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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범죄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의 본질을 말하다

신기철 | 인권평화연구소 | 2015년 10월 15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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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866g | 153*225*35mm
ISBN13 9791195633012
ISBN10 119563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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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신기철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다녔으며 인천과 구로, 영등포지역 노동운동과 고양 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 회>에서 일했다. 지금은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에서 인권평화 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지난 조사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 나타난 유족들을 심층면담하고 있다. 저서로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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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의 사실은 대부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글쓴이는 각 학살사건을 종합하여 전국적인 인과관계를 해석했고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시도했다.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것, 진실을 밝히는 것에서 세상의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다. 4월 혁명을 부른 김주열 열사의 죽음,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5월 광주민중’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민주화혁명의 시작이었음을 기억한다. 2011년 3월 천안함 침몰,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를 보면 60여 년이 훌쩍 지나버린 한국전쟁 집단희생사건들을 다시 반복하는 것 같다.

1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개괄하고자 했다. 개별 피해가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 실체로 봐야 한다는 것, 시기구분과 유형별 재구성, 민간인학살사건의 본질을 전쟁범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단심재판에 의한 처형 역시 위헌이며 인권을 유린한 전쟁범죄로 해석할 수 있다.

2장은 전쟁 전 이미 전쟁범죄가 시작되었음을 살펴보았다. 미군정하 민간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서 시작한 국가폭력은 대구 10월 항쟁과 제주 4·3사건을 거치면서 전체 국민에 대한 무차별 폭력으로 확대되었고, 이는 단독정부의 수립 후 극대화되었다. 여수와 순천 주둔 14연대, 대구 6연대의 봉기는 영호남 전 지역은 물론 제주, 강원과 충청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토벌작전 전개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 제주의 피해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당시 국가가 자행한 토벌작전의 하나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10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이 시기를 내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사실 민중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 폭력으로 봐야 한다.

3장은 전쟁이 사법부 등 그 나마 국가폭력을 제어하던 기능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어 형무소 정치범, 국민보도연맹원 등 반 이승만 세력으로 추정되는 모든 국민들을 대량학살로 몰아갔음을 보여준다. 1948년 이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거나 생존권 투쟁과 관련되었다며 연행된 국민들은 정치범이 되었거나 국민보도연맹원이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 발발을 빌미로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후퇴하던 정부는 자신들로부터 탄압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히 점령군에 협조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희생된 사람들은 재소자나 국민보도연맹원을 넘어 그의 가족들이나 친인척, 같은 마을 이웃에까지 확대되었다. 자신이 보도연맹원이었는 지조차 몰랐던 희생자들도 많았다.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다면 당시 이승만 정부는 후퇴하는 점령자로 보였을 수 있다.

4장은 인민군 후퇴시기 또는 국군 수복 직전과 직후시기에 벌어진 민간인학살사건과 무정부상태를 초래한 국가의 책임 문제를 다뤘다. 전쟁 발발 직후 형무소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했고 이어 발생한 인민군의 점령은 이승만에게 탄압받았던 세력에게는 보복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혼자만 달아났으므로 그를 지지했던 세력들 역시 지하저항운동을 비롯하여 살아남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점령 불과 2개월만에 인민군은 후퇴해야 했고 점령지 국민들은 또 다시 혼란의 시기를 맞아야 했다. 인민군이 점령했던 전체 시기 중 이 시기에 발생한 사건의 84.6%가 9월 26일부터 30일 사이에 있었다. 인민군 측에 의해 학살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군 또는 미군은 낙동강전선을 출발하여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1일 38선을 넘었다. 신속한 진군이었다. 하지만 인민군 측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민간인의 안위나 치안은 아랑곳없이 오직 실적만을 추구한 결과가 아닐까?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조사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 피해는 적어도 무정부상태를 방치한 전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5장은 국군 수복 후 벌어진 “재판 없는 처형(Execution Without Trial)”을 전통적 전쟁범죄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적 치하 생존 3개월에 대한 보복이었던 부역혐의 비무장 민간인학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범죄였다. 후퇴한 국군과 경찰은 누가 부역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대부분의 정보를 같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얻었다. 부역행위의 증명은 불가능했다. 오직 추정과 자백만으로 재판 없이 총살했다. 학살 전 고춧가루 물고문, 전기고문, 강간, 물 안주기 등 온갖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다. 이승만 정부는 부역자를 55만명이라고 밝혔다. 인터뷰를 통해 부역혐의를 받았다가 풀려나 생존한 주민들이 매우 드문 것으로 보아 이들 중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익인사를 살해하지 않는 한 이 때문에 처벌받은 국군과 경찰은 거의 없었다. “경찰재판”으로도 불리는 “재판 없는 처형”은 전형적인 전쟁범죄 수법의 하나였다. 전투상황을 막론하고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분’ 총살은 불법이며 반인륜 범죄, 전쟁범죄였음은 명백하다.

