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읽었던 닥터 프로스트 시리즈와는 달리 5권에는 2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다.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하여 심리적인 분석을 하는 원래의 이야기와 더불어 프로스트 교수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전에도 프로스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보통 책의 말미에 잠깐씩 등장하여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면, 이번에는 '파블로프의 개'를 통하여 프로스트의 비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그의 상황이 실제로는 '정서의 부분적인 마비 상태'로 정의되면서 두려움, 분노, 냉소나 경멸, 공포심에 대한 감정은 어느 정도 남아 있기에 이러한 감정을 갖는 타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으나, 애착과 연민, 동정심은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개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어려움과 오해를 받는 프로스트에 대한 설명은 이전 시리즈에서 프로스트의 냉정한 태도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사람들로부터 학대받은 유기견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 프로스트의 모습이 왠지 애처롭게 느껴지게 된다. 먹이로 유인당하여 학대를 받았기에 오히려 먹이에 대하여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내는 파블로프의 모습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정반대로 반응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파블로프는 왠지 거울 속에 비친 프로스트가 아닐까 싶다. 머리에 수술자국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이 둘의 관계가 앞으로의 시리즈에서 프로스트의 숨겨진 과거에 대한 실마리로 작용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내담자인 20세의 안나의 상황은 왠지 특별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로 관심을 갖게 된다. 인기있는 여성 아이돌이자 프로스트의 수업을 듣게 된 안나의 모습은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동시에 대중에게 노출이 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연예 방송에서 인기 그룹의 한 멤버가 다소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하여 진행자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당한 내용이 이슈로 등장하였다. 보통 진행자의 요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부분의 연예인들과는 달리 소극적이면서도 낯을 가리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진행자에게는 불만스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항상 분위기를 띄우며 대중이 요구하는 것을 척척 해내는 만능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TV로만 보던 연예인의 성격이 실제 삶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간극이 커질수록 놀라움과 더불어 애틋함이 생겨난다. 인기를 얻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기고 대중이 원하는 모습으로 방송 앞에 서야하는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담자인 안나 역시 바로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 여성이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동료였던 다른 여자로 혼동하면서 생긴 이상 현상은 바로 '망상 장애'의 초기 현상으로 진단하는 프로스트. 이러한 망상 장애는 타인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안나 역시 그러한 망상 장애로 인하여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멘토이자 동료였던 세나로 동일시하는 문제를 갖게 된 것이다.

 흔히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 말은 바로 타인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살아야 함을 의미하게 된다. 프로스트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망상 장애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 내용이 왠지 페르소나와 같은 개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으로서 카를 융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 의무 등에 따라 자신의 본성 위에 덧씌우는 사회적 인격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그 과정이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페르소나에 대하여 익숙치 못한 안나는 오히려 페르소나에 의하여 자신을 잠식당하면서 망상 장애로 진행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닥터 프로스트 7권에서 '페르소나'를 주제로 다루고 있으니 혹 읽게 된다면 이번 에피소드와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

 망상 장애는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이미 자신의 본질을 상실하고 다른 존재를 자신으로 착각하고 있기에 치료하는 사람 또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 역시 망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담자인 안나가 망상 장애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면 프로스트 역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초기 상황이기에 그는 연극을 직접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한다. 무의식이 되고 싶어하는 존재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사이코드라마'로 제안한 것이다. 무의식의 저항이라는 방어 기제로 인하여 쉽지 않지만, 이 방법을 통하여 진짜 자아로 도달함으로써 망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상 장애는 내담자인 안나와 같이 연예인과 같은 사람들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과의 접점 또는 사회적인 관계에 적응하기 위하여 본질을 억누르는 상황은 일반인 역시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