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올림포스에 비견될 만큼 수많은 신들이 펼치는 흥미로운 이야기
‘신들의 고향’제주섬의 신화·전설·민담을 한데 묶다!
살림출판사에서는 지난 14년간 문·사·철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과, 과학기술·예술·실용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살림지식총서≫를 500종 이상 출간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문고’임을 자처하는 ≪살림지식총서≫가 이번에는 ‘제주의 신화·전설·민담’(전 8권)’을 준비했다. 문고본으로서는 처음 시도되는 기획이다.
‘신화’는 신들이 등장하는 세상의 근원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 ‘전설’은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며 사실을 뛰어넘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민담’은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특이한 체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두 권으로 펴내는 『제주 신화』는 한반도나 대륙의 상징인 강남천자국에 가서 구국의 영웅이 되고도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영웅 궤네깃도의 얼굴에서 운명과 맞서는 또 다른 탐라국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신화가 되살아나는 섬, 제주 하면 ‘탐라국의 문화적 독립’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제주도 신화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석범의 입담과의 의욕적인 작업을 통해 새 옷을 갈아입었으며, 현대의 독자들에게 경이로운 제주도 신화의 참맛을 비로소 선보이게 되었다.
바야흐로 제주 홀릭의 시대!
하지만 외형의 성장만큼 내실은 튼튼한가?
현재 제주도 인구는 65만 명 정도 된다. 한 해 유입자가 1만 명 이상이고 관광객은 1,000만 명을 웃돌고 있다. 바야흐로 ‘제주 홀릭’의 시대! 땅값은 치솟고 아파트 거래 가격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땅값, 아파트값 상승이라는 물질적 풍요는 역설적으로 그 안의 정신을 핍박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우려를 딛고, 아파트와 땅 밑에 스민 제주(탐라)의 에스프리를 복원하여 재미있게 전달하려는 데도 한 목적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탐라의 원형질이 무엇인가를.
‘이석범의 탐라유사 8부작’을 통해 제주도민과 제주도 관광객이 ‘천지왕’을 알게 되고, ‘설문대할망’이 어떻게 살았고, ‘오돌또기’가 어떻게 해서 생겨난 노래인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제주도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 있다면 이 책의 소임은 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탐라국의 계보를 천지왕에서 설문대할망, 삼신인으로 연결짓다!
‘제주 전설’(전 5권) 출간 의의와 전체 구성
이번에 펴내는 ‘제주 전설’(전 5권)의 특징은, 우선 기존 민속학자나 작가에 의해 편찬된 제주도 전설 편편들을 총망라·집성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그간 채록은 되었으나 현대어로 옮겨지지 않은 것들을 다수 포함하여 기존의 것들과 차별을 두었다.
또한 전설 분류에서 ‘제주장사 전설’ 항목을 따로 설정하여 제주민들의 소망과 한계의식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제주 전설 1』, pp.37~175)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탐라국’의 계보를 ‘천지왕→설문대할망→삼신인’으로 연결하여 서사의 맥을 하나로 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화는 이 책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그동안 서로 관계가 없거나 모순 관계였던 제주 신화의 ‘천지왕’(『제주 신화 1』, pp.18~21)과 제주 전설의 ‘설문대할망’(『제주 전설 1』, pp.9~19), 그리고 제주 역사의 고(高)·양(梁)·부(夫) ‘3성씨(三姓氏)’(『제주 전설 1』, pp.20~24)를 한 줄로 연결한 이 계보는 신화와 전설 등을 통괄하여 ‘탐라의 대서사’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주 전설’(전 5권)의 전체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주 전설 1』에는 제주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3편), 제주의 이름난 장사에는 누가 있었는지(30편)에 대해 묶어놓았다. 제주 사람들은 오랫동안 제주에서 큰 인물이 나기를 기다려왔다. 서울에서 가장 멋 곳에 있는 섬이어서 임금의 덕이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탐관오리들의 등쌀이 심해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국이었던 옛 ‘탐라’의 기억을 되살리며, 엄청난 힘을 지닌 장수가 출현하여 자기들의 임금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수많은 ‘장사 전설’로 남긴 것이다.
『제주 전설 2』(30편)와 『제주 전설 3』(29편)에는 제주의 역사에 얽힌 전설을 모아놓았다. 그 가운데 『제주 전설 2』에는 제주 출신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 이야기를 담았고, 『제주 전설 3』에는 충견·명견·명마에 관한 이야기와, 효부·효자·열녀 등 다른 지방의 전설과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 가운데 『제주 전설 4』에는 ‘제주의 자연신앙’에 관한 전설 25편과, ‘무속신앙’ 전설 12편을 모아 실었다.
『제주 전설 5』에는 ‘제주의 풍수신앙’ 29편과, ‘도깨비(도채비)신앙’에 대한 전설 8편을 실었는데, 특히 ‘풍수’는 ‘무속’ 못지않게 제주민들에게 거의 신앙화되어 생활 속에 자리 잡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이는 불모의 섬이라는 제주의 지리결정적 상황 때문에 육지보다 풍수가 더 성행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제주도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설문대할망, 삼신인 전설에 담긴 탐라국 이야기
설문대할망설문대는 이 세상을 창조한 천지왕의 늦둥이 딸이다. 그의 큰오빠 대별왕은 저승을, 작은오빠 소별왕은 이승을 다스리고 있었다. 설문대는 태어날 때부터 몸집이 크고 힘이 센데다 호기심도 많고 활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천지왕은 설문대로 하여금 시중만 들게 했다. 지루한 생활만 하고 있던 설문대는 작은오빠인 소별왕이 다스리고 있는 이승에 관심이 쏠렸다.
