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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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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소설집

천운영 | 창비 | 2008년 01월 30일 리뷰 총점8.5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3점
편집/디자인
4.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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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29g | 144*211*20mm
ISBN13 9788936437039
ISBN10 893643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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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문단의 전면을 장식하며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선보여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얘기를 쓰는 천운영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그의 자취방은 공부하던, 회의하던 친구들이 저녁마다 주막처럼 들러서 국수를 말아먹고 갔던 곳이다. 애들 교육은 못 시켜도 이웃에 떡은 돌렸던 할머니의 천성을 이어받았다는 천운영은 남들 음식 해 먹이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뚜렷한 사회 인식이 아니라 토익, 토플, 상식 따위이기에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공권력에 쓰러졌던 시절, 천운영은 손목에는 청 테이프를, 옆구리에는 대자보를 끼고 다녔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출석만 부르고 도망가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소설가의 꿈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고 말한다. 4학년 때 들은 평론수업 시간, 당시 김영삼 정권의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평론을 쓰는 과제에서 선생님이 그의 평론을 재밌게 읽고는 차라리 소설을 써보라던 한 마디가 순간 한 줄기 빛으로 천운영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당시 평론을 논설문이 아닌 현실을 빗대는 이야기를 만들어 썼다는 천운영은 선생님이 농담처럼 덧붙인 한 마디에 소설가의 길과 우연히 마주쳤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소설은 잘 쓸 수 있겠다'는 확신에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예대로 진학했고 2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수업시간에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메모를 했다가 저녁 때 서점에 들러 모두 읽어버리던 천운영은 그 2년 동안 평생 읽은 책보다 대여섯 배 많은 책을 읽었다. 천운영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었던 소설에 대한 꿈을 키운 서울예대 2년은 "소설에 관해 얘기하는 친구도 얻었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소설을 고민하는 열정을 배운" 시기였다고 한다

천운영은 소설을 쓰면서 매 순간마다 집중하는 '화두'가 있다.「바늘」의 미와 추, 「명랑」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요즘 고민까지.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씹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천운영의 소설들은 다르다.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차이는 자못 의식적일 정도이다. 가령, 「바늘」의 주인공은 남자들 몸에 문신을 새기는 젊은 여자이고, 「숨」에는 마장동에서 소머리를 분해하는 일을 하는 남자가 등장하며, 「당신의 바다」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고물상(행복고물상), 유원지의 도깨비집 관리인(유령의 집), 건축공사장 노동자(등뼈) 등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은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인물들이다. 그렇게 낯설고 독특한 이들의 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 역시 천운영 소설의 특징이다. 직접 발품을 팔고 꼼꼼히 취재한 노력이 돋보이거니와, 그것은 이웃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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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작가의 말 중

출판사 리뷰

한결 깊어지고 확장된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치열하고 아름다운 미학적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소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작가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이 출간되었다. 장편 『잘 가라, 서커스』(2005) 이후 3년 만에, 소설집 『명랑』(2004)을 펴낸 지는 4년 만에 내는 작품집으로 총 8편의 단편을 묶었다. 원초적인 육식성과 여성적 생명력, 강렬하고 시적인 이미지, 그리고 면밀한 취재에서 파생되는 생생한 묘사가 압권인 『바늘』(2001)과 현실세계에 설화와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명랑』을 거친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한결 깊어진 세계인식과 다양한 문체의 변주를 들고 나와 소설영역의 확장을 일구어낸다. 작가는 세계에 혼재된 상처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상처를 대속하는 따스한 ‘눈물’, 그리고 통념을 깨는 사랑과 치유의 ‘눈물’을 통해 독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성(性)과 시간을 초월한다
첫 작품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2007 이상문학상 우수작)의 화자는 사진관을 운영하며 젊은 여자나 예비부부의 누드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주는 사진사다. 그와 아내는 서로에게 어떠한 욕망도 느끼지 못할 만큼 부부관계가 위태롭다. 그는 체계적인 몸관리로 젊음을 유지하는 아내의 몸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고, 젊은이에 대해서는 증오와 부러움이라는 양가감정을 지닌다. 아내 역시 늙어가는 그에게 권태로움과 싫증을 느낀 지 오래다. 게다가 그는 “카메라를 통해 육체를 바라볼 때만 흥분”하고, “조명을 받으며 카메라에 들어온 몸만이 피가 흐르고 온기가 도는 살아 있는 몸”(12면)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그의 일상에 열여덟살 소년이 끼여든다. 사소한 시비 끝에 소년과 싸움을 벌이다 다친 그는 합의금 대신에 일년간 소년을 조수로 고용해 일을 시키기로 한다. 그에게 소년은 새로운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아내와 소년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그는 소년의 밝고 건강한 젊음에서 동경과 질투와 증오를 동시에 느낀다. 어느날 아내에게서 이혼을 통보받은 뒤 사진관으로 향한 그는 소년이 아내의 누드를 찍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피사체로 앉은 알몸의 노파, 소년의 할머니를 보게 된다.

