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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철 | 창비 | 2015년 10월 2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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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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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13 978893642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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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저자 소개

저자 : 안주철
1975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배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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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생에 대한 저항과 사랑의 균형점에서 빛나는 시편들
읽는 이의 가슴으로 스며드는 아름다운 첫 시집

200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안주철 시인의 첫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창비시선 390)이 출간되었다. “시적 주제와 방법이 다양하고 말을 활발하게 밀고 나가는 저력이 확연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등단한 지 무려 13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이다. 시인은 등단 당시 “미래의 작품에 기대가 컸다”는 믿음에 부응하듯, 활력이 넘치는 언어와 감각적인 이미지가 어우러진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치며 오랜 시간의 깊이와 무게가 가슴에 선뜻 와닿는 묵직한 시편들을 선보인다. 일상의 사물에서 감정의 깊이를 짚어내는 비상한 시선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황폐한 삶의 풍경 속에서 “‘운명’과 ‘운명을 바라보는 눈’이 시의 자기장 안에서 깊게 빛”나는 시편들이 “읽는 이의 눈에 머물지 않고 가슴에 낮게 스며들”(장석남, 추천사)며 뭉클한 감동과 공감을 자아낸다.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유성처럼 흘러내릴 때/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병일 때/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아무 말 없이 엄마가/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이런 때/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밥 먹는 풍경」 전문)

생활 속에서 시를 찾아내는 예민한 감각이 돋보이는 안주철 시의 풍경에는 삶의 “충만함보다는 먼저, ‘사라지는 무언가’로 인해 남겨지는 황폐함”(양경언, 해설)이 짙게 깔려 있다. 심지어 시인은 자못 비장한 심정으로 “나는 사라질 것이다”(「눈 4」)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척박한 삶의 그늘과 황폐한 어둠속에서도 “살아서 길길이 날뛰”(「봄밤입니다」)는 이들이 있다. 시인은 폐허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집 같”(「모래로 빚은 봄」)은 처지가 되어 “나도 한마리/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삼나무숲」)할 수밖에 없는 고달픈 현실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모든 것에 서식”(「나는 모든 것에 서식한다」)하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생활 속에 맺힌 물방울이/빛 한방울을 소중하게 간직하듯이”(「희미하게 남아 있다」)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나는 일초와 이초 사이에 서식한다./일초가 지나면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나는 지난해가 되기도 하고/다음 해가 되기도 하겠지만/경계를 구걸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나는 집히는 대로 서식한다.//비가 내리고 비가 그친 오후에 나는 서식한다./월급이 입금된 통장에서/빌려 쓴 미래가 모두 빠져나간 날처럼/나는 너덜너덜하게 서식한다.//(…)//나는 어슬렁거리는 무릎에 서식한다./한없이 세상 밖으로 녹아버리는 눈들과/내리는 눈 사이로 희미하게 저녁을 안치는/비탈진 골목처럼 서식한다.//나는 서식한다./내가 나에게서 가장 멀리 떠나는 순간에/용도와 흥미가 폐기된 가구처럼/나는 모든 것에 서식한다.(「나는 모든 것에 서식한다」 부분)

시인은 “어디에서 헐리게 될지”(「깨진 유리」) 모를 삶의 가장자리에서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내가 없”고 “사진을 찍어도 내가 없”고 “목에 힘을 주고 뒤를 돌아보아도/내가 없다”고 단정할 만큼 “희미하게 남아 있”(「희미하게 남아 있다」)는 존재로서 “내가 누군지 모르게 시들어버”(「아프리카」)리듯 점차 사라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익숙하다. 하지만 체념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실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양계장」)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릴없이 “쓸쓸함에 기대거나/슬픔에 만족하지 않으려고”(「봄밤입니다」) 한다. 더 나아가 “서서히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뭐가 그렇게 긍긍하냐?”(「오리는 젖는다」) 되물으며 좀처럼 벗어날 길 없는 처절한 삶의 비애와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내고자 한다.

