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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4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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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70MB 파일/용량 안내
글자 수/페이지 수 약 11.6만자, 약 3.7만 단어, A4 약 73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ISBN13 97889329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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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년에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1781년에 익명으로 첫 번째 드라마 『군도(群盜, Die Rauber)』를 자비로 출판하고, 그다음 해에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질풍노도’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군도』의 혁명적인 내용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실러는 1782년 9월에 공국을 탈출해서 만하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튀링겐 지방의 바우어바흐(Bauerbach)로 피신해 리터(Ritter)라는 이름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한다. 1787년 7월 실러는 바이마르로 가서 괴테의 친구들인 헤르더와 빌란트를 만나고 이들의 영향으로 역사학과 그리스 고전 연구에 빠진다. 1788년 9월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괴테와 만나고 괴테의 주선으로 예나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게 된다.

사회적 신분을 얻게 된 실러는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에게 구혼해 1790년 2월에 결혼한다. 실러는 열정적으로 역사 연구에 매진해 [30년 전쟁사(Geschichte des dreißigjahrigen Krieges)](1791∼1793)를 비롯한 많은 역사 논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1791년 1월에는 심한 발열로 중병이 들어 그해 여름까지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태에 빠진다.

병으로 교수직을 내놓은 실러는 칸트 연구에 몰두한다. 1794년 초에는 예나로 거주지를 옮긴다. 1795년 『호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호렌』에는 헤르더, 피히테,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요한 하인리히 포스와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하자 괴테와 함께 자신들을 비방하는 문인들을 공격하는 2행시 모음집인 [크세니엔]을 실러가 1796년부터 발행하는 『문예 연감(Musen-Almanach)』에 발표하게 된다.

1797년은 실러의 “발라드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많은 발라드(담시)가 나왔다. 그 가운데 [장갑(Der Handschuh)], [잠수부(Der Taucher)], [종(鐘)의 노래(Lied von der Glocke)], [폴리크라테스의 반지(Der Ring des Polykrates)], [이비쿠스의 두루미들(Kraniche des Ibykus)]이 유명하다.

1799년 바이마르로 이사한 실러는 30년 전쟁(1618∼1648)의 비극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 『발렌슈타인(Wallenstein)』과 시 [종의 노래(Das Lied von der Glocke)]를, 1800년에는 『메리 스튜어트(Maria Stuart)』를, 1801년에는 『오를레앙의 처녀(Jungfrau von Oreans)』를 연이어 완성한다. 1802년에는 귀족 칭호를 수여받아 프리드리히 폰 실러로 불리게 되었다. 1803년에 실러는 『메시나의 신부(新婦)(Die Braut von Messina)』, 1804년에 『빌헬름 텔(Wilhelm Tell)』을 차례로 완성하고 『데메트리우스(Demetrius)』를 작업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한다.

실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실러가 죽었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실러는 1805년 2월부터 실제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실러는 5월 1일에 극장으로 가는 길에 괴테를 마지막으로 만났고, 9일에 폐결핵으로 인한 폐렴으로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1805년 5월 12일에 바이마르의 성 야곱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1826년 이장을 위해 발굴한 유골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1827년 12월 16일 바이마르에서 새롭게 건설된 공동묘지의 ‘군주 묘역(Furstengruft)’에 매장하지 않고 안치되었으며, 나중에 괴테도 본인의 바람에 따라 실러 옆에 놓이게 되었다.

실러는 평생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했고,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명예심과 열정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에게 이런 의지를 부여한 것은 뜨겁고 격렬한 감정으로, 더 높이 비약함으로써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실러는 비극적 운명을 도덕적 행위나 영웅적 행위 또는 범죄적 행위라도 인간의 위대함을 행해 가는 의지와 현세적 정의의 회복으로 생각되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비극적 운명은 그의 드라마에서 역사적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러는 이 역사적 현실에 의해 운명적인 인간의 삶의 현실을 보여 주려고 했던 위대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간계와 사랑』(1784), 『군도』(1781), 『발렌슈타인』3부작 (1799), 『마리아 슈투아르트』(1800), 『오를레앙의 처녀』(1801), 『빌헬름 텔』(1804)이 있다.
역자 : 김인순
고려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칼스루에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뒤 현재 함부르크에서 연구를 계속학 있다. 논문으로 「로베르트 무질 소설에 있어서 비유의 기능」 등 다수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클라우스 바겐바흐의 『카프카의 프라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알렉산더 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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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35

출판사 리뷰

「도적 떼」는 당시 무명의 실러 작품을 출판하려는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에, 1781년에 익명으로 자비 출판되었다. 그리고 일 년 후, 우여곡절 끝에 만하임에서 초연되어 센세이셔널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실러는 허가받지 않고서 만하임에 여행했다는 이유로, 당시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영주 카를 오이겐 공작에게서 이 주일의 금고형과 저술 금지령을 선고받는다. 실러는 자유롭게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며 국경을 넘어 만하임으로 도망친다. 이후 경제적인 곤란과 질병 등 많은 역경과 싸우며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 나간다. 그러나 1784년 『라이니셰 탈리아』에 〈나는 그 어떤 제후도 섬기지 않는 세계시민으로서 글을 쓴다〉라고 밝혔듯이, 말년의 대표작 「발렌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향한 실러의 열정은 평생 한시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도적 떼」에서 실러는 특히 〈형제의 반목〉이라는 모티프를 이용하여 자유와 반항을 더욱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두 형제 카를과 프란츠는 카인과 아벨처럼 서로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카를은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열광하고 열정과 의욕에 넘치는 활동가이면서, 자유와 정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는 봉건 제도의 폭정과 사회적인 불의에 맞써 싸우고 억압받는 자들을 도와주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도적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서,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하에 많은 선량한 양민들이 학살당한다. 과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카를은 인류의 이 영원한 이율배반 앞에서 깊은 내적인 갈등에 휘말리며, 잔학한 만행과 무법으로는 세상을 결코 아름답게 만들 수 없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동생 프란츠는 냉정하게 계산하는 이기적인 합리주의자이고, 정열의 감성 세계를 부인하는 유물론자이며, 절대주의의 폭군을 대표하는 냉혹한 지배자이다. 실러는 자연의 혜택도 입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한 프란츠의 독백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환경에 지배당하고 또 계산이나 합리적인 것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지 실감나게 펼쳐 보이면서 악인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절실하게 그려 낸다.

카를과 프란츠는 당시의 세계 질서와 주어진 운명에 각자의 방식으로 반항한다. 카를은 사회적 불의와 정치적 억압에 맞서 투쟁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 드는 반면, 프란츠는 책략과 술수의 악의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모두 실패한다. 여기에서 실러는 상황에 몰리고 양심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프란츠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서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하는 카를을 대비시켜 진정으로 자유로운 불멸의 인간상을 보여 준다. 카를은 모든 불의와 핍박에 대항하여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운명을 끝까지 자유 의지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실러는 카를을 가리켜, 무절제한 열정에 휩싸여 많은 만행을 저지르며 심연 깊숙이 추락하지만, 깊은 절망과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고매한 천성을 되찾는 〈방황하는 위대한 영혼〉이라고 말한다.
스무 살 혈기왕성한 젊은 실러의 자유를 향한 강렬한 열정과 힘찬 기개는 「도적 떼」의 형식과 언어에도 그대로 표출된다. 실러는 고전 드라마를 지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일치 원칙 같은 문학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드라마의 형식을 전개한다. 또한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욕설과 거친 표현을 풍성하게 섞어 가며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