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10월 전사이벤트
10월 혜택 모음
싱가포르관광청
모바일 리뉴얼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파바로티와 친구들 5집 - 리베리아의 아이들 (Pavarotti & Friends - For The Children Of Liberia)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CD

파바로티와 친구들 5집 - 리베리아의 아이들 (Pavarotti & Friends - For The Children Of Liberia)

Luciano Pavarotti, Celine Dion, Stevland Morris, TRISHA YEARWOOD, Vanessa Williams 노래 외 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DECCA | 1999년 03월 0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6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23,900원
할인가 19,4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한정판매

수량
배송비 : 2,000원 해당 상품과 도서 포함하여 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 해외배송 가능
1/4
광고 AD

파바로티와 친구들 5집 - 리베리아의 아이들 (Pavarotti & Friends - For The Children Of Liberia)

이 상품의 시리즈 (4개)

완결된 상품입니다.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1999년 03월 04일
시간, 무게, 크기 103g

관련분류

디스크

CD 1
  • 01 Let It Rain (Jon Bon Jovi)
  • 02 Stop (Spice Girls)
  • 03 How Do I Live Without You (Diane Warren)
  • 04 I Hate You Then I Love You (Manuel De Falla)
  • 05 Higher Ground (Stevie Wonder)
  • 06 `O Surdato` Nnammurato (Enrico Cannio)
  • 07 Se Bastasse Una Canzone (Eros Ramazzotti)
  • 08 Betcha Never (Kenneth Edmonds)
  • 09 Viva Forever (Spice Girls)
  • 10 Va,Pensiero (Giuseppe Verdi)
  • 11 Napule E` (Pino Daniele)
  • 12 Une Place Pour Moi (Erick Benzi)
  • 13 Non Ti Scordar Di Me (Ernesto De Curtis)
  • 14 Tonight (Leonard Bernstein)
  • 15 Dreams (Stevie Nicks)
  • 16 Adeste Fideles (John Francis Wade)
  • 17 Peace Wanted Just To Be Free (Stevie Wonder)

아티스트 소개 (8명)

노래 :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 )
성악가 (테너) 성악가 (테너)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쓰는 퀘벡 지방의 작은 집에서 1968년 첫 울음보를 터트린 셀린 디온. 그녀는 합계가 무려 16명인 대식구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부모님 모두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우산 아래 셀린 디온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맘껏 틔웠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의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2살 때에는 ‘It was only a dream’이라는 최초의 자작곡을 썼다는 등의 후일담들이 잘 증명해준다. 오빠와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 하에 상기한 곡을 테이프화(化)했던 셀린 디온. 그녀는 그것을 매니저인 르네 앤젤릴(Rene Angelil)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허나 독촉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셀린 디온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르네 앤젤릴은 그 날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정식 데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셀린 디온의 노래를 직접 들은 순간, 르네 앤젤릴은 그녀가 곧 인터내셔널 슈퍼 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1983년 15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음반 < D’Amour Ou D’Amite >을 통해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야마하 작곡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이후 셀린 디온의 행보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또한 그녀는 그 즈음 조우했던 베테랑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의 인연 덕에 걸프 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기획 앨범 < Voices That Care >에 참여, 수많은 팝 필드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문’뿐인 듯 보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우선 음악 외적인 면에서 파격적 변신을 단행했다. 팝 계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 또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동시에 셀린 디온은 영국의 랭귀지 스쿨에서 언어 교육을 받으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틴에이저에서 성숙미를 내뿜는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드백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1990년에 발매했던 처녀작 < Unison >(74위)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와 4위를 기록한 ‘If there was (any other way)’와 ‘Why does my heart beat now’의 선전에 힘입어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 허나 정작 그녀를 꼭지점으로 견인했던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테마였던 ‘Beauty and the beast’였다. 