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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티메이트 락 (Ultimate Rock: 4CDs Of The Greatest Rock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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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얼티메이트 락 (Ultimate Rock: 4CDs Of The Greatest Rock Music)

[ 4CD / 오리지널 음원 ]
Alice Cooper, Meat Loaf, David Bowie, Jeff Buckley, Steve Vai 노래 외 1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5년 06월 2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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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티메이트 락 (Ultimate Rock: 4CDs Of The Greatest Rock Music)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5년 06월 24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1
  • 01 Poison - Alice Cooper
  • 02 Living After Midnight - Judas Priest
  • 03 God Gave Rock & Roll To You - Argent
  • 04 Burning Heart - Survivor
  • 05 More Than A Feeling - Boston
  • 06 Black Betty - Ram Jam
  • 07 (Don't Fear) The Reaper - Blue Oyster Cult
  • 08 Carry On Wayward Son - Kansas
  • 09 Satellite - The Hooters
  • 10 Hold The Line - Toto
  • 11 The Final Countdown - Europe
  • 12 Can't Fight This Feeling - Reo Speedwagon
  • 13 Bat Out Of Hell - Meat Loaf
  • 14 Sweet Talkin' Woman - Electric Light Orchestra
  • 15 All The Young Dudes - Mott The Hoople
  • 16 The Stars (Are Out Tonight) - David Bowie
  • 17 Smoke On The Water (Live) - Deep Purple
DISC 2
  • 01 Teenage Dirtbag - Wheatus
  • 02 Girl All The Bad Guys Want - Bowling For Soup
  • 03 Lifestyles Of The Rich & Famous - Good Charlotte
  • 04 Chop Suey! - System Of A Down
  • 05 Word Up! - Korn
  • 06 Down - 311
  • 07 Dollar Bill - Screaming Trees
  • 08 Runaway Train - Soul Asylum
  • 09 Motorcycle Emptiness - Manic Street Preachers
  • 10 Rocks - Primal Scream
  • 11 Another Girl Another Planet - The Only Ones
  • 12 All Day And All Of The Night - The Stranglers
  • 13 Fire - Kasabian
  • 14 How To Save A Life - The Fray
  • 15 Last Goodbye - Jeff Buckley
  • 16 Heartbreak Warfare - John Mayer
  • 17 Hold On Baby - J.J. Cale
  • 18 The Free Electric Band - Albert Hammond
DISC 3
  • 01 Because The Night - Patti Smith Group
  • 02 Drops Of Jupiter - Train
  • 03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Jeff Healey Band
  • 04 Love Rears Its Ugly Head - Living Colour
  • 05 Danger Zone - Kenny Loggins
  • 06 Surrender - Cheap Trick
  • 07 Cat Scratch Fever - Ted Nugent
  • 08 Hellraiser - Motorhead
  • 09 Once Bitten, Twice Shy - Ian Hunter
  • 10 Cherry Pie - Warrant
  • 11 Bang Your Head (Metal Health) - Quiet Riot
  • 12 When I See You Smile - Bad English
  • 13 When I Look Into Your Eyes - Firehouse
  • 14 Kiss Me Deadly - Lita Ford
  • 15 Pictured Life - Scorpions
  • 16 Your Love - The Outfield
  • 17 Any Way You Want It - Journey
  • 18 Carol - Al Stewart
  • 19 Eye In The Sky - Alan Parsons Project
DISC 4
  • 01 She's Not There - Santana
  • 02 Black Magic Woman - Fleetwood Mac
  • 03 Race With The Devil - The Gun
  • 04 The Witch Queen Of New Orleans - Redbone
  • 05 Piece Of My Heart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 06 American Woman - The Guess Who
  • 07 Mississippi Queen - Mountain
  • 08 Teenage Head - The Flamin Groovies
  • 09 Barracuda - Heart
  • 10 I Got A Line On You - Spirit
  • 11 Flirtin' With Disaster - Molly Hatchet
  • 12 Tuff Enuff - Fabulous Thunderbirds
  • 13 The House Is Rockin' - Stevie Ray Vaughan
  • 14 Satch Boogie - Joe Satriani
  • 15 Freeway Jam - Jeff Beck
  • 16 Tender Surrender - Steve Vai
  • 17 Rock And Roll Hoochie Koo - Johnny Winter
  • 18 Frankenstein - The Edgar Winter Group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7명)

앨리스 쿠퍼는 현재 대부분의 헤비메탈, 익스트림 록 밴드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미지, 즉 기괴한 의상, 현란한 분장, 충격적인 무대 매너 등을 가장 먼저 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록의 산증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거물이다. 음악 팬들은 30년 넘게 행해진 그의 엽기 반란의 음악과 무대를 ’쇼크 록’으로 명명하고 그를 대부로 임명했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헤비메탈을 시작으로, 1990년대... 앨리스 쿠퍼는 현재 대부분의 헤비메탈, 익스트림 록 밴드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미지, 즉 기괴한 의상, 현란한 분장, 충격적인 무대 매너 등을 가장 먼저 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록의 산증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거물이다. 음악 팬들은 30년 넘게 행해진 그의 엽기 반란의 음악과 무대를 ’쇼크 록’으로 명명하고 그를 대부로 임명했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헤비메탈을 시작으로, 1990년대 데스, 고딕, 블랙, 둠 등으로 가지 치기를 한 익스트림 메탈에 이르기까지 앨리스 쿠퍼가 심어놓은 이미지 장치들은 헤비메탈의 올 라운드를 아우르고 있다. 또한 마릴린 맨슨으로 대표되는 인더스트리얼도 엘리스 쿠퍼의 편린들이다. 1948년 2월 4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앨리스 쿠퍼(본명: Vincent Furnier)는 고교시절 친구들과 함께 나즈(Nazz)라는 스쿨밴드를 결성하며 거친 록의 세계에 문을 두드렸다. 1968년 앨리스 쿠퍼로 개명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밴드명으로 내걸고 쇼크 록의 오프닝을 알렸다. 음악 자체가 파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미지와 행동거지는 파격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까마귀를 연상시키는 검은 분장을 눈자위 가득 칠하고 영적인 듯한 행동을 일삼았다. 이는 일부 대중에게 역겨움을 이끌어 내었지만 동시에 수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며 엽기와 극단이 록의 중추적인 흐름으로 이끌어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엘리스 쿠퍼는 1969년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데뷔작 부터 1973년 7집 에 이르는 기간동안 쇼크 록의 제왕으로서 그 본분을 충실히 했다. ’I’m eighteen’, ’Under my wheels’, ’Elected’, ’No more mr. nice guy’, ’Teenage lament ’74’ 등 많은 하드 록 히트곡들을 쏘아올렸고, 1971년 투어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공연 모습을 통해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마녀가 자신의 뒤를 이으라고 하는 요상한 꿈을 꾼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만큼 그의 행동은 주술성이 강한 것이었다. 샤머니스트, 또는 ’악령의 전도사’와 같은 단어가 매우 잘 어울렸다. 공연에서는 누런 얼룩 구렁이와 입을 맞추고, 목을 매는 등 갖은 엽기 행각은 절정에 달했다. 1975년 부터 솔로 뮤지션으로 전향한 그는 강렬한 록 밴드의 프런트맨에서 인간미를 겸비한 싱어 송 라이터로 파격 변신을 했다. 당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있기도 했던 그는 전성기 시절에 비해 음악적으로 평가절하 되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You & me’, ’I never cry’, ’How you gonna see me now’ 등 팝에 가까운 발라드 곡들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잠시동안의 휴지기 이후 앨리스 쿠퍼는 이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금 본령을 회복했다. 1986년 작품 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조 새트리아니, 롭 좀비, 슬래시 등 많은 후배 뮤지션들과 조우하며 거장의 면모를 과시했고, 1994년 발표한 컨셉 앨범 등에서 특유의 개성 넘치는 창작력을 발휘하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깃덩어리’라는 뜻의 예명처럼 거구의 몸집과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미트 로프는 우리에게 1977년의 앨범 < Bat Out Of Hell >, 그리고 그 속편격인 1993년의 < Bat Out Of Hell Ⅱ: Back Into Hell >로 널리 알려진 팝 록 뮤지션이다. 