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생: 창조된 자의 근원적 공포 _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스위스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엄청난 야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가 창조한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흉측한 모습의 괴물이었다. 괴물은 자신의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서 버림받은 뒤 인간 사회에 동화되고자 노력하지만 그의 끔찍한 외모를 본 사람들은 모두 외면한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함께 살 아내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완성 직전에 괴물의 배우자를 파괴하고 만다. 괴물은 이에 대한 복수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결혼 첫날밤 살해하고, 프랑켄슈타인 역시 증오와 복수심을 불태우며 괴물을 뒤쫓아 북극까지 갔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뒤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혼자 정상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괴물에게,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은 곧 자신의 소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관계는 생명을 부여하고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유사부자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부모와 자식 간에 나타나는 애정 어린 양육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박탈한 채 그저 생명만을 주었을 뿐이다. 저자는 자연스러운 남녀의 결함을 통하지 않고 한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창조하려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을 말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2. 어린 시절: 일체감을 잃어버린 남녀의 비극 _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요크셔 농장의 저택 ‘폭풍의 언덕’에서 함께 자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캐서린은 농장주 언쇼의 딸이고, 히스클리프는 농장주가 데려다 키운 고아이다. “나는 곧 히스클리프”라고 단언하는 캐서린의 말처럼, 두 사람이 나누는 유대감은 완전한 일체감 그 자체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캐서린이 부유한 린튼 가의 아들 에드거와 결혼하면서 그들의 유대감은 깨진다. 캐서린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신분의 벽을 절감한 히스클리프는 절망하여 남몰래 폭풍의 언덕을 떠났다가, 뒷날 부유한 신사가 되어 돌아온다.
자신에게서 캐서린을 떼어놓고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그는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결혼하지만, 이러한 그의 복수심에 연적인 에드거에 대한 질투심은 들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캐서린 역시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시누이와 결혼한 것에 대해 전혀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을 지배하는 사랑은 생사(生死), 선악(善惡), 이성(理性)을 넘어선 자웅동체의 일체감이며, 결국 양쪽 집안을 파멸로 몰고 가는 배타적인 정열이다.
저자는 인간성의 심연을 파고든 에밀리 브론테의 정념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어린 시절에 경험한 일체감을 잃은 인간들이 성인이 되면서 필연적으로 겪는 멜로드라마적 비극을 담담한 필치로 분석한다.
3. 성장: 평등을 향한 기나긴 여정 _ 살럿 브론테, 《제인 에어》
반항적이고 정열적인 성격의 고아 제인 에어는 냉정하고 쌀쌀맞은 숙모 리드 부인의 슬하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리드 부인의 집과 로우드 기숙학교를 거치며 성장기를 보내는 제인 에어에게, 어린 시절이란 억압과 불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우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 그녀는 자신을 고용한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로체스터에게 정신병에 걸린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결혼은 파경을 맞는다. 그들이 마침내 결혼에 도달하는 것은 로체스터가 손필드 저택에 불을 지른 아내가 자살하여 아무 거리낌 없이 제인과 결혼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는 한편, 화재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고 제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이다. 그리고 로체스터와 헤어져 있는 사이에 제인은 삼촌에게서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어 있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라는, 두 사람의 결혼에 장애가 되었던 불평등한 조건들이 해소되면서, 그들은 동등한 인격체로 결혼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브론테가 그린 《제인 에어》의 세계를 어린이의 세계에서 나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데, 이것은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가는 여정과 동일한 것이다. 저자는 《제인 에어》를 끝맺는 문장이 “독자여, 나는 동등한 사람과 결혼했다”임을 지적하면서 독립적이고 평등한 개인들만이 결혼을 성취한다는 브론테의 작가적 시각을 지지한다.
4. 결혼: 이상적인 결혼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루다 _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지방생활의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작품은 영국의 작은 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지주, 목사, 제조업자, 전문인, 상점주인, 선술집주인, 그리고 농부와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19세기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도로시아 브룩은 지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희구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시대상황과, 미들마치라는 좁은 사회에서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제약을 이상적인 결혼으로 이루기 위해 학자 캐소본과 결혼한다. 그러나 지적 견문과 정신적 훈련으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려는 도로시아의 이상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성격의 캐소본과 갈등을 일으키며 그녀를 불행한 결혼생활로 몰아넣는다.
