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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와 친구들 1집 (Luciano Pavarotti &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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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와 친구들 1집 (Luciano Pavarotti & Friends)

'Caruso (카루소)' 수록

Luciano Pavarotti, Lucio Dalla, Neville Brothers, Aaron Neville, Suzanne Vega 노래 외 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DECCA | 1997년 12월 0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9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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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와 친구들 1집 (Luciano Pavarotti & Friends)

이 상품의 시리즈 (4개)

완결된 상품입니다.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1997년 12월 01일

관련분류

디스크

CD 1
  • 01 Pans Angelicus (Cesar Franck, Luciano Pavarotti, Sting)
  • 02 Miserere (Zucchero, Bono, Luciano Pavarotti)
  • 03 Muoio Per Te (Sting, Zucchero)
  • 04 Caruso (Lucio Dalla, Luciano Pavarotti)
  • 05 One More Day (Neville Brothers)
  • 06 Ave Maria (Franz Schubert, Aaron Neville)
  • 07 In Liverpool (Suzanne Vega)
  • 08 Sentinel (Mike Oldfield)
  • 09 L`Urlo (Zucchero)
  • 10 Too Much Love Will Kill You (Brian May)
  • 11 It`S Probably Me (Sting)
  • 12 Room 19 (Bob Geldof)
  • 13 Les Hommes Qui Passent (Patricia Kaas)
  • 14 La Donna E`Mobile (Giuseppe Verdi, Luciano Pavarotti, Sting, Lucio Dalla, Brian May)

아티스트 소개 (8명)

노래 :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 )
성악가 (테너) 성악가 (테너)
멤버 : 아론 네빌(Aaron Neville), 아트 네빌(Art Neville), 찰스 네빌(Charles Neville), 시릴 네빌(Cyril Neville), 이반 네빌(Ivan Neville) 멤버 : 아론 네빌(Aaron Neville), 아트 네빌(Art Neville), 찰스 네빌(Charles Neville), 시릴 네빌(Cyril Neville), 이반 네빌(Ivan Neville)
흔히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말을 한다. 원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에서 떠돌이 시인을 일컫는 용어였던 그 말은 최근에 와서 레오나드 코헨처럼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때론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노래하는 가수에게 전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수잔 베가(Suzanne Vega)는 여성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 만점인 수잔 베가는 가사를 쓸 줄... 흔히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말을 한다. 원래 고대 그리스나 중세 유럽에서 떠돌이 시인을 일컫는 용어였던 그 말은 최근에 와서 레오나드 코헨처럼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때론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노래하는 가수에게 전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수잔 베가(Suzanne Vega)는 여성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 만점인 수잔 베가는 가사를 쓸 줄 아는 ‘지적인’ 포크 가수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포크 사운드는 물론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쓰는 진지한 노랫말이 그녀가 지닌 최대의 미덕이다. 일례로, 학대받는 아이의 관점에서 가사를 쓴 ‘Luka’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며 아동학대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가사 속의 상처받은 아이는 지난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감춘 채, "난 괜찮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말아요"라고 아래층 사람에게 쓸쓸히 말한다. 수잔 베가가 높이 평가받는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980년대 후반 트레이시 채프먼과 더불어 포크 음악을 리바이벌시킨 주역이라는 점이다. 1985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음반이 비평적인 갈채를 받으며 새로운 포크 붐을 일으켰다. 여성만이 갖는 섬세한 감수성이 어필했던 것이다. 