조명 아래 쑥스럽게 웃고 있는 여자는 아내가 아니다. 상의를 벗고 앉은 여자는 바로 늙고 야윈 노파다. (…) 그는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가 여태 상상하고 단정 지은 추악하고 안쓰러운 늙음이 아니었다. (…)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은 부끄러워하고 시샘하고 달아오르는 소녀의 몸이었다.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원숙한 자연이자 소녀인 노파의 몸.(39~40면)

화자의 젊음과 늙음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 뷰파인더로만 가능했던 욕망이 뒤집히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뷰파인더 안과 바깥을 넘나드는 동시에 일반적인 상상과 편견을 넘어서는, 즉 현상과 본질을 관통하는 ‘아름다움에 실체’를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녀, 늙음/젊음, 미/추’라는 도식적인 관념을 부수고 난 자리에는 성과 시간을 초월하는 미의 본질만이 남는다. 노파의 몸에서 소녀를 읽는 것이나 소년에게서 동성애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본질과 관련된다. ‘소년 J의 허벅지’로 표상되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순수한 욕망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이러한 미의 세계에서는 성별도 시간의 흐름도 사라지고 눈부신 풍경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상처와 삶의 고통을 대속하는 눈물 사용법
표제작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 ‘그녀’가 일곱살일 때 태어난 미숙아 남동생은 인큐베이터 사용료가 없어서 장롱에 갇힌 채 단 하루를 살고 죽는다. 3년 뒤 그녀가 홍역을 앓던 어느날, ‘그애’는 우량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7년 동안 성장하여 일곱살이 된 뒤에는 성장을 멈춘 채로 20년을 그녀의 곁에 머문다. 그애는 “서른일곱살 여자의 몸속에 살고 있는, 단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일곱살 소년”(52면)이다. 가족들은 그녀의 오라비가 조울증을 앓는 것도 그애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비는 그애의 시신을 한강에 띄워 보냈노라고 뒤늦게 고백한다. 가족들은 30년 만에 때늦은 천도제를 지내고, 거짓말처럼 오라비는 평온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지켜주며 살게 했고 울지 않게 한 그애를 떠나보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우는 것은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울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고, 바람나서 떠났다 돌아온 남편을 먼저 보낸 할머니도,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어머니도 울지 않는다.

이처럼 작가는 통념으로 작용하는 눈물을 거부하고 제의로서의 새로운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유약함과 보호받기 위한 무기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치유하는 적극적인 ‘눈물의 사용법’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중자아’라 할 수 있는 ‘그애’와의 재회나 이별을 묘사하고, 눈물에 대한 기존의 남녀상을 무너뜨리면서 친구 ‘게이년’과 같은 모호한 ‘성 정체성’을 등장시키는 것도 눈물의 영역을 넓혀 새로운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때문에 ‘눈물 사용법’이 상처의 변주이자, 상처와 삶의 고통을 대속하는 방법,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눈물의 의미는 삶에 대한 따스함이자 연민, 또는 사랑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눈물의 맛은 그래서 ‘짜고 시고 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다. 이것은 자살한 아이의 천도제를 지낸 또다른 ‘여자’에 대한 ‘그녀’의 연민과 애정이 담긴 다음 장면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구현된다.

나는 여자에게 내 속에 살았던 소년 얘기를 해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애가 남기고 간 양말 한짝을 선물로 주었다. 내 위에 누운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이 내 눈꺼풀을 적셨다. 눈꼬리로 떨어진 눈물이 내 것인지 여자 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자의 눈가에 혀끝을 갖다댔다. 눈물은 짜고 시고 달았다.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나올 때면 오줌을 싼다. 오줌을 싸면서 나는 자그마한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는 일곱살 소년을 생각한다. 내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울지 않는 소년.(71면)

