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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Morrison -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 벤 모리슨 듀엣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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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Van Morrison -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 벤 모리슨 듀엣 모음집

Van Morrison, Taj Mahal, Michael Buble, Mark Knopfler, Chris Farlowe 노래 외 1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RCA | 2015년 03월 2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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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Morrison -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 벤 모리슨 듀엣 모음집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5년 03월 25일
제조국 미국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CD
  • 01 Some Peace Of Mind - Bobby Womack 바비 워맥
  • 02 If I Ever Needed Someone - Mavis Staples 메이비스 스테이플스
  • 03 Higher Than The World - George Benson 조지 벤슨
  • 04 Wild Honey - Joss Stone 조스 스톤
  • 05 Whatever Happened to P.J. Proby - P.J. Proby 피제이 프로비
  • 06 Carrying A Torch - Clare Teal 클레어 틸
  • 07 The Eternal Kansas City - Gregory Porter 그레고리 포터
  • 08 Streets of Arklow - Mick Hucknall 믹 헉널
  • 09 These Are The Days - Natalie Cole 나탈리 콜
  • 10 Get On With The Show - Georgie Fame 조지 페임
  • 11 Rough God Goes Riding - Shana Morrison 샤나 모리슨
  • 12 Fire In The Belly - Steve Winwood 스티브 윈우드
  • 13 Born To Sing - Chris Farlowe 크리스 팔로위
  • 14 Irish Heartbeat - Mark Knopfler 마크 노플러
  • 15 Real Real Gone - Michael Buble 마이클 부블레
  • 16 How Can A Poor Boy? - Taj Mahal 타지 마할

아티스트 소개 (17명)

노래 : Van Morrison (밴 모리슨,George Ivan Morrison)
3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거의 매년 앨범을 발표하는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고 외로운 음악항해를 펼치며 독보적 음악 소우주를 구축한 록 음악계의 거장이다. 비록 인기차트를 주름잡은 바 없었지만 ‘아일랜드 음악의 대부’라는 명성과 함께 모든 아일랜드 출신 음악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떠받들어지며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엘비스 코스텔로 등 당대와 후대를 막론한 무수한 아... 3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거의 매년 앨범을 발표하는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고 외로운 음악항해를 펼치며 독보적 음악 소우주를 구축한 록 음악계의 거장이다. 비록 인기차트를 주름잡은 바 없었지만 ‘아일랜드 음악의 대부’라는 명성과 함께 모든 아일랜드 출신 음악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떠받들어지며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엘비스 코스텔로 등 당대와 후대를 막론한 무수한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헌정앨범이 드물던 시절인 1992년에 누구보다 먼저 트리뷰트 앨범이 바쳐질 정도였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Jim Morrison)도 밴의 무대행위를 모방한 것은 물론, 그의 명곡 ‘Gloria’를 라이브 레퍼토리로 채택했으며 ‘Have I told you lately’(로드 스튜어트) ‘Wild night’(존 멜렌캠프와 미셀 엔드제오첼로) ‘Jackie Wilson said’(덱시스 미드나이트 러너스) ‘Carrying a torch’(톰 존스) ‘Crazy love’(브라이언 맥나이트, 애론 네빌) 등 많은 곡들이 리메이크 히트된 것도 그의 드높은 음악성을 방증한다. 1945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조지 이반 모리슨(George Ivan Morrison)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재즈, 블루스 음반 수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음악을 접한다. 10대의 나이에 그룹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3년 자신이 주도한 브리티스 인베이전시기의 주요 그룹 가운데 하나인 뎀(Them)에서 보컬, 색소폰, 하모니카를 맡으며 홀연히 비상한다. 