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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권 | 시인동네 | 2015년 06월 17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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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98g | 148*210*20mm
ISBN13 9791186091401
ISBN10 118609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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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한상권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강원도 속초에서 성장기의 한때를 보냈다.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극과 여행을 좋아하고, 현재 대구 심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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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무릇 꽃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닫는다. 너와 나의 무수한 층위도, 말하자면 꽃과 빗소리 사이에 있다. 그 안에서 직면하는 모든 경계와 무위를 온몸으로 담는다.
아무것도 어떤 것도 아니라 하나 그 안에서 너와 공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길이든 너무 늦은 처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정언명령도 가슴 뛰지 않을 때 너는 내게 가만히 손을 내민다. 마치 온화한 수시(手施) 같고 반짝이는 지평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이 차지 않다.

[출판사 서평]

서정시의 기본 원리는 나와 타자를 동일화하고 그 간극을 시적 사유로 융합하여 상호 연결성을 확증하는 것일 것이다. 시를 쓰는 행위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작업과도 같다. 시인은 만물의 대동(大同)을 꿈꾸면서 시적 사유의 네트워크를 확장해간다. 시는 우연을 선택하여 필연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물상들은 저마다의 주파수로 끊임없이 신호(말)를 보낸다. 시인은 예민한 촉수로 그것을 감지하고 포착(선택)하여 시를 쓴다. 완성된 한 편의 시는 선택과 작용의 결과로서 표상된 필연의 얼굴이다.

1.

한상권의 시는 이러한 점을 꿰뚫어 보면서 “몽유도원도는 우연의 일들을/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김광석의 몽유도원도」)는 상용의 생각과 언어로는 접할 수 없는 본원의 지점을 궁구하고 있다. 그 지점은 그러나 현실언어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어서 이미 말해진 세상의 언어로는 도달할 수 없다. 긁어도 시원치 않은 가려움이나 물을 마셔도 풀리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동어반복의 지지부진한 상태를 타파하기 위해 그는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순차적 세계보다 다발적 세계에 더 주목한다. 보이는 세계는 표현된 세계이고 감각이 통용되는 현실세계인데, 존재의 본질은 저쪽,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무질서한 확률로 분포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곳은 중력과 시공이 균일하게 작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 가역적인 세계이다. 그는 전면에 부각되지 않은 물상들의 어긋남과 흔들림을 감지하고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견찰(見察)하면서 ‘순간’을 뚫고 쏟아지는 이미지들의 세례를 받는다.

간신히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나서자/선분을 잃어버린 점처럼 혼란스러웠다./전후좌우가 없어졌으니/나는 지금 여기 당신 앞에 확실히/두려움 없이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하나의 위대한 법칙과/완전한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만/나는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우린 서로 불확정적으로 이어져 있다고/파도는 저 깊은 바다 앞에서 속삭일 뿐이다./은하계의 장엄한 소용돌이 속에서도/바닷속 물질과 힘을 하나로 연결해/나는 지금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다./여기는 다만 확률적인 무한 우주. ―「불확정적인 사랑」 부분

그는 보이는 것(현상)들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신의 존재함과 생각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전후좌우” 분별이 없는 세계는 “하나의 위대한 법칙과/완전한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없고, “다만 확률적인 무한 우주”에서 “우린 서로 불확정적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라는 대답을 내놓으며 “물질과 힘을 하나로 연결해/나는 지금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라는 확증에 도달한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시는 각각의 분절된 존재(관계)들을 양자역학적 사유로 융합하여 서로 연결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의 시는 흔히 말하는 ‘초현실주의’ 시의 경향과는 다르다. 전통적 서정을 기반으로 한 깨달음의 화법에 더 가깝다.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격하게 굴절시키지 않으면서 존재의 표면과 심연, 입자와 파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2.

이 세상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생활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우리는 그 ‘안 되는 일’을 이루기 위해 희망을 만지고 노력을 보태면서 다채로운 삶을 헤맨다. 결핍과 미만(未滿)으로 얼룩진 현실은 어긋나고 헛디디고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통증의 내벽”에 “꽃”을 피운다(「무꽃」). 시에서의 결핍은 대개 ‘너’의 부재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없고/사방은 빗소리와 어둠만이 남아” 있는(「무너진 도시」) 세상인 것. 우리가 갈구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시공의 제약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과거-현재-미래를 동시동공(同時同空)으로 조응하면서 시간의 더께를 쓰고 묵묵히 견디는 것들의 양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삶은 어긋남과 헛디딤, 기울어짐과 흔들림이 겹쳐진 페이지들의 총화임을 자각한다. 그것은 존재들이 시공을 건너가는 방식이며 안간힘으로 저항한 상처의 기록이다.