발랄한 어법으로 치부를 파헤치다
이번 소설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 「알리의 줄넘기」의 주인공은 혼혈소녀 ‘김알리’다. 할머니가 ‘제니’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 흑인군인과 결혼해서 혼혈아를 낳았고, 무하마드 알리에 열광한 그 아이가 자라 낳은 딸의 이름을 알리라 짓고 권투(줄넘기)를 가르쳤다. 알리는 혼혈을 왕따시키는 동급생들에게도 당당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도 잘 보살핀다. 그녀는 아버지와 씨다른 남매이자 땀냄새에 집착해서 주로 막노동현장의 남자들과 사랑에 빠졌다가 상처받기를 되풀이하는 고모에게도 어른스럽고, 삼년째 소식이 없는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유머 있는 알리가 될 순 없어도 슬퍼하는 알리가 되어서는 안돼”(14면)라고 다짐하기도 하는 이 소녀는 소년같이 씩씩하고 철이 빨리 든 아이다.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분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이 문제를 힘주어 제기하거나 무리하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다만 소녀의 일상을 통해 경쾌하게 소설을 진행시킬 뿐이다. 고모의 입을 통해 말하듯, “대부분의 농촌 총각들이 베트남 여자와 결혼하는 마당에”(93면)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 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몽고반점’(93면) 같은 것이다. 시종일관 유지하는 이러한 발랄한 어조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가려진 치부를 아프게 까발린다. 그리고 그 육중한 문제들을 ‘우리’라는 간단한 말로 치환하면서 심각하지 않게 결말을 완성하는데, 여기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이 곧 천운영 소설의 저력이기도 하다. “더블더치를 하려면 두 개의 줄넘기와 적어도 세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줄넘기를 하나 더 사러 가는 것이다. 줄넘기를 사면 손잡이에 더블더치를 할 ‘우리’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야지. 나는 지금 ‘우리’를 만나러 간다.”(103면)

음악처럼 울리는 상처와 욕망 너머의 세계
제자와의 성 스캔들이 와전되어 늪지대로 도망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룬 「내가 데려다줄게」(발표 당시 제목은 ‘틈’, 2008 이상문학상 우수작) 역시 아름다우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내 죽음이 진실을 대신하리라”(106면)라는 유서를 쓰고 늪으로 들어간 사내는 늪지대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한 가족에 의해 구조된다. 안개가 자욱한 늪지대라는 공간처럼 소녀와 어머니와 할머니로 구성된 이 가족의 존재도 비현실적이다. “꿈과 생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그 좁은 듯하면서 광활한 사이 혹은 틈새”(111면)라 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배경에서 사내가 증명하려는 ‘진실’이나 욕망의 본질과 대상은 무의미해진다. “글쎄다, 진실이 뭔지도 모르겠는걸.”(132면) 명확하지 않은 진실을 찾기보다는 뱀들이 “허물을 벗기 위해 흐린 안개 눈을 하고 늪으로”(115면) 오는 것처럼 사내 역시 재생과 상처의 치유를 위해 늪지대로 들어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읽으면 늪과 안개와 그를 구한 여자(소녀의 어머니)는 소생의 근원지인 셈이다. 사랑의 완성을 위해 지어진 ‘노래하는 탑’이라는 소재 역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으나 분명하게 존재하면서 ‘숨소리’나 ‘눈물 한줄기’(133면)에도 아름답게 반응하며 울리는 자연음의 근원지이다. 사내가 다시 늪으로 들어가는 결말 부분의 문장, “따뜻한 늪이 데려다줄 것이다, 안개를 피워올려, 그곳으로”(134면)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늘상 반복되는 진실찾기와 상처와 욕망 너머의 세계, 허물을 벗고 난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노래, 봄에 부르는 겨울노래
상처받고 그 상처로 꽃을 피우는 여자가 등장하는 「노래하는 꽃마차」는 모든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처하는 비참하면서도 역설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유년 시절 ‘그녀’의 가족은 ‘찬양사역단’이었다. 광신적인 신앙을 가진 어미에게는 ‘거인가족’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가녀린 막내딸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애정을 바라는 소녀를 어미는 밀쳐내기만 하고 딸이 꺾어준 봄꽃으로 외려 딸을 후려친다. 소녀는 여자로 성숙하지만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어미는 자라면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딸의 아름다움을 죄악의 근원이라 저주하고, 오빠는 하나님을 빙자해 그녀를 겁탈하고,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이후에는 또한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범한다. 이 상처를 이겨내게 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 한 남자의 사랑이다. 12절로 구성된 각 절에서 인칭과 화자를 달리하면서 반복하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작가는 여자의 고통스러운 상처들을 극대화하거나 어루만진다. 결핍과 폭력과 상처를 드러내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어법이 두드러진다. “초콜릿을 주던 사내애” “먹을 것을 주며 노래를 부르라던 사내” “부르기도 전에 입을 막던 사내” “시커먼 짐승을 입 안에 쑤셔넣던 사내”(159면)들에 겁탈당하고 상처받은 한 여자의 ‘사랑노래, 봄에 부르는 겨울노래’가 봄과 꽃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프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세 편의 짤막한 소설(<나와 롤리타> <마우스피스> <사내와 개와 오동나무>)과 <작가후기>로 엮여진 독특한 구성의 「내가 쓴 것」, 애완동물을 키우다 버리는 한 여자의 허세와 가식적인 삶을 통렬하게 까발린 「백조의 호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무관심으로 변하는 과정과 사회의 허위의식을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고발하는 「후에」 역시 만만치 않은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천운영 소설의 성숙한 변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해설에서, 지금까지의 천운영 소설은 “90년대 여성소설의 여성상을 넘어서는 가능성”과 “리얼리즘의 갱신을 위한 단초”(252면)를 제공했고,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서는 ‘욕망’과 ‘사랑’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욕망의 서사’가 ‘사랑의 서사’로 이동하고 있음을 읽어낸다. 그는 또 천운영 소설에서 성숙한 변화를 적절하게 감지해낸다.

