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혁’이라는 한국 경제의 덫
뮈르달 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이어 『개혁의 덫』에서 지은이는 왜 오늘의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경제 흐름을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게 할 방법은 없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은? 작금의 경제 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라는 변수 외에도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지은이가 이런저런 사실의 적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개혁’이라는 ‘덫’에 걸린 상태라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개혁론자들은 ‘개혁’을 내걸고 집권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부정적 유산, 특히 그들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절대악(絶對惡)으로 규정해 온 비민주적 정권의 제도 및 정책과 절연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대안의 존재 여부인데, 마침 외환 위기 이후 세계화는 필연이라는 인식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과거와는 정반대이다. 시장 중심적 접근 방식은 개발연대의 정부 개입적 접근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그 골치 아픈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는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다. 투명 경영,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가공 자본의 창출에 의한 1인 소유 및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2.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우선 투자가 붕괴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실업난이 이어졌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 고민으로 떠오르고, 구조 조정 과정에서 물러난 중년층 실업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일찌감치 퇴출되거나 소자본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소비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소비 진작 정책은 신용 불량자만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 가정 파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 노동 시장을 유연화한다고 비정규직을 늘린 탓에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커졌다.
반면 주식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주주들의 영향력이 강해진 결과 기업들의 배당률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기업들의 이익이 과거와 같이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 대체로 상류층에 속하는 - 주주들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절대 빈곤층의 급증이다. 외환 위기 이후 절대 빈곤층은 국민의 5.9%에서 11.5%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과거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평등한 수준에 속하던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이제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게 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을 제치고 멕시코 등 남미 국가의 대열에 끼게 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이다.
지은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은 진보를 표방했다. 진보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상징한다. 그런데 현재의 개혁은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몰아내고 있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과거와의 절연만을 서두른 결과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3. 우리 경제, 그렇게 문제였나?
저자 장하준에 따르면 한국이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 채택했던 경제 정책을 다시 채택하면 된다. 문제점만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말이다. 그에 대해 쏟아지는 무수한 반론의 요지는 한 가지,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그게 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경제사적으로 제시한다.
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은이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 하나에 답해야 한다. 과거의 우리 경제가 과연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느냐는 질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선진국들의 소득이 2배가 되는데 7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다. 반면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 가량으로, 40여 년이 지나면 소득이 8배가 되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물론 이런 성장률 하나만으로 우리의 개발연대를 무조건 미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소득이 가나의 반이 채 안 되고, 아르헨티나의 5분의 1밖에 안 되던 나라, 텅스텐,생선,해조류 등 1차 산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던 나라가 이제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2배 가량 되는 소득에,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 등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출국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뿐인가? 그런 속에서도 소득 분배가 상당 정도 평등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민 전반의 생활이 향상되었다. 지은이는 그와 같은 성과는 제대로 평가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4. 고르디우스의 매듭, 재벌 문제
그렇지만 그때쯤 되면 다른 강력한 반론이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다름없는 재벌 문제이다. 재벌들의 체질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장하준 역시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재벌 = 공공의 적’이라는 무모한 일반화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비판의 요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 구조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은이에 따르면 이런 인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비율로 따져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보다 더 많은 자금을 주식 시장을 통해 동원했다고 한다. 또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고도 성장기 일본이나 1980년대 유럽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재벌에 대한 비판 하나하나에 대해 실증적으로 근거를 대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이다.
이 책 『개혁의 덫』은 끝날 때까지 이런 식의 반박이 거듭되면서 거의 모든 경제 문제를 다룬다. 세계화나 금융 허브, FTA 협정,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과 같은 중차대한 경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에서도 장님 코끼리 더듬듯 하는 현장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일반 상식은 무너지게 된다. 경미한 인플레는 오히려 성장을 촉진한다든가, 정치 논리의 개입이 왜 필요한지, 다국적 기업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그렇다.
그 모두가 과거 경제 성장 정책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재도입함으로써 지금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은이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론자들이 자신이 주장하던 개혁과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단절하고자 그렇게 노력해 온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 경제는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라는 변수 외에도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한다고 한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