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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음악 (Brokeback Mountain OST)

[ 2018 재개봉 기념 재발매 ]
Gustavo Santaolalla 작곡/Willie Nelson, Emmylou Harris, Teddy Thompson, Steve Earle 노래 외 5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Verve | 2018년 12월 05일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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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18년 12월 05일
시간, 무게, 크기 10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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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CD 1
  • 01 Opening (G. Santaolalla)
  • 02 He was a friend of Mine (밥 딜런곡 by 윌리 넬슨)
  • 03 Brokeback Mt 1 (G. Santaolalla)
  • 04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 (by에미로 해리스)
  • 05 King of the Road (by 테디 톰슨)
  • 06 Snow (G. Santaolalla)
  • 07 The Devil’s Right Hand (스티브 얼)
  • 08 No one’s gonna love you like me (G. Santaolalla)
  • 09 Brokeback Mt 2 (G. Santaolalla)
  • 10 I Don’t want to say goodbye (by 테디 톰슨)
  • 11 I will never let you go (By 재키 그린)
  • 12 Riding Horses (G. Santaolalla)
  • 13 An angel went up in flames (G. Santaolalla)
  • 14 It’s so easy (Buddy Holly-Norman Petty)
  • 15 Brokeback Mt 3 (By 린다 론스타트)
  • 16 The Maker Makes (By 루퍼스 웨인라이트)
  • 17 The Wings (G. Santaolalla)

아티스트 소개 (10명)

작곡 : Gustavo Santaolalla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라틴아메리카의 전방위 뮤지션" “< Cuatro Caminos >는 록 엔 에스파뇰(Rock En Espanol) < Kid A >라 할 수 있다. 확실히 팬들에게 지적인 해방감을 주며, 어떤 언어권에서도 놓치지 않을 음악의 향후 행보인 것이다.” - Alternative Press “멕시코의 비틀즈, 비스티 보이스, 라디오헤드? 게으른 미국 음악 저널이 카페 타쿠바(Cafe Tacuba)에 같다 붙인 ... "라틴아메리카의 전방위 뮤지션" “< Cuatro Caminos >는 록 엔 에스파뇰(Rock En Espanol) < Kid A >라 할 수 있다. 확실히 팬들에게 지적인 해방감을 주며, 어떤 언어권에서도 놓치지 않을 음악의 향후 행보인 것이다.” - Alternative Press “멕시코의 비틀즈, 비스티 보이스, 라디오헤드? 게으른 미국 음악 저널이 카페 타쿠바(Cafe Tacuba)에 같다 붙인 그 누구도 아니다. 이들은 멕시코의 카페 타쿠바다. 또한 음악 잡지에서 인용한 비위 상하는 문구를 음반 겉에 붙여 놓았지만, < Cuatro Caminos >는 록 엔 에스파뇰 < Kid A >가 아니다. < Kid A >가 이처럼 좋았던 건 아니다.” - All Music Guide 멕시코 밴드 카페 타쿠바의 2003년 앨범 < Cuatro Caminos >(제 4의 문)에 대한 호평이 이어진다. 평마다 라디오헤드가 거론되는데, 그들의 팬으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들어보는 수밖에…. 마침 1992년부터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오기 시작한 타쿠바의 앨범 중 가장 최근 것인 < Cuatro Caminos >가 국내 음반 쇼핑몰에 있었다. 구입. 실제 들어본 결과 먼저 감상을 남긴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라디오헤드 얘기가 나온 김에 마무리하자면,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들처럼 대중적인 지지 기반이 폭 넓은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느낌은 분명히 온다. 그렇다. 데뷔 앨범부터 멕시코에서 ‘더블 골드(4만장)’을 기록해 기분 좋게 출발한 이들은 제 1회 라틴 그래미에서 ‘올해의 록 앨범’상을 수상했다. 멕시코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들에 대해 지는 “라틴아메리카의 리더 50인” 리스트에 이들의 자리를 마련해 평가하기도. 과거의 라틴 아메리카 리더를 따라가다가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결과는 몹시 희망적이다. 과거의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 체 게바라, 아니 쿠바에서는 그가 태어나고 사망한 날이 국가적으로 기념되고, 어쩌면 현직 대통령은 카스트로지만 가슴 속의 대통령은 그라고 한다. 영화 의 개봉과 함께 15권 짜리 체 게바라 전집이 출간되며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다. 체 게바라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런 열풍이 뒷북이라거나 겉치장일 뿐이라며 밥맛 없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나 진지한 책을 통해 만난 체 게바라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일과 분명 다르지 않을지. 