차트 1위를 단박에 꿰찬 곡은 그녀에게 1992년 그래미의 팝 듀오/그룹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이후의 성공 시대를 예감케 했다. 또한 2집 앨범인 < Celine Dion >(1992)에도 수록되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곡 외에 다이안 워렌(Diane Warren) 작곡의 ‘If you asked me to’(4위), ‘Nothing broken but my heart’(29위), ‘Love can move mountains’(36위) 등이 팬들의 애정 공세를 한 몸에 받았다. 같은 해에 내놓았던 영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의 주제곡인 ‘When I fall in love’(23위) 역시 대박이었다. 2년 뒤인 1994년에는 셀린 디온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매니저였던 르네 앤젤릴과의 결혼이 바로 그것. 1988년부터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둘은 6년 뒤인 1994년에야 그 사실을 발표하고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에서 결혼, 세간을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정확이 배가 되는 나이차도 화제거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셀린 디온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간, 무려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주는 양적 포만감부터가 남달랐다. 1993년의 < Colour of My Love >(4위)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제니퍼 러시(Jennifer Rush)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power of love’(4주간 1위), 그리고 ‘Misled’(23위) 등의 히트 넘버들을 배출했다. 1994년과 1995년에 셀린 디온은 두 장의 불어 LP를 내놓으며 음악적 본령을 되새김질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팝 클래식인 ‘Calling you’를 수록한 < Live A L’olympia >와 장자크 골드만이 프로듀스해준 < D’eux >이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800만장을 세일즈, 가장 많이 팔린 샹송 작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은 단연코 1996년의 팝 마스터피스 < Falling Into You >였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집계된 판매량이 1100만장인 작품은 그 해 그래미에서 ‘팝 앨범’과 ‘올해의 앨범’, 두 개 부문을 석권하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의 테마송이자 다이안 워렌이 써 준 ‘Because you loved me’(1위)를 위시로 팝 고전을 다시 부른 ‘All by myself’(4위), ‘It’s all coming back to me mow’(2위) 등이 차트에 핵 폭탄을 마구 투하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같은 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무비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14주 연속 1위)은 더했다. 또 다시 그래미 두 개상을 차지하는 등, ‘셀린 디온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의 상황을 연출했다. 곡이 수록된 1997년의 앨범 < Let’s Talk About Love >(1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두 음반의 합산 판매고가 무려 6000만장을 상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녀는 실로 당대에 무적, 팝 계 최고의 디바 자리에 우뚝 섰다. 그간 참여했던 뮤지션들을 포함해 새로 가세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 비지스(The Bee Gees), 캐롤 킹(Carole King),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등, 후자에 참여한 초특급 아티스트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당시 그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셀린 디온은 크리스마스 스페셜 반인 < These Are Special Times >(1998, 2위)와 샹송 앨범 < S’il Suffisatt D’aimer >(1998)를 선보이고 베스트 컬렉션인 <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1999, 1위)을 내놓는 등,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남편의 후두암 투병이라는 절망적 사건이 발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비극이 종결되고 셀린 디온에게 행복이 찾아왔던 때는 2001년이었다. 체외 수정에 성공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의 증세도 나날이 호전되는 등, 셀린 디온이 가정에서 본업으로 컴백할 기운이 날로 충만해져 갔다. 그리고 2002년, 무려 5년 만에 출시했던 정규작 < A New Day Has Come >은 그녀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초로 발매 첫 주에 정상에 등극하며 변함없는 팬 베이스를 과시했다. 허나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전성기 시절에는 많이 못 미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현재 셀린 디온은 1년 만에 신작 < One Heart >를 내놓으며 팬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003/04 배순탁(greattak@izm.co.kr) 오이뮤직 머라이어 캐리가 있고 휘트니 휴스턴이 있지만 이들 못지 않게 지난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가수가 셀린 디온(Celine Dion)이다. 흔히들 이들을 오페라의 주역가수에서 나온 말로 최고 인기의 여가수를 의미하는 어휘인 디바(diva)로 일컫는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팝 음악계의 디바 시대를 이끌었다면 셀린 디온은 디바 시대의 정점에 선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셀린 디온은 같은 음반회사 소니 뮤직에 소속된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90년대 중반까지 만년 2등 가수였다. 하지만 셀린 디온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나의 마음은 영원할 거예요(My heart will go on)’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 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노래 : Vanessa Williams (바네사 윌리암스)
