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름다움을 규정하거나 그 기준을 정의하거나 여러 걸작의 비밀을 미학적 차원에서 밝히기보다는 아름다움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 존재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는 실질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그는 아름다움이 우리 삶에 발휘하는 놀라운 효과를 실감나게 보여주고자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세 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직장 일과 집안일에 짓눌려 질식할 것 같은 중년 여성 뤼시, 이제 사춘기를 지나며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그녀의 아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유혹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바람둥이 마르크는 각자 그들의 일상에서 어느 순간 아주 강렬하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 자체가 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교통체증으로 도로가 꽉 막힌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동적인 노래 한 곡, 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반 고흐의 그림 한 점, 빵집에서 나오는 투피스 차람의 갈색 머리 여인을 따라 들어간 성당에서 들은 성가가 촉발한 감동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다.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순간, 그들의 삶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칸트, 헤겔, 프로이트가 말하는 아름다움
저자는 이 책에서 아름다움과 관련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 베르그송 등 여러 철학자의 생각을 소개하지만, 무엇보다도 칸트, 헤겔, 프로이트 세 사람의 주장을 중심으로 ‘아름다움’이라는 현상에 주목한다.
실제로 우리는 늘 내적인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이기심과 도덕성 사이의 갈등, 서로 다른 감각 사이의 갈등, 참과 거짓을 가르는 이성적 갈등은 우리 내면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대립하는 분열적인 상황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이 일제히 멈추는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온다. 교통체증으로 차 안에 갇혀 폭발 직전에 있던 뤼시는 기대하지 않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아름다운 노래 첫 음절에 기적 같은 평화를 느낀다. 이것은 내면의 어느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누른 결과가 아니라 그녀 마음속에서 여러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내적 갈등이 사라진 상태가 된 덕분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내적 갈등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 바로 칸트의 주장이다.
철학의 역사에서 최초로 가장 진지하게 아름다움의 문제에 주목한 칸트는 ‘인간의 여러 능력이 자유롭고 조화롭게 벌이는 놀이’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간파한다. 매우 독창적인 이 명제는 미적 쾌락을 느낄 때 지각과 오성이 아름다움 앞에서 서로 동조하며 ‘논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의 다양한 능력이 우리 내면에서 평상시와 다른 관계를 발전시킬 때 우리는 지각하는 대상과 평상시와 다른 관계, 즉 미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칸트에게서 미적 쾌락은 인간 주체의 내적 조화로 정의된다.
반면에 서양 철학자 가운데 가장 탁월하게 예술에 대해 성찰한 헤겔은 아름다움이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을 드러내고 특정한 가치들을 상징화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무언가가 진실하기에 우리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폴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적어도 조금은 민주주의자이며 적어도 조금은 철학자이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 고대 그리스인의 면모가 조금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고 말하는 그는 동물의 몸에 인간의 가슴과 얼굴이 달린 스핑크스가 ‘자연에서 서서히 해방되던 문화의 형상, 이집트의 본질을 상징화한다’고 결론짓는다. 스핑크스의 아름다움은 본질과 무관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바로 이런 진실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스핑크스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문화가 자연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한다는 생각에 동조한다는 것이고, 설령 의식하거나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이것은 표면적인 형상들을 관조함으로써 ‘문화의 내용’을 체험하는 행동이고, 감성의 심부에서 의미와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칸트가 미적 쾌락을 육체와 정신 사이 갈등이 종식된 상태로 보았듯이 프로이트에게도 미적 쾌락은 인간성에 내재하는 초자아와 이드 사이 갈등의 휴전 상태를 의미했다. 억압되어 있던 공격적이고 성적인 충동을 정신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려면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어떤 일정한 조건에서 아름다움을 만날 때 우리는 문명화된 방식으로 바로 문명이 금지한 폭력을 표출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금지된 것들이 용인되고 높이 평가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평소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야성적인 생명력의 약동을 허락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미적 쾌락을 통해 문명화된 인간 삶에 기적 같은 예외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프로이트는 아름다움을 작품의 감상자는 물론 창작자가 강렬하고 무의식적인 쾌락을 체험하는 기회로 보았다.
미적으로 깊이 감동하게 하는 다양한 작품 소개
뛰어난 문체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저자는 깊은 미적 감동을 선사한 여러 예술 작품을 소개하면서 때로 보는 즐거움을 더하기도 한다. 저자는 카뮈의 『이방인』,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등 문학 작품이 어떻게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지 자신의 경험에 기대어 소개하고, 음악 분야에서도 데이비드 보위, 롤링 스톤스, 에미넴, 팀버레이크, 에릭 사티, 바흐, 기독교 성가까지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어떻게 본질적으로 바꾸어놓는지를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또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끔찍한 그림들이 어떻게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지,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미소가 품고 있는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피테르 브뤼헐, 반 오스텐, 얀 스틴 같은 플랑드르 화가들의 농촌 풍속을 묘사한 그림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쿠르베, 고흐, 발튀스 작품의 진정한 개혁성, 알베르토 슈페어나 아르노 브레커 같은 나치 예술가들의 지향성, 피카소, 뭉크, 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셴첸, 그리고 부랑쿠시, 피에르 술라주, 모란디, 폴록 등 현대 미술가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본문에 수록된 컬러 이미지들을 통해 감각적이고 설득력 있게 소개한다. 그리고 드레위에르 감독의 영화 「오데트」나 코폴라 감독의 「대부」 같은 작품이 전하는 아름다움이 우리 내면에 연금술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과정 또한 대단히 흥미롭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