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세계가 주목한 르포작가 캐롤라인 무어헤드가 써내려간 인류애의 기록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파리 시내. 점잔 빼던 독일군은 나날이 포악해져가고 프랑스인은 정치인, 경찰, 일반인 할 것 없이 하나둘 부역자가 되어 시민 탄압에 나섰다. 탄압의 주요 대상은 항독활동을 하던 공산당과 신념에 따라 글 쓰고 말하던 지식인, 그리고 35만 유대인이었다. 침략과 폭압에 저항하는 매체를 검열하고 폐간시키는 사이에 많은 언론이 지하로 들어갔고, 나치의 타블로이드와 반유대주의 신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전쟁기의 이런 사회적 혼란 속에서 대담하게 나치에 저항하며 프랑스 전역에서 활약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피 말리는 감시와 미행 끝에 1942년부터 제각기 체포된 230명의 여성은 1943년 1월 24일 가축 수송열차에 실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한다.
이 책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은 역사, 인권 분야에서 활약하는 영국의 기록문학 작가 캐롤라인 무어헤드가 아우슈비츠 생환자들의 개인적 기록과 공문서, 생존자 구술을 채록해 서사적으로 재구성한 르포르타주다. 프랑스의 평범한 아내, 어머니, 딸이었던 여자들이 ‘내 아이를 이런 곳에서 키울 수 없다’며 아우슈비츠의 ‘정치범’이 되어 죽음의 수용소를 겪기까지의 체험을 생생하게 다룬다. 이 책은 또한 나치의 피해자 중 반드시 유대인이었던 것은 아닌 ‘여성들’에게 주목한 최초의 책이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인종적 희생자인 ‘유대인 남성’을 중심으로 기록돼온 것을 생각하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2011년과 2012년에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며 해외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우수 정치 저작물에 수여되는 영국의 오웰상에 후보(2012)로 오르기도 했다.
역사상 최대 비극조차 파괴하지 못한 인류애의 기록
손을 잡고 아우슈비츠를 살아낸 여성들의 전언
이 책 속 여성들은 나치의 유대인 사냥과 레지스탕스 사냥에 맞선 ‘정치적’ 행동으로 핍박받는 운명을 나누어 짊어진다. 독일군이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산업 시설을 징발해 궁핍해진 상황에서 저항은 프랑스 시민의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인 힘으로 시작되었다. 230명의 여성들은 대부분 유대인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레지스탕스였던 것도 아니다.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프랑스는 1789년 혁명 직후 유대인을 자국의 시민으로 받아들인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온 축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침공 이후 나치의 꼭두각시 정부가 된 프랑스는 재빠르게 반유대인 법령을 제정했고, 파리 시민들은 “우리의 적은 유대인”(35쪽)이라고 쓰인 벽보를 필두로 유대인 시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테러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레지스탕스 남성들은 독일군을 저격하는 등 전면에 나선 터라 초기에 집중적으로 진압되었고 인질로 처형되었다. 가족과 이웃을 잃은 여성들은 분노하며 레지스탕스의 심장이자 팔다리가 되어 지하언론의 제작과 배포를 모두 담당했고, 점령지역 유대인의 밀항을 도우며 투사가 되어갔다.
모피 공장의 견습공이자 젊은 엄마였던 세실 차루아도 어린 딸을 친정에 맡기고 활동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아이까지 있으면서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가 있냐며 나무라는 어머니에게 세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제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요.”(51쪽) 심각해지는 정세와 잔학해지는 진압 속에서 여성들은 한편으로 각자의 운명을 예측하고 있었다. 게슈타포의 수법이 정교해지고 밀고자의 수도 늘면서 자신의 가족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그 일을 해야만 했다. 폭력과 부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가족에게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도 홀로 두지 않았다”
거대한 폭력에 맞선 작은 불복종의 승리
저자는 결국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간 230명의 여성 중 49명이나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그들 “각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아”였으며, “그들 사이의 우애가 자신들을 보호해주었고 그토록 극심했던 야만성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477쪽). 비유대인 여성들의 생존을 행운만으로 설명하기는 쉽다. 영화에서도 자주 보아온 가스실의 유대인과 비교하면, 정치범인 프랑스인들은 그나마 조건이 나은 부류였던 것이 사실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죽을 만큼의 폭력을 당하지는 않은 것이기에 그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운’이라는 요소를 부정하지 않은 채 저자는 그 ‘행운’이란 여성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운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스실 직행은 면했다 해도 230명 중 181명이 구타와 질병, 생체실험으로 죽어간 점을 생각하면 폭력의 강도와 고통의 경중을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극한의 폭력이 사람들을 낱낱이 흩어 인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수감자의 정체성에 상관없이 같았다. 그 때문에 여성들은 개별자로 흩어져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 함께 뭉쳤던 것이다.
