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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ltimate Voices : 4CDs Of The Greatest Singers!

Whitney Houston, John Legend, Alicia Keys, Sade, Dido, Shakira, Tom Odell

[ 4CD ]
Whitney Houston, John Legend, Christina Aguilera, Alicia Keys, Justin Timberlake 노래 외 30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6년 05월 2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8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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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Voices : 4CDs Of The Greatest Singer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05월 20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1
  • 01 I Have Nothing - Whitney Houston
  • 02 All Of Me - John Legend
  • 03 Fighter - Christina Aguilera
  • 04 Fallin' - Alicia Keys
  • 05 Mirrors (Radio Edit) - Justin Timberlake
  • 06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 George Michael & Aretha Franklin
  • 07 Think Twice - Celine Dion
  • 08 No Ordinary Love - Sade
  • 09 Here And Now - Luther Vandross
  • 10 Everytime - Britney Spears
  • 11 I Want It That Way - Backstreet Boys
  • 12 I Believe I Can Fly - R. Kelly
  • 13 Anything For You - Gloria Estefan
  • 14 True Colours - Cyndi Lauper
  • 15 I Don't Believe You - P!Nk
  • 16 These Words - Natasha Bedingfield
  • 17 Un-Break My Heart - Toni Braxton
  • 18 The Power Of Love - Jennifer Rush
CD2
  • 01 Blame It On Me - George Ezra
  • 02 Ghost - Ella Henderson
  • 03 Drops Of Jupiter - Train
  • 04 White Flag - Dido
  • 05 If You Could See Me Now - The Script
  • 06 Heartbeat Song - Kelly Clarkson
  • 07 Story Of My Life - One Direction
  • 08 Poison - Rita Ora
  • 09 Beautiful To Me - Olly Murs
  • 10 No Air Duet With Chris Brown - Jordin Sparks Feat. Chris Brown
  • 11 Beneath Your Beautiful - Labrinth Feat. Emeli Sand?
  • 12 Stole - Kelly Rowland
  • 13 Underneath Your Clothes - Shakira
  • 14 Long Way Down - Tom Odell
  • 15 Better In Time - Leona Lewis
  • 16 She Used To Be Mine - Sara Bareilles
  • 17 Only Love Can Hurt Like This - Paloma Faith
  • 18 Wrecking Ball - Miley Cyrus
CD3
  • 01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 Fugees
  • 02 Marilyn Monroe - Pharrell Williams
  • 03 Sexual Healing - Marvin Gaye
  • 04 Show You The Way To Go - The Jacksons
  • 05 Lovely Day - Bill Withers
  • 06 Summer Breeze (Part 1) - The Isley Brothers
  • 07 Suddenly - Billy Ocean
  • 08 The Color Of Love - Boyz II Men
  • 09 Climax - Usher
  • 10 Unpretty - TLC
  • 11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 Michael Bolton
  • 12 Me And Mrs Jones - Billy Paul
  • 13 If You Don't Know Me By Now - Harold Melvin & The Blue Notes
  • 14 Skylark - Aretha Franklin
  • 15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 - Nina Simone
  • 16 I'm A Fool To Want You - Billie Holiday
  • 17 Piece Of My Heart - Erma Franklin
  • 18 Hold Me (Just A Little Longer Tonight) - Etta James
CD4
  • 01 Love Me Tender - Elvis Presley
  • 02 When You're Smiling (The Whole World Smiles With You) - Frank Sinatra
  • 03 Don't Stop Believin' - Journey
  • 04 Total Eclipse Of The Heart - Bonnie Tyler
  • 05 Two Out Of Three Ain't Bad - Meat Loaf
  • 06 Have I Told You Lately - Van Morrison
  • 07 Moon River - Andy Williams
  • 08 Here You Come Again - Dolly Parton
  • 09 The Way You Look Tonight - Tony Bennett
  • 10 It Ain't Me Babe - Johnny Cash
  • 11 Mandy - Barry Manilow
  • 12 Begin The Beguine - Julio Iglesias
  • 13 I Only Have Eyes For You - Art Garfunkel
  • 14 Without You - Harry Nilsson
  • 15 Hallelujah - Jeff Buckley
  • 16 Crying - Roy Orbison
  • 17 Land Of The Sea And Sun - Harry Belafonte
  • 18 Famous Blue Raincoat - Leonard Cohen
  • 19 Move Over Darling - Doris Day
  • 20 All By Myself - Eric Carmen

