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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7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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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9쪽 | 388g | 153*224*20mm |
ISBN13 | 9788936437022 |
ISBN10 | 893643702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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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표지가 마음에 쏙 드는 책, 공선옥씨의 소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색채와 잘 어울린다. 좋은 책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도 좋겠다.
은희경, 신경숙, 조경란 등 40-50대의 여성 작가들이 한 흐름을 이루고 그 약간 옆에 공지영이 자리하고 있다면, 공선옥은 다른 여성 작가들과 떨어져 있어서 자신만의 흐름을 갖고 있는 작가 아닐까. 사실 은희경, 공지영씨의 작품은 읽어본 게 하나도 없고 그나마 은희경씨는 작가 본인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공지영씨는 여러 인터뷰 기사를 읽어본 적 있어서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은 아는 정도이다.
공선옥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내 생의 알리바이'라는, 98년 쯤에 나왔던 소설집이 처음이었다. 둘 다 소설집이고, 8편 이상의 단편이 실려 있어서 조금 많은 축에 속하는 것 같고, 주로 여성, 특히 아이가 있는 여성, 특히 이혼해 혼자 살거나 재혼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점이 비슷하다.
이렇게 동일한 배경, 동일한 성격의 인물을 자주 등장시켜 소설을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단 서사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세계와 인물에 대한 애정이 그 어려움의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참신함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익숙함 속에 삶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담아내야 한다. 또, 말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환상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은 순전히 '이야기'로만 독자를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정리하려니까 어렵다. 내가 소설 이론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다고.
꽃 진 자리
영희는 언제 우는가
도넛과 토마토
아무도 모르는 가을
명랑한 밤길
빗속에서
언덕 너머 눈구름
비오는 달밤
79년의 아이
지독한 우정
폐경 전야
별이 총총한 언덕
각각의 단편의 길이가 얼추 비슷비슷하다. 그리고 모두 문학 잡지에 수록된 것들이다.
그렇지만 몇 몇 작품들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 새로운 계층의 인물들이 주목받는다. '도넛과 토마토'에서 '도넛'은 전 남편과 결혼한 베트남 처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한국 땅에서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남편의 전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랑한 밤길'의 주인공은 치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도시로 떠나지 못한 시골 간호사이다. 배제된 20대의 20%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지독한 우정'에서는 뇌병변(뇌성마비가 지금은 '뇌병변'으로 바뀌었다) 장애인 엄마와 그녀의 딸,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엄마의 남자친구, 마찬가지로 뇌병변 장애인인 엄마의 친구가 등장한다.
작가의 장편 소설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장편은 단편보다 제약이 덜할 것이고, 작가 자신의 세계를 더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한 환상적인 세계나 사건이 마구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선옥씨의 소설을 아쉬워한다거나, 바뀌길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한국 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아주 소중한 작가이다. 어느 블로거는 "그녀만큼 가난을 온 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무척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여성과 가난, 두 가지 주제만으로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쓸 이야기 거리는 많다. 그렇지만 두 가지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작가나 작품은 보기 드물다.
그녀는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고, 또한 섣불리 고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위로 문학이라고 보기에도 어렵고, 프로 문학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나는 그녀가 좀 더 시원시원하게 까발려내어 고발해주기를 바라는 편이다. 분명 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절실한 것은 맞다. 그리고 한 때 삶의 극심한 고통을 체험한 이들이 다른 이들을 위로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볼 때 위로는 고통의 정도를 덜거나 체념과 포기를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리라는 것은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삶의 고통들을 제도적, 정치적 변화로 해결할 수 있다. 그 변화는 다수의 열망이 정치적 행위로 이어질 때 가능하다. 그 열망을 불러내는 것을 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다.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군요, 근데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요. 누가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살지를 못할까요. (꽃 진 자리, 19쪽)
그러면 이제 토마토가 열리는 한 계절 동안은 아무리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라 하더라도 그에게 삶의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말하자면 공원 잔디밭을 파헤쳐 토마토를 심으려고 하는 것은 그도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토마토밭을 일구는 것으로 그는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도넛과 토마토, 70쪽)
강 건너 설악산으로 가는 도로에 차들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강가의 풀벌레 소리, 들국화 향기를 알 리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지나가는 강가에 '우라지게도'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아는 가을은 이 강가에 있지 않고 설악산에 있을 터이므로. (아무도 모르는 가을, 99쪽)
촌에 살아서 슬픈 게 아니라, 촌에 살면 어떤 것도 돈을 만들 수가 없어서 슬프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언덕 너머 눈구름, 166쪽)
혼자 사는 사람에게 텔레비전은 종종 유용한 친구가 된다. 친구를 불러내듯 텔레비전을 켠다. (폐경 전야, 240쪽)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관계냐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서로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일 것이다. 나는 내 아이와 좋은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폐경 전야, 257쪽)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공선옥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땐 공선옥 글의 참맛을 알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될 만큼 이 작품집은 정말 보글보글 잘 지진 시골 된장찌개 맛 같다. 지지고 볶는 우리네 삶이 건더기 째, 진하고 못 생긴 된장 그 모습 그대로 들어있다. 가끔은 지겹고도 지겨운 악다구니까지도. 그런 게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공선옥의 이 글에는 사치와 허영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 작품집에선 삶이 애잔하게 묻어나기도 하고 또 우리네 삶의 진한 슬픔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온다. 이런 게 삶의 연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운명으로 짝지어진 가족 구성원들의 정(情)과 일상, 그리고 심지어는 심한 투쟁까지도 우리 일상을 어찌나 구성지고 찰지게 잘 표현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깔끔하고 단아한 글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선옥의 글에는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지겹도록(!) 더 잘 표현되어 있다.