미스아메리카 출신으로 팝 음악계에 나름의 강렬한 무늬를 새긴 여가수다. 동시에 그 뛰어난 미모 때문에 뮤지션으로서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1963년 3월 뉴욕에서 태어난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Lynn Williams)는 부모가 모두 음악학위를 가진 ‘뮤직 패밀리’ 출신으로 유년기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프렌치 혼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었으며, 목소리 또한 빼어났다. 1981년... 미스아메리카 출신으로 팝 음악계에 나름의 강렬한 무늬를 새긴 여가수다. 동시에 그 뛰어난 미모 때문에 뮤지션으로서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1963년 3월 뉴욕에서 태어난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Lynn Williams)는 부모가 모두 음악학위를 가진 ‘뮤직 패밀리’ 출신으로 유년기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프렌치 혼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었으며, 목소리 또한 빼어났다. 1981년 시라쿠스(Syracuse) 대학 연극예술학과에 진학하여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구체화시켜 나가지만 외모 덕분(?)에 샛길로 빠지게 된다. 완벽한 얼굴과 몸매를 자랑하던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캠퍼스 퀸으로 손꼽혔고, 결국 ‘미스 뉴욕’을 거쳐 역사상 최초의 흑인 ‘미스 아메리카’에 오르는 영광을 맞이한다. 그러나 미인대회에 참가한 것이 원인이 되어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마저 접어야 할 위기에 처한다. 미국의 인종주의 언론은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그녀가 성인잡지 < 펜트하우스 >에서 찍었던 누드사진으로 바네사는 마침내 1984년 미스아메리카 왕관을 박탈당하고 만다. 절망은 그러나 곧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가온다. 다시 노래에 열정을 쏟아 펑키의 대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백업 보컬로 참여, ‘Hey good looking’, ‘Do fries go with that shake?’와 같은 곡에서 가능성을 타진했다. 곡 자체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바네사의 매력에 관심을 가진 윙 레코드(Wing Record)는 그녀에게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1988년 ‘미스아메리카’ 축출 사건을 겪은 지 4년 만에 드디어 데뷔 앨범인 < Right Stuff >을 발표한다. ‘어번 R&B’ 장르를 선보인 그녀는 이 앨범 하나로 4년 전 불명예를 대중의 기억 속에서 말끔히 씻어낸다. 첫 싱글인 ‘Dreaming’이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He’s got the look’, ‘Darling I’가 내리 인기를 얻었고, 연이은 인기행진으로 그 해 최우수신인 부문을 포함한 그래미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광명을 맛본다. 덩달아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에서 이미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1년 작 < The Comfort Zone >도 데뷔 앨범의 성공을 확대 재현했다. 수록곡인 발라드 곡 ‘Save the best for last’는 5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렸고, ‘Running back to you’ 등이 인기를 누리며 앨범 역시 더블 플래티넘(200만장)의 성공을 거둔다. 당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 비벌리힐스의 아이들 >(Beverly Hills, 90210) 사운드트랙 역시 그녀의 성공 화염에 기름을 붓는다. 여기선 브라이언 맥나이트와 호흡을 고른 ‘Love is’가 차트 5위에 오르며 당시 인기가 절정에 올랐음을 알렸다. 전작에서 펑크, 재즈, R&B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기 시작한 그녀는 세 번째 앨범 < The Sweetest Days >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는 음악적 욕구를 다시 한 번 실현시키며 비주얼 가수가 아니라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준다. 동명 타이틀 곡 ’The sweetest days’, 스팅(Sting)의 재즈 넘버를 리메이크한 ‘Sister moon’등이 인기를 얻었다. 특히 후자는 곡의 주인 스팅이 직접 백 보컬과 베이스 연주를 맡아 화제가 되었다. 스타의 자리를 굳힌 그녀는 어린 시절 꿈꾸어 왔던 연기 활동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하고, 결국 1994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 Kiss Of The Spiderwoman >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다. 이후 < Motown Returns To The Apollo >, < The Boy Who Loved Christmas And Stompin’ At The Savoy >, < Another You >, < Harley Davidson And The Marlboro Man >등 다수의 영화와 TV 드라마에 주연했으며, R&B TV쇼 < The Soul Of VH-1 >의 진행을 맡기도 하였다. 1995년 디즈니 만화영화 < 포카혼타스(Pocahontas) >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여 주제곡인 ’The color of the wind’를 히트시키고 캐롤 앨범, 1997년작 < The Next >까지 가수로서의 끈을 놓지는 않았지만 전성기의 드라이브는 끊겼고 1990년대 후반에는 음악보다는 영화에 치중했다. 이 무렵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함께 한 영화 < 이레이저 >(Eraser)를 통해 영화배우로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TV 미니시리즈인 < Odyssey >에 출연하여 인기를 누렸고, 영화 < Dance With Me >에서는 화려한 라틴 댄스까지 선보이며 연기자로서 기반도 확실히 구축했다. 1998년에는 10년 음악생활을 정리하는 베스트 < Greatest Hits-The First Ten Years >를 발표했다.