뎀은 아일랜드 출신으로는 이색적으로 미국음악인 R&B와 블루스를 연주하며 1965년 ‘Baby please don’t go’와 ‘Here comes the night’을 히트차트에 올려놓으며 명성을 얻는다. 1967년 밴 모리슨은 밴드를 떠나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밴드 활동을 통해 지명도를 확보한 그는 솔로앨범 < Blowin’ Your Mind >에서 ‘Brown eyed girl’(영화 < 적과의 동침 >에 삽입되어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곡이다)을 전미차트 10위에 올리며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이듬해 미국의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꿈꾸어왔던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기념비적인 앨범 < Astral Weeks >를 발표한다. 1968년 발표된 이 앨범은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30만장이 채 팔리지 않은 형편없는 실적을 거두었지만 지금도 록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명반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고있다. < Astral Weeks >는 60년대 후반의 히피즘 속에서 내면 탐구에 몰두했으며 이데올로기의 난립 속에서 예술 그 자체에 주목한 탁이(卓異)한 앨범으로 유명한 재즈 세션 맨들과의 연주로 이틀만에 완성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녹음실에서 혼자 소화해 낸 그의 녹음 과정과 앨범에 담긴 모습은 록음악에서 표현된 최초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대중에게 외면당한 전작과 달리 1970년에 발표된 < Moondance >는 싱글 ‘Come running’과 ‘Into the mystic’, ‘Moondance’, ‘Crazy love’가 애청되면서 그에게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었다. 재즈, 블루스, 소울, R&B, 클래식 등 다양한 스타일을 록의 테두리 안에서 소화해내는 그의 탁월한 음악적 시도는 이후 30년 넘도록 줄기차게 이어진다. 1970년 < His Band And The Street Choir >, 1971년 < Tupelo Honey >, 1972년 < St. Dominic’s Preview >를 연이어 발표했고, 이 가운데 < St. Dominic’s Preview >는 다양한 보컬, 악기의 시도가 담겨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적 극치를 선보인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73년 발표된 < Hard Nose The Highway >는 포크송과 세사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음악을 수록하는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잠시 공백기에도 라이브 활동과 더욱 다양한 예술적 탐미를 통해 음악세계를 견고히 한 그는 1977년 < A Period Of Transition >, 1978년 < Wavelength >, 1979년 < Into The Music >(국내 최초로 라이센스 앨범이 나왔다), 1980년 < Common One >을 잇따라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 Common One >에 수록된 곡 ‘Somewhere in England’에선 영국의 대표적 낭만주의 시인들인 워즈워드, 코울리지를 언급하며 자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적 탐닉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 Beautiful Vision >(1982년) < Inarticulate Speech Of Heart >(1983년) < A Sense Of Wonder >(1984년) < No Guru, No Method, No Teacher >(1986년) < Poetic Champions Compose >(1987년)을 발표했다. 1988년에는 아일랜드의 민속그룹 치프턴스(Chieftains)와 함께 < Irish Heartbeat >를 발표, 자신의 뿌리인 아일랜드의 켈트족에게 그 관심을 돌린다. 이즈음 영국으로 돌아가 1989년 < Avalon Sunset >을 발표, 싱글 ‘Whenever god shines his light on me’로 영국차트 20위권에 처음으로 진입한다. 그 수많은 앨범들과 오랜 음악생활 속에서 영국 차트 첫 20위권 진출 또한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이 앨범에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언플러그드로 커버하여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곡 ‘Have I told you lately’가 수록되어 있다. 1990년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전개해 1990년 < Enlightenment >, 1991년 < Hymns To The Silence >, 1993년 < Too Long In Exile >를 연속 발표한다. 늘 그랬듯 뚜렷한 히트 싱글 하나 없었지만 1994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에서 공로상이란 예우를 받는다. 1995년 이후 베스트 음반과 쟁쟁한 후배 아티스트들의 헌정앨범이 이어졌으며 50살이 넘은 나이에도 매년 꾸준하게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1998년 미발표곡 모음집인 < The Philosopher’s Stone >에 이어 이듬해엔 신작 < Back On Top >으로 골드를 기록했고, 2000년에도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의 형제인 린다 게일 루이스(Linda Gail Lewis)와의 듀엣 앨범 < You Win Again >으로 다시금 그의 음악에 대한 탈속(脫俗)적 열정과 천착을 알렸다.
