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은 지난 얘기를 들려 주는 취재 후기가 아니다. 책으로 펴낸 ‘오늘의 뉴스’다이 책은 우선 취재기이다. 형식이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저자는 발단부터 결말까지 사건의 경과를 따라 가면서, 취재된 사실들을 촘촘히 엮어 ‘사태의 진상’을 그려 보인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사건의 충실한 재구성’에 있지 않다. 방송에서 못 다한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있지도 않다. 그가 어렵게 재구성한 그림은 결국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저자는 그 그림을 통해, 국민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거짓 신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 사회의 욕구와 시스템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와 시스템이 온존하는 한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환자의 심리 과정에 관한 결론부의 이야기는 그 점에서 시사적이다. 암 선고를 받으면 보통 환자들은 ‘부정 → 분노(화냄) → 우울(의미부여) → 수용(문제 해결)’의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황 교수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그랬다. 대다수 국민들은 처음에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잡은 황 교수가 매도되는 데 대하여 분노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조작의 증거가 속속 드러나자, 이제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 보기도 하고, 그나마 국내 언론과 과학자들이 앞장서 사태를 수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제 ‘문제 해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가 ‘황우석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이제 아픔을 딛고 ‘문제 해결’을 위해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이 단순한 취재 후기가 아니라 ‘오늘의 뉴스’로 읽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이 책은 진실을 추구하는 한 언론인의 열정에 관한 책이다이 책의 주인공은 ‘사건’이 아니다.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진실을 추구한 젊은 언론인(들)의 열정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만한 제보를 접하고 저자가 처음 느꼈던 것은 ‘상식의 저항’이었다. 의혹을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진실의 힘이 언젠가는 빛을 본다’는 소박한 믿음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실을 밝히려는 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역경을 진실을 향한 열정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취재가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로서 느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이 책갈피마다 묻어나는 이 책을 희망의 메시지로 읽히게 하는 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쪽의 온갖 방해 공작을 이겨 내고 마침내 ‘황우석 신화’의 종말을 알리는 ‘특집,
은 왜 재검증을 요구하였는가’를 방영하게 된 대반전의 순간에 저자가 도달한 다음과 같은 자각이다.
“그렇게 대반전의 막이 내렸다. 이 반전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다. 진실! 그것은 여리고 쉽게 망가져서 이 거친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힘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3.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다
사태 진행 과정에서 저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취재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도처에 자리잡은 강고한 허위의 벽, 시시각각 압박해 들어오는 ‘어둠의 힘’도 아니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이 황우석 교수팀에 건 ‘희망’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그는 몇 번이나 자신의 ‘합리적 의심’을 의심했다. 자신이 취재한 사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취재팀 전체가 가장 우려했던 점도 만약에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민적 쇼크 상태’가 초래”되리라는 것이었고, 가장 신경 썼던 점도 “이것을 어떻게 다독거리고 추스를 수 있는지”였다. 결국 희망은 무너졌고, 희망과 배신감 사이의 진폭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무도 그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추스를 수 없었고, 그들은 냉담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이제 와 그 사태의 전말을 소상히 밝히는 것은 어쩌면 겨우 아물어 가는 듯하던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한 번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하다.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라고 그는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망각과 냉담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근거 없는 희망이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힘도 사라진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고 정직하게 절망하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다. 황우석 신화는 무너졌지만, 그 그늘에서 뚜벅뚜벅 연구에 매진해 온 진짜배기 과학자들은 건재하다. 한때 거짓이 세상을 덮었지만, 양심적인 젊은 과학도들과 언론인들은 끝내 그 허위의 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근거이자 출발점은 우리 사회의 그러한 자정 능력, 결국 “진실의 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연대일 수밖에 없다.
4. 다빈치 코드보다 재미있다?!
사건 자체의 무게를 생각하면 ‘재미있다’는 표현은 삼가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로 보면, 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어찌 보면 이 책 전체가 하나의 조각그림 맞추기이다. 상대편의 거짓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가 확보해야 할 증거는 거의 입수 불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밝히려는 쪽과 감추려는 쪽 사이에 접전이 벌어질 것을 예감한다. 그 전투를 헤쳐 나가기 위해 세운 가설들, 그리고 그것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두뇌 게임! 상대에게 접근하기 위한 위장, 상대가 내놓을 수를 미리 읽고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짜낸 전술들, 생각지 못했던 약점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파국으로 몰렸을 때 등장하는 의인들, 이 모든 순간이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연상시킨다.
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는 기억의 반추가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단행본으로서 독자적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또한 바로 이 ‘원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