곡이 폴라 압둘의 ‘오포지츠 어트랙트(Opposites attract)’였고 이듬해 앨범 1위를 볼튼과 바통 터치한 주인공도 폴라 압둘이었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당시 볼튼 부부와 세 딸은 마카로니와 치즈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볼튼은 허구한 날 식탁에 앉아 “어떻게 집세 내고 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만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터널의 끝에서도 빛을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36세가 되어서야 성공했을 때(그는 1954년생으로 미국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 출신) 주변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라고 하자 “무슨 소리냐. 성공하기까지 대략 3천6백42번의 밤을 보냈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비평가들은 그가 바닥 생활을 청산하자마자 곧바로 상업적으로 치달은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럴수록 과거의 고난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작품에 구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성공은 사생활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 영혼의 공급자 >가 수면 위로 부상하던 1989년 아내 모린과 15년 결혼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점이 볼튼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 무렵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필 가장 잘 나가는 때에 성공을 축하하는 전화가 걸려 오는가 하면 이혼 증언 서류에 대한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너무 아이러니컬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이듬해 정식으로 이혼했다. 그리하여 방문하는 관계로 매듭짓긴 했지만 세 딸들 아이사(20), 홀리(18), 타린(16)과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성심 성의껏 딸들을 보호하는 자상한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인정하는 가운데 1992년부터 TV배우인 니콜레트 셰리단(Nicollette Sheridan)과 건전한 연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마이클 볼튼은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성공한 뮤지션과 비평계간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앨범이 많이 팔려 나갈수록(진지함이 없을 경우) 비평가들로부터 매질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처럼 실감나게 보여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는 성공과 함께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 스스로도 “성공하면 할수록 그것은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비디오 게임처럼 첫 번째 스크린을 통과하고 나면 너를 쏘려고 레이저 미사일을 단 비행접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의 대가는 쓰디쓴 법이다.
노래 : Jamie Foxx (제이미 폭스 )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드라마틱한 역할로 다양한 연기모습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스탠드-업 코미디 그리고 음악 부분에서도 탁월한 활동을 보여주면서 성공 궤도에 오른 배우이다. 당연히 그의 연기생활의 시작은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코미디 배우였다. 1990년 짐 캐리와 같이 < In Living Color >라는 코미디 시리즈 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였고, 1996년에는 자신의 쇼인 < The Jamie Fox...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드라마틱한 역할로 다양한 연기모습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스탠드-업 코미디 그리고 음악 부분에서도 탁월한 활동을 보여주면서 성공 궤도에 오른 배우이다. 당연히 그의 연기생활의 시작은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코미디 배우였다. 1990년 짐 캐리와 같이 < In Living Color >라는 코미디 시리즈 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였고, 1996년에는 자신의 쇼인 < The Jamie Fox Show >를 진행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 The Jamie Fox Show >는 5년 간 진행되었으며 탁월함을 인정 받아 NAACP Image Award로부터 상을 받았다.

이렇듯 코미디 활동으로 잘 알려진 그이지만 블루스의 전설적인 인물, 맹인 가수인 레이 찰스의 전기를 다룬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레이>에서 매우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주어 `코미디배우`로서가 아닌 `연기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필모그래피]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1996)|주연배우
애니 기븐 선데이(1999)|주연배우
베이트(2000)|주연배우
알리(2001)|주연배우
콜래트럴(2004)|맥스
레이(2004)|레이 찰스
스텔스(2005)|헨리
마이애미 바이스(2006)|리코 텁스
드림걸즈(2006)|커티스 테일러 주니어
킹덤(2007)|롤랜드 플러리
더 솔로이스트(2008)|주연배우
노래 : Chris Brown (크리스 브라운)
노래 : The Script (더 스크립트)
노래 : Kesha (케샤, Kesha Rose Sebert)
