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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영화음악 (I'm Not There OST - Bob Dy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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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아임 낫 데어 영화음악 (I'm Not There OST - Bob Dylan)

[ 2CD ]
Karen O, Stephen Malkmus, Anohni, Marketa Irglova, Glen Hansard 노래 외 10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07년 11월 08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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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영화음악 (I'm Not There OST - Bob Dylan)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07년 11월 08일
시간, 무게, 크기 2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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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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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15명)

노래 : Stephen Malkmus (스티븐 말크머스)
노래 : Anohni (아노니 (안토니 앤 더 존슨스, 앤토니 헤가티),Antony Hegarty / Antony and the Johnsons)
노래 : Marketa Irglova (마르게타 이글로바 (스웰시즌))
이글로바는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작사•작곡가로, 체코의 프라하에서 자랐다. 그녀는 2006년, 19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글렌 한사드의 솔로 앨범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에 참여했다가 <원스>의 음악 작업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처음으로 피아노를 사준 7세에 음악을 시작했다. 그녀가 9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기타를 사주었다. 그녀... 이글로바는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작사•작곡가로, 체코의 프라하에서 자랐다. 그녀는 2006년, 19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글렌 한사드의 솔로 앨범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에 참여했다가 <원스>의 음악 작업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처음으로 피아노를 사준 7세에 음악을 시작했다. 그녀가 9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기타를 사주었다. 그녀는 당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 뛰어난 청음 능력을 보여주며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존 카니 감독이 처음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던 때, 글렌 한사드는 마르게타 이글로바를 ‘그녀’역에 꼭 어울리는 인물로 추천했고,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원스>의 촬영 당시 19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선보이며 자연스레 사랑스런 ‘그녀’가 되어갔다.

[필모그래피]

원스(2006)
글렌 한사드는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스스로 재능을 만들어 갔다. 한사드는 앨런 파커의 <더 커밋먼츠(The Commitments)>(1991)라는 영화에서 기타리스트 역으로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게 된다. 이 작품의 출연을 계기로 그는 1990년 ‘더 프레임즈’라는 밴드를 만들고 음반을 낼 수 있게 ... 글렌 한사드는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스스로 재능을 만들어 갔다. 한사드는 앨런 파커의 <더 커밋먼츠(The Commitments)>(1991)라는 영화에서 기타리스트 역으로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게 된다. 이 작품의 출연을 계기로 그는 1990년 ‘더 프레임즈’라는 밴드를 만들고 음반을 낼 수 있게 됐다. <더 커밋먼츠> 이 후 한사드는 영화를 찍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오래 전 밴드를 떠났던 존 카니 감독의 제안에 의해 15년만에 <원스>(2006)라는 작품에서 다시 한번 가난한 기타리스트 역을 맡게 된다. <원스>는 적은 예산과 부족한 촬영장비, 2주 간의 짧은 제작기간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된 소품 같은 영화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다큐의 형식을 취한 진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음악은 세계의 많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글렌 한사드는 이 영화에서 만난 상대 여배우 마글레타 이글로바와 실제 연인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극중 상황과 같이 영화 <원스>의 거의 모든 곡은 두 커플의 공동작업을 통해 탄생했고,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둘은 <원스>의 'Falling Slowly'로 주제가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는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 이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더 이상 연기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스>를 음악을 위해 다시 찍게 됐다고 밝힌 만큼 음악을 위한 영화에서 그를 다시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보인다.

[필모그래피]

