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의 발단
2000년 이후 세계를 본격적으로 여행하고 탐험하기 시작하면서 희미하게나마 가슴속에 들어앉게 된 질문이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어디쯤 있는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우리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아시아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쯤에 속해 있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역 정체성’에 관한 혼란이다. 아시아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중국·일본인과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말레이·인도네시아 사람이라면, 동북아시아와 여타 아시아 지역은 어떻게 다른가, 그들과 우리가 갖고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시아’에 어떤 기여를 했고 또 앞으로 ‘아시아인’으로 불려도 괜찮은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시아’에 대한 그 어떤 가치 평가에 대해 배우거나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없었다. 5000년 역사의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우리 인접 국가나 지역과의 긴밀한 교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근대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서로가 아픈 추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정체성을 확립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아시아란 숙명이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운 훈장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와 교통의 발달로 시선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여전히 우리에게 ‘아시아’는 가치중립적이고 모호하기만 하다.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다닐 때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에서조차 이와 같은 고민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매번 엇비슷한 고민을 안고, 다시 우리의 시각은 한반도라는 꽉 짜인 비좁은 사건과 시공간의 늪으로 빠져들고 금세 ‘아시아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회귀하기 마련이다. TV와 인터넷을 틀면 서울과 뉴욕의 뉴스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로 막다시피 하는 비좁은 현실 속에서 아시아에 대한 고민은 사치일 뿐이었다.
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어떤 이는 미국이 아닌 아시아로 유학을 떠나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동남아지역의 뉴스를 찾아 읽기 시작해 아예 책을 번역한 이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실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면서 동시에 문제의식을 키워갔다. 스스로의 고민을 풀기 위해 한국을 오가는 여러 아시아 지역의 친구를 사귀고 여러 지역을 여행한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노력을 해온 사람들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아세안 센터가 광화문에 개최한 인도네시아어 초급 강의실에서 서로 만나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 데서 ‘루트아시아’는 출발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의 반복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관련 책을 읽고, 여러 매체의 뉴스를 검색하고, 해당 언어를 공부하는 등의 전통적 방법과, 연관된 분야의 스승을 찾아 직접 고견을 듣는 방법을 병행했다. 연구 모임멤버들 모두 대개 아시아의 1~2개 국가에 대해서는 준전문가적인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었기에 서로가 훌륭한 스승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노력은 일정한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들은 욕심을 부려 연구 주제를 좁혀본 적도 있다. 첫 대상은 미얀마. 루트아시아가 결성될 무렵 막 개방정책을 본격화한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주목거리였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얀마 친구들을 수소문해보고 미얀마 현대사 인물 100여 명을 검색해 일일이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보았다. 버마로부터 시작하는 책에 적힌 지식이 아닌 피와 살이 잡히는 정보를 접하기 위해 직접 미얀마로 날아가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매일같이 영어로 발행되는 미얀마 신문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기도 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는 가장 훌륭한 정보 접근 방법이기도 했지만 일련의 작업을 통해 무언가 큰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척이나 제한적이었고 그 정보는 신뢰하기도 어렵고 또한 검증된 것도 아니었다. 학계에서 나오는 자료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딱딱하고 거시적 관점이 태반이라 대중들이 쉽게 활용하거나 현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진취적인 한국인이 아무리 많이 세계로 퍼져 있다고 자랑을 해봐도, 막상 현지에서 생산되는 정보나 지식은 쉽게 전파되거나 공유되지 못하고 있었다.
루트아시아의 고민
기본적으로 아시아 여러 지역에 대한 정보와 시선은 영미권의 언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CNN과 BBC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즈로 대표되는 영미제도권 언론의 콘텐츠의 양과 질은 우리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 밖에도 현지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영어권 독립 저널리스트의 수와 양 또한 그 숫자를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그리고 전업 연구자와 시장 리서치 조사기관들의 업적까지 합치면 그 격차는 한도 끝도 없이 벌어져버리고 만다. 사실 영어에 의존해버리면 정보를 취합하는 일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에 대한 여러 열정을 종합해본 결과 영미권 미디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그다지 현명한 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루트아시아 프로젝트 그룹이 포착한 불만과 기회는 다음과 같다.
