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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의 사과 - 문학과지성 시인선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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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왕모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07월 23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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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의 사과 - 문학과지성 시인선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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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4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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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13 978893202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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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연왕모
시인,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개들의 예감』이 있다.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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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82

출판사 리뷰

비탈진 감각으로 끌어당긴 생생한 언어
그 아슬아슬한 감정으로 드러낸 비밀스런 아름다움


연왕모 시인의 두번째 시집 『비탈의 사과』(문학과지성사, 2010)가 출간되었다. 도정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청춘의 두 얼굴, 절망/희망의 괴리에서 비틀거리던,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불태울 듯한 열정을 내재한 첫 시집 『개들의 예감』(문학과지성사, 1997) 이후 무려 13년 만이다. 사실, 시단을 떠난 듯했던 시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요즘을 감안한다면, 13년이란 시간에 ‘무려’라는 수식를 붙이기 무색해보인다. 하지만 그의 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이를 압도하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맞물려 아름답게 펼쳐지던 선형의 상상력을 잊지 못하여 그의 새 시집을 기다렸으리라. 여기, 13년이라는 먼 시공간을 돌아 이제 다시 그가 그의 시로 돌아왔다.
좀더 나직한 목소리로, 생의 아름다운 비밀을 쥐여주는 이번 시집 『비탈의 사과』는 독자들을 “심장이 꺼내놓는 말”로, 여전히 위태로운 감각을 유지한 채 연왕모의 ‘진심’ 속으로 인도한다. 여전히 강렬하면서도, 존재 본연의 고독을 잃지 않는 4부 61편의 아름다운 시들은 이제 한층 더 심화되고 넓어진 그의 감정의 너울 그 너머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 예감의 세계로부터

내 안의 깊은 길을 흘러
그들의 마을로 간다
그들의 공간 속에서
그들은 낯선 기둥처럼 우뚝 선다

[……]
그들의
마을 앞에서
그들을 본다

나는 숨을 쉰다 ─「공감대」(『개들의 예감』, 문학과지성사 1997) 부분



첫 시집 속 시인은 길 위에 있었다. ‘떠돎’으로 기억될 이 여정은, 폭풍 같은 청춘을 상징한다. ‘헐떡이는 개’로 은유된 그의 젊은 날의 자화는 외부와의 단절로부터 절망하고, 아파한다. 시인은 “그들의 마을로 간다.” 하지만 ‘그들’의 마을 앞에 서 있을 뿐 그들의 마을로 들어갈 수 없다. 그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고, 그는 그들의 마을 앞에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해설 「몸 속에 갇힌 몸」, 박혜경). 그 앞에서 그는 무엇을 하는가. 절망은 아니다. 슬픔도 아니다. 그는 숨을, 존재의 근거이자 생의 근거인 숨을, 쉰다. 그들과 ‘다르다’는 아득함 앞에서 그는 숨을 쉰다. 그럼에도, 그가 느끼는 공감은 스스로가 길 위에서 얻는 위안이다. 우주의 순환처럼 지독한 절망과 한줌의 위로, 그 뒤를 따르는 고독의 골짜기를 그는 “입 안 가득 피”를 문 채, 그러나 아름답게 떠돌았다. 오랫동안, 마치 다 잊겠다는 듯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 비탈 위로 떨어진 사과

그런 그가 새 시집 『비탈의 사과』을 들고 돌아왔다. 13년 만이다. 그 먼 시간을 돌아왔을 그가 내려놓는 시는 어떤 것들일까.


스스로 멎어 있음은 혼돈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무들이 흔들렸다 ─「늪의 입구」 부분


이번 시집의 첫 시 그 결구에서 시인은 “스스로 멎어 있음은 혼돈을 부”른다고 말한다. 그렇다. 적어도 그의 시에서는 옳은 말이다. 시인은 시집을 내지 않는 동안도 흔들리며 스스로 멎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서성인 흔적을 시집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걷는 동안, 대개의 구도자들이 그러하듯 그는 깊어지고 깊어졌다. 마음을 베어무는 듯한 강렬한 이미지를 버리고 섬세한 언어로 가슴의 움직임을, 그 흔적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이전 시집에서 죽음, 허무와 달라붙어 치열하게 싸웠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생의 한 단면인 그것들과 거리를 두고 그(것)들을 꼼꼼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죽음, 고독, 폐허와 단절에 직면해 있고, 이를 인식하고 있다. 세계는 “인공조명” 아래서 “양생(養生) 중”이고 “들어가고 나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투성이”이다.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듯, 시인의 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시는 분명 달라져 있다. 이제 그는 느리게 걷는다. 그 느림 속에서 꿈을 꾼다. 그 꿈의 해몽을 꿈꾼다. 이제 그가 이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보여주는 이미지는 날선 이빨의 그것, 헐떡이는 그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어슴푸레한 바람에 닳고 닳아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 드러난다. 상처 딱지를 밀고 나오는 새 살처럼. 때론 아프게, 때론 간지럽게 돋아난다.