그녀의 성과는 자신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당시의 여성 포크 운동은 계속 이어져서 얼마 후 등장하는 숀 콜빈, 토리 에이모스, 애니 디프랑코, 주얼 같은 90년대 여성 포크 가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1959년 8월 12일 뉴욕에서 태어난 수잔 베가는 소설가였던 양아버지의 문학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 또한 레오나드 코헨, 루 리드의 음악에 감동 받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덕분에 싱어 송 라이터의 자질을 완벽히 갖출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던 그녀는 그때(1975년경)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회사 접수원으로 일하는 한편,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 순회공연에서 홀로 어쿠스틱 공연을 벌여나갔다. 수잔 베가의 공연은 차츰 주목받았으며, 1984년 < 뉴욕 타임즈 > 리뷰에서는 ‘뉴욕 포크 진영에서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 중 하나’로 그녀를 기술하기도 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베가는 < A&M > 레코드와 계약하고 이듬해인 1985년 데뷔앨범 < Suzanne Vega >를 발표했다.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문학적 노랫말, 청초한 여성의 음색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에 잠시 당황한 비평가들은 그녀의 음악에 ‘네오 포크’라는 신종 용어를 붙여줬고, 이후 그녀는 신흥 여성 포크의 기수로 대두된다. 1987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 Solitude Standing >에서는 앞서 언급한 ‘Luka’와 담백한 아 카펠라 트랙 ‘Tom’s diner’ 등이 크게 히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던 숀 콜빈이 백보컬로 참여한 ‘Luka’는 < 그래미상 >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작인 < Days Of Open Hand >를 기점으로는 테크노 등 음악적인 실험이 시작된다. 한편, 1990년에는 영국의 댄스 리믹스 듀오 DNA가 아카펠라 곡 ‘Tom’s diner’를 반복되는 댄스리듬과 함께 샘플링해서 발표, 그 곡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수잔 베가는 그 후 미첼 프룸(Mitchell Froom)을 프로듀서로 맞이해 두 장의 앨범, < 99.9F >(1992년)와 < Nine Objects Of Desire >(1996년)를 발표했다. 1995년에 그녀와 결혼하기도 한 미첼 프룸은 포크 록이었던 베가의 음악을 전자음, 인더스트리얼 등 보다 실험적으로 이끌었다. 2001년 10월에는 새 앨범 < Songs In Red And Gray >을 통해 포크 록으로 돌아왔다.
노래 : Brian May (브라이언 메이)
록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의 군중 사운드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내고, 직접 기타를 조립해서 연주했을 정도로 지적이고 다재다능하다. 밴드 Smile(퀸의 전신)을 창단하고 차례로 로저와 프레디와 존을 영입해서 사실상 전설적 록 밴드 ‘Queen’의 최초 탄생의 순간에 있었던 인물이며, 현재까지(아마 미래에도 영원히, 끝까지) 퀸의 건재를 보여주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 사... 록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의 군중 사운드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내고, 직접 기타를 조립해서 연주했을 정도로 지적이고 다재다능하다. 밴드 Smile(퀸의 전신)을 창단하고 차례로 로저와 프레디와 존을 영입해서 사실상 전설적 록 밴드 ‘Queen’의 최초 탄생의 순간에 있었던 인물이며, 현재까지(아마 미래에도 영원히, 끝까지) 퀸의 건재를 보여주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 사후 퀸의 창작 활동은 주춤해졌지만, 브라이언 메이 개인의 행보는 더 활발하고 넓어졌다. 밴드 퀸의 영예를 기리는 다양한 활동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단 모교인 임페리얼 대학으로 돌아가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물보호단체 ‘세이브 미(Save Me)’를 세워서 구조 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LSC(London Stereoscopic Company. www.londonstereo.com)를 설립해서 11살 이후로 매료되어 있던 스테레오 사진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1978년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 음악학부 마이클 시아노 교수는 학생들에게 모차르트, 바하, 브람스와 함께 비틀스를 알아야만 졸업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비틀스라고 하는 악성을 공부하는 것은 브람스를 연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팝계는 비틀스라는 세기적 천재를 보유해 비록 ‘딴따라판’이지만 악성을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의 범주를 초월한 완전한 성자(聖者)를 팝계가 ... 