가진 것이 너무 없어 기우는 것이라 했다.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바닥이 다 드러난 패, 그러므로 옆으로 세우거나 뒤집는 것은 놀라운 기법이 아니다. 뜨거운 태양은 우기를 감추고 있지만 짧은 건기에도 무너지고 기울어진 것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바람이 지나갔을까. 스쳐 지나가거나 버려야 하는 것들 사이로 비밀처럼 새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경계 안에서 기울어진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티프롬에서 기울어지다」 부분

‘티프롬 사원’에서 시인은 무너지고 기울어진 것들의 힘을 발견한다. 그저 세월에 짓눌린 기움이 아니라 꿈틀거림이 내재된 능동적인 기움으로 치환한다. “무너지고 기울어진 것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사원의 풍경을 통해 “밤마다 무너진 것들이 모여 혁명의 노래를 부른다는 소문”을 듣는다. 기울어짐은 “무너질 것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견고한 사랑을 회복하는” 자세이며 “결국은 기울어진 나무들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처럼 시인은 기울어짐에 적극성과 주체성을 부여하면서 그 기울어짐 속에 자신의 상처를 대입하여 연대하고자 한다.

3.

시에서 ‘사이(거리)’는 극복해야 할 난제이면서 무엇으로든 채워서 연결해야 한다는 강박의 단초를 마련한다. 그러나 주체(나)와 대상(너)의 완전한 합일은 있을 수 없고, 그것으로 인한 단절과 적막(고독) 또한 본질적이고 개별적인 것이어서 마침내 해결되지 않는다. 나와 너는 서로 사이를 두고 애증을 거듭하면서 길항한다. 그런 일상이 반복될 때 시인은 무력감을 느끼며 자책한다. “어제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어본 적이 없다/꽃이 피고 질 때 내가 한 일이 없다”(「강」).
사이와 거리는 서로 떨어진 외경(外境)의 문제가 아니라 일찍이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차이와 반복’의 개념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원리임을 이해한다면 합일의 욕망에 그토록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본질적인 속성을 이해할 때 사이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달리 생각하면, 사이는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튕겨내고, 지탱하고, 끌어당기는, 척력과 장력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모순 매질(媒質)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의 모든 물상들이 고유의 개성을 간직한 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사이의 힘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사이가 없는 세계는 곧 붕괴하여(전쟁이든 사랑이든) 소멸해버리므로 시인은 그것을 깨닫고 ‘사이 극복론자’에서 ‘사이 필요론자’가 된다. 시인은 불안한 추상의 세계에서 차분한 현실의 세계로 복귀하면서 사이를 응시한다. 사이는 현재의 평화와 자유를 견지하면서, 점진적으로, 그 간극을 극복해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것은 친밀과 화해에 이르는 가장 간절한 속도이기도 하다.

집 앞에 안상규 벌꿀 집이 있어/오늘도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벌을 사랑한 한 스님 말씀이 생각났다/근처 벌통 몇 개를 합봉했는데/처음엔 벌들끼리 서로 경계하고 물어뜯더란다/몇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다가/벌통 중간에 얇은 한지를 놓았더니/벌들이 이 칸막이 같은 한지를 갉아먹으며,/조금씩 생소하던 거리도 좁혀갔더란다/아아 나는 너에게 너무 빨리 가려고/너와 자꾸 어긋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그러고 보니 나무와 나무 사이,/이 조그만 사이 같은 거리가, 더 오래/우리를 뭉클하게 해줄지도 모르겠다/이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적막이/너와 영원한 도반이 되게 할지 모르겠다 ―「도반」 전문

시인은 ‘칸막이’라는 외부의 장막을 통해 두 개체가 친밀해지는 과정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화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무장막(無帳幕)이 아니라 오히려 장막이라는 것. 벌통과 벌통 사이에 낀 “얇은 한지”는 사이를 채우는 매질과도 같은 것이다. 건강한 사이가 와해된 세계는 혼돈과 광기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험을 안고 있다. (사랑도 이와 같다.) 시인은 이 점을 잘 알기에 가장 이상적인 대동에 이르는 장치로써 칸막이의 미덕에 주목한다. “벌들이 이 칸막이 같은 한지를 갉아먹으며,/조금씩 생소하던 거리도 좁혀”가는 예화를 통해 가장 무난한 화해의 방식을 제시한다. 더불어서 “나는 너에게 너무 빨리 가려고/너와 자꾸 어긋나지 않았는지” 자신의 조급함을 반성하는 가운데 “조그만 사이 같은 거리”와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적막이” 결국은 너와 나를 “영원”히 이어주는 ‘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이와 거리, 적막과 단절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상황으로 치환한다. ‘따로 또 같이’라는 세간의 구호처럼, 제 몫의 고립을 견디면서 합일과 대동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초월적 의지를 갖는 것, 그런 과정이야말로 시의 본모습일 것이다. 시인은 어느 순간 몽상을 접고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서야 너를 생각”하는(「우리 도서관에 꽃핀다」) 일상으로 문득 돌아온다.

[시인의 산문]

여행지를 가다가 도서관을 만나면 버스에서 잠시 내린다. 앙코르와트에서도 후쿠오카에서도 그랬다. 최근엔 콜로안의 작고 노란 도서관 앞에서 콜로안의 그리움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걸음이 빨라졌다. 우리는 정동진역이나 화본역, 곡성역을 지나지만 그 안에서 오래 머물지 않는다. 역사의 역사도 사람의 사람도 보지 않고 시간에 맞춰 스치듯 지나간다.
나와 너 사이의 사유가 필요하다. 내가 있는 이곳이 우산역이고 사람역이다. 이팝나무역도 그리움의 그 어느 정도에 있을 것이다. 너의 여름은 어떠냐고 손을 내밀면 내가 자유로워진다. 그런 나의 눈에 너는 더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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