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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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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어둠의 시대

이덕일 | 김영사 | 2004년 05월 07일 리뷰 총점9.6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8점
편집/디자인
4.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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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4년 05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09쪽 | 535g | 153*224*30mm
ISBN13 9788934914587
ISBN10 8934914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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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1961년 생으로 충남 아산에서 자랐다.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다. 언제나 발표하는 저술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역사 인... 1961년 생으로 충남 아산에서 자랐다.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다. 언제나 발표하는 저술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왔다. 그는 모든 권위와 기득권을 거부하며 주류 학계에 편입되지 않고, 그들이 외면하거나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방송, 신문, 잡지의 기고 활동과 대중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열정을 함께 나누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조선 왕 독살 사건』,『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조선 왕을 말하다』,『근대를 말하다』등은 이러한 활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쓰는『조선왕조실록』역시 학습과 지식 전달 위주의 다이제스트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을 읽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진정한 역사서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10년간의 구상과 5년간의 집필이라는 그의 끈질긴 노력 덕에 전 세계 어느 국가도 갖지 못한 방대한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마침내 그 빛을 제대로 보게 됐다.

뛰어난 강연으로 기업체를 비롯하여 중앙공무원교육원의 고위공직자 과정 최우수 강사로 선정되는 등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사학자로 평가받는다. 1차 사료 강독과 교양한국사 강의를 진행하여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는 한편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통해 대중을 역사현장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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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박해로 점철된 삶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생태학자 정약전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서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도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 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으로 쓰고 있었다. 자(玆) 자는 흑(黑) 자와 같다’고 쓸 정도로 시대의 어둠을 두려워했다(2권 216p). 그는 아우 정약용처럼 거물 정치가는 아니었으나 정약용이 재상이 될 것을 두려워 한 노론 벽파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2권 20p). 이러한 비열한 행각에 염증이 난 정약용은 벼슬을 거부하기도 한다. 정약전은 결국 천주교를 빌미로 집권 세력이 반대 정파를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신유박해 때 유배를 떠나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정약전의 삶은 학문에 정진하는 정약용의 삶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유배지 흑산도에서 천시받는 계층이었던 어부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에 동화되었고, ‘복성재’라는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의 저서는 정부의 소나무 정책을 비판한 「송정사의」나 어류 생태 연구서 『자산어보』에서 볼 수 있듯이 실용적인 관점에서 민중을 위해 씌어진 것이었다. 정약용의 「선중씨묘지명」에 따르면, 섬사람들은 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서로 자기 집에만 있어 달라고 싸우기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2권 202p). 그가 정약용이 해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빨리 아우를 보고 싶은 마음에 흑산도 경계 내에서 강진에 가장 가까운 우이도로 옮기려 할 때도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 1년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그가 우이도에서 아우를 기다리다 생을 마치게 되었을 때, 그의 인간됨에 감화된 우이도민들은 전도적인 장례를 치러 주었다. 정약용은 ‘유배객이 다른 섬으로 이주하려 하자 원래 있던 곳의 섬사람들이 길을 막고 남아 있어 달라고 했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다.… 선대왕(정조)께서 매번 “형이 동생보다 낫다”고 하였으니 아! 성명께서는 형님을 알아보셨던 것이다’라고 그의 덕을 기록하고 있다(2권 259p).
그의 죽음 후에 정약용이 ‘나를 알아주는 분이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경집 240권을 새로 장정해 두었는데, 장차 그것들을 불사르지 않을 수 없겠구나’라며 탄식할 정도로 그들은 단순히 형제라기보다는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지기(知己)였다. 그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지만 각자의 유배지에 갇혀 있었기에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얼굴 한 번 볼 수가 없었다. 정약용은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흑산도쪽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눈물을 삼키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지 않고 편지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우애를 키워나갔다. 정약전은 아우처럼 학문에 전념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아우의 질문을 받으면 참고서적 하나 없는 흑산도에서 놀라운 수준의 식견을 보여주곤 했다. 『자산어보』는 문화적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바로 이러한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안목이 빚어낸 역작으로 현대의 어류학자들도 미처 조사하지 못한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정밀하다 한다. 모든 사대부가 경전 연구에 매진하는 현실에서 민중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어류 생태 연구를 진행한 정약전이야말로 진정한 실학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교리연구가이자 순교자였던 정약종