1978년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 음악학부 마이클 시아노 교수는 학생들에게 모차르트, 바하, 브람스와 함께 비틀스를 알아야만 졸업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비틀스라고 하는 악성을 공부하는 것은 브람스를 연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팝계는 비틀스라는 세기적 천재를 보유해 비록 ‘딴따라판’이지만 악성을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의 범주를 초월한 완전한 성자(聖者)를 팝계가 맞이하기까지는 좀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85년이 대망의 성자 탄생의 해였다. 이 영예로운 칭호의 주인공은 밥 겔도프라는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가수였다. 그 해 그는 ‘성자 밥’(Saint Bob)이라는 칭호 획득에 그치지 않고 유력 정치가나 고명한 외교관도 아니면서 당당히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대되었다. 영국의 앨리자베스 여왕은 그에게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그를 이처럼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부상시켜준 사건은 다름아닌 라이브 에이드(Live Aid)였다. 우리는 85년 7월 13일 국내에도 중계방송된 ‘아프리카난민 구호 자선공연’이었던 라이브 에이드의 장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 JF 케네디 스타디움을 동시 연결한 이 공연에는 흘러간 그리고 당대의 톱스타들이 총출동했고, 16만2천 명의 관중과 1백4개국의 20억 TV시청자가 지켜보았다. 이 슈퍼 와이드판 무대의 기획자가 바로 밥 겔도프였다. 한줄기 빗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 라이브 에이드라는 사상 초유의 대륙간 콘서트는 그의 우연한 TV 시청에서 비롯되었다. 84년 11월 어느날 밥 겔도프는 평소처럼 무심코 BBC의 저녁 뉴스에 채널을 맞췄다. 거기서 그는 마이클 부어크 기자와 모하메드 아민 카메라 기자 취재팀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통해 수백만 이디오피아인들이 굶어 죽어가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굶주림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1만 명의 생존자들 가운데 3백 명을 구조대가 골라내 며칠간 더살라고 할당량만큼의 버터오일을 발라주는 장면, 나머지는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다 맥없이 쓰러지는 장면, 생존자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에 파리가 들끓는 장면, 그 장면들을 겔도프는 보았다. “그날 밤 난 완전히 말문을 잃어버렸습니다. 충격에 전율이 엄습해왔습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듯 그는 즉각 다음날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개인적으로 친분있던 그룹 울트라 복스의 미지 유어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렸고 두 사람은 서둘러 자선곡 하나를 만들었다. 그 노래는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것을 그들은 아는가?(Do they Know It`s Christmas?)’였고 밥 겔도프는 이 노래를 부를 임시합창단을 결성하여 영국의 내노라 하는 41명의 록 스타들(사이몬 르봉, 스팅, 조지 마이클, 보이 조지, 필 콜린즈 등)의 참여를 구했다. 이 자선 단체의 이름은 밴드 에이드(Band Aid)였다. 하루빨리 이디오피아 난민을 위해 응급조치라도 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응급처치용 반창고 제품명을 따 붙였다. 겔도프는 이 음반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기획 의도만 이해해주어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3백만장이 팔려나갔고 영국 차트 1위까지 치솟는 빅 히트를 기록했다. 자신이 생긴 그는 이디오피아와 수단을 직접 탐사한 뒤 그 국가들에 식량 의료품 차량을 공수하기 위한 파이프로서 ‘밴드 에이드 트러스트’를 설립, 모금에 앞장섰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미국 가수들도 가만히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대중음악에 관한 한 미국은 늘 영국에 한 발 뒤진다). 재빠르게 아프리카를 위한 아티스트연합(USA for Africa)이 조직되었고 유명한 ‘세계는 하나(We are the World)’가 발표되었다. 미국의 국제문화 유통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이 노래가 영국의 것보다 더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영국의 밴드 에이드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은 미국 팝계의 대응책에 불과했다. 좁혀 들어가면 대서양 저편의 영국 가수인 ‘겔도프 착상’의 미국판인 셈이었다. 뒷북을 치다보니 뭔가 더 ‘세게 나와야 했고 그래서 이디오피아에서 구호지역 범주를 아프리카 전체로 확대시켰다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밥 겔도프는 자기 기획에 미국측이 선뜻 따라오자 신바람이 들려 더 큰 기획을 결행키로 했다. 영국과 미국의 것을 합쳐 큰 판을 벌여보자는 생각이었다. 밴드 에이드가 하던 식으로 미국 가수들에 대한 설득 작업에 나서 합의를 얻어냈고 영미 합동 무대를 준비하는 데 10주간 만전을 기했다. 이리하여 사상 초유의 대륙간 공연 라이브 에이드가 가시화되었다. 그에게 악몽처럼 붙어다닌 아프리카의 가난과 굶주림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밥 겔도프의 숙원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그는 라이브 에이드 당일 무대에서 감격하여 외쳤다. “이는 지구 최대의 쇼가 아니다. 