영화 를 보고 학생은 무전 여행을 떠나고,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겠지만, 그러지 못할 게 뻔하지만, 적어도 먼지 쌓인 일기장을 펼칠 수 있는 용기는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4년 최고의 사운드트랙을 만나고, 구스타보 산타올라야(Gustavo Santaolalla)라는 노장 뮤지션이 이 멋진 음악들을 만들었으며, 그가 그냥 늙은이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된다. 2000년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에게 최고의 해였다. 앞서 소개한 카페 타쿠바의 프로듀서로 그가 작업한 < Reves/Yosoy >가 프로듀서 상을 안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후보에 오른 경쟁작 역시 그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해 라틴 그래미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인 후아네스(Juanes)의 앨범과 사운드트랙 < Amores Perros >까지 모두 세 작품이니, 과연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프로듀서라 할만하다. 아르헨티나 뮤지션인 산타올라야는 아르헨티나 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세루 히란(Seru Giran), 아르헨티나의 존 레논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세루 히란의 리더), 라틴 아메리카의 밥 딜런 레온 히에코(Leon Gieco), 팻 매스니 그룹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페드로 아즈나르(Pedro Aznar) 등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그의 동년배들과 함께 록 엔 에스파뇰의 중심 인물로 활동해 왔다. 그는 1960년대부터 여러 밴드를 이끌었다. 60년대 말에 결성한 아르코 이리스(Arco Iris)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70년대에는 솔루나(Soluna)를 이끌었다. 60년대의 록 청년 누구나 그랬듯이 비틀즈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한 그는 곧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음악을 서구의 록과 재즈 어법에 도입했고 때로는 좀더 깊은 뿌리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요소도 적극 도입했다. 그의 ‘융합’의 방법론은 밴드를 이끌며 프로듀서로 수많은 앨범을 작업하고 자신의 솔로 앨범도 발표하는 잡식성 활동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1978년 미국 진출 후 그는 웻 피크닉(Wet Picnic)이라는 펑크 록 그룹을 이끌면서 말디타 벤신다드(Maldita Vencindad), 카이파네스(Caifanes), 카페 타쿠바 등 록 엔 에스파뇰 밴드의 프로듀스를 맡았다. 대안적이라고 평가받는 라틴 아메리카 뮤지션 중 산타올라야가 설립한 레이블인 ‘Surco’(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국제 배급 계약을 맺고 있다)가 배출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몰로토브(Molotov)의 1997년 작 < Donde Jugaran Las Ninas? >는 세계적으로 1백만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라틴 그래미 7개 부문 후보작 후아네스 역시 ‘Surco’ 소속이다. 아방가르드 챔버 밴드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과 벌인 두번째 공동 작품과 우루과이 밴드 라 벨라 푸에르카(La Vela Puerca)의 두번째 앨범 등 ‘Surco’는 장르와 국가를 떠나 ‘범 라틴아메리카’적인 활동의 장이 되고 있다. 왕성한 활동에 비해 솔로 앨범은 적은 편으로 1995년에 두번째 앨범 < Gas >를 발표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많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는 동안) 발음도 생소한, 낯선 뮤지션들 이름에 지루했을 것 같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들부터 직접 만나보자. 조용범 / 월드뮤직
노래 : Willie Nelson (윌리 넬슨,Willie Hugh Nelson)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노래 : Emmylou Harris (에밀루 해리스 )
Listen To Me : Buddy Holly 1959년 2월 3일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와 빅 바퍼 리차드슨 주니어 (The Big Bopper Richardson Jr)와 함께 스물 두 살의 천재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영원한 별이 된 그날을 일컬어 돈 맥클린(Don McLean)은 "음악이 숨을 거둔 날(The Day Music Has Died)"라고 말했다. 수많은 로큰롤의 별들이... Listen To Me : Buddy Holly
1959년 2월 3일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와 빅 바퍼 리차드슨 주니어 (The Big Bopper Richardson Jr)와 함께 스물 두 살의 천재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영원한 별이 된 그날을 일컬어 돈 맥클린(Don McLean)은 "음악이 숨을 거둔 날(The Day Music Has Died)"라고 말했다. 수많은 로큰롤의 별들이 명멸해 갔지만 버디 홀리가 숨을 거둔 그날 음악도 죽었다라고 일컬을 만큼 버디 홀리가 남겨준 유산은 그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2011년 9월 7일 그의 75회 생일을 맞아 발매된 이 앨범은 일주일 간격으로 Rave On(Fantasy/Concord)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또 한 장의 트리뷰트 앨범과 함께 그가 뿌려준 음악적 세례에 대한 수혜자들의 즐거운 음악적 고백들이다. 특히 이 앨범을 제작한 피터 애셔(Peter Asher)는 그의 영국판 카피캣이었던 피터 & 고든 (Peter & Gordon)의 바로 그 인물이란 점에서 그가 평생 동안 가져왔던 그의 음악적인 멘토였던 버디 홀리에 대한 뒤늦은 감사의 표시이다.

