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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07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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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144쪽 | 238g | 128*188*20mm |
ISBN13 | 9788954641548 |
ISBN10 | 8954641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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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6일 ~ 한정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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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해볼까 하고 마음을 먹기까지 보름이 걸린 것 같다. 인터넷 서점에서 녹색의 책표지에 마음이 기울어 어떤 내용일까 미리보기로 읽어보고, 작가 프로필까지 확인한 뒤에 망설임없이 선택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책의 첫장을 넘기며 이번 책은 분량이 적으니 얼른 읽고 리뷰를 올려야지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는 며칠 전에, 심지어 방금 전에 넘겼던 부분을 다시 한번 펼쳐보고 읽고 또 읽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단지 문장 안에 단어의 쓰임이, 혹은 책의 제목을 통해- 이 소설에는 주인공 한탸가 읽은 혹은 한탸의 손을 거쳐 압축 꾸러미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가 된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작가가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주인공 한탸가 한평생을 살면서 겪어온 일련의 큰 사건들 속에 고독이 시끄러울 수 밖에 없는 어떤 실마리라도 있을까…….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테니 시작을 하기 전에 우선 밥 한공기에 어제 끓였던 차돌된장찌개를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속을 든든하게 채웠다. 그래도 너무 배가 부르면 식곤증이 찾아 올 수 있으니, 스스로 경계하며 양에 딱 찰만큼 먹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번 리뷰는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나는 보후밀 흐라발을 모른다.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읽은 수많은 책의 저자 중에 보후밀 흐라발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르고, 그간의 그의 작품이 어떤 노선으로 이 세상에 남겨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짙은 녹색의 책표지로 태어난 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내 손에 들어오는 여정 동안, 나는 수많은 블로그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후밀 흐라발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1960-70년대 노동계급자들이 그랬듯, 굵은 조직감이 그대로 드러난 구깃구깃한 골덴 셔츠를 입고 생각에 잠긴 듯 손으로 입가를 매만지는 그의 모습을 흑백 사진을 통해 봤을 때 '아아, 이보다 더 작가스러울 수가 있을까' 하고 감탄했다. 이런 생각이 다소 식상하게 여겨진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자고로 작가란 내면을 깊이 탐색하는 듯한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같은 것이 존재했던 과거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여전히 작가에 대한 독특한 고정관념이 있다. 비록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장 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잡스(Jobs)러운 자유분방함을 프로필 사진에 담지만 말이다(무라카미 하루키도 딱 그런 스타일이지만, 일단 나이가 있고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에는 프로필 사진에 그런 모습을 싣는다는 게 파격적인 일이었으니 예외로 하겠다). 그들 젊은 작가들의 옷차림을 두고 고지식하게 이러쿵 저러쿵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하나의 그럴듯한 단어에서 다른 그럴싸한 단어로 옮겨타는 글이 담긴 책을 만나게 되면, 책 앞표지에 실린 그네들의 사진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어찌되었든 보후밀 흐라발의 모습은 그의 글을 다 읽어본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삼십오 년 째 나는 폐지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폐지더미에서 일하는 폐지 압축공 한탸는 책에서 자기를 소개했듯, 폐지 압축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되었고, 알코올처럼 뇌속에 스며드는 여러가지 사상을 온 몸 구석구석으로 흡수하며 한 달에 2톤이 넘는 책을 압축한다. 책 압축 과정을 예술의 경지에 이르도록 만든 것도 모자라 한탸는 사십 년을 철도원으로 일해왔던 삼촌이 자신의 집 정원에 낡은 선로 변경장치를 설치하고, 제철소의 광석을 실어날랐던 소형 기관차를 들여놓은 것처럼, 집안 구석구석에 책을 쌓아놓는다. 