아티스트 소개 (35명)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1980, 1990년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던 메탈의 포화를 뚫고 스탠다드 팝 시장을 개척해 낸 대표적인 ’디바’ 뮤지션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알앤비 가수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었으며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친척이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대형 가수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그 실력을 뽐냈다.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휘트니는 10대의 나이에 이미 모델, 배우, 가수의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샤카 칸(Chaka Khan) 등의 백업보컬로 또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는 1982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폴 자바라(Paul Zabara)의 ’Eternal love’라는 곡에 보조 보컬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정식 음반 녹음에 참여한다. 이듬해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했고,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레코드사는 데뷔 앨범에 27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85년 데뷔앨범 < Whitney Houston >은 흑인 디바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앨범은 14주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 중 가장 오랜 기간 1위에 머무른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2,3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이루어내며 데뷔 앨범 하나로 팝계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하게 된다. 앨범 내에서는 ’Saving all my love for you’,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조지 벤슨의 곡 리메이크)의 세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에 오르고, 앨범의 경이적인 성공으로 86년 그래미와, 86,8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차지한다. 1987년 그녀는 두 번째 앨범 < Whitney >를 통해 전작의 인기를 이어간다. 전작보다 비트감을 더한 이 앨범 역시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발매 첫 주에 미국과 영국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르는데 팝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기록이었다. 앨범은 차트 정상에 11주간 머물렀으며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 팔려나갔다. 싱글들의 인기도 대단해서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 ’Didn’t we almost have it all’,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 네 곡이 연속해서 차트 정상을 밟으며 이전 앨범부터 7개의 싱글이 연속해서 정상을 밟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앨범으로 또다시 1988년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역시 88년, 89년의 아메리칸 뮤직어워드를 수상한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같은 정통 소울 아티스트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그녀이지만 1,2집에서 보여준 음악은 대중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흑, 백의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이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1990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I’m Your Baby Tonight >에서는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정통 소울 음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루떠 반데로스(Luther Vandross)등과 함께 작업하는 등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했던 이 앨범은 역시 이전 앨범들만큼의 성공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I’m your baby tonight’, ’All the man that I need’가 1위에 올랐고, 앨범은 전 세계 1,2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그 인기는 대단했다. 세 장의 정규 앨범 이후 그녀는 영화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세 장의 사운드 트랙을 연속 발표한다. 시작은 < 보디가드 >였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보디가드’의 사운드 트랙에서 6곡을 노래했고, 이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경이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낸다. 첫 싱글 ’I will always love you’(돌리 파튼의 곡을 리메이크)는 차트 정상에 14주간 머물렀으며, 앨범은 20주간 1위를 지켰고, 세계적으로 3,5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4년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8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5년 휘트니 휴스턴은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자신이 주연한 < Waiting for Exhale >의 사운드 트랙에 3곡을 수록하면서 영화와 앨범의 성공에 기여한다. 이 앨범은 노장 흑인 여가수들과 신예 흑인 여가수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졌으며,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그래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6년 그녀는 영화 < The Preacher’s Wife >에서 주연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다. 14곡을 자신이 직접 맡은 이 앨범은 가스펠 위주의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대중성보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어 앨범판매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영화와 사운드 트랙에만 전념해왔던 그녀는 98년 8년 만에 정규앨범 < My Love Is Your Love >을 발표한다.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에 충실함을 기했던 이 앨범은 1,00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앨범 내에는 영화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의 듀엣 곡 ’When you believe’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그녀는 자신의 15년 음악생활을 결산하는 베스트 앨범 < The Greatest Hits >를 발표한다. 조지 마이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의 듀엣 곡 등 네 곡의 신곡도 포함하고 있는 이 앨범은 발라드 곡들만을 모은 < Cool Down >과 댄스곡 및 댄스 리믹스 곡들을 모은 < Throw Down > 두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R&B, 소울 가수 R&B, 소울 가수
노래 : Christina Aguilera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 영미의 팝 음악은 그간 국내 대중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아무래도 우리 가요보다 수준이 높아 팝 음악만을 듣는 마니아들도 폭넓게 존재해 있고 사실 배울 것도 많다. 팝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음악시장에서 나름대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대 중심의 댄스음악에 몰려 있는 국내 음악계에 귀감이 되어왔다. 이 점은 한편으로 미국 팝 음악은 결코 우리처럼 틴에이저 지향의 댄스음악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국에도 최근 10대 댄스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음악계의 교사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도리어 한국 음악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있는 곡 ‘Genie in a bottle’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라는 이름의 여가수다. 올해 나이 겨우 18살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뛰어난 미모를 소유해 노래 이상으로 가수 본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티나를 출세시킨 곡 ‘Genie in a bottle’은 물론 댄스음악이다. 이러한 10대 여가수 선풍은 벌써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상반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소녀가수 얘기로 팝계가 한바탕 떠들썩했다. 크리스티나처럼 미모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7살이며 역시 댄스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크리스티나와 브리트니는 모두 올란도 지역의 TV 쇼프로 ‘미키 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다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미국 음반업계의 스타시스템이 그간의 록 그룹이나 성인 여가수 중심에서 ‘미모의 틴에이저 여가수’를 키우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근래 국내 가요계의 모습과 비슷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아무리 어린 여가수를 뽑아내 홍보와 마케팅으로 스타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본’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 기본이란 바로 가수의 필요조건인 가창력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확실히 증명한다. 얼핏 금발의 미모라서 비디오만 믿고 내보낸 것 같지만 실은 나이답지 않게 노래를 잘한다. ‘Genie in a bottle’외에 그녀의 데뷔작에 수록된 곡 ‘I turn to you’ ‘So emotional’ ‘Reflection’ 등은 기성 가수가 들어도 인정할 정도의 노래 실력이다. 우리의 어린 여가수처럼 듣기가 전혀 거북하지 않다. 특히 발라드 ‘I turn to you’는 감정처리마저 아주 능란하다. 어린 백인 여가수치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흑인 리듬 앤 블루스의 소화력이 뛰어나다. 크리스티나의 포부는 감각이나 앳된 외모를 내세운 하이틴 스타가 아니라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디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반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팝계에 어린 여가수 붐이 일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같거나 또는 앞서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200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핵심부문인 ‘올해의 곡’(Song of the year)과 ‘최우수신인’상을 포함해 ‘여성 R&B 보컬’ ‘R&B 앨범’ ‘R&B 송’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뉴 밀레니엄 초반의 R&B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번(Urban) R&B라고 단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고유상표의 음악을 들려준다. 귀에 잘 들리는 피아노 멜로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소울 식의 고전적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이며, 이 때문에 1970년대 여성 소울의 거성인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재래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복고형 R&B라고 하기보다는 거기에다 현대적 힙합 분위기를 삼투한 최신 스타일을 부각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반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블루스와 재즈에 뿌리를 둔 음악을 현대적 창구로 전달하는 셈인데 실제로 피아노의 선율, 1970년대 풍의 소울 창법, 세련된 힙합 분위기가 어울린 그녀의 ‘모던한’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는 2001년에 발표되어 화려히 인기차트를 누볐다. 미국 뉴욕 토박이로 1982년에 태어난 앨리샤 키스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자신의 미래분야로 삼아 맨하탄의 퍼포먼스 아트 스쿨(Performance Art School)에서 합창을 훈련했고 10대 내내 피아노교습에 열중한다. 이 합창과 피아노는 훗날 데뷔 앨범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피아노 외의 다른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 편곡 등 음악작업 전반에 걸친 실력과 감각을 쌓았다. 고교를 졸업한 16살에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학업을 도중 포기했고 대신 1998년 명문 레코드사인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다. 아리스타 사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에 의해 픽업된 관계로, 그가 1999년 아리스타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 제이(J)를 출범시키자 앨리샤도 그를 따라 제이 레코드사로 적을 옮기게 된다. 19살이던 2001년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은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자신이 프로듀스한 첫 싱글 ‘Fallin’’은 전미차트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각별한 신구(新舊)결합형 음악은 시장 뿐 아니라 마침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그리고 그래미상이라는 공인 절차마저 거뜬히 통과했다.
노래 : Justin Timberlake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틴팝 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밴드 중 하나인 엔싱크(Nsync)의 프론트맨이다. 게다가 지난 2002년에는 솔로 데뷔작 < Justified >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활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룹과 솔로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험에 도전한 것이다. 1981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지방에서 출생한 저스틴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과 함께 어린 시절 디즈니 채널의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면서 ‘엔터테이너’로써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96년에 엔싱크에 참여했고, 2년 뒤인 1998년에 엔싱크의 첫 음반 < ’Nsync >가 발표되었다. 데뷔 음반에서는 ‘I want you back’가 준(準)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발표된 2집 < No Strings Attached >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얻었다. ‘Bye bye bye’, ’It’s gonna be me’ 등의 박진감 넘치는 댄스곡들은 메가 히트를 달성하였고, 음반은 2주일만에 더블 플래티넘을 획득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틴에이저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가공할 만한 엔싱크의 파워는 당시 인기 정상에 올라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Bakcstreet Boys)를 차츰 뒷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저스틴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3집 < Celebrity >(2001년)부터. 작곡가로써, 공동 프로듀서로써 저스틴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첫 싱글이었던 ’Pop’, ‘Celebrity’, ‘Gone’등의 주요 곡들을 포함한 7곡이 저스틴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다섯 곡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그러나 엔싱크는 어디까지나 풍선껌처럼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10대들의 버블검 밴드였다. 슈퍼급 보이밴드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가면서 엔싱크도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었다. 특히 독립을 꿈꾸던 저스틴에게 틴에이저들의 트렌드를 지향해야하는 보이밴드에서 자신의 음악적 포부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저스틴은 솔로로 나섰다. 그 스스로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첫 솔로 음반 < Justified >는 < Celebrity >에서 보여주었던 재능을 한층 발전시켜 아티스트로써의 가능성 또한 내비친 작품이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넵튠스(The Neptunes)와 팀발랜드(Timbaland), 그리고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의 음반 작업 참여 또한 데뷔 음반의 퀄리티를 높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 이에 힘입어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은 2002년을 빛낸 음반 중 하나로 저스틴 팀벌레이크의 < Justified >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 문제는 연령층이다. 저스틴의 음악은 다분히 십대 후반과 이십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팬 층은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틴에이저들이기 때문이다. < 타임 키즈 매거진 > 등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 ‘보이밴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어렵다. 대형 아티스트로 도약하려하는 저스틴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팬 연령 스펙트럼의 확대이다.
