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개 그림’부터 ‘조선 통신사 행렬도’까지!
옛 그림 속 풍경의 인문학적 탐사로 한국학의 새 지평을 열다
궁궐에서도 개를 길렀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와인을 마셨을까? 우리나라 지도는 과연 어떤 모양일까? 조선 왕의 옥좌 뒤에 있던 ‘일월오봉도’가 ‘봉황도’로 격하된 까닭은? 조선 왕조 초상예술의 결정체라 할 어진御眞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1795년 수원 행차 시 정조는 왜 6천여 명의 수행 인원을 대동했나? 안산시 단원구와 단원 김홍도의 관계는 무엇이며, 소설의 안팎에서 그림을 그린 조선 여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
그림으로 옛사람들이 즐긴 진미를 음미하고, 파초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상상하며 눈을 감는다.
새로운 세계가 황홀경처럼 펼쳐지는 북경의 유리창琉璃廠 거리를 거닐며,
날렵하고 매끄러운 도자기 위 비췻빛 하늘을 나는 학을 바라본다.
추사 김정희와 그 친구들이 나눈 깊고 애잔한 우정에 공감하고,
방랑의 천재 시인 이백의 삶에 취한다. 권세가의 아름다운 정원을 훔쳐보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의 가짜 즉위식을 파헤친다.
그림과 인문을 관통하여 한국학의 대지를 탐사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는 근 20년간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수능 점수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국사는 배우고 싶지 않다”는 고등학생들부터 조선을 건국한 이가 태조 이성계인 줄도 모르는 어른들까지. 이 같은 시대 분위기 속에서 ‘그림’이라는 흥미로운 제재를 통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한국)’의 이야기를 다룬,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가 태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마음’, ‘감각’, ‘사연’, ‘표상’, ‘소통’ 등 총 5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부터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교류까지, 그림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우리 조상이 그림에 자신의 삶과 시대를 담았다면, 이제 우리가 그림을 통해 그것을 읽어낼 차례인 것이다. 이 책은 ‘한국학’이라는 붓으로 그린 ‘한국’이라는 그림이다.
마음―그림, 가슴을 열다
외로움과 그리움, 혹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바람, 이 마음을 어찌할까?
만물도 그림도 그 시작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림을 감싼 인간의 정과 내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림을 통해 한자리에 모은 옛사람들의 우정과 교감, 고독과 위안, 자기 응시와 보편적 이상을 곱씹다 보면 그들 또한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왕족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비운의 왕자 사조세자가 그린 ‘개 그림’ 속에서는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왕자의 아픔과 절규, 왕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고독했던 사도세자가 마음을 달래려 그림을 그렸다면, 조선후기 사대부들은 황량한 이미지의 산수화를 통해 벗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추사 김정희, 이재 권돈인, 황산 김유근을 이름이다. 그들은 드넓은 하늘 아래 나무처럼 서서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이백을 그리워하는 두보의 마음으로 좋은 그림으로 공유하고, 벗의 그림에 화제를 붙였다.
문인화가 이인상도 친구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영조 임금에게 직언으로 상소했다가 귀양살이하는 이양천에게 편지를 보내 “자네의 측백나무 그림이 여기 서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네! 자네도 훌륭한 화가야!”라고 하여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만고의 절개를 상징하는 측백나무에 군주의 귀를 거스르며 직언한 그의 상소를 비유하여 유명 화가라고 한 것이다. 이인상의 예술을 관통하는 핵심인 그의 발랄한 내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인상의 글씨인 ‘고전古篆’에도 이처럼 해학이 가득하다.
이 밖에도 안산 바닷가의 박달나무 언덕 단원檀園에 모여 앉은 선비들의 마음자리,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아내를 바라보는 남성의 애틋한 마음, 흔들리다 저려오면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人心)을 도표로 그려 가르친 그림까지. 그림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사람은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 오늘날의 내 마음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옛 그림을 보며 스스로를 반추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감각―그림, 그 감각의 세계
몸 안에서 감각이 요동한다. 보고 만지고 즐기려는 몸의 요구가 감각의 영토를 만든다. 조선의 문인들은 어떠하였을까? 그들의 오감은 무엇을 감촉하고 빚어내었을까?
