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현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규와 나래의
가운데 하늘에서의 짧은 여행 기록
『마음오를꽃』은 두 명의 학생이 각자의 이유로 자살을 택한 이후에 겪게 되는 서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작품 속 두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세상으로 내몰렸을 때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에서 무작정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주인공들이 죽음 이후에 받게 되는 심판과 남겨진 자들, 즉, 두 학생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생의 포기가 가져오는 결과는 본인의 죽음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쁜 여자친구와 우수한 성적, 안정적인 가정 등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의 재부팅을 꿈꾸는 소년 우규. 핸드폰에 엄마를 ‘엄마느님’이라고 저장할 만큼 절대적으로 따르며 그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녀 나래. 바로 그 엄마의 과도한 관심으로 친구들의 미움을 사 겪게 된 학교폭력에 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절망 속에 살아간다. 이야기는 이 아이들이 나름의 이유로 저승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죽은 뒤의 세계인 ‘가운데 하늘’에서 자기 살인의 죄로 재판을 받게 된 두 령은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에 대해 원망하며 형벌의 괴로움에 몸을 떨기도 한다. 반면 자신들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자신만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 도망친 두 령이 도착한 곳은 낙원도 아니고 재시작도 아니었으며, 피난처조차 될 수 없었는데…….
고통스러운 형벌과 현실에 남은 가족들의 아픔을 목격한 규와 나래는 회의감이나 상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의 회의감이나 마음의 상처만 보고 있었던 우규는 자신보다 더 위태롭고 불행한 삶을 살아온 나래를 통해 어린애같이 투정만 부렸던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래 또한 자신이 힘들어할 때마다 손을 내밀어주고, 짜증을 부리다가도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우규를 보며 자신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작가 정도상은 시대의 아픔과 그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문체로 그려왔던 소설가이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죽음과 폭력, 상실의 아픔을 담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더 이상 상처에게 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대사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다독여주며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죽음 이후의 세상을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긴장과 따스함이 교차하여 흐르고 있어 쉽사리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상처를 딛고 전생의 기억을 잊은 채 새로운 삶을 얻게 된 두 주인공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두 주인공의 가족이 앞으로 겪게 될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역시 알 수는 없다. 작가는 독자에게 주인공과 그 가족, 친구들, 그리고 왕따 가해자들과 그 가족이 겪는 끝없는 아픔과 회한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함으로써, 이 땅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염원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 마음오를꽃이란?
제주도 설화 ‘서천꽃밭’에 피어있는 환생의 꽃 중 하나. 죽음 이후, 중음의 세계에서 윤회의 심판을 받은 령들은 서천꽃밭에서 환생의 꽃들을 먹게 된다. 뼈오를꽃과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오를꽃이 살아있는 육체를 완성시켜준다면, 마음오를꽃은 육체에 깃들 ‘마음’을 만들어주는 꽃이다. 마음오를꽃을 먹는 순간 령체는 인간계에서 환생하게 된다.
작가의 말
내게도 지옥을 건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겪어내지 못했다면 이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서 청소년 자살률 1위의 기록은 통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입니다. 그 현실의 불행을 직접 겪어낸 사람으로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을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티벳 사자의 서』와 제주도 설화 원천강, 서천꽃밭 그리고 바리데기 설화가 이 소설의 기본 얼개입니다. 아시아의 민속문화에 기반한 얼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구씻김굿, 천도재 등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소설적 장치입니다.
소설을 더욱더 풍부하게 끌고 가려는 장치인 것이죠. 나는 이 소설을 종교적 신념이나 특정 종교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그냥 소설입니다. 나는 이 소설을 삶의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과 깊은 대화를 하기 위해 썼습니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한판의 씻김굿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청소년들의 혼란과 불안, 교육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또한 큰 위로가 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찬찬히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문장과 문장을 이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청소년들 스스로 어떤 질문을 쏟아내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어른들이 쉽게 답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질문, 금지된 질문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질문이 있어야 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소설이 대화를 위한 문(門)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여러분을 비롯한 독자와 작가와의 대화를 위해, 내가 먼저 문을 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