노래 : Michael Buble (마이클 부블레)
캐나다 제3의 도시이자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벤쿠버 출신의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는 2003년에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 Michael Buble >를 공개한 25세의 미남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부블레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세계를 무대로 성공가두를 달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플래티넘을 기록한 본국인 캐나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캐나다 제3의 도시이자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벤쿠버 출신의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는 2003년에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 Michael Buble >를 공개한 25세의 미남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부블레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세계를 무대로 성공가두를 달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플래티넘을 기록한 본국인 캐나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가진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연으로 영국에서는 골드 레코드를,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플램티넘을 기록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이클 부블레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3곡이 수록된 1집 중에서 무려 다섯 곡이 현재 TV 광고 음악으로 쓰이면서 시청자들을 부드럽게 매료시키고 있다. ‘Kissing a fool’은 전자 제품의 배경 음악으로 깔리고 있으며 ‘Sway’와 ‘Fever’는 양복, ‘Come fly with me’는 은행, 그리고 ‘The way you look tonight’은 증권 회사의 CF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시청자들의 귀를 무장해제 시킨다. 또한 르네 젤위거(Renee Zellweger)와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 Down With Love >에 ‘Kissing a fool’이 삽입되어 그의 신드롬은 당분간 지속될 준비를 갖추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음악에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은 바로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가 들려준 스윙 시대의 재즈 보컬 그룹 밀스 브라더스(Mills Brothers)의 노래를 듣고 ‘음악의 아룸다움’을 발견한 ‘어린 손자’ 마이클 부블레는 이후 자기 또래의 소년들과는 달리 사라 본(Sarah Vaughn), 엘라 핏츠제랄드(Ella Fitzgerald), 로즈매리 클루니(Rosemary Clooney),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바비 다린(Bobby Darin) 등 그 옛날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놓쳤던 멋진 노래들을 알게 되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10대 시절에 벤쿠버에서 열린 지방 예능 콘테스트와 Canadina Youth Talent Search에 입상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마이클 부블레는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수상의 딸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세계적인 음반 제작자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의 예리한 레이다 망에 포착되어 포스터가 설립한 143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현재의 성공 신화를 이루게 되었다. 데이비드 포스터는 물론 그의 옛 동료이기도 한 훔베르토 가티카(Humberto Gatica)와 ‘Diana’의 주인공 폴 앵카(Paul Anka)로부터 집중적인 보컬 훈련을 받은 마이클 부블레는 데뷔 음반을 준비한 지 2년 만인 2003년에 1집 < Michael Buble >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 앨범을 제작한 데이비드 포스터는 마이클 부블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번 음반을 통해 마이클 부블레는 노래와 음악만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는 대중 음악의 고전에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이 앨범에는 고전적인 부드러움과 현대의 거친 숨결이 공존한다. 이것은 마이클 부블레의 긴 경력에 있어 단지 시작일 뿐이다”
1980년대 영국 최고의 록밴드 다이어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프런트맨으로 록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는 맑고 인간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기타 톤으로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대접받는다. 지성파 뮤지션으로도 유명한 그는 록 뮤지션이면서 영화음악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 1980년대를 수놓았던 영화음악가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고 있기도 하다. 1949년 8월 ... 1980년대 영국 최고의 록밴드 다이어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프런트맨으로 록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는 맑고 인간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기타 톤으로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대접받는다. 