로스 앤젤리스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태어난 케샤는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어머니 피비 세버트(Pebe Serbert) 아래에서 오빠와 함께 성장했다. 돌리 파튼(Dolly Parton)도 불렀던 ‘Old Flames Can't Hold A Candle To You’가 바로 피비 세버트의 곡이었다. 이 집안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심지어는 복지시설의 원조까지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가족이 테네시로 옮긴... 로스 앤젤리스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태어난 케샤는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어머니 피비 세버트(Pebe Serbert) 아래에서 오빠와 함께 성장했다. 돌리 파튼(Dolly Parton)도 불렀던 ‘Old Flames Can't Hold A Candle To You’가 바로 피비 세버트의 곡이었다. 이 집안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심지어는 복지시설의 원조까지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가족이 테네시로 옮긴 이후에는 어머니가 두 아이들을 스튜디오로 곧잘 데려갔다. 케샤가 곡을 쓰고 노래하는데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서포팅하려 했다. 그녀의 집은 패리스 힐튼(Paris Hilton)과 니콜 리치(Nicole Richie)의 리얼 버라이어티 [심플 라이프(Simple Life)]의 한 에피소드에도 등장했다. 후에는 패리스 힐튼의 앨범 두 번째 싱글의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기도 한다. 12세 무렵 케샤는 오빠의 레코드를 훔쳐서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자신이 듣던 [Now 23] 컴필레이션은 오빠한테 훔쳐 들었던 푸가지(Fugazi),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파티 할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비스티 보이즈의 노래 ‘Fight For Your Right’의 가사를 인용한 코멘트이기도 하다. 벡(Beck)과 퀸(Queen), 그리고 랩 뮤직과 올드 스쿨 펑크에 영향을 받았단다. 밥 딜런(Bob Dylan)의 [Nashville Skyline] 앨범이 자신의 올타임 페이버릿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의상의 경우 키스 리차즈(Keith Richards)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게 복합적인 영향은 그녀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갔다.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학교를 자퇴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케이티 페리(Katy Perry),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그리고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등의 셀 수도 없는 넘버원 히트를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송 라이터들인 닥터 루크(Dr. Luke)와 맥스 마틴(Max Martin)을 따라다녔는데 그녀의 음악에 큰 감명을 받은 닥터 루크는 맥스 마틴과 함께 LA와 뉴욕을 오가며 음악작업을 시작한다. 닥터 루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LA에 있을 당시 케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적은 돈으로 '생존'해야만 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는 [Degrassi: The Next Generation]나 [힐스(Hills)]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일류 송 라이터인 토비 게드(Toby Gad)와 함께 베로니카스(The Veronicas)의 싱글 ‘This Love’를 작업하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 ‘Lace and Leather’에서는 백 보컬을 하기도 했고 케이티 페리의 히트 넘버 ‘I Kissed a Girl’의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했다.

2009년이 지난 이후에야 케샤의 이름이 비교적 수면 위에 떠오른다. 닥터 루크(Dr. Luke)와 스튜디오에 있을 무렵, 플로 라이다(Flo Rida)가 작업 중이던 자신의 곡을 함께 들으면서 "이 부분에는 죽이는 여자애가 훅을 불러줬음 좋겠는데," 라며 의견을 제시하자마자 케샤가 투입됐다고 한다. 플로 라이다(Flo Rida)의 넘버원 히트싱글 ‘Right Round’는 국내에서도 꽤 시끄러운 곡이었다. 단순히 여기저기서 많이 흘러나왔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니라 한국의 DJ 샤인(DJ Shine)이 번안해 부르기도 했으며, 몇몇 DC 갤러리에서는 플로 라이다가 샘플링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의 원곡이 게이 엔썸 류의 것으로 분류 되면서 개그의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한창 시끄러웠던 G 드래곤의 표절 문제로 플로 라이다의 곡은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비공식적으로는 플로 라이다의 곡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줄 것을 요청했었다는 데 그러면서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런 식으로 처음 알려질 경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데 애로사항이 꽃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플로 라이다의 곡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돈은 일절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명문 레이블 RCA/자이브(Jive)와 계약한다. 재기 발랄한 듀오 3OH!3의 콘서트에서 데뷔 퍼포먼스를 갖고 이후에는 무려 롤라팔루자(Lollapalooza)에서 공식적인 솔로 데뷔 공연을 펼친다. 케샤의 데뷔 싱글 ‘Tik Tok’은 디지털로 8월 7일에 미국에서 우선 릴리즈 됐다. 그 무렵 꾸준히 다른 작업들을 이어갔는데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EP [The Time of Our Lives]와 핏불(Pitbull), 그리고 타이오 크루즈(Taio Cruz) 등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그리고 미키 아발론(Mickey Avalon)과 투어를 다니면서 서서히 스테이지의 감을 익혔다. 그녀의 성격에 걸맞게 2010년도에는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출연하기로 예약되어 있단다.