영국 댄스 팝 그룹 스파이스 걸스는 1960년대 로네츠(Ronettes), 슈프림스(Supremes) 등 모타운 풍의 흑인 여성그룹 이후 맥이 끊겼던 ‘주류 걸 그룹’의 전성시대를 부활시킨 소녀들이다. 하지만 기존의 여성 그룹들과는 좀 다르다. 1996년 스파이스 걸스가 데뷔싱글 ‘Wannabe’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 탱크탑과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에다 몸에 문신까지... 영국 댄스 팝 그룹 스파이스 걸스는 1960년대 로네츠(Ronettes), 슈프림스(Supremes) 등 모타운 풍의 흑인 여성그룹 이후 맥이 끊겼던 ‘주류 걸 그룹’의 전성시대를 부활시킨 소녀들이다. 하지만 기존의 여성 그룹들과는 좀 다르다. 1996년 스파이스 걸스가 데뷔싱글 ‘Wannabe’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 탱크탑과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에다 몸에 문신까지 한 그들은 천방지축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마치 에어로빅을 하듯 춤추며 노래했다. 게다가 예쁘게 보이려하기는커녕 오히려 ‘나 못났죠!’라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노래하는 모습은 무척 무례하게 보였으며 그야말로 도발적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여성다움, 즉 아름답고 지순한 성질과는 분명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파격’은 곧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며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그때까지 여성가수 또는 여성그룹이라고 하면 청순한 외모에 수동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양념 소녀들’은 이 점을 역이용했다. 대중들이 그러한 ‘스탠더드’에 싫증을 낼 만한 시기에 그들은 ‘순종’을 거부하고 ‘걸 파워’(Girl Power)를 내세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90년대 들어 각광받았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렇다고 마돈나처럼 엄청난 섹슈얼리티도, 시네드 오코너처럼 과격한 메시지도 갖고 있지 못했던 스파이스 걸스는 대신 다른 것으로 승부를 걸었다. 바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함과 통통 튀는 특별한 개성이었다. 거기에 정상급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이 주조해낸 고품격의 음악이 튼튼한 뒷받침이 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소화시킴으로써 스파이스 걸스는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할 수 있었으며, 10대 소녀들의 우상으로, 또 여러 후배 여가수들의 전형으로 받들어 질 수 있었다. 제리 할리웰(Geri Halliwell), 빅토리아 아담스(Victoria Adams), 멜라니 B(Melanie Brown), 멜라니 C(Melanie Chisholm), 엠마 번튼(Emma Bunton). 끼가 넘치던 이 5명의 여성으로 구성되었던 스파이스 걸스의 역사는 1993년 한 기획사의 오디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나 테이크 댓의 ‘여성버전’을 만들고자했던 것이 기획사의 의도였다. 이들(엠마를 제외한)은 그 오디션을 통해 서로 만났고, 몇 달 후 엠마를 멤버로 추가했다. 그 5인조는 이후 같이 살면서 작곡과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등 가수로서의 내공을 다져갔다. 스파이스 걸스로 이름을 정한 그들은 여가수 애니 레녹스(Annie Lennox)의 매니저였던 사이먼 풀러(Simon Fuller)를 매니저로 영입해 완벽한 진용을 갖췄다. 1995년 3월 스파이스 걸스는 ‘메이저 레이블’인 < 버진 레코드 >(Virgin Records)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듬해 팝과 R&B가 크로스오버된 그리고 파워넘치는 댄스곡과 상큼한 발라드가 적절히 배열된 데뷔앨범 < Spice >를 발표했다. 기념비적 싱글 ‘Wannabe’는 등장하자마자 영국차트 1위를 차지했고 10대 소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무려 7주간이나 1위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대중들은 그들이 퍼붓는 자극적인 ‘양념공세’에 흠뻑 취하게 된다. 10대 소녀들은 스파이스 걸스의 거침없는 태도에 매료되었으며, 처음엔 그들의 버릇없음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어른들’도 이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무릎꿇었다. 