노래 : Aretha Franklin (아레사 프랭클린)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궁금중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수는 누구였는가? 많은 음악팬들이 먼저 프랭크 시내트라 또는 앨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릴 것이다. 신세대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 대중음악계는 거의 그 주인공을 흑인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 낙점한 상황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 타임 >이 선정한 ‘2...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궁금중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수는 누구였는가? 많은 음악팬들이 먼저 프랭크 시내트라 또는 앨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릴 것이다. 신세대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 대중음악계는 거의 그 주인공을 흑인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 낙점한 상황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 타임 >이 선정한 ‘20세기 문화예술인 20인’을 보자. 여기에는 대중음악인 넷이 포함되었는데 그들은 프랭크 시내트라, 비틀즈, 밥 딜런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이었다. # 20세기는 왜 아레사 프랭클린인가? 놀라운 사실은 로큰롤의 황제라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자타가 공인하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빠졌다는 점이다. 두 대중음악사의 거인은 누가 봐도 아레사 프랭클린에 비해서는 대중적 지명도나 후대의 영향력 측면에서 앞선다. 만약 흑인 음악인 한 사람을 꼽았어야 했어도 그 주인공은 마이클 잭슨이 되어야 당연하다. 그런데 왜 아레사 프랭클린인가? 아레사 프랭클린이 명단에 오른 이유는 마이클 잭슨을 누른 ‘흑인의 대표성’ 때문으로만 볼 수 없다. 흑백을 떠나서 팝 음악계 전체를 진동시킨 ‘경이로운 가창력’ 때문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42년생 미국 멤피스에서 태어나 1960년대말 스타덤에 오른 왕년의 가수지만 지금도 노래하면 음악관계자들은 만장일치로 그녀를 거명한다. 얼마나 노래를 잘하길래 그런가.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가 1967년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의 지원 아래 어틀랜틱 음반사에서 처음 앨범을 취입했을 때 반주를 해준 사람들. 이른바 세션맨들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솜씨에 그만 넋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이런 환상적인 레코딩에 내가 참여한 것이 영광’이라며 어울려 춤을 췄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유선방송국VH원이 주최한 ‘디바스 라이브’(음반으로도 나왔다) 공연에서는 관람객 중 한 사람이었던 여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가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아레사를 보기 전에 난 스타에 반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난 홀린 기분이다. 아레사가 나한테 ‘옷이 멋져요’ 하길래 난 주저없이 ‘가지세요’라고 했다. 발가벗고 여기를 나가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녀는 옷을 가질만하다!” 지난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은 다시 한번 천부적인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혼을 뺐다. 그녀는 시상식장에서 노래부르기로 돼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병으로 불참하게 되자 갑작스럽게 대타로 뛰게 되었다. 뒷무대에서 불과 몇분 연습하고 나서 그녀는 거뜬하게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불렀다. 더욱이 72인조 오케스트라에 맞추기 위해 그 곡을 파바로티의 키로 노래했다. 주최측, 오케스트라 단원 그리고 객석 모두가 ‘경외’의 박수를 쳤다. 그녀에 대한 평자들의 찬사와 칭송은 끝이 없다. ‘형언하기 어렵다’(No other description will do)가 대부분이다. 음악평론가 벤 에드먼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난 50년간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한 또다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영국의 록잡지 < 모조 >는 지난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00인’을 음악관계자 설문을 통해 선정한 바 있다. 여기서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아레사 프랭클린이었다. < 모조 >측은 2위와 표차를 엄청나게 내고 그녀가 넘버 원 싱어가 된 것에 놀랐다. 다시금 아레사 프랭클린이 남녀, 흑백, 장르를 통틀어 ‘20세기의 최고 가수’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 그녀는 소울의 영원한 여왕 그녀의 음악은 목소리와 창법의 미학뿐 아니라 시대성이 있다. < 타임 >지가 20세기의 위대한 문화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 뽑은 진정한 이유다. 1960년대 후반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유명한 곡 ‘존경(Respect)’, ‘체인 오브 풀스(Chain of fools)’, ‘생각해요(Think)‘ 등에는 당시 흑인들의 당당한 의식이 배어 있다. 흑인 민권운동의 불길이 솟아오르던 그 무렵 흑인들은 백인 지배사회에서 결코 흑인들이 열등한 인종이 아니며, 따라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흑인의 영혼을 의미하는 소울(Soul)이었다. 소울 음악은 때문에 목청을 돋워 질러대는 ‘샤우트’를 특징으로 했다. 국내에서도 록의 비조로 불리는 신중현이 소울을 창조적으로 도입해 김추자, 박인수, 펄 시스터즈와 같은 소울 가수가 1970년대 초반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1967년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흑인 폭동이 발발했을 때 성난 흑인 민중들은 백인들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의 그해 히트곡 ‘존경’을 시위대의 찬가로 불렀다. 이듬 해 디토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미국사회가 이때부터 흑인의 음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백인들도 흑인의 레코드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다시 말해 흑인 소울의 존재를 만천하에 고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神)의 조리에 의한 거 같은 지존(至尊)의 가창력으로 그것을 전했으니 그 위력은 더할 나위가 없다. 또 지적하는 바이지만 ‘존경’을 듣고 동료가수 오티스 레딩은 혀를 내둘렀다. 이 곡은 그가 쓴 곡으로 직접 불러 발표한 바도 있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이 완전히 새롭게 그리고 완벽하게 소화한 것을 듣고 질려버린 것이었다. 오티스 레딩의 경탄. “난 내 노래를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았아갔어!” 아레사는 조금도 변함없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으로 통한다. ‘여성 소울(Lady soul)’이란 별명도 있다. < 디바스 라이브 >에서 아레사 프랭클린과 호흡을 맞춘 머라이어 캐리도 그렇게 호칭하고 있지만 이 호칭들은 영원히 아무도 넘아다볼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조지 마이클의 솔로 활동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으나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듀오 왬!(Wham!)을 갑작스럽게 해체하고 솔로로 나선 점은 팬들을 무척 당혹케 했다. 준비는 1984년에 이미 시작되어 왬의 최고 히트곡 ‘Careless whisper’의 경우 조지의 이름으로 싱글 발매되어 그때부터 홀로서기에 대한 예측이 분분했다. 1986년 싱글 ‘A different corner’가 미국차트 7... 사실 조지 마이클의 솔로 활동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으나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듀오 왬!(Wham!)을 갑작스럽게 해체하고 솔로로 나선 점은 팬들을 무척 당혹케 했다. 준비는 1984년에 이미 시작되어 왬의 최고 히트곡 ‘Careless whisper’의 경우 조지의 이름으로 싱글 발매되어 그때부터 홀로서기에 대한 예측이 분분했다. 1986년 싱글 ‘A different corner’가 미국차트 7위, 영국차트 1위에 오르면서 솔로를 개시한 그는 이듬해인 1987년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 듀엣곡 ‘I knew you were waiting(for me)‘을 취입하여 미국과 영국 차트 정상을 차지, 생애 최초로 그래미 트로피까지 받았다. 이후는 성공의 고공비행. 같은 해 여름 영화 < 비버리 힐스 캅 2 >에 삽입된 문제의 화제작 ‘I want your sex’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영국에선 방송금지가 되었음에도 3위까지 올랐고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미국에서도 2위에 오르는 호성적을 거두게 된다.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표현이 오히려 그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놓았다. 마침내 11월 대망의 솔로 프로젝트 < Faith >가 발매되었다. 발매 즉시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손쉽게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 12주간을 점령했고 미국에서만 현재까지 10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전세계적으로 2000만장에 육박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싱글 히트곡들도 줄줄이 쏟아져 나와 ‘Faith(4주)’, ‘Father figure(2주)’, ‘One more try(3주)‘, ’Monkey(2주)‘등 무려 4곡이 차트 정상을 차례로 밟았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재즈 풍의 ‘Kissing a fool(4위)’와 미리 발표된 ‘I want your sex’까지 수록곡 중에서 총 6곡이 차트를 숨가쁘게 유린했던 88년이었다. 록,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재즈, 펑키, 댄스, 가스펠 등의 모든 음악 장르를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만든 사실만으로도 그래미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상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데뷔앨범이 좋은 평판을 얻게 된 것은 가수로서 자질보다도 송라이터로서 조지 마이클의 자질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측면이 작용했다. 그가 ‘Careless whisper’를 만들어낸 때는 10대였다. < Faith >는 이와 같은 조지 마이클의 놀라운 창작재능이 최고조에 달한 결정체인 셈이었다. 또한 이 앨범으로 흑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R&B 앨범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1980년대 초반 블랙 빅 3(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프린스)가 백인들을 흑인음악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였던 것과 달리 백인이 그 작업을 주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메리칸 음악상(AMA)에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조지 마이클을 팝/록 부문과 소울/R&B 부문에서 각각 최고의 남자가수로 선정했고 R&B 최우수 앨범상도 그의 몫으로 할당했다. 1990년에 출시된 두번째 프로젝트 <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 >은 전작보다 한층 깊어진 동시에 여유로운 느낌을 주었지만 앨범은 미국 판매고 200만장을 포함하여 800만장 정도(?)가 팔리는데 그쳐 전작의 태풍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싱글도 ‘Praying for time(1위)’, ‘Freedom 90(7위)’, ‘Waiting for that day(21위)‘, ’Mothers Pride(50위)’등이 히트했으나 전작에 비해 훨씬 줄어든 자신의 입지를 실감해야 했다. 조지는 수록곡들의 높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앨범 홍보에 상당히 미온적이었던 소니 레코드사의 태도로 인해 앨범이 단명했다는 의혹을 갖기에 이른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아티스트의 음악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소니사에 실망한 조지는 1992년 이래로 거대 레코드사를 상대로 외롭고 기나긴 법정투쟁을 시작(92.10)하게 된다. 가장 그에게 힘들었던 이 시기에 금전적, 정신적인 피해는 막대했다. 하지만 4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음악적 호흡을 쌓는데 집중투자한다. 그는 간간이 자선단체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91년 11월 영국 웸블리 콘서트에서 자신의 우상이자 친구인 엘튼 존(Elton John)의 1974년 미국차트 2위 곡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듀엣으로 함께 불렀다. 이 실황 싱글은 4년 만에 영국차트 정상에 데뷔하였고 미국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1992년 4월에는 에이즈 치료를 위한 자선 앨범 < Red Hot + Dance >에 수록된 신곡 ’Too funky(10위)’로 한 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방송회수를 기록하게 된다. 이듬해에는 이미 고인이 된 프레디 머큐리(Freddy Mercury) 추모 콘서트 실황(92년)과 자신의 91년 라이브 투어 중에서 5곡의 라이브를 엄선하여 수록한 EP 음반 < Five Live EP >를 발매, 영국차트 3주간 정상을 밟았다. 퀸(Queen)의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한 ’Somebody to love(32위)’와 영화 < 바그다드의 까페 >의 삽입곡인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오리지날 ’Calling you’로 멋진 가창력을 다시 한번 뽐냈고 앨범에는 게이(Gay)들의 찬가 ’Killer/Papa was a rolling stone(77위)’와 리사 스탠스필드(Lisa Stansfield)와 함께 노래한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도 수록되어있다. 1994년 소송에서 패소한 후 조지는 이에 불복, 항소했고 항소심이 진행중인 1995년 드림웍스(DreamWorks)사가 나서서 분쟁을 해결해 소니에 막대한 금전적 배상을 치르면서 조지와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었다. 영국에선 메이저 레이블 버진(Virgin)과 계약이 이뤄지면서 어렵사리 그의 음악생활이 지속될 수 있었다. 무려 6년의 앨범 공백기를 깬 1996년에 세번째 앨범 < Older >가 세상에 나온다. < Faith >앨범을 그의 미국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면 < Older >는 영국에서 최고의 걸작이 되었는데 그동안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꼈던 영국에서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한 음반으로 영국에서만 (5X)플래티넘을 기록하며 버진 레코드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6곡의 싱글이 차트 3위안에 드는 영국에서 최초의 기록을 남기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에선 플래티넘을 따내며 ’Jesus to a child’(7위)’와 ‘Fastlove(8위)’ 두 곡을 Top 10에 진입시켰다. 같은 해 10월에 영국 런던에서 소수의 팬들만을 모아놓고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실시하여 큰 호응을 얻었으며 여기서는 보니 레이트(Bonnie Raitt)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I cant make you love me’가 주목을 받았다. 98년 소니와의 마지막 동거작인 베스트 앨범 < Ladies & Gentlemen >을 발매하여 미국에서만 200만장 이상을 팔아치웠고 영국에선 앞서 발표한 솔로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차트 1위에 올라서 무려 8주간을 머무르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항상 베스트 앨범이 발매될 때면 주목을 받는 것이 이전에 미발표된 신곡들인데, 조지의 앨범 역시 3곡의 신곡이 수록되어 있었고, 비버리 힐즈 공원에서 자신의 음란행위를 빗대어 묘사한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뿌린 ‘Outside(영국 2위)’와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 와 함께 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오리지날 ‘As(영국 4위)’등이 주목의 대상이었다. 이듬해 세기말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조지는 재즈 보컬리스트로 돌아왔다. 통산 4번째 솔로앨범 < Songs From The Last Century >를 커버 곡들로만 채워 격조를 높였다. 재즈의 고전들을 비롯하여 우리에게도 친숙한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폴리스(Police)의 ’Roxanne‘, U2의 멤버들이 제작한 ‘Miss Sarajevo’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 앨범이었다. 2000년에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취입한 듀엣곡 ‘If I told you that’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지역의 최고의 히트곡으로 부상했고 이후 주요 콘서트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던 그가 올해 새 앨범 발매에 앞서 파격적인 싱글을 선보였다. 과거 ‘I want your sex‘에 버금갈만한 자극적인 곡 ’Freeek!(영국 7위)‘는 조셉 칸(Joseph Kahn)이 감독한 150만 달러짜리 뮤직 비디오가 전해주는 메시지 만으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곡이었다. 곧 새 앨범이 발매된다고 하니 그가 걸어온 변화무쌍함 때문에도 한층 기대가 된다. 생기 발랄한 버블 사운드로 청소년들의 절대적인 우상으로 군림했던 20대 초반의 왬! 시절부터 자신의 음악적 욕심을 남김없이 드러낸 솔로 데뷔시절, 성숙함이 짙게 묻어나는 30대 중반의 < Older >시절과 재즈로 수양을 한 30대 후반까지 가수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매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질주해온 음악인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혹의 나이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보여줄 시도가 어떤 것일지 관심을 모으고있는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쓰는 퀘벡 지방의 작은 집에서 1968년 첫 울음보를 터트린 셀린 디온. 그녀는 합계가 무려 16명인 대식구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부모님 모두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우산 아래 셀린 디온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맘껏 틔웠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의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2살 때에는 ‘It was only a dream’이라는 최초의 자작곡을 썼다는 등의 후일담들이 잘 증명해준다. 오빠와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 하에 상기한 곡을 테이프화(化)했던 셀린 디온. 그녀는 그것을 매니저인 르네 앤젤릴(Rene Angelil)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허나 독촉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셀린 디온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르네 앤젤릴은 그 날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정식 데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셀린 디온의 노래를 직접 들은 순간, 르네 앤젤릴은 그녀가 곧 인터내셔널 슈퍼 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1983년 15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음반 < D’Amour Ou D’Amite >을 통해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야마하 작곡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이후 셀린 디온의 행보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또한 그녀는 그 즈음 조우했던 베테랑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의 인연 덕에 걸프 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기획 앨범 < Voices That Care >에 참여, 수많은 팝 필드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문’뿐인 듯 보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우선 음악 외적인 면에서 파격적 변신을 단행했다. 팝 계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 또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동시에 셀린 디온은 영국의 랭귀지 스쿨에서 언어 교육을 받으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틴에이저에서 성숙미를 내뿜는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드백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1990년에 발매했던 처녀작 < Unison >(74위)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와 4위를 기록한 ‘If there was (any other way)’와 ‘Why does my heart beat now’의 선전에 힘입어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 허나 정작 그녀를 꼭지점으로 견인했던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테마였던 ‘Beauty and the beast’였다. 차트 1위를 단박에 꿰찬 곡은 그녀에게 1992년 그래미의 팝 듀오/그룹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이후의 성공 시대를 예감케 했다. 또한 2집 앨범인 < Celine Dion >(1992)에도 수록되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곡 외에 다이안 워렌(Diane Warren) 작곡의 ‘If you asked me to’(4위), ‘Nothing broken but my heart’(29위), ‘Love can move mountains’(36위) 등이 팬들의 애정 공세를 한 몸에 받았다. 같은 해에 내놓았던 영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의 주제곡인 ‘When I fall in love’(23위) 역시 대박이었다. 2년 뒤인 1994년에는 셀린 디온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매니저였던 르네 앤젤릴과의 결혼이 바로 그것. 1988년부터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둘은 6년 뒤인 1994년에야 그 사실을 발표하고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에서 결혼, 세간을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정확이 배가 되는 나이차도 화제거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셀린 디온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간, 무려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주는 양적 포만감부터가 남달랐다. 1993년의 < Colour of My Love >(4위)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제니퍼 러시(Jennifer Rush)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power of love’(4주간 1위), 그리고 ‘Misled’(23위) 등의 히트 넘버들을 배출했다. 1994년과 1995년에 셀린 디온은 두 장의 불어 LP를 내놓으며 음악적 본령을 되새김질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팝 클래식인 ‘Calling you’를 수록한 < Live A L’olympia >와 장자크 골드만이 프로듀스해준 < D’eux >이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800만장을 세일즈, 가장 많이 팔린 샹송 작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은 단연코 1996년의 팝 마스터피스 < Falling Into You >였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집계된 판매량이 1100만장인 작품은 그 해 그래미에서 ‘팝 앨범’과 ‘올해의 앨범’, 두 개 부문을 석권하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의 테마송이자 다이안 워렌이 써 준 ‘Because you loved me’(1위)를 위시로 팝 고전을 다시 부른 ‘All by myself’(4위), ‘It’s all coming back to me mow’(2위) 등이 차트에 핵 폭탄을 마구 투하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같은 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무비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14주 연속 1위)은 더했다. 또 다시 그래미 두 개상을 차지하는 등, ‘셀린 디온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의 상황을 연출했다. 