잘못된 이상으로 불행한 결혼을 선택한 도로시아는 캐소본이 죽고 난 뒤, 윌 래디슬로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교정할 기회를 얻게 된다. 결혼으로 탈출구가 아니라 친밀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남편의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평범한 윌 래디슬로와 재혼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성인이 된다.
저자는 《미들마치》에서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은 ‘결혼’과 ‘직업’이며, 그 선택을 얼마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했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도로시아의 입을 통해 간통을 살인으로 보는 조지 엘리엇의 메타포를, 결혼의 비참함을 없애고 두 사람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안락사로 변용하여 해석한다.
5. 사랑 생과 사, 정상과 비정상의 화해 _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소설은 ‘완벽한 안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중년의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이 저녁에 있을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시내에 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 준비를 시작하여 파티가 끝날 때까지 하루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 하루는 전쟁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젊은 셉티머스의 하루와 정교하게 교차된다.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사람을 환대하지만 점잔을 빼고, 정열이라곤 오래전에 잊어버린 인물이다. 30년 전 그녀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피터 월시만이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클라리사에 대한 피터의 사랑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환희를 경험할 정도의 것이다. 클라리사 역시 그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셉티머스의 자살소식을 그날 접하고 이와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셉티머스가 그녀가 회피한 것, 즉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자유를 잃고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느니 이에 굴복하지 않고 인격적 고결함을 지키는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상속에서 셉티머스와 공감을 이루며 그토록 오래 거부했던 고결함을 되찾는다. 저자는 《댈러웨이 부인》을 가리켜 희열에 찬 사랑, 타인의 자율적이고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아를 존중하는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라고 칭송하는데, 사랑은 이처럼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의 화해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부모: 자식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욕망 _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작품의 주인공 램지 부인은 자식들은 물론 자신이 대접해야 할 손님들 모두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1부는 아들 제임스에게 내일 날씨가 좋으면 등대에 데려가주겠다고 약속하는 램지 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램지 가족들과 손님들은 등대를 향해 배가 모여드는 것처럼 램지 부인을 중심으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다.
짧은 2부를 지나쳐 3부 <등대>에 이르면, 소설은 1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램지 부인이 죽은 뒤의 시간을 조명한다. 그 사이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살아남은 램지 가족과 1부의 손님들이 램지 가의 바닷가 별장에 다시 모인다. 10년 전 램지 부인이 그토록 맺어지기를 바랐던 폴 레일리와 민타 도일의 결혼생활은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불안정하게 삐걱거리고, 릴리 브리스코는 윌리엄 뱅크스와 결혼하지 않은 채 여전히 독신을 고수하고 있다.
램지 부인은 자식들과 손님들을 어머니처럼 보호하고 감싸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소우주 안에서 모든 것이 변치 않고 안정되기를 바란다. 한순간도 정지할 수 없는 무상한 인생을, 자식들(혹은 램지 부인이 자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동일한 경험(결혼하여 자식을 낳는 것)을 물려주어 자식들의 인생을 직접 설계한 대로 조종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반복되는 생의 지속성을 실현하여 불멸을 이루려는 램지 부인의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이미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저자는 《등대로》의 결말에서 제임스와 릴리가 램지 부인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성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추적한다.
7. 미래: 끝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_ 버지니아 울프, 《막간》
울프의 유작이 된 막간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9년의 6월 어느 날, 자일스 올리버의 시골저택인 포인츠 홀에서 하룻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다. 포인츠 홀의 정원에서 해마다 공연하는 야외극을 관람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든다. 소설은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대한 영국역사를 에피소드식으로 재현하는 야외극과, 야외극의 액자 역할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자일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백 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은 듯한 포인츠 홀의 정체된 세계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의 눈에 고모 스위딘 부인은 어리석고 시대에 뒤처진 늙은이일 뿐이다. 이러한 자일스의 마음속 균열은 주변사람들과 미묘하게 충돌하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자일스는 마을을 방문한 만레사 부인에게 위험한 매력을 느끼지만 그녀는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일스에게 반한 것은 만레사 부인의 동행인 동성애자 윌리엄 닷지다. 그리고 자일스의 아내 이자는 마을의 지주 루퍼트 헤인즈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열정으로 고통받지만 루퍼트는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연극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자일스와 이자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 문제들 앞에 단둘이 남겨진다. 울프는 “그때 막이 올랐다”라는 문장으로 ‘막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결말부에서, 이제 다음 막을 살아가야 하는 자일스와 이자 부부가 “포옹으로부터 다른 삶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와 재생이 불가피하며, 이것이 탄생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