심지어 침대 위에 관처럼 생긴 선반을 짜서 삼십오 년 동안 2톤의 책을 쌓아 놓는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단 한 차례의 경솔한 몸짓이나 부적절한 동작, 미미한 접촉을 하는 순간, 한탸는 그대로 책 더미에 깔려 죽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한탸가 책을 읽고, 그 책을 수집하고 그리고 마치 폐지꾸러미에 심장이라도 이식하려는 듯 꾸러미 한 가운데 그날 경건하게 선택한 책을 끼어놓고 압축하는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일이야말로 한탸에게 온전한 러브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온전한 러브 스토리같은 일을 하는 동안 한탸는 끊임없이 하늘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고 되뇌인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한탸는 왜 이 말을 계속 되뇌었을까? 하늘이 인간적이지 않다면, 하늘 아래 지상에 있는 것들은 인간적이라는 뜻일까? 나의 이런 의문에 한탸는 이렇게 답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한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데에는 일련의 사건과 과정이 관여한다. 책에서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는데, 보후밀 흐라발은 한탸의 시점을 현재에 맞춘 채, 과거와 상념 그리고 환각이라고 할 수 있는 몽환 상태를 오가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탸는 처음에 하늘이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워 안다고 고백한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사고하는 행위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에 인간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한탸의 의식 속에는, 자신에게 그러한 상식을 가르쳐준 희귀하고 귀중한 책들을 스스로 압축기로 짓이겨 소멸시켜야 한다는 현실이 모순으로 다가온다. 한탸는 스스로를 상냥한 도살자라고 칭하며, 35년 동안 해온 온전한 러브 스토리같은 일 속에서 자신 역시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한탸가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 바뀌게 된 계기가 정확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 책에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약간의 추론을 한다면, 아마도 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날 한탸의 지하실에는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의 인증이 찍힌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린다. 난세가 진정되면 다시 있던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은신처에 보관해두었던 책들이 누군가의 고발로 발각되자, 전쟁의 전리품이 되어 한 주 내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열차의 무개차량에 그대로 방치된다. 책에서 검댕과 인쇄용 잉크가 뒤섞인 금빛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광경을 목격한 한탸는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인륜을 거스른 죄를 범했으니 자신을 체포해가라고 경찰에게 애원한다. 하지만 한탸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런 사건을 겪고 수년이 지난 뒤 한탸는 부루주아 저택과 성에서 나온 장서를 통째로 떠맡는데 익숙해진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킬로그램당 겨우 1코루나에 팔리게 될 희귀하고 아름다운 책들을 열차에 실으며 한탸는 이제 눈물이 아닌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본다. 한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자신의 기마상을 산산조각 내려고 총을 겨눈 프랑스 군인들을 주의싶고 만족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을 거라고 얘기하며, 하늘이 전혀 인간적이지 않으며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다빈치도 진작에 알고 있었을 거라고 단언한다.
이 책에서 한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뿐 아니라 자신을 여러 성인들에 빗대어 묘사한다. 35년 동안 폐지 압축을 하며 귀중한 책을 곁에 두고 뜻하지 않은 교양을 쌓게 된 압축공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저 지하세계에서 그들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쥐들의 비명소리와 귓가에서 맴도는 파리들의 성난 광무를 보며 한탸는 환상에 사로잡혀 예수와 노자를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세상의 바꾸고 싶은 열정적인 젊은이와 체념어린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는 노인. 삶의 근원으로 회귀함으로써 안감을 두둑이 댄 영원의 옷이 만들어진다. 예수는 기도를 통해 현실을 기적으로 만들려고 한 반면, 도덕경의 노자는 순진무구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법칙들을 유일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이어, 50킬로그램이 넘는 폐지를 등에 인 두 집시 여인이 지하실에 찾아온다. 한탸는 아름다운 터키옥색과 붉은색 치마를 입은 그 두 집시야말로 삶에 대한 엄청난 활기와 에너지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난하다 못해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두 여인은 아이와 기둥서방을 먹여살리기 위해 폐지를 모아 팔고,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구걸하다시피(하지만 그마저도 한마리 짐승의 당연한 몸짓이라는 듯) 몸을 내어주는 이들이다. 두 집시 여인이 한차례 타오르다 사그라진 불꽃처럼 자신의 지하실을 다녀간 후 한탸의 예수와 노자는 모습이 달라진다.