곡이 수록된 1997년의 앨범 < Let’s Talk About Love >(1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두 음반의 합산 판매고가 무려 6000만장을 상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녀는 실로 당대에 무적, 팝 계 최고의 디바 자리에 우뚝 섰다. 그간 참여했던 뮤지션들을 포함해 새로 가세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 비지스(The Bee Gees), 캐롤 킹(Carole King),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등, 후자에 참여한 초특급 아티스트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당시 그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셀린 디온은 크리스마스 스페셜 반인 < These Are Special Times >(1998, 2위)와 샹송 앨범 < S’il Suffisatt D’aimer >(1998)를 선보이고 베스트 컬렉션인 <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1999, 1위)을 내놓는 등,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남편의 후두암 투병이라는 절망적 사건이 발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비극이 종결되고 셀린 디온에게 행복이 찾아왔던 때는 2001년이었다. 체외 수정에 성공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의 증세도 나날이 호전되는 등, 셀린 디온이 가정에서 본업으로 컴백할 기운이 날로 충만해져 갔다. 그리고 2002년, 무려 5년 만에 출시했던 정규작 < A New Day Has Come >은 그녀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초로 발매 첫 주에 정상에 등극하며 변함없는 팬 베이스를 과시했다. 허나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전성기 시절에는 많이 못 미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현재 셀린 디온은 1년 만에 신작 < One Heart >를 내놓으며 팬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003/04 배순탁(greattak@izm.co.kr) 오이뮤직 머라이어 캐리가 있고 휘트니 휴스턴이 있지만 이들 못지 않게 지난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가수가 셀린 디온(Celine Dion)이다. 흔히들 이들을 오페라의 주역가수에서 나온 말로 최고 인기의 여가수를 의미하는 어휘인 디바(diva)로 일컫는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팝 음악계의 디바 시대를 이끌었다면 셀린 디온은 디바 시대의 정점에 선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셀린 디온은 같은 음반회사 소니 뮤직에 소속된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90년대 중반까지 만년 2등 가수였다. 하지만 셀린 디온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나의 마음은 영원할 거예요(My heart will go on)’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 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목 < Dark Side Of The Moon >처럼 팝계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프린스, 레이 파커 주니어 등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한테서도 상당한 지지기반을 획득했고, 이것은 곧 블랙뮤직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흑인 음악의 변질이라며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샤데이는 이렇게 회색(?)으로 변색되던 검은 ...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목 < Dark Side Of The Moon >처럼 팝계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프린스, 레이 파커 주니어 등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한테서도 상당한 지지기반을 획득했고, 이것은 곧 블랙뮤직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흑인 음악의 변질이라며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샤데이는 이렇게 회색(?)으로 변색되던 검은 음악을 다시 정상의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샤데이의 음악은 검정색 테두리 안에서 다중적(多重的)이다. 리듬 앤 블루스와 재즈, 소울이 있고, 펑키(funky)함도 한 기둥을 이루고 있다. 노래의 분위기마다 그녀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지만 일정한 스타일이 있다. 그것은 샤데이의 관능과 유연함이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종의 결합은 음악의 퓨젼(fusion)이라는 이상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어머니를 따라서 영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이 흑진주는 어머니의 고향 영국에서 패션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모델 활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악에 대한 흑인의 선천적인 감각과 백인의 후천적인 노력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상적인 결합이 되어 샤데이라는 보석을 가공한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몸담았던 펑크(funk) 밴드 프라이드(Pride)에서 나와 공개한 1984년의 솔로 데뷔 앨범 < Diamond Life >는 검은 진주의 화려한 비상(飛上)이었다. 200만장이 팔린 이 음반은 싱글 ‘Smooth operator(5위)’와 ‘Your love is king(54위)’ 등을 잉태했고, 그녀는 1985년도 그래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샤데이와 그래미와의 친분(?)은 1993년의 최우수 리듬 앤 블루스 보컬 그룹상과 2001년도 최우수 팝보컬 앨범까지 지속되었다. ‘Sweetest taboo(5위)’와 ‘Never as good as the first time(20위)’가 수록된 1985년의 소포모어 앨범 < Promise >는 1집의 인기가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1988년과 1992년에 발표한 < Stronger Than Pride >와 < Love Deluxe >에서는 ‘Paradise(16위)’와 ‘No ordinary world(28위)’, ‘Kiss of life(78위)’ 같은 곡들만이 준 히트를 기록하는 부진을 보였다. 2000년에는 8년 동안의 공백 기간을 깨고 < Lovers Rock >으로 팝계에 복귀했지만 평단의 호평과 대중들의 반응은 많은 차이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By your side’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래 : Luther Vandross (루더 밴드로스,Luther Ronzoni Vandross)
흑인 남성 싱어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입지전적인 위치를 다진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는 본격적인 캐리어를 쌓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치면서 20세기 후반 리듬 앤 블루스를 언급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급 인사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그의 노래들이 빌보드 싱글 차트의 높은 순위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제작자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스티비... 흑인 남성 싱어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입지전적인 위치를 다진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는 본격적인 캐리어를 쌓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치면서 20세기 후반 리듬 앤 블루스를 언급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급 인사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그의 노래들이 빌보드 싱글 차트의 높은 순위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제작자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나 프린스(Prince),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등과 동등한 위치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초코 우유처럼 감미로운 그의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 음색으로 그려지는 가창력은 현존 최정상임을 입증한다. 1951년 4월 20일 뉴욕에서 태어난 이 재능 있는 뮤지션은 샘 쿡(Sam Cooke),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같은 소울 가수들의 음반들을 들으며 음악적인 진실함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채득했다. 1970년대에는 선배 가수들의 백보컬 활동과 TV 광고 노래를 부름으로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루더 밴드로스는 첫 번째 정규 앨범 < Never Too Much >를 자신이 직접 어레인지와 제작을 담당해 음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음반 제작을 관장하는 흑인 아티스트가 드물었기 때문에 루더 밴드로스의 처녀작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에 대한 호평으로 그는 1980년대 초반 ‘소울의 영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위해 퓨젼 재즈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와 파트너가 되어 ‘Jump to it(24위)’, ‘Get it right(61위)’ 등을 작곡하고 음반을 제작하면서 그녀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음악적인 파트너쉽을 넘어 인간적인 우정으로 지속된다. 1980년대를 활동하면서 모두 6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지만 싱글 종합 차트와 국내에서의 반응은 흑인 음악 차트에 비해 폭발적이지는 못했다. 데뷔 곡 ‘Never too much(33위)’, 댄서블한 ‘Stop to love(15위)’와 ‘She won’t talk to me(30위)’, 그리고 ‘Give me the reason(57위)’과 ‘Any love(44위)’ 등이 주로 차트의 허리권에서 멤돌다가 사라지곤 했었다. 1990년대가 밝아오면서 루더 밴드로스는 지난 10년을 재조명하는 베스트 음반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신곡 ‘Here and now(6위)’가 최초로 Top10에 랭크되면서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화려하게 장식할 준비를 시작했다. 1991년의 < Power Of Love >는 싱글 ‘Power of love/Love power(4위)’와 ‘Don’t want to be a fool(9위)’의 호 성적으로 그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1992년에는 영화 < 모 머니 >에 수록된 ‘The best thing in life are free(10위)’를 자넷 잭슨(Janet Jackson)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고 1994년에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함께 ‘Endless love(2위)’를 리메이크 했다. 루더 밴드로스의 음악 스타일과 역량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친절하게 멜로디를 살려주는 그의 노래들은 화음보다 최소한의 리듬을 강조하는 현재의 흑인 음악의 트랜드와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의 음악이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정체하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 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한 번도 식은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언제든지 사랑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노래 :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팝 보컬))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 지금 미국 팝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의 아직 19살이 안된 어린 여가수다. 그녀의 지난해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천2백만장 판매고라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오른 그녀가 막 2집 앨범을 내놓자 전 미국이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하 각 신문과 방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시기 쟁탈전을 벌이고있다. 전 매체의 당면 최대 과제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잡아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틴에이저 가수가 출현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언론이 예외적으로 그녀를 다루는데 골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리지만 어른 특히 성인남자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성들한테 브리트니는 결코 소녀로 비치지 않는다. 옷을 하나 입어도 섹시하게 치장하고, 춤을 춰도 어른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가 내뿜는 강한 섹슈얼 파워에 어른들도 매혹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어린 섹스심벌’이다. 솔직히 그녀가 대단한 미모이거나 다리가 길다거나 하는 탁월한 신체조건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보통의 외모에 섹슈얼리티를 갖춘 것이 도리어 또래들에게는 자신감, 어른들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탓에 그녀는 ‘롤링스톤’과 같은 록 전문지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한다. 최신호 커버에 등장한 그녀가 던지는 인상은 ‘착해 보이면서도 섹시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악도 외모를 닮아있다. 달콤한 멜로디를 지닌 댄스곡들이지만 아주 힘차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있는 신곡 ‘Oops! ... I did it again''부터가 강렬한 비트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다른 댄스 팝 여가수들과 여기서 차별화된다. 실제의 그녀 또한 마돈나처럼 스스로 캐리어를 개척하는 독립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보에서 그녀는 대담하게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Satisfaction''를 부르고 있다. 레코드회사나 주변인들이 ‘해봤자 욕먹는다’며 말렸는데도 끝내 고집을 부려 새 앨범에 이 곡을 수록했다. 브리트니는 “강한 느낌의 곡을 만들어낼 테니 두고 보라”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브리트니가 록계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이처럼 음악계 어른들의 말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당돌한 자세 때문이다. 관심사는 신보가 과연 얼마나 팔려나가는데 있다. 전작의 판매고를 따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곡은 벌써 라디오 최다 신청곡 기록을 깼다. 현재 미국 라디오 전파는 브리트니의 노래로 완전히 장악되었다는 소식이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저기서 신보의 대박 조짐이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소지가 충분하다. 음반업계는 그녀만은 소포모어 징크스 즉 2집 앨범 징크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2000년 팝계가 다시 그녀의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기록]
-여섯 장의 정규 앨범으로 통산 8천 6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대한민국 통산 판매량 100만 장 돌파
-3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 5곡의 영국차트 1위곡 보유
-새싱글 ‘3’ 빌보드 싱글차트 1위로 핫샷데뷔 * 非아메리칸 아이돌 싱글로는 21세기 유일
-그래미상, 빌보드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등 주요 시상식 수상
-2003 포브스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가수로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
-야후! 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유명인사 7년간 1위
-2000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
-200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가수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10대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대 아티스트의 앨범 "...Baby One More Time"
-기네스 선정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인물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영국차트 1위를 기록한 여성 아티스트
-기네스 선정 가장 어린 나이에 5장의 빌보드 넘버원 앨범을 보유한 아티스트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가장 어린 나이에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에 입성한 셀러브리티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여성 가수
-그녀의 저서 “Heart To Heart” - 뉴욕 타임즈 주간 및 베스트 셀러 선정
-역대 투어 티켓 수입 5억달러, 머천다이즈 수입 2억달러 이상 (역대 최고 기록)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셀러브리티 향수 “Curious” - 6억 달러 이상의 수익
-2004년 가장 많이 판매된 향수 “Curious” - 출시 5주만에 1억달러 수익 돌파
-브리트니의 향수 통산 수익 20억 달러 돌파 * 향수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드린 셀러브리티
-동명의 앨범/싱글을 같은 주에 빌보드 앨범/싱글차트 1위에 올린 최초의 아티스트
-영국에서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 "...Baby One More Time"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곡 “Oops!...I Did It Again”
-데뷔 앨범부터 두 장의 음반이 연속으로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인증 (1,000만장 이상 판매)
-2000년 이후 메인스트림 팝 라디오차트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아티스트: 22곡의 싱글
-역사상 많은 'Teen Choice Awards' 를 수상한 스타: 통산 16개
-여섯 장의 음반이 모두 빌보드 앨범차트 1위, 혹은 2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가수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순위에 올린 아티스트 (18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1위에 올린 아티스트 (15곡)
-MTV TRL 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를 명예 은퇴 시킨 아티스트 (13곡)
-영국 역사상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My Prerogative”
-월드 차트에서 가장 많은 1위 곡을 보유한 여가수 2위 (1위: 마돈나)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팔린 여성 가수의 앨범 "Oops!...I Did It Again" - 131만장
-미국에서 50만 장 이상의 오프닝 세일즈를 기록한 음반을 네 장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여가수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 8위
-미국에서 첫 주에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여성 가수의 싱글 "Womanizer" ? 28만 6천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 상승으로 1위를 기록한 곡 "Womanizer" - 96위 → 1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 선정 지난 25년간 가장 위대한 팝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된 ‘Britney’
-가장 많은 트위터 ‘Follower’ 를 보유한 아티스트
-미국 인기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 * 브리트니 카메오 출연분 시리즈 통산 시청률 1위
-최신 월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 61회에 걸친 북미 투어 전회 매진
-“Circus” 투어는 북미 공연으로만 94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 8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 기록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큰 규모의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2002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올해의 여성
-2003 글래머 매거진 UK 선정 올해의 여성
-2004 FHM 매거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2008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
-2008 GQ 매거진 독일 선정 ‘올해의 여성’
-2008 AOL 선정 가장 많이 검색된 유명인사
-2009 플레이보이 매거진 선정 가장 섹시한 뮤직비디오 “Womanizer”
-2009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요 수상 경력]
Grammy Awards
-2000 Best New Artist 후보
-2000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Best Pop Vocal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3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Overprotected" 후보
-2005 Best Dance Recording "Toxic" 수상