호들갑스럽기로 소문난 영국 언론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마다 기사화하는 데 열올렸으며 멤버 각자의 별명까지 지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후 스파이스 걸스는 ‘Say you`ll be there’ 등 후속곡들을 연속 히트시키며 유럽과 미국 그리고 전세계로 ‘스파이스 열풍’을 몰아갔다. 1997년 발표한 2집 < Spiceworld >에서 스파이스 걸스는 선머슴 같은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좀더 성숙된 모습으로 변신했다. 댄스와 발라드는 물론 라틴 넘버에서부터 스윙 재즈, 모타운 풍까지 풍성한 팝 사운드 스케이프를 구축해 또 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이후 맏언니 격이던 제리 할리웰이 탈퇴하며 팀이 위기를 맞았지만 나머지 네 멤버는 < 파바로티와 친구들 > 공연에 참가하는 등 계속해서 그룹을 이어갔다. 멤버들의 솔로 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 멤버 중 가장 탄탄한 보컬실력을 자랑하던 멜라니 C는 1999년 록 성향의 앨범 < Northern Star >를 발표하며 성공적인 솔로 캐리어를 쌓았다. 이후 멤버들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이혼 등 희비를 동시에 겪었던 스파이스 걸스가 5인조에서 4인조로 탈바꿈하여 2000년 3집 < Forever >를 발표했다. 흑인 프로듀서들을 대거 영입해서 R&B의 ‘검은 톤’을 부각시켰다. 이혼의 아픔을 겪은 멜라니 B도 같은 시기에 솔로앨범 < Hot >을 출시했다. 걸 그룹 선풍을 일으켰던 스파이스 걸스의 ‘존재가치’는 생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태도(attitude)’였다. 경쟁관계에 있었던 올 세인츠나 최근의 아토믹 키튼 같은 여러 걸 그룹들 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까지도 그들의 ‘걸 파워 세례’를 받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이들의 신선함은 점차 시들어가고 파릇파릇한 후배들이 그들을 압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스파이스 걸스는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자신들이 이룩해 논 업적을 무너뜨리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갈지 아니면 어떻게 그만 둘지가 그들의 최대 과제다.
아일랜드의 4인조 남매 그룹 코어스는 리드보컬과 틴 휘슬(Tin Whistle)을 맡고 있는 안드레아 코어, 드럼과 보드란(Bodhran)을 연주하는 캐롤라인 코어(Caroline Corr), 바이올린의 샤론 코어(Sharon Corr), 그리고 기타와 키보드의 짐 코어(Jim Corr)로 1990년에 결성됐다. 그들은 더블린에서 북쪽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던다크에서(Dundalk)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 아일랜드의 4인조 남매 그룹 코어스는 리드보컬과 틴 휘슬(Tin Whistle)을 맡고 있는 안드레아 코어, 드럼과 보드란(Bodhran)을 연주하는 캐롤라인 코어(Caroline Corr), 바이올린의 샤론 코어(Sharon Corr), 그리고 기타와 키보드의 짐 코어(Jim Corr)로 1990년에 결성됐다. 그들은 더블린에서 북쪽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던다크에서(Dundalk)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뮤지션이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대해 일찍 눈을 떴다. “우리 부모님 진(Jean Corr)과 제리(Jerry Corr)는 밴드에서 연주했다. 집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키보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는데 카펜터스에서 이글스 그리고 클래식과 찬송가까지 다양했다. 이것은 우리를 자연스레 음악과 가깝도록 만들었다.” 짐의 회상이다. 음악가에게 필요한 최적의 음악환경이었다. 남매들 중 연장자였던 짐이 맨 먼저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1980년대 초에 더블린으로 건너가 여러 밴드에서 세션 연주자로 활동했다. 당시에 그는 ‘아일랜드의 목소리’라 불리던 돌로레스 킨(Dolores Keane)과 연주를 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그러나 전통적인 아일랜드 민속음악에 대중적인 팝 사운드를 조화시키고 싶어했다. “신토불이는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그 음악을 한 단계 더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화’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코어스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짐은 동생들의 눈부시게 향상된 연주실력을 보고 가족 그룹을 결성하기로 마음먹고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짐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와 멜로디를 구상하면 자매들이 가사를 쓰는 ‘분업체계’를 확립했다. 