이는 은하계 최대의 공연이다!” 이날 음악은 구실에 불과했다. 실질적 모티브는 ‘양심’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인간 본연의 양심이었다. 이같은 ‘대의명분’이 있었기에 라이브 에이드는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과 곧잘 비교되었다. 그때 많은 젊은이들은 공동체의식이 살아 숨쉬는 이상사회를 갈망하여 그곳에 모여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한 가수들의 노래를 경청했다. 엘튼 존은 "라이브 에이드는 우리를 우드스탁으로 인도하는 다락방과 같다"고 했고, 닐 영은 "우드스탁 때 우린 무언가 일어나길 고대하며 함께 모였고 이번에는 누군가 도와주기 위해 함께 모였다"고 말했다. ‘비치 보이스’의 마이크 러브는 "라이브가 극적인 필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드스탁보다 휠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평면적인 두 공연의 비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라이브 에이드와 우드스탁 간에 분명한 동질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드스탁은 60년대 록 음악의 사회성이 융화해 발현된 행사였고, 라이브 에이드는 60년대 이후 잠들고 있던 록의 사회적 의식이 다시 깨어났음을 보여준 산 증거였다. 밥 겔도프와 라이브 에이드가 록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겔도프는 ‘60년대 록 음악의 사회의식’을 일깨워 그것을 ‘자선’의 형식으로 표출시켰다는 점을 평가받았다. 가수가 돈벌어 안락하게 사는데 만족해서는 안되고 사회에의 기여에 눈떠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급격히 보수화하고 있던 당시 영미 사회에서 자선은 록 스타가 실행할 수 있는 최고지향점이었다. 그래서 겔도프는 라이브 에이드를 ‘팝계가 할 수 있는 최종적 표현’이라고 언급했던 것이었다. 겔도프 본인은 자신의 자선활동을 오히려 60년대 정신이나 우드스탁보다 ‘높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라이브 에이드는 60년대의 이상주의와 때로는 터무니없는 행동주의를 초월했다는 것이다. 그는 "행동주의란 기본적으로 말만 떠벌리고 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며 "라이브 에이드는 이러한 행동주의(activism)와는 반대되는 의미로서 행동(activity) 그 자체였다"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그의 자선행동에 60년대의 ‘저항’ 정신이 배어 있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의 우익 이노크 파월 의원으로부터 ‘비밀 제국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 타임 >지의 제이 칵스 기자는 겔도프를 ‘사회 복음주의자’로 언급했다. 자선을 위한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전세계에 자선공연을 유행처럼 퍼뜨렸다는 것이었다. 라이브 에이드 이후 세계20개국에서 그와 비슷한 자선공연이 잇따랐고 팜 에이드, 메틀 에이드, 캐나다 에이드, 패션 에이드, 스포츠 에이드 등 별의별 에이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밥 겔도프는 아일랜드 더불린 태생으로 1953년생이다(록 스타 가운데는 아일랜드인이 많은데 밴 모리슨, 섹스 피스톨즈의 쟈니 로튼, 유투 멤버 전원, 시네드 오코너, 개리 무어, 엔야 등이 대표적이고 저항 색채의 가수가 많다는 게 특징). 일찍부터 사회 복음주의 성향을 보여 ‘핵 폐기’ 캠페인을 주도하고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이었다. 모험심이 남달라 불도저 운전사, 공장 직공, 사진사, 영어 교사 등 많은 직업을 거쳤으며 특기할 사항은 한때 신문기자로도 활약했고 말재간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75년 영국의 펑크 밴드 ‘붐타운 래츠’에 가담했으나 연주를 못하고 대신 화술이 좋아 그룹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그러나 보컬리스트가 기타리스트로 전환하면서 겔도프는 리드 싱어로 궤도 수정했다. 79년에 이르러선 유럽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평을 받을 만큼 주가가 급상승했으며, 불타는 스테이지 액션이 화제를 모아 ‘겔도프 댄스’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85년까지 6매의 음반을 발표했고, 그간 ‘쥐덫(Rat Trap)’, ‘난 월요일일 싫어(I don`t like Mondays)’ 등의 영국 차트 1위곡을 냈다. 그러나 겔도프는 그룹의 싱어로 활약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을 펼쳐보이려는 시도를 했고 그 일례로 82년에는 핑크 플로이드 음반을 영화화한 알란 파커 감독의 < 벽 >에 주연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밥 겔도프의 영광과는 반대로 그룹 붐타운 래츠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라이브 에이드가 끝난 후 레코드 회사와 계약 협상시에 회사들로부터 “붐타운 래츠는 한물갔으니 안되고 당신의 솔로 음반이나 내자”는 제의를 받고는 “그룹 나머지 멤버들을 빼면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인류애가 눈물겹다!)고 버텼으나, 그룹이 워낙 하향세인 터라 86년 붐타운 래츠는 해산하고 말았다. 음악 외적인 면에서 그는 성자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음악 부문에서는 제대로 된 스타덤 한번 맛보지 못했다. 