지성파 뮤지션으로도 유명한 그는 록 뮤지션이면서 영화음악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 1980년대를 수놓았던 영화음악가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고 있기도 하다. 1949년 8월 12일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Glasgow)에서 태어난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는 하이클래스 집안에서 모범생으로 자랐다. 대학에 진학 영문학과 어학을 공부한 후 신문사 기자가 되지만 자신의 소박한 꿈을 위해 선생님으로 직업을 바꾼다.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여유 시간에 기타를 다루던 그는 뒤늦게 기타에 빠져들게 되고 이 때부터 뮤지션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1977년 동생인 데이비드 노플러(David Knopfler)와 의기투합,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결성한 그는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로서 또 상업성으로 얼룩져 있었던 1980년대 사회성과 인간성을 이야기했던 지성파 송라이터로서 각광 받는다. 하지만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성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던 순간에도 마크는 개인적인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밥 딜런, 필 리놋(Phil Lynott), 아즈텍 카메라(Aztec Camera)등의 앨범에 기타세션으로, 또 프로듀서로 참여하였으며, 1983년 < Local Hero >를 시작으로 영화 음악에 뛰어든다. 1980년대 솔로 뮤지션으로서 발표한 4장의 앨범은 모두 영화 사운드트랙이었다. 1985년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이름으로 < Brothers in Arms >를 영국에서 2,000만장 이상 팔아치우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지만 영화음악가로서의 그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1984년 < Cal >, 1987년 < The Princess Bride >, 1989년 < Last Exit to Brooklyn >에 이르기까지 영화음악가로서 그가 보여준 역량은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영광에 다가설 만한 가치있는 작업이었다. 1980년대 동시대에 록 뮤지션으로서, 또 영화음악가로서 그가 보여준 활동은 이색적이다.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 과 같은 록앤롤 트랙으로 대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 Cal >의 ’The long road’, < Last Exit to Brooklyn >의 ’Love idea’와 같은 서정적인 스코어들을 동시에 히트시켰기 때문이다. 이 네 편의 영화음악은 1993년 < Screenplaying >이라는 베스트 앨범에 함께 수록되기도 하였다. 영화음악 앨범에서는 그의 맑고 부드러운 기타 연주 뿐 아니라 바이올린, 색소폰 등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사운드트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한 ’스카치(Scotch) 향기’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1990년대에도 영화음악가로서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80년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998년 작 < Wag the Dog >, 1999년 작 < Metroland >, 2002년 최근작인 < Shot at Glory >에 이르기까지 유려한 멜로디와 서정적 사운드를 자랑하는 스코어 맨으로서의 가치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영화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록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1989년 컨트리 밴드인 낫싱 힐빌리스(The Nothing Hillbillies)를 조직하여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1990년 컨트리 기타의 명인 쳇 엣킨스(Chet Atkins)와 동반 앨범 < Neck And Neck >을 발표하였고, 1991년 6년 만에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앨범 < On Every Street >를 발표, 영국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마크 노플러는 동료 뮤지션들이 함께 작업하고픈 기타리스트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이후 다양한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추며, 티나 터너(Tina Turner), 스틸리 댄(Steely Dan), 스팅(Sting), 씬 리지(Thin Lizzy), 지난 2000년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그가 기타리스트로서, 프로듀서로서 참여한 앨범은 무궁무진하다. 1996년 마크 노플러는 록 뮤지션으로서의 솔로 데뷔 앨범 < Golden Hearts >를 발표하고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해체를 선언한다. 그룹을 유지하면서 많은 외도를 거쳤던 그이지만 솔로 앨범은 다이어 스트레이츠 당시의 음악으로 돌아가듯 컨트리, 포크, 록의 다양한 스타일을 포섭하며 록 뮤지션으로서의 능력을 과시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00년 < Sailing to Philadelphia >를 발표하고 다이어 스트레이츠에서 시작된 록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앨범에는 밴 모리슨, 제임스 테일러 등의 뮤지션이 함께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노래 : Chris Farlowe (크리스 팔로우)
영국의 록, 블루스, 소울 가수 영국의 록, 블루스, 소울 가수
노래 : Steve Winwood (스티브 윈우드)