곡은 1993년 앨범에서 발표되어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싱글 ‘I’d do anything for love(but I won’t do... ‘고깃덩어리’라는 뜻의 예명처럼 거구의 몸집과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미트 로프는 우리에게 1977년의 앨범 < Bat Out Of Hell >, 그리고 그 속편격인 1993년의 < Bat Out Of Hell Ⅱ: Back Into Hell >로 널리 알려진 팝 록 뮤지션이다. 곡은 1993년 앨범에서 발표되어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싱글 ‘I’d do anything for love(but I won’t do that)’가 유명하다. 1946년 1월22일 미국 텍사스 달라스 태생으로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음악의 길을 선택, 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팝콘 비자드’라는 이름의 밴드로 쇼 비즈니스계에 발을 내디뎠다. 본명은 마빈 리 어데이(Marvin Lee Aday)이고 1984년 마이클 어데이로 개명했지만 우량아였던 탓에 아버지가 불렀던 애칭 미트 로프로 예명을 취했다. 밴드가 해산한 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시작으로 영화, TV의 배우로 활동을 넓히게 된 그는 브로드웨이 데뷔작 < 헤어 >에 출연하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스토니(Stoney)라는 이름의 뮤지션을 만났다. 그와 두 번째 밴드 ‘스토니 앤 미트 로프’를 결성해 데뷔 앨범을 1971년 선보였고, 거기서의 싱글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은 첫 차트진출 곡이 되었다(싱글 차트 71위) 이후 일련의 뮤지컬에 출연한 것이 전환이 되어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짐 스타인먼(Jim Steinman)을 뮤지컬 < More Than You Deserve > 때 만나게 된다. 그가 곡을 쓴 미트 로프의 앨범 < Bat Out Of hell >은 1977년에 발표되어 그를 최고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여기서는 빌보드 싱글 11위를 차지한 ‘Two out of three ain’t bad’을 비롯해 ‘Paradise by dashboard light’(39위) ‘You took the words right out of my mouth’(39위) 등의 히트곡이 나왔고 앨범은 미국에서만 140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영국에서는 15년이 넘게 앨범차트에 머물러 가장 오랫동안 차트에 머문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스매시 히트는 부담으로 작용, 이후의 작품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1981년의 앨범 < Dead Ringer >, 1985년의 < Bad Attitude >, 1986년의 < Blind Before I Stop >, 1987년의 라이브 < Meat Loaf Live >는 별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트 로프는 영화 쪽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가 다시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때는 전성기로부터 15년 정도가 흐른 1993년에 앨범 < Bat Out Of Hell Ⅱ: Back Into Hell >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싱글 ‘I’d do anything for love(but I won’t do that)’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에게 생애 첫 싱글 차트 정상의 영광을 안겨주었으며 앨범도 차트 정상을 호령하며 500만장의 판매고를 수립했다. 그와 짐 스타인먼이 모두 존경해마지 않는 바그너(Wagner) 식의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요소들과 < 미녀와 야수 > < 엘리펀트 맨 > < 터미네이터 > 등의 영화에 기초한 싱글의 뮤직비디오 역시 화제를 불러 모았다. 후속 싱글 ‘Rock and roll dream come through’(13위), 긴 제목의 ‘Objects in the rear view mirror may appear closer than they are(백미러의 물체는 실제보다 가까이 보인다)’(38위)도 호응을 얻는 화려한 재기였다. 재기 여파를 타고 2년 뒤인 1995년에 다시 앨범 < Welcome To The Neighborhood >를 내놓았다. 여성 작곡가 다이안 워렌(Dianne Warren)이 쓴, 전작과 유사한 느낌을 준 록발라드 ‘I’d lie for you’(13위)로 저력을 발휘했지만 그것으로 다시 도래한 스타덤은 끝이었다. 2003년, 8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인 < Couldn’t Have Said It Better >을 내놓고 다시 한번의 영광을 꿈꾸었지만 세인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진 상태였다. 그는 1994년과 1996년 내한한 바 있다. < Discography > 1971 Stoney & Meat Loaf 1977 Bat out of Hell 1981 Dead Ringer 1985 Bad Attitude 1986 Blind Before I Stop 1987 Live 1993 Bat out of Hell II: Back Into Hell 1995 Welcome to the Neighborhood 2003 Couldn’t Have Said It Better
노래 : 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아폴로 11호가 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에 맞춰 공상 과학(SF)의 환상을 실은 ‘우주의 괴짜(Space oddity)’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는 불세출의 걸작 앨범 <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 >을 통해 남녀 일체의 파격을 선보이며 진보적인 록 뮤지션으로 떠올랐다. 그는 스스로 동성이자 초월자인 ‘지기’로 분해 무대의 시각적 충격을 강조했으며 현상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상화했다. 흔히 ‘자극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와 맞물린 이러한 퍼스낼리티 설정은 즉각 록의 새로운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그것이 ‘글램 록’ 또는 ‘글리터 록’이란 것이었다. 그는 가수가 노래하는 사람, 무대가 노래하는 장소라는 등식과 관념을 넘어섰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화장에 반짝거리는 의상을 하고 나와 무대에서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연기’를 했다. 그것은 자극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는 1972년 “지금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팬들이 지기의 이미지를 오용하여 반사회적인 폭력을 일삼게 되자 곧바로 지기의 탈을 벗어버렸다. 이 시점부터 그는 어느 것 하나에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다이아몬드의 개(Diamond dogs)’로 예언자가 되는 듯 하더니 ‘로우(Low)’에서는 은둔자로 변신했으며 나중에는 ‘야윈 백인공작(Thin white duke)’으로 탈바꿈했다. 음악도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하드한 기타록을 하다가 소울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전자 음악도 했고 심지어 디스코 댄스 음악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볼 때 그는 새로운 것에 과감히 가슴을 열어 끊임없는 혁신을 이룩한 음악인이었다. 데카당적인 틀은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예술적 보헤미안’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한 우물 파기’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그를 ‘뿌리 없는 실험 병자’로 ‘음악적 곡예사’로 배격했다. 그가 펼쳐 놓은 무수한 장르의 파편들과 끝없는 변신의 행적을 보면 카멜레온이요, 기회주의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과연 이같은 무차별 변신을 두둔해야 하는가. 그러나 록계에서는 그의 음악이 언제나 예측 불허였으며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30년간 록계에 몸담으면서 오로지 실험 정신으로 일관해 온 순례자로 떠받드는 것이다. 그는 1993년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한 것을 동료들과 비교할 때 나를 모험적인 작가로 생각한다. 난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체질적으로 싫다. 그래서 악평이 나오기도 한다... 난 스튜디오에 들어가 머릿속에 담은 구체화된 아이디어가 내 자신을 놀라게 하는지를 본다. 밖에서 누군가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지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곡을 쓴다.” 그의 곡예는 대중의 기호를 쫓은 상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성을 자극하는 것, 바로 그 점에 봉사했다. 즉 ‘예술적 동기’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형상화해 온 셈이다. 이처럼 록예술에 집착한, 그리고 진보적인 뮤지션의 음악은 대중의 폭넓은 사랑과는 대부분 무관하다. 음악적으로 볼 때도 곡조나 편곡에 있어서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두 곡이나 보유하고 있다. 예술의 개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가 때로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1위곡들인 ‘명성(Fame)’이나 ‘춤을 춥시다(Let’s dance)’는 그다지 호평을 받는 편이 아니다. 특히 디스코 리듬에 전자 댄스 음악적 요소가 전면화된 ‘춤을 춥시다’는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겨냥, 보위의 골수 팬들을 실망시켰다. 1977년 < 로우 >앨범 발표 당시 “되도록 이 앨범이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그를 전제할 때 그것은 명백한 일탈이었다. 그는 ‘춤을 춥시다’의 성공이 너무 거대했던지 이후 그 그림자에 가려 주류에서 급격히 멀어졌다. 줄기차게 앨범을 내놓았지만 상업적 성과도 내리막길을 달렸고 평자들의 호의도 식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그 자신도 그때의 성공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1995년 < 뉴욕 타임스 >지에 “‘춤을 춥시다’로 빅히트를 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난 대중적인 인기를 누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풍선껌 포장지와 같은 처지에 서게 된 느낌이었다.” 