Billboard Music Awards
-1999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Female Album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Hot 100 Singles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1999 Best New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0 Best Album Artist 수상
-2000 World-Record Breaker "Oops!... I Did It Again" 수상
-2004 Best-selling Dance Single of the Year "Me Against the Music" 수상
-2007 Best Album of 2007 "Blackout" 선정
-2008 Best Album of 2008 "Circus" 선정
-2009 Best Album "Circus" 수상

American Music Awards
-2000 Favorite Pop/Rock New Artist 수상
-2000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0 Favorite Pop/Rock Album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rtist 후보
-2001 Favorite Pop/Rock Album "Oops!...I Did It Again" 후보

MTV Video Music Awards
-1999 Best Female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Pop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199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Baby One More Time" 후보
-2000 Best Female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Pop Video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Dance Video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0 Viewer's Choice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1 Best Pop Video "Stronger" 후보
-2002 Best Femal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Dance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2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I'm a Slave 4 U" 후보
-2003 Best Video from a Film "Boys" 후보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후보
-2004 Best Female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Pop Video "Toxic" 후보
-2004 Best Dance Video "Toxic" 후보
-2008 Video of the Year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Female Video "Piece of Me" 수상
-2008 Best Pop Video "Piece of Me" 수상
-2009 Best Pop Video "Womanize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후보
-2009 Bes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Art Direction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Editing in a Video "Circus" 후보
-2009 Best Cinematography in a Video "Circus" 후보

MTV Europe Music Awards
-1999 Best Song "...Baby One More Time" 수상
-1999 Best Pop Act 수상
-1999 Best Female Solo Artist 수상
-1999 Best Breakthrough Act 수상
-2000 Best Song "Oops!...I Did It Again" 후보
-2000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0 Best Pop Artist 후보
-2001 Best Pop Artist 후보
-2002 Best Female Artist 후보
-2004 Best Female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4 Best Song "Toxic" 후보
-2004 Best Pop Artist 후보
-2008 Album of the Year "Blackout" 수상
-2008 Best Act of 2008 수상
-2008 Best Act Ever 후보
-2009 Best Video "Circus" 후보

Kids' Choice Awards
-2000 Favorite Song "(You Drive Me) Crazy" 후보
-2001 Favorite Female Singer 수상
-2001 Favorite Music Solo or Group 후보
-2003 Favorite Female Singer 후보
-2005 Favorite Song "Toxic" 후보

Teen Choice Awards: 총 16개 부문 수상 (역사상 가장 많이 수상한 스타)
-1999 Choice Singl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0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0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1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2 Choice Female Artist 수상
-2002 Choice Hottie Female 수상
-2004 Choice Single "Toxic" 수상
-2009 The Ultimate Choice Awards 수상 등

MTV Total Request Live Awards
-2003 First Lady Award 수상
-2008 Most iconic video of the past TRL decade "...Baby One More Time" 수상
-2008 Queen of TRL 수상
-2008 Queen of Music Videos 수상

World Music Awards
-2000 World's best 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Pop Female Artist 수상
-2001 World's best-selling Dance Female Artist 수상

Rolling Stone Magazine Awards
-2001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2 Best Dressed Female 수상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NRJ Radio Awards (프랑스)
-2000 Best International Female Artist
-2008 Best International Album "Blackout" 수상
-2009 Female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Video of the Year "Womanizer" 수상

Groovevolt Awards
-2004 Video of the Year "Toxic" 수상
-2004 Best Female Album "In The Zone" 수상
-2004 Best Song Performance by a Female Artist "Everytime" 수상
-2004 Most Fashionable Artist 수상

Bravo A List Awards
-2009 A-List Artist of the Year 수상
-2009 A-List Album " Circus " 수상
-2009 A-List Download "Circus" 수상

NewNowNext-Awards
2009 Always Now, Forever Next Award 수상

People's Choice awards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MTV Asia Awards
-2002 Best Female Artist 수상

MTV Video Music Brazil Awards
-2009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Bambi Awards (독일)
-2008 Best International Pop Star 수상

AOL Awards
-1999 Best New Artist 수상

Much Music Awards (캐나다)
-1999 Best International Artist 수상

Germany Bravo Gold Awards (독일)
-1999 Best International Female Vocalist 수상

Japan Golden Disc Awards (일본)
-Best International Music Video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수상
-Best International New Artist 수상 외 세계 각국에서 다수의 수상경력 보유
노래 : Backstreet Boys (백스트리트 보이즈)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 멤버 : A.J. McLean, Brian Littrell, Howie Dorough, Nick Carter