상처 없는 사람들은 읽지 못할 소설
천운영의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은 세계에 혼재하는 도저한 상처와 상처에 대처하는 방식이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 그 수단이 되는 구체적인 물질이 바로 ‘눈물’이다. 그러나 이 연민과 사랑, 그리고 상처에 대한 대처와 눈물 사용법은 흔히 통용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천운영의 방법들은 한층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다. 이 적극성을 더 잘 드러나기 위해 작가는 비범하거나 통념을 깨는 소재와 장소와 인물들을 소설에 호출해낸다. 동성애 코드와 게이, 그리고 일찍 죽은 아이(「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튀기(「알리의 줄넘기」), 겁탈당한 여자(「노래하는 꽃마차」), 사실과 허구를 분간하지 못하는 소설가이자 여교수(「내가 쓴 것」), 극빈에 노출되고 버려져서 비정상적으로 공격적인 자매(「후에」), 명확했던 진실조차 흐려지는 늪지대(「내가 데려다줄게」) 등 이 모든 것들이 감춰진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훌륭하게 조합된다. 소설집 전반에 걸쳐 따스하게 흐르는 ‘눈물’ 역시 다양하게 변주된다. 눈물은 때로 오줌(「그녀의 눈물 사용법」 「후에」)이거나 피와 꽃(「노래하는 꽃마차」)이고, 땀냄새와 기름 냄새(「알리의 줄넘기)로 변하기도 하고, 늪과 안개, 음악(「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이 되기도 하며, 배설물이나 호수(「백조의 호수」)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주에 호응해서 소설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에는 다양한 문체들도 큰 역할을 한다. 천운영의 기존 문체를 이어받은 치밀하고 공학적인 문장(「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내가 데려다줄게」 「내가 쓴 것」)에다 적극적으로 세계에 관여하는 대화체나 독백체(「후에」 「노래하는 꽃마차」)를 도입하기도 하고, 그 두 종류의 문체를 적절하게 혼합한 문체(「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등이 이번 소설의 다양성과 재미를 더해준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다양하고 특이한 인물과 소재 들로 인해 기존에 우리가 믿었던 정체성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소년과 소녀, 남과 여, 이성애와 동성애, 늙은이와 젊은이 등 모든 정체성이 혼종되어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소년의 눈물 사용법’ ‘사람의 눈물 사용법’ ‘우리의 눈물 사용법’으로 바꿔 읽어도 하등 무리가 없다. 그러다 결국에는 ‘나의 눈물 사용법’으로 읽을 때 더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성숙해지고 깊어진 작가 천운영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소설가 박민규가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천운영의 이번 작품집은 “이 세계의 상처가 얼마나 교묘한 것인지를. 우리의 상처가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가를. 독(毒)이 왜 독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는가”를 뛰어나게 그려내고 있어서 ‘상처가 없는 사람’(박민규 ‘추천사’)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천운영 소설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직시하게 만들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눈물 사용법’을 발견하게 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상처와 존재의 허물을 벗기 직전의 우리들은 ‘뱀처럼 뿌예지는 눈’(「내가 데려다줄게」)과 눈물로 그렁그렁해지는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아프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정말이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드물지만 세상엔 그런 류의 책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이 세계의 극·소·수·만이 그녀의 책을 읽었으면 하는 입장이다. 아니 실은, 누구도 모르게 오직 나만이 <그녀>를 읽고 싶은 마음이다. 전철에서, 또 까페에서 누군가 <천운영>을 읽고 있다면 나는 분명 질투를 느낄 것이다. 당신이 운좋게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다면 잘·알·겠·지 이런 내 마음. 그러니 협조해줘, 제발 부탁이야.