싱어 송라이터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음악계의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이다. 국내에선 푸대접받지만 그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존경에 가깝다. 1960년대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Spencer Davis Group)과 슈퍼그룹의 원조 격인 트랙픽(Traffic)과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거치면서 실력을 검증 받은 스티브 윈우드는 1980년대엔... 싱어 송라이터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음악계의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이다. 국내에선 푸대접받지만 그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존경에 가깝다. 1960년대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Spencer Davis Group)과 슈퍼그룹의 원조 격인 트랙픽(Traffic)과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거치면서 실력을 검증 받은 스티브 윈우드는 1980년대엔 솔로 가수로서도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순악질 여사의 검은색 일자 눈썹처럼 짙고 깊은 음색을 소유한 스티브 윈우드는 대표적인 블루 아이드 소울 싱어이며 그의 가창력은 예전부터 최고로 꼽히고 있다. 1948년 5월 12일 영국의 버밍햄에서 스테픈 로렌스 윈우드(Stephen Lawrence Winwood)란 본명으로 태어난 스티브 윈우드는 유년 시절, 재즈에 빠지면서 드럼, 기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1963년, 친형 머프 윈우드(Muff Winwood)와 함께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에 가입했을 때 그는 겨우 15살이었다. ‘I’m a man(10위)’, ‘Keep on running(76위)’, ‘Gimme some lovin’(7위)’ 같은 블루 아이드 소울의 명곡들을 발표한 스티브 윈우드는 이 팀을 떠나 1967년에 영국 출신의 로큰롤 가수 데이브 매이슨(Dave Mason) 등과 함께 트래픽(Traffic)을 결성했다. 이어서 1969년에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진저 베이커(Ginger Baker)와 함께 블라인드 페이스를 만드는데 의기투합했으나 단 한 장의 음반을 남기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공연과 동료들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는 번외 경기로 세월을 보낸 스티브 윈우드는 1977년에 솔로 데뷔작을 공개했지만 평단과 대중들 모두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가 다시 팝계의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신시사이저 키보드를 과용한 1981년도 음반 < Arc Of A Diver >였다. 싱글 히트곡 ‘While see you a chance(7위)’와 ‘Arc of a diver(47위)’로 키다리 아저씨는 솔로 가수로서 새로운 인생을 그렸다. 그에게 전환점이 된 앨범 < Back In The High Life >는 지난 1986년에 공개되었다. 흑인 여가수 샤캬 칸(Chaka Khan)이 백보컬로 힘을 보탠 ‘Higher love(1위)’와 ‘The finer thing(8위)’, ‘Back in the high life again(13위)’, ‘Freedom overspill(20위)’이 인기 차트와 접속하면서 3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이룩했고, ‘Higher love’는 1986년도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와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접수했다. 이어진 5집 음반 < Roll With It >에서 타이틀트랙 ‘Roll with it’은 4주 동안 정상을 달렸고, 그밖에 ‘Don’t you know what the night can do(6위)’, ‘Holding on(11위)’, ‘Hearts of fire(53위)’가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스티브 윈우드에게 가장 화려한 순간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 Roll With It >과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베스트 음반 < Chronicles >에서는 2집에 수록됐었던 ‘Valerie(9위)’와 ‘Taking back to the night(57위)’가 다시 싱글로 커트 되어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스티브 윈우드의 성공은 1990년대에도 이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그의 모든 음악적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1990년과 1997년에 발표한 정규 음반 < Refugees Of The Heart >과 < Junction Seven >은 저조한 결과를 낳았고, 그의 주도로 1994년에 재결성한 트래픽도 얼터와 그런지 후배들에게 밀려 처량한 뒷모습을 보이며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이든 쓰라린 순간이든 그 모든 것은 이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인생의 그림이 되어 스티브 윈우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싱어송 라이터 싱어송 라이터
노래 : Georgie Fame (조지 페임,Clive Powell / Georgie Fortune)
리듬 앤 블루스, 재즈 가수, 키보드 연주자 리듬 앤 블루스, 재즈 가수, 키보드 연주자
나탈리 콜(Natalie Cole)은 파워와 가녀림을 함께 담아 내는 특색 있는 보컬로 재즈와 팝을 넘나들며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려왔다. 1900년대 중반 흑인 최고의 스탠다드 보컬로 인기를 누렸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딸로도 유명한 그녀는 1991년 아버지의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부른 ’Unforgettable’로 그래미(Grammy) 7개 부문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탈리 콜(Natalie Cole)은 파워와 가녀림을 함께 담아 내는 특색 있는 보컬로 재즈와 팝을 넘나들며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려왔다. 1900년대 중반 흑인 최고의 스탠다드 보컬로 인기를 누렸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딸로도 유명한 그녀는 1991년 아버지의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부른 ’Unforgettable’로 그래미(Grammy) 7개 부문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50년 미국 로스 앤젤리스(Los Angeles)에서 태어난 나탈리는 아버지 곁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0살 정도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등 뮤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속에서 재즈 싱어로서의 자질을 키워 나간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아버지의 유명세를 통해 쉽게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지만 나탈리는 대학생이 된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로서의 길을 결정한다.