사실 붐타운 래츠는 펑크 그룹이면서 혁명적 정신이 전혀 없었고 영국에선 전성기가 있긴 했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솔로 활동도 별로 탐탁치 않아 86년 <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내 마음(Deep in the Heart of Nowhere) >, 90년 < 사랑의 채식주의자들(Vegetarians of Love) > 등의 음반을 발표했으나 판매도 평균 이하, 비평도 평점 이하였다. 앨범 수록곡 전체 기류는 그가 갈등에 휘말려 있으며, 따라서 한 길을 파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 드러냈다. 라이브 에이드의 관리자라는 위세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과 음악의 대중적 접근을 위해서는 그런 무거운 이미지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의 기로에서 빚어진 갈등이었다. 두 가지 모두 그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해 겔도프는 어느 한 부문에도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86년도 노래 ‘밤은 낮으로 변한다(Night Turns to Day)’는 이를 상징하고 있는 곡으로, 여기서 그는 어린이를 세상의 추함으로부터 보호해야겠지만 어린이가 세상의 추함에 무관심해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지는 항상 유일하고 진정한 도덕적 알리바이지. 그러나 난 너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진 않을 테야. 네가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말야.’ ‘세상의 무관심’과 ‘약자의 각성’ 사이의 중간에서 어느 쪽에도 기울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흔적이 엿보인다. 90년에 와서는 약자의 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세상의 무관심을 힐난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해 중심이 잡혔음을 팬들에게 알렸다. ‘난 제3세계가 더위에 튀겨지고 있다 해도 관심없어. 더 더워져도 난 놀라지 않을 거야. 나는 모든 나라가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는 있지만 신경쓰진 않아.’ ‘무관심의 가장 위대한 노래(The Great Song of Indifference)’ < 사랑의 채식주의자들 >의 수록곡 중의 하나인데 비판조는 아니지만 수준있는 조롱으로 무관심주의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86년 < LA타임즈 >지의 로버트 힐번 기자는 겔도프를 향해 이런 부탁을 했다. “이디오피아의 고통에 세계가 아무리 무관심하더라도 겔도프는 과거 팝 공동체를 일순간 일궈냈듯 다시 한번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러나 그는 활력을 잃었다. 언제 다시 그가 대사를 꾸려낼지는 모르지만 현재로 그는 세상의 무관심에 집착하다가 쓰러져가는 것 같다. 밴드 에이드 트러스트는 92년 막을 내렸다. 아무리 그가 지금, 아니 앞으로 계속 원기를 잃어간다 해도 ‘겔도프의 날’, 즉 85년 7월 13일은 영원히 별도로 기억될 것이다. 그날 이전까지 그는 그저 재능있는 한 명의 가수였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성자로 추앙되었고 노벨상 후보, 명예 기사가 되었다. 그날 그는 자선 물결을 만들었고 60년대의 사회의식을 복원, 새로운 시대 정신을 창조했다. 그는 ‘내가 젊었을 때(When I was young)’라는 노래에서 ‘난 수백만 가지를 할테야. 1천 가지 기획을 꿈꾸고 말야. 난 매일 밤 세상을 변화시킬거야’라고 했다. 정말 그는 천 가지 아닌 단 한 차례의 기획으로 세상을 바꾸어버렸다.
연주 : Mike Oldfield (마이크 올드필드)
언제나 충격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혼자 모든 악기를 다루고 2500번 이상의 오버 더빙을 한 앨범 < Tubular Bells >는 이제껏 우리가 들어왔던 모든 음악의 선입견을 깨버렸다. 세상의 악기는 기타와 피아노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장르는 록과 컨트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 올드필드는 이 한 장의 명반 속에서 이제껏 전통의 이름으로 군림해 오던 모든 것을 ... 언제나 충격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혼자 모든 악기를 다루고 2500번 이상의 오버 더빙을 한 앨범 < Tubular Bells >는 이제껏 우리가 들어왔던 모든 음악의 선입견을 깨버렸다. 세상의 악기는 기타와 피아노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장르는 록과 컨트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 올드필드는 이 한 장의 명반 속에서 이제껏 전통의 이름으로 군림해 오던 모든 것을 와해시켰고 동시에 완성해냈다. 그러나 더욱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Multi-instrumentalist)의 나이였다. 그는 고작 스무 살에 비틀즈(Beatles)가 몇 년 동안의 화합 끝에 일구어 놓은 아트록(Art rock)의 경지에 올라서 버린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랬듯 이 앨범은 신생 레이블인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의 버진(Virgin)을 일약 굴지의 회사 중 하나로 만들었으며 전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리고 아직도 해마다 100만장씩 나가고 있다. 물론 < Tubular Bells >의 성공 신화에는 영화 < Exorcist >의 홍보 효과가 뒤에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 필생의 역작은 이후 마이크의 강박관념이 되었으며 그가 넘어서야 할 하나의 산이 되어버렸다. 