6장은 9·28수복과 토벌작전 피해를 다루었다. 주로 국군 11사단과 8사단, 토벌경찰부대에 의해 피해가 발생했다. 모두 미군의 지휘를 받고 있던 계엄군의 지휘 하에 벌어진 것이었다. 피해지역은 전라남북도 전 지역과 경상남도 거창, 산청, 함양 등 지리산 부근 지역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 국군과 경찰의 토벌작전에서 소탕된 사람들은 빨치산이나 인민군 패잔병이 아니라 대부분 피난 민간인들이었음이 확인된다. 소탕했다는 빨치산 중에는 비무장 민간인, 즉 부역자총살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던 주민들이 대부분이었고 희생자들의 규모는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학살은 전투성과로 보고되었으며 가장 잔혹한 행위가 작전 중 저질러졌다.

7장은 1·4후퇴 시기에 남겨진 유족들이 다시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과 결과를 다루었다. 이승만정부는 12월 23일 시민의 피난을 공식 명령하고, 12월 24일 서울시민소개령을 발표했다. 경기지역에서 12월 15일 철수명령이 내려왔던 것이 확인되었다. 각 경찰서는 이를 계기로 장차 다시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으로 의심되는 주민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이 시기에 저질러진 대표적 사건은 서울 홍제리사건, 강화사건과 남양주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9·28수복 후 발생했던 부역협의사건은 1951년 재수복 후에도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대통령이 국민을 주권자로 여기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8장은 미군이 직접 저질렀던 전쟁범죄 사건을 다루었다. 대부분 폭격에 의한 것이었지만 지상군에 의한 것들도 확인된다. 미공군의 폭격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전선의 형성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발생했다. 인민군 점령지 주민을 적으로 취급해 공격한 것은 이승만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원 등에 관해 갖고 있었던 적대적 관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1950년 10월 이후 전선이 북으로 올라갔으므로 남쪽의 피해는 드물었으나 전선이 내려옴에 따라 다시 민간인 폭격 피해가 발생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의 피난민 공격 현상은 ‘부수적 피해’로 합리화될 수 없으며, 미군은 1950년 7월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인계받았으므로 당시 저질러진 전쟁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9장은 제도화된 전쟁범죄의 관점에서 부역자재판과 학살의 규범화 과정을 다루었다. 국군 수복 후 부역자처리를 위해 제정된 법률은 『부역자처리특별법』이었지만 실제 적용된 것은 대부분 『국방경비법』과 『비상조치령』이었다. 이는 단심만으로 사형까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재판은 “재판 없는 처형”이 끝난 뒤부터 진행되었다. 김창룡과 오제도 등은 이 시기에 와서야 옥석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진짜 의도는 학살 사실의 책임 전가에 있었다. 하지만 1952년 9월 헌법위원회는 단심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0장은 인민군 점령지의 국민들이 당한 부역 의심의 원인이 국가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부역은 적대 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돕는 행위로 중대한 범죄 중 하나로 취급된다. 사형이라는 극형까지 선고되는 이 범죄는 그 기준과 경계가 모호하고 주관적이었다. 국군 수복 후 ‘적에게 협조했다는 의심을 받은 민간인’의 학살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스페인, 프랑스 등의 부역자 처리 사례와 비교, 부역자를 만들어 낸 남북 적대관계 처리의 사회규범, 국군의 후퇴전략 등 부역자 발생 배경과 책임 등을 따져보았다. 결론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1950년의 규범에서 얼마나 진보해 있는지, 전쟁범죄의 유산을 얼마나 극복했는지 보여준다.