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대학 재학 중이던 그녀는 매니저인 케빈 헌터(Kevin Hunter)를 만나게 되고 재즈 클럽을 무대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에게는 냇 "킹" 콜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고, 그녀의 독특한 음악적 신분은 프로페셔널로서의 활동에 큰 힘을 실어주게 된다. 클럽 활동을 하면서 만난 여러 재즈 뮤지션들과 앨범을 내려고 했던 그녀의 생각은 그다지 쉽게 풀려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레이블에서 음반 제의를 거절당했고, 결국 아버지가 소속되어 있었던 캐피톨(Capitol) 레코드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1974년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그녀는 1975년 적지 않은 나이에 데뷔 싱글인 ’This will be’를 발표한다. 시작부터 성공의 연속이었다. 첫 싱글인 ’This will be’는 싱글 차트 6위의 성공을 거두었고, R&B 차트에서는 No.1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데뷔 싱글의 성공에 힘입어 데뷔 이듬해인 1976년 그래미에서 ’Best Female R&B Vocal Performance’와 ’Best New Artist of the Year’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다. 이어지는 싱글들 ’Inseparable’, ’Sophisticated lady (She’s a different lady)’, ’I’ve got love on my mind’, ’Our love’ 또한 R&B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성공들을 거두어 들였다. 프로듀서 겸 작곡가 척 잭슨(Chuck Jackson)과 마빈 얀시(Marvin Yancy)는 데뷔 때부터 나탈리의 성공을 이끈 숨은 공로자들이었고, 마빈 얀시는 1976난 나탈리 콜의 남편이 된다.(결혼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1970년대 후반에도 줄기찬 성공 행진을 이어갔다. 여섯 장의 앨범 < Inseparable >, < Natalie >, < Unpredicatable >, < Thankful >, < Natalie Live! >, < I Love You So >를 모두 골드와 플래티넘에 올려놓았으며 가수로서의 연이은 성공 덕분에 CBS와 NBC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엘라 핏제럴드의 음악을 듣고 부르며 자란 그녀의 음악적 기반은 분명 재즈에 있었다. 하지만 가수로 데뷔한 후 그녀는 팝과 재즈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했다. 재즈, 소울, 가스펠, 알앤비, 팝을 다양하게 소화해 내었고, 그런 다양한 스타일은 재즈 싱어에게 강한 대중성을 부여했다. 화려한 1970년대를 보낸 그녀였지만 1980년대는 그리 평탄하게 시작되지 않았다. 마빈 얀시와의 결혼 생활에서 아들까지 얻었지만 마빈과 이혼에 이르렀고, 과다한 약물 복용으로 콘서트를 취소하는 등 갑작스럽게 찾아온 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에 씨름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캐피톨과의 재계약 마저 실패한 나탈리는 미네아폴리스의 한 클리닉에서 갱생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갱생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6년이 지난 후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1987년 프로듀서인 안드레 피셔(Andre Fischer)와 재혼한 나탈리는 이전의 영광을 재현하는 두 번째 고공 비행을 시작한다. 1987년 작 < Everlasting >에서 ’Jump start’, ’I live for your love’, ’Pink cadillac’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골드를 거머쥐었고, 의미 있는 앨범 제목을 담고 있는 1989년 작 < Good to Be Back >에서는 팝적 성향이 강한 ’Miss you like crazy’와 ’Wild women do’(1990년 히트 사운드트랙 < Pretty Woman >의 첫 곡으로 수록되었다.)를 히트시킨다. 1991년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아버지인 냇 "킹" 콜이 생전에 녹음했던 ’Unforgettable’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힌 새로운 방식의 듀엣 곡을 수록한 < Unforgettable >을 발표하였고, 이 앨범으로 그래미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단한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팝적인 곡보다는 재즈적 성향이 강한 노래들 또는 초기 스탠다드 팝들을 앨범에 수록하면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노래 : Gregory Porter (그레고리 포터)
풍부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통해 마음을 달래주는 그레고리 포터!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제이미 칼럼, 디스클로저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했으며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를 통해 기타리스트 밀로쉬와도 작업했다. 2014 Grammy Awards - Best Jazz Vocal Album (Artist) 풍부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통해 마음을 달래주는 그레고리 포터!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제이미 칼럼, 디스클로저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했으며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를 통해 기타리스트 밀로쉬와도 작업했다.