1957년 데뷔해서 1959년 2월 사망하기까지 불과 18개월 동안 세 장의 앨범과 남겨 놓은 명곡들은 그의 음악적 인생을 반추해 보기엔 너무나 작은 숫자이지만, 그가 남겨준 음악적 영향력은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너무도 명백해 보인다. 음악적으로 두 대의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라는 록밴드의 전형을 제시한 그는 외향적으로도 결코 록큰롤이 반항의 음악만이 아니었음을 그의 스타일로 입증했다. 엘튼 존에서 존 레논에 이르기까지 그의 외모가 결코 록스타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보여주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심지어 비틀즈의 이름 역시 그의 밴드 크리켓츠(귀뚜라미들)에서 따왔으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첫 레코딩 역시 버디 홀리의 That'll Be The Day 였으며, 롤링 스톤즈의 최초의 히트곡도 Not Fade Away 였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적 영향력이 비트와 모드세대 전반을 걸쳐 록큰롤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비틀즈(Words of Love)에서 롤링 스톤즈(Not Fade Away)에 이르는 브리티쉬 인베이젼에서부터, 제임스 테일러(Everyday)에서 돈 맥클린(Mayby Baby) 등의 싱어송라이터뿐 아니라. 험블 파이 (Heartbeat), 이레이져 (True Love Ways). 그레이트풀 데드 (Not Fade Away), 블론디 (I'm Gonna Love You Too), 블라인드 페이스 (Well All Right), 모터헤드(Love's Made a Fool of You) 등 다양한 장르의 록밴드들의 음악적 자양분의 근간에 그의 음악이 있었던 점은 지난 오십년 간의 역사를 넘어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평가 받을 것이다.

이 앨범에 참여한 폭넓은 스펙트럼의 아티스트들 링고 스타와 브라이언 윌슨과 같은 동시대의 뮤지션에서부터, 록의 다양성을 펼쳐낸 스티비 닉스(Fleetwood Mac), 잭슨 브라운, 제프 린(E.L.O), 린다 론스태트를 거쳐 크리스 아이작, 나탈리 머천트(10000 Maniacs), 팻 모나한(Train), 더 프레이, 패트릭 스텀프(Fall Out Boy), 주이 데샤넬, 이멜다 메이에 이르기 까지 그의 음악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며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한 장의 음반에서 감동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이 앨범이 참여한 거의 모든 아티스트에 그래이엄 내쉬, 폴 앵카, 키쓰 리차드와 보즈 스캑스 등의 슈퍼스타가 모두 모여 그의 75주년 생일이었던 2011년 9월 7일 헐리우드의 뮤직 박스 씨어터에서 성대한 축하공연이 열려 더욱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속에 녹아든 그의 음악의 다양한 일면들은 그의 음악이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한 생명력으로 이 시대의 팝음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 시켜준다.

그리고 잭슨 브라운은 돈 맥클린의 말에 대해 이렇게 화답했다.
"그날은 음악이 죽은 날이 아니다. 바로 음악이 불멸의 날이 된 날이다."
