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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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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몽골 제국과 고려-03

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이승한 | 푸른역사 | 2015년 09월 15일 리뷰 총점9.4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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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68쪽 | 674g | 153*224*23mm
ISBN13 9791156120537
ISBN10 115612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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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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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광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고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전남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민족’이나 ‘민족주의’ 시각을 갖는 것은 역사를 수단화·도구화하여 배타적이고 공격적이 기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삼별초 연구로 시작해서 고려시대 무인정권과 원 간섭기에 색다른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갖게 된 데는 ‘민족’이란 연구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20년 ... 광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고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전남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민족’이나 ‘민족주의’ 시각을 갖는 것은 역사를 수단화·도구화하여 배타적이고 공격적이 기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삼별초 연구로 시작해서 고려시대 무인정권과 원 간섭기에 색다른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갖게 된 데는 ‘민족’이란 연구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20년 넘는 연구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면서 이 책이 독자들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주요 저서로는 고려시대 무인정권을 다룬 『고려 무인 이야기』(전4권)와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몽골 제국과 고려 1), 『혼혈 왕 충선왕, 그 경계인의 삶과 시대』(몽골 제국과 고려 2), 『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몽골 제국과 고려 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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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포박당해 원으로 끌려간 충혜왕

1343년(충혜후 4) 10월 말, 원의 자정원사資政院使로 있는 환관 고용보高龍普가 고려에 왔다. 고용보가 고려에 머문 지 보름 남짓 지나서 원에서 갑자기 사신 8명이 도착했다. 이틀 후에는 또 6명의 사신이 황제의 조서를 들고 들이닥쳤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조서를 반포한다는 명목으로 충혜왕에게 교외로 출영할 것을 요구했다. 충혜왕은 병을 핑계로 출영하지 않으려 했다. 충혜왕이 대궐 밖으로 출영하기를 망설이자 고용보가 나서서 거든다.
“황제께서 평소에 국왕을 불경하다고 여기시는데 만약 지금 출영하지 않으면 황제의 의심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충혜왕은 조복을 갖춰 입고 백관을 거느리고서 마지못해 출영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에서 원의 사신을 맞았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원의 사신들이 달려들어 충혜왕을 에워싸고 발길질을 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주변에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주춤거리는 사이, 원의 사신들은 충혜왕을 벌써 포박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몇몇 호위 무장들이 한발 늦게 구출하러 나섰지만 조금도 망설임 없는 원 사신들의 깊은 칼날에 두 명이나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국왕 측근의 인물들이나 출영을 따라온 백관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고, 그래도 용기를 내어 주춤거리다 뒤늦게 돌아서는 호위 무장들은 등에 창을 맞았다.
충혜왕은 원의 사신들에게 그렇게 폭력적으로 포박당하여 말에 태워진 채 원으로 끌려갔다. 1343년 11월 하순이었다. 한 달 후, 원의 대도(북경)로 끌려간 충혜왕은 황제로부터 게양현揭陽縣(지금의 광동성 조주 지방)으로 유배 조치를 받는다. 대도에서 2만 리나 되는 거리였다. 황제가 충혜왕을 유배 보내면서 내린 마지막 말은 이런 것이었다.
“너 왕정王禎(충혜왕의 이름)은 임금이 되어 백성을 탄압하고 갈취함이 너무 심했다. 너의 피를 천하의 개에게 먹여도 오히려 부족한 일이다. 하지만 짐은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게양에 유배하노니 나를 원망치 말고 갈지어다.”
그렇게 충혜왕은 함거에 실려 게양현으로 떠난다. 얼마나 철저하고 단호한 조치였는지 고려 조정에서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충혜왕은 유배 가는 도중 악양현(호남성)에서 죽고 만다. 시종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남겨진 기록이 없다. 1344년 1월, 충혜왕의 나이 30세였다.