원스(2006)
노래 : Cat Power (캣 파워,Chan Marshall)
본명 샬린 마리 마샬(Charlyn Marie Marshall), ’챈 마샬’(Chan Marshall)로도 불리는 캣 파워(Cat Power)는 가수와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겸비한 인디 록 뮤지션이다. 남부출신 가수 겸 작곡가인 그녀의 아버지 찰리(Charlie)는 지방을 전전하며 순회공연을 하는 피아니스트였다. 고등학교 중퇴 후 마샬은 뉴욕에서 캣 파워란 이름으로 연주하며 자신의 음악성을 찾아갔다. 그녀는 리즈... 본명 샬린 마리 마샬(Charlyn Marie Marshall), ’챈 마샬’(Chan Marshall)로도 불리는 캣 파워(Cat Power)는 가수와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겸비한 인디 록 뮤지션이다. 남부출신 가수 겸 작곡가인 그녀의 아버지 찰리(Charlie)는 지방을 전전하며 순회공연을 하는 피아니스트였다. 고등학교 중퇴 후 마샬은 뉴욕에서 캣 파워란 이름으로 연주하며 자신의 음악성을 찾아갔다. 그녀는 리즈 페어(Liz Phair)의 오프닝 무대에 서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시작했고, 공연 활동 중 만난 소닉 유스의 드럼연주자 스티브 셸리(Steve Shelley)와 투 달라 기타(Two Dollar Guitar)의 팀 폴얀(Tim Foljahn)이 그녀의 백 밴드가 되어주기로 하면서 한층 더 힘을 얻었다. 같은 날 녹음해 시차를 두고 공개한 < Dear Sir >(1995)와 < Myra Lee >(1996)의 발매에 이어 캣 파워는 마타도어(Matador)와 계약을 체결하고 1996년 < What Would the Community Think >를 발표했다. 이 앨범으로 그녀는 불안한 듯 감정이 풍부한 노래스타일과 정서적 정화를 주는 보컬리스트로서 진가를 인정받았다. 2년 후 최상의 앨범 < Moon Pix >를 낸 캣 파워는 2002년 봄, 커버스(The Covers) 레코드사로 옮겨 새 앨범 < You Are Free >(2003)를 발매했다. 더욱 풍부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내재한 이 앨범에는 데이브 그롤(Dave Grohl)과 에디 베더(Eddie Veddr)가 카메오로 참여해 더욱 빛을 발했다. 멤피스로 귀환해 사운드의 개혁을 시도한 < The Greatest >(2006)모음집에는 또한 기타연주자 겸 작곡가 마본 “티니” 핫지스(Mabon "Teenie" Hodges), 베이스연주자 리로이 “플릭” 핫지스(Leroy "Flick" Hodges) 그리고 드럼연주자 스티브 팟츠(Steve Potts)를 포함해 전설적인 멤피스 소울 뮤지션들이 참여해 앨범의 가치를 한층 더 격상시켜 주었다. 그리고 2년 후 커버 곡들로 구성된 < Jukebox >를 발표해 컨트리, 소울, 블루스, 재즈를 혼합한 음악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노래 : Iron & Wine (아이언 앤 와인 (포크 보컬),Samuel Beam)
노래 : Willie Nelson (윌리 넬슨,Willie Hugh Nelson)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노래 : Bob Dylan (밥 딜런 ,Robert Allen Zimmerman)
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聖人)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 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聖人)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eatles) 그리고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이들 ‘전설의 빅 4’ 가운데에서도 딜런이 남긴 궤적은 차별화 아닌 특화(特化)되어 역사를 장식한다.

얼핏 그의 위상은 ‘실적주의’로 따질 때 매우 허약해 보인다. 엘비스, 비틀스, 롤링 스톤즈는 그 화려한 전설에 걸맞게 무수한 히트곡을 쏟아냈다. 넘버 원 히트곡만 치더라도 엘비스는 18곡(통산 2위), 비틀스는 20곡(1위), 스톤즈는 8곡(11위)이나 된다. 하지만 딜런은 그 흔한 차트 1위곡 하나가 없다. ‘Like a rolling stone’과 ‘Rainy day woman #12 & 35’ 등 두 곡이 2위에 오른 것이 고작이다. 차트 톱 10을 기록한 곡을 다 합쳐봐야 4곡에 불과할 뿐이다. 그에게 대중성이란 어휘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업적이란 말과는 아예 인연이 없다. 이렇듯 실적이 미미한 데도 록의 역사는 마치 신주 모시듯 그를 전설적 존재로 떠받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틀스, 스톤즈, 엘비스는 차트 정복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비록 그 가지는 다를지언정 ‘록의 스타일 확립’ 이라는 몸체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비틀스는 록의 예술적 지반을 확대했고, 스톤즈는 록에 헌신하며 형식미를 완성했고, 엘비스는 록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고들 한다. 분명히 딜런도 몸체에 자리한다. 깃털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타(他) 3인의 몸체가 외양이라면 그는 ‘내면’ 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노랫말이요, 메시지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음악은 사운드와 형식만으로 이미 메시지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로큰롤이 폭발하여 확산되던 시점인 1950년대, 즉 엘비스가 활약하던 당시에 로큰롤은 메시지가 없었다. 1960년대 들어서 비틀스가 미국을 급습해 록의 르네상스를 일궈내고 있던 때까지도 록은 의미있는 가사와 격리된 상태였다. 그래서 의식계층으로부터 멸시를 당했다. 그 때 밥 딜런이 있었다. 비틀스는 누구보다 먼저 딜런의 위력을 절감했다. 그의 포크 사운드와 메시지를 귀담아 듣고 그것을 자신들의 음악에 적극 수용한다. 1965년말 < Rubber Soul > 앨범의 수록곡인 ‘In my life’, ‘Girl’, ‘Norwegian wood’ 등에서 ‘톤 다운’ 을 드러내며 메시지를 잠복시킨 것은 전적으로 딜런의 영향 때문이었다.

