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보면 특이한 조건의 땅에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는 건축물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크기가 작은 땅에 지은 작은 건물, 뾰족한 땅에 자리한 날카로운 건물, 땅과 땅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얇은 건물, 개발에 밀려 잘려나간 상처를 입은 채 서 있는 건물, 고쳐 짓고 고쳐지어 처음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신한 건물, 도로가 생기면서 건물의 앞뒤가 바뀐 건물…. 정말 특별한 건물들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변화의 상황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내고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 보여 그냥 지나칠 수 없다. _005쪽에서
호기심 많은 한 건축가의 얇은 집 탐사기
이 건물이 지어지기 전까지 숭례문의 오랜 이웃은 남지였을 것이다. 없어지고 다시 조성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남지와 숭례문은 따로따로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하나와 같은 각별한 이웃이었다. 근대에 들어 남지가 메워지고, 숭례문 양쪽의 성곽이 훼철되어 숭례문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 남지 자리에 큰 규모의 일화빌딩이 세워지면서 한동안 일화빌딩이 숭례문의 이웃이 되는가 싶었지만, 세종대로가 대규모로 확폭되면서 일화빌딩도 남지처럼 숭례문 곁을 떠났다. 남은 땅은 폭이 좁아 건물이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한동안 건물이 없었으니 2000년에 HM빌딩이 준공됐을 때 숭례문도 무척 반가워하지 않았을까? _125쪽에서
숭례문 앞에는 지상 10층, 지하 1층 규모의 얇은 건물이 있다. 주변의 고층 건물과는 다른 모양새 때문에 눈에 띈다. 무엇보다 뾰족한 모서리가 인상적이다. 건물은 중구 세종대로 27에 있는 HM빌딩으로 2000년에 지어졌다. HM빌딩이 지어지기 전까지 그 땅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아무리 서울의 중심부 목 좋은 땅일지라도 땅이 좁고 길어서 선뜻 건물 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숭례문 앞에 어쩌다 이렇게 좁은 땅이 생긴 걸까? 신민재 건축가는 “지난 100년간 있었던 다양하고 폭력적인 토목공사의 상처”를 간직한 땅이라고 말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만든 남지, 1907년 요시히토 황태자의 방문을 앞두고 남지를 매립, 그 자리에 들어선 대형건물, 건물은 해방되고 1968년까지 사용되다가 도로 확장으로 철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대를 지나는 1호선 지하철 공사…. 정파의 논리에 따라 메워지고 다시 만들고를 반복한 남지의 역사처럼 이 땅 역시 파란만장한 서울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채 용케 살아남았다. 비록 제대로 건물을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좁고 긴 땅의 모양이지만.
‘ㅇㅇ리단길’의 원조인 경리단길에는 주차구획보다 좁은 유리 건물이 있다. 이 집은 육군 중앙경리단의 높은 담장 뒤에 자리한다. 육군 중앙경리단의 높은 담장과 담장 위 철망이 상당히 위협적이다. 그 담장 너머 주차구획보다 좁은 폭을 가진 땅에 2015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경리단길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던 시기였으니 좁은 땅이나마 활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은 집으로 보인다.
육군 중앙경리단이 이곳 이태원동 518번지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남산자락의 경사지는 크게 절토되었다. 절토로 만들어진 높은 절벽 위에는 군시설의 보안을 위해 높은 담장이 세워지고 날카로운 철망이 올려졌다. 담장 너머에는 육군 중앙경리단 영내로 포함되지 못한 조각 땅이 생겼다. _312쪽에서
이처럼 『땅은 잘못 없다: 신민재 건축가의 얇은 집 탐사』는 책에 소개된 60여 개의 얇은 집이 품고 있는 사연을 이야기한다. 집의 만듦새와 모양새, 구조는 물론 도시의 변화에 휩쓸려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땅의 내력 등을 저자 특유의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분석한다. 글에서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얇은 집을 향한 애틋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글을 보충해 주는 다양한 참조 자료는 저자와 함께 얇은 집 탐사하는 듯한 현실감을 더해 준다. 변화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연도별 항공사진과 당시 시대를 알 수 있는 기록 사진, 땅의 현황을 말해주는 지적도, 1936년 항공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파노라마지도인 〈대경성부대관〉, 〈경조오부도〉, 〈수선전도〉같은 옛지도 등.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직접 그린 건물 스케치, 위치도는 건물의 모양새와 앉음새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왜 이런 땅과 건축물에 관심을 가졌을까?
1976년생인 나는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내가 놀며 자란 아파트는 지금 남아있는 것이 없다. 안양 비산동 주공아파트, 과천 2단지 아파트, 영동 차관아파트, 모두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새로운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일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내 정체성과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시간의 축이 서로 겹쳐지는 경계나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이 그리도 흥미로웠나 보다. 도시의 정체성은 시민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내 정체성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닌가. _006쪽에서
책은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민재 건축가는 여우가 물을 마시기 편한 납작한 그릇과 두루미에게 적합한 목이 긴 병이 자신에겐 ‘특징 있는 땅, 특성 있는 재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땅의 상황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땅에 맞춤해 계획을 잘 세운다면 오히려 개성 있는 좋은 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납작한 그릇과 목이 긴 병, 그릇의 특징과 성격에 맞춤한 사용처를 찾지 못했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사용자의 잘못이지 그릇은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못난 땅이라고 땅을 탓하기보다 땅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살피고 땅을 이해해야 한다. 신민재 건축가는 못난 땅이라고 땅을 탓하지 말고 땅의 상황과 조건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못난이 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못난 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성과 합리성을 이유로 유년시절 지내던 아파트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자신의 정체성, 이 도시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 할아버지 집이 지어지고 손자인 내가 태어났지만, 월곡천은 아버지의 축구장과 함께 추억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한 세대가 지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셨고,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축구장에 들어선 미아아파트 자리는 2003년에 재건축되어 미아 경남 아너스빌이 들어섰다. 할아버지 집은 2017년에 재건축으로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지금은 미아 꿈의 숲 롯데캐슬이 들어섰다. 아버지의 축구장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할아버지 집도 기억 속에만 남았다. _265쪽에서