꿈을 하나 지운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쉽게 지워지는 꿈이 신기해서/아내의 꿈도 슬쩍 하나 지운다. 아내의 꿈도/잘 지워진다. 아내는 자잘한 꿈이 많아/손이 많이 간다.//꿈을 지울 때마다 내 몸에 구멍이 하나씩/늘어난다. 구멍을 세는 것이 재미있어서/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꿈을 지운다.//꿈이 지워질 때마다 내 몸에 구멍이 뚫린다./아내의 몸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다. 구멍에서 피가 배어나온다./혈관이 들어 있는 꿈을 지우고 말았다.//투명한 몸을 한방울씩 적시며 피가 흘러내린다(「꿈을 지우다」 부분)

사방을 둘러보아도 “참고할 만한 삶이 보이지 않”(「깨진 유리」)는 길고 긴 어둠속에서 숨조차 “희미하게/희박하게”(「희미하게 남아 있다」) 쉴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때로는 욕스러운 것인가를 시인은 절실하게 깨닫는다. 하지만 “백수가 될 때마다” “아내의 등골을 매일 한숟갈씩 떠먹”(「꿈울 지우다」)는 초라한 삶일지라도 시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어둠속에서 말라”가는 “빛과 희망”(「살아남은 사람」)의 끈질긴 생명력을 되살려낸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슬픔이 서러움이 되기 전에”(「삼나무숲」) 삶을 새롭게 일구려는 시인의 안간힘은 한갓 “헛된 소망”이 아니라 삶에 대한 “새로운 예의”(「양계장」)를 갖추는 일이다.

밤새 폐지를 주워온 아버지 주무신다./하루에 세차례 시장 가는 아버지/아침 먹고 첫번째 잠을 주무신다.//어머니 나가신다. 흩어진 폐지를 묶고/폐지보다 더 낡은 트럭 위에/어머니 물을 뿌리신다.//우리 집 폐지들은/나무보다 물을 더 먹는다./좋게 생각하면 종이도 나무다./죽은 나무//나도 가끔 나간다. 시 쓰다 말고/죽은 나무에 물 주는/쓸쓸한 기분으로/폐지에 물을 준다./가끔 모래도 얹어준다.//아버지 두번째 잠을 주무신다./택시 하는 형이 점심 먹으러 왔다./폐지에 물 또 준다.//고물상 가기 전/우리 집 폐지들은 무럭무럭 자라나/일 톤짜리 화려한 꽃을 피운다.(「꽃」 전문)

시인은 “하나는 피를 흘리며/하나는 피를 말리며”(「밀렵」) 넘어오는 죽음과도 같은 “어둠은 햇볕에 말릴 수 없다”(「창고」)고 말한다. 그러나 “희박하지만/명료한 내가/생활 속에 한방울 맺혀 있”(「희미하게 남아 있다」)고, 세상의 “모든 구석에는 위로가 있”(「해석을 사랑함」)다. 시인은 이제 “위로해도/위로해도/위로가 닿지 않는/너무나 짧은 생애”(「밤이 떨어질 때」)에 연연해하지 않고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다음 생에 할 일들」)고자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오래된 희망은 모두 사라졌지만/새로 만들어야 할 희망”이 있기에 불가능한 삶을 꿈꾸고, 생에 대한 의지를 다독이며 “이미 다음 생을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이 세상에 불행을 보태기 위해/태어난 사람은 없”(시인의 말)듯이, “서정 대신에 순정으로 삶을 껴안은”(양경언, 해설) 시인이 어찌 이 험한 세상에서 “불행한 시”(「봄밤입니다」)를 쓰려 하겠는가.
아내가 운다./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아내는 피식 웃는다./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아내는 밥을 차리고/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조금 늦었을 뿐이다.//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오늘 급식은 여기까지(「다음 생에 할 일들」 전문)

추천평

내가 발견한 모든 ‘좋은 첫 시집’의 공통점은 거기에 ‘운명’이 어른댄다는 점이다. 안주철의 첫 시집에는 간절히 감추고 싶었을 그것이 ‘돌아보면 슬쩍 숨는’ 얼굴로 도처에 어른대고 있으니 읽는 이의 눈에 머물지 않고 가슴에 낮게 스며들 시집임에 확실하다. 마치 첫 경험처럼.
망설이다가 그냥 인용하기로 한다. “물이 식는 속도를 센다./(…)물고기가 더이상 도망가지 않을 때까지//엄마의 발가락을 감고 있던 붕대가 풀리자/피가 쏟아진다. 엄마는 등을 돌린다. 나는/저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대야에 붉은 꽃잎이 한장 두장/오래도록 펼쳐진다. 한송이가 될 때까지//(…)거울 속에 다시 노을이 끓는다.//나는 내 살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 나는 못됐다! 그러나 가파른 언덕을 넘듯 이 시를 ‘읽어 넘어’야 했는데 힘겹고 아름다웠다.
타고난 것에 대한 무한한 저항과 사랑의 균형점에서 시는 솟고, 그의 시가 꼭 그랬다. 궁극에서는 만들어진 시를 버리고 솟아난 시를 택하지 않던가. ‘운명’과 ‘운명을 바라보는 눈’이 시의 자기장 안에서 깊게 빛난다.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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