드물게,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 알 것이다, 이 세계의 상처가 얼마나 교묘한 것인지를. 우리의 상처가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가를. 독(毒)이 왜 독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는가를, 알 것이다. 독은 가장 약한 짐승에 의한, 가장 약한 짐승을 위한 유일한 무기이자 치유책이다. <천운영>이라는 유일한 글을, 그래서 나는 상처가 없는 무리를 향해 던지고 싶지 않다. 상처조차 없는, 그래서 그 자체가 커다란 상처인 이 세계 속에서 드물게, 상처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 일 없이 이 세계가 진행될수록, 아무렇지 않게 파괴되어갈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당신도 <그녀>의 글도 유일하고 유일, 무이하다. 그러니 당신도 아물고 회복해줘. 제발, 제발 부탁이야.

박민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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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천운영이라는 독(毒), 그녀의 ‘줄넘기’와 ‘눈물’ 사용법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은**니 | 2013-08-14

천운영의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읽는다. 내게는 낯선 작가인데, 오랜만에 내 블로그에 들른 작은 우주님을 통해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좋은 소설들을 찾아 읽는 감식안이 상당히 높은 수준인 그녀가 요즘 가장 애독하는 국내작가가 바로 천운영이라고 하니, 한번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풀꽃의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는 작가의 이름에서 내가 우선 떠올린 것은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의 난초였다. 까다롭게 꽃을 피워 올린 우아한 난초의 자태나 은은한 향기처럼 어쩐지 무척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씌어진 몹시도 여성스러운 작품들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아뿔싸, 몇 쪽 읽지 않고서도 이름에 기댄 어설픈 내 짐작이 빗나갔음을 나는 알아챘다. 역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또 틀린 셈이었지만, 나로서는 반가운 빗나감이었으니 유쾌한 것이기도 했다. 여성작가가 쓴 너무나 여성스러운 작품이라면 좀 뻔하고 지겨워서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런 티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누드 사진을 찍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중년의 사진사가 젊은 여인을 카메라 앞에 두고 촬영하는 장면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장들 앞에서 나는 환호작약했다.

 

배경지 위에 여자가 엎드린다. 바닥에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항아리에서 쏟아져나온 물줄기처럼 보여야 한다. 여자는 다행히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졌다. 어깨도 적당히 말랐고 목뼈도 제법 선이 난다. 엉덩이에 살이 좀 많은 게 흠이지만 각도를 잘 조절하면 괜찮겠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는 호흡을 멈춘 채 첫 셔터를 누른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피사체의 오른쪽 측면에서 내리꽂히는 텅스텐 조명. 엉덩이를 휘감았다가 재빨리 돌아가는 섬광 같은 채찍질.

어서 일어나 물을 길어. 도드라진 등뼈에 가 박히는 한줄기 붉은 선. 이 비천하고 더러운 몸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더러운 욕망아. 어김없이 후려치는 매서운 채찍질. 울어라, 소리쳐라, 절규해라. 애원하는 등뼈, 절망하는 목, 울고 있는 어깨, 순종하는 엉덩이. 그는 살점이 뜯겨나가고 피가 낭자해질 때까지 가혹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무의미하던 여자의 몸이 살아움직이기 시작한다. (10~11,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이렇게 단문으로 이어지는 속도감 있는 문장들은 숨가쁘게 읽히고 그 사이 사이에 배치해 놓은 명사어구들은 마치 빠른 속도로 흐르는 시냇물 중간에 놓인 징검돌처럼 독자의 호흡을 잡아채서 잠시 숨을 돌리게 한다. 그렇게 해서 독자는 짧은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빠른 속도에 휩쓸리거나 시냇물에 빠지는 일 없이도 이 가파른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급류의 시냇물을 무사히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솜씨 좋은 시인이 공들여 쓴 한 편의 산문시를 방불케 하는 이러한 뛰어난 문장들은 어쩌다 눈에 띄는 예외적인 게 아니다. 이 소설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도 없이 출몰한다.