2014 Grammy Awards - Best Jazz Vocal Album (Artist)
영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영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노래 : P.J. Proby (P.J. 프로비,James Marcus Smith)
노래 : Mavis Staples (메이비스 스테이플스)
감칠맛 나는 기타 선율을 블루스의 진한 리듬감에 실어 내는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은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사후 그의 음악적 유산을 가장 명징 하게 간직한 음악인이다. 팻 메스니, 리 리트너, 존 스코필드 등 1980-9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재즈 기타리스트들의 계보를 따져 올라가 보면 항상 조지 벤슨의 기타 연주가 자리한다. 하지만 조지 벤슨은 재즈 연주자... 감칠맛 나는 기타 선율을 블루스의 진한 리듬감에 실어 내는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은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사후 그의 음악적 유산을 가장 명징 하게 간직한 음악인이다. 팻 메스니, 리 리트너, 존 스코필드 등 1980-9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재즈 기타리스트들의 계보를 따져 올라가 보면 항상 조지 벤슨의 기타 연주가 자리한다. 하지만 조지 벤슨은 재즈 연주자 이전에 탁월한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일반 팝 음악 청중들에게도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건 그의 기타 연주만큼이나 정평 높은 노래실력 때문이다. 그의 공식적인 보컬 데뷔 곡이기도 한 ’This Masquerada’(1976) 이후 그는 재즈 기타 연주자로서보다는 소울/팝 가수로서 인기스타 반열에 등극한다. 1943년 3월22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조지 벤슨은 4 세 때 처음 기타를 손에 잡고, 7세부터는 나이트 클럽 무대에 설 정도로 일찍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다. 청소년 시절에 그는 행크 가랜드, 찰리 크리스천, 찰리 파커의 음악을 들으며 차츰 재즈에 흥미를 갖는다. 독학으로 재즈 연주를 배워나간 그는 1960년대 초, 하몬드 오르간 주자 잭 맥프(Jack Mcduff) 밴드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 1964년 그의 데뷔 앨범< New Boss Guitar >를 프레스티지(Prestige) 레이블에서 발표한다. 이듬해 잭 맥더프와 결별한 조지 벤슨은 웨스 몽고메리의 문하생이 되어 기타 연주를 사사 받는다. 1965년 가을, 명 프로듀서이자 콜롬비아 레코드 소속 A&R맨 존 하몬드(John Hammond)의 주선으로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 < It’s Uptown >(1965)과 < George Benson Cook Book >(1966)을 연달아 발표한다. 특히 < It’s Uptown >에 수록된 조지 거쉰(George Gerswin)의 고전 ’Summertime’은 그의 보컬 데뷔 곡이기도 하다. 그가 당시의 일을 회고하기를 "나는 연주자이기보다는 가수가 되길 바랬다"고 했을 정도로 노래에 대한 조지 벤슨의 애정은 강했다. 1967년 다시 버브(Verve)사로 이적한 조지 벤슨은 허비 핸콕, 론 카터, 빌리 코브햄 등 호화 세션진들이 참여해 녹음한 < Gilblet Gravy >(1967)를 발표하며 재즈 연주자로서 순조로운 여정을 밟아나간다. 틈틈이 앨범 세션 작업에도 열심이었던 그는 1968년,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요청으로 < Miles In The Sky >에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들려주며 이후 마일스가 재즈 퓨전(Jazz Fusion)으로의 여정을 찾아가는데 일조한다. 이듬해 1968년, 자신의 스승이었던 웨스 몽고메리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소속되어있던 A&M 레코드의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는 웨스에 필적할만한 기타리스트를 찾던 중 조지 벤슨을 찾게 된다. 