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과 윤광준의 인연
구본형과 윤광준은 각기 경제경영과 예술 분야에서 꾸준히 저서를 발표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구본형의 대표서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면 윤광준에게는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두 권 모두 10만 권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 『떠남과 만남』에서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것은 우선 윤광준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독자인 데에서 연유한다. 1998년 출간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구본형의 첫 번째 저서로 1999년 교보문고가 발표한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100선’에 선정되었던, 그 당시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았던 책이다. 윤광준은 이 책을 읽고 “남이 먹여주는 밥 대신 스스로 찾는 밥이 더 소중하다는 자각”(『떠남과 만남』, 224쪽)을 얻은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사진작가의 말」에서 그는 구본형이 자기 인생의 멘토 중 한 명이라고 밝힌다. 구본형 소장이 “변신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출발의 은인”(223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떠남과 만남』을 위한 세 번의 여행을 함께 떠난다.
변화의 임계점에 도달하기 위한 구본형의 50일간의 여행
『떠남과 만남』은 구본형의 네 번째 저서로, 초판은 2000년에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구본형의 15종의 저서(공저, 번역 제외) 중 경제경영서로 분류되지 않는 책이라는 점에서 희귀하다(경제경영서가 아닌 책으로는 『일상의 황홀』 정도만 있다).
이 책에 실린 남도여행을 떠날 당시 구본형은 20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퇴사한 직후였다. 그리하여 이 여행은 20년간 몸에 밴 직장인으로서의 관습과 철저히 결별하겠다는 의미를 갖기도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15쪽)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20년 만의 휴가, 한 달 반의 여행은『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에 이어 ‘변화’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 없이 떠난 게으른 여행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더불어 진짜 나를 만나는 여행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갔을 때는 이전과는 다르리라는 다짐이 가능하다.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생략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었다.
- 1장 「기차 안에서」중에서
위의 다짐을 보면,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료 대학을 열어 평범한 인물들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구본형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8년 전의 여행은 지금의 구본형을 있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남도의 꽃길을 따라
이 책은 3월에서 시작하여 4월로 끝이 난다. 그리하여 그 첫 장의 제목이 “매화 향 가득하니, 봄이다!” 이다. 이 한 달 반의 여행을 “섬진강변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틀림없이 매화 때문이었다”(26쪽)고 말하는 구본형의 바람은 섬진강변 질경이의 짙은 색과 씀바귀 가득 핀 풍경, 산수유는 지금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매화는 그야말로 절정인 봄을 만끽하는 것에서 시작하여(1장 「아아, 섬진강」 중에서) 장천재 부근의 작은 동백숲을 보며 대학때 거제도에서 보았던 동백과 둘째아이를 데리고 거문도에 갔을 때 보았던 동백을 떠올리는 것으로(3장 「장천오미」 중에서) 여행 내내 이어진다. 이 여행은 남도의 매화, 동백, 벚꽃을 따라 이어지는 꽃길 여행인 것이다.
국사암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하동에서 쌍계사로 오는 국도의 연장선과 만난다. 칠불사로 가는 길에는 아직도 벚꽃이 볼 만한 정도로 달려 있다. 여기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은 아직 어리다. 하동에서 쌍계사까지 가는 길가에 서 있는 고목만큼 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꽃이 조금 늦게 피기 시작한 모양이다.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꽃잎들이 비처럼 떨어진다. 거의 동그라미에 가까운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날린다. 신기한 것은 꽃잎이 구르는 모습이다. 일단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누운 꽃잎들 위로 바람이 불면 모든 꽃잎이 일어나 마치 굴렁쇠가 구르듯 도로 위를 달린다. 어째서 그런 모양으로 구르는지 알 수 없지만 여간 신기하지 않다. - 4장 「하동 쌍계사」 중에서
옛사람의 정취를 따라
이 행적에 꽃길만큼 중요한 것은 옛사람의 흔적이다. 세속의 명리와 기준에 묶이지 않는 서산대사의 향취에 젖기도 하고(2장 「해남 두륜산 대흥사」 중에서) 강진으로 유배를 옴으로써 자신을 위한 ‘겨를을 찾은’ 다산처럼 마음을 놓아두기도 한다(2장 「다산초당」 중에서). 그밖에 옛사람의 정취를 따라가는 길은 강진의 혜장선사, 고금도 충무사의 이순신, 보길도의 윤선도와 윤두서, 장도의 장보고, 흑산도의 최익현, 제주 항파두리성의 김통정으로 이 책 내내 이어진다.
여기 있는 나무들 중에 아주 오래된 놈들은 충무공이 아침에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충무공의 시신이 배에 실려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많은 장졸이 통곡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무덤이 파이고 관이 잠시 안치되는 것 또한 보았을 것이다…(중략)…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