원 간섭기 고려 왕조의 위기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났을까? 현재 재위 중인 고려 국왕이라는 지위는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았다. 이무렵 몽골 제국과 고려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은 이런 황당한 일뿐이 아니었다. 심양왕을 고려왕으로 앉히려는 ‘심왕 옹립 책동’이나, 고려 왕조 자체를 아예 없애고 고려를 원 제국의 한 지방 행정구역으로 만들자는 ‘입성책동’ 등 고려 왕조에 국가 존망의 위기가 밀어닥친다. 폭력적인 충혜왕 납치 사건은 그런 위기의 결정판이었다.
한국사에서 ‘소외’된 고려사를 생동감 넘치면서 신중한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꾸준하게 소개해온 이승한의 《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몽골 제국과 고려 제3권)는 이처럼 위기에 직면한 고려 말 부마국 체제의 모순과 왜곡을 다룬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장면도 나오겠지만 역사 기록 그대로 드러내어 가감 없이 정면으로 직시하겠다고 강조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만이 우리 역사가 아니다. 어두운 면을 드러내 교훈으로 삼자는 것도 주된 목적은 아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며, 그런 사건들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따져보는 것, 여기에 목적을 두겠다.”

부원배, 세계화 시대 국제인

이 책에서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원 간섭기에 고려의 정치 사회를 주도한 부원배附元輩라는 세력이다. 몽골 제국에 체류하면서 무종과 인종 두 형제 황제를 옹립한 충선왕은 두 황제의 재위 동안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특히 인종 황제의 각별한 총애를 받은 충선왕은 몽골 제국의 2인자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 충선왕은 그렇게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양국 사이의 경계나 고려 사회의 정체성은 오히려 희미해져갔다. 달리 표현하자면 고려 사회가 몽골 세계 제국에 동화되어갔거나 세계화 시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해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세계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당시 국제어인 몽골어와 한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이런 국제어를 누구보다 앞서 익힌 자들이 바로 부원배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그래서 부원배는 곧 세계화 시대의 국제인이었다.
이들 부원배는 처음에 환관이나 통역관, 내관, 무관 등 원을 왕래하던 국왕을 시종하는 관리 출신에서 많이 나왔다. 이들의 신분상 공통점은 그 이전까지 사회 주도세력인 문벌귀족이나 기득권을 누리는 관료집단에서 한참 벗어나 전통적인 고려 사회에서는 현달하기 어려운 자들이었다. 충선왕이 전성기를 맞던 시기에 이들 부원배는 점차 세력을 확대하면서 무시 못 할 정치세력으로 성장한다. 부원배 세력이 확대된 배경에는 기존의 부원배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레 나타난 일이기도 했다. 아비 세대의 국제적인 활동 기반이 자식 세대에게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인데, 제국에서의 장기간 생활로 인해 세력 기반이 더욱 강화되고 심화된 측면도 있다.
이렇게 확대된 부원배 중에는 제국과 고려를 넘나들며 양쪽에서 관직을 역임한 자도 많았다. 부마국 체제가 깊어지면서 부원배가 세계 제국의 사회 속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충선왕 사후 충숙왕 대부터는 이들이 고려의 정치 사회를 주도했다고 봐도 상관없다. 이 시기의 수상은 부원배가 아닌 자가 드물 정도였는데 세계화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국왕 스스로도 원 조정에서 오랜 숙위 생활을 거치면서 국제어를 충분히 익혀 통역관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모두 몽골식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었으니 고려 국왕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부원배, 세계 제국에 뿌리내린 교포 집단