+ 현대의 신전 그리고 신화

그렇게 돋아난 것은 신전이다. 그가 각 장에 붙인 제목(조명, 문, 바닥, 기둥)에서 볼 수 있듯 그는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의 신전을 세운다. 그 신전에는 우리가 알고 있으나 볼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믿고 있는 ‘신화’가 깃들어 있다.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이 신화에는 우리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는 이 세계를 메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은밀한 목소리로 깨운다. 그 노래는 콘크리트 벽의 세계(「양생하는 건물」 「검고도 붉은 인디언 사내」)를 지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11층의 세계(「전망 좋은 방」)를 넘어, 실은 온갖 알 수 없는 용어로 빽빽한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뭘 찾는데요」)로 표출된다. 이 눈부신 “인공조명” 아래 드러난 생은 모두 적나라하다. 현대의 신화는 그렇다. ‘적나라함=비밀’은 새삼 놀랄 필요도 없는 당연한 도식이다.


누군가 램프를 들고 내 곁을 지나갔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살갗의 숨구멍을 열어놓을 때
검은 소가 내게 다가와
싱싱한 어둠의 가죽을 덮어주었다
거친 털들이 내 몸에 쓸릴 때마다
그 순간의 마디마디로
들풀 냄새가 피어났다
그들의 몸짓 가운데
내 몸은 자꾸만 아득해졌다 ─「블랙아웃」 부분


그런데 시인은 이에 대한 반발을 숨긴다. 아니 모든 평가를 보류한다. 그것은 그의 몫이 아니다. 이빨을 들이밀고 물어뜯는 것을 그는 이제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이면의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가 모든 감정을 감춘 채 아니 제거한 채 보여주는 세계의 풍광은, 신기하게도, 기묘하고 아름답다. 마치 보들레르의 시처럼. 이 아름다움의 ‘비밀’은 그가 드러내는 것이 생의 ‘비밀’인 까닭이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비밀들은 지금-여기를 사는 사람들의 근거이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 눈부시다. 이것이 아스팔트 벽으로 둘러싸인 신전 외벽 위에 그려진 신화이다.

시인은 신전의 벽을 더듬어 신화를 읽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는 그 벽 속으로 다가가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 세계는 가깝고도 낯설다. 이 신화의 배경은 현생이고 주인공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과 ‘우리’다. 바로 여기서 시집 『비탈의 사과』의 진정한 의미가 형성된다. 이 시집은 우리의 “그림자들이” 살고 있는 세계다. 시인이 돌입해 들어간 이 시의 세계에는 이제 보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시인은 말한다. 성급할 필요가 없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흔들리지 않는 생이야 말로 혼돈이 아닌가. 그가 건네주는 것은 시라는 사과이다. 이 사과는 인간이 신의 영역에서 쫓겨나게 된 계기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사과’는 신화와 우리 사이의 매개물이다. 그는 이 사과를 비탈 위에 올려두었다. 그 비탈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 사과는, 있으려는 힘과 굴러 떨어지려는 방향 사이의 긴장으로 팽팽하다. 그거 아니겠는가. 신화와 지금-생의 관계처럼 도저히 느슨해질 수 없는 생의 방향이다.



+ 당나귀가 가는 길

이슬이 내려오는 숲을
걷는다
등에는 주인의 따뜻한 몸을 지고
한 나무를 지나면 또 한 나무가 있는
길을 걷는다

주인은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당나귀 엉덩이도 두드리면서
나무들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

당나귀가 멈춰 서서
숲의 향기를 맡으면
주인은 나뭇가지에 손을 뻗어 열매를 딴다 ─「당나귀가 가는 길」 전문


이렇듯 연왕모의 새 시집 『비탈의 사과』는 비밀의 시집이다.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삶의 드러난(그래서 꼭꼭 숨겨진) 이면을 응시한다. 그런데, 정작 시인은 사과 한 알을 던져주듯 그러고 나서는 더 아무 말도 건네려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과 당나귀처럼 노래를 부르며 “하늘도 보고 땅도 보”면서 서서히 물빛 생의 비밀 속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게 신화가 넘치는 이 시대에 시인이 할 몫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시집의 비밀은, 사실 그게 전부인지도 모른다.

추천평

그의 말과 감정은 호흡의 형태를 빌려 바깥을 향해, 타인을 향해 가려 하지만 그의 기질적인 망설임으로 인해 외출(外出)하지 못한다. 고백의 좌절 이후 편지지에 쏟아진 붉은 잉크는 차라리 한 병의 피에 가까워 보인다. 심장이 꺼내놓는 말이 문학적인 표현을 얻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피가 검은 잉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 산화(酸化)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가.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오자 그의 세계엔 빛이 찾아온다. 그가 겪은 상처와 시련은 ‘희다’라는 색채의 이미지와 더불어 표백된 것처럼 보인다.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성화(聖化)된 느낌과 함께, 그가 쓰고 싶었으나 쓸 수 없었던 편지의 일대기는 끝이 난다. 비록 그가 종이 위에 부려놓으려 했던 말의 소포는 끝끝내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물과 빛이 글쓰기라는 제의의 시작과 끝을 감쌈으로써 그의 세계에는 다시 온화하며 온건한 사랑의 가능성이 싹튼다. 온대의 사랑에 이를 때까지, 열대와 한대를 가로지르는 그의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우리의 자리는 언제나 溫帶//아직도 얼지 않은 물이 꿈을 적신다”(「禁忌 1」, 『개들의 예감』).
얼음 속 그의 얼굴이 온대의 빛 속에서 녹으며 웃고 있다. 사람의 발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그의 유일한 사랑이, 그의 지친 발을 따스한 물로 씻겨주리라. 먼 길을 걸어온 끝에 마침내 자신에게 도착한 그를 위로하며.
허윤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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