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영원히 바꿀
면역계 그림 여행
2019년 11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6억 명을 돌파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최근에는 중국에서 20일 사이에만 2억 4800만 명이 확진되었으며 그 원인은 ‘집단 면역’의 달성 실패라는 소식이 들려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이슈 외에도, 주변에서 흔하게 들려오는 “김치, 면역력 강화 식품으로 주목.” “학업 스트레스 해법은 면역력 강화.” “키 크고 싶다면, 면역력 관리부터.”라는 말에서 유추해 보면 아무래도 이 면역이라는 녀석은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인 듯하다. 그렇다면, 면역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면역계는 인간의 뇌 다음으로 복잡하며,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생명 현상 중 하나다. 면역계가 없다면 우리는 며칠 안에 죽고 만다. 거꾸로 병원체가 아니라 면역계가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무서운 에볼라 바이러스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려면 6일 정도가 필요한 반면, 면역은 15분이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2023년 ㈜사이언스북스의 첫 책인 『면역: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는 유튜브 최강의 과학 채널 ‘쿠르츠게작트 - 인 어 넛셸(Kurzgesagt - In a Nutshell)’의 설립자 필리프 데트머(Philipp Dettmer)가 이토록 중요한 인체의 방어 체계, 면역계 이야기를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는 한 편의 대서사시로 바꾸어 마치 한 편의 쿠르츠게작트 영상을 보는 듯한 45장의 인포그래픽 이미지들과 함께 최대한 알기 쉽게 전달하는 책이다.
침략, 전략, 패배, 고귀한 자기 희생으로 가득 찬 맹렬한 전투가 우리 내부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면역계는 우리 몸에서 자라기 시작한 암세포를 발견하고 사멸시켰을지 모른다. 총천연색 그림과 재치 있는 표현으로 가득한 이 책은 우리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주제 중 하나인 면역학을 외계 행성에서 벌어지는 매력적인 모험으로 바꾸어 놓는다. 『면역』은 우리 몸에서 언제나 중요했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는 체계를 다루는 흥미로운 특강이다.
한눈으로 보는
면역과 생명의 원리
『면역』의 중심 주제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도 못한 사이 몸속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침략, 방어, 전략, 패배, 자기 희생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쟁의 무대와 등장 인물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 한다.
1부 ‘면역계의 기초’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필리프 데트머는 35억 년 전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5억 년 전 단세포 생물들이 협력하고 면역계를 발전시키며 어떻게 폭발적인 생물 다양성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혜택이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를 차례대로 설명한다. 면역 덕분에 가능해진, 이 이야기의 등장 인물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바로 우리 몸이다. 생명의 가장 작은 구성 단위이며 생화학적 과정에 의해 추진력을 얻는 단백질 로봇인 세포의 시점에서 그가 묘사하는 인체는 해와 별, 은하로 이루어진 ‘바깥 우주’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독자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2부 ‘궤멸적 손상’에서 데트머는 ‘숲속을 산책하다 신발을 뚫고 발바닥에 박힌 녹슨 못’이란 상황을 가정해, 우리 몸에서 벌어질 일을 그대로 재현해 본다. 세포 입장에서는 금속으로 된 소행성 하나가 하늘에 구멍을 내고 자신들의 세계 한복판으로 떨어진 것과 같은 이 대재앙에서 주된 악역은 외부의 세균, 주인공은 큰 포식 세포(대식세포)와 중성구(호중구), 가지 세포(수지상세포)를 비롯한 선천 면역계의 전사들, 그리고 이들이 말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내던져 가며 치른 싸움의 전황이 좋지 않을 때 구원 투수로 등장하는 후천 면역계의 T 세포와 B 세포, 그리고 항체이다.
기억하기 어렵고 복잡한 이름과 내용이 줄줄이 등장하는 2부에서 그는 ‘빵에 담긴 소시지만 먹을 수 있는 T 세포’, ‘수십억 명의 손님에게 서로 다른 요리를 제공하려 하는 요리사’ 같은 비유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우주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무궁무진한 잠재적 항원에 대응하는 면역계’라는 놀라운 결과를, 아무런 의지나 방향도 없이 체액 속을 떠다니는 제한된 단백질이 한데 모이는 것만으로 달성해 내는 생물학적 창발(emergence)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3부 ‘적대적 인수’에서는 주 악역이 바뀌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외계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세균이 흙발로 쳐들어와 마구 소리 지르며 우리 집을 유린하는 야만인이라면, 바이러스는 조용히 들어와 구성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하고 집을 차지해 기지를 만드는 특수 부대에 가깝다. 3부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정체와 왜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물리치기가 힘든지, 그리고 이를 위해 면역계가 사용하는 특수한 방어 전략들인 인터페론, 살해 T 세포와 자연 살해 세포에 대해 알아본다.
또한 이 과정에서 평생토록 우리를 지켜 줄 면역학적 기억을 우리 몸이 간직하는 방법, 수백 년의 경험을 통해 인류가 습득한 질병 대처법인 백신의 역사와 그 기전, 마지막으로 소위 ‘백신 반대 운동’의 허구성과 우리가 왜 꼭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에 관한 이유까지 알 수 있다.
4부 ‘반란과 내전’의 주제는 우리를 지키는 면역계의 어두운 일면이다. 즉 이 위대한 시스템이 붕괴해, 외부 침입자가 아닌 우리 면역계가 삶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4부에서 필리프 데트머는 후천 면역 결핍 증후군(AIDS)처럼 면역계의 약점을 공격하는 질병으로 시작해 알레르기 같은 자가 면역 질환, 그리고 한때 자신이 실제 환자이기도 했던 암까지 면역계가 이상 행동을 보일 때 일어나는 일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각종 건강 기능 식품의 ‘면역력 강화’라는 홍보 문구가 왜 실제로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한지, 우리가 면역력 강화를 추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진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실제 사건 사고 사례와 함께 배울 수 있다. 마지막 장인 45장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는 2021년 출간 당시 한창 맹위를 떨치던 COVID-19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실려 있다. 변종을 거듭하며 여전히 인류를 위협 중인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팬데믹이 왜 우리 면역계가 믿기지 않을 만큼 중요한지, 왜 더 많은 사람이 면역계를 이해할수록 도움이 되는지 일깨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는 그의 전망은 아직 유효할 것이다.
면역을 이해하고 싶은가?
이 책을 읽어라!
생물학에서 가장 복잡한 현상이며 우리 삶의 건강과 행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면역계를 주제로 한 교양 과학서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기존 도서와 구분되는 『면역』의 최대 장점은 이 책이 ‘과학을 쉬운 말로 전달하는 일’에는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저자가 수많은 전문가에게 조언, 면역학자로부터는 최종 원고 검수까지 받으며 첨단 면역학의 성과와 쿠르츠게작트의 노하우를 그대로 녹여낸 10년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면역 세포 사이의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진 면역계, 그 면역계와 적 사이의 더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진 면역 반응, 그 면역 반응과 환경과 사회 사이의 더더욱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진 세계를 적절한 비유와 예시와 위트, 아름다운 인포메이션 이미지를 섞어 차근차근 설명하는 『면역』. 이 책과 함께 면역계를 주제로 한 쿠르츠게작트 유튜브 영상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독자들이 2023년 새해에 자신,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지식과 지혜를 얻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