11장은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사건의 인정을 위한 유족들의 투쟁과 계속되고 있는 국가범죄의 고의적 유족 억압,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잔학행위를 다루었다.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 유족들의 인정투쟁은 이승만정권을 몰락시킨 4·19혁명 후 1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5·16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다.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요구했던 이들은 이후 90년대까지 이어졌던 고의적이고 계속된 국가범죄의 탄압을 받았다. 국가는 민간인학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은폐하고자 했고 이를 넘어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한국전쟁 동안 저질러진 민간인학살은 국가범죄이자 온갖 참상이 저질러진 끔찍한 전쟁범죄였다. 학살을 거부하는 신병들에게 시범을 보이거나 함께 총살하겠다고 협박하는 국군 장교들의 모습은 학살가담현상이 분노의 결과가 아니라 체계적인 훈련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적군의 진영에서 벌어졌어도 끔찍했을 잔학행위가 아군 진영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한국전쟁의 인적 피해는 엄청났다. 전체 인명피해가 600만 명이 넘는데, 남북의 민간인피해를 모두 합하면 3백 60만 명으로 전체피해의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중 남쪽 민간인들이 입은 피해는 민간인이 ‘부수’가 아니라 ‘주대상’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전쟁이 아니라 민간인학살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6년 4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만 4년 9개월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활동은 그리 짧은 기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전체 피해규모와 복잡성을 규명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위원회는 2년의 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으며 추가 신청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의 2014년 피해실태조사에서 고양지역에서만 10명의 희생자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 누락되었음을 확인했다. 부여지역에서는 19명, 순창에서는 쌍치면에서만 40명이었다. 기초자치단체의 수를 감안한다면 적어도 2,000명의 희생자 증언을 당장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중단된 조사는 계속되어야 하고 규명된 진실은 기억되어야 한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의 대부분은 이승만 정부의 전쟁범죄였다. 국민보도연맹사건, 형무소사건은 곧 점령할 적에게 도움이 될까 봐 저질러졌다. 부역혐의사건은 적 진영을 점령하면서 저질러진 불과 3개월 점령지를 수복하면서 발생했다. 이승만의 기만방송을 믿었다가 피난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마치 원래부터 적 진영 민간인이었던 것처럼 학살당했다.
이 사건들은 지난 시절 비극적인 현대사의 한 단면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적이라는 낙인을 받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연좌제 속에서 고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 장기수로 10년 이상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심지어는 40년이나 지난 20세기가 끝 무렵에서야 석방되기도 했다. 이 극단적인 야만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마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에 있어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초헌법 악법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국민의 세금을 기반으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헌법적 기관인 검찰과 형법에 의해 국가 안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두 세대가 지나고 있는 오늘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는 시민에 대한 시민사회의 책임,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기회를 준다. 지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14,000명이 전쟁에 부수된 피해가 아니라 의도된 살해였음을 확인했다. 이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어떤 죽음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싸움을 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에 이어 2014년 세월호까지, 의문의 죽음들이 쉴 사이 없이 이어졌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걸가? 은폐를 기도하는 국가,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 이들을 방관하는 사회가 있는 한 진실을 위한 싸움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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