라고 술회했다(가끔 목격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구 록스타들은 반성도 참 잘한다!). 그는 이때 2년만에 이색적인 앨범 < 아웃사이드(Outside) >와 함께 컴백했다. 이색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편의 심리적인 추리소설을 사운드트랙화 했기 때문이다. ‘나단 애들러의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앨범은 기괴한 10대 소년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사립 탐정과 그 주변 용의자들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이 ‘예술적 추리 사건’의 진상은 1999년 발매될 마지막 앨범에서 규명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 < 아웃사이드 >앨범은 시리즈의 첫편인 셈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한 때 명콤비였던 걸출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시 손을 잡았다. 그것은 1980년대의 부끄러운 상업적 성공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비상업적’인 과거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즉흥성이 중시된 연주나 몽환적 부유(浮遊)의 분위기가 그것을 설명해 준다. 마치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당당함이 배어 있는 음반이다. 그는 인기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자세를 되찾음으로써 ‘영원한 로커’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록이란 게 원래 그런 음악이다.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1990년대의 가장 독보적인 싱어 송라이터이자 얼터너티브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폭발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안타깝께도 1997년 5월,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 음악계의 가장 비극적 사건이었다. 더욱이 단지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뒤였기에 그 슬픔은 더했다. 제프 ...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1990년대의 가장 독보적인 싱어 송라이터이자 얼터너티브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폭발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안타깝께도 1997년 5월,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 음악계의 가장 비극적 사건이었다. 더욱이 단지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뒤였기에 그 슬픔은 더했다. 제프 버클리는 1960년대 유명한 포크 뮤지션이었던 팀 버클리(Tim Buckley)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음악 공부를 위해 L.A로 이동한 뒤 레게 뮤지션이었던 샤인헤드(Shinehead)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내공을 쌓아나갔다. 이후 기타리스트 게리 루카스(Gary Lucas)와 결성했던 음악 공동체 가즈 앤 몬스터즈(Gods & Monsters)로 어느 정도 이름을 홍보하는데 성공했다. 밴드를 그만두고 결국 솔로로 전향한 제프 버클리는 1994년 데뷔작이자 생전 마지막 음반인 < Grace >를 발표했다. 앨범으로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예상했던 세간의 평들을 완전히 깨부순 그만의 싱어 송라이팅 스킬을 뽐내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동시대의 주류였던 그런지 사운드와는 완연히 다른 독특한 포크 록 소리샘이 돋보였다. 일종의 얼터너티브에 대한 얼터너티브였던 셈. 웅장하면서도 흐느끼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탁월한 작곡 능력, 백 밴드의 안정감 있는 연주가 만난 걸작이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흐르는 재지한 느낌은 앨범을 제목 그대로 ‘우아하게’ 만들어주었다. 메시지면에 있어서도 당시 얼터너티브의 염세적, 부정적인 정서가 아닌 ‘음악을 통한 사랑의 전파’라는 소신을 피력, 컬트 팬들을 세력권으로 집결시켰다. 이 후 2집 앨범을 준비하던 중에 떠난 미시시피 강으로의 여행에서 제프 버클리는 익사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데모상태로 존재했던 트랙들은 다행히도 사후 그의 어머니의 노력으로 1998년에 < Sketches (For My Sweetheart the Drunk) >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2집 역시도 1집에 버금가는 뛰어난 성과물이었으나 다만 ’그가 직접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그리고 2000년에는 제프 버클리의 첫 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인 < Mystery White Boy >(제프 버클리를 일컫는 듯한)가 나와 그를 못 잊는 팬들을 달래주었다. 1970년대에 시작된 ‘싱어 송라이터’라는 개념은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뮤지션을 지칭하는 의미를 지녔었다. 특히 그들은 1960년대의 ‘우리’의 입장이 아닌 철저히 ‘개인적인’ 감수성을 노래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바로 1960년대를 ‘we decade’, 1970년대를 ‘my(혹은me) decade’라 명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싱어 송라이터는 또한 ‘독보적인 음악 파일을 완성한’ 아티스트를 말할 때 쓰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1990년대에 제프 버클리만큼 자신만의 소리 메커니즘을 들려 준 아티스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도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말이다.
노래 : Steve Vai (스티브 바이)
''기타 혁신주의자'' 스티브 바이는 기타가 표현해낼 수 있는 모든 소리들을 현란한 테크닉과 다양한 이펙터 사용으로 재현해낸 인물이다. 그는 트레몰로(Tremolo)와 라이트 핸드(Right Hand) 주법을 트레이드마크로 최첨단 하이 테크닉을 구사했으며, 저음부가 추가된 7현 기타를 사용하여 음(音)의 기복을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또한 크라이 베이비 와와(Cry Baby Wah-Wah), 디지텍 왜미 페달... ''기타 혁신주의자'' 스티브 바이는 기타가 표현해낼 수 있는 모든 소리들을 현란한 테크닉과 다양한 이펙터 사용으로 재현해낸 인물이다. 그는 트레몰로(Tremolo)와 라이트 핸드(Right Hand) 주법을 트레이드마크로 최첨단 하이 테크닉을 구사했으며, 저음부가 추가된 7현 기타를 사용하여 음(音)의 기복을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또한 크라이 베이비 와와(Cry Baby Wah-Wah), 디지텍 왜미 페달(DigiTech Whammy Pedal), 딜레이(Delay) 등의 이펙터를 이용하여 인간의 음성, 동물 울음소리 등 기묘하고 재기 넘치는 효과음들을 곡의 적재 적소에 배치시켜 풍성한 기타 연주의 성찬을 일궈냈다. 이것은 분명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토니 매칼파인(Tony Macalpine) 등이 뽐내던 클래시컬 속주 기타와는 달랐다. 스티브 바이는 그들과는 반대로 기타의 형식미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변칙적인 박자전개, 스케일의 자유로운 변화 등을 강조했다. 장르의 범주 역시 과감히 탈피하여 메탈, 펑크(Funk), 블루스, 재즈, 클래식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바로 ''사고의 전환''이 그의 영원한 기타 테마였다. 1995년 앨범 < Alien Love Secrets >에서 드러나듯 매번 가상 현실을 기타 연주의 소재로 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때문에 그의 기타 음색은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이다. 1960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티브 바이는 13살 되던 해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의 첫 기타 스승은 당시 학교 친구였던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 바이는 새트리아니에게 1년 정도 기타를 배웠다고 한다. 둘의 우정은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다. 에릭 존슨(Eric Johnson)을 포함한 G3 투어가 그 예이다. 몇 년 뒤 버클리음대에 진학한 바이는 음악 이론과 채보를 정식으로 배우며 탄탄한 기본기를 완성했다. 스티브 바이는 1980년대 접어들면서 괴짜 기타리스트 프랭크 자파(Frank Zappa)의 밴드를 비롯해, 잉베이 맘스틴이 재직했던 알카트라즈(Alcatrazz), 밴 헤일런(Van Halen) 출신의 보컬리스트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 밴드,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이 이끄는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 등 명 그룹들에서 활동하며 ''용병'' 기타리스트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그의 빛나는 기타 테크닉이 이 당시에 차곡차곡 쌓여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스티브 바이는 1990년 작품 < Passion And Warfare >를 발표하며 화려한 솔로의 길로 들어섰다(이미 그는 1984년 솔로 데뷔작 < Flex-Able >을 내놓은바 있다). 이 앨범은 스티브 바이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며 기타 인스트루멘틀계에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기존 기타리스트들의 연주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사운드로 가득 찼다. 바로 1997년 2월 19일에 열린 내한 공연에서도 연주하여 국내 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명 연주곡 ''For the love of god''가 수록되어있는 음반이다. 그는 계속해서 1993년 < Sex & Religion >, 1995년 < Alien Love Secrets >, 1996년 < Fire Garden >, 1999년 < The Ultra Zone >를 발표하며 기타리스트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의 역량도 훌륭히 선보였다. 특히 1996년 앨범 < Fire Garden >은 스티브 바이 자신이 직접 보컬까지 담당하며 숨겨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어서 2000년에는 ''For the love of god'', ''Tender Surrender'' 등 기존의 곡들과 신곡 3곡이 추가된 편집 앨범 < The 7th Songs >를 내기도 했다.