"예수는 플레이보이 같았고, 노자는 내분비선이 고장난 노총각처럼 보였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중략...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뒤어어 그는 말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한탸가 이 책에서 자신을 아직 인간적이었다고 묘사하는 부분은 두 군데 뿐이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이 드레스에 달린 리본에 똥을 묻힌 채 무도회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똥물을 튀겼던 사건을 두고 한탸는 그 시절의 자신은, 그녀가 사랑했던 만차에게 닥친 일은 지나치게 인간적인 일이었다고 되뇌인다. 그리고 어느날엔가 소리없이 자신의 집으로 흘러들어와 마음 속에 또아리를 틀었던 집시여자를 추억한다.
"그녀도 내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저녁마다 우리는 말없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내 집 열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중략...
날마다 해질녘이면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문이 열렸다."
한탸의 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집시여자는 처음 왔을 때처럼 어느날 홀연히 모습을 감췄고, 한참 나중에야 한탸는 게슈타포가 그녀를 다른 집시들과 함께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마이다네크 혹은 아유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서 태워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한탸가 이 두 가지 사건에서 인간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이야기했듯 이 세상에 '사랑과 연민이라는 감정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사랑과 연민이라는 감정은 폐지 압축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잊혀지고, 기억속에서 완전히 삭제'되어 버린다. 35년 동안 폐지 압축공으로 지내면서 한탸가 인간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기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업환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 개인을 지독한 고독 속에 빠뜨릴 수 밖에 없는 전쟁과 폭력이 만연한 시끄러운 세상 때문이었을까. 한탸는 책의 여러 곳에서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가령,
"그런데 압축기의 아가리에 폐지와 펼친 책들을 쑤셔 넣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내 눈길이 가 멎은 것이 있었다. 생쥐 가족과 그들의 보금자리가 통째로 압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눈먼 새깨 쥐들을 선두로 해서 새끼들을 움켜잡고 놓지 않는 어미 쥐들도 함께 쓸모없는 서류와 문학작품의 운명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런 지하실에 이토록 많은 생쥐들이 살고 있을 줄이야. 이백, 아니 오백 마리나 될지 모르는 작고 다정한 이 짐승들 대부분은 반쯤 장님이다.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역시 글자를 먹고 살며, 모로코 가죽 장정의 실러를 선호한다는 것. 그런게 내 지하실은 언제나 사각대며 갉아벅는 소리와 눈짓으로 가득하다. 새끼 고양이처럼 장난기 녀석들인지라 내 압축기 언저리로 기어오르는가 하며 롤러 위에 서 종종 걸음 치기도 한다. 그러다 녹색 신호가 들어와 기계가 작동하면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고 찍찍대는 소리도 잦아든다. 그 순간 녀석들의 형제들은 심각해져 작은 뒷발로 선 채, 정말 이상한 소리야! 하고 말하려는 듯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이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책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이제 내 삶은 이 작은 생쥐들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에서 한탸는 어머니의 죽음도, 마지막 남은 혈육인 삼촌의 죽음마저도 무미건조하게 들려준다. 그들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언제나처럼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압축기의 녹색버튼과 빨간 버튼을 누른다. 책에서 또다른 사고를 얻고 자기 앞에 나타난 환영과 사념에 완전히 잠식된다. 한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인간적인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쥐들의 하늘 역시 인간적이지 못하다."
한탸의 세상은 이렇듯 압축기 안에서 소멸되는 폐지더미들처럼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소멸되어 간다.