밥 딜런은 실로 대중 음악의 지성사(知性史)를 이룬다. 타임(Time)지의 제이 칵스는 1989년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존 업다이크의 소설과 밥 딜런의 앨범 가운데 어느 것이 미국인들의 삶에 보다 자극을 주었는가? 존 업다이크 쪽에 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이 기사를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가사는 그러나 때론 메시지의 파악이 어려운 ‘난해한 현대시’ 와 같다. 밑줄 긋고 열심히 분석해도 도대체 명쾌하지가 않다. 1960년대 중반 < Another side of Bob Dylan >, < Bring it all black home >, < Highway 61 revisited >가 연속 발표되었을 때, 미국 각 대학의 영문과에 ‘밥 딜런 시분석’ 강좌 개설이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팝팬들에게 딜런이 상대적으로 소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도 이 정도인데 영어의 벽에 막혀 있는 우리가 어찌 그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겠는가. 때문인지 음반마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초기곡으로 알려진 것은 그나마 메시지가 확연한 ‘Blowin’ in the wind’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1970년대 중반의 금지곡 태풍으로 반전(反戰) 노래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방송과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 외 우리 팝 인구에 회자된 노래로 ‘One more cup of coffee’나 ‘Knockin’ on heaven’s door’가 있다. 그러나 그의 대표곡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는 ‘One more cup of coffee’가 통한 것은 단지 낭만적 제목과 함께 친숙한 선율 때문이었을 뿐, 딜런의 음악 세계에 대한 천착의 결과물은 전혀 아니었다. ‘Knockin’ on heaven’s door’ 인기의 영예도 실은 건스 앤 로지스가 더 누렸다.

극소수의 곡을 제외하고 밥 딜런은 우리에게 인기가 없었다. 비틀스, 스톤즈, 엘비스에 비한다면 엄청난 ‘부당 대우’였다. 언어 장벽과 무관한 음악 스타일 측면에서도 우리의 ‘홀대’ 는 마찬가지였다. 멜로디가 그럴싸한 곡이 있더라도 풍기는 내음이 지극히 ‘미국적’ 이었기에 우리의 청취 감성은 딜런을 꺼리곤 했다. 그의 음악 세계라 할 포크, 컨트리, 블루스는 미국 전통과 긴밀한 함수 관계를 지닌다. 선율과 사운드의 영국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의 음악에 잠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이에 우린 어느덧 딜런과 크게 멀어져버렸다. 록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꼭 딜런에서 막힌다. 신세대 가운데 더러는 우리의 팝 수용 문화에서 딜런 공백이 가져온 취약성을 맹렬히 질타하기도 한다. 우리 기준에서의 ‘팝 음악 여과’는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의역은 정확한 직역이 기초돼야 올바르다. 미국의 해석을 전제한 뒤라야 우리식 필터링의 의의가 배가된다.

