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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유병록 | 창비 | 2014년 02월 10일 리뷰 총점8.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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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4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30쪽 | 182g | 125*200*20mm
ISBN13 9788936423711
ISBN10 893642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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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82년 충북 옥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집에서 여러 동물과 어울려서 자랐다. 읍내로 이사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향과 소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에서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산문집 『안... 1982년 충북 옥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집에서 여러 동물과 어울려서 자랐다. 읍내로 이사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향과 소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에서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산문집 『안간힘』을 냈다. 김준성문학상,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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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딱, 뚜껑을 따듯/오리의 목을 자르자 붉은 고무 대야에 더 붉은 피가 고인다//목이 잘린 줄도 모르고 두 발이 물갈퀴를 젓는다/습관의 힘으로 버티는 고통/곧 바닥날 안간힘/오리는 고무 대야의 벽을 타고 돈다//(…)//오래 쓴 연필처럼 뭉뚝한 부리가 붉은 호수에 떠 있는 흰 병을 바라본다/한때는 제 몸통이었던 물체를/붉은 잉크처럼 쏟아지는 내용물을 바라본다//목 아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발 담갔던 호수들을 차례로 떠올리는 오리는/목이 마르다/흰 병은 바닥난 듯 잠잠하지만/기울이면 그래도 몇모금의 붉은 잉크가 더 쏟아질 것이다(「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 부분)

유병록의 시는 ‘몸의 언어’라 이를 만하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이 해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병록 시인은 시적 대상의 육화(肉化)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살아 있는 ‘몸’의 기능을 수행하는 생동감 넘치는 언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붉게 익어가는/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개의 심장”(「붉은 달」), “땅에 묻힌 자가 팔을 내밀 듯/피어나는 꽃” “부러지는 손가락처럼/뚝뚝/꽃잎 질 때”(「완력」), “굽이를 지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물방울, 뼈가 부서지고 체온이 탈출한다 살점이 공중으로 튀어오른다”(「중력의 세계」)에서 보듯, 시인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그려내는 시적 세계의 풍경은 바로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물질성을 띠며 선명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두부는 식어간다/이미 여러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두부를 만진다/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두부」 부분)

유병록은 몸의 언어를 매개로 언어와 현상세계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려 한다. “아무도 부축하지 않는 생은 지구가 업고 간다//구부러진 자들은 두 손으로 지구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구부러지고 마는」)에서 보듯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인 영향 관계에 있으며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딘다는 것을 통찰하는 시인은 사과 한알이 둘로 쪼개지는 틈새에도 “검은 피가 흐르고 흰 뼈가 돋아”(「검은 피 흰 뼈」)나는 존재들의 세계가 있음을 일깨운다. “종이 한장 갖지 못한 자들이 제 몸을 펼쳐 이야기를 기록하는”(「너를 만지다」) 순간이기도 하면서, 문자와 종이의 관계를 뼈와 몸으로 여기는 시인에게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에 검은 잉크가 새겨지면서 새로이 시가 탄생하는 순간”(양경언, 해설)이기도 하다.

둘로 쪼개진다//부풀어오르면 균열이 많아지고 반경이 넓어지면 경계가 길어지는/팽창의 역사가 증명해온 습성//커다랄수록 쉽게 쪼개진다 쉽게 둘이 된다//지척이었던 거리 아득해진다//(…)//쪼개진 단면은 붉게 변해 서로 낯선 얼굴을 한다//비애가 탄생하고 죄와 용서가 분리된다//바다를 사이에 둔 대륙처럼 멀어지고 서로를 모방하는 표정이 실패할 때//이쪽 기슭의 눈먼 벌레들이 더이상 저쪽의 시간으로 건너가지 못할 때//사이에 부는 바람에도 균열이 인다(「사과」 부분)

유병록의 시는 진부하고 어설픈 상징이나 알레고리 혹은 흐리터분한 이미지의 나열로 빈약한 사유를 눙치거나 얼버무리지 않는다. 시인은 바람에 날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구겨진 종잇조각에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읽어내고 “검은 뼈가 자라듯 글자가 새겨지던 순간”과 “뼈를 부러뜨리고 온몸에 상처를 남긴 완력”(「구겨지고 나서야」)을 포착해내는 섬세한 시선으로 사물의 실체를 꿰뚫어보며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은 또한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다더군/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사자(死者)의 서(書)」)에서처럼 상징적 관념을 찬찬히 풀어놓거나 때로는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환상적 세계를 펼쳐놓기도 한다.

