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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6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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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4쪽 | 276g | 152*225*12mm |
ISBN13 | 9791185742168 |
ISBN10 | 1185742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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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김유정 단편선(동백꽃 외)을 읽고
독서토론동아리
책세상
2017.4.22.
김유정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순간 ‘아, 문장이 어렵고 길다’라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강원 경기지역 사투리를 그대로 담아내어 토속적인 색채가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자 모처럼 번역어가 아닌, 그리고 현대 산문이 아닌 우리나라 전통적인 고유 언어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뿌듯하고 좋았다.
응칠이는 뒷짐을 딱 지고 어정어정 노닌다. 유유히 다리를 옮겨 놓으며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호아든다. 코는 공중에서 벌렸다 오므렸다 연신 이러며 훅, 훅. 구붓한 한 송목 밑에 이르자 그는 발을 멈춘다. 이번에는 지면에 코를 얕이 갖다 대고 한 바퀴 비잉, 나물 끼도 돌았다.
- 김유정 <만무방> 중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소리내어 읽어야한다. 어떠한가. 운율이 느껴지는가. 소리내어 읽어야만 응칠이가 송이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역동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김유정의 작품이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김유정의 작품은 우리나라 판소리나 시조에서 느낄 수 있는 구어적 운율을 그대로 산문으로 담아내었다는 데서 참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김유정의 단편에는 비슷한 모습의 아내와 남편의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폭력적이고 무능하며 한탕주의에 빠진 남편과 미련할 만치 현실 순응적이고 순종적인 아내 말이다.
<금따는 콩밭>에서 남편은 소작하는 콩밭에서 금을 캘 수 있다는 소문에 속아 콩 수확을 내팽겨치고 땅을 파기 시작하는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곡식을 빌리는 건 아내 몫이었다. 금을 캐기위해 산신에게 떡으로 제사를 지내려 쌀을 빌리는 것도 아내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가 재수없게 제사지내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며 매를 맞고 만다. <소낙비>에서도 어리고 여린 아내는 폭력적인 남편의 노름자금을 융통하려 동리 부자양반 ‘이 주사’에게 몸을 맡긴다. 남편은 어떻게 돈을 마련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은 듯 머리까지 예쁘게 빗어주며 아내를 욕망의 도구로 사용한다. <땡볕>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고 뱃속에서 죽어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아내는 ‘죽어도 수술은 못하겠다’며 병원을 나서지만 그것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미련하게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위였다. <산골 나그네>의 어린여자나그네는 자기혼자서 팔자를 고쳐 편하게 살수있음에도 불구하고 병든 남편을 끝까지 봉양하는 선택을 한다.
현실순응적인 ‘아내’의 캐릭터는 한번도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력이 강한 부녀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흔히 ‘아이고 내팔자야. 내가 서방복이 없어서’라는 신세한탄을 할법도 한데 말이다. 작품에 작가의 생애가 반영된다는 구조주의적 해석을 펼치는 평론가들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죽음이 유정에게 프로이드적 모성 콤플렉스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유정이 몇 차례 사랑에서 실패를 겪었다는 사연을 들은 순간 그가 여성에 대한 견고한 이상향을 지녔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완벽한 모성에 대한 갈망과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본 관념의 충돌이 현실적인 사랑의 완성을 방해했을 수 있겠다. 실제로 어머니의 사진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는 일화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데아를 혼자서 그려나갔으리란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짝사랑하던 여인을 스토킹하거나 협박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도 남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그렸던 여성상과 유리된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유정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은 자신만의 여성상을 표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생애에 걸쳐 확립된 유정의 여성관이 뚜렷하게 작품속에서 녹아난 것이다.
당시는 <동백꽃>, <봄봄>처럼 농삿일의 주된 노동력인 남성이 주도적인 농업사회에서 <따라지>처럼 값싼 노동력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시작되던 과도기였다. 남성의 입장에서 시대변화를 재빨리 읽지 못하고 역할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무능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정처럼 고등학문을 접한 인텔리들은 일제강점기에 지식인층으로서 사회참여가 제한적이었던 상황에서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극도의 죄책감을 느꼈으리란 생각이 든다. 정체성의 혼란과 스스로 무능함에 대한 죄의식은 자기파괴적인 모습 또는 외부로의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남성들의 폭력적인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에서 분출되면 가정폭력과 부도덕한 매춘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유정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남성들이 대부분 가난, 부인의 매춘 등에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 유정 자신의 무기력한 성향을 투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20세기 한국문학은 지배와 저항, 수탈과 저항의 이분법적인 도식에서 친일문학과 저항문학으로 나눠져 연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김유정은 최대한 사실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담담하게 농촌사회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의 현실을 고발했고, 해학 뒤에 이어지는 극멸한 애수를 이용해 피폐한 농촌사회의 현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표현해냈다. 작가자신은 어떠한 가치판단도 배제하고 오직 해학과 바로 뒤에 이어지는 우수로서만 작품을 완성시킨 것이다. 김유정의 해학문학이 가치있는 이유는 이분법적인 근대 학문풍토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시대에서 그 대안으로서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문학적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17. 4. 23
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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