그야말로 신데렐라같은 등장이었다. 온갖 어려운 역경을 다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설 채비를 하고있는 중이다. 마이스페이스(Myspace)의 페이지 뷰는 어느덧 천2백만 회를 돌파했다. MTV에서는 11월의 아티스트로 결정한 바 있기도 한데 MTV Push 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로 그녀의 곡들이 일정시간 동안 방송됐으며 영국 MTV에서는 다섯 곡의 라이브 세션을 펼치기도 했다. 21-7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 왜 이름 중간에 달러표시($)를 해 놓았냐는 질문에 케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그녀의 재정상태가 한동안 바닥이었는데 적어도 이름 중간에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골짜였다. 하지만 역으로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종이가 세상을 움직이는 게 좀 웃긴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한상철(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
노래 : Brandy (브랜디,Brandy Rayana Norwood)
브랜디(Brandy)는 1979년 미국 미시시피 맥콤 태생으로 올해 나이 스물 셋의 흑인 여가수다. 본명은 브랜디 노우드(Brandy Norwood). 음악은 약간 빠른(up) 템포의 현대적인 R&B를 구사하니, 지금 현재 가장 각광받는 스타일의 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열일곱이던 1994년에 데뷔하자마자 ’I wanna be down’이란 대형 히트곡을 기록해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막 발표한 세 번째 ... 브랜디(Brandy)는 1979년 미국 미시시피 맥콤 태생으로 올해 나이 스물 셋의 흑인 여가수다. 본명은 브랜디 노우드(Brandy Norwood). 음악은 약간 빠른(up) 템포의 현대적인 R&B를 구사하니, 지금 현재 가장 각광받는 스타일의 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열일곱이던 1994년에 데뷔하자마자 ’I wanna be down’이란 대형 히트곡을 기록해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막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Full moon > 이전 만해도 차트 10위권에 든 곡이 6곡이나 됐으며, 그 가운데 동료 흑인여가수 모니카(Monica)와 부른 곡 ’The boy is mine’은 무려 13주간 빌보드 1위를 점령하며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5년의 ’Baby’, 이듬해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에 삽입된 ’Sittin’ up in my room’, 1999년 ’Have you ever?’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골드 레코드(50만장 이상 판매)를 기록하며 거침없는 질주를 거듭했다. 귀여운 얼굴로 음반 뿐 아니라 영화와 TV 드라마에도 출연해 연기자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영화 ’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I still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에 나온 흑인여자가 바로 브랜디다. 첫 앨범의 앳된 얼굴에서 벗어나 이번 신보에선 아주 성숙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섹슈얼리티가 점점 드러난다. 소녀가수에서 앞으로는 성적 매력이 충만한 여성가수로서 ’업데이트 활동’이 기대된다. 이번 앨범은 당대 최고의 흑인음악 프로듀서로 통하는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를 비롯한 실력자들이 대거 작업에 참여했다. ’Full moon’은 이번 앨범의 동명 곡이자 앞서 히트한 ’What about us?’에 이은 두 번째 싱글이다. 소울과 힙합의 멋이 어우러진 고감도 R&B 곡이다. 지금 어떤 음악이 유행하고있는지 그 추세가 이 노래에 있다. *** 브랜디의 히트곡들 1994년 I wanna be down 차트 6위 골드 레코드(50만장 이상 판매) 1995년 Baby 차트 4위 플래티넘 레코드(100만장 이상 판매) 1995년 Brokenhearted 차트 9위 골드 레코드 1996년 Sittin’ up in my room 차트 2위 플래티넘 레코드 1996년 Missing you 차트 25위 1998년 The boy is mine 차트 1위 더블 플래티넘 레코드(200만장 이상 판매) 1999년 Have you ever? 차트 1위 1999년 Almost doesn’t count 차트 16위 2002년 What about us? 차트 8위 2002년 Full moon 차트 44위(5월 17일 현재, 상승 중)
노래 : Justin Timberlake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과 함께 어린 시절 디즈니 채널의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면서 ‘엔터테이너’로써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96년에 엔싱크에 참여했고, 2년 뒤인 1998년에 엔싱크의 첫 음반 < ’Nsync >가 발표되었다. 데뷔 음반에서는 ‘I want you back’가 준(準)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발표된 2집 < No Strings Attached >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얻었다. ‘Bye bye bye’, ’It’s gonna be me’ 등의 박진감 넘치는 댄스곡들은 메가 히트를 달성하였고, 음반은 2주일만에 더블 플래티넘을 획득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틴에이저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가공할 만한 엔싱크의 파워는 당시 인기 정상에 올라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Bakcstreet Boys)를 차츰 뒷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저스틴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3집 < Celebrity >(2001년)부터. 작곡가로써, 공동 프로듀서로써 저스틴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첫 싱글이었던 ’Pop’, ‘Celebrity’, ‘Gone’등의 주요 곡들을 포함한 7곡이 저스틴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다섯 곡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그러나 엔싱크는 어디까지나 풍선껌처럼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10대들의 버블검 밴드였다. 슈퍼급 보이밴드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가면서 엔싱크도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었다. 