노래 : Linda Ronstadt (린다 론스태드)
팝계는 흥분과 격동의 60년대를 마감하고 70년대를 맞이하면서 린다 론스태드라는 뛰어난 여가수의 출현을 알린다. 70년대 초반 팝 음악은 불과 몇 해 전의 파워풀한 분위기와는 크게 다른 ‘차분한’ 기조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린다 론스태드는 이러한 소프트록과 ‘70년대식’포크의 상징이었다. 그의 인기는 70년대 중반부터 폭발해 이후부터 여가수 가운데 최고, 남자가수를 합쳐도 톱클래스라는 명성을 쌓아올렸다. 그... 팝계는 흥분과 격동의 60년대를 마감하고 70년대를 맞이하면서 린다 론스태드라는 뛰어난 여가수의 출현을 알린다. 70년대 초반 팝 음악은 불과 몇 해 전의 파워풀한 분위기와는 크게 다른 ‘차분한’ 기조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린다 론스태드는 이러한 소프트록과 ‘70년대식’포크의 상징이었다. 그의 인기는 70년대 중반부터 폭발해 이후부터 여가수 가운데 최고, 남자가수를 합쳐도 톱클래스라는 명성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슈퍼스타의 지위는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린다의 이름은 70, 80년대를 걸쳐 인지도가 가히 최고급으로 불멸의 애청곡 ‘아주 오랫동안(Long, Long Time)’ 하나만으로 기억하기 충분하고 ‘사랑에 빠지긴 너무 쉬워(It’s So Easy)’. ‘당신은 나빠요(You’re No Good)’등도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다. 이십대 팝 팬들은 90년대를 강타한 수작 ‘많이는 몰라요(Don’t Know Much)’로 린다의 존재를 숙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린다에게서 우선 발견되는 유별난 특성은 가히 놀라울 정도의 생명력이다. 1967년에 팝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활동 경력이 어느덧 사반세기를 넘겼다. 이처럼 롱런하는 동안 눈에 띄는 슬럼프를 경험함이 없이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인기만 유지한 것이 아니라 여가수 중 드물게 가창력은 물론 앨범으로서 음악성을 인정받아 ‘실력을 갖춘 여가수’라는 희소가치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말이 사반세기이지 그 기간 동안 팝 음악의 유행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으랴. 너무나도 쉽게 변해버리는 팝음악의 조류를 쫓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린다는 이것을 거뜬히 해냈으며 바로 이 점이 그를 무수한 팝가수 가운데 우뚝 서게 해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영원한 인기를 보장해준 밑거름은 출생부터 딸려나온, 거의 천재적인 ‘유행의 포착능력’이었다. 그는 유행을 미리 내다볼 줄 알았다. 록 음악의 시대에는 남자 못지않게 록을 소화했고 유행이 컨츄리 음악 쪽이겠다 싶으면 지체없이 컨츄리를 노래했으며, 펑크가 거세질 때는 펑크를 음반에 담았다. 옛날 고리짝 시절의 스탠다드 팝을 선보여 8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맞추어 나갔고 멕시코 가요 음반을 내놓기도 했고 블루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국의 팝 음악이 역사에 걸쳐 생성시킨 그 무수한 장르 가운데 린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장르는 없다! 90년대 그는 AP통신의 앤 피터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난 노래 스타일이 어찌됐든 단지 노래를 계속 해야 한다”며 “현재의 캐리어에 그냥 머물러 앉는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르에 구애됨이 없이 능력이 닿는다면, 시대가 그 스타일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것을 시도하겠다는 얘기다. 장하다고 칭찬해 줄 만한 바로 이 점이 정반대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가 데뷔이래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을 쭉 분석하면 그것은 영락없는 ‘카멜레온’의 음악행각이다. 하나의 고정 장르를 오랜 기간 고집스럽게 밀고나간 족적이 없다. 변덕스럽기 작이 없다. 스타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프로의식을 다른 시점에서 보면 그 만큼 대중의 감각에 철저히 ‘영합’했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유행의 흐름을 파도라 한다면 그는 실로 ‘파도타기의 명수’였다. 60년대말 록의 ‘저항’물결이 쇠락하면서 70년대가 소프트 록의 시대가 될 것을 간파한 그는 즉각 ‘보수적 신념’을 내비쳤다. 에벌리 브라더즈 또는 버디 할리의 컨츄리풍 록넘버를 리메이크해 ‘복고’의 기치를 드높였고, 60년대 록 스타들이 미국정부에 대해 도전한 것과 같은 공격성에 넌더리를 치며 “이 나라에 실질적인 애국심의 부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70년대 초 린다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위한 선거 캠페인을 끝낸 뒤 이렇게 말했다. “난 사실 그때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누구든 알겠는가. 만약 누군가 그것을 결정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면 기업 ‘스탠다드 오일’은 대통령이 안될 게 뭐 있는가. 기업이 사실 득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스탠다드 오일에 만약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다국적 대기업이 국가를 통치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당신들은 말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그 기업을 필요로 하고 그 기업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기업으로부터 직장을 얻고 있다. 