처음에 리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책장을 계속 뒤로 넘기며 읽었다고 말했었다. 삶의 기쁨과 슬픔이 압축기 속에서 사라지는 폐지들처럼 소멸되어가는데 그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한탸에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행동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물에 적셔 질척해진 폐지들을 압축기에 넣을 때, 폐지 한가운데 자신이 읽은 귀중한 장서를 마치 심장이라도 되는듯 끼워넣고 꾸러미를 아름답게 꾸몄다는 것이다. 한탸는 꾸러미들 사이에 참으로 여러가지 책을 끼워 놓고 그 일을 마치 의식을 행하는 성직자처럼 해낸다. 실제로 한탸가 폐지 압축공이 되기 위해서는 사상가나 성직자가 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내가 대단한 지성인이고 지식인이어서 영광스럽게 꾸러미의 심장이 된 그 책들을 모두 읽어보았으면 좋았을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단지 삶의 절대진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느릿느릿 유영하는 생명체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꾸러미들 사이에 놓인 책들이 한탸가 시끄러운 세상을 향해(혹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여나 그런 방향으로 분석한 평론이 나온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싶은 심정이다. 한탸가 폐지 꾸러미에 낀 책들은 다음과 같다.
로테르담 에라스뮈스 『우신예찬』
실러 『돈 카를로스』
프리드리히 니체 『에케 호모』
이마누엘 칸트 『도덕 형이상학』, 『천계론』
노발리스의 책
외
한탸가 꾸러미 사이에 끼워 놓은 책들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 한탸가 그런 행동을 무의식 혹은 의식적으로 반복함으로써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압축기라도 그 안에서 인간적이며 아름다운 것이 새롭게 탄생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부브니에서 목격한 현대적 시설의 폐지 처리장은 한탸에게 절대적 절망감을 안겨준다. 한탸는 부브니의 폐지 처리장에서 거대한 기계들의 비인간적인 움직임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깨끗한 유니폼을 입고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완전한 박탈감에 사로잡힌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고독 속에 머무를 수 있었던 자신의 공간을 더 이상 보장 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인간적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신봉했던 책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한탸의 심정이 어느 정도로 절박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탸에게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
이 책에서 옮긴이 이창실 씨는 그동안 자신이 압축했던 책들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고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 한탸를 두고 '그럼에도 이 책에서 역설적인 따스함과 평화의 숨결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세상의 축소판인 압축기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짓이겨 놓을 때도 그 안에서 궁극적으로 최상의 것이 탄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살아있고 한탸의 반복적인 행동과 독백으로 우리에게 개인에 대해 생각하고 꿈꾸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순간, 한때의 불꽃이었고 사랑이었던 여자의 이름이 계시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 종말을 맞기로 한 한탸가,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았던 집시 여인의 이름이 생각났다는 사실이 한없이 쓸쓸하고 공허했다. 비인간적인 것들에 내몰린 한 인간이 선택한 최후의 생존 방법이 역설적이게도 결국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먹먹했다. 옮긴이는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했지만, 나는 보후밀 흐라발이 이 책을 통해 인간사의 종말을 그야말로 잔인하도록 냉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어떤 구원도 연민도 들어있지 않으며, 옮긴이의 말마따나 '책 속의 희비극적이고 익살스러운 장치들에 힙입어 여러 절망적 상황의 확산이 차단'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폭풍의 눈과 같은 눈속임일 뿐, 그 바깥에서(혹은 뒤집어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폭력과 파괴로 일그러진 인간적이지 않은 소음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소음을 오로지 고독과 ,고독으로 파생되는 인간적 사고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으며 한탸를 구원했던 것 역시 유일하게 시끄러운 고독 뿐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비록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하늘에서 구원받는다고 믿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책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종교인 사상가로 비유한 한탸는 결국,
'인간적이지 않은 하늘로 회귀했다.'
그야말로 잔인하도록 냉소적인 폭력이 아닌가.
한탸는 책의 처음 시작에 자신을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한 번도 진짜로 버림받아본 기억이 없는지라 그렇게 나 자신을 방기한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테지."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과도 같은 그의 독백에서 나는 보후밀 흐라발이 내게 보여주고자 했던 씁쓸한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결국에는 파괴될 실낱같은 희망이 그 안에서 끊임없이 조그맣게 타오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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