특히 독립을 꿈꾸던 저스틴에게 틴에이저들의 트렌드를 지향해야하는 보이밴드에서 자신의 음악적 포부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저스틴은 솔로로 나섰다. 그 스스로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첫 솔로 음반 < Justified >는 < Celebrity >에서 보여주었던 재능을 한층 발전시켜 아티스트로써의 가능성 또한 내비친 작품이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넵튠스(The Neptunes)와 팀발랜드(Timbaland), 그리고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의 음반 작업 참여 또한 데뷔 음반의 퀄리티를 높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 이에 힘입어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은 2002년을 빛낸 음반 중 하나로 저스틴 팀벌레이크의 < Justified >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 문제는 연령층이다. 저스틴의 음악은 다분히 십대 후반과 이십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팬 층은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틴에이저들이기 때문이다. < 타임 키즈 매거진 > 등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 ‘보이밴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어렵다. 대형 아티스트로 도약하려하는 저스틴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팬 연령 스펙트럼의 확대이다.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81년 9월 12일 (미국) 수상 2007년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영화 드림걸즈 (에피 화이트 역/2006)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81년 9월 12일 (미국)
수상 2007년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영화 드림걸즈 (에피 화이트 역/2006)
노래 : Miley Cyrus (마일리 사이러스)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즈니채널의 TV코미디시리즈 (Hannah Montana)에 주역을 맡아 2006년 하루 밤새 대형스타로 급부상했다. 부전자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2년 ‘Achy breaky heart'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행운을 물려받은 것. 더욱이 ’Ac...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즈니채널의 TV코미디시리즈 (Hannah Montana)에 주역을 맡아 2006년 하루 밤새 대형스타로 급부상했다. 부전자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2년 ‘Achy breaky heart'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행운을 물려받은 것. 더욱이 ’Achy Breaky Heart‘가 빌보드차트 정상을 강타한 그해 마일리가 태어나 천우신조(天佑神助)가 따로 없었다. 1992년 11월23일,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빌리와 아내 레티시아(Leticia) 사이러스는 하늘이 내려준 딸 데스티니 호프 사이러스(Destiny Hope Cyrus)를 선물 받아 겹경사를 맞았다. 꼬마둥이 때부터 쾌활한 성격의 미소천사였던 데스티니 호프는 스마일리라는 별칭을 얻었고 그러한 연유로 지금의 마일리로 불리게 되었다. 타고난 탤런트 활동은 텔레비전 의학시리즈 (2003)의 에피소드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하면서 첫발을 내딛었다. 같은 해 그녀는 팀 버튼(Tim Burton)의 영화 (Big Fish)에서 단역으로 출연해 대형스크린에까지 발을 뻗었다. 마일리는 일찍이 노래를 쓰고 가창법을 배우면서 음악에 관심과 자질을 개발해 나아갔다. 이제 갓 10대에 들어선 꼬마였던 그는 마침내 2005년 타고난 연기와 음악 재능을 작품에서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마일리는 의 타이틀 역으로 캐스팅되었고, 2006년 3월24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 TV쇼 프로그램에서 그는 낮엔 평범한 여학생 마일리 스튜어트면서 밤이면 밤마다 금발의 한나 몬타나로 변신해 세계적 유명 팝 스타로서의 숨겨진 끼와 춤 실력을 발산하는 생기발랄 10대 소녀를 연기했다. 2006년 3월 “한나 몬타나”에 출연,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마일리는 청소년 시청자들의 대대적 호응에 힘입어 디즈니채널의 뉴 호프(New Hope), 힐러리 더프와 린제이 로한의 뒤를 이어 새로운 ‘드라마 퀸’으로 추대되었다. 10월엔 시트콤 에서도 음악가 아버지로 동반 출연한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와의 듀엣노래 ’I learned from you'를 포함해, TV쇼에서 마일리가 부른 노래와 다른 삽입곡들로 구성된 사운드트랙음반이 발매되었다. 그해 가을 마일리는 디즈니가 배출한 또 다른 팝 스타 치타 걸스(Cheetah Girls)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 관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2006년 10월 첫 번째 사운드트랙앨범 이 발매된 데 이어 2집과도 같은 더블앨범 가 2007년 11월 발매되었다. 는 발매되자 곧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싱글 커트된 ‘See you again'(또 봐요)은 빌보드싱글차트 탑10을 노크했다. 2008년 봄에는 45개 지역 순회공연실황을 보너스 DVD와 패키지로 묶은 (Hannah Montana/Miley Syrus: Best of Both World Concert Tour)가 음반시장에 풀렸다. 그는 또한 자신이 공동작사, 작곡에 참여한 독집 < Breakout >(2008)을 공식 발표하며 본격 팝 아티스트 활동을 공표했다. ※마일리의 형제자매들 마일리는 이복언니 브랜디(Brandi), 두 명의 이복오빠 트레이스(Trace)와 크리스토퍼 코디(Christopher Cody), 남동생 브레이슨(Braison), 그리고 여배우 여동생 노아 린제이 사이러스(Noah Lindsey Cyrus)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1990년대 ‘걸 그룹 붐’의 한복판에 서있던 TLC는 음악은 물론이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성 트리오다. 톡톡 튀는 힙합과 말랑말랑한 팝이 절묘하게 녹아든 이들의 음악은 팝계 최고의 남성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만만하게 그 남성들, 또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종속물로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1990년대 ‘걸 그룹 붐’의 한복판에 서있던 TLC는 음악은 물론이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성 트리오다. 