그림은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감각을 자극하기도 했다. 맛있는 것을 음미하고 싶은 마음,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즐거운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모두 감각이기 때문이다. 포도 그림을 보면 포도주 맛이 생각나고, 게 그림에 하얀 게살 생각으로 군침이 먼저 돌았다. 그림으로나마 붉은 꽃과 기이한 괴석, 젊은 여인의 몸을 소유하려 들기도 했다. 탐하고 가지려는 모든 감각을 만족시킬 수 없어 그림이 그려지고 글이 더해졌던 것이리라. 커다란 초록 잎 열대 식물인 파초의 강렬한 인상과 그 잎에 떨어지는 여름 빗소리, 노란 국화와 향기에서 빚어진 의미와 도상, 대나무의 기상을 수묵으로 표현한 묵죽은 감각이 그림 속에 풀어놓은 여러 색깔이다. 감각이 새겨진 옛 그림을 보노라면, 생리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적 혹은 정치적 환경이 그것을 건드리고 조정했던 것을 살필 수 있다. 감각의 제국은 언제나 시대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사연―이야기를 품은 그림
하나의 이야기가 자기의 사연을 거느리고 그림으로 바뀌면, 그 속에 작동하는 시대의 문화 코드가 깊어진다. 이야기는 어떻게 그림이 되는가?
감각의 제국이 시대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시대는 그림 속에 사연으로 녹아든다. 그림의 뒤편에서는 언제나 인간사가 배접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품은 그림’들은 그렇게 시대의 적층 위에 떠오른 흔적과 기록이다. 예를 들어, 오랑캐에게 잡혀간 채문희가 자기 아이들과 헤어져 중국으로 돌아오는 내용을 담은 ‘문희별자’의 슬픈 장면은 조선 선비들에게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코드로 감상되었다. 풍류시인으로 각색되어 풍류주인의 이미지로 크게 유행한 당나라 이태백과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특별히 이상화되어 자주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송나라의 학자 소옹은 그림으로 읽어낼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역사 속 이야기일 것이다. 김홍도의 걸작을 주문하고 소유한 역관 이민식, 같은 호號로 활동하여 최근까지 혼동을 일으킨 조선후기 두 화가의 실상은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의 발굴 또한 우리를 그림의 깊은 사연으로 안내해준다. 조선후기 소설에는 그림을 그려 삶의 애환을 표현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사회를 반영하기에, 옛 그림문화의 영역을 확대하여 바라보게 한다.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서 조선 문사들이 지은 독백의 글도 흥미롭다. 초상화와 초상자찬 속에 자기표현의 방식과 전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라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이다. 정치가이기 이전에 시詩·문文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표상―그림이 감싸 안은 국가
왕조와 국가의 권위를 표현하는 정치적 표상은 미술 분야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이며, 이미지의 위력과 가치를 생각하게 해주는 자료들이다.
‘표상’은 국가적 차원에서 기억되고 기호화된 광경이다. 초상화와 초상자찬이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표상’은 국가를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것은 근대 역사의 급변 속에서 우리나라를 표상하는 이미지도 함께 흔들린 까닭이다. 일제는 ‘호랑이’ 모양의 우리나라 지도 형상을 ‘토끼’로 비하했고, 이것은 해방 후에도 우리 교육에 지속되었다. 조선 왕의 권좌에 ‘일월오봉도’가 안치되었던 전통은 식민지 치하에서 금빛 바탕의 ‘봉황도’로 대체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일제에 의해 선택된 봉황도가 봉황 표장으로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대통령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가 날조한 순종 황제 즉위식 가짜 이미지는 세계로 유포되어버린 지 이미 너무 오래다.