조선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은 정약용 형제의 매형이었고, 조선 천주교회를 창립한 시조로 꼽히는 이벽은 그들의 큰형 약현의 처남이었다. 정약용 형제와 천주교는 이렇듯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정약전과 정약용이 제사 문제 등 성리학과 충돌되는 면 때문에 천주교를 저버린 반면, 늦게 받아들인 정약종은 끝까지 신앙을 고수했다. 그는 제사를 종용하는 부친과 형제들을 떠나 타향에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잠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양반 지식인 신자로서 자신의 역할은 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임을 깨닫고 조선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 『주교요지』를 저술했다. 『주교요지』는 당시 사람들이 천주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인식 수준을 잘 보여준다. 신유박해 때 정약종은 스스로 잡혀들어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재판 자체를 비판하며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형장에서 정약종은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목덜미를 형틀에 대고 하늘을 보았다고 한다. 자신은 떳떳하므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죽겠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망나니가 헛칼질로 목을 반밖에 자르지 못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 성호를 그었다고 전해진다.

당대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인간 중심의 새로운 사상으로 폐쇄적이고 닫힌 체제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던 정약용 형제들은 이렇듯 모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그들의 치열한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준엄한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고난의 삶 속에서 낡은 조선사회를 혁신할 새로운 패러다임 실학을 완성한 정약용

실학의 완성자, 개혁군주 정조의 오른팔, 5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 문학·역사·철학·과학기술 등 학문의 전 분야를 섭렵한 대천재, 행정의 최일선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 우리 역사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위대한 지성 정약용.
그러나 실제로 그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형에 가까웠고,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배권력의 집요한 공격으로 만신창이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이벽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1권 74p), 성균관에 입학한 지 6년이 지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정조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1권 78p). 그러나 정조의 혹독한 훈련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는 개혁의 중심이자 최대의 사상가로 성장하게 된다. 정조는 궁궐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전들과 과학기술 관련 서학서들, 병법서 등을 정약용에게 주며 공부하게 했고, 종종 어려운 과제를 내주어 정약용은 종종 밤을 새워가며 해결에 골몰해야 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그는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 세력에 둘러싸인 정조를 현명하게 보좌하며 합리적 행정과 산업의 근대화를 선도하는 역사상 최초의 계획도시 화성의 대역사(大役事)를 이룩하게 된다. 또한 암행어사로 민생을 살피거나 지방관으로 복무하며 이상적 개혁사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데 매진했다. 그가 곡산에서 부사로 재직할 때 펼친 선정은 나중에 그가 국문을 당할 때 지배층이 민심이 두려워 그를 사형시키지 못할 정도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2권 123p).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정조 사후 멸문지화에 가까울 정도로 참담한 가문의 몰락과 기약없는 유배형 다음에 나타난다. ‘총명한 선비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을 만나 사람 소리가 없는 곳에서 외롭게 지낸 뒤에야 비로소 경전의 정미한 뜻을 깨달을 수 있다’(2권 135p). 그는 억울함에 가슴을 치고 차가운 인심과 경제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기나긴 유배생활을 오히려 학문에 정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승화시켰다. 그는 경전 연구를 통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성리학을 새롭게 해석했고, 행정·군사·조세·형법 등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제도를 혁신할 방안을 모색해 총체적인 사회개혁안으로 완성시켰다.
한편 그는 몰락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자식들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편지를 통해 숙제를 내주기도 하고 학문과 문학을 논하며 술버릇이나 몸가짐에 대해 잔소리에 가까울 정도로 염려하기도 했다(2권 131p). 넷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유배지에서 들었을 때에는 가슴이 끊어지는 아픔을 혼자 감내하면서도 부인의 슬픔을 더 걱정해 부인을 각별히 보살피도록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다감한 남편이기도 했다(2권 128p).
그는 현실의 부조리와 삶의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자찬묘지명」을 비롯해 안타깝게 스러져 간 당대 인물들에 대한 묘지명을 저술하며 정약용은 불의한 시대의 검열을 넘어 후세에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데 주력한다. 그는 현실에서 패배한 듯 보였으나 결코 희망을 묻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부당한 박해도 뼈저린 외로움과 생활의 누추함도 그의 정신을 잠식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이렇듯 정약용을 통해 삶의 모순을 뛰어넘는 위대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처음 신유년 봄에 옥중에 있을 때 하루는 근심하고 걱정하다 잠이 든 꿈결에 어떤 노인이 꾸짖기를 “소무(중국 한나라 때 흉노의 포로가 되었던 인물)는 19년도 참고 견디었는데 지금 그대는 19일의 괴로움도 참지 못한다는 말인가”라고 했었다. 옥에서 나올 때 헤아려 보니, 옥에 있던 것이 꼭 19일이었다.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헤아려 보니, 경신년 벼슬길에서 물러나던 때로부터 또 19년이 되었다. 인생의 화와 복이란 정말로 운명에 정해져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 2권 265p 「자찬묘지명」 인용문 중에서
열한 살 때 부친 사도세자가 노론 벽파에 의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본 정조는 서두르지 않았다. 부친을 죽인 세력에 둘러싸인 외로운 국왕이지만 미래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당색에 물들지 않은 청년들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그를 인내하게 했지만 이는 부친의 원수와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대고 웃어야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이었다. 인내 속에서 정조는 신세력이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런 정조의 기다림 속에서 정약용 형제가 자라고 있었다.
- 1권 44p에서