톡톡 튀는 힙합과 말랑말랑한 팝이 절묘하게 녹아든 이들의 음악은 팝계 최고의 남성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만만하게 그 남성들, 또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종속물로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남성들과 동등해질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그 구도 자체를 허무는 것이며 차라리 그 구도를 역전시키는 것이었다. 솔트 앤 페파나 엔 보그 같은 선배 여성그룹들에게 영향받았을 법한 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태도는 이미 페미니즘이나 성 담론의 차원을 넘어선다. 천방지축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등장했던 데뷔시절부터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지나 사이버 여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최근까지 이들의 남성 상은 한결같다. 이들에게 남성은 즐거움의 상대인 동시에 언제나 계도대상이며 한 수 아래인 존재다. 데뷔앨범 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를 다루는 방법이며, 2집의 히트곡 ‘Creep’은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남자에게 여자의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또 3집의 히트곡 ‘No scrubs’는 여자에게 의존해 사는 찰거머리 같은 남자를 차버린다는 가사를 담았다. 남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내심 가슴 떨리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가치전복(?)적 마인드가 담긴 ‘여성찬가’는 그러나 그리 과격하지 않은 형태로 전달된다.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접근하는 TLC의 메시지는 섹시하고 사랑스럽게 들린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것이 남들과 구별되는 이들만의 뛰어난 능력이다. 비록 그것이 치밀한 계산의 산물일지라도 발상이 새로운 이들의 메시지와 남들이 다 속을 정도로 완벽한 이들의 모습은 분명 감탄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 티 보즈(T-Boz), 레프트 아이(Left Eye), 칠리(Chilli)로 이뤄진 TLC는 1991년 미국의 애틀랜타에서 결성되었다. R&B 여성 가수 페블스(Pebbles)에 의해 발탁된 이들은 댈러스 오스틴과 베이비페이스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데뷔작 을 발표했다. 넝마 같은 힙합 바지를 입은 장난꾸러기 모습으로 데뷔한 이들은 급속도로 팝 음악계를 잠식했다. 수록곡 ‘Ain`t 2 proud 2 beg’(6위), ‘Baby-baby-baby’(2위), ‘What about your friend’(7위)가 연이어 싱글차트를 휩쓸며 ‘여성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4년에는 2집 이 발매되었다. 개구쟁이 소녀에서 깔끔한 숙녀로 변모한 이들은 관능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성공을 맛봤다. 힙합과 팝, 소울이 가미된 이 앨범은 3곡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래미상, 빌보드 어워즈, MTV 어워즈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천만 장이 넘게 팔린 그 앨범은 또한 지난 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힙합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이들은 공연패션으로 콘돔의상을 입고 나와 충격을 주는 등 남다른 상상력을 이어갔다. 그 같은 성공 여파로 이들은 이후 장기간 휴지기에 들어가서 해체 의혹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3집 을 출시하며 팬들에게 복귀했다. 전작들과 음악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관록의 TLC답게 일정수준 이상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싱글 ‘No scrubs’와 ‘Unpretty’를 차트정상에 등극시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사이버 시대답게 앨범 커버와 외모를 사이버 패션으로 장식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TLC는 완벽한 팝 사운드와 넘치는 끼로 여성그룹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비록 그 성공의 절반은 LA 리드&베이비페이스, 지미 잼&테리 루이스, 저메인 듀프리, 댈라스 오스틴 같은 막강 프로듀서들의 몫이지만 TLC의 눈부신 활약은 그 절반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적어도 마초적 남성사회에게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역습하는 이들의 재기는 분명 그들 자신의 공로다.
1999년 18살의 나이로 데뷔한 제시카 심슨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I wanna love you forever’ 같은 파워 넘치는 발라드를 훌륭히 소화해내 ‘차세대 머라이어 캐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그래서 버블검 팝 가수라도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성숙한 면모가 두드러졌다. 1999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전염성 강한 댄스음악으로 10대 팝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해다. 10대 여가... 1999년 18살의 나이로 데뷔한 제시카 심슨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I wanna love you forever’ 같은 파워 넘치는 발라드를 훌륭히 소화해내 ‘차세대 머라이어 캐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그래서 버블검 팝 가수라도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성숙한 면모가 두드러졌다. 1999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전염성 강한 댄스음악으로 10대 팝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해다. 10대 여가수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 둘은 이후 팽팽한 라이벌 전선을 형성하며 독보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러한 2파전의 구도 속에 용감히 뛰어든 가수가 제시카 심슨이다. 그녀는 브리트니, 크리스티나와 같은 또래였지만 그들과는 왠지 다른 분위기였다. 보다 정통의 느낌이랄까. 머라이어 캐리를 빼 닮은 음색과 창법, 가스펠로 다져진 탄탄한 가창력은 그러한 느낌을 뒷받침했다. 