그 직역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밥 딜런이다. 밥 딜런이 미국의 현대 음악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몸체가 곧 시대와 세대의 흐름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딜런의 음악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것을 있게 한 배경, 또한 그것을 주도해간 그의 자세는 ‘음악외적 환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먼저 포크 록(Folk-Rock)이다. 그가 1960년대 초반 저항적인 모던 포크로 베이비 붐 세대를 견인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통기타만으로 연주되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것의 포획력은 비틀스가 사정권에 들어올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비틀스가 베이비 붐 세대를 발현시켰다면 그는 그들의 의식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딜런은 케네디의 피살에 자극받으면서 스스로 ‘위기감’ 을 불어넣는다. 이미 비틀스가 세대의 청취 볼륨을 증폭시킨 마당에 포크의 음량 가지고 과연 세대를 관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1년 그는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그들(비틀스)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코드는 정말 도에 지나친 것이었지만 하모니가 그것을 타당하게끔 했다. 그러나 맹세하건데 난 정말 그들에게 빠졌다. 모두들 그들이 어린 10대를 위한 광대이며 곧 사라질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내겐 명확했다. 그들이 지속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난 그들이 음악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머리 속에는 비틀스가 전부였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를 잡아야 했다. 그것이 포크 록이었다. 포크의 순정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질타는 불 보듯 뻔했다. 그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알 쿠퍼(Al Kooper), 마이크 블룸필드(Mike Boomfield)가 참여한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Butterfield Blues Band)와 함께 전기 기타 연주를 했을 때 관중들은 “이건 포크 공연이야 나가!”라고 야유하며 돌과 계란 세례를 퍼부었다. 무대에서 내쫓긴 그는 통기타를 들고 되돌아왔지만 의미심장한 ‘It’s all over now’, ‘Baby blue’를 부르며 포크 관객들에게 아듀를 고했다. 껄끄러운 통과의례를 거친 뒤 밥 딜런의 포크 록은 ’Like a rolling stone’의 빅히트와 함께 만개했다. 이젠 막을 자도 없어졌다. 포크 록은 당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존 레논과 밥 딜런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그룹 버즈(Byrds)는 ‘Mr. Tambourine man’으로 인기 가도를 질주했다. 그러나 그 곡은 딜런의 작품이었다.

버즈 뿐만 아니라 당시 포크 록계열 뮤지션치고 딜런의 곡을 손대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단숨에 포크 록은 1960년대 록의 주류로 부상했다. 1960년대 중.후반을 강타한 싸이키델릭 록(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도 실상 포크 록에 영향받은 흐름이었다. 그럼 어째서 포크 록은 1960년대 청춘들을 사로잡아 그들의 의식을 대변할 수 있었을까? 비틀스가 딜런에게 배우고, 딜런이 비틀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포크와 록의 결합’ 은 시대성 견인을 가능케 한 절묘한 무브먼트였다. 록은 생태적으로 거리의 청춘에 의해 확립된 ‘하위문화적 표현’이다. 따라서 하이 클래스나 인텔리겐차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또한 포크는 저항성을 견지하는 민중 음악이지만 음악의 주체나 주소비자층은 학생과 지식인 세력이다. 성질상 엇비슷하면서도 걸어온 길이나 ‘계급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밥 딜런이 포크 오리지널로부터 급격히 퇴각하여 록으로 전향한 것은 단지 추세의 편승이 아닌 완전함을 향한 ‘하층문화의 긴급 수혈’로 보인다. 이를테면 ‘위’의 고매한 문제의식과 ‘아래’의 근원적 반항을 한고리로 엮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항 영역의 지반 확대와 수요자의 확충을 기할 가능성은 올라가게 된다.