붉게 익어가는/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개의 심장//그러니까 붉은 달이 뜬 적 있었던 거다 아무도 수확하지 않는 들판에 도착한, 이를테면 붉은 달이라 불리는 자가//제단에 올려놓은 촛불처럼, 자신이 유일한 제물인 것처럼 어둠속에서 빛났던 거다 비명을 삼키며 들판을 지켰으나//아무도 매장되지 않은 들판이란 없다//붉은 달은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 사방으로 솟구친 붉은빛이 들판을 물들인 것//(…)//토마토를 베어 물 때마다/내 심장으로 수혈되는 붉은빛//붉은 달이 뜬다(「붉은 달」 부분)

유병록이 고등학교 때 쓴 시 「식구」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히고 있다. 그만큼 탄탄한 기본기와 내공이 입증된 셈이다. “이 시인의 첫걸음으로 하여 우리 시는 희미해져가는 두근거림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손택수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한국 시단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듬직한 젊은 시인을 또 한사람 맞이하게 되었다. “석탄처럼 막막한 밀도의 어둠을 품고 피워낸 불꽃”(손택수, 추천사) 같은 시집으로 시단에 또렷한 첫발자국을 새긴 이 시인의 진중한 행보가 자못 기대되기도 하거니와, 그가 내딛는 걸음마다 우리 시의 지평이 한껏 더 넓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는다.

모래가 사막을 건너고 있다/몇번이나 쓰러졌다 일어서는 모래의 무릎이 빛난다//아름다운 무릎이란/한번의 상처로 얻는 게 아니어서/저 모래는 아슬아슬한 생애를 몇번이고 건넜을 것이다/시간에게 수차례 무릎 꿇었을 것이다//구부러진 생애가 무릎으로 남는 법/그걸 무릎의 세습이라 부르자//(…)//나는 상처 많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구부러진 생을 구술하는 모래 속으로 손을 넣는다/무릎으로 남은/지난 여러번의 생애를 헤아려보는 것이다//나는 지금 무릎걸음으로/수천수만번째의 나를 건너는 중이다(「무릎으로 남은」 부분)

추천평

첫발자국이 깊다. 등짐의 하중이 그만큼 무겁다는 반증이다. 시인의 발자국은 일상의 평면을 파고들어 수직적인 심연을 선물하며 광활한 대지의 상상력으로 우리를 이끈다. 거기에는 사라진 이름들을 찾아 하강하는 자의 캄캄한 고독과 대지를 뚫고 뿔처럼 솟구쳐오르는 흰 나무의 눈부신 초월, 그리고 “제단에 올려놓은 촛불처럼, 자신이 유일한 제물인 것처럼 어둠속에서 빛나”(「붉은 달」)는 “흰 털이 있는 검은 염소”(「검은 염소의 시간」)의 피가 있다. 이 장엄한 스케일의 주인공은 오르페우스의 후예다. 리라를 품고 명계(冥界)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처럼 시인은 삶과 죽음 사이의 균열을 비집고 들어가 “딱딱하게 언 바람과 구름의 파편 그리고 차갑게 식은 별빛”(「빙하흔」)을 흔들어 깨운다. 균열은 말하자면 현과 현 사이의 공간처럼 분열된 음들을 공명케 하는 숨결이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두부」)하고자 하는 기획은 그러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호명하는 순간 사랑의 대상도 시(詩)도 저 거대한 무(無)와 부재 속으로 다시 멀어지고 만다. 이 돌이킬 수 없는 한계 체험이 역설적으로 생의 감각을 자극하고 “종이 한장 갖지 못한 자들이 제 몸을 펼쳐” 기록하는 “이야기”(「너를 만지다」)에 더 깊이 귀 기울이게 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소멸의 감각이야말로 하나의 가능성이요 윤리다. ‘사자(死者)의 서(書)’이면서 동시에 절박한 ‘생명의 서(書)’로서 석탄처럼 막막한 밀도의 어둠을 품고 피워낸 불꽃. 감히 말하건대, 이제 이 시인의 첫걸음으로 하여 우리 시는 희미해져가는 두근거림을 되찾게 될 것이다.
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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