그 기업이 이 나라와 나머지 전세계 국가의 경제상황에 무엇이 유리한가를 결정하는, 더 바람직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미국의 체제에 회의를 품지 말고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미국체제의 근간인 경제적 과두제, 대기업에 의한 경제운용, 그리고 기업이익 추구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 시점부터 린다는 ‘미국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 비판을 하나의 기조로 하는 록 뮤직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스타들과는 달리 의미있는 노랫말과는 결별했다. < 뉴스위크 >지는 77년 2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린다는 상승추세의 록 무대 활동기간 중 록성좌들의 ‘붉은 거성’과 ‘블랙 홀’을 피했다”며 그를 운좋고 조심할 줄 아는 인물로 묘사했다. 저항적 색채 또는 정치색에 물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보수성은 간혹 이중적 자세를 엿보이게 했다. 린다는 70년대말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사회저항적인 펑크 록의 움직임이 확산될 무렵 보수적 색깔을 드러내 “펑크는 변비가 심해 ‘치질’의 록이라 불러야 한다”며 욕설조로 펑크의 가치를 부정했다. 그런데 펑크의 기세가 거대한 물결을 야기시키며 팝과 록의 여러 장르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듯 펑크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78년 펑크의 거목 엘비스 코스텔로의 노래 ‘앨리슨(Alison)’을 부른 것을 필두로 80년도 음반 < 광기의 사랑(Mad Love) >에는 펑크적 분위기를 적극 살려 스파이크 헤어스타일을 한 린다가 자켓에 등장했으며 코스텔로의 노래를 ‘파티여자(Party Girl)’, ‘여자들의 말(Girl’s Talk)’ 등 두 곡이나 수록했다. 물론 이 시절에도 처크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스모키 로빈슨 등 옛곡을 재해석하는 ‘복고적 성향’을 잊지는 않았다. 외적으로는 최신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구식’을 고수하는 이 자세야말로 린다의 전형적인 대중접근 수법이자 그의 진정한 색깔이기도 하다(70년대 린다의 히트곡 대다수가 옛노래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점은 특기할 사항이다). 80년대 들어서도 린다는 시대적 특성을 정확히 읽었다. 때는 바야흐로 레이건의 보수 시대였다. 그는 지금껏 줄기차게 구사해왔던 록 뮤직을 걷어치워버리고 83년 스탠다드 넘버로 채색한 음반 < 무엇이 새로운가(What’s New) >를 발표했다. 스탠다드 넘버란 40년대 이전까지 유행한 상류계층의 노래로 향수어린 이지 리스닝을 연상하면 되는데, 린다의 음반 가운데에선 가장 보수적인 색채라 할 만한 것이었다. 넬슨 리들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제작한 이 앨범은 < 타임 >지 선정 그 해 팝음반 베스트 10의 하나였다. 이 작품이 예상외로 호평을 받자 린다는 84년 다시 한번 넬슨 리들과 손잡고 < 돌진하는 삶(Rush Life) >을 내놓았고, 이후 87년에는 멕시코 전통가요로 꾸민 < 아버지의 노래(Canciones de Mi Padre) >를, 88년에는 컨츄리 스타인 돌리 파튼, 에밀루 해리스와 노래한 < 트리오(Trio) >를 각각 출반했다. 이런 유형의 작품들은 대중으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린다의 시도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성질의 것이었다. 여하튼 그는 레이건 통치 8년간 단 한 번도 록 뮤직 또는 파워풀한 음악과 재회함 없이 부드러운 노래로 일관했다. 린다의 보수성은 가정환경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1964년 미국 애리조나주 턱슨에서 태어난 그의 가정은 매우 부유한 편이었다. 린다에게는 어렸을 적에 벌써 조랑말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과학 방면에서 뛰어난 지식을 소유한 인텔리였고, 아버지는 턱슨에서 대규모 하드웨어사업을 경영했다. ‘자본과 기술’이 제휴된 부르조아 부모 덕분에 린다는 전혀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풍족하게 살았다. 대다수 록스타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사실과 큰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그러나 린다의 소녀시절과 사춘기는 여느 록스타들처럼 도발적 끼가 넘쳐흘렀다. 여고시절에 그가 펼친 상상 가운데 하나는 ‘목사를 유혹하는 것’이었고, 아리조나 주립대학에서 한 학기를 수료한 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결혼하거나 수녀가 되는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하겠다는 제 3의 길을 택할 만큼 대담했다. 그는 스스로 그 시절의 자기를 ‘사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남성 지배의 록 세계로 뛰어든 것 자체가 용기였고 공연을 다니면서 남자의 세계에 깊이 동화될 정도로 순종적 자세를 거부했다(“난 공연을 다니면서 남성적 태도를 배웠다. 록큰롤의 실질적 자세를 말이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 말버릇은 마치 트럭 운전사와 같았다”). 