그러나 역사 이미지를 생산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예컨대 정조는 반차도班次圖를 재구하여 자신의 행적을 효과적으로 기록했다. 환궁이라는 시점과 혜경궁께 올리는 다반 진상이라는 의식은 각각 정조가 원행을 통해서 의도하였던 수도권의 발전과 대민 정치, 그리고 선친의 추존을 통한 왕위 정통성 강화를 드러내기 위해 채택한 것이다. 역사 기억을 제조하여 자신의 표상을 남겨준 사례다. 대한제국을 천명한 고종도 황제가 된 권위를 세우고자 제단 조경단을 새롭게 구축했다.
참담한 한국동란을 부산의 한 창고 속에서 잘 견딘 조선 왕의 초상, 즉 어진御眞이 서울로 돌아오려는 찰나에 화재로 불탄 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어간다. 사라진 어진들의 불멸화는 오늘날의 과제이다.
나라든 제왕이든 자신의 격에 어울리는 상징과 형식을 입어야 비로소 표상성을 획득한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표상은 무엇인가? 표상의 구축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고민해볼 대목이다.
소통―그림, 세계를 보다
그림의 이미지는 경계를 넘고 시대를 건너 전달된다. 시공을 넘나든 이미지들은 무엇을 소통시켰을까?
그림은 때때로 경계를 넘어 세계로 통하는 창문을 열기도 했다. 청자 하면 떠오르는 구름과 학의 문양, 즉 운학은 고려의 영원한 초상이지만, 이 문양은 원래 중국 송나라의 그림과 깃발에서 시작된 상서祥瑞의 메시지였다. 구름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학이 송나라 황실에서부터 시작해 고려청자 속 비췻빛 하늘까지 날아든 셈이다. 이미지로 소통된 여사와 정치가 운학문에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북경에 간 조선후기 연행사의 눈에 비친 유리창琉璃廠 서점 거리는 세계로 통하는 통로이자 황홀경 그 자체였다.
일본의 서적 속에 새겨진 조선의 풍속 이미지는 또 어떠한가? 일본 책 속의 조선 풍속화 두 장은 다른 나라를 건나도보고 표현하려는 욕구로 빚어진 이미지였다. ‘조선 통신사’가 감상한 일본의 궁중 음악 이미지, 일본이 기록한 ‘조선 통신사’ 수행 악대 그림도 양국이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소통은 한·중, 한·일뿐만 아니라 중·일 간에도 이루어졌다. 눈알이 주렁주렁 달린 복장의 약장수는 중국 송나라 연극을 표현한 그림에 등장했던 특별한 인물상이다. 일본의 가부키를 그린 우키요에浮世繪에도 덜컥 등장한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눈알 복장 인물상이 전달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흐름이며 소통이다.
국제 전화는 물론 비행기,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는 다른 나라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 지금의 소통은 우리 역사에 어떤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가? 이것은 역사 속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
그림 속의 한국학, 한국학 속의 그림
2년 전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로 뭉쳤던 계간 《문헌과 해석》 집필진이 또다시 의기투합한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는 해묵은 풍경 속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화면 밖으로 되살려냈다. 32명의 집필진은 문학, 철학, 역사, 회화, 복식 등 문화 전반을 망라하여 국내와 중국, 일본, 미국 등 각지의 소장 도판 목록을 뒤지고 하나하나 보석처럼 매만지며 다듬었다. 덕분에 이 책 속에는 옛사람들이 즐긴 진미부터 새로운 세계가 황홀경처럼 펼쳐지는 북경 유리창 거리, 권세가의 아름다운 정원까지 230여 개의 도면圖面이 은성하게 반짝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3국의 수준 높은 고전 회화를 단지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고전 속에 있다고 답한다. 여기서 고전이란 문학 작품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 또한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자 고전이다. 그림을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힘을 기른다면, 우리 고전 회화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