얼마 전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이 MTV와 공동으로 선정한 ‘팝 역사를 수놓은 명곡 100선’에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예상 밖으로 높은 순위인 10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10대들을 주요 팬 층으로 하는 ‘버블 검 음악’이라 하여 여기저기서 비판을 받는 와중에 권위 있는 록 언론에 의해 이들의 노래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분명 음반업계의 기획에 의해 ‘잘 만들어진 그룹’이다. 보통 이런 기획상품의 경우 아티스트의 자기 표현을 최고 덕목으로 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평가 절하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시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예상 밖으로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고있기 때문이다. 곡도 좋고 멜로디를 타는 멤버들의 노래솜씨와 코러스도 우수하다. 애들 음악이라고 푸대접하지만 막상 들으면 모든 곡들이 귀를 감는다. 또 하나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손꼽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버블 검 음악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팝 주요 경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요즘의 유행을 만들었고 또 주도하고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성공을 거두자 팝 음악계에서는 우후죽순으로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보이 밴드’들이 출현하고 있다. 닉 카터, 하위 D, 케빈 리처슨, AJ 맥클린 그리고 브라이언 리트렐 등 다섯 남자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케빈은 1972년 생이고 가장 어린 1980년 생 닉 카터도 나이 스물을 넘어섰다. 10대 음악을 하지만 멤버들 가운데 틴에이저는 없다. 1994년 결성될 때는 당시 음악이 얼터너티브 록과 갱스터 랩 판이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2집 < Backstreet''s back >부터 미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99년 초에 발표한 3집 < Millenium >에 와서는 세계적 열풍을 야기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1300만장이 팔려 틴 음악 앨범 중에서는 최고 판매고를 보이고 있다. 잠시 공백을 갖는 사이 같은 소속사의 라이벌 N싱크한테 추월 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새 앨범 < Black & blue >을 내놓고 왕관탈환에 나섰다. 그래서 과연 신작이 얼마만큼 팔려나갈 것인가가 관심이다. 관계자들은 이번 앨범이 그들의 장수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내다본다.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 알 켈리(R. Kelly)는 1990년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더불어 흑인음악 최고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어번 알앤비(Urban R&B), 뉴잭/질스윙(New Jack/Jill Swing)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1969년 1월 8일 시카고 외각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서 태어난 알 켈리(본명: Robert Kelly)는 흑인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 홀어머니와 살아야 했으며, 흑인 갱들과 어울리다 총상을 입는 등 그의 유년기는 저질 흑인 빈민의 삶이었다. 저급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는 레나 맥린(Lena McLin)이라는 음악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어머니가 선물한 키보드를 가지고 뮤지션으로서의 도전을 시작한다. R&B 그룹 MGM을 결성한 그는 거리 공연을 통해 시카고 다운타운 최고의 뮤지션으로 성장해 간다. TV 음악 컨테스트인 < Big Break >에 출연하여 우승하는 등 지명도를 더해 나가던 알 켈리는 결국 자이브(Jive) 레코드의 웨인 윌리엄즈(Wayne Williams)의 눈에 들게 되었고, 1992년 데뷔 앨범 < Born Into The 90’s >를 발표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첫 싱글 ’She’s got that vibe’가 R&B 차트에서 선전하며 눈길을 끌었고, 이어지는 ’Honey love’, ’Slow dance(Hey Mr. DJ)’가 연이어 R&B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초대형 R&B 뮤지션의 탄생을 알렸다. 데뷔 이듬해인 1993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 12 Play >는 신인급 뮤지션 알 켈리를 R&B 정상의 인기 뮤지션으로 끌어올린다. 70년대 펑키(Funky)스타일과 90년대 힙합을 결합한 알켈리적 사운드가 위력을 발휘했고, 달콤하게 애원하는 발라드 곡 ’Bump n’ grind’가 싱글 차트에서 4주, R&B 차트에서 12주간 정상을 지키며 음악계를 강타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알 켈리는 프로듀서로서의 또 다른 정상을 향해 순항을 시작한다. 1994년 알리야(Aaliyah)의 데뷔 앨범 < Age Ain’t Nothin’ But A Number >를 프로듀싱하며 15세 소녀 가수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알리야를 통해 뉴잭/질 스윙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알 켈리는 이후 자신의 앨범은 물론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여 R&B 최고의 프로듀서로 자리하며 어번(Urban) R&B의 흐름을 주도한다. 1995년 ’You are not alone’을 프로듀싱하여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게 차트 정상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던 그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자넷 잭슨(Janet Jackson), 메리 제이 블라이지(Mary J. Blige),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등 거의 모든 정상급 어번 R&B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서 맹활약했다. 1995년 발표한 3집 앨범 < R. Kelly >는 상업적으로 음악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두며 알 켈리 최고의 앨범으로 자리했다. 4백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고, 발표한 세 장의 싱글 ’You remind me of something’, ’Down low(Nobody has to know)’, ’I can’t sleep baby(If I)’가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은 노골적으로 성적 유혹에만 치중한 전작과 달리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담았고, 고급스러움과 저속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빛을 발한다. 1996년 영화 < Space Jam > 수록 곡 ’I believe I can fly’가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에 알 켈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고, 이 곡으로 그래미(Grammy)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영화 < Batman & Robin >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여 ’Gotham city’를 연이어 히트시킨 알 켈리는 당시 최고의 인기 여가수였던 셀린 디욘(Celine Dion)과의 듀엣 곡 ’I’m your angel’을 발표하며 다시금 차트 정상을 밟는다. 싱글 ’I’m your angel’의 여세를 몰아 발표한 4집 < R. >(1998)은 더블 앨범에 30여 곡이 수록되었고, 퍼프 대디(Puff Daddy), 나스(Nas), 제이-지(Jay-Z) 등 화려한 게스트들이 힘을 보탰음에도 불구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이후 큰 히트 싱글 또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알 켈리 특유의 매력을 감소시켰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전작에서의 흔들림을 감안한 듯 2000년 발표한 < TP-2.com >은 대중성 강했던 < 12 Play >로 회귀하며 달콤함으로 앨범을 채웠다. ’I wish’, ’The storm is over now’, ’Fiesta’ 등이 고루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 역시 R&B 최고의 뮤지션 알 켈리에게 특별한 히트 싱글 하나 가져다 주지 못했다. 알 켈리는 2002년 < R. >앨범에서 함께 했던 제이-지(Jay-Z)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 The Best Of Both Worlds >를 발표하는 등 슬럼프로 접어드는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래 : Gloria Estefan (글로리아 에스테판)
라틴음악의 본고장 쿠바 출신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우선 리키 마틴의 라틴 팝 돌풍 이전에 이미 라틴의 혼을 전세계에 전파한 ‘라틴 디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1980년대 이미 ‘Conga’, ‘1-2-3’ 같은 라틴 팝 넘버를 히트시켰으며 일련의 노력으로 독보적인 라틴 팝 여왕의 자리를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 ‘의지의 표상’이라는 존경할만한 또 다른 수식어도 있다. 1990년 ... 라틴음악의 본고장 쿠바 출신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우선 리키 마틴의 라틴 팝 돌풍 이전에 이미 라틴의 혼을 전세계에 전파한 ‘라틴 디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1980년대 이미 ‘Conga’, ‘1-2-3’ 같은 라틴 팝 넘버를 히트시켰으며 일련의 노력으로 독보적인 라틴 팝 여왕의 자리를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 ‘의지의 표상’이라는 존경할만한 또 다른 수식어도 있다. 1990년 교통사고를 당해 정상적인 생활마저 불투명했지만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훌륭히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20년 가까이 자국인 쿠바의 리듬을 충실히 알린 그녀에겐 라틴 디바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글로리아 마리아 파하르도(Gloria Maria Fajardo)가 본명인 에스테판은 1957년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통령가족을 경호하는 일을 담당하며 비교적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지만 1959년 가족은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을 피해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해야만 했다. 난민의 처지로 미국에 정착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며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때문에 야간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글로리아를 지탱해 줬던 것은 물론 기타와 음악이었다. 1975년 마이애미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학업과 ‘웨딩싱어’라는 자유직업을 병행했다. 거기서 밴드 ‘마이애미 라틴 보이스’를 이끌던 에밀리오 에스테판을 만나 함께 새로운 밴드를 결성, 음악적 욕구를 실현할 토대를 구축했다. 그 그룹이 유명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이었다. 그녀와 음악동료인 에밀리오는 1978년 결혼했다.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은 1984년 에픽 레코드사에서 정식 데뷔작인 < Eyes of innocence >를 발표했다. ‘Dr. beat’와 같은 흥겨운 곡이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그들이 슈퍼스타로 웅비하게 된 것은 이듬해 앨범 < Primitive Love >를 내놓고 나서였다. ‘Conga’, ‘Bad boy’와 같은 싱글이 잇따라 스매시 히트했고, 그와 함께 라틴의 열정적인 리듬도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길은 하지만 언제나 순항과 고난의 반복이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스타덤을 공고히 하는가 했더니 다시 한번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1990년 3월 투어 차 뉴욕으로 향하던 버스와 뒤따라오던 트레일러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사고로 글로리아는 등뼈가 부러졌으며 400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그녀는 1년만에 치명적 상처를 딛고 일어서 놀라운 투혼으로 < In To The Light >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복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가 투영되었다. 팬들은 진심 어린 격려와 갈채로 답했으며, 싱글 ‘Coming out of dark’는 차트 1위에 오르는 일대 기염을 토했다. 그것은 기적적인 재기였다. 최근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라틴음악이 유행하는 상황이지만 그녀야말로 순수한 라틴음악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어쩌면 사상 최초의 가수였다. 1990년에 이미 스페인어로 부른 싱글 ‘Oye mi canto’을 발표했으며 3년 뒤에는 완전한 라틴앨범 < Mi Tierra >를 내놓았다. 1995년에는 다시 스페인어 음반 < Abriendo Puertas >를 출시해 라틴 부흥에 앞장섰다. 두 앨범 모두 대중적으로 큰사랑을 받았고 이 무렵 글로리아는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라틴계열 가수로 등록되었다. 1998년 앨범 < Gloria! >을 발표한 그녀는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디바 라이브 공연’에 참여했다. 아레사 프랭클린,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캐롤 킹, 샤니아 트웨인과 함께 노래한 이 공연을 통해 글로리아는 라틴 디바로서 재확인되었다. 이듬해 그녀는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 Music Of The Heart >에 배우로서 첫선을 보였으며, 이 영화의 타이틀곡을 보이밴드 엔싱크와 함께 불러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세 번째 라틴앨범 < Alma Caribena >를 발표하며 남다른 라틴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1983년 후반, 두 백인 여성 가수의 데뷔곡이 2개월의 짧은 간격을 두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 나란히 등장했다. 본의 아니게 시작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 두 여가수의 경합은 1980년대 동안 가장 흥미롭고(본인들에게는 피 말리는 싸움이었겠지만) 긴장감 넘치는 팝의 핫 이슈였다. 두 여인은 1983년 10월에 데뷔 싱글을 차트에 등록시킨 이후 현재까지 20년이 달하도록 사그라지지 않는 창작력을 과시하는, 매... 1983년 후반, 두 백인 여성 가수의 데뷔곡이 2개월의 짧은 간격을 두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 나란히 등장했다. 본의 아니게 시작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 두 여가수의 경합은 1980년대 동안 가장 흥미롭고(본인들에게는 피 말리는 싸움이었겠지만) 긴장감 넘치는 팝의 핫 이슈였다. 두 여인은 1983년 10월에 데뷔 싱글을 차트에 등록시킨 이후 현재까지 20년이 달하도록 사그라지지 않는 창작력을 과시하는, 매브릭 음반사의 CEO 마돈나(Madonna)와 2개월 늦게 인기차트에 합류했지만 고지를 선점하고 나선 끝내 마돈나에게 밀려버린 ‘귀여운 악녀’ 신디 로퍼(Cyndi Lauper)다. 마돈나의 ‘Holiday’와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은 아직까지 그들을 정의하는 대표 곡으로 남아 있다. 선의의 경쟁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흐른 현재, 레이스의 최후 승자는 알다시피 마돈나다. 그것도 판정승 아닌 분명한 KO승이다. 그러나 그들이 풋풋했던 데뷔 시절, 둘의 위치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애초 평단에서 마돈나는 ‘아니 벌써’의 반짝 스타로, 신디 로퍼는 ‘장수 만세’의 아티스트로 전망되었다. 평론가들이 신디 로퍼를 높이 산 이유는 페미니즘을 남근의 음악인 록과 포스트 펑크가 어우러진 ‘뉴 웨이브’로 설파했다는 점과, 마돈나처럼 섹시한 외모나 춤으로 판단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약간은 덜 섹시한 이미지를 고집하면서 음악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러한 독립적인 태도는 고등학교 중퇴, 소규모 클럽에서의 노래 시작, 자신이 결성한 밴드 블루 엔젤(Blue Angel)의 상업적인 실패와 파산, 그리고 남자 친구와의 불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터득한 그녀의 인생관이 배양했다. 3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망가질(?) 수 있는 자신감은 바로 이 굴곡의 삶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드라마에서 비롯된 떳떳함이 원천이다. 그녀의 성공을 가져온 많은 요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적인 요구에 정확히 부응했다는 점이다. 소녀적 감성을 읊은 신디의 밝고 통통 튀는 가사는 그 시대 정서의 흐름을 타고 대중들을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로 괴롭히지 않았으며, 당대의 뉴 미디어인 MTV의 지원사격을 받은 것이었다. 10대 소녀들을 정신 없으면서도 쾌활하게 묘사한 뮤직비디오 덕분에 데뷔 싱글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은 차트 2위라는 스매시 히트를 치면서 이 신인 여가수의 시대가 화려하게 개막했음을 알렸다. 이 곡이 수록된 솔로 데뷔 앨범 < She’s So Unusual >에서는 발라드인 ‘Time after time(1위)’과 ‘She bop(3위)’, ‘All through the night(5위)’, 그리고 ‘Money changes everything(27위)’를 포함해 5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를 유린하면서 그 무렵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 티나 터너(Tina Turner)와 함께 1984년 팝 음악계를 가장 화려하게 수놓은 인물이 되었다. 그래미상도 펄펄 난 그녀를 응대해 신인상 트로피를 안겼다. 그 해 마돈나는 그래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을 비교하면 당시 마돈나와 신디 로퍼의 위상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1985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 < 구니스 >의 주제가 ‘The goonies ‘r’ good enough(10위)’로 기세를 유지했지만 이듬해 1986년 가을에는 두 번째 대결인, 이른바 ‘True 경쟁’을 통해 신디는 마침내 마돈나에게 추월을 당했다. 록, 팝, 펑크, 뉴웨이브, 펑크(funk), 레게 등 젊은층에 어필할 수 있는 색조의 음악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해 큰 성공을 낚은 < She’s So Unusual >에 비해 두 번째 앨범 < True Colors >는 그녀 특유의 톡 쏘는 감각이 많이 희석된 대중적 팝으로 약간 빛깔을 달리했다. 앨범의 타이틀 트랙 ‘True colors’로 두 번째 차트정상의 영광을 안고, ‘Change of heart(3위)’와 ‘What’s going on?(12위)’, ‘Boy blue(71위)’가 연속으로 차트를 밟았지만 기존 팬들은 성인 취향의 팝으로 전향한 신보에 적지 않게 실망했고, 이 LP를 기점으로 그녀는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앨범 판매량도 전작 600만장에서 200만장(현재)으로 격감했다. 반면 경쟁자 마돈나의 < True Blue >는 70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1989년에 공개된 세 번째 음반 < A Night To Remember >에서는 싱글 ‘I drove all night(6위)’와 ‘My first night without you(62위)’가 차트에 등장하긴 했지만 어느덧 음악적인 매력은 뚝 떨어져있었다. 반면 마돈나는 역작 < Like A Prayer >를 발표해 음악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 모두를 포유(包有)하면서 5년간의 라이벌 대결은 마돈나의 완승으로 결판이 났다.(신디 로퍼는 그러나 새 앨범의 홍보 차원으로 내한공연을 가져 국내 팬들에게 시원스런 무대를 선사했고 공연실황이 TV로도 방송되어 열기를 현장에서 맛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달래주었다). 1993년과 1998년에는 < A Hat Full Of Stars >와 < Sisters Of Avalon >을 발표해 재기를 노렸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1994년에는 < 12 Deadly Cyns And Then Some >이라는 제목의 베스트 음반을 공개해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을 리믹스한 ‘Hey now(87위)’로 마지막 희미한 불꽃을 태웠다. 이 곡은 또한 1970년대 팝 그룹 레드본(Redbone)의 히트곡 ‘Come and get your love(댄스 팝 그룹 리얼 맥코이가 커버해 1995년 19위)’를 샘플링했으며 1995년 웨슬리 스나입스(Wesley Snipes)와 패트릭 스웨이즈(Patrick Swayze)가 주연한 영화 < 투 웡 푸 >(To Wong Foo)에 삽입되었다. 흑인 싱어송라이터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는 신디 로퍼의 노래 실력을 두고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데뷔 싱글 ‘Girls just want to have fun’과 1960년대 틴 아이돌 팝 가수 진 피트니(Gene Pitney)의 오리지널을 재해석한 ‘I’m gonna be strong’, 그리고 ‘My first night without you’, ‘True colors’ 등은 그녀의 뛰어난 곡 소화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데뷔 초기의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펑크적인 스타일에 의해 굳어진 ‘왈패’ 이미지로 인해 그녀의 음악적 진가는 과소평가 받기 일쑤였으며, 성인 취향의 팝 록으로 변신하자 많은 팬들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던 것이다. 이제는 많이 잊혀졌지만 신디 로퍼의 이미지는 여전히 많은 팬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깜직한 소녀(계집애?) 목소리, 중고품 할인가게 풍의 패션, 레슬링을 즐기는 여성 그리고 MTV 시대. 하지만 무엇보다 팬들은 그녀를 통해 그 시절에 ‘여자들은 단지 재미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디 로퍼야말로 ‘1980년대 팝의 바로미터’라고 할 것이다. 그 시대를 그녀만큼 ‘비범하게’ 산 사람도 없다.