지식인만이 아닌 1960년대 젊은이들의 ‘계층포괄적 무브먼트’ 는 포크 록과 이 점에 있어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1960년대 중후반을 물들인 ‘히피보헤미안’ 물결도 딜런과 떼어낼 수 없는 흐름. 1960년대 록 역사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이다. ‘Like a rolling stone’은 포크 지식인의 소리라기보다 보헤미안적 정서의 노출로 파악해야 한다. 당시 딜런은 가치의 상대성을 신뢰하고 제도에 흡수되기룰 거부하는 이른바 비트(Beat) 사상에 빠져 있었다. 그가 진보적 시인인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와 교류하며 ‘개인 혁명’에 골똘해 있을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비트는 이후 히피의 융기에 주요 인자가 되는데, 1960년대 중반 딜런의 음악을 가로지르는 것이 바로 이 ‘히피 보헤미안 정서’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록 세계로 옮아가고 방랑적 지향을 설파한 것은 기존과 기성의 틀 깨기에 목말라 있던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영도자가 제공한 ‘산교육’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밥 딜런은 그에게 등을 돌린 포크 근본주의자들의 수보다 휠씬 더 많은 록팬을 거뜬히 확보하게 된다. 음악적으로 딜런의 창작성이 이 때만큼 가공의 위력을 떨친 적도 없다. < Highway 61 Revisited >와 < Blonde On Blonde > 앨범은 포크의 엄숙주의에서 해방되어 록과의 결합으로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포획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음악은 ‘남을 위해’ 이데올로기에 봉사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이 가져온 산물이기도 했다. 그가 포크의 프로테스트로부터 이탈한 것은 바로 ‘자유’와 등식화되는 ‘예술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저항성 대신 예술성을 얻었다. 개인적 경사도 겹쳤다. 사적으로 사라 로운즈와의 결혼은 그의 창작력 한층 북돋아주었으며 그 충만한 행복감은 그대로 < Blonde On Blonde > 앨범에 나타났다. 이 앨범의 탁월한 질감은 상당부분 사라와의 결혼이 낳은 것이라는 게 평자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나중 사라와의 파경 또한 그에게 또 하나의 명반 < Blood On The Tracks >를 안겨준다. 히피의 낭만적인 집단주의와 곧바로 이어진 이피(Yippie)의 전투성이 극에 달할 무렵 그가 뉴욕의 외곽 빅 핑크(Big Pink) 지하실에서 한가로이 더 밴드(The Band)의 멤버들과 자유 세션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가 가져온 행보이기도 했지만 그가 의도적으로 은둔을 택한 것은 분명했다. 세상이 소란함으로 가득할 때 그는 정반대로 정적을 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물꼬를 터준 미국 사회의 격랑이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것으로 예측했는지도 모른다. 세대의 공동체 지향은 지극히 ‘비이성적’으로 비춰졌을 테고 오히려 그는 그럴수록 자신에게 돌아와 근본을 탐구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한 심저(心底)가 < John wesley Harding >과 < Nashiville Skyline >의 골간에 자리한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뜻밖에’ 재래식 컨트리 음악을 선보였다. 두 앨범은 모두 내쉬빌에서 녹음되었고 < Nashiville Skyline >의 경우 딜런은 컨트리 음악의 거성 자니 캐시(Johnny Cash)와 듀오로 ‘Girl from the north country’에서 다정히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톱 10 히트곡 ‘Lay lady lay’가 나왔다. 이 곡을 비롯해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딜런의 보컬은 예의 날카로움이 거세된 채 한결 부드러워졌고 가사도 접근이 비교적 용이해지는 등 멜로딕한 무드가 전체를 지배했다. 다시 세상은 소용돌이에서 호수의 조용함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1970년대 초반의 분위기였다. 딜런이 씨앗을 뿌린 ‘컨트리 록’ 은 1970년대 내내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맹위를 떨쳤다.

딜런은 언제나 흐름의 주역이었다. 나중 음반화된 더 밴드와의 세션 앨범 < Basement Tapes >가 록 역사에서 ‘특혜’를 받는 것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 그는 ‘대중적’ 관점에서 뿌리에 대한 천착에 박차를 가했다. 예전에 그는 ‘좋은 사람만 따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이 많이 따를수록 좋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가 1970년 < Self Portrait > 앨범에서 ‘Moon river’를 포함한 팝 스탠다드 넘버들을 노래한 것은 이러한 사고와 맥락이 닿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눈을 흘겼다. 레코드 월드(Record World)지는 이 앨범을 두고 “혁명은 끝났다. 밥 딜런이 ‘미스터 존스’에게 ‘Blue moon’을 불러주고 있다”며 혹평했다.(미스터 존스는 딜런이 < Highway 61 Revisited >의 ‘Ballad of thin man’에서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존스 씨?”라고 했던 가공의 인물로 ‘제도권 인사’를 상징한다.) 빌보드 차트3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처럼 평단의 이해를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 Self Portrait >앨범을 상업적 표현으로 볼 수는 없다. 비판의 칼을 휘두르는 비평가들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근본을 탐구하는 방법론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딜런이 1970년대 후반부에 기독교에 귀의한 것도 비슷한 문맥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사실 신(神)에의 의지가 엿보인 < Show Train Coming >, < Saved >, < Shot Of Love > 등 3장의 종교풍 음반은 ‘사고의 깊이’가 두드러졌지만 ‘변신’이라는 부정적 의미에 가치가 함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 딜런을 ‘혼미의 거듭’으로 규정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보면 그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충실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티스트의 본령이다. 밥 딜런은 언제나 음악을 통해 세상과 삶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자 했다.