 

윤성희가 그런 것처럼, 또한 박민규가 그런 것처럼, 천운영도 자기 스타일이 이미 문장에 확실하게 새겨져 있는 작가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위해 보기 드문 추천의 글을 써주면서 박민규가 대놓고 고백하고 있는 천운영에 대한 편애가 내게는 조금도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드물지만 세상엔 그런 류의 책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이 세계의 극 ∙ 소 ∙ 수 ∙ 만이 그녀의 책을 읽었으면 하는 입장이다. 아니, 실은 누구도 모르게 오직 나만이 <그녀>를 읽고 싶은 마음이다. (중략)

드물게,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 알 것이다, 이 세계의 상처가 얼마나 교묘한 것인지를. 우리의 상처가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가를. ()이 왜 독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는가를, 알 것이다. 독은 가장 약한 짐승에 의한, 가장 약한 짐승을 위한 유일한 무기이자 치유책이다. <천운영>이라는 유일한 글을, 그래서 나는 상처가 없는 무리를 향해 던지고 싶지 않다. (중략) 당신도 <그녀>의 글도 유일하고 유일, 무이하다. 그러니 당신도 아물고 회복해줘. 제발, 부탁이야. (뒷표지, 박민규의 추천사)

 

동료 소설가로서의 애정이 담뿍 담겨 있는 박민규의 이러한 간곡한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 소설집에 수록된 천운영의 소설들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마음이 따스해지지 않을 수 없다. 뭔가 마음에 옹이가 져서 개운치 못한 심정이거나 세상 사는 일에 큰 상처를 받고 채 아물지 못한 흉터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따뜻한 위안을 받고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의 주인공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실결핍은 그 모양과 크기에 있어서는 제법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상실과 결핍의 내용과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따스한 결말은, 자신이 창조해낸 소설 속 주인공을 향해, 또한 그 소설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을 향해, 작가 천운영이 건네는 악수이자 포옹이다.

 

뚜렷하게 나뉘어진 채 각자의 세계를 고집하던 의 단절된 관계는, ‘연대라고 달리 부를 수 있는 이 악수를 통해서 우리로 통합되는 계기를 얻는다. 3대가 함께 살고 있지만 산산이 조각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혼혈 가족의 모습을 혼혈아 손녀 알리의 따스한 시각으로 그려낸 단편 「알리의 줄넘기」가 보여주고 있는 결말이 바로 그렇다. 혼혈아에게 적대적인 또래녀석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체력단련의 목적으로 시작된 알리의 줄넘기가 이제 여러 사람과 더불어 함께 즐기는 놀이로 변모할 것이라는 예감에, 독자의 마음은 훈훈해진다.

 

나는 장롱문을 활짝 열어둔 채 밖으로 나왔다. 나는 지금 줄넘기를 사러 간다. 손잡이가 나무로 된 줄넘기를 사야지. 그래야 이름을 적어넣을 수 있으니까.

요즘에 내가 연습하고 있는 것은 솔개뛰기다. 이단뛰기는 성공했지만, 이어서 엇갈렸다 풀기를 반복하는 것이 어려워 솔개뛰기를 완성시킬 수가 없다. 언제쯤 슈욱슉 바람을 가르는 솔개의 날갯짓 소리가 날 것인가. 솔개뛰기를 하고 나면 삼단뛰기와 사단뛰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블더치를 하려면 두 개의 줄넘기와 적어도 세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줄넘기를 하나 더 사러 가는 것이다. 줄넘기를 사면 손잡이에 더블더치를 할 우리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넣어야지. 나는 지금 우리를 만나러 간다. (102~103, 「알리의 줄넘기」)

 

를 향해 내민 의 손이 우리의 두 손으로 서로 맞잡게 되는 이 연대의 악수는 자연스럽게 포옹으로 이어지는데, 그 포옹의 이름이 사랑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포옹에 의해, 자포자기와 자기연민에 빠져 절망 속에서 흘리는 차가운 눈물은 자신의 재발견과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따스한 눈물로 질적인 변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겠다. 이 책의 표제작인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어린 동생에게 빙의된 채 삼십 년을 살아온 한 젊은 여인이 들려주는 어두운 가족사를 통해서 이러한 눈물의 연금술을 보여준다. 나머지 작품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 역시 이러한 악수(또는 줄넘기 사용법)와 포옹(또는 눈물 사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작가 천운영이 그녀의 줄넘기눈물사용법을 통해서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따스하고 소망스러운 세계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때 되면 허물을 벗는 뱀처럼 우리도 자신의 허물을 벗어야만이 이러한 연대와 사랑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허물은 뱀에게는 단지 살갗의 껍질에 불과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살갗의 껍질(, 신분이나 지위)뿐만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과오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허물 벗기는 뱀의 경우보다 훨씬 더 힘겨운 일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허물 벗기를 계속 시도해야만 한다. 그것이 진실에 이르는 길이며, 그래서 마침내는 사랑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인상적인 단편 「내가 데려다줄게」에서, 젊은 여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일이 권력형 스캔들로 번져 학교에서 궁지에 몰리게 된 한 사내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란, 그러니 자살이 아니라 허물 벗기일 수밖에 없다. 사내에게 그걸 가르쳐주는 것은 어린 계집애이다.