크리드 테일러가 프로듀스한 앨범 < Shape Of Things To Come >(1968)을 발표했고 수록곡 중 ’Last train to Clarksville’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듬해 비틀스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 < Abbey Road >(1969)의 발매에 맞춰 꾸며진 조지 벤슨의 연주로 꾸며진 답가 < The Other Side Of Abby Road >(1969)를 발표한다. 수록곡 중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Here comes the sun’을 소울풀한 보컬로 소화해,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1970년, 그를 기용한 크리드 테일러가 세운 CTI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그의 연주력은 정점에 달한다. 내공이 집약된 블루지한 명반 < Beyond The Blue Horizon >(1971)을 시작으로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명곡 ’White rabbit’과 마마 앤 파파스(Mama &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이 연주로 수록된 앨범 < White Rabbit >(1971)은 조지 벤슨을 일약 팝 스타에 버금가는 연주자로 부상시킨다. 이에 기세를 몰아 < Body Talk >(1973), < Bad Benson >(1974), < Good King Bad >(1975) 연달아 발표했다. 기타 연주자로서 기량이 정점에 다다랐던 1970년대 중반, 여전히 노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던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명 프로듀서 토미 리푸마(Tommy Lipuma)를 만난다. 그의 노래를 높이 평가한 리푸마는 자신이 소속된 워너 브라더사에 그를 영입, 전대미문의 트리플 플래티넘(Tripple Platinum) 재즈 앨범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이 1976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앨범 < Breezin’ >이었다. 이 앨범은 조지 벤슨의 음악 활동의 일대 전기가 되어 6곡의 수록곡 중 유일한 보컬 넘버 ’This masquerade’는 재즈 보컬 곡으로는 드물게 싱글로 발표되어 빌보드차트 10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 Breezin’ >은 빌보드 차트에서 재즈, R&B, 팝 차트 모두 정상에 오르는 사상 최초의 앨범이 되었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상, 팝 인스트루멘털 퍼포먼스 상, 최우수 엔지니어 상을 휩쓸며 1976년을 ’조지 벤슨의 해’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싱글히트 행진은 지속되어 ’On Broadway’(1977), 팝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도 유명한 ’The greatest love of all’(1977), , ’Turn you love around’(1977), ’Give me the night’(1980), ’Kisses in moonlight’(1986)가 줄줄이 차트를 점령했다. 이 때문에 조지 벤슨은 재즈 기타리스트보다 팝 뮤지션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다. 확연한 각이 느껴지는 조지 벤슨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그립던 차에 그의 수제자인 재즈 기타리스트 얼 클루(Earl Klugh)와 함께 발표한 < Collaboration >(1987)은 다시 한번 ’제즈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한껏 세워준다. 이후 그는 정통 재즈로의 외도(?)를 감행한다. 2년 후 발표된 < Tenderly >(1989)에선 론 카터, 맥코이 타이너, 알 포스터와 같은 메인스트림 계열 재즈 뮤지션들과 좋은 호흡을 보여줬고, 이듬해엔 스윙의 대가 카운트 베이시에게 헌정하는 < Big Boss Band >(1990)로 넘실대는 부기 리듬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보컬 음악에 익숙해진 대중들에게 부담스러운 결과물이었던지 반응은 모두 저조했다. 6년여의 공백 끝에 GRP 레이블에서 발표한 < That’s Right >(1996)로 컴백한다. 업 템포의 흥겨움을 배가시킨 재즈 퓨전 연주로 돌아온 이후의 음악은 특별히 새롭진 않지만 여전히 심중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을 선사했다.

음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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