1980년대의 밥 딜런은 1970년대의 습기를 벗고 ‘열기’를 회복한다. 정치적 시각도 이입한 < Infidels >, < Empire Burlesque > 그리고 1989년에 나온 < Oh Mercy >는 이전의 앨범들과 명백한 분리선을 긋는다. 날카로운 보컬은 오히려 1960년대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는 1980년대 중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아티스트의 모임(Sun City) 등 일련의 자선행사에 얼굴을 내밀어 저항 전선에 복귀했다. 한 무대에서 그는 U2의 보노(Bono)와 함께 ‘Blowin’ in the wind’를 부르기도 했다. 딜런의 1980년대 앨범들에는 당시의 보수적이고 위압적 풍토를 거부하는 저항성이 숨쉰다. 그는 시대의 주류 한복판에는 없었지만 ‘시대의 공기’와 늘 함께 호흡했다. 그 공기를 어떤 때는 앞장 서 조성하고 어떤 때는 그것을 피해갔다. 밥 딜런의 한 면만을 바라보게 되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그가 서 있던 ‘양쪽’ 자리를 다 관찰해야만 그 ‘드라마틱한 록 역사의 굴곡’ 을 읽을 수 있다. 록의 역사는 실로 위와 아래, 진보와 보수, 주류와 비주류, 기존과 대안이 끊임없이 부침을 되풀이 해왔다. 밥 딜런이 밟아온 길은 그것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라도 - 가령 프로테스트의 깃발을 울렸을 때나, 대중성에 기웃거렸을 때나 - 딜런이 주변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임한 적은 없다. 남이 시켜서 일렉트릭의 세계로 떠밀려 간 것이 아니었고, 의도적으로 신비를 축적하기 위해 은둔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터전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비평가들이 밥 딜런을 전설로 숭앙하는 것은 그가 대중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음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음악인의 최고 영예인 ‘아티스트’란 소리를 들어 마땅했다. 그는 록에 언어를 불어넣었다. 포크와 컨트리를 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시대와 맞서기도 했고 자신의 예술성에 천착하기도 했다. 그러한 업적과 성과의 편린들이 모여 그의 ‘광활한 아티스트의 세계를 축조하고 있다. 밥 딜런은 역사의 수혜와 위협 속에서 ‘인간’을 살려냈다. 음악인으로서 인간의 몸체는 다름 아닌 자유일 것이다. 밥 딜런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밴드 : Yo La Tengo (요 라 텡고 (밴드))
멤버 :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 이라 카플란(Ira Kaplan), 제임스 맥뉴(James McNew) 요 라 텡고의 음악은 딱히 어느 한 장르로 정의 내려지는 것을 거부한다. 시끄럽고 조용하다. 불편하고 편안하다. 가볍고도 무겁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절충주의’라는 말로 요 라 텡고 사운드를 표현하고, 장르의 카테고리가 주는 부담감을 떨쳐낸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게서 물려받은 극단적... 멤버 :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 이라 카플란(Ira Kaplan), 제임스 맥뉴(James McNew)