모두가 각자의 이해가 걸린 시선으로 아시아를 돌아보고 주목한다. 예를 들어 국내 미디어의 관심은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계’라는 즉자적인 관심에 머물러왔다. 한국인이 동남아 현지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든지, 한국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든지, 한국 정부가 무슨 인프라 사업을 지원했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영미권 언론의 관점이나 학술적 연구의 방향 역시 한계를 갖고 있긴 마찬가지이다. 서구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100년 전의 일방적 구도에서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은 저임금 노동중심 산업 구조를 갖고 있고 금융이나 정치체제 역시 국제 기준에서 보면 한참 뒤떨어져 있는 곳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구 언론이 주목하는 방향과 아시아가 아시아에 대해 중요하게 인식하는 부분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맞는 안경이 필요함을 절감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구와 아시아를 대립적인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반성해야 하고 주목해야 할 점은 아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가까워지고 있고 호감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관점’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서구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과, 한때 아시아의 패권국임을 자부했던 중국-일본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관점과 달리 우리는 보다 더 아시아적인 관점으로 아시아의 미래를 논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시아적 관점에 대한 제안
그 관점을 편의상 ‘아시아적 관점’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아시아적 관점은 구체화되거나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앞으로 루트아시아를 통해서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틀거지는 있어야 하기에 몇 가지 추구해나가야 할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부연 설명은 필요하다.
아시아적 관점은 첫째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미묘한 관계와 기울어진 균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불행하게도 아시아에서도 세계체제와 엇비슷한 남북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와 경제적 비전을 제시해나가야 한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동북과 동남이 서로의 접점을 넓히고 강화해야 한다. 또한 단일 국가의 틀, 일국(一國)적 이해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다. 나아가 이러한 균형에 대한 감각을 동아시아를 넘어 보다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시선으로 확대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아시아적 관점은, 각 지역과 공동체가 지켜온 전통 문화에 대한 존중과 현대화 노력에 대한 지지이다. 전통과 현대의 충돌과 조화에 대해서는 아시아인이라면 모두가 몸으로 체득해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서구의 시선이라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아시아를 바라보면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반대로 이상적이라거나 신비롭다는 결론에 머물 때가 많다. 그러나 서구식 주택과 한옥 주택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장단점을 어느 정도 보편적인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다. 책은 전통과 현대의 극단을 조화(調和)의 틀로 풀어내려고 시도한다.
아시아적 관점의 마지막 대목은 역사와 체제의 발전이 이제 어느 정도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욕심’이자 ‘확신’에 있다. 아시아의 미래가 현재와 다르지 않다면 세계 역사의 틀도 상당부분 바뀔 수 있다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소망이 담긴 내용이다.
교통수단과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아시아의 교류와 통합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류(韓流)라는 이름의 문화적인 현상을 사례로 들 필요도 없다. 실제 ‘아시아적 관점’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쓰지 않더라도 최근 급속히 진행된 아시아의 교류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젊은 층에게는 체화가 된 내용이기도 하다. 앞으로 젊은 세대의 직업은 아시아라는 ‘지역’에서 보다 높은 비율로 창출이 될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이 아시아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도, 반대로 아시아인이 한국에서 활약할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나아가 아시아에 대한 지역적 동질성도 강화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한 지식과 관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을 수 있다.
아시아에서 의미 있게 살기 위해
결국 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은 끊임없이 우리가 필요한 아시아의 정보를 직접 만들어내고 실제 그 지역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장을 펼치는 일이 우선이다. 아시아는 무척이나 넓다. 어차피 인간은 지리적 시공간의 한계에 얽매여 사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결국 이 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1차적인 목표는 ‘발로 쓰는 그 지역의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그런 정보들이 모아져 아시아에 대한 하나의 마음의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
루트아시아 프로젝트 그룹 편집진은 지난 1년 동안 좋은 필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지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문화인류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 이제 막 연구 성과를 내기 시작한 연구자, 현장에서 활약하는 저널리스트, 아시아 각 지역에서 학업을 마치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 중인 전문인…, 그것도 부족해 외국인들의 시선까지도 발굴해 원고를 청탁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앞으로 보다 정열적으로 ‘아시아적 관점’에 대한 탐구에 나설 것이다. 그것은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