 

계집애가 사내 손에 뱀허물을 올려놓았다. 새끼 뱀의 첫 허물은 거칠거칠하고 바싹 메말라 있었다. 사내와 계집애는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뱀허물을 들여다보았다. 계집애는 삼각형 모양의 머리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아저씨, 그거 알아? 뱀들이 허물벗을 때가 되면 눈이 뿌옇게 흐려져. 안개낀 것처럼.

넌 어떻게 그런 걸 아니?

맨날맨날 보는 게 뱀인걸 뭐. 허물벗을 때가 되면 늪으로 오거든. 할머니가 그러는데 몸을 말려야 허물이 잘 벗어진대. 그래서 며칠 동안 물 한모금 안 마시면서 몸에 물기를 없애는 거야. 그러니까 얼마나 목이 마르겠어. 허물 다 벗으면 얼른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늪으로 온다는 거지.

뱀들은 허물을 벗기 위해 흐린 안개 눈을 하고 늪으로 온다. 사내는 손에 든 허물을 보며 되뇌었다. (115, 「내가 데려다줄게」)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질책을 피해 차를 달리던 사내가 국도에서 맞닥뜨린 안개 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멈추게 된 곳이 거대한 늪가였던 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사내는 거기서 충동적으로 짧은 유서를 쓰고 옷을 차에 다 벗어놓은 채 늪으로 걸어 들어가 즉흥적인 자살을 시도하는데, 마침 그때 그 늪에서 물질을 하던 여인에 의해서 구조된다. 그리고 위 인용문에 보이는 것처럼, 그 집에 사는 당돌한 어린 계집애의 가르침에 맞닥뜨리면서 어렴풋이 자신의 과오를 되새기게 된다. 이후 자신을 구해준 여인에게 느끼는 욕망의 은밀한 진퇴와 폭력적인 파국을 거치면서, 사내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가둬두었던 진실의 모습을 마침내 보게 된다. 그 동안 스스로는 부인했던 자신의 허물, 즉 그가 젊은 여제자에게 한 일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그녀를 농락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내는 다시 늪 앞에 서서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사내의 발목을 휘감을 뱀들을. 그리하여 그 뱀들이 자신의 더 큰 허물을 벗겨주기를.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벗고 새롭게 거듭나고자 하는 갱생의 몸짓이다. 맹독을 가진 뱀들에게 물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사내가 무릅쓰는 것은, 아니 오히려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며 기다리는 것은, 앞서 박민규가 말한 것처럼 독()은 독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뱀들의 독에 의해서, 사내는 마침내 자신의 허물을 벗고, 자신이 젊은 여제자에게 주었던 상처에 스며든 독까지도 해독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겠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천운영의 소설들은 그 자체가 독()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독은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이자 치유책이다. 세상과 맞서 싸울 때는, 그 독은 우리의 손이 함께 맞잡고 돌리는 줄넘기가 되어 세상의 부정과 부패와 불평등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그 독이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치료하는 데 쓰일 때는, 따스한 눈물이 되어서, 늙고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잊혀지고 가난한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그게 너무나 아름답고 따스해서 나는 기꺼이 그녀의 독을 받는다.

 

내 친구 작은 우주님이 작가 천운영에게 빠진 이유를 이 책 『그녀의 눈물 사용법』 한 권만 읽고서도 충분히 알고도 남겠다. 그러나 어찌하랴, 천운영의 독은 한번 물리고 나면 그 어떤 해독제를 쓰더라도 쉽사리 빠져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인 것을. 그 강력한 중독성을 이기지 못해, 지금 내 손에는 천운영의 장편소설 『생강』이 이미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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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상처, 환상, 욕망 그리고 사랑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트*티 | 2008-05-27
 그녀의 소설은 몽환적이다. 그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꿈을 꾸고 있거나 환상을 겪는 듯 하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의 그녀는 일곱 살 때 미숙아로 태어났다가 장롱 속에서 죽은 남동생의 원혼과 함께 성장한다. 「내가 데려다 줄께」에서는 제자와의 성 스캔들로 인해 자살을 하러 온 남자가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환상을 경험한다.「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의 아내와 젊은 소년의 불륜을 상상하던 사진작가도 소년으로 인해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성숙을 겪는다. 「알리의 줄넘기」혼혈 소녀 알리는 남자들에게 항상 상처 받으면서도 사랑을 되풀이하는 고모와 흑인군인과 결혼해서 혼혈아를 낳은 할머니 제니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치유하며 받아들인다. 「노래하는 꽃마차」의 그녀 또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오빠를 비롯한 수많은 남자들로 인해 겁탈 당하면서도 자신만의 노래와 한 남자의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서 상처를 치유 받는다.