락 기타 연주자, 보컬 락 기타 연주자, 보컬
밴드 : Judas Priest (주다스 프리스트)
헤비메탈 팬들에게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이름은 웅장한 성채와도 같다. 지난 30여 년 동안 발표했던 14장이라는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라이브 앨범 제외)는 그들의 커리어를 말해주는 증거다. 그들은 헤비메탈 사운드를 창시했고 헤비메탈을 융성하게 했으며 씬을 리드했다. 차갑게 내뱉는 금속성의 보컬과 예리한 트윈 기타 시스템은 헤비메탈의 원형(原形)이었으며 수많은 후배들의 모델이 되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단순히 NWOB... 헤비메탈 팬들에게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이름은 웅장한 성채와도 같다. 지난 30여 년 동안 발표했던 14장이라는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라이브 앨범 제외)는 그들의 커리어를 말해주는 증거다. 그들은 헤비메탈 사운드를 창시했고 헤비메탈을 융성하게 했으며 씬을 리드했다. 차갑게 내뱉는 금속성의 보컬과 예리한 트윈 기타 시스템은 헤비메탈의 원형(原形)이었으며 수많은 후배들의 모델이 되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단순히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에만 한정되는’어떤 밴드’가 아니었다. 그들의 영역은 스래시 메탈, 데스 메탈은 물론이고 멜로딕 메탈을 넘어 블랙 메탈에까지 뻗어있다. 그 거대한 영향력은 머시풀 페이트(Mercyful Fate), 앙그라(Angra), 오버킬(Overkill), 감마 레이(Gamma Ray), 테스타먼트(Testament), 크리에이터(Kreator)등 메탈 계의 중견 그룹들이 대거 참여한 헌정 앨범 < A Tribute To Judas Priest >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색슨(Saxon)과 함께 브리티시 헤비메탈의 명성을 만방에 떨쳤던 주다스 프리스트는 1971년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배출한 영국의 공업도시 버밍햄에서 결성됐다. 기타리스트 케이 케이 다우닝(K.K. Downing)과 베이시스트 이안 힐(Ian Hill)을 중심으로 닻을 올린 그룹은 곧 보컬리스트 앨런 앳킨스(Alan Atkins)와 드러머 존 엘리스(John Ellis)를 식구로 맞이하고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무대 위로 막 나아가려던 그룹은 잦은 멤버 교체의 진통으로 데뷔에 난항을 겪어야 했다. 몇 번의 시행 착오 끝에 그들은 그룹의 상징이 되는 롭 핼포드(Rob Halford)와 다우닝의 파트너 글렌 팁톤(Glenn Tipton)을 영입해 1974년 대망의 1집 < Rocka Rolla >를 내놓았다. 헤비메탈보다는 다분히 하드 록적인 성향을 띤 이 음반은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비범함을 알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의 이름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 앨범은 1976년 작 < Sad Wings Of Destiny >이다. 보다 강력해진 기타음과 서정적인 건반 연주가 공존하는 이 작품은 헤비메탈의 폭발력과 아트 록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음반으로 평가받으며 팬들에게 그룹을 깊게 각인시켰다. ’Epitaph’, ’Victim of changes’, ’The Ripper’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메이저 레이블 < CBS >와의 계약을 체결한 주다스 프리스트는 < Sin Afet Sin >과 < Stained Class >를 잇따라 발표해 호평 받으며 화려한 시기를 예고했다. 상승 기류를 탄 그룹을 정점으로 도약하게 만든 양대 앨범은 < Hell Bent For Leather > (영국에서는 < Killing Machine >이라는 제목으로 발매)와 < British Steel >로 특히 후자는 AC/DC의 < Back In Black >, 마이클 셍커 그룹(Michael Schenker Group)의 < Michael Schenker Group >과 함께 헤비메탈을 정의해 준 명반으로 손꼽힌다. 이후 창작력이 극대화된 그룹은 < Point Of Entry >, < Screaming For Vengeance >, < Defenders Of The Faith >등의 수작들을 양산해내며 황금기를 맞았다. ’Delivering the goods’, ’Before the dawn’, ’Breaking the law’, ’Metal gods’, ’Steeler’, ’Riding on the wind’,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Freewheel Burning’, ’The Sentinel’등 주다스 프리스트의 베스트 트랙들이 이 기간에 압축된다. 자국에서 뿐 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올리며 그칠 줄 몰랐던 그룹은 < Ram It Down > 발표 후 드러머 데이브 홀랜드(Dave Holland)가 탈퇴하면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레이서 엑스(Racer X) 출신의 테크니션 스코트 트래비스(Scott Travis)가 가세해 만든 작품 < Painkiller >를 공개하면서 다시 한 번 영광의 시간을 갖는다. 트래비스의 현란한 드러밍과 나이를 잊은 듯한 핼포드의 보컬이 진동하는 이 음반은 그룹 후반기의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Painkiller’, ’Metal meltdown’,’Night crawler’등이 애청되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주다스 프리스트는 모던 록의 대대적인 공세에 흔들리는 모습을 노출했다. 나날이 하락하는 인기는 멤버들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롭 핼포드는 그룹을 떠나 파이트(Fight)라는 새로운 팀을 결성했고, 이에 그룹은 실력파 보컬리스트 팀 ‘리퍼’ 오웬스(Tim ‘Ripper’ Owens)가 탑승한 7년만의 신보 < Jugulator >를 발표하며 우려를 얼마간 잠재웠다. 2001년 이들은 다시 < Demolition >을 공개해 열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핼포드의 복귀를 바라는 이들에게 오웬스가 자리를 굳혔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안겼지만, 한층 힘이 붙은 그의 보이스는 그룹 제 2의 전성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밴드 : Kansas (캔사스 (프로그레시브 락, 하드락 밴드))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록의 예술성에 대한 기치가 드높던 1970년대에 프로그레시브의 불모지 미국에서도 예술성을 향한 몸짓은 작지만 분명 존재했다. 불후의 발라드 곡 ‘Dust in the wind’로 기억되어지는 캔사스는 심포닉 록에 아메리칸 록의 역동성을 더하며 이른바 ‘아메리칸 프로그레시브 록’의 독자성을 확립한 그룹이다. 캔사스는 1970년 미국 캔사스 주의 토페카(Topeka)에서 고등학교 동창생이...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록의 예술성에 대한 기치가 드높던 1970년대에 프로그레시브의 불모지 미국에서도 예술성을 향한 몸짓은 작지만 분명 존재했다. 불후의 발라드 곡 ‘Dust in the wind’로 기억되어지는 캔사스는 심포닉 록에 아메리칸 록의 역동성을 더하며 이른바 ‘아메리칸 프로그레시브 록’의 독자성을 확립한 그룹이다. 캔사스는 1970년 미국 캔사스 주의 토페카(Topeka)에서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케리 리브그렌(Kerry Livgren, 기타, 키보드), 베이브 호프(Dave Hope, 베이스), 필 이허트(Phil Ehart, 드럼)에 의해 결성된 밴드. 다른 남부 록 밴드들이 서던 록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을 당시 이들이 추구한 음악은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1971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로비 스타인하트(Robby Steinhardt)를 바이올린 주자로 영입하면서 미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했던 것이다. 로비를 영입하면서 잠시 밴드 이름을 ‘화이트 클로버(White Clover)’로 바꾸기도 했던 이들은 1972년 스티브 월쉬(Steve Walsh, 보컬, 키보드), 리차드 윌리엄스(Richard Wiliams, 기타)를 연이어 맞이하며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기본 틀을 완성하고 다시 캔사스를 이름으로 내걸었다. 클럽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이들은 1974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 Kansas >를 발표했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이들의 음악은 미국 대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너무나 생소한 사운드였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영국 밴드들의 전유물이라는 뿌리깊은 생각이 미국적인 사운드와 프로그레시브를 결합하며 나름대로 독자적인 음악성을 만들어 나간 캔사스에게 딴지를 걸고 넘어 졌다. 같은 해 발표한 < Song For America >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캔사스는 1970년대 중반 핑크 플로이드를 위시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위풍당당이 진행되면서 그 흐름에 전격 편입했다. 1975년 음반 < Masque >는 수록곡인 ‘Icarus borne on wings of steel’이 심오한 가사와 함께 주목을 받으며 20만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했고, 이에 힘입어 전작 < Song For America > 역시 골드를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 번 불붙은 상승세는 1976년 블록버스트 앨범 < Leftoverture >로 이어지며 캔사스를 세계적인 밴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수록곡 ‘Carry on wayward son’이 차트 5위 권 진입에 성공했으며, 앨범은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미국적 프로그레시브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캔사스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영국 밴드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부기(Boogie)를 프로그레시브에 도입했다는 것 외에도, 이들이 표현하는 대상, 서정성, 서사적인 전개는 이들만의 특화된 강점이었다. 