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의 누군가’가 가장 사랑한 우리 시대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
지난 4월 17일, 미국 버지니아 대학에서는 총기 난사사건으로 32명이 죽었다. 그 일이 있기 엿새 전, 향년 84세로 세상을 뜬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가 건재했다면 이 사건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미국을 휩쓸고 있는 이런 광기에 대해 누구보다도 염려했고, 미국을 그렇게 만든 이들을 가장 맹렬하게 비판했으며, 죄 없는 자들의 희생을 누구보다도 슬퍼했던 작가였다.
커트 보네거트는 누구인가? 그는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로 순문학 팬들과 SF 팬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으며, 60년대 반전운동과 히피의 카운터컬처를 대표했고, 파편적인 구성과 메타픽션적 글쓰기로 토머스 핀천, 저지 코진스키, 존 바스 등과 함께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만들어낸 현대작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휴머니스트였고, 유머리스트였다. 그는 인간을 불신하면서도 끝까지 인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찌르는 블랙 유머의 대가였다. “마크 트웨인의 직계”라 불린 그는 아무리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연합군의 소이탄 폭격으로 하룻밤 만에 13만 명의 시민이 사망한 드레스덴 폭격 사건을 담은 반전소설 『제5도살장』을 읽을 때조차 독자들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의 유머는 천진난만한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정곡을 찌르며, 무엇보다도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약 5년간 미국 잡지인 <인디스타임스 In These Times>에 연재되었던 그의 글을 엮은 『나라 없는 사람』은 보네거트 특유의 입담과 날카로운 필치가 살아 있는 일급 에세이인 동시에 미국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사회정치 칼럼이자 예술가로서의 진심이 담긴 회고록으로, 독자들에게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그의 면모를 생생한 육성을 통해 듣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예수가 말한 것이 옳고 아름답다면,
그가 신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커트 보네거트는 인디애나폴리스의 독일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고향인 인디애나폴리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는 인디언을 살해한 백인이 처음으로 사형당한 곳이 바로 이곳이며, 그런 이유에서 다시 태어나더라도 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무신론자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조부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보네거트 가의 형제자매들은 일찍부터 신의 막연한 섭리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었고,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소외와 인종차별을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라고 배우며 자랐다.
또한 과학과 예술 양쪽에 재능이 뛰어났던 형과 누나, 그리고 삼촌에 이르기까지 대가족 사이에 낀 그는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수임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코미디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의 라디오방송에 귀 기울이며 남을 웃기는 재주를 갈고 닦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유머는 무조건 웃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저급한 개그가 아니라, 가련한 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과 삶의 해학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보브 호프는 진정한 유머리스트라고 할 수 없다. 그는 곤란한 주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 얄팍한 코미디언이다. 그에 비해 로렐과 하디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게 만든다. 그들의 농담에는 뭔가 뼈아픈 비극이 배어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엔 너무나 착하고 그래서 항상 지독한 위험에 빠진다. 그들은 언제라도 쉽사리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커넬 대학과 테네시 대학, 시카고 대학 등을 오가며 공학자와 작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던 그는 1943년, 2차대전 막바지에 그만 징집되고 만다. 전선에서 낙오하여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 벌어진다. 연합군이 사흘밤낮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를 용광로로 만들고,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것이다. 지하 벙커의 냉장고 속에 피신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일곱 명의 미군포로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이 체험을 통해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이 체험을 글로 쓰기까지는 무려 2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모든 사건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인은 정말로 어린애다. 군인은 영화배우가 아니다. 핵심을 깨달은 나는 그제야 자유롭게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린애였다. 나는 『제5도살장』에 ‘어린이 십자군’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사건을 말하기 위해 결국 그는 신과 인간과 외계인이 뒤얽힌 SF 풍자소설을 써내려갔고, 소설에 담긴 무신론적 휴머니즘은 많은 지성인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에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이 된 『제5도살장』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이끌어낸 작품 중 하나다. 우파와 기독교 단체들은 이 책의 내용을 신성모독으로 여겨 화형식을 치렀고, 아직도 많은 도서관에서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보네거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도대체 『제5도살장』을 읽으며 마스터베이션을 한다는 게 가능한가요?”
