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간과 나의 시간 사이에서
이십 년 지기 두 남자의 방향과 속도 찾기
이 책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는 성장하는 동안 어디론가 사라진 ‘나’를 찾아가는 두 남자의 기록이자 성장보고서이다. 회사에 다니며 여가시간에는 영화 리뷰 등 글을 쓰는 임재훈과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프리랜서로 전향 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나의 일’을 찾고 있는 전진우는 이 책의 저자이자 이십 년 지기 친구이다.
그동안 심플해 보이는 세상에 몸을 맡기며 세상이 나를 흘려보내주는 방향을 따라 살아온 두 사람은 이십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뒤늦은 성장통을 앓았고 그동안 내가 선택해온 삶에 나의 의지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서로에 대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답게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들의 대화는 총 세 가지 층으로 나뉜다. 임재훈과 전진우의 대화, 그리고 그들이 각자가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다.
이십대의 끝 무렵 둘이서 나눈 대화가 그냥 휘발되는 게 아쉬워 일 년여 간 메일을 주고받았고, 그 이후엔 팟캐스트를 통해 대화했고 지금도 그 대화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제는 책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때론 서로의 힘듦만을 확인하고 그대로 둔 이야기들도 있다. 애초에 거창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대화가 아니므로 조용한 관람자도,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도 모두 환영이다. 다만 삶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도, 그 답을 내리는 것도 모두 ‘나’였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_「청춘에게 철학을」 중에서 (4쪽)
오로지 시험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정답을 잘 맞힌다’와 같은 뜻이야. 그 정답을 맞히기까지는 부단한 공부가 필요한데, 이 과정도 실은 ‘정답’이야. 정답에 이르는 길은 정답일 수밖에 없으니까. 출제자들 역시 그 정답의 길을 걸었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택할 것을 권하고 있는 셈이지. 선문답이나 개똥철학 같은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어쩌면 정해진 길, 정답의 길만이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것은 아닌지 반문해보고 싶어.
_「심판에 길들여진 우리」 중에서 (38쪽)
처음에는 가볍게 대화로 풀어나가던 것이 이메일을 통한 편지로 이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팟캐스트 [청춘철학 : 서른 살 옹알이]의 녹음을 시작했다.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대화만으로 한 시간 가량 이어지는 이 팟캐스트에서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상대의 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다만 ‘나’라는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 나다우면 늘 봄이라니까!
멘토 떠나보내기부터, ‘나’라는 답을 찾기까지
대화에서 편지로 그리고 방송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행보처럼 책의 각 장 또한 팟캐스트 방송을 녹취한 듯한 대화문으로 시작되다가 두 사람의 편지로 이어지고 그후에는 주제에 대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풀어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함께 읽어보면 좋을 문학작품, 영화, 앨범 등의 소개한다.
책에는 두 사람이 그간 나눴던 청춘의 기록들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 정리돼 있다.
[1장 멘토를 떠나보내며]에서는 우리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 혹은 멘토라는 목발을 짚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비틀거리더라도 세상이 쥐여준 목발을 버리고 나의 두 발로 세상을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지는 [2장 타협하지 않고 즐겁게 버티기]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신상을 원하는 것인지 타인의 관심을 원하는 것인지, 지금 하는 일이 좋은 것인지 타이틀만을 원하는 건지 고민하면서 성공이 급하다고, 현재가 힘들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3장 청춘의 외로움]에서는 나답게 살아가며 나와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다. 일명 ‘동족 찾기’로 세상에 흩어져 있는 나와 닮은 ‘우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돌연변이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영화 [엑스맨] [배트맨] 등을 인용하여 이야기한다.
[4장 사랑하다 이별하다 사랑하다]에서는 연애코칭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는 이때 누군가 제시해준 매뉴얼을 보며 사랑을 대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가치와 본능에 좀더 충실할 수 있기를 고민하며, [5장 행복의 시대]에서는 행복은 곧 자급자족 혹은 가내수공업이라는 정의를 내리며 행복의 재료는 현재 안에만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는 현재 안에서 펼쳐봐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6장 발견, 그후]에서는 내가 나다워지는 만큼, 세상은 더욱 강하게 세상다움을 고수할 것이며 어쩌면 나다워진다는 것은 그런 나와 세상 사이에서 시차를 느끼며 어느 정도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차를 줄여가는 방법 역시 내 인생의 적정 속도를 찾아가는 것, 결국 나답게 잘 살아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SNS에서 인상적인 그림 하나를 봤어. 배경은 숲속이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가까운 곳에 한 사람이 책상을 놓고 의자에 앉아 있어. 책상 앞에는 코끼리, 펭귄, 새 등등 동물들이 일렬횡대로 나란히 서 있고.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앉은 사람이 이렇게 말해. “자, 이제부터 너희에게 한 가지 똑같은 테스트를 실시할 거야. 저 나무 위로 올라가보는 거야. 공평하지?”
이게 과연 공평한 테스트일까? 펭귄과 코끼리가 어떻게 나무를 올라가냐고. 이 테스트의 1등은 원숭이가 될 거야. 이 그림에서 사람이 제시하는 ‘나무 타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삼시 세끼’,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과 같은 개념이지. 요지는, 우리가 펭귄 혹은 코끼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염두에 두자는 거야.
_ 「당당히 외쳐보자! So What?」 중에서 (24쪽)
인생을 코스프레 하듯 사는 것. 얼핏 보기엔 남의 얘기 같지만 사실 그런 일이 우리의 삶 속에서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싶어. 요즘엔 다들 하고 싶은 것들이 뚜렷하잖아.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관도 확실하고. 그런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일 자체보다는 명함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것 같아. 결국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거지.
_「어쩌면 우리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중에서 (94쪽)
속도가 느려지니 내 안에 뒤처져 있던 생각들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어. 그 생각들이 결국 나를 역전하여 나를 이끌기 시작했지. 그 생각들에게 미안하더라고. 그동안 빠른 속도로 살아서 따낸 메달도 많긴 했지. 취업이 그랬고, 회사에서의 업무 실적이 그랬고.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말야. 기껏해야 ‘졸라 빠른 새끼’인 인간일 뿐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종국엔 느려질 게 뻔한데.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모두의 결승선은 한곳 아닌가. 죽음. 어떻게 산다는 건, 즉 어떻게 죽느냐는 거니까.
_「‘내 속도’로 가더라도 불행은 피할 수 없다」 중에서 (279쪽)
두 사람은 [청춘철학 : 서른 살 옹알이]를 진행하며 여러 사람들의 청취소감을 들었다. 가장 인상 깊은 소감은 ‘당신들의 이야기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또는 반대하며 내 생각을 덧붙이는 방향으로 듣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지점 또한 이 부분이다. 타인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공고히 하는 것. 서로가 같이 우리다움을 찾아가지만 나다움의 갈래 길에서는 각자 떨어져가는 것. 그렇게 의견을 나누는 일 말이다.
봄이다. 모든 생명이 살아나고 피어나는 생명력 넘치는 봄. 우리도 가끔은 이런 계절의 표정에 활력을 더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움트는 초록의 잎들처럼 나 자신을 또렷이 바라보며 나다움을 싹틔우는 일 또한 중요하다. 세상에 의해 혹은 자의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를 잃어가고 있는가. 흔하디흔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철학을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리라 믿는다. 머뭇거리며 성큼 다가오는 봄처럼 우리들은 아직 걸음마 혹은 옹알이 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끝내 우리는 ‘요즘 젊은이들’이라는 말에 규정된 맞춤정장을 벗어던지고 나다움의 봄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