미국 남부 특유의 심오한 가사를 다루면서도 현실을 벗어나지 않았고, 심포닉 록을 구사했지만 동시에 미국 록이 가진 역동성과 파워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캔사스는 아트 록 매니아들로부터 부정적인 평을 듣기도 하지만 이 점 때문에 먼저 이 분야를 개척한 영국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밴드는 성공의 여세를 몰아 1977년에는 음반 < Point of Know Return >을 선보였다. 지구 끝에 매달린 범선을 그리고 있는 앨범 재킷으로도 유명한 이 앨범은‘Dust in the wind’ 덕분에 국내 팬들에게서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앨범이다. 자신들의 음악적 형태와 일치하는 곡은 아니지만 발라드 넘버 ‘Dust in the wind’는 캔사스의 대표곡이 되었고, 이 곡의 카리스마 덕분에 이들이 프로그레시브 밴드임을 모르는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Dust in the wind’가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들의 정체성은 여전히 프로그레시브 록에 있었고, 1979년 밴드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 Monolith >를 톱 텐에 올리며 화려하게 미 디케이드(Me- Decade)를 마감했다. 하지만 1980년 작품 < Audio-Visions > 이후 캔사스의 행보는 뿌연 안개 정국 속으로 휘말렸다. 데이브 호프와 케리 립그렌이 종교적인 문제로 멤버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그룹의 상업적 성공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스티브 월시는 탈퇴해 ‘스트리트(Street)’라는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는 등 팀의 내분 사태는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존 엘르판테(John Elefante, 보컬)로 스티브의 빈자리를 채우며 1982년 < Vinyl Confessions >, 1983년 < Drastic Measures >를 발표하지만 밴드는 결국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해체 3년 후 캔사스는 필 이허트, 리차드 윌리엄스, 스티브 월시 세 명의 오리지널 멤버에 의해 부활했다. 이후 스티브 모스(Steve Morse, 기타), 빌리 그리어(Billy Greer, 베이스) 두 명의 멤버를 보강하여 오 인조 라인업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심포닉 록보다는 하드 록적인 면을 살리며 1986년 < Power >를 통해 재기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나 < Power >가 잠시 주목을 끌었을 뿐 < In the Spirit of the Things >(88), < Freaks of Nature >(95), < Always Never the Same >(98)로 이어지는 음반 모두 신통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앨범의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 꾸준한 활동을 보여온 이들은 2001년에 1980년도 작품 < Audio-Visions > 이후 20년 만에 오리지널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 Somewhere To Elsewhere >를 발표했다. 음반에는 대 그룹의 부활을 알리듯 1975년 자신들의 히트곡 ‘Icarus…’의 속편 격인 ‘Icarus II’가 수록되어 있으며, 전성기에 가졌던 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다.
하드 락, 글램 메탈 밴드 하드 락, 글램 메탈 밴드
밴드 : Electric Light Orchestra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
1960년대의 패러다임이었던 반(反)문화(counterculture), 히피(hippie) 혁명이 현실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판명 나자, 1970년대 록의 전반적인 지형도는 큰 변화의 폭을 그렸다. 일명 ’We dacade’에서 ’Me dacade’로의 이동이었다. ’1970년대 들어 반문화적인 주장들이 그 힘을 잃고 일종의 판매기법으로 전락하자 록 걸작들의 특별한 지위는 점차 공동체의 견지가 아닌 개인적 예술의 ... 1960년대의 패러다임이었던 반(反)문화(counterculture), 히피(hippie) 혁명이 현실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판명 나자, 1970년대 록의 전반적인 지형도는 큰 변화의 폭을 그렸다. 일명 ’We dacade’에서 ’Me dacade’로의 이동이었다. ’1970년대 들어 반문화적인 주장들이 그 힘을 잃고 일종의 판매기법으로 전락하자 록 걸작들의 특별한 지위는 점차 공동체의 견지가 아닌 개인적 예술의 견지에서 설명되기 시작했다.’ 라는 평론가 사이먼 프리스의 주장이 이를 잘 말해준다. 자연스레 뒤따른 것은 ’장르의 세분화’였다. 특히 록 신에서는 하드 록 혹은 헤비메탈의 급격한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1960년대 말부터 꽃을 피웠던 하드 록 사운드가 젊은 혈기의 대변자임을 자청, 록의 메인 장르로 우뚝 올라섰던 것. 바로 수많은 밴드들이 자웅을 겨뤘던 록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개막이었다. 그 중에서도 딥 퍼플은 ’소리의 볼륨’에 있어서 절대 강자였다. 1968년 영국 허트포드(Hertford)에서 결성된 이 하드 록 제왕은 한때 기네스 북 공인의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룹’임을 뽐낼 만큼 열혈 헤드뱅어들을 휘하로 집결시켰다. 비록 월드 마케팅에서는 레드 제플린에 비해 뒤졌지만 적어도 국내와 일본에서만큼은 그들이 인기 넘버원이었다. 일례로 밴드의 시그니처 송이자 딥 퍼플이 오프닝을 섰던 스위스 몬트뢰 빌딩에서의 프랭크 자파 공연 당시의 화재를 보며 작곡한 ’Smoke on the water’는 록을 알기 위한 통과의례로 변함 없이 극빈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딥 퍼플은 기수로 구분될 만큼 잦은 멤버 교체로 유명했는데 명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격이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독선이 그 주된 이유였다. 최초 그룹은 존 로드, 닉 심퍼, 리치 블랙모어, 로드 에반스, 이언 페이스의 라인업으로 출항의 닻을 올렸다. 허나 처녀작 < Shades of Deep Purple >(1968), 소포모어 음반 < Deep Purple >(1969), 3집 < The Book of Taliesyn >(1969) 등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듯 그들만의 캐릭터가 명확히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수록곡 대부분이 조 사우스(Joe South)의 ’Hush’(빌보드 4위)와 ’Hey Joe’,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Kentucky woman’(38위), 비틀즈의 ’Exposition/We can make it out’, 팝 클래식 ’River deep-Mountain high’(53위) 등, 리메이크로 채워져 있다는 데서 잘 파악된다. ’April’과 ’Anthem’ 등, 존 로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클래시컬한 넘버들 역시 별다른 피드백 효과를 얻지 못했다. 같은 해 로드 에반스와 닉 심퍼가 팀을 등지고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새로이 투입되면서 딥 퍼플의 황금 시대가 비로소 개막되었다. 권력의 축이 존 로드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로 옮겨간 것 또한 이 즈음이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진두지휘 아래 그룹은 막강한 하드 록 사운드를 내뿜기 시작했다. 존 로드 작곡의 ’Concerto Group and Orchestra’를 기초로 완성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작 < Concerto Group and Orchestra >(1969) 이후에 발표한 일련의 앨범들이 이를 잘 대변한다. ’Child in time’, ’Speed king’ 등이 사랑 받았던 1970년의 < Deep Purple in Rock >, ’Strange kind of woman’, ’Black night’(66위) 등이 히트했던 빌보드 앨범 차트 32위의 < Fireball >(1971), 불멸의 명곡 ’Smoke on the water’(4위)와 ’Highway star’를 담고있는 1972년의 마스터피스 < Machine Head >(7위) 등이 그것들이다. 실황 작품인 < Made In Japan >(6위, 1972)은 각종 라이브 명반 선정에 빠지지 않고 등재될 만큼 동종(同種) 품목 중 발군임을 뽐냈다. 허나 1973년의 < Who Do You Think We Are >를 끝으로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탈퇴하면서 2기는 막을 고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맞이하며 시작점을 찍은 3기 역시 찬란한 성과를 이어나갔다. 숨겨진 보석 ’Burn’이 수록된 동명 타이틀의 < Burn >(9위, 1974), 같은 해의 < Stormbringer >(20위)등이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던 것. 