온갖 폭력과 비인간성이 통치하며 인간에게서 최악의 면만을 이끌어내는 강제수용소에서 이 여성들은 눈에 띄지 않게 규율을 거스르고 사람다운 삶의 감각을 복기하며 스스로 작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에너지를 비축해도 시원찮을 판에 틈만 나면 체조를 했고, 춤을 췄으며, 금지된 노래를 불렀고, 배수관을 통해 생일 축하를 주고받았다. 간수들의 건물에서 몰래 물자를 훔쳐냈고, 작업장에서 나사를 헐겁게 조이며 독일의 군비를 낭비했다. 여러 경로로 세상의 소식을 모아 손수 신문을 만들었고, 문학, 역사, 철학 등 각자 지닌 지식을 나누는 배움의 공동체를 꾸리기도 했다. 열일곱 살 푸페트 알리종은 자신이 “마치 대학에 온 것 같은 느낌”(245쪽)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일상적 행동양식이 망가진 아우슈비츠 같은 곳에서는 윤리 또한 재편된다. 죽어가는 이에게 물을 나눠주는 것조차 처형감인 그곳에서 인간적인 감정은 금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남기 위한 필사의 사투는 규율에 불복종해야만 가능했다. 속임수까지 써가며 자신의 목숨을 지켜냈지만, 그것은 결코 이기적인 동력이 아니었다. 나이, 학력, 빈부의 차이와 같은 세상의 기준을 넘어 “자신의 운명이 다른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316쪽)고 그녀들은 생각했다. 따라서 옮긴이의 해석처럼 이 여성들에게는 “살아남았다는 죄의식보다 이미 죽어버린 동료들과 친구들에 대한 책임감”(531쪽)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샤를로트 델보다!”
우리가 손잡아 마땅한 기억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독일이 패망하며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된 지 올해(2015)로 70년을 맞았다. 독일은 일관되게 반성과 사죄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유럽에서는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이제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피로감도 생겼다고 한다. 과연 우리도 피곤할 만큼 이 역사에 관해 충분히 알고 있을까? 아우슈비츠 생존자로는 가장 유명한 프리모 레비의 기록(1956년 초판)도 뒤늦게 2007년에야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가 증언하는 아우슈비츠는 야만과 이기심, 개인주의만을 이끌어내는 곳이었고, 이후 다른 각도의 증언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인간다움이 가능했는지 증언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다. 게다가 유대인도 아닌 평범한 여자들이 왜 가만히 있지 않고 활동에 뛰어들어 형벌을 졌는지 의문을 가질 기회가 우리에게는 없었다. 학살의 기억이 가까우며 ‘대형 참사’를 너무 자주 맞닥뜨리는 지금 우리에게 홀로코스트는 아직 할 말이 많은, 살아 있는 역사다.
일상적인 관계망을 일부러 끊어놓은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허약하고 신속하게 쓰러져갔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생존에 최소한의 물과 식량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일 것이다. 불행을 줄 세우지 않고 나란히 연결할 때에만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은 알려준다. 이 책을 추천한 영화감독 변영주의 말처럼 각자의 고통과 불행은 단지 겉모양이 서로 다를 뿐이기에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은 함께했던 모두의 삶을 대표”하는 자다. 손을 잡고 살아남은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처럼 지금 우리가 손잡아 마땅한 곳은 많을 것이다. 변영주 감독은 몇 군데만 짚었다. 평택공장의 굴뚝과 팽목항, 군부대의 후미진 화장실, 그리고 가로등 아래 당신 동네의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