부원배가 몽골 세계 제국의 사회에 안착했다는 것은 고려 왕조의 존립이나 안위와 무관하게 정치 사회 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고려를 벗어나 원 제국에서도 생활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일상적인 의식주를 고려에서 조달받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 제국에서 무역이나 상업에 종사한다든지, 제국의 말단 관리로 들어간다든지, 아니면 소개업이나 중개업 등 일상적인 서비스업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국에서의 생업 활동은 고려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 더 유리했고 기회도 많았다. 몽골 제국이 지배하는 세계화 시대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생업을 찾기 위해 제국으로 향하는 백성이나 관리 출신들도 줄을 이었고,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도 끊이지 않았다. 요양?심양 지방의 고려 유민집단이나 제국의 수도였던 대도(베이징)에 상주하는 수만 명의 고려인 집단은 이를 말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원 제국의 사회에 정착한 부원배는 양국 간의 정치 사회적 사건에서 주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여기에 가담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들은 요?심 지방의 고려 유민집단이나 대도에 상주하는 고려인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하기도 했다. 제국 안에 형성된 교민 사회를 기반으로 정치적 책동을 일으킨 것인데, ‘심왕 옹립 책동’이 바로 그런 사건이었다.
또한 이들 부원배는 고려의 통치권 밖에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당연히 고려에 들어와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원으로 도망쳐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들은 그래서 고려 왕조의 신민이 아니라 세계 제국의 신민이라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미국 시민권을 가진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원에서 활동하던 ‘심왕 옹립 책동’의 주동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처벌은 고사하고 제국과 고려를 넘나들며 오히려 고려에서 고위 관료로 다시 중용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세계 제국의 일원이었던 이들은 고려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고려 왕조를 존폐의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다. 이들 부원배는 세계 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고려 왕조의 존립 문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 왕조의 건강한 존립은 배신을 일삼았던 이들에게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고, 그것은 이들이 고려 사회에서 영영 멀어지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고려를 세계 제국의 내지로 편입하자는 ‘입성책동’은 그래서 일어났다. ‘입성책동’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일으켰지만 여기에 가담한 고려인들은 모두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부원배, 개혁에 대한 저항 세력

말할 필요도 없지만, ‘심왕 옹립 책동’이나 ‘입성책동’은 고려 왕조와 국가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했다. 정상적인 왕조 시대라면 한 점 착오 없는 명백한 반역이기도 했다. 그런 반역 행위가 드러내놓고 벌어졌던 것은 원 조정의 암묵적인 후원이나 방조가 있었던 탓도 컸다. 부원배의 그런 책동은 제국에 대한 고려 왕조의 의존을 더욱 심화시켜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원배의 책동으로 인한 혼란과 부작용이 너무 커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 제국의 처지에서는 변방의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 조정에서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고려 사회의 개혁을 주문한 것은 그런 제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개혁도 부원배 세력의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는 고려의 내정 개혁이 실패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제국의 변방 정책이 실패한 것이기도 했다.
양쪽의 실패는 부원배의 득세를 계속 용인하게 만들었다. 고려 국왕은 이들 부원배를 단죄하기는커녕 다시 중용하곤 했는데, 이들에 의탁하지 않고는 왕권을 유지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었으니 고려 조정이나 국왕의 권위가 추락할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폐위와 복위라는 왕위 계승의 파행과 중조가 일어난 것도 이러한 부원배 세력의 책동과 결코 무관치 않은 일이었다. 고려 왕위는 그렇게 부원배 세력에 의해 휘둘리고 있었으며 왜소하고 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충목왕과 충정왕, 두 유주의 등장은 그에 대한 제국의 임시방편의 대책으로 나온 것으로 추락하는 왕권을 방치한 꼴이나 다름없었고, 왕권의 허약성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부원배, 역사적 단죄의 대상은 아니다

여기서 원 간섭기 부원배에 대한 역사적 단죄나 도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은 너무 안이한 판단이고 무의미한 일이다. 이 시대는 조국祖國이나 민족民族이라는 말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덕적 평가는 역사학의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리 한국 역사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며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간단치 않지만 이들이 세계화 시대 주역으로 등장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세력 확대는 이 시대의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황후의 등장은 그러한 세계화 추세의 최대 성과로서 부원배의 세력 확대와 그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기황후가 고려 정치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쳤는가 나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문제를 살피는 것 역시 별 의미가 없다. 기황후는 부원배가 세력을 확대해가는 과정의 정점에 서서 적극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수혜를 마음껏 누렸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고려의 일개 사대부가 여성이 궁녀로 들어가 세계 제국의 황후라는 극치에 올랐다는 것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그래서 부원배, 즉 세계화 시대의 국제인들에게 한 가지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 시대의 역동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살 만한 시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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