곡들 중, 후자에 실린 ’Soldier of fortune’은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여러 발라드 선곡집에 현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골든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곧바로 리치 블랙모어가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 밴드를 떠남으로써 딥 퍼플은 좌초의 위기에 몰렸지만, 천재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Tommy Bolin, 1976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이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었다. 그의 음악적 취향이 적극 반영된 재즈풍의 음반 < Come Taste The Band >가 이 시기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헤비 메탈 지향성과 삐걱 화음을 자아내면서 딥 퍼플은 1976년 영국 투어를 끝마친 후 휴지기에 들어갔다. 밴드가 끊임없는 재 결합설에 부응하며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편 때는 1984년.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언 길런, 로저 글로버, 이언 페이스의 드림 팀으로 구성된 그들은 < Perfect Stranger >(1984), < The House of Blue Light >(1987) 등을 내놓으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의 갈등으로 이언 길런 대신 조 린 터너를 보컬로 기용했던 < Slaves and Masters >(1990)를 기점으로 그룹의 인기 곡선은 완연한 하향세를 그렸다. 이언 길런을 재 수혈해 녹음했던 < The Battle Rages On >(1992)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견디지 못한 리치 블랙모어가 또 다시 굿바이를 선언, 밴드는 결국 타이타닉 호의 운명을 걷는 듯 보였다. 그러나 컨트리 록 기타의 달인 스티브 모스를 후임으로 낙점하면서 그룹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나갔다. 통산 16집인 1996년작 < Purpendicular >, 17집인 < Abandon > 등으로 호평 받았던 딥 퍼플은 국내에서 가졌던 몇 차례의 공연을 포함, 지금도 여러 곳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1993년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에서 결성된 5인조 하드코어 밴드 콘의 보컬리스트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는 말한다. “우리는 희망 없는 세대다. 그래서 공격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들이 음악계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콘이 말하는 희망 없는 세대는 ‘십대''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 소녀들의 전통적인 사랑타령을 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상처를 받고 자란 소년의 이야기를... 1993년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에서 결성된 5인조 하드코어 밴드 콘의 보컬리스트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는 말한다. “우리는 희망 없는 세대다. 그래서 공격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들이 음악계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콘이 말하는 희망 없는 세대는 ‘십대''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 소녀들의 전통적인 사랑타령을 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상처를 받고 자란 소년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때문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조해온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과는 기본적인 지향점이 다르다. “이 곡은 내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로부터 주눅이 들어있는 녀석, 괴상한 녀석 등으로 놀림을 당했던 이야기이다." “이 곡은 내가 학교에서 만나 친구라고 생각했으나 날 망쳐놨던 한 녀석에 대한 내용이다." 1994년 데뷔앨범 < Korn >과 1996년의 2집 < Life Is Peachy >의 수록곡 ‘Faget’, ‘Good god’에 대한 조나단의 설명이다. 단절 속에 뒤틀려 버린 한 인간의 절규이다. 바로 그룹의 프론트 맨 조나단 데이비스의 자서전이다. 우울했던 십대 시절의 삶을 노랫말을 통해 표출한 것이다. 조나단의 분노는 가사로 그치지 않는다. 다시 목소리를 통해 재현된다. 그의 보컬은 이중적이다. 슬픔에 찬 듯 흐느끼다가 갑자기 우렁찬 그로울링으로 급 반전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감정의 굴곡이 심한 ‘연기''를 한다. 탁월한 보컬 연출자이다. 데뷔작의 ‘Ball tongue’와 1999년에 발표한 앨범 < Issues >의 ‘Make me bad’에서 염세주의로 가득 찬 그의 보컬은 압권이다. 조나단 데이비스의 보컬은 콘이 있기에 빛을 발한다. 사실 그는 뛰어난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기교는 좋지만 힘껏 밀어붙이는 강력한 파워는 부족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멀티컬쳐군(群)의 수혜자임을 증명하듯 콘의 잡종 사운드는 데이비스의 보컬이 제값을 하도록 만들었다. 제임스 ‘멍키'' 샤퍼(James ‘Munky'' Schaffer)와 브라이언 ‘헤드'' 웰치(Brian ‘Head'' Welch)의 트윈기타 연주는 콘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들은 기타리스트들이 널리 애용하지 않는 7현기타를 주무기로 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코드웍과 음색을 선보였다. 나아가 그들이 시도한 저음 튜닝은 둔탁한 저음과 날카로운 고음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그들만의 음악색깔을 만들어냈다. 레지널드 ''필디'' 아비주(Reginald ''Fieldy'' Arvizu)의 5현 베이스와 데이빗 실베리아(David Silveria)의 드럼 역시 리드미컬하면서도 굉음을 내는 개성강한 리듬파트를 이루고 있다. 데뷔작의 ‘Blind’와 2집 앨범의 ‘Chi’ 등에서 잘 나타난다. 하지만 콘은 자신들의 사운드를 정형화시키지 않았다. 큰 틀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1998년의 3집 앨범 < Follow The Leader >가 대표적이다. 아이스 큐브,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가 참여한 이 앨범은 전작들보다 음산하고 광기가 서린 사운드를 선사했다. 다면적이던 조나단의 보컬은 데스메탈의 거친 울음소리로 변했고 기타사운드도 보다 헤비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팬들의 귀를 단숨에 파고들 정도로 힙합 색채가 강한 멜로디 라인이었다. 프레드 더스트가 래퍼로 참여한 ‘All in the family’에서 그들의 변신을 실감할 수 있다. 콘이 발표하는 앨범마다 성공을 거듭하며 거물급 밴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는 ‘공연''에 있었다. 그들은 소위 뜨는 곡과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를 배제했다. 오직 꾸준한 공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 나갔다. 데뷔 초 공연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는 에픽 산하 레이블인 이모틀(Immortal)과 앨범 계약을 체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데뷔앨범은 발표당시에는 신통치 않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2년 남짓한 투어를 통해 팬들과 꾸준한 교감을 나누었다. 그 결과 70만장이라는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그만큼 성실했다. 몸을 던져 성실했다. 팬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다니는 서비스를 행한 것이다. 최근작 < Issues >를 발표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콘의 인터넷 공연사이트에는 유럽과 미국의 투어 스케줄이 빽빽이 잡혀있다. 얼마 전 드러머 데이빗 실베리아가 팔목 부상을 당해 공연에 큰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그들은 팬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페이스 노 모어와 오지 오스본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마이크 보딘(Mike Bordin)을 긴급 수혈하여 콘서트를 감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양성은 방치하면 잡거성(雜居性)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협동성과 결합하면 풍요로움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모두 좋은 친구 사이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다. 만약 우리가 돈이나 명예를 위해 만났다면 지금까지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콘의 음악적 아이콘은 힙합, 메탈, 고딕, 펑크(Funk) 등 다양하다. 그들은 여기에 협동성을 불어넣어 풍성하고 꽉 짜인 음악자산으로 만들어냈다. 이것을 기반으로 콘은 현실의 왜곡된 시선에 반항하고 그 반항 속에 잠재된 참모습을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십대였다. 대중과의 막힌 벽을 허물기 위한 그들만의 소통방식인 것이다.