그는 나이 50세가 되어가는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그간 제이 디 사우더, 돈 헨리, 믹 재거, 그리고 캘리포니아 시장 제리 브라운과 열애하거나 동거하기도 했지만 관계를 오래 끌지 않았다. 77년에는 ‘난 결혼하지 않으리(I Never Will Marry)’라는 곡을 내놓아 독신을 공식선언한 바도 있다. 부잣집 딸이, 게다가 용모까지 아름다운 여자가 사서 고생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린다가 반항적 기질의 소유자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성년기의 린다는 상층사회의 흐름에 거역치 않는 타협적, 보수적 자세로 일관해오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음악에 임하는 태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무질서로부터 질서의 확립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예술을 창조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린다가 노래하는 것은 다름아닌 질서와 안정이다. 그는 무질서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그에게 현실과 사회에 대한 도전적 자세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노래 : Rufus Wainwright (루퍼스 웨인라이트)
루퍼스 웨인라이트(Rfus Wainwright)는 2001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 슈렉 >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Hallelujah’와 2002년도 작품인 < 아이 앰 샘 >에서 비틀스(Beatles)의 ‘Across the universe’를 리메이크하면서 국내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진 남성 싱어 송라이터다. 포크와 얼터너티브의 감성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그 위에 팝과 록, 그리고... 루퍼스 웨인라이트(Rfus Wainwright)는 2001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 슈렉 >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Hallelujah’와 2002년도 작품인 < 아이 앰 샘 >에서 비틀스(Beatles)의 ‘Across the universe’를 리메이크하면서 국내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진 남성 싱어 송라이터다. 포크와 얼터너티브의 감성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그 위에 팝과 록, 그리고 탐 웨이츠(Tom Waits)의 카바레 스타일을 적절하게 융합한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음악은 매우 지적이며 사색적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음악팬들보다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집단에 먼저 알려졌다. 1973년 7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난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아버지는 포크 싱어인 로던 웨인라이트 3세(Loudon Wainwright III)이고 어머니인 케이트 맥개리글(Kate McGarrigle) 또한 포크 싱어이기에 루퍼스에게는 태생적으로 음악적인 DNA가 내재하고 있었다. 루퍼스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자 그는 어머니를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주거지를 옮겨 그곳에서 음악으로 충만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피아노를 배운 그는 10대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 각지를 돌며 공연 무대를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그의 자유스러운 생활은 자신이 게이라고 떳떳하게 밝히는 커밍아웃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대학에서 잠시동안 클래식을 전공한 그는 곧 대중음악으로 방향타를 틀고는 드림웍스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본인이 전곡을 만든 데뷔작 < Rufus Wainwright >를 1998년에 발표했다. 그래서 3년 후인 2001년에 루퍼스가 드림웍스 제작의 애니 영화 < 슈렉 >에서 ‘Hallelujah’를 불러 수록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으로 이 젊고 유능한 싱어 송라이터는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벤 폴즈(Ben Folds) 등과 함께 새로운 세기에 기대되는 싱어 송라이터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2001년에 발표한 두 번째 음반 < Poses >이 빌보드 앨범차트 117위에 오르며 대중들과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상견례를 가졌다. ‘Cigarettes and chocolate milk’와 ‘California’, 그리고 < 아이 앰 샘 > 사운드트랙에 있는 ‘Across the universe’ 등이 수록된 이 소포모어 음반으로 인기의 기반을 넓힌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2003년에 세 번째 앨범 < Want One >으로 다시 한번 앨범차트 6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오버그라운드 입성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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