노래 : Pink (핑크,Alicia Beth Moore)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 2000년에 데뷔한 신인 R&B 여가수 핑크는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설립한 레이블 < 라페이스 >(LaFace)가 점찍은 전도유망한 기대주다. 분홍빛 머리색에서 따와 이름을 정한 핑크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업 템포의 댄스 팝과 R&B 넘버들을 들려준다. 언뜻 듣기에 TLC 같은 선배 여가수들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튀는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이 남들과 구별된다. R&B 최정상 레이블인 < 라페이스 >가 선택한 가수답게 핑크는 충분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진 가수다. 197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핑크는 음악가정에서 성장했다. 밥 딜런과 돈 맥클린의 노래를 기타로 즐겨 치곤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러 클럽을 순회하며 댄스와 힙합에 젖어들었으며, 14살 때에는 처음으로 노래를 작곡했다. 얼마후 이를 눈여겨본 음반사 관계자에 의해 오디션을 보게 되지만 탈락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핑크는 초이스(Choice)라는 여성 3인조 그룹을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 라페이스 >에 보냈다. 다행히도 그 테이프가 통과되어 핑크는 당당 < 라페이스 > 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얼마 후 초이스는 해체되고 핑크는 솔로로 독립했다. 그 첫 행보가 2000년 출시된 데뷔앨범 < Can’t Take Me Home >이다. ‘마이다스의 손’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 그리고 대릴 시몬의 손길이 닿은 이 앨범은 새로운 여성 R&B 스타를 탄생시켰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요즘의 프로듀서진들이 얼마만큼 뛰어난 지 느낄 수 있다. 꽉 찬 사운드에 탄탄한 곡 구성력은 감탄할 정도다. 가히 ‘프로듀서들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프로듀서들은 핑크의 매력적이고 원기 충만한 보컬을 충분히 부각시켰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의 곡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색. 데뷔 싱글 ‘There you go’은 TLC의 ‘No scrub’을 만들어 크게 히트시켰던 섹스피어(She’kspeare)가 작곡한 곡이다. 펑키함이 꿈틀거리는 이 곡은 톱10 히트를 기록했다. 닐 크리크의 곡을 샘플링한 발라드 곡 ‘Let me let you know’에서 핑크의 보컬은 머라이어 캐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내 모 틴 여가수가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기도 한 ‘Most girls’ ‘Just to be loving you’ 같은 곡에서의 검은 정글 리듬은 근래 틴 팝의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체적으로 TLC의 영향이 감지되는 가운데 틴 팝과 머라이어 캐리 풍의 발라드도 함께 구사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재능을 지녔지만 1집만 가지고 본다면 이 앨범의 영광은 프로듀서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2001년 6월에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야, 릴 킴과 함께 영화 < 물랑 루즈 >의 삽입곡 ‘Lady Marmalade’를 불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노래 : Natasha Bedingfield (나타샤 베딩필드)
나타샤 베딩필드(Natasha Bedingfield)가 처음 등장했을 땐 ‘Gotta get thru this’와 ‘If you’re not the one’으로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다니엘 베딩필드(Daniel Bedinfield)의 여동생이라는 어드밴티지를 이용한 벤치 마케팅 틴 아이돌 가수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타샤 베딩필드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제시카 심슨(Jessica S... 나타샤 베딩필드(Natasha Bedingfield)가 처음 등장했을 땐 ‘Gotta get thru this’와 ‘If you’re not the one’으로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다니엘 베딩필드(Daniel Bedinfield)의 여동생이라는 어드밴티지를 이용한 벤치 마케팅 틴 아이돌 가수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타샤 베딩필드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제시카 심슨(Jessica Simpson)의 동생 애슐리 심슨(Ashlee Simpson)과 얼떨결에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애슐리 심슨의 음악이 좀 더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10대의 감성에 익숙하다면 나타샤 베딩필드는 빨리 어른이 되고자 하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향에 가깝다. 1981년 11월 26일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나타샤 베딩필드는 유년시절에 영국으로 건너와 런던에 정착하면서 뮤지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오빠 다니엘 베딩필드와 친구 니콜라와 함께 DNA 알고리듬(DNA Algorhythm)을 결성해 목표에 다가섰지만 큰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2001년에 다니엘이 ‘Gotta get thru this’로 성공적인 솔로활동을 펼치자 나타샤의 첫 음악인생은 흐지부지 되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나타샤. 2004년에 대망의 솔로 데뷔앨범 < Unwritten >으로 영국을 초토화시킨 그는 미국에서도 타이틀 곡 ‘Unwritten(5위)’과 ‘These words(17위)’, ‘Single(57위)’이 연이어 싱글 차트를 정복했고 제49회 그래미에서는 ‘Unwritten’으로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부문 후보에 오르며 대영제국과 아메리카 대륙을 성공적으로 접수했다. 오빠 다니엘을 능가하는 호성적에 고무된 나타샤는 2007년에 마돈나(Madonna)의 옛 작곡 파트너 패트릭 레너드(Patrick Leonard)와 마룬 5(Maroon 5)의 보컬리스트 아담 레빈(Adam Levine) 등이 조력자로 참여한 2집 < N.B. >을 공개했지만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큰 피드백을 얻었고 ‘I wanna have your babies’라는 발칙한 제목의 노래가 구라파에서 인기를 누렸다. 2008년에 출산(?)한 세 번째 앨범 < Pocketful Of Sunshine >은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르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첫 싱글 ‘Pocketful of sunshine’은 싱글 차트 8위를 기록했다.
노래 : Toni Braxton (토니 브랙스톤)
1967년생으로 미국 매릴랜드 주 출신인 토니 브랙스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모 아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교사 자격증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프로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 윌리엄 페타웨이(William E... 1967년생으로 미국 매릴랜드 주 출신인 토니 브랙스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모 아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부터 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교사 자격증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프로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 윌리엄 페타웨이(William E. Pettaway)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녀와 자매들을 함께 그룹으로 묶어 브랙스톤스(Braxtons)를 결성, 1989년 아리스타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후,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싱글 [Good Life]의 성적은 그리 좋진 않았으나, 그 곡은 그녀의 존재를 작곡 콤비이자 자신들의 레이블인 라페이스(LaFace)를 런칭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엘에이 리드(Antonio "L.A." Reid)와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눈에 띄는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서 아니타 베이커의 매력을 가졌으면서 더 대중성이 있는 보이스의 매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1992년 영화「Boomerang」OST를 제작하면서 원래 아니타에게 부탁하려던 [Love Shoulda Brought You Home]을 그녀에게 부르게 했고, [Give U My Heart]를 베이비페이스와 함께 듀엣으로 녹음하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그녀를 팝 씬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이은 데뷔 앨범 「Toni Braxton」(1993)을 통해 [Another Sad Love Song](7위), [Breathe Again](3위), [You Mean the World to Me](7위), [I Belong to You/How Many Ways](28위)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그녀는 '중저음 소울 디바'의 위상을 계승할 후보 1순위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의 데뷔작은 미국 내에서만 8백만 장 이상을 판매하는, 신인의 데뷔앨범으로서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그래미는 1994년 시상식에서 그녀에게 '최우수 신인상'의 영예를, 그리고 그 해부터 2년 연속으로 '최우수 R&B 보컬 퍼포먼스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된 그녀의 인기는 2집「Secret」(1996)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고, 기존 프로듀서 라인업 외에도 알 켈리(R.Kelly),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등이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이 앨범 속에서는 [You Makin' Me High]와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애청되고 있는 발라드 [Unbreak My Heart](이 곡 역시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여류 작곡가 다이앤 워렌(Diane Warren)의 작품이다.)이 모두 팝 싱글 차트 1위 자리를 차지했고, [I Don't Want To/I Love Me Some Him], 케니지(Kenny G)와의 조인트였던 [How Could an Angel Break My Heart] 등이 뒤를 이어 히트했다. 앨범 역시 세계적으로 총 2천만 장 이상을 판매하면서 그녀의 인기 곡선은 끝을 모르는 듯 상승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계속 험난한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집의 히트 이후 시작된 라페이스 레이블과 그녀 사이의 계약 분쟁은 1999년 2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해결을 보긴 했으나, 2000년에 발표된 그녀의 3집 「The Heat」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한 싱글 [He Wasn't Man Enough](2위)로 기분 좋게 시작하긴 했지만, 후속 싱글들인 [Just Be a Man About It](32위), 그리고 카를로스 산타나의 기타가 가세했던 발라드 [Spanish Guitar](98위) 등이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이 앨범으로 미국 내 2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와 6번째 그래미 트로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전작과 비교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문제로 그녀는 레이블과 갈등을 빚었다. 3집 작업을 통해서 만난 민트 컨디션(Mint Condition) 출신의 멤버이자 작곡자인 케리 루이스(Keri Lewis)와 2001년 결혼한 후, 4집 앨범을 막 작업 완료를 했던 시기에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때 토니 측에서는 앨범 발매를 미뤄줄 것을 요청했으나, 레이블 측이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4집「More Than A Woman」(2002)의 홍보 활동은 그녀의 건강 문제로 계속 꼬여버렸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탄생한 둘째 아들 디젤(Diesel)은 2006년 자폐 판정을 받았다.) 넵튠스(Neptunes)가 작업한 [Hit the Freeway]가 히트하긴 했지만, 앨범의 성과는 골드 레코드로 만족해야했고, 결국 그녀는 라페이스-아리스타 레이블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블랙그라운드(Blackground) 레이블로 이적한 그녀는 2005년 5번째 앨범「Libra」로 재기를 노렸지만, 첫 싱글과 앨범의 발매가 미뤄지면서 이 앨범은 제대로 홍보를 받지 못했고, 간신히 골드 레코드에 머물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이전 레이블에게 각각 다른 말을 했던 전 매니저에게 소송을 제기, 법원의 판결을 통해 37만 5천 달러의 선불금을 돌려주고 레이블과의 계약을 종결했다. 일단 2008년 TV 리얼리티 쇼 'Dancing with the Stars'의 시즌 7에 출연하고 관련 투어를 돌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재기의 발판을 찾았고, 결국 새로운 레이블과 계약을 채결하면서 5년 만인 2010년 새 앨범 [Pulse]를 발매했다.
1994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결성된 트레인(Train)은 1990년대 초반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로부터 발흥된 복고 성향의 아메리칸 하드록을 구사하는 그룹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country)와 포크(folk)를 기저로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덧입혔던 이 흐름의 최선봉에 위치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트레인은 패트릭 모나한(Patrick Monahan, 보컬, ... 1994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결성된 트레인(Train)은 1990년대 초반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로부터 발흥된 복고 성향의 아메리칸 하드록을 구사하는 그룹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country)와 포크(folk)를 기저로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덧입혔던 이 흐름의 최선봉에 위치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트레인은 패트릭 모나한(Patrick Monahan, 보컬, 퍼커션), 롭 호치키스(Rob Hotchkiss, 기타, 보컬), 지미 스태포드(Jimmy Stafford, 기타), 찰리 콜린(Charlie Colin, 베이스), 스콧 언더우드(Scott Underwood, 드럼)의 5인조로 구성되었다. 결성 직후, 다섯은 꾸준한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며 팬층을 확보하였고, 이것은 마이너 레이블인 < Aware >와 컨택트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데뷔작 < Train >은 진득한 미국 전통 록 사운드를 가감 없이 펼쳐 보임으로서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러냈다. 1997년부터 밴드는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카운팅 크로우즈(Counting Crows)등의 오프닝을 맡으며 제 2의 도약의 기회를 모색했다. 메이저 음반사들로부터 구애의 손길이 뻗친 때가 바로 이즈음이었다. 멤버들은 컬럼비아(Columbia)와 손잡은 뒤, 1집을 재발매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의 시작점을 찍었다. ’Meet Virginia’가 당시 라디오 전파를 수시로 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4년 뒤, 두 번째 음반 < Drops of Jupiter >(2001)를 발표한 트레인은 그래미상 3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는 등의(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앨범은 현재까지 2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많은 이미지들이 그녀 안에서는 하나가 된다. 다이도는 1971년 크리스마스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다이도 암스트롱(Dido Armstrong)이다. 5살 때 리코더를 훔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클래식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국의 줄리아드’로 알려진 길드홀(Guildhall) 음악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10대의 대부분을 클래식 음악에 파묻혀 살았던 그녀는 피아노, 바이올린, 리코더 연주에 능했고, 작곡 실력과 노래 실력 또한 늘려 나간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클래식에 묻혀 살았다. 18살이 되어서 대중음악을 처음 접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뒤늦게 접한 대중음악의 매력은 클래식에서 맛볼 수 없는 강한 것이었고, 결국 다이도는 클래식을 버리고 대중음악 뮤지션으로 음악적 방향을 바꾼다. 여기에는 친오빠 롤로(Rollo)의 도움이 컸다. 정상급 소울 테크노 그룹 페이스리스(Faithless)의 리더였던 롤로는 일렉트로니카와 클래식의 접목을 원했고, 클래식을 공부한 동생 다이도를 멤버로 맞아들인다. 페이스리스의 멤버로 투어를 펼치며 팝 뮤지션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다이도는 ‘My lover’s gone’을 데모 앨범으로 제작하며 솔로전향을 선언했고,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에서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아카펠라나 기타, 피아노를 사용한 심플한 사운드를 생각하고 있었던 데뷔 앨범은 프로듀싱에 참여한 오빠 롤로 및 엔지니어의 요구에 따라 네오팝적인 사운드가 가미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포크 사운드가 결합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 탄생하게 된다. 이리하여 탄생한 데뷔작 < No Angel >은 1999년 6월, 자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었다. 발매 직후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시작은 ‘Here with me’였다. 미국 TV 시리즈인 < 로스웰 >(Roswell)에 이 곡이 테마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이어 기네스 펠트로우 주연의 영화 < 슬라이딩 도어스 >(Sliding Doors)에 그녀의 곡 ‘Thank you’가 삽입된다. 별 반응 없이 사라져가던 < No Angel >은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그와 때맞추어 인기 래퍼 에미넴(Eminem)이 자신의 곡 ‘Stan’에 다이도의 곡 ‘Thank you’를 샘플링으로 사용한 덕분에 그녀의 음악과 이름은 뒤늦게 널리 퍼지게 됐다. (‘Stan’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바로 다이도!). 이 곡은 2001년 빌보드 톱10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다이도는 이 무렵 고국 영국에 돌아와 마침내 인기스타로 올라섰고 에미넴도 ‘Stan’으로 첫 영국차트 1위의 영예를 누리며 서로 도움을 교환했다. *Dido Interview http://nine4u.asiamusic.net/dj/program.asp?popstory+15
노래 : The Script (더 스크립트)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를 즐겨 듣는 정도였다. 그러나 선생님의 용안은 훗날 전미를 정복할 한 소녀의 잠재력을 미리 점치고 있던 것이다. 비록 시작은 타의였으나, 점차 켈리 클락슨의 내면에서도 노래를 향한 열정의 꽃망울이 싹트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발성 연습으로 창법을 연마해가던 중, 지역 내 콘테스트에서 진가를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학교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할리우드 행을 택했지만 이름 없고 연줄 없는 시골 소녀를 자선할 만큼 인정 많은 곳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켈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제리 고핀(Gerry Goffin)마저 병으로 몸져누우면서 희망의 빛줄기는 한순간에 소멸해버렸고, 결국 웨이트리스와 극장 아르바이트, TV 드라마 < 사브리나 >에서 대사 없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막연히 호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민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참가 신청서는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서광의 실마리였다. 이미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여유롭게 오디션에 응해 본선까지 진출하게 된다. 꾸준히 단련해온 가창력과 전형적인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음색,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성실하고 다부진 캐릭터가 TV를 시청하는 전국의 수백만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마침내 저스틴 구아리니(Justin Guarini)와 겨룬 최종 결선 무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 58%의 지지율로 우승을 거머쥐며 인생역전, 그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던 가수의 길로 진입한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켈리는 조속히 싱글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한다. 컨트리의 영향이 컸던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을 그린 순도 높은 팝 발라드로 차트 정상을 꿰차며 켈리 클락슨의 이름을 전 세계에 분포시켰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호수처럼 맑은 두 눈을 글썽이던 소녀는 차기 싱글 ’Miss independent’에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은 기타 사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독립 여성으로 변신을 꾀했다. 켈리의 변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앨범 차트 1위로 핫 샷 데뷔한 처녀작 < Thankful >은 록, 발라드, 소울, 포크, 댄스 뮤직 등을 아울렀고, 2005년에 공개한 < Breakaway >에서는 ’Since you been gone’, ’Behind theses hazel eyes’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탄탄한 록 사운드를 구축하여 걸리시 록의 새로운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다. 아이돌 콘테스트 출신자로서 저항할 수 없는 정약인 틴 팝의 운명을 버리고 굳이 록을 택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 공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이 세상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 가지 장르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보고 싶거든요.” 아이돌인 상태로 롱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미국 폭스 TV가 주최한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초대 우승자. 이는 앞으로 가수 켈리 클락슨의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닐 문구임에 틀림없다. 초년생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역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아래 데뷔전을 치러냈어도,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 안에서 성숙한 음악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켈리의 휴먼 드라마는 오늘도 방영 중이다.
노래 : One Direction (원 디렉션 (아이돌 밴드))
멤버 : 니엘 호란(Niall Horan), 잔 말리크(Zayn Malik), 리암 페인(Liam Payne),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루이스 톰린슨(Louis Tomlinson) 이 5명의 소년들이 원 디렉션을 함께 하게 된 계기는 꽤나 이색적이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펙터(X-Factor) 시즌7에서 각각 개인별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이들은 패널인 사이먼 코웰, 니콜 셰르징거에 의... 멤버 : 니엘 호란(Niall Horan), 잔 말리크(Zayn Malik), 리암 페인(Liam Payne),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루이스 톰린슨(Louis Tomlinson)