이 당시 코어스의 악기 편성은 짐과 캐롤라인이 키보드, 샤론이 바이올린과 피들, 그리고 안드레아가 리드보컬을 맡는 단순하고 간결한 패턴이었다. 코어스를 위한 행운의 여신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들이 1990년에 로디 도일(Roddy Doyle)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알란 파커의 영화 < 커미트먼츠(The Commitments) >에 등장하는 밴드의 배역을 얻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있을 때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존 휴즈(John Hugues)가 그들을 눈여겨본 것이다. 휴즈는 이후 코어스의 매니저가 된다. 비록 오디션에는 떨어졌지만 그들은 휴즈의 도움으로 영화 홍보 차 마련된 스페셜 라이브 콘서트에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무사히 공연은 마쳤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악기 구성에 있었다. 코어스에게 선율악기는 있되 리듬 악기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일랜드의 민속음악을 연주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들의 지향점인 듣기 편한 팝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쪽 짜리 그룹이었다. 그래서 사운드가 꽉 차지 않고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존재했다. 결론은 악기 재편성. 캐롤라인이 직접 드럼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또 비디오를 보고 보드란의 연주 기술을 터득하여 그룹의 사운드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주: 보드란은 끝이 둘로 갈라진 스틱을 사용하는 아일랜드의 전통 타악기이다.) 그 결과 그들은 한결 나은 짜임새를 갖추게 됐다. 전열을 재정비하고 1993년 더블린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코어스에게 또 한 명의 ‘도우미’가 등장했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당시 주 아일랜드 미국 대사였던 진 케네디 스미스(Jean Kennedy Smith)였다. 그는 코어스의 음악을 듣고 감명 받아 1994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컵 축하 공연에 그들을 초청했다. 꿈에 그리던 미국 진출길이 열린 것이다. 남매들의 성공적인 미국 공연은 애틀랜틱 레코드 부사장인 제이슨 플롬(Jason Flom)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그래미상을 14개나 거머쥔 ‘히트 보증수표’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를 밴드의 프로듀서로 지명했다. 하지만 데이빗은 마이클 잭슨의 앨범 작업을 하던 터라 시간을 내지 못했다. 멤버들은 안타까운 한숨만 내쉬었고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 체결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저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악기도 준비하고 서로 화음도 맞췄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매니저 휴즈를 필두로 코어스는 포스터의 작업실로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포스터는 싫어하는 기색 없이 반가운 얼굴로 즉석에서 연주를 요청했고 그들은 자작 곡 ''Love to love you''를 선보였다(이후 이 곡은 1996년 데뷔작 < Forgiven Not Forgotten >에 수록된다). 아일랜드의 음악 색채가 듬뿍 담긴 멜로디와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는 포스터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룹이 학수고대하던 합격점을 받았다.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천군 마마를 얻어 확실한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발매된 그룹의 데뷔 앨범은 미국에서 골드, 영국에서는 플래티넘을 차지하며 전세계적으로 1,4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들이 펼치는 아일랜드 민속음악과 포스터가 만들어낸 세련된 팝 사운드가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남매들은 포스터와 공동 작곡한 ‘Someday’를 제외하고 전 곡을 작사, 작곡하는 뛰어난 음악 실력을 자랑했다. 총 15곡 중 6곡이 연주곡으로 채워진 것도 특기사항. 데뷔작의 성공으로 코어스는 셀린 디온, 마이클 볼튼 같은 슈퍼스타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됐다. 