명랑한 밤길을 비롯 모두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읽으면 읽을수록 대도시의 뒷골목 어느 한 지붕 낮은 담장 안에서 흘러나올 만한 얘기, 읍내 어느 한 귀퉁이에서 벌어질만한 얘기, 한적한 곳에서 낯모르게 벌어질만한 자잘한 일상 얘기 등이 들어있다. 숭악하게 째리고 소리 지르는 노인부터 되바라질 대로 되바라진 소녀까지 이기적이고 평범한 우리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생각만 해도 심란한 집으로 재깍재깍 귀가하고 싶진 않았다. 도대체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을 가지고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칼같이 퇴근해준다는 것 자체가 굴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저 그들, 돈 벌어다주는 사람의 노고 같은 거야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안하무인으로 주는 돈은 잘도 받아먹는 사람들한테, 그나마 싫은 소리 안하고 돈 벌어다주는 것으로 내 의무는 다한 거다,라고 나를 두둔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가족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이 여전히 따스하게 흐르고 있다.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숨 쉬고 있기에 어쩌면 우리의 삶은 정말 살아볼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울어야 할, 울고 싶은 아버지는 딸에게 울지 말라고 달랜다.
‘우냐? 울지 마라 악아, 울지 마. 애비 혼자도 추석 잘 쇤다. 울지 마. 악아, 시방 달 뜬다. 울지 말고 달 보거라 이. 달 보고 울지 마라, 악아. 영석이도 하루종일 울다가 이제 달 보고 안 운다. 너도 달 보거라. 달 보고 울지 마라.’
아, 우리 인생은 왜 이렇게 슬픈 거냐 말이다.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 싸하고 눈물이 절로 흐르는 거냐고. 왜 우리는 이렇게 나만 중요한 걸까. 왜 정상인(!)은 불륜도 사랑이라면서, 병신이 사랑해서 육갑하면 안 되냐고.
“응, 웬 병신들이 지들도 사람이라고 육갑을 하고 있대나 뭐래나. 나 원 참, 둘이 보듬고 와들와들 떨고 있드만.”
‘사랑, 그까짓 게 다 뭐야, 사랑 없으면 어때……’라고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아픈 건 정작 사랑 때문이리라. 사랑은 그래도 이렇게 힘들고 슬픈 일상에 작은 빛이고 삶에 대한 희망 같은 거니까. 이렇듯 장애아 엄마가 하는 사랑을 지켜보며 딸은 때론 기가 막히고 때론 지긋지긋하다. 그러면서도 그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준비하는 딸, 이런 지겹고 질긴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지독한 우정’인지도 모른다고 공선옥은 그리고 있다.
어쩌면 가족이란 건 떼어낼 수 없는 수족과 같아서 몸에 달려 있고 붙어 있을 땐 잘 모르고 함부로 대하다가 어느 한 기관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치유해야 하면서도 그 과정 동안 지독히 미워하고 투쟁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비뚤어진 관계는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가 힘들다. 무능력하면 무책임하게까지 되는 지독한 소용돌이 속에 갇혀 버리는 가장, 그 가장을 어찌 할 수 없는 가족의 엄마. 이런 마음, 저런 마음 다 내다버리자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결국은 또 다시 원점. 이게 바로 공선옥이 부끄러워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남루한 살림살이인 것이다.
공선옥,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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