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소개된『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함께 많이 읽히는 니체의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들 수 있다. 자연과학에 근거한 과학적, 학문적 사유의 도입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니체 철학의 정수가 담긴 중요한 철학서인 이 책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친숙한 제목에 비해 그 내용은 심오하며 니체 저작 중 가장 방대하다.
책세상 니체전집의 다섯 번째 권으로 출간된『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은『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유정신'이라는 니체의 핵심적인 사상이 담겨 있는 저서이다. 니체를 전공한 학자에 의해 독일어 정본으로 처음 번역되는 책세상『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니체의 문장을 좀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해서 그의 사유를 가감 없이 전달했고 이에 대한 충실한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에 실린 학문과 예술, 인간에 대한 니체의 자유로운 정신이 거침없이 분출되는 짤막한 단편 단편의 글들은 바로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줄 것이다.
1878년 어느 날 니체는 파리에서 "볼테르의 영혼이 프리드리히 니체 씨에게 축하드립니다"라는 글이 새겨진 볼테르 흉상을 전해 받게 된다. 바로 볼테르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니체가 볼테르에게 바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출간되던 날이었다. 니체 스스로 "위기의 기념비"라고 칭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저작은 그의 육체적인 고통과 철저한 정신적 고독에서 태어났다. 이 무렵 니체는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간간이 정신적 안정을 찾기도 했지만 병은 더욱 깊어졌고, 마침내 바젤 대학 교수직까지 사임했다. 그러고는 스위스의 성 모리츠에서 오로지 자신의 그림자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고독한 방랑자처럼 생활했고, 세상과 많은 옛 친구들에게서 고립되어 있었다. 특히 바그너와의 관계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니체는 이미 1875년부터 바그너와 바그너의 음악에 회의를 느꼈고, 결정적으로 바이로이트의 축제극에서 초연된 음악에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서서히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처럼 인간관계나 건강상의 위기, 삶의 위기에 처한 니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자신의 삶과 철학 전체를 통해 가장 공평하고 학문적이며 냉철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생애 가장 어두운 겨울" 깊은 고뇌 속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심오한 사유를 담은『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내놓았다.
단편의 형식에 포착된 자유로운 사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은 1878년『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79년에 『여러 가지 의견과 잠언』, 1880년에 『방랑자와 그 그림자』로 각각 따로 출간되어 나중에『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II』로 묶인 것의 전반부다.
짧게는 한 줄에서 길게는 서너 쪽에 이르는 독립적인 단편 630여 개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은 형이상학, 도덕,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철학적 논의에 이어, 후반부에서는 친구의 문제, 남성과 여성, 가족의 문제 그리고 국가의 문제를 경쾌하고 간결한 문장 형식 속에서 언급한다. 이러한 단편적인 또는 잠언적인 표현 양식이야말로 이전의 저작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다. 짤막한 단편의 형식은 천재적 사유, 자유로운 정신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데 적합한 것이었다. 이 천재적 사유의 핵심은 지금까지 믿어왔던 가치와 진리를 해체하는 것이다. 특히 비판의 화살은 이상주의를 향하고 있다. 니체는 "그대들이 이상적인 것을 보는 곳에서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본다"라고 했던가. 모든 이상주의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필요와 동경에 불과한 것임이 짧은 단편, 문장 하나하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유정신을 위한 책 볼테르에게 바치다. 니체는 이미 서문에서 "모든 가치는 뒤집을 수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처럼 "통상적인 가치평가와 존중되는 관습들을 전복시키기 위한" 그의 시도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 담긴 사유를 해체하고, 학문과 예술, 철학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데 이른다.
『비극의 탄생』을 비롯한 초기 저작에서 니체는 그 무엇보다도 예술을 옹호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전의 니체의 사상은 그리스 정신,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 바그너 예술을 중심으로 한 종교, 형이상학, 예술의 정신에 입각해 있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 사상은 일대 역전, 전환을 맞아 자유정신이 전면에 부각된다.
자유정신이란 그 어떤 체계와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극히 자유롭고 가볍게 방랑하는 정신, 관습적인 것에서 해방된 정신이다. 또 "수없이 많은 대립적인 사유방식에 이르는 길을 허용하는 성숙한 정신"으로 학문과 과학의 우월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니체는 자신이 자유정신의 전형이자 모범적인 계몽가, 자유롭고 해방된 정신을 지닌 위대한 사상가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사람 볼테르에게 이 "자유정신을 위한 책"을 바쳤던 것이다.
이 저작은 과거 전통 형이상학과 쇼펜하우어 철학의 부정, 바그너와 바그너 음악과의 결별, 자유정신의 세 가지 입장을 통해서 니체 사상의 전체 흐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다른 한편으로 여기에 실린 이 글들은 삶의 문제를 예리한 사상가의 눈으로,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간결하고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직업은 삶의 척추이다", "대화의 소재가 없어서 당혹스러울 때, 친구의 비밀스러운 사항을 누설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부부가 함께 살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결혼이 훨씬 많을 것이다" 등의 냉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한 문장에서 인간과 인간의 삶을 꿰뚫어보는 니체의 통찰력이 배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