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나사를 풀어 새롭게 만드는 이미지로서의 세계…
‘이미 지(知)’에서 ‘이 미지(未知)’로!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399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300번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시집은 이수명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89번으로 나왔던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이후 7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와 더욱 반가움이 큰 이번 시집에는 올해, 제12회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비인칭 그래프」 외 11편을 포함한 68편의 시가 총 3부에 나뉘어 실렸다.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그리고 누구보다도 오랜 동안 성실하게 시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온 시인”으로서 “이미 완주된 길을 하나 내었고 그 길 위에 많은 후배 시인들이 운동하고 있음을”(조강석, 제12회 현대시작품상 심사평) 부정할 수 없는 위치에 이수명이 있다. “일관되게 관습화된 서정시, 시적 주체의 폭력성을 반성하는 자리에서 출발”(박상수, 제12회 현대시작품상 특집/평론)한 그녀의 시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자아, 체험, 추억, 재현 등과 같은 프레임으로” 읽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우주를 펼쳐 보인다. “세계가 잠재적인 것 그 자체라는 생각, 그것이 부분적으로 현행화된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좁은 의미의 현실이라는 생각, 그렇다면 ‘나’라는 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현행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을 말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시인과 공유할 수 있다면, “이 세계에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신형철, 해설) 멋진 일을 이 시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수명의 시를 (통념적인 의미에서의) ‘해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에” 회의적이라고 고백하면서 “매번 다른 기계들과 접속하면서 자기를 갱신하는 개방적인 시스템”이라는 들뢰즈의 ‘기계적’의 의미를 상기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이수명의 시를 읽는 일은 “내가 하나의 기계가 되어서 그것과 접속하고 함께 작동하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수명의 시와 접속하여 작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엄습하는 ‘낯섦’은 바로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상어는 물론이거니와 시어로서도 괴팍하게 느껴지는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이수명 시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인접성의 규율을 조직적으로 교란”하는 방식으로 “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의 문장 성분들을 조합”하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간과 공간이 각자 이상하게 비틀려 있고, 여러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문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과 조합의 분란은 독자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이 시집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방식으로 문장 성분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매번의 과정은 이 세계의 나사를 한 번 더 조이는 일일 수 있”는데, 이때 “시로 세계를 바꾸려” 하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유사성과 인접성의 통념적 구조를 해체하는 문장들을 생산”하여 “현존하는 세계의 나사들을 푸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시인의 세계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 자체로, 이미지들이” 된다.
‘이미 지(知)’를 ‘이 미지(未知)’로 바꾸는 시인의 작업을 함께하다 보면 독자들의 ‘당황’은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 세계의 다양한 ‘발생’들의 한 국면을 그의 시 속에서 이미지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그의 시를 통해 ‘잠재하는 세계’, ‘미지’에 가닿게 될 것이다.
“이질적인 것들을 한데 모으는 지성의 작용과, 그것을 이미지를 통해 벼려내는 감수성의 마감이 이제는 별일 없이 예사롭게 발휘되고 있을뿐더러 더욱 풍부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그의 앞에 놓인 어떤 미지도 이제는 한국 시의 축복이 되리라 확신한다.”
_조강석, 〈제12회 현대시작품상 심사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