하층계급이란 것이 있는 한 나는 하층 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있는 한 나는 범죄자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있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그는 소방수, 영어교사, 사브 자동차 외판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는 미국에서 사브 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한 세 번째 외판원이었는데, 보네거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며 스웨덴 한림원이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주지 않은 것은 그가 사브를 파는 데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제너럴 일렉트릭 사에 근무할 때의 경험을 살려 첫 장편소설 『자동 피아노』를 집필했는데, 이 작품은 문학평론가들 사이에서 SF로 분류되는 오해를 낳았다. 이는 순전히 공업도시인 스커넥터디를 배경으로 하여 공장과, 그곳에 근무하는 인물들을 담아냈기 때문인데, 보네거트는 오로지 과학 지식이 삽입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SF소설가로 불리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이름을 얻게 된 이유가, 내가 과학기술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며, 최고의 미국 작가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과학기술을 생략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은 섹스를 생략함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만큼이나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번째 소설 『고양이요람』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그의 소설은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다. 플라워 컬처를 부르짖던 60년대의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그의 소설들을 읽었고, 연이어 이어지는 어이없는 죽음을 풍자한 “그렇게 가는 거지(So it goes)"라는 『제5도살장』의 대사는 60년대를 대변하는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이후 『태초의 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제일버드』 『로즈워터 씨, 신께서 축복하시길』 등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해온 그는 1997년 『타임퀘이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한다. 그는 그 이유를 책에서 아주 간단히 언급한다. 본질적으로 유머리스트인 그가 소설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농담을 제대로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 만일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글을 쓴다면 효과를 내기 위해 순번까지 매겨가며 글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극적 장면은 불발탄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필요한 요소들아 갖춰지기만 하면 비극은 반드시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농담은 무에서 시작해 쥐덫을 만드는 것과 같다. 터져야 할 때에 터지려면 정말 피터지게 노력해야 한다.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했어도, 사회와 인간에 관한 그의 관심은 여전했다. 그는 <인디즈타임스>의 연재를 통해 “가난한 사람도 뚱뚱해질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신발 폭탄이 두려워 공항에서 알몸 수색을 당하는 나라”, 미국의 현재를 맹렬히 비판한다. 부시 정부와 그들의 정책에 대한 보네거트의 칼날 같은 풍자는 그가 뇌진탕 후유증으로 생애를 마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파 방송인 폭스 TV는 그의 죽음을 두고 ‘빨갱이 작가가 죽었다’는 식으로 보도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일찍이 유진 빅터 데브스, 하워즈 헵굿과 같은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나라 없는 사람』에서도 그들을 ‘우리 편’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스탈린의 전체주의나 중국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에까지 눈을 감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정 사랑한 것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중산층이면서도 예수의 ‘산상수훈’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의 편에 선 하워즈 헵굿과 같은 이들의 선한 의지였다.
커트 보네거트는 과연 천국에 갔을까?
생전의 커트 보네거트는 타계한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뒤를 이어 미국 휴머니스트 협회의 명예회장을 맡았다. 무신론자인 커트 보네거트와 휴머니스트 협회 회원들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장례식에서 “아이작은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았고, 몇몇 회원들은 너무 우스운 나머지 통로에 고꾸라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커트 보네거트 또한 자기가 죽은 뒤에도 역시 이렇게 말해줄 것을 당부한다. “커트는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
그는 삶의 가치를 온전히 지상에 두었던 인물이었다. 휴머니스트로서 그가 섬긴 유일한 추상성은 그가 속한 ‘사회’였다. 예수가 신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그가 사회와 인간을 위해 분노하고 고민한 정말 몇 안 되는 미국 작가라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는 그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는 것.
만일 내가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 그곳 책임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이봐요. 대체 뭐가 좋은 소식이었고 뭐가 나쁜 소식이었소?”
종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가 함정수사에 걸려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뉴스를 발표하겠다. 나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 문장을 완성하려면 주어와 동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아랍인들이 멍청해 보인다고? 그들은 우리에게 숫자를 줬다. 한번 로마 숫자로 긴 나눗셈을 해보라.
내가 사랑하던 미국은 아직도 존재한다. 물론 백악관, 대법원, 상원과 하원, 대중매체 따윈 포기한 지 오래다. 내가 사랑했던 미국은 아직도 공공 도서관의 접수창구에 존재한다.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