요 라 텡고의 음악은 딱히 어느 한 장르로 정의 내려지는 것을 거부한다. 시끄럽고 조용하다. 불편하고 편안하다. 가볍고도 무겁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절충주의’라는 말로 요 라 텡고 사운드를 표현하고, 장르의 카테고리가 주는 부담감을 떨쳐낸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게서 물려받은 극단적인 노이즈 실험과 버즈에게서 가지치기한 달콤한 징글 쟁글 전통이라는 상반된 스타일의 혼합은 요 라 텡고를 199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인디펜던트 그룹으로 위치를 설정시켰고, 인디 록하면 떠오르는 서브젝트들인 드림 팝, 노이즈 팝, 슈게이징, 포스트 록, 그리고 엉뚱하게도(?) 월드 뮤직으로 분류되는 보사노바 등을 모두 통합시켰다. 서로 누가 누가 잘하나 뽐내는 인디 음악의 각축장이면서 동시에 서로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잉태한 것이다. 요 라 텡고의 이 같은 놀라운 흡인력과 소화력은 설레는 데이트 상대에서 음악적 동료로 그리고 부부로 인연의 끈을 만들어 가고 있는 아이라 케플란(Ira Kaplan)과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의 환상적인 호흡이 있기에 가능했다. 아이라의 피드백이 잔뜩 걸린 기타 노이즈와 조지아의 들뜬 록 드럼은 헤비하지는 않지만 록의 진중함을 표현하고 있고, 이들 부부가 서로 한 소절씩 나눠 부르는 보컬은 유약하고 여리다. 양과 음, 힘셈과 가벼움, 어둠과 밝음의 사이에서 미묘한 접점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아이라 & 조지아 커플이 만든 요 라 텡고의 매력이다. 요 라 텡고는 1984년 미국 뉴저지주의 호보켄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 킹크스, 버즈 등을 음악적 좌표로 삼은 아이라 케플란과 조지아 허블리에 의해 결성된 그룹. 특히 이들은 1996년도 영화 <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I Shot Andy Warhol) >에서 직접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의 역을 맡을 정도로 벨벳에 경도되어있다. 지역의 클럽 등지에서 활동하며 2년 여 동안 기본기를 착실히 닦은 이들은 1986년 데뷔작 < Ride The Tiger >를 내놓으며 인디 록 커뮤니티에 이름을 알렸다. 1980년대 초반 깜짝 출연을 하고 곧바로 사라진 미국 보스턴 출신의 펑크 밴드 미션 오브 버마(Mission Of Burma)의 베이시스트 클린트 콘리(Clint Conley)가 프로듀스를 맡은 1집은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영향권 내에서 머문 작품이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연상시키는 수록곡 ’The Empty Pool’이 대표적이다. 이후 요 라 텡고는 조금씩 발표하는 앨범마다 음악적인 변화를 주기 시작했는데, 1987년 소포모어 음반 [New Wave Hot Dogs]에서는 징글 쟁글 포크 사운드가 귀를 잡아끌었고, 2년 뒤인 1989년에 내놓은 3집 [President Yo La Tengo]는 멤버들의 자신에 찬 송라이팅 실력을 엿 볼 수 있었다. 제대로 그 맛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전설적인 싱어 송 라이터 밥 딜런의 ’I threw it all away’를 과감히 리메이크한 것부터가 그렇다. 1990년에는 이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던 아티스트들의 노래들을 특유의 절충주의 스타일로 커버한 곡들을 모은 [Fakebook]을 공개했고, 2년 뒤인 1992년에는 베이시스트 제임스 맥뉴(James McNew)를 영입, 트리오로 그룹의 체제를 개편하고 [May I Sing with Me]를 내놓았다. [Fakebook]에서 알 수 있듯 요 라 텡고의 초창기는 자신들을 있게 해준 선배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쥬를 표한 시기였다. 때문에 요 라 텡고의 진짜 음악을 접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May I Sing with Me] 이후 페이브먼트라는 거물 인디 록 밴드를 배출한 [마타도어(Matador)] 레이블로 이적하여 현재까지 발매한 음반들을 검색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요 라 텡고는 [마타도어] 레이블의 첫 결과물인 1993년의 [Painful]에서 노이즈 실험의 극대화를 이뤄냈다. 친근한 노이즈,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노이즈, 불편한 노이즈 등 노이즈 자체가 다양한 프리즘으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줬다. 그리고 1995년 무덤덤한 [Electr-O-Pura]을 지나 1997년 인디 록의 마스터피스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에서 트리오는 초창기의 멜랑콜리 스타일의 멜로디와 이 때 당시의 주 종목이었던 노이즈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기존 인디 록 역사의 텃밭을 갈아엎었다. 1984년 데뷔한 이래 14년 만에 오빠부대를 이끌며 다니는 슈퍼 스타덤은 아니지만, 인디 록 커뮤니티 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한 요라 텡고는 2000년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그리고 올해 [The Sounds Of The Sounds Of Science]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여전히 각종 장르에 대한 톨레랑스를 보여주고 있다.