밴드 : Manic Street Preachers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매닉스],The Manics)
1991년 영국 웨일스(Wales)에서 결성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이하 매닉스)는 근래에 보기 힘든 음악계의 이단아들이다.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같은 펑크 그룹들의 직계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데뷔 초 ‘막시스트’라 불릴 정도의 과격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에게 미제국주의는 응당 ‘베어버리고, 불태워야 할’ 것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영국왕실 역시 극도의 혐오대... 1991년 영국 웨일스(Wales)에서 결성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이하 매닉스)는 근래에 보기 힘든 음악계의 이단아들이다.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같은 펑크 그룹들의 직계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데뷔 초 ‘막시스트’라 불릴 정도의 과격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에게 미제국주의는 응당 ‘베어버리고, 불태워야 할’ 것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영국왕실 역시 극도의 혐오대상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메시지들은 초강력 펑크 사운드에 실려 이들의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하지만 이들의 강성 이미지와는 달리 감성적인 멜로디라인을 지닌 이들의 음악은 팝 팬들마저도 흡수시킬 수 있었다. 작사를 전담한 기타리스트 리치 제임스(Richey James), 보컬 겸 기타리스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James Dean Bradfield), 드러머 션 무어(Sean Moore), 베이스 주자 니키 와이어(Nicky Wire), 이 4인조로 매닉스는 출발했다. 이들이 처음 활동하던 무렵 영국에는 ‘24시간 신나게 놀자’는 애시드 하우스와 신발만 바라보고 연주하는 ‘슈게이징’이 붐을 타고 있었고, 브릿팝 진영이 막 태동하고 있었다. 매닉스는 그러나 그러한 경향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리얼리즘’이라는 절대적 사명감을 표방하고 나섰다. 당시 만연했던 자포자기 식의 향락주의나 소극적 사운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힘을 발휘하는 ‘강하고 적극적인 음악’을 설파한 것이다. 글램 록을 연상시키는 진한 메이크업을 한 외모로도 유명했던 이들은 한때 이들의 음악이 가짜, 즉 창조성이 결여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단지 선배들의 고전을 무작정 추종하기만 한다는 ‘오리지널리티’의 문제였다. 1991년 영국 록 잡지 < NME > 기자에게 그 같은 질문을 받은 기타리스트 리치 제임스는 즉석에서 그렇지 않음을 보여줬다. 답변으로 그는 말없이 칼로 팔에 ‘4 REAL(우린 진짜다)’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 무시무시한 자해소동으로 그러한 의심은 어느 정도 불식되었으며 매닉스의 ‘광적인’ 면모는 더욱 부각되었다. 1992년 데뷔앨범 < Generation Terrorists >을 발표하며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진지한 설교를 전도해나가기 시작했다. 2집 < Gold Against The Soul >과 3집 < The Holy Bible >에 이르면서 이들의 무정부주의적 좌파 성향은 극에 달했다. 한편 극심한 신경쇠약 증세로 요양과 투어를 병행하던 ‘문제의’ 리치 제임스는 3집 발매 전날 런던의 호텔을 떠나 실종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리치의 부재로 3인조가 된 매닉스는 친구 잃은 슬픔으로 과격함을 잠시 접고 내면으로 침잠했다. 1995년 출시된 4집 < Everything Must Go >는 전작들에서 보인 투박하고 거친 사운드와 정치적 태도 등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주류 브릿팝 사운드로 화해를 시도한 걸작앨범이다. ‘모든 것은 사라져야만 한다’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내건 이 앨범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매닉스는 일약 영국음악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년 뒤 발표된 5집 < This Is My True Tell Me Yours > 역시 이들의 진지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며, 1999년 말에 초창기의 강성 모습이 담긴 싱글 ‘The masses against the class’가 발표되었다. 2001년 3월에는 역시 데뷔 초의 ‘열혈 펑크 순수주의자’로 되돌아간 여섯 번째 앨범 < Know Your Enemy >가 발표되었다. 매닉스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사운드로 좌파적 메시지를 더욱 각인시켰다. 자주 들리는 이들의 반복구는 무모할 정도다. 이러한 이들의 단순함은 같은 영국그룹 라디오헤드의 복잡함과 흥미로운 비교거리다. 라디오헤드의 분열적 변종 미학과 매닉스의 단순 명료함은 분명 서로 ‘극과 극’이다. 음악적 지향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할까. 이 두 밴드는 위력을 잃고 있는 현 영국 음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누구보다도 독보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쿠바의 아바나에서 공연한 이들은 쿠바에서 공연한 최초의 록 그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북한과 더불어 사회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쿠바도 매닉스의 혁명성을 인정한 셈이다. 앞으로도 그 같은 정치적 메시지는 이들의 존재가치로 의미를 더할 전망이다.