어떤 작품을 완성해도 데뷔 앨범의 명망에는 이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온갖 실험과 갖가지 시험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결코 이 앨범이 끼친 영향을 뛰어 넘을 수 없었다. 그는 어느 순간 체념하게 되었고 그 자체를 즐길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하여 오히려 그는 마이크 올드필드=Tubular Bells라는 등식을 공식화시키는 매니지먼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1992년에는 원곡의 포맷을 새롭게 편곡해 덧입힌 버전을 만들어 < Tubular Bells 2 >를 발매했고 1998년에는 아예 신곡 위주의 < Tubular Bells 3 >를 만들어 모두 앨범 차트 1위에 올렸다. 데뷔 앨범의 엄청난 성공 때문에 나머지 인생이 이 음반의 극복과정이 되어 버린 마이크 올드필드의 음악 역정은 범상치 않다. 그는 7살 때부터 기타를 쳤으며 11살 때에 이미 클럽에서 연주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누나 샐리 올드필드(Sally Oldfield)와 같이 팀을 이뤄 샐리앤지(Sallyangie)로 활동하며 < Children Of The Sun >이란 앨범을 발표했고 후에는 친구들과 ''맨발''(Barefoot)이란 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1970년에는 그룹 소프트머신(Soft Machine)에서 활동하던 케빈 에이어스(Kevin Ayers)가 만든 그룹 더 홀 월드(The Whole World)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해 < Shooting At The Moon >과 < Whatevershebringswesing > 음반에 참여했으며 팀에서 나온 후에는 세션맨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솔로 음반 제작에 들어갔다. 이때가 18살이었다. 그의 음악은 패턴으로 봐서 3기로 나눌 수 있다(물론 이 분류에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방대한 스케일과 한 곡을 20분씩 가져가는 교향악 구성, 변화무쌍한 표현 등이 주가 되는 1기는 < Tubular Bells >부터 < Incantations >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기간에는 < Tubular Bells >와 비슷한 방법으로 음을 만들고 녹음했다. 좀 더 자신의 철학에 구체적인 방향을 잡은 < Hergest Ridge >, 전원적인 신비함을 명상과 초월적인 관념 속에서 이루어낸 < Ommadawn >, 신비적인 경향을 최면의 발전 단계로 풀어낸 < Incantations >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 Tubular Bells >의 접근법과 다른 것을 고안해 냈다. < Platinum >부터 < Earth Moving >에 이르는 2기는 대작 위주의 패턴을 소품 지향적으로 바꾼 단계이다. 3분에서 20분 사이의 다양한 곡들이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이 시기는 가장 팝적인 사운드가 많은 기간이기도 하고 보컬에 비중을 두고 싱글에 주안점을 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기 레일리(Maggie Reilly)의 ''Moonlight shadow'', 황소 시리즈(Taurus)가 있는 시점도 여기고, 비평적으로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보컬 위주의 음반인 < Earth Moving >을 발표했던 것도 이 시기이다. 그는 < Amarok >과 < Tubular Bells 2 >를 발표하며 다시 방대한 컨셉의 시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LP의 시대에는 한 곡이 앞뒷면으로 채우고 있었다면, CD의 경우에는 짧은 여러 곡들이 전체의 큰 트랙을 만들어 가고 있다. 3기라 부를 수 있는 이 시기에는 켈틱 사운드를 현대화시킨 < The Voyager >, 그의 주요한 테마가 되어버린 Tubular bell 시리즈의 20세기적 마감 < Millenium Bell >, 아서 클락(Arthur A. Clark)의 원작을 음원화한 < The Song Of Distance Earth >, 등이 앞선 시기들의 음악 패턴과 혼용되어 표현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이 마이크 올드필드를 알았다면 < 2001 Space Odyssey >에서 그토록 과거의 음악들로 포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연 속에 숨겨진 우주적인 실체를 밝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마이크는 본인의 정규 앨범 작업 외에도 영화 < The Killing Field >의 음악을 맡아 캄보디아 대학살이 빚어낸 음울한 레퀴엠을 표현해 영국 영화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인기 있는 TV 시리즈를 스크린으로 옮긴 < The X Files >에서 ''Tubular X''를 선보이며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에 맞닿은 근원적 진리를 살피는 혜안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이크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공연을 본 팬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역량이 펼쳐내는 세계를 의심하지 않지만, 평자들은 그에게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겨우 반을 지나왔을 뿐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간의 본성이 우주로 통하는 창구를 밝혀내며 우리를 경이의 차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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