나아가 덴마크의 오던스 페스티벌(Odense Festival), 런던의 플리드 페스티벌(Fleadh Festival) 같은 유명 록음악 축제에서도 스팅, 밴 모리슨과 함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언론도 그들의 공연을 보고 호평 일색이었다. < 런던 타임tm >는 ‘코어스의 공연은 왜 그들이 스타덤에 올랐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보인 자리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안드레아는 출중한 미모와 연기력 덕분에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 < 에비타(Evita) >에 출연하기도 했다. 코어스의 쾌속항진은 1997년에 발표한 2집 앨범 < Talk On Corners >에서도 계속됐다. 영국 앨범차트 1위에 랭크되며 270만장이나 팔렸고 1집 또한 2위로 재등장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5개 나라에서 플래티넘을, 9개 나라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수록곡 ''Dreams'', ''So Young'', ''What can I do''는 앨범의 인기몰이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밴드의 이 작품은 전작 보다 팝 적인 사운드에서 탈피해 록 비트가 강화됐다. ‘Only when I sleep’이 말해준다. 아일랜드 음악색깔도 많이 희석됐다. 다양한 음악 실험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미 헨드릭스의 고전을 켈트 뮤직의 대명사 치프턴스(Chieftains)와 함께 리메이크한 ‘Little Wing’은 정말 색다른 시도였다. 코어가(家) 남매들의 열풍은 그칠 줄 몰랐다. 그들은 1999년 2월에 열린 브릿 어워즈에서 ‘최우수 인터내셔널 그룹''으로 선정됐다. 그해 10월에는 아이리시 어워즈에서 최고의 영예인 ‘하이네켄/핫 프레스상(Heineken/Hot Press)’을 비롯, ‘최고의 국내 밴드''상과 ''국내 아티스트에 의한 최고의 라이브 공연''상을 휩쓸었다. 또한 리드 싱어 안드레아 코어는 ''최고 여자 가수''상을 차지했다. 드디어 밴 모리슨, 유투, 밥 겔도프, 엔야, 시네드 오코너 등 선배들의 배턴을 이어받아 아일랜드의 국민가수로 당당히 자리 매김을 한 것이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코어스는 MTV 언플러그드 라이브 앨범을 내놓았다. 1999년 10월 5일 아일랜드의 위크로(Wicklow)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아일랜드 전통악기와 언플러그드가 ‘찰떡 궁합’임을 증명했다. 아일랜드 특유의 애절함과 신비함이 앨범 곳곳에 베어있다. 그들은 또한 메리 블랙(Mary Black)의 ‘No frontiers’, 알이엠(REM)의 ''Everybody hurts''에서 다시 한번 ‘코어스식’ 리메이크를 자랑했다. 이듬해 선보인 코어스의 3집 앨범 < In Blue >는 1.2집의 작업장소 미국이 아닌 제2의 고향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녹음됐다. “우리들의 장소에서 작업하는 것은 매우 자유로웠다. LA에서 녹음하는 것은 큰 경험이었으나 우리는 변화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매우 특별했다.” 캐롤라인의 말이다. 틀에 박힌 음악과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를 수혈하여 ‘신(新)음악’ ‘신(新)사고’를 하겠다는 뜻이다. 코어스의 결심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프로듀서가 물갈이됐다.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음악 전권을 행사하던 데이빗 포스터가 물러났다. 그 자리에 샤니아 트웨인의 남편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머트 랭(Robert "Mutt" Range)이 자리잡았다. 그는 이미 록 그룹 데프레파드와 포리너의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렸던 인물이다. 이뿐이 아니다. 음반 수록곡 ‘Give me a reason’, ‘All in a day’에서는 남매들이 직접 프로듀서를 맡아 사운드를 책임졌다. 강력한 드럼 비트와 함께 코어자매들의 보컬 하모니가 매력적인 ‘Breathless’, 부드러운 팝 넘버 ‘Somebody for someone’와 ‘All the love in the world’, 안드레아의 보컬이 돋보이는 ‘Rain’, 흥겨운 댄스 팝 ‘Give it all up’등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와 리듬이 앨범 전체에 진동한다. ‘아이리시 팝’에서 ‘미국 팝’으로의 접근이다. 코어스의 이 앨범에는 ‘아티스트의 자유’가 넘실댄다.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음악을 만들었다. 결과는 상관없다. 그들의 손안으로 음악이 들어온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이번 앨범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담았다. 이 음반이 그것을 말해주리라 희망한다.” 아티스트의 열정과 노력은 음악팬들도 알아준다. 지금 코어스는 그것을 믿고 있다.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