밴드 : Fleetwood Mac (플리트우드 맥)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은 이글스(The Eagles), 비지스(Bee Gees)와 더불어 70년대 후반 음반 시장의 산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밴드이다. 1977년작 < Rumours >는 70년대 단일 뮤지션 최다판매 앨범의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1967년 영국에서 결성된 플리트우드 맥은 1970년대 후반 ‘팝화된 록’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실상 음악적 시작은 블루...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은 이글스(The Eagles), 비지스(Bee Gees)와 더불어 70년대 후반 음반 시장의 산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밴드이다. 1977년작 < Rumours >는 70년대 단일 뮤지션 최다판매 앨범의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1967년 영국에서 결성된 플리트우드 맥은 1970년대 후반 ‘팝화된 록’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실상 음악적 시작은 블루스였다.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 출신의 두 아티스트 피터 그린(Peter Green, 기타), 믹 플리트우드(Mick Fleetwood, 드럼)가 제레미 스펜서(Jeremy Spencer, 세컨기타), 존 맥비(John McVie, 베이스)를 영입하여 출발했다. 밴드는 1968년 < Peter Green’s Fleetwood Mac >을 발표하여 영국차트 5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리듬 부분이 약하다는 판단 하에 세 번째 기타리스트로 대니 커완(Danny Kirwan)을 끌어들여 이후 그의 뛰어난 작곡에 힘입어 성공 행진에 가속을 더한다. 1960년대 말 블루스 붐을 타고 많은 싱글들이 영국차트 10위 권내에 진입했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거침없는 인기가도를 질주한다. 하지만 밴드는 잦은 멤버 교체로 블루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차츰 상실해갔고 게다가 1970년 그룹의 간판인 피터 그린(Peter Green)이 그룹을 떠났고, 그린의 후임으로 크리스틴 퍼펙트(Christine Perfect)를 맞아들여 < Kiln House >를 발표하지만 곧 제레미 스펜서마저 밴드를 떠난다. 새 멤버 밥 웰치(Bob Welch)를 받아들인 후 음악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후에 있을 대성공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들은 블루스 음악에서 벗어나 선율을 보강한 팝 성향의 앨범을 연이어 발표한다. < Future Games >와 < Bare Trees >는 이전 블루스에 익숙해 있던 영국 팬들을 혼란 속에 빠지게 했지만 미국시장에서 선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크리스틴 퍼펙트(존 맥비와 결혼하여 이후 Christine McVie로 활동한다.), 밥 웰치, 존 맥비, 믹 플리트우드의 라인업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다시 한 번 멤버 교체를 겪는다. 웰치 대신 듀오로 활동하던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을 맞아 들인 것이다. 바로 이 5명이 거대한 성공을 창출한 플리우드 맥 전성기의 주역들이다. 1975년 겨울 미국차트를 장식한 앨범 < Fleetwood Mac >은 500만장이 팔려나가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첫 싱글 ‘Over my head(20위)’에 이어 ‘Rhiannon(will you ever win)’과 ‘Say you love me’는 모두 11위에 올라 확실하게 성공의 발판을 다진다. 그리고 1977년 그 유명한 < Rumours >를 발표한다. 앨범은 2,500만장이 팔려나가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가 나오기 전까지 한 아티스트의 앨범으로서는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Go your own way(10위)’에 이어 ‘Dreams(1위)’, ‘Don’t stop(3위)’, ‘You make loving fun(8위)’ 등 싱글 넷이 모조리 톱10을 차지하는 괴력을 발한다. 싱글과는 별도로 ‘Songbird’와 ‘The chains’도 널리 애청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상의 자리에 오른 순간에 그룹의 결속력은 눈에 띄게 후퇴했다. 부부였던 존 맥비(John McVie)와 크리스틴 맥비(Christine McVie)는 파경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연인 사이었던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 역시 애정에 금이 가 있었다. 결국 파경 관련 루머는 사실이 되어 맥비 부부는 이혼하고 스티브와 린지도 갈라서고 만다. 하지만 이런 좋지 않은 결속력으로도 이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 Tusk >(79년), < Mirage >(82년), < Tango In The Night >(87년)에 이르는 히트를 일구어내며 ‘헤쳐 모여’로 성공하는 아이러니를 이어갔다(결속력이 약하다고 음악이 약하지는 않은 법!). 이 시절에도 < Mirage >의 ‘Gypsy(12위)’나 < Tango In The Night >의 ‘Big love(5위)’와 ‘Little lies(4위)’처럼 록이든 발라드 풍이든, 밝은 듯 우울한 이들의 독특한 매력의 곡들은 국내에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음악적 특성은 기타 톤에서 잘 드러난다. 맑은 톤에 울림을 주어 고음에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유지한다. 바로 이 점이 플리트우드 맥 음악이 록에 대한 거부감을 뚫고 대중을 스며들 수 있었던 주인(主因)으로 분석된다. 1988년 새로운 멤버들로 짜여진 플리트우드 맥은 1990년대 중반까지 라이브 활동으로 일관했고 1997년 < Rumours > 발매 20주년을 맞아 성공의 주역들이 다시 모여 < The Dance >를 발표, 5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밴드 : Journey (저니 (락 밴드))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저니는 1980년대 초, 중반을 강타했던 록 그룹이다. 하드록, 재즈록 밴드로 출발했던 저니는 미성의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면서 팀컬러를 팝 록으로 완전히 전환한다.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운 것이어서 그 변화가 처음으로 나타난 앨범인 < Evolution >부터 이들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우는 ...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저니는 1980년대 초, 중반을 강타했던 록 그룹이다. 하드록, 재즈록 밴드로 출발했던 저니는 미성의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면서 팀컬러를 팝 록으로 완전히 전환한다.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운 것이어서 그 변화가 처음으로 나타난 앨범인 < Evolution >부터 이들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우는 빅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멤버들의 역량이 집대성된 1981년작 < Escape >는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하며 저니의 명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이 음반에서만 ‘Open arms’(후에 머라이어 캐리가 리메이크),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등 톱 텐 싱글이 3개가 쏟아졌다. 이들은 곧 동시대의 포리너(Foreigner), REO 스피드웨건(REO Speedwagon)등과 함께 성인 취향의 록(AOR)과 발라드를 가장 잘 만드는 팀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처럼 세계인들을 열광시키며 연이은 히트 퍼레이드를 벌인 저니는 라틴 록의 거장 산타나(Santana)에서 활약하던 두 청년 닐 숀(Neal Schon)과 그렉 롤리(Greg Rolie)가 손을 잡으면서 출범했다. 여러 뮤지션들을 영입해 록 밴드의 모양을 갖춘 저니는 곧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며 단번에 씬의 실력파 그룹으로 각광받았다. 달콤한 멜로디보다 청자의 예측을 거부하는 굴곡이 심한 리듬과 재기 발랄한 솔로 파트를 강조한 저니의 초창기 작품들은 다분히 매니아 취향이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마음 편하게 다가서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데뷔작 < Journey >에서 < Look Into The Future >, < Next >에 이르는 일련의 앨범들은 다소 거칠지만 록의 원시적 매력으로 똘똘 뭉친 곡들로 넘쳐 났다. 저니의 중, 후반기 사운드는 아련한 키보드를 축으로 선율미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가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어필한 시기였다. 기-승-전-결의 구도를 가지고 점층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극적인 구성이 밴드의 상징처럼 굳어졌다. 고혹적이고도 애절한 보이스를 지닌 스티브 페리는 그 구성에 꼭 맞는 보컬리스트였고 완벽한 시스템을 장비한 밴드는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싱글 ‘Wheel in the sky’가 수록된 앨범 < Infinity >는 첫 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어 < Evolution >부터 < Frontiers >에 이르는 멈추지 않는 성공가도가 열리게 되었다. 저니의 포근한 록은 여러 세대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그들의 이름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샘솟던 그들의 창작력도 이후 둔화되기 시작했고, 멤버들의 빈번한 과외 활동까지 겹치면서 저니는 결국 1986년 < Raised On Radio >를 마지막으로 해체를 맞이하게 됐다. 해산 이후 밴드 사운드의 핵이였던 닐 숀은 배드 잉글리시(Bad English)를 결성해 ‘When I see you smile’, ‘Price of love’라는 히트 싱글들을 제조해 냈고, 드러머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는 자신의 전공인 재즈로 돌아갔다. 싱어 스티브 페리 역시 앨범들을 발표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캐리어를 다져 나갔다.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각자 개인 플레이에 열심이던 멤버들은 정확히 해체 10년이 되는 1996년 < Trial By Fire >로 다시 뭉쳤고, 차트에서도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두 스티브는 결국 투어 도중에 이별을 선언했고, 새롭게 정비된 저니는 2001년 통산 11번째 음반 < Arrival >을 내놓으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저니는 팝 전성시대의 화사함 속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던 그룹이다. 록에 이유모를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마저도 살며시 보듬어 안았던 이 매력적인 밴드는 앞으로도 ‘편안한 록’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아직 남아 있을 팬들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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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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