 그들은 모두 상처투성이이거나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 사람들이다.

「내가 데려다 줄께」의 남자는 제자와 성관계를 맺고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권력, 지위, 자부심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는 늪 속에서 만난 계집애와 여자, 할머니에게서 상처를 치유 받고 다시 늪으로 빠져 든다. 「내가 쓴 것」의 그녀는 밀회를 나누던 10살 연하의 청년에게서 버림을 받는,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는‘학생들에게 조롱을 받는 퇴색한 여교수’이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의 그녀는 불쌍하게 죽은 남동생으로 인해 상처받은 가족들 속에서 눈물이 마른 삶을 살아간다. 남동생의 천도제를 지냄으로 인해 그녀와 함께 했던 남동생의 원혼은 사라지며 가족들도 상처를 치유 받은 듯 하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의 사진작가도 아내의 젊음으로 인해 상처받으며, 「알리의 줄넘기」의 알리의 고모는 남자들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기를 되풀이 한다.


 상처받고 무언가 결함이 있는 그녀 소설 속의 인물들은 무엇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극복할까?  그들은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치유 받는다. 「알리의 줄넘기」의 고모가 그토록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남자에게 버림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래하는 꽃마차」의 그녀도 오빠에게 겁탈당하고 숱한 남성에게 성적으로 희롱당하면서도 결국 한 남자와의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치유 받는다. 남동생의 원혼이 함께 해서 오히려 다행이었던 「그녀의 눈물 사용법」의 그녀는 천도제로 남동생이 떠난 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게 되며 여자친구와의 사랑으로 눈물의 사용법과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랑에 상처 받으면서도 결국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치유 받는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무언가 나도 깊은 늪 속에 빠진 듯이 허우적거렸다. 모호함과 환상,  현실과는 완전 동떨어진 그녀의 소설 속 인물과 문체 속에서 멍하니 나 또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천운영,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좁은 문학적 식견으로 인해 아직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녀의 소설 속에서 나약하면서도 강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사랑으로 인해 그 모든 상처를 치유 받으며 강인해졌음을 나는 보았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나에게 친숙하게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지만, 나도 언젠가 성숙함과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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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 그녀의 상처 치유법.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 2008-04-16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 그녀의 상처 치유법.


천운영의 세 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인간의 감춰진 혹은 억압된 욕망들을 풀어낸다.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이라는 갈등의 문학에 충실한 서사다. 그녀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8개의 단편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욕망’으로 보여준다. 비극적이고 우울한 서사전개와는 달리 그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성찰을 통한 성숙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천운영의 소설답게 그 결말이 밝거나 희망적이지는 않다. 다만 불편할 정도로 섬세하고 예리하게 상처를 헤집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결국은 그 어떤 치유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쓴 것」은 소설에서 자기가 상처를 주었던 모델들에게 사죄하며 “세상에 진 빚을 갚는(p.191)” 작가의 이야기다. 그녀는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켜 일종의 자기모독을 함으로써, 또 하나의 욕망인 소설을 탄생시킨다. 또한 늪에서 허물을 벗는 뱀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내가 데려다 줄게」는 자살을 하기 위해 늪을 찾은 한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의 사진사는 한 소년의 젊은 육체에서 부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잃게 된다. 그러나 소년이 찍은 노인의 누드사진에서 아름다움과 추함, 늙음과 젊음의 경계를 깨고 자신의 욕망과 화해하게 된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도 또 하나의 상처와 치유법이 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여자가 진정한 눈물 사용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역시 치유법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처음 천운영이란 작가를 만난 것은 그녀의 첫 번째 소설집 <바늘>에서였다. 그때 그녀는 약하지만 가장 강한 무기인 ‘바늘’로 사정없이 마음을 난도질했다. 바늘처럼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과 도발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천운영의 여운이 꽤 오래가지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천운영’만의 색깔과 향기가 묻어난다.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또다시 그녀의 소설을 마주하게 하는 이유다. 입이 까칠까칠하다.


인식하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억압된 욕망과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감춰져있을 내 내면의 욕망을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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