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델머 데이비스 감독의 클래식 웨스턴을 다시 만든 <3:10 투 유마>는 참 오랫만에 만나는 웨스턴 영화다. 더구나 이 영화는 '영웅'이 등장하는 정말 보기 드문 웨스턴 영화이기도 하다.
여러 점에서 델머 데이비스의 원작 영화는 현대적이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델머 데이비스 감독의 <주벨>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웨스턴 영화 사상 가장 찌질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건 <3:10 투 유마>의 원작인 <결단의 3시 10분>도 마찬가지다. 그 영화의 내러티브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반 헤플린은 여러 면에서 무법자 글렌 포드에게 휘말려 있고 둘은 감시자와 감시 당하는 자 사이에서 기묘한 우정을 맺으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맨골드 버전의 2007년판 <3:10 투 유마>의 내러티브 역시 원작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인 농부 크리스찬 베일은 무법자의 리더인 러셀 크로우를 유마행 3시 10분 기차를 태워야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하지만 원작 영화는 90분 남짓인 반면에 현대판 <3:10 투 유마>는 120분 정도로 상영 시간이 늘어났다. 제임스 맨골드는 인터뷰에서 두 주인공의 여정이 잘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강화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이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비교적 평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반 헤플린과 글렌 포드와 달리 우여곡절이 많다.
말하자면 <3:10 투 유마>는 원작 영화가 지녔던 심리극의 풍모에다가 액션 어드벤쳐적인 요소가 더 강화되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지루함을 참기 어려운 현대 관객들을 위한 배려고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원작 영화의 자조적인 분위기는 리메이크판에서 한층 치열하고 공격적인 액션 시퀀스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본래 원작 영화에서 반 헤플린과 글렌 포드가 대결하는 장면은 콘텐더라고 불리우는 유마행 기차를 기다리며 보내는 호텔 스위트룸에서만 벌어진다. 하지만 리메이크판에서는 둘의 주도 관계가 쉽사리 바뀐다. 무엇보다 원작 영화의 글렌 포드가 어쩔 수 없는 살인을 한 번 하고 마는 것에 비해 리메이크 버전의 러셀 크로우는 한층 '크레이지 버전'의 무법자다. 그는 거의 의도적인 살인을 거듭한다. 무법자 자체가 신사적인 인물에서 거친 인물로 바뀌다 보니 아무래도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농부 역을 받은 크리스찬 베일이 좀 더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리메이크판 <3:10 투 유마>는 웨스턴 장르에서 비교적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갔던 원작 영화보다도 이런 캐릭터 설정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다. 서부에서 강도 짓을 하는 인물들이 아무래도 신사적이기는 어려울테니...
하지만 리메이크판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나치게 어드벤쳐적인 요소가 많이 삽입된 감이 있다. 원작 영화가 쓸쓸한 분위기의 마을을 중심으로 공간 이동을 해 나갔다면 이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를 이동시키는 과정은 한마디로 험난하기 짝이 없다. 지름길로 가다보니 잔존해 있는 아파치 게릴라들의 야습을 받게 되고 철도 공사 현장에는 러셀 크로우에게 원수를 진 싸이코 철도 회사 경비원들이 버티고 있다. 그 와중에 농부와 무법자의 주도권은 자주 바뀌고 원작 영화가 지니고 있던 두 남자의 심리적 대결 양상은 물리적 충돌을 통해 성장해 간다.
그러다보니 영화 후반부에서 무법자가 농부의 부성애에 감동하게 된다는 설정이 조금은 뜬금이 없게 느껴진다. 거의 막바지에 농부에게 감화되는 설정은 원작과 달리 농부의 큰 아들이 뒤쫓고 이들 사이의 화학 작용과 농부의 무법자에 대한 고해성사로 완성되는데 이들이 쌓아가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한 설명이 영화 안에서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다 보니 좀 뜬금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3:10 투 유마>는 적어도 현대 액션 영화로 변신한 웨스턴으로서는 꽤 즐거운 작품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나 결말은 좀 더 폭력적이고 비극적으로 변신했고 마치 홍콩 느와르를 보는 듯한 허무감마저 느껴진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대들을 몰살시키는 러셀 크로우의 총격 장면은 홍콩 느와르의 결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원작 영화에 비해서 리메이크 버전의 농부 '아버지'는 승인받기 위해 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된다. 이 블로그에서 델머 데이비스 <결단의 3시 10분>에 대해 글을 남기면서 '서부에서 아버지로 승인받기'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 리메이크 버전의 농부인 크리스찬 베일에게 닥친 지역 토호의 압박은 좀 더 치열한 것이며 비등한 실력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어 있던 원작 영화의 두 영웅들의 균형추는 무법자의 압도적 우위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결국 원작에 비해 좀 더 비극적인 결말을 낳게 만든다.
그럼에도 <3:10 투 유마>는 21세기에 웨스턴 장르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웨스턴의 세계는 이 사회의 작은 축약이다. 웨스턴의 이야기는 가정과 공동체가 무법자 또는 외부 세력과의 접점을 보여주는데, 좀 더 현대적인 액션 디자인을 받아들인 <3:10 투 유마>는 일단 박력으로 넘치고 웨스턴 영웅으로 변신한 러셀 크로우와 크리스찬 베일은 속된 말로 '간지'가 난다.
<3:10 투 유마>에서 남자들은 모두 나쁜 자들이다. 과거의 웨스턴 영화들이 선인과 악인의 대결로 귀결되었다면 <3:10 투 유마>는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들의 진흙탕 싸움을 다루고 있는 느와르 스타일의 웨스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농부 가족을 제외한다면 온통 나쁜 놈들 뿐이다. 강도단 대장 러셀 크로우와 그의 부하들은 당연히 나쁜 놈이고 그를 호송하는 보안 요원 피터 폰다는 아파치족의 어린 아이들까지 학살한 싸이코 기독교 도살자이며 호송 요원 중 하나는 농부의 헛간을 불태우는 고리대금 업자의 하수인이다. 그리고 그 더러운 세상을 우리의 순수한 농부 양반이 지나가는 거다... 물론 쉽지는 않다.
DVD는 만족스럽다. 특히 서플먼트로 담긴 '무법자들'이라는 메뉴에서 웨스턴 영화의 오랜 영웅이었던 인물들의 진실에 대한 언급이 흥미롭다. 말하자면
, <황야의 결투>, <와이어트 어프>, <툼스톤>에 등장하는 'OK 목장의 결투'는 총 없는 상대를 쏴 버린 어프 형제들과 닥 할러데이의 '학살극'이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