어리고 미모인데다 ‘포스트 머라이어 캐리’라는 화제성까지 갖춘 제시카 심슨은 그때부터 차세대 틴 팝 진영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980년 7월 10일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태어난 제시카 심슨은 12살 때부터 노래실력을 키워갔다. 침례교 목사였던 아버지를 둔 탓에 그녀의 수련장이 된 곳은 교회였다. 얼마 후에는 ‘아이돌 스타 등용문’ < 미키마우스 클럽 >을 통해 주류로의 편입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가스펠 음악진영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이어갔다. 여기서 제시카 심슨의 꿈을 이루게 도와준 이가 < 소니뮤직 >의 사장 토미 모톨라(Tommy Mottola)였다. 집에서 손수 제작한 그녀의 레코드가 좋은 평판을 얻자 토미 모톨라가 그녀를 즉각 불러들여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그러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상부상조였다. 당시 이렇다할 10대 여가수가 없었던 < 소니 뮤직 >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소속된 < BMG >,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소속된 < 자이브 >의 대박 흥행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했다. 따라서 그 같은 열세를 만회하길 바랬던 < 소니 뮤직 >으로선 제시카 심슨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1999년 말 첫 앨범 < Sweet Kisses >를 공개하며 예정된 팝 스타의 수순을 밟아갔다. 2년 만에 출시되는 2집 < Irresistible >는 전작에서 선보였던 디바형 발라드에서 10대 취향인 댄스 팝 사운드로 전향한 앨범이다. 말하자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가깝다. 강렬한 후크가 제목처럼 거부하기 힘든 ‘Irresistible’, 질주하는 신서사이저 연주와 급박한 비트가 인상적인 ‘A little bit’ 등의 곡들은 강한 리듬이 중심인 틴 팝 사운드에 기초한 곡들이다. 창법도 변화무쌍하다. 제니퍼 로페즈,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의 음반작업에 참여했던 코리 루니(Cory Rooney)가 프로듀스한 R&B 넘버 ‘Hot Like Fire’에서 그녀는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힘찬 흑인 창법을 구사하며 발라드를 들려 줄 때의 직선적 창법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리듬이 대폭 강화되었지만 발라드를 소홀히 다루진 않았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같은 ‘원조 디바’들에게 노래를 공급했던 초특급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가 앨범에 참여해 발라드감각을 조율했다. ‘There your were’, ‘To fall in love’가 예의 발라드 트랙. 특히 ‘There your were’는 ‘You sang to me''에서 화려한 발라드 실력을 자랑한 라틴 팝 가수 마크 앤소니(Marc Anthony)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멋진 듀엣 곡이다.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가스펠 ‘His eyes is on the sparrow’는 교회에서 성장한 제시카 심슨의 음악적 뿌리를 알 수 있는 곡이다. 이전까지 그녀가 다른 10대 여가수들과 다소 차별화 되었다면 그것은 기존의 댄스음악보다는 발라드를 특화해서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 비율이 역전되었다. 다른 댄스 가수의 앨범들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좀 문제가 있다. 댄스음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미 정형화된 틀에 자신을 맞춰가려는 퇴행적 방식이다. 그녀보다 더 어리지만 최근 새 앨범에서 틴 팝 공식을 벗어나려고 시도한 맨디 무어와는 무척 대조적이다. 지금껏 제시카 심슨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적할 제3의 인물로 평가받아왔지만 이젠 그 자리를 맨디 무어에게 양보해야 할 듯하다. 이번 앨범으로 더 많은 10대 팬들을 끌어들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제 그녀는 결코 브리트니나 크리스티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잘 들리는 피아노 멜로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소울 식의 고전적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이며, 이 때문에 1970년대 여성 소울의 거성인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재래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복고형 R&B라고 하기보다는 거기에다 현대적 힙합 분위기를 삼투한 최신 스타일을 부각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반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블루스와 재즈에 뿌리를 둔 음악을 현대적 창구로 전달하는 셈인데 실제로 피아노의 선율, 1970년대 풍의 소울 창법, 세련된 힙합 분위기가 어울린 그녀의 ‘모던한’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는 2001년에 발표되어 화려히 인기차트를 누볐다. 미국 뉴욕 토박이로 1982년에 태어난 앨리샤 키스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자신의 미래분야로 삼아 맨하탄의 퍼포먼스 아트 스쿨(Performance Art School)에서 합창을 훈련했고 10대 내내 피아노교습에 열중한다. 이 합창과 피아노는 훗날 데뷔 앨범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피아노 외의 다른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 편곡 등 음악작업 전반에 걸친 실력과 감각을 쌓았다. 고교를 졸업한 16살에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학업을 도중 포기했고 대신 1998년 명문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다. 아리스타 사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 의해 픽업된 관계로, 그가 1999년 아리스타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 제이(J)를 출범시키자 앨리샤도 그를 따라 제이 레코드사로 적을 옮기게 된다. 19살이던 2001년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은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자신이 프로듀스한 첫 싱글 ‘Fallin’’은 전미차트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각별한 신구(新舊)결합형 음악은 시장 뿐 아니라 마침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그리고 그래미상이라는 공인 절차마저 거뜬히 통과했다.