어느 날 몰래 하늘에서 이승으로 뛰어내린 설문대가 내려앉은 곳은 한라산이었다. 산에 영기가 서려 있어 이곳 사람들은 한라산을 할로영산이라고 불렀다. 이곳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여인 설문대를 존칭하여 ‘설문대할망’이라고 불렀다.
설문대할망의 식사량과 배변량은 엄청났다. 설문대의 똥무더기가 쌓인 곳은 360개의 오름이 되었고, 설문대의 소변으로 인해 동강 난 땅이 ‘소섬(牛島)’이 되었다. 설문대할망이 왼쪽 발을 잘못 뻗어 우도에 낸 구멍 두 개가 ‘고래동굴’이다. 제주 조천리에 있는 엉장매코지는 설문대할망이 다리를 놓아주다 만 흔적이고, 신촌리 암석에 있는 큰 발자국이 그때의 자취라고 한다.(『제주 전설 1』, pp.9~19)
삼신인 한라산 북녘 기슭 모흥혈(지금의 삼성혈)의 구멍 세 개로부터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태어났는데, 맏이는 고을나(고씨高氏의 시조), 그다음은 양을나(양씨梁氏의 시조), 셋째를 부을나(부씨夫氏의 시조)라 했다. 이들이 자라 바다에서 떠내려온 커다란 상자 속에서 나온 세 여인과 혼인을 했다. 이들은 동굴 속에서 살다가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이들이 오곡의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니, 날로 풍요를 얻었고, 인간 세상 ‘탐라국’을 이루게 되었다.(『제주 전설 1』, pp.20~24)
고종달의 단맥 탐라국이 번성하던 무렵, 중국의 어느 왕이 왕후가 죽자 새 왕비를 얻고자 신하들에게 후보를 천거하도록 지시한다. 신하들은 왕의 마음에 드는 신붓감을 찾느라 탐라국에까지 오게 된다. 거기에서 만난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여인을 왕에게 보이자 왕이 흡족해한다. 곧 임신을 하게 된 새 왕비는 알을 다섯 개나 낳았는데, 알 하나 당 열 명의 왕자가 태어났다. 건장한 왕자들은 모두 장군의 기상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이들을 가만 두면 큰일을 저지를 것이라 걱정을 했다. 바로 왕비가 왕후지지의 기운을 타고난 탐라국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고종달이 왕의 명을 받들어 탐라국에 와 물의 혈(穴)을 찾아, 모두 끊어버렸다. 왕의 기운이 서려 있는 제주 안덕면 화순리 산방산 아래에 이르러 용의 등 부분이 됨 직한 부분까지 다 꿰뚫은 후에야 탐라국을 떠났다. 고종달이 탐라국의 혈을 모두 끊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제주에는 샘이 드물고, 장수나 왕도 나지 못하게 되었다. 제주도가 오래도록 남에게 시달림만 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제주 전설 1』, pp.25~34)
제주도의 장사에는 어떤 인물이 있었을까?
날개 달린 오 찰방, 천하장사 닥밭 정운디, 도적이 된 새샘이 이야기
오 찰방 서울에 큰 도둑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던 차에 천금 상을 주겠다는 방(榜)을 보고, 제주도 오 찰방은 도둑 잡기에 나선다. 격투 끝에 도둑을 잡았지만 현상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역모를 꾀할 우려가 있다며 옥에 갇혔다. 그러나 제주 사람임을 알게 된 임금은 안심하고는 “서울 놈 같으면 사형을 시킬 것이지만, 제주섬놈에 불과하니 큰일은 못 할 것이로다. 너에게 작은 벼슬이나마 내릴 것이니 고향에 돌아가 열심히 맡은 일을 하도록 하라”며 겨우 찰방 벼슬을 내렸다.(『제주 전설 1』, pp.37~48)
정운디 좋은 집안 출신의 오 찰방과 천한 종인 정운디는 씨름판에서 매번 맞붙었는데, 늘 정운디의 승이었다. 마침 대정 모슬포진 조 방장이 쌀섬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도둑의 소굴을 지나야 하므로, 정운디에게 이를 부탁했다. 이에 정운디는 70명이나 되는 도둑 떼를 굵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 휘둘러 모조리 붙잡았다.(『제주 전설 1』, pp.49~54)
새샘이 정운디가 아무리 센 장사라 해도 새샘이의 팔 하나를 이기지는 못하였다. 그만큼 힘이 센 장사인 새샘이가 종노릇을 해도 배가 고파 그만 도둑이 되고 말았다. 민간이 피해가 심해지자 대정 현감은 정운디로 하여금 새샘이를 잡게 한다. 정운디는 현감에게 밧갈쇠(큰 수소) 세 마리와 백미 닷 섬에, 부룽이(두 살짜리 수소)에 백미 열 말을 받아먹고, 밧줄 열다섯 발에다 건장한 사내 30명을 받아, 새샘이를 잡으러 간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꾀를 낸 정운디는 새샘이를 잡아 올린다.(『제주 전설 1』, pp.5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