소닉 유스(Sonic Youth)를 수식하는 가장 흔한 표현은 바로 ’노이즈의 미학’이다. 그러나 막상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미(美)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찢어질 듯이 삐꺽거리는 소음과 불규칙하고 억지스러운 피드백은 오히려 아름다움의 여지를 과감히 짓밟아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변칙 조율을 통한 불협화음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변칙 조율이란 이른바 ’오픈 튜닝’을 사용하여 ... 소닉 유스(Sonic Youth)를 수식하는 가장 흔한 표현은 바로 ’노이즈의 미학’이다. 그러나 막상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미(美)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찢어질 듯이 삐꺽거리는 소음과 불규칙하고 억지스러운 피드백은 오히려 아름다움의 여지를 과감히 짓밟아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변칙 조율을 통한 불협화음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변칙 조율이란 이른바 ’오픈 튜닝’을 사용하여 개방 현들이 하나의 코드로 화음을 이루게 하는 것인데, 소닉 유스는 고의적으로 불안정한 화음을 만들기 위해 코드를 어지럽혀 놓는다. 그런 이유로 이들의 음악엔 ’아방가르드’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록을 해체하고 싶은 충동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에서 기인한 ’반(反) 예술적 예술’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간결한 스리 코드가 아닌 과장된 소음과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만큼 지적이며 동시에 전위적이다. 이들이 종종 ’펑크 플로이드(Punk Floyd)’라 불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소닉 유스는 펑크도 뉴 웨이브도 아닌 ’노 웨이브(No Wave)’라는 흐름 속에 묶여진다. 이들은 기존의 록 패턴을 자질구레한 노이즈로 뭉개놓았고, 그것은 로우 파이(Lo-Fi) 와 시애틀 그런지, 넓게는 90년대 인디 록 전반에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이들을 빼놓고는 얼터너티브의 생성 과정을 논할 수 없다. 그룹은 1981년 뉴욕의 예술학교에 다니던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 기타/보컬)와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를 좋아하던 그의 피앙세 킴 고든(Kim Gordon, 베이스/보컬)에 의해 결성되었다. 듀오는 글렌 브랑카(Glenn Branca)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기타 테크닉을 전수 받았고, 역시 그의 밑에 있던 리 레이널도(Lee Ranaldo, 기타)를 맞이하면서 82년 < Sonic Youth > 와 83년 < Cofusion Is Sex >를 발표한다. 85년에 선보인 < Bad Moon Rising >은 ’Death valley 69’ 라는 곡을 통해 연쇄 살인마 찰스 맨슨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악마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다음 앨범인 < Evol >의 녹음 과정에서 스티브 셸리(Steve Shelly, 드럼)가 들어오면서 현재의 라인업이 갖추어졌다. 87년 < Sister >에서 이들의 무모한 실험은 점차 안정된 곡 구조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88년 < Daydream Nation >를 계기로 소닉 유스는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신화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같은 해에 그룹은 치콘느 유스(Ciccone Youth, 치콘느는 마돈나의 본명)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마돈나의 히트 곡을 소닉 유스 식으로 커버한 앨범 < The Whitey Album >를 발표하기도 했다.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메이저 레이블인 < 데이빗 게펜 컴퍼니(DGC) >로 이적한 소닉 유스는 당시의 대세였던 그런지 스타일로 변모한다. 90년 < Goo >와 92년 < Dirty >는 일부 비평가와 골수 팬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100%’ ’Kool Thing’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밴드는 록 매니아들 사이에서 스타급 유명세를 누리게 된다. < 롤링 스톤 >은 "실제로 팔린 것보다 훨씬 널리 알려졌다"라고 평했다. 94년에는 가장 정적인 앨범이라고 불리는 < Experimental Jet Set, Trash And No Star >의 발표와 함께 카펜터스(Carpenters)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 If I Were A Carpenter >에 수록된 ’Superstar’는 커다란 화제를 일으키며 정규작 못지 않은 히트를 거두었고, 국내에 이들이 알려진 것도 사실은 상당 부분 그 곡에 기인한다. 그룹은 95년 < Washing Machine >을 통해 그런지의 홍수 속에서 완전히 뛰쳐나와 초창기의 전위적인 스타일로 돌아갔고, 98년 < A Thousand Leaves >와 2000년 < NYC Ghosts And Flowers >를 내놓으며 계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현재 소닉 유스는 시카고 포스트록 씬의 엘리트 브레인 짐 오루크(Jim O’Rourke)와 함께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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