개혁과 수구의 대립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조선 후기, 그 희망과 좌절의 기록을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드라마로 만든 역사서

왜란과 호란이 몰고 온 혼란과 피폐한 현실 속에서 신분제 등 봉건체제의 모순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던 조선후기. 사회 전반에서 곪아 터지고 있던 문제들에 총체적으로 대응할 사회개혁 프로그램이 절실히 요구되던 시기. 그러나 집권 노론은 성리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켜 사회를 더욱 경직되고 닫힌 체제로 몰아갔다.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유교 이념을 강조하며 왕권을 약화시키고 양반 사대부의 특권을 강화시키며 조선을 집권층의 소수 양반만을 위한 나라로 만들어갔다. 노론의 뿌리인 서인은 인조반정으로 마음에 안 드는 왕을 갈아치우는가 하면 효종, 현종, 경종, 사도세자 등 노론과 생각이 달랐던 국왕이나 세자는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노론 벽파가 주자학을 절대적인 진리로 설정하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정파를 사상탄압을 통해 제거했다는 것은 현대 한국사의 비극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조는 반란과 암살의 위협 속에서 초계문신제도 신설, 규장각 설치 등을 통해 신진세력을 양성하며 사회경제적 개혁과 문예부흥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조심스레 관철해 나갔다.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용상에서 그가 믿고 의지했던 것은 바로 정약용 형제들 같은 새로운 사상과 지식으로 무장한 청년들이었다. 그러한 정조의 이상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가 계획하고 정약용이 설계한 미래지향적 도시 ‘화성’의 건설이었다. 화성은 성곽 건설에 선진 기술과 임금 노동을 도입하고, 상업과 농업의 진흥을 위한 기반을 미리 갖춘 최초의 근대적 도시였다. 그러나 조선 전체를 ‘화성’처럼 만들고 싶어하던 그의 꿈은 의문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어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게 된 노론 벽파의 후견인 정순왕후가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남인과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된다. 그로써 열린 사회를 위한 정조와 정약용 형제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이후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아가는 암흑시대가 계속되다 마침내 일제의 강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도권 역사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한편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너무 쉽고 재미있게 풀어준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대중역사서의 개척자 이덕일. 무미건조한 사실의 나열처럼 보이는 역사는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피와 눈물을 지닌 인간이 펼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한국사의 첨예한 쟁점들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그의 필치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중립적인 서술과 우리 역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 지배적이었던 역사서 저술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인물로 보는 조선 후기사 인식의 결정판이자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선 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이기도 하다. 1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는 사후 3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실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송시열과 노론이 조선 사회를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로 만들고 이를 명분으로 노론 일당독재를 구축하는 과정을 그렸으며, 2부 『사도세자의 고백』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신병자여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노론 일당 전제에 맞서 싸우다가 살해된 것임을 밝혀냈다. 3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는 주자학 유일사상과 노론 일당독재의 폐쇄 체제에 맞서 열린 사상으로 신사회를 지향했던 정조와 정약용, 그리고 그 형제들의 인간적인 드라마와 좌절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책은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 심한 논란에 휩싸여 있는 우리 사회에도 여러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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