이 5명의 소년들이 원 디렉션을 함께 하게 된 계기는 꽤나 이색적이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펙터(X-Factor) 시즌7에서 각각 개인별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이들은 패널인 사이먼 코웰, 니콜 셰르징거에 의해 그룹으로 결성하는 것이 어떠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다섯 소년은 이를 계기로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란 그룹을 결성하게 되며, 엑스팩터 파이널 리스트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들은 최종 파이널에서 아쉽게도 최종 3위를 차지했지만, 액스팩터가 끝난 후 결국 팝 계 최고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사이먼 코웰의'Syco Music'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정식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11월 18일 유럽지역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데뷔앨범 [Up All Night]는 먼저 아일랜드에서는 첫 주 앨범 차트 3위에 오르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영국에서는 첫 주 138,631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UK 앨범차트 2위로 데뷔했다.
가수이자 배우로 [Ora] [R.I.P.] [Poison] [Body On Me]등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사우스포><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가지 그림자: 심연><50가지 그림자: 해방> 등에 출연하였다. 가수이자 배우로 [Ora] [R.I.P.] [Poison] [Body On Me]등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사우스포><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가지 그림자: 심연><50가지 그림자: 해방> 등에 출연하였다.
노래 : Chris Brown (크리스 브라운)
노래 : Shakira (샤키라,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그리고 무엇보다 노장 산타나(Santana) 등의 연이은 선전에도 불구, 라틴 팝의 황제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추락은 실로 충격이었다. 본토 팝 시장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신흥 메카로 자리잡았던 라틴 열풍이 점차 그 위용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그리고 무엇보다 노장 산타나(Santana) 등의 연이은 선전에도 불구, 라틴 팝의 황제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추락은 실로 충격이었다. 본토 팝 시장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신흥 메카로 자리잡았던 라틴 열풍이 점차 그 위용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관측이 빗발쳤다. 확실히 그 즈음의 라틴 뮤직은 ‘젊고 신선한 피’의 수혈이 시급했다. 때에 맞춰 무대에 입성한 샤키라(Shakira)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섹시한 자태와 화끈한 춤 실력, 거기에 수준 이상의 음악성 까지. 제1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성 팝 보컬’과 ‘최우수 여성 록 보컬’ 부문을 수상, 미리 검증 절차를 끝마친 점도 그의 미국 정복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뉴 라틴 팝 헤로인으로 단숨에 떠오른 샤키라의 본명은 샤키라 이사벨 메바랙 리폴(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1977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콜롬비아 토박이인 어머니와 레바논 이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두 문화권의 음악을 모두 섭렵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시에 영미 헤비메탈에도 심취, 자신만의 사운드 메커니즘 설계도를 그려나갔다. 8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그는 5년 뒤인 1991년에 데뷔작 < Magia >(Magic)로 음악 인생의 출항 경적을 울렸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상당한 성숙미를 내뿜은 점이 호평을 이끌어내며 샤키라는 모국에서 서서히 명성의 탑을 쌓아나갔다. 그는 1993년의 소포모어 음반 < Peligro >(Danger)에서 팝에 경도된 소리샘을 구현하며 본격적인 야심을 드러냈다. 허나 별다른 피드백을 얻지 못한데 좌절, TV 드라마에 얼굴품을 팔며 재기전 준비에 들어갔다. 절치부심 끝에 1995년 선보였던 3집 < Pies Descalzos >(Bare Feet)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브라질,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결국 미국에서도 100만장 이상을 세일즈 했던 것. 무엇보다 록의 에센스를 포섭한 것이 성공의 주동인(動因)이었다. 1997년 리믹스 앨범인 < The Remixes >의 발표 즈음에 그는 글로리아 에스테판(Gloir Estefan)의 남편이자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에밀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과 매니저 계약을 체결, 월드 스타가 되기 위한 시금석을 마련했다. 이후 등장한 작품이 바로 1998년의 < Donde Estan Los Ladrones? >(Where Are The Thieves?). 에밀리오 에스테판과 공동 프로듀스를 담당한 음반은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 1위를 무려 11주간 수성하며 샤키라 시대의 개막 축포를 터뜨렸다. 싱글 ‘Ciega, Sordomuda’, ‘Tu’ 등은 라틴 싱글 차트 정상을 꿰찼고 ‘Ojos As?’도 팬들의 폭 넓은 지지를 획득했다. 모두 라틴과 록, 중동풍 사운드의 트로이카적 조화를 일궈낸 덕분이었다. 이후 < MTV Unplugged >(2000)로 앞서 설명한 라틴 그래미 2개 부문과 그래미 라틴 팝 앨범 트로피를 차지한 그는 2001년의 < Laundry Service >로 그간 소망하던 모든 꿈을 이뤄냈다. 무엇보다 미국 마케팅을 겨냥해 대부분의 곡을 영어로 써낸 점이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 3위, 트리플 플래티넘, ‘Whenever, Wherever’(6위) ‘Underneath Your Clothes’(9위) 등의 탑 텐 히트 송이 이를 잘 대변해주었다.
노래 : Miley Cyrus (마일리 사이러스)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즈니채널의 TV코미디시리즈 (Hannah Montana)에 주역을 맡아 2006년 하루 밤새 대형스타로 급부상했다. 부전자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2년 ‘Achy breaky heart'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행운을 물려받은 것. 더욱이 ’Ac...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즈니채널의 TV코미디시리즈 (Hannah Montana)에 주역을 맡아 2006년 하루 밤새 대형스타로 급부상했다. 부전자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2년 ‘Achy breaky heart'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행운을 물려받은 것. 더욱이 ’Achy Breaky Heart‘가 빌보드차트 정상을 강타한 그해 마일리가 태어나 천우신조(天佑神助)가 따로 없었다. 1992년 11월23일,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빌리와 아내 레티시아(Leticia) 사이러스는 하늘이 내려준 딸 데스티니 호프 사이러스(Destiny Hope Cyrus)를 선물 받아 겹경사를 맞았다. 꼬마둥이 때부터 쾌활한 성격의 미소천사였던 데스티니 호프는 스마일리라는 별칭을 얻었고 그러한 연유로 지금의 마일리로 불리게 되었다. 타고난 탤런트 활동은 텔레비전 의학시리즈 (2003)의 에피소드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하면서 첫발을 내딛었다. 같은 해 그녀는 팀 버튼(Tim Burton)의 영화 (Big Fish)에서 단역으로 출연해 대형스크린에까지 발을 뻗었다. 마일리는 일찍이 노래를 쓰고 가창법을 배우면서 음악에 관심과 자질을 개발해 나아갔다. 이제 갓 10대에 들어선 꼬마였던 그는 마침내 2005년 타고난 연기와 음악 재능을 작품에서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마일리는 의 타이틀 역으로 캐스팅되었고, 2006년 3월24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 TV쇼 프로그램에서 그는 낮엔 평범한 여학생 마일리 스튜어트면서 밤이면 밤마다 금발의 한나 몬타나로 변신해 세계적 유명 팝 스타로서의 숨겨진 끼와 춤 실력을 발산하는 생기발랄 10대 소녀를 연기했다. 2006년 3월 “한나 몬타나”에 출연,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마일리는 청소년 시청자들의 대대적 호응에 힘입어 디즈니채널의 뉴 호프(New Hope), 힐러리 더프와 린제이 로한의 뒤를 이어 새로운 ‘드라마 퀸’으로 추대되었다. 10월엔 시트콤 에서도 음악가 아버지로 동반 출연한 그의 아버지 빌리 레이와의 듀엣노래 ’I learned from you'를 포함해, TV쇼에서 마일리가 부른 노래와 다른 삽입곡들로 구성된 사운드트랙음반이 발매되었다. 그해 가을 마일리는 디즈니가 배출한 또 다른 팝 스타 치타 걸스(Cheetah Girls)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 관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2006년 10월 첫 번째 사운드트랙앨범 이 발매된 데 이어 2집과도 같은 더블앨범 가 2007년 11월 발매되었다. 는 발매되자 곧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싱글 커트된 ‘See you again'(또 봐요)은 빌보드싱글차트 탑10을 노크했다. 2008년 봄에는 45개 지역 순회공연실황을 보너스 DVD와 패키지로 묶은 (Hannah Montana/Miley Syrus: Best of Both World Concert Tour)가 음반시장에 풀렸다. 그는 또한 자신이 공동작사, 작곡에 참여한 독집 < Breakout >(2008)을 공식 발표하며 본격 팝 아티스트 활동을 공표했다. ※마일리의 형제자매들 마일리는 이복언니 브랜디(Brandi), 두 명의 이복오빠 트레이스(Trace)와 크리스토퍼 코디(Christopher Cody), 남동생 브레이슨(Braison), 그리고 여배우 여동생 노아 린제이 사이러스(Noah Lindsey Cyrus)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두 그의 보컬에 영향받았음을 인정하며 그의 음악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지 탁월한 창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록음악 역사에 있어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아티스트의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한 음악인이라는 점에서 그를 더욱 기억하게 한다. 70년대가 되기 전 만해도 밤낮으로 사랑과 낭만만을 얘기하며 소일하던 모타운식 소울 음악은 당시 대다수 흑인들이 공감해오던 ‘어두운 현실’엔 둔감했다. ‘팔리는 음악’을 원했던 회사측과의 마찰은 불가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을 위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산고 끝에 록 역사를 대표하는 명반 < What’s going on >(1971)은 탄생했다 소울 음악은 60년대 그가 소속되어있던 모타운 레코드사를 통해 보다 대중적인 음악 문법으로 자리 잡은데 이어, 그는 같은 회사 소속의 스티비 원더와 함께 미국 대도시 후미진 곳에서 벌어지는 ‘게토 리얼리티를’ 자신의 노래에 담아냄으로써 소울이 ‘사회성’이란 화두를 본격적으로 끌어내는데 기여를 했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그는 소위 후배 흑인 뮤지션들의 ‘대부’이다. 8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분수령을 일군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론트 맨 척 디(Chuck D)는 1988년도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을 발표하며 롤링스톤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는 이번 앨범에서 힙합의 < What’s going on > 버전을 내놓고 싶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마빈 게이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인정했다. 마빈 펜츠 게이 주니어라는 본명으로 1939년 4월 2일 워싱턴 디씨에서 태어난 그는 목사를 아버지로 둔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다소 억압적인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하게 해 아버지 때문에 억눌린 영혼을 달래줄 위안이 된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에 입대,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는 락 앤 롤 스타 보 디들리(Bo Didely)를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된다. 1958년 두왑 그룹인 레인보우에 가입, 이듬해엔 시카고로 진출해 ‘문 그로우’ 라는 두왑밴드에서 활동하며 체스(Chess) 레코드에서 그의 ct첫 싱글 ‘Mama roocie’를 녹음한다. 미국 전역 투어에 나선 문 그로우는 디트로이트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당시 그의 연주를 지켜보던 모타운의 설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는 3옥타브가 넘는 그의 탁월한 테너 창법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61년 모타운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베리 고디와 운명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처음엔 세션 드러머로서 모타운의 일원이 된 그는 모타운 간판스타이자 작곡가인 스모키 로빈슨과 함께 활동한다. 1961년 그는 사장인 베리 고디의 누이인 안나와 결혼한다(무려 18살의 연상). 사장과 사돈관계가 된 덕에 회사측에 전폭적인 지원을 얻게 된 그는 이듬해 첫 싱글 ‘Stubborn kind of fellow’(1962)를 발표하고 흥겨운 댄스 팝 ’Hitch hike’(1962)로 빌보드 Top 40에 진입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크루닝 창법에 영향 받았던 그는 당시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원했지만, 회사 측은 그에게 흥겹게 흔들기 좋은 빠른 댄스 음악만을 요구했다. 큰 키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덕에 유난히 여성 팬들이 많이 따랐던 그였지만, 무대에 올라 몸을 흔들며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것은 늘 못 마땅했다. 후에 그가 회고하길 ‘나는 무대에 나가 청중들 앞에서 내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했을 정도이니, 얼마 후 있을 회사 측과 창작권을 두고 생긴 갈등은 이미 데뷔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1960년대 내내 그는 모타운 사를 통해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했다. ‘Pride & joy’(1963)로 처음 Top 10에 진출한 그는 잇달아 발표한 싱글 ’How sweet it is’(1964), ‘Aint that peculiar’(1965)을 Top 10에 진입시킨다. 솔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갈 무렵 그는 모타운 소속의 실력 있는 디바들과 듀엣 곡을 많이 취입했는데, 메리 웰즈(Mary Wells)과 함께 한 ’What’s the matter with you baby’(1964)을 시작으로, 킴 웨스튼(Kim Weston)과 함께 한 ’It takes two’(1966), 70년대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와 함께 한 ‘My mistake is to love you’(1974)등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와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디바는 바로 타미 테렐(Tammi Terell)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66), ’Your precious love’(1967),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1968), ’You’re all I need to get by’(1968) 모두 Top 10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콤비’는 안타깝게도 타미 테렐의 요절로 인해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에게 첫 팝 차트 넘버원의 영광을 안겨준 ‘I heard it through grapevine’(1968)로 그의 인기전선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듬해 ’Too busy thinking about my baby’(1969), ’That’s the way love is’(1969)를 Top 10에 진입시키며 인기는 더해갔지만, 이내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데뷔 때부터 창작권을 두고 벌어진 회사 측과의 끈질긴 줄다리기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그에게 투쟁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달콤한 사랑타령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표출해보길 갈망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얻기 위한 힘겨운 투쟁 끝에 결국 모타운 사의 백기를 받아내며 ‘음반 제작에 관한 모든 전권을 그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전리품을 얻어낸다. 흑인의 입장에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의 비참한 현실을 늘 생각해왔던 그는 주저 없이 이런 자신의 고민을 음악 속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다. 흑인 빈곤문제, 실업, 월남전등, 70년대 초 그의 눈에 보인 흑인의 현실은 ‘참담함’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노래했던 발랄한 60년대의 흑인 음악은 슬라이&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등 기라성같은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한층 진지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1971)이었다. 흑인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놓은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은 회사 측에 우려에도 불구, 앨범 수록 곡 중 무려 4곡(What’s going on, God is love,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이 Top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앨범은 지금까지 8백만장이라는, 당시로선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스트링을 동원한 세련된 연주 편곡, 참회록을 쓰듯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진행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은 당시 소울음악에선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앨범 < What’s going on >은 그의 음악 경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성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Inner city blues’(1971)에서 목격했던 퍼커션의 가열 찬 울림은 70년대 흑인 음악의 대표 트렌드인 ‘펑키 사운드’로의 변화를 예고했고, 앨범으로는 발표 안 된 저주받은 싱글 ‘You ’re the man pt. 1, 2’(1972)에선 가성, 두성, 진성 등 한층 다채로워진 그의 보컬 연기가 압권이다. 재즈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영화 음악 작곡으로도 이어져 노래보다 연주 쪽에 관심이 반영된 영화음악 앨범 < Trouble man >(1972)으로 이어진다. < What’s going on >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이전의 고뇌하는 흑인 지성임을 포기하고 이번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사랑의 전령사로 변신한다. 그의 두 번째 넘버원을 안겨다 준 앨범< Let’s get it on >(1973)은 ‘성 행위’를 찬미하는 노래들로 가득 찬 앨범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게 했다. 빌보드 No.1 곡인 ‘Let’s get it on’은 그를 단번에 섹시 스타로 변모시켰고, 그가 앨범에서 얘기했던 ’자연스러운 성의 표현 ‘은 80년대 들어 프린스나 조지 마이클같은 팝 스타들의 음악 세계로 계승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첫 아내였던 안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재니스라는 여인과 이미 두 집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았던 그의 성적 편력은 결국 아내와의 별거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충격에 슬럼프에 빠져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재기의 몸부림을 친 그는 베리 고디의 주선으로 만난 레온 웨어(Leon Ware)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 < I want you >(1976)을 발표하지만, 수록곡 ‘I want you’, ’After the dance’가 약간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히트곡에 목말라하던 그는 1977년 런던 팔라디움 구장에서의 콘서트 더블 실황 앨범< Live at the Palladium >을 발표하며, 13분이 넘는 디스코 곡 ‘Got to give up’을 수록하고, 4분대의 싱글로도 커팅, 그의 세 번째 넘버 원 싱글로 등극된다.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던 ’Got to give up’은 팝 차트, 앨 앤 비 차트 1위를 석권하며 그에게 가수로서 회생의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Got to give up’의 기쁨도 잠시, 결국 그는 안나와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에 대한 위자료를 다음에 발표하는 앨범 인세로 한다는 합의를 보게 된다. 앨범 < Here, my dear >(1978)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고 수록 곡 ’When did you stop loving me, When did I stop loving you’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남과 해어짐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그의 뼈저린 고해성사는 아름다운 가사말과 편곡의 세련됨에도 불구, 이렇다할 히트 싱글 없이 앨범은 파묻히며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안 알려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안나는 앨범 내용이 사생활 침해라며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에 이어 다시 몇 년간은 그에게 혼란의 시기였다. 두 번째 아내였던 제니스와 급기야 파경에 이르렀고, < Love Man >(1979-발매 취소)과 < In our life time >(1981)의 흥행실패는 그를 더욱 마약으로 치닫게 했다. 급기야 그는 1981년 20년간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게 했던 모타운 사를 떠나, 하와이로 이주,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 정확히 1년 후인 1982년, CBS 레코드와 전속 계약하며 그에겐 마지막 걸작으로 남게 된 < Midnight Love >(1982)를 발표한다. ‘Let’s get it on’에 버금갈만한 농염한 보컬이 인상적인 싱글 ‘Sexual healing’이 팝 차트 3위까지 오르며 그는 화려하게 재기한다. 공백기 동안대중들과의 소원함을 해소하기 위해 TV 출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그는 베리 고디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둘의 악연(?)을 만회해보려고도 했고, NBA 농구 경기때 미국 국가를 소울 창법으로 불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에서 연주했을 때 이후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재기 의지는 이내 사그러들고 있었다. 이미 코케인에 찌들 때로 찌든 그의 몸은 말을 듣질 않았고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던 목사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극은 그의 아버지와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고, 1984년 4월, 그의 45회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심한 다툼 끝에 화를 가누지 못한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듬해인 1985년 모타운사와 CBS가 공동으로 그의 미 발표곡을 모은 < Dream of a life time >과 < Romantically Yours >를 내놓는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히 이뤄져 < 롤링스톤 >을 비롯한 록 전문지들은 앞 다투어 그의 앨범 < What’s going on >을 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추대하기 시작했고,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등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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