노래 : Fantasia (판타지아 (R&B 보컬))
노래 : Sara Bareilles (사라 바렐리스)
노래 : Boys Like Girls (보이즈 라이크 걸스)
노래 : Ciara (시아라,Ciara Princess Harris)
노래 : A Great Big World (어 그레이트 빅 월드)
노래 : Avril Lavigne (에이브릴 라빈)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에 들어앉아 아버지에게 빌린 기타로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의 ’Fly Away’등을 카피하며 반항적인 로커를 동경했다. 이 예비 슈퍼 스타는 자신이 출연했던 지방 행사에 휴가 차 들린 [아리스타 레코드(Arista Records)] 경영자 겸 저명한 프로듀서 안토니오 LA 리드(Antonio ‘L.A.’ Reid)의 러브 콜을 받아 L.A.로 음악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이후 작곡가인 클리프 매그니스(Clif Magness)와 심혈을 기울여 곡 작업에 들어가는 등, 데뷔 앨범의 준비에 만반을 기울였다. 첫 싱글 ‘Complicated’가 그 시작이었다. [MTV]의 간판 프로그램 [TRL]에서 인기를 모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곡은 톱 40 라디오에서도 1위에 등극하며 걸 록 전성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어 발표한 공식 1집 [Let Go]는 빌보드 앨범 차트(2위)를 비롯한 각국 차트의 정상권에서 마음껏 뛰놀며 차세대 록 주자의 탄생을 신고했다. 미국 내에서만 600만장이라는 매머드 석세스를 쾌척했으며 후속 싱글 ‘Sk8er Boy’도 톱 텐에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팬들이 < 롤링 스톤 >에서 실시한 ‘당신의 아메리칸 아이들은 누가 될 것인가’라는 투표에서 그녀를 1순위로 꼽으며 대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오랜 기간의 꿈이 이루어진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에이브릴 라빈은 3000천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한 한국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끝마치는 등, 현재의 범세계적인 센세이션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곳곳에서 증명해나갔다. 이러한 국제적인 호응은 곧 최고의 음악 잔치인 < 그래미 시상식 >으로 이어졌다. 모두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에이브릴 라빈은 멋진 라이브 공연권도 손에 쥐며 수상에의 기대를 부풀렸다.(그래미에서는 그 동안 공연을 치른 뮤지션들이 트로피를 많이 가져갔다.) 그러나 9.11의 여파로 뉴욕풍 재즈를 시범한 노라 존스(Norah Jones)에게 상이 몰리며 에이브릴 라빈은 빈손으로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미국인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그녀의 음악이 너무 거칠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국인 캐나다에서는 달랐다.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 주노 어워드 >는 에이브릴 라빈에게 최우수 앨범과 최우수 팝 앨범 등, 모두 4개의 트로피를 안겨주며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 로커에게 따뜻한 환대식을 치러주었다. 이 때부터 상복이 줄줄이 터져 [머치 뮤직 시상식]에서는 2관왕을, 2002년 [MTV VMA]에서는 신인상을, [MTV Latin America VMA]에서는 최우수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상을 싹쓸이했다. [Nickelodeon Kids Choice Award]의 최고 인기곡상과 [Teen Choice Music Award]의 최우수 싱글상도 그녀의 몫이었다. 둘 모두 ‘Sk8ter boy’의 선전 덕분이었다. 3번째 싱글 ‘I’m With You’가 발매되자 한번 붙은 인기의 화염은 더욱 높이 치솟아 올랐다. 팝 싱글 차트에서 4위에 오른 이 매력적인 발라드 트랙은 어덜트 팝 차트에서도 4위를 꿰차며 팬 베이스의 연령층을 높이는데 견인차의 역할을 해주었다. 화끈한 록 넘버 ‘Losing Grip’을 차트 중위권에 올려놓는 것으로 에이브릴 라빈은 공식적인 1집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를 즐겨 듣는 정도였다. 그러나 선생님의 용안은 훗날 전미를 정복할 한 소녀의 잠재력을 미리 점치고 있던 것이다. 비록 시작은 타의였으나, 점차 켈리 클락슨의 내면에서도 노래를 향한 열정의 꽃망울이 싹트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발성 연습으로 창법을 연마해가던 중, 지역 내 콘테스트에서 진가를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학교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할리우드 행을 택했지만 이름 없고 연줄 없는 시골 소녀를 자선할 만큼 인정 많은 곳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켈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제리 고핀(Gerry Goffin)마저 병으로 몸져누우면서 희망의 빛줄기는 한순간에 소멸해버렸고, 결국 웨이트리스와 극장 아르바이트, TV 드라마 < 사브리나 >에서 대사 없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막연히 호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민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참가 신청서는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서광의 실마리였다. 이미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여유롭게 오디션에 응해 본선까지 진출하게 된다. 꾸준히 단련해온 가창력과 전형적인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음색,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성실하고 다부진 캐릭터가 TV를 시청하는 전국의 수백만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마침내 저스틴 구아리니(Justin Guarini)와 겨룬 최종 결선 무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 58%의 지지율로 우승을 거머쥐며 인생역전, 그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던 가수의 길로 진입한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켈리는 조속히 싱글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한다. 컨트리의 영향이 컸던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을 그린 순도 높은 팝 발라드로 차트 정상을 꿰차며 켈리 클락슨의 이름을 전 세계에 분포시켰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호수처럼 맑은 두 눈을 글썽이던 소녀는 차기 싱글 ’Miss independent’에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은 기타 사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독립 여성으로 변신을 꾀했다. 켈리의 변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앨범 차트 1위로 핫 샷 데뷔한 처녀작 < Thankful >은 록, 발라드, 소울, 포크, 댄스 뮤직 등을 아울렀고, 2005년에 공개한 < Breakaway >에서는 ’Since you been gone’, ’Behind theses hazel eyes’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탄탄한 록 사운드를 구축하여 걸리시 록의 새로운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다. 아이돌 콘테스트 출신자로서 저항할 수 없는 정약인 틴 팝의 운명을 버리고 굳이 록을 택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 공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이 세상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 가지 장르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보고 싶거든요.” 아이돌인 상태로 롱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미국 폭스 TV가 주최한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초대 우승자. 이는 앞으로 가수 켈리 클락슨의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닐 문구임에 틀림없다. 초년생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역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아래 데뷔전을 치러냈어도,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 안에서 성숙한 음악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켈리의 휴먼 드라마는 오늘도 방영 중이다.
1983년 3월 10일에 미국에서 태어난 캐리 언더우드(본명: Carrie Marie Underwood)는 어렸을 적 오클라호마에 있는 아버지의 시골 농장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두 언니와 함께 자랐다. 어릴 적부터 교회나 각종 콘테스트에서 노래에 재능을 보였던 캐리 언더우드는 실제로 1996년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계약 문제로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기도 했다. 이후 착실하게 고등... 1983년 3월 10일에 미국에서 태어난 캐리 언더우드(본명: Carrie Marie Underwood)는 어렸을 적 오클라호마에 있는 아버지의 시골 농장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두 언니와 함께 자랐다. 어릴 적부터 교회나 각종 콘테스트에서 노래에 재능을 보였던 캐리 언더우드는 실제로 1996년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계약 문제로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기도 했다. 이후 착실하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했고, 음악에의 열정을 잊지 못해 2004년 여름, 세인트 루이스에서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4’ 지역 오디션에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오른 캐리 언더우드는 팻 베나타(Pat Benatar)의 ‘Love Is A Battlefield’, 도나 섬머(Donna Summer)의 ‘MacArthur Park’,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의 ‘Man! I Feel Like A Woman’, 마티나 맥브라이드(Martina McBride)의 ‘Independence Day’,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의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등을 불렀는데, 특히 그룹 하트(Heart)의 80년대 명곡 ‘Alone’을 불렀을 때는 심사위원중 한 명인 사이몬 코웰이 캐리 언더우드의 ‘시즌 4’ 우승을 미리 점치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결국 보 바이스(Bo Bice)를 물리치고 우승한 캐리 언더우드는 본선 도중에 불렀던 ‘Inside Your Heaven’을 싱글로 먼저 발매했다. 명장 데스몬드 차일드(Desmond Child)가 프로듀싱한 ‘Inside Your Heaven’은 2005년 6월 14일 발매됐는데, 17만 장의 세일즈를 일으키며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 막바로 1위로 데뷔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더욱이 당시 1위를 달리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We Belong Together’를 물리친 결과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2005년 11월 15일, 캐리 언더우드의 데뷔앨범 [Some Hearts]는 전격 발매됐다. 첫 주 315,000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팝 앨범 차트 2위, 컨트리 앨범 차트 1위로 각각 데뷔했다(컨트리 앨범 차트에서는 27주간 1위 차지함). 또한 지금까지 6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데, 1991년 사운드스캔(SoundScan)에 의해 미국 내 앨범 판매량이 집계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성공적인 컨트리 아티스트의 데뷔 성적으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이다. 캐리 언더우드와 관련된 기록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는데, 2005년 10월 18일 ‘Inside Your Heaven’에 이어 에어플레이되기 시작한 싱글 ‘Jesus, Take The Wheel’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 6주간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964년부터 1965년에 걸쳐 코니 스미스(Connie Smith)가 ‘Once A Day’로 세웠던 ‘컨트리 싱글 차트 최장 1위 기록(8주 1위)’에 버금가는 기록이었다. 또한 캐리 언더우드의 통산 5번째 싱글인 ‘Before He Cheats’는 역시 컨트리 싱글 차트 5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Wasted’와 ‘Jesus, Take The Wheel’에 이어 3번째 컨트리 차트 1위곡이 됐다. 팝 싱글 차트에는 최고 8위까지 올랐는데, Top 100 진입후 38주만에 10위 안에 오르면서 ‘가장 천천히 Top 10에 진입한 곡’이란 진귀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록 그룹 Creed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깸). 한편, ‘Before He Cheats’는 10월 중순 현재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 58주째 머물러 있는데, 리앤 라임스(LeAnn Rimes)의 ‘How Do I Live’가 1997년에 세운 ‘빌보드 Top 100에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곡(69주)’ 부문 기록에 도전 중에 있다.
이러한 캐리 언더우드의 일련의 상업적인 성공은 자연스럽게 연말 시상식에서도 좋은 결과들을 내놓게 됐다. 먼저 2006년 11월 21일 거행된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에서는 ‘Favorite Breakthrough Artist’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컨트리 뮤직 어워즈(Academy of Country Music)에서는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여자가수상’ 등 3개상을 